대전에 사는 윤시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형님! 여기 해남 가학산이야. 심심해서 놀러 왔어."
3월초에 내려 온다고 날짜까지 잡았다가 급한 일 때문에 무산되었는데 이번에는 작정하고 내려 온 모양이었다.
"긍게 말이여. 여그가 장흥이거든 지금 여그서 모임이 있응게 박시인, 유시인 모두 함께 있응게 요리로 오기여. 여그로 올려면 가학산 내려가서 택시를 타고 독천버스정류장에 가서 점심 요기로 토스트 하나만 들어. 그것이 생각보다 맛있고 요기도 되더라고. 술판을 벌일랴면 속이 든든혀야 거든. 그리고 장흥까지 직행버스를 타고 와서 장흥군청 옆구리에 있는 신낙원집으로 오면 되는 거여. 알았지?"
민예총 모임이 끝날 즈음 윤시인이 도착했다. 베낭을 메고 등산복 차림이었다.
"어이! 반갑네. 우리 먼저 장흥 막걸리를 마시러 가세."
박시인이 악수를 청하면서 윤시인의 막걸리 좋아하는 취향을 아는지 막걸리 집으로 우리를 인도했다.
이렇게 윤시인을 위한 환영 잔치가 벌어졌다.
장흥군청에서 10여분 걸어가니까 탐진강 다리가 나오고 천변길 골목에 허술한 선술집이 나왔다. 제일식당이었다. 상호가 옛날 양철판 바탕에 고딕체로 낡아 있었다. 미닫이 문을 열고 들어가니 탁자 두 개가 놓여 있고 그 옆에 6, 7명이 앉을만한 마루방이 있었다.
"싸게싸게 들어오랑께요. 여그 마루방이 땄땄허니까 올라 앉으랑께요."
눈이 크고 몸매가 굵직한 아주머니가 우리를 반겼다.
나를 비롯하여 윤시인, 박시인, 유시인, 그리고 진도에서 오신 허선무 선생님, 박종호 지부장도 자리를 잡았다. 함께 온 김애경씨는 아래 탁자에 앉았다.
"아줌씨 나, 아요? 저번에 한 번 들렀는디."
박시인이 아주머니에게 아는 체를 했다.
"아따, 기억이 나고 말고요. 그 때 막걸리를 열병이나 마셨지람?"
"예, 그 때 아마 열댓병은 마셨지람. 그 때 이 자리가 너무 좋아지람. 이번에도 막걸리로 주시요 잉."
박시인이 예전 추억담을 더듬으면서 막걸리를 주문했다.
"그러지람. 장흥은 물이 깨끗혀서 막걸리 맛이 그만이랑께요. 그런디 안주는 멀로 헐까?"
"아따, 막거리나 먼저 주시고 주문 받으시요. 이왕 말 나왔응게 그 때처럼 쌩 두부로 하시옹."
아주머니가 막걸리와 기본 안주를 내 왔다. 그런디 이게 웬 거여. 기본 안주로 김치 보시래기, 콩나물 무침, 덕근 시금치, 생감자까지 나오는 것은 그래도 이해 되는데 물천어 찜이 두 접시나 나 온 것이다.
"아짐씨! 이거 탐진강 물천어 아녀요?"
유시인이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아, 그거요. 탐진강 은어 찜이지람. 도깨비 시장에서 한 바케스 사다가 푹 쪘지람. 지는 두부 사러 갈팅게 싸게싸게 드시요 잉."
"아줌씨! 가만가만. 두부 필요 없응께 이것 5천원 어치만 주시옹. 아니, 한 냄비 내 오시오. 만원 들일팅게.."
탐진강 물천어 찜을 보니까 내 마음이 동했다. 이것 물천어에다 술을 마시면 아무리 먹어도 취하지 않을 것 같아서 두부 사려 가려던 아주머니를 말리고 안주를 물천어로 돌린 것이다.
"그러면 오늘 윤시인의 방문을 위하여 그리고 우리의 만남을 위하여 한 번 마주쳐 봐야지. 내가 선창하면 모두 그러세로 응답하는 거여. 우리의 건강과 가정의 평화를 위하여 한 잔 들지.."
"그러세..."
"공자가 '유붕자원방래'라고 혔는디 우리 윤시인이 남도를 방문 허니까 이럭크롬 기쁨이 넘치는구만.. 윤시인 한 잔 허세."
이렇게 웃음이 넘치고 기를 살리면서 우리는 막걸리 웃주를 한 순배 돌렸다. 뱃속으로 짜릿짜릿한 우정을 만끽하면서 제일식당에서 한 나절을 보냈다.
모두들 술이 거나 해서 선술집을 나왔다. 유시인과 김애경씨가 차를 몰아 몽탄역으로 달렸다. 박시인이 저녁 교대 근무라 몽탄역으로 향한 것이다. 몽탄역 옆에 있는 안성식당에서 저녁을 들었다. 박시인은 저녁만 들고 근무하러 갔다. 요새 암행 근무독찰이 심하기도 하지만 근무는 철저히 해야 한다며 입맛 다시는 박시인을 뒤로 하고 다음 3차를 위하여 목포 뒷개로 향했다. 논술학원장인 박성민 시인이 한 잔 산다고 해서 '아따 거시기' 집으로 간 것이다.
이 집은 실내도 좁고 지저분하지만 손님이 북적거렸다. 아마 쥔장이 서글서글하고 먹거리들이 싱싱하고 싸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거기서 우리가 즐겨 먹던 굴찜을 시켰다. 그런데 굴찜 철이 다 끝났다고 했다. 올해는 수온이 높아져서 독성이 강해져서 굴찜을 먹을 수 없다고 쥔장이 애통해 한다. 새꼬시를 시켰다. 이 집 새코시도 자연산이라서 싱싱하고 씹히는 맛이 있었다. 한 30분이 지나서까 박성민 시인이 왔다. 윤시인을 보더니만 입이 함박만해진다. 그래도 동갑내기라고 허물이 없는 모양이었다. 이어서 박성호 지부장도 왔다. 윤시인과 악수를 하면서 반갑다고 그 손을 놓을 줄 모른다. 이것이 목포 분위기다. 손님 접대가 몸에 베어 있어서 목포 인심을 푹푹 쏟아내는 것이다.
새벽 1시가 되어서 거시기 술판이 끝났다. 내일 근무하는 유시인을 김애경 씨 차에 강짜로 태워 보냈다. 그리고 그 옆에 있는 투다리에 가서 생맥주로 입가심을 했다. 새벽 3시가 되어서야 모임을 끝내고 윤시인과 함께 집으로 향했다. 나도 취하고 윤시인도 취해서 서로 기대면서 집으로 왔다.
아침에 일어나니 온몸이 쑤신다. 건강 때문에 술을 줄였는데 어제는 너무 마신 것 같다. 아침 10시 경에 윤시인을 깨웠다. 윤시인은 그제 광주에서 한잠도 못잤다가 어제 푹 쉬었다며 치하한다. 아내가 곱게 아침을 보아 왔다. 입맛이 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아내가 차려준 술국으로 아침을 들었다. 윤시인도 물을 벌컥벌컥 마시면서 밥술을 뜬다.
오전 12시경에 유달산에 올랐다. 우리집 오는 손님들은 다음날 오전에 유달산에 오르는 것이 상례로 되어 있다. 거실에서 유달산을 한눈에 볼 수 있어서 손님들이 가고 싶은 마음이 동해서 자꾸 모시고 가다보니까 그것이 버릇으로 남은 것이다. 소요정을 거쳐서 1등바위까지 올라갔다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에는 유달산 매화와 춘란을 보려고 달성공원 쪽으로 내려왔다. 공원 난온실 옆에 해묵은 매화나무가 있었다. 해마다 고고한 꽃을 피워서 봄이면 내가 즐겨 찾는 나무였다. 올해에도 그 하얀 몸매를 드러내며 벙긋벙긋 눈썹을 떨고 있었다. 아직 다 피지 않은 꽃 가지를 꺾어 속 주머니에 담았다.
오후 1시 정도에 박시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제 근무를 마쳤다며 점심이라도 같이 하자고 했다. 목포 선창 옆에 있는 영암식당에 어제의 용사들이 다시 모였다. 오늘도 술판이 시작된 것이다. 이번에는 아구탕을 시켜 놓고 목포 막걸리를 마시기로 했다.
영암식당은 항동시장 입구에 있다. 이곳을 일명 보리밥 골목이라고 부르는데 장산식당을 비롯하여 대여섯개의 허름한 식당이 있는데 한결같이 값이 싸고 예전 맛이 나기 때문에 우리들이 자주 찾는 곳이다. 서울이나 타지에서 손님이 오면 꼭 모시고 오는 코스인데 그 중 하나가 영암식당이다.
영암식당에서 벌인 술판은 끝이 없을 정도로 계속 되었다. 술이 떨어지면 안주가 남아 있고 술이 남아 있으면 안주가 없어서 자꾸 시키면서 술판을 벌였는데 장장 8시간이나 걸렸다. 사실 윤시인은 아내가 기다린다고 오전 중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그런데 너무 술판이 빠져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유달산에서 꺾어 온 매화꽃 가지를 유리잔에 꽂았더니 하얀 꽃잎을 벙긋벙긋 피워냈다. 그 향기까지 그윽하게 술판을 떠도니까 술맛이 저절로 났다. 이렇게 우리 모두는 거나하게 취했다. 아마 소주를 마셨다면 모두 드러 누웠을 판이다. 그래도 돗수 낮은 막걸리를 마셔서 화장실은 들락날락하면서 깨면서 마시고 마시면서 깨기를 반복할 수 있었다.
오후 7시정도에 술판이 끝났다. 윤시인의 대전행 기차 시간을 핑계로 술판을 마친 것이다. 그런데 목포역에 갔더니 기차가 떠나고 없었다. 7시에 출발하는데 7시 20분으로 윤시인이 착각했던 것이다.
다음 기차는 9시 30분에 있었다. 꼼짝없이 2시간을 또 뻐대야 했다. 저녁이라도 먹자고 뒷개 '섬마을해물탕' 집으로 갔다. 거기서도 술판이 벌어졌다. 이번에는 보해소주가 나왔다. 해물탕이라 막걸리가 격에 맞지 않다며 소주를 시킨 것이다. 모두들 술이 거나해서 그런지 그 독한 소주를 물처럼 마신다. 취기가 머리 끝까지 올라 왔다. 윤시인의 입에서 노래가락이 슬슬 나왔다.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이었다. 나도 모르게 흥이 겨워서 젓가락 장단을 냈다. 모두들 상다리를 두드리며 합창을 했다. 옆자리에 있던 아줌씨들도 함께 노래를 불렀다. '유붕자원방래'라고 윤시인과 함께 하는 30시간의 '불역열호'도 기울고 있었다.
첫댓글 학이시습지면 불역열호아, 유붕이 자원방래면 불역낙호아, 인부지이불온이면 불역군자호아라........... 친구랑만 놀고 계셔도 고운 술국내어오시는 사모님과 사시는 것을 부러워해야 하는 건지....... 건강하세요. 고맙습니다. ~*__^*
논어 공부 열심히 했습니다. 배우고 또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벗이 멀리서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으면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
子曰. 學而時習之면 不亦說乎아, 有朋이 自遠方來면 不亦樂乎아, 人不知而不溫이면 不亦君子乎아,,, ....... 고맙습니다. ~*__^*
좋은 글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