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싸가지 없는 인간들 ◈
세계 최고의 수비수로 꼽혔던 스페인의 세르히오 라모스도
경기 중 상대 선수에게 손찌검을 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은 적이 있어요
2010년 11월 유럽 클럽 축구 최대 라이벌전인
레알 마드리드-바르셀로나 경기에서 레알이 0대5로 형편없이 밀리자,
짜증이 폭발한 라모스는 상대팀 에이스인 리오넬 메시의 정강이를 걷어찬 데 이어
항의하는 상대방 선수의 빰을 후려쳐 넘어뜨렸지요
그런데 하필이면 그 선수가 스페인 국가대표팀의 부주장으로
스페인을 남아공 월드컵 우승으로 이끈 카를레스 푸욜이었어요
국민 영웅인 대표팀 대선배에 대한 도발에 스페인 전역이 난리가 났지요
레알 마드리드 팬들 사이에서도 “라모스가 제정신이냐”
“축구계에서 퇴출시켜야 한다”는 비난이 쏟아졌고
결국 라모스는 기자회견을 열어 푸욜에게 공개 사과했어요
인성이 좋기로 유명한 푸욜이 “경기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나는 이미 잊었다”고 쿨하게 넘어가지 않았다면
라모스의 선수 생명은 끝날뻔 했지요
이강인의 ‘탁구 게이트’가 터지자 일각에서는
스페인에서 자유분방하게 자란 이강인 선수와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훈련받은 손흥민 선수의
문화 차이를 이야기하고 있어요
하지만 이는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이야기이지요
간혹 유럽 선수들이 경기 중 잔소리를 하는 코치진을 향해
“닥쳐!”라며 소리 지르고 “출전 시간이 적다”고 대들기도 하지만,
팀을 위한 헌신과 경기에 임하는 태도,
그리고 각자의 역할에 대한 존중과 책임 의식은 훨씬 엄격하지요
축구가 종교인 유럽에서 ‘더비(derby)’ 경기로 불리는
지역 라이벌전에 임하는 선수들을 보면
중세 기사들이 창과 칼 대신 축구공으로 싸우는 느낌마저 들어요
클린스만 감독처럼 경기에서 지고도 웃었다가는
그날로 대역 죄인이 되지요
박지성 선수의 스승인 알렉스 퍼거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은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는 명언을 남겼어요
그는 부진한 후배 선수들을 공개적으로 비난했던 주장 로이 킨,
광고 촬영에 정신이 팔렸던 데이비드 베컴 등
당대 최고의 스타들도 팀 분위기를 해치면 가차 없이 내쫓았어요
데이비드 베컴의 모히칸 머리 사건도 유명한 일화(逸話)이지요
베컴이 영국 축구의 성지인 웸블리 구장에서 열린 경기에
닭 벼슬처럼 정수리 부분만 머리카락을 남기고 양쪽을 민
모히칸 헤어스타일로 나타나자,
화가 난 퍼거슨은
“당장 머리를 밀지 않으면 경기에 출전시키지 않겠다”고 엄포를 놨고
베컴은 눈물을 머금고 머리를 완전히 밀어버렸어요
베컴의 빡빡이 헤어스타일은 이렇게 만들어 졌지요
유럽 구단에서는 퍼거슨 시절만큼 강압적이지는 않지만
여전히 선수단 관리에 세세하게 관여하는 감독들이 많아요
클린스만 감독처럼 자유방임형이 오히려 예외적이지요
현재 최고의 명장으로 꼽히는 페프 과르디올라 맨체스터 시티 감독은
훈련장에서 스마트폰 사용을 금지하는 것은 물론,
피자와 탄산음료, 심지어 과일 주스도 못 먹게 하지요
또 훈련장에서는 반드시 모든 선수가 함께 식사를 하게 하지요
선수들이 함께 식사를 하는 것도 서로 소통하면서 생각을 공유하는
훈련의 일환이라는 것이지요
국제 대회에 임하는 유럽의 국가 대표팀들도 마찬가지이지요
훈련장이나 식사 미팅에 늦었다가 벌금을 무는 경우도 적지 않아요
그런데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가 축구 국가대표 이강인 선수에 대한
비판을 이어가는 홍준표 대구시장을 향해
“누구도 홍 시장님에게 ‘이강인 인성 디렉터’를 맡긴 적이 없다”고
발끈하고 나섰어요
이 대표는 지난 2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홍준표, 손흥민에 사과한 이강인 또 저격’ 기사를 올리고
“애초에 선수들 사인 간에 벌어진 일이며
당시의 상세한 정황이 어땠는지는 현장에 있던 이들만 정확히 알 수 있다.
하물며 당사자들이 잘 풀고 손흥민 선수가 사려 깊은 입장문도 올렸다”며
“축협 비판을 하시는 것이야 자유이지만 정치인이 나서
이렇게 줄기차게 선수 개인의 인성을 운운하는 것은
사태를 악화시킬 뿐”이라고 썼지요
이어 “애초에 누가 누군가를 훈계하고 가르치고
조롱할 수 있는 관계가 아니다”
“‘성숙’은 각자 알아서 하면 되는 일이다”
“누구도 홍 시장님에게
‘이강인 인성 디렉터’를 맡긴 적이 없습니다”고 했어요
마치 훈걔적인 글이지요
홍 시장은 카타르 아시안컵 출전 축구 국가대표팀의 불화가 알려진 뒤
“이참에 대표선수도 싸가지 없는 사람은 퇴출시켜라” 등
이강인을 겨냥한 강도 높은 발언을 해왔지요
이강인이 공식 사과하고 손흥민 선수와 화해한 사진이 발표된 후에도
“그 심성이 어디 가나요?”라고 했어요
홍 시장은 지난 21일 대구시 청년 소통 플랫폼 게시판에 올라온
‘손흥민과 이강인이 공식 화해를 했다고 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에
“두 사람이 화해한다고 묵인할 일인가”라며
“화해는 작량감경 사유에 불과하다. 그 심성이 어디 가나?”고 했지요
그런데 이상하지요
홍시장이 이 대표에게 한 말도 아닌데
왜 이 대표가 생뚱맞게 쌍지팡이를 집고 나선 것일까요?
이를 보고 사람들은 이준석이 제발이 저려서 그런 것 아닌가 하는
반응을 보이고 있어요
싸가지 없기로는 이강인이나 이준석 모두 매일반이지요
그러니 홍준표 시장의 발언에 싸가지 없는 이준석이 발끈 하고 나선 것이지요
아무튼 이번 사건에 온 국민이 폭발적인 관심을 보인 것은
이미 사회 곳곳에서 비슷한 행태의 갈등과 충돌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기 때문일 것이지요
이번에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불법파업을 하고있는 의사들도
싸가지 없기로는 똑 같아요
기업에서도 이강인처럼 재능은 뛰어나지만, 과도하게 자기중심적인
인재들의 요구를 어디까지 수용할 것이냐를 놓고 골머리를 앓고 있어요
아무리 뛰어난 인재들을 끌어모아도 팀워크가 붕괴하면
축구든 기업이든 치열한 경쟁에서 성과를 낼 수 없기 때문이지요
또 팀워크가 무너지면 이를 재건하는 데 오랜 시간과 비용이 들고
심지어 영원히 불가능할 수도 있어요
이번 이강인 사태를 계기로 우리 대표팀의 팀워크를
재 점검하고 버릴건 버리고 고칠건 고쳐야 하지요
퍼거슨 퇴임 이후 팀워크가 흔들린 맨유가 지난 10년간
퍼거슨 감독 재임 27년에 비해 2배가 넘는 스카우트 비용을 쏟아부으며
특급 선수들을 데려왔지만 단 한 번도 리그 우승을 못 한 것은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어요
우리말에 '싸가지'란
"말과 행동이 불친절하고, 적대적이고, 예의나 배려가 없다는 뜻"이지요 ·
자기에게도 그게 없음을 스스로 드러내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이야기도 있어요
이번 기회에 싸가지 없는 인간들은 모조리 퇴출시켜야 하지요
그래야 사회 곳곳에 훈풍이 돌고 도덕과 예의범절이 살아 날수 있어요
-* 언제나 변함없는 조동렬 *-
▲ 손흥민이 지난 21일 오전 본인 인스타그램에 사과하러 런던에 온 이강인과 웃으며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사진을 올렸어요
▲ 싸가지 없는 이준석과 이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