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
김 원 대
모처럼 아파트 평수를 조금 늘려 이사를 오게 되면서 생각한 것이 거실 벽면에 그림 한 폭을 거는 것이었다. 이삿짐을 풀면서 장식장은 물론 달력이며 벽시계 거울 따위는 일찌감치 그림이 걸릴 위치를 비켜 자리 잡도록 했다.
그런대로 대충 집 정리가 끝나게 되면서, 서둘러 몇 군데 시내 표구상을 찾아 그림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미술에는 문외한인 주제에 공휴일에는 서울까지 가서 인사동 화랑을 기웃대기도 했다. 몇 번을 돌아봐도 어디서든 내 마음의 풍경화는 눈에 띄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눈에 들어오는 그림은 생각보다 몇 배나 되는 고가에 엄두를 낼 수가 없었고 아닌 것은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달 가고 해 가고, 아내는 미결상태인 거실 분위기를 못 마땅해 하며 아무 그림이나 걸고 말자고 닦달이다.
마음에 둔 화가가 있는 것도 아니고, 특별히 보아둔 그림이 있어서도 아니고 보면 그림하나 걸자고 거실 벽면을 이도저도 아닌 상태로 비워둔다는 것은 온당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미련을 버릴 수 없어 차일피일 미루어 온 것이 어느덧 5년을 훌쩍 넘기게 되었다. 이제는 벽면 텅 빈 공간이 애초에 그리 인테리어 된 양 자연스러워 보일만큼 길들여진 느낌이다. 그림대신 ‘여백의 미’를 창출하였다고나 할까?
세월을 일러 유수라더니 고향을 떠나 산지 어언 30년도 더 경과되었다. 제대이후 공직생활을 시작하고부터는 신혼의 두 해쯤을 고향에 몸담았을 뿐 그 밖의 세월은 임지를 따라 줄 곳 타관 땅을 떠돌며 살아온 부초 같은 삶이었다.
어쩌다 고향을 찾게 되면 많이도 달라진 시가지며, 어릴 적 뛰놀던 들녘은 노래 말마따나 ‘산천의구란 말 옛 시인의 허사로고’이고 오가는 사람들의 면면이 마냥 낯설기만 하여 이역하늘 아래 선 듯 서먹함을 넘어 공허감을 감출 길 없다. 그러나 고향은 떠난 사람을 끌어안는 끌림이 있다. 회한의 상처도 말끔히 치유하는 포용의 매력, 추억이 있음이다. 추억의 1번지는 단연 바다였다. 바다는 유혹의 현장이었다. 파도소리는 한결같지만 해변풍경은 사시장철 모습을 달리했다. 사계의 으뜸은 단연 여름이었다. 여름방학 때면 집 앞 드나들듯하며 몇 번이고 등짝을 태워 허물을 벗기도 했다. 바다라고 다 같은 바다가 아니다. 해당화 피고 지는 유년의 고향바다는 꿈의 바다였다.
시내에서 동쪽으로 3km 남짓한 거리에 바닷가 외진 마을 ‘후진’이 있었다. ‘후진’은 나직한 바위언덕 하나를 사이에 두고 ‘큰 후진’ ‘작은 후진’으로 나뉘어 있었다. 나는 듬성듬성 크고 작은 바위가 자리한 아늑한 바다, ‘작은 후진’이 더 마음에 들어 먼 고갯길을 마다않고 혼자서도 바다를 즐겨 찾곤 했었다. 바다도 좋지만 바다로 향하는 호젓한 오솔길은 운치를 더했다. 오솔길 언덕, 바다를 병풍같이 감싸 안은 나직한 바위산자락에 초가집 서너 채가 머리를 맞대고 있는, 섬 같은 외진마을이 있었다. 바닷가 초가마을의 정서가 그래서인지 언덕길을 걸으며 미국 민요 번안곡 “내 사랑 클레멘타인”을 그 무슨 행진곡처럼 혼자서도, 같이도, 수도 없이 불러댔다. ‘작은 후진’ 샛길 종착점에 자그마한 모래사장을 품은 숨은 바다가 있었다. 들고 온 점심 보따리를 풀어 놓고, 옷을 벗어 두는 종점이었다. 바다는 확 트인 맛에 찾지만 파도소리와 함께인 한적한 해변은 나만의 진지이듯 호젓함이 좋았다. 마음에 둔 그림은 이 같은 산등성이와 바다가 어우러진 향수의 풍경화이다
내가 미치(美痴)만 아니었어도 손수 그리고도 남았을 단조롭지만 유년의 추억을 연상케 하는 정겨운 풍경이다. 그러니까 미술적 가치보다는 마음의 풍경 자체에 비중이 실린 그런 그림이다. 추억은 향수의 다른 이름이다. 고향땅에 살면서도 석양빛이나 먼 수평선을 바라보노라면 나도 모르게 짙은 향수에 잠길 때가 많았다. 고향에 살면서도 고향을 앓는 또 하나의 향수, 아련한 그리움이 느껴지는 그 무엇, 나는 일찍이 그것을 “에덴의 향수”라 이름 하였다.
하늘과 바다, 그리고 강물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는 순환구조로 존재해 왔다. 바다는 구름을 띄워 비를 만들고 쏟아진 빗줄기가 강물로 흘러 바다로 이어지듯, 아득한 태초의 순간, 천지를 진동하는 천둥소리와 함께 한줄기 섬광이 물길을 비추고 그 빛을 따라 깨어난 생명의 씨앗이 파도를 타고 미동을 시작하였더라고―. 불가사의한 한 점 생명이 나뭇잎 손짓하는 바닷가 숲으로 폴짝 상륙하니 마침내 생명의 단초가 바다에서 뭍으로 이어지고 인류기원의 신화가 태동한 기적의 현장이었다고―. 내 마음속 그림은 이 같은 인류의 기원에 대한 노스탤지어인지도 모른다. 사람은 두 가닥 향수에 산다.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으로 이어지는 하나와 강물을 거슬러 오르면 발원지에 이르듯 생명의 시원에 대한 향수’이다.
그동안 우리 집 맞은쪽 도로 건너편엔 거대한 고층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지킴이듯 버텨 오던 낙락장송 나무숲마저 자취 없이 사라지고, 멀리 보이던 해돋이 산맥의 능선 또한 지워지고 말았다. 나날이 자연이 뭉개지고 도시화의 가속으로 시야가 가려지고 있음이다. 서울은 물론 어느 도시할 것 없이 눈에 들어오는 것이라고는 빌딩 아니면 금전적 가치로 치환되는 고층아파트 일색이다. 마치 아파트를 소유키 위해 생겨난 사람들 같다.
동굴은 구석기시대 인류의 집이었다. 동굴의 벽화는 인간이 다른 동물과 차별화 되는 예술성의 상징이다. 우주만유가 보이지 않는 끈, 만유인력으로 자리매김하듯 진화의 끈으로 보면 문명을 구가하는 날렵한 건축물의 벽면을 장식하는 미술품은 원시의 동굴벽화와 숨결을 같이한다.
거실 벽지가 퇴색되면서 그림이 걸릴 공간도 빛이 바래고 잔뜩 무심한 표정이다. 자연의 속성은 무심(無心)이다. 그러나 인간의 성정은 무심을 용납지 않는다. 모진 집착 때문이다. 향수는 인간만이 가진 가장 인간다운 집착이다. 내가 그리는 아파트 벽면의 그림 찾기는 동굴벽화의 시원으로 이어진 끈인지도 모른다. 향수는 인간만이 앓는 보이지 않는 끈이다.
▷1996 월간 수필문학 천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