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터' 등 5점 박수근에게 선물받았어요
원 소장자 존 릭스 법정서 진술 법원,내달 위작여부 최종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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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근 화백의 작품 ‘빨래터’의 원 소장자인 미국인 존 릭스씨(82·사진)는 30일 “1954~56년 사이 모두 5점을 (박수근 화백으로부터)선물로 받았다”고 밝혔다.릭스씨는 이날 서울중앙지법 민사 25부의 심리로 열린 ‘명예훼손 등에 따른 30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 최종 변론에 증인으로 출석해 이같이 말했다.
2007년 서울옥션 경매를 통해 낙찰가 45억2000만원에 팔린 ‘빨래터’는 폐간된 미술잡지 아트레이드 측이 위작 의혹을 제기하고,이에 서울옥션이 손해배상 소송을 내면서 법정공방을 벌여왔다.그러나 이날 릭스씨의 법정 출석과 증언으로 위작시비는 결정적인 국면을 맞게 됐다.
릭스씨는 “1954년 1월부터 1956년 12월까지 미국 무역회사 헤닝슨의 한국지사(일본 업무 겸임)의 매니저로 활동했다”며 “한 달에 한 번씩 일본을 오갈 때마다 박 화백의 작업에 필요한 캔버스 등을 사다줬고,이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작품을 받곤 했다”고 진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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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당시 서울 반도호텔에 사무실을 두고 부인과 자식 세 명은 모두 일본에 거주하고 있었다”며 “한 달에 한 번꼴로 일본과 한국을 오갔는데 이 사실은 여권 기록에도 남아있다”고 덧붙였다.
릭스씨는 “1964년 박수근 화백에게 보낸 크리스마스 카드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며 “연하장에는 ‘당신의 그림들이 주는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는 내용들을 적어 보냈다”고 주장했다.그는 또 “1년 전쯤 박수근 작품이 가짜라는 보도를 접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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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정당성을 밝히기 위해 50년 만에 한국에 왔다”고 말했다.
서울옥션 측은 “그동안 ‘빨래터’의 진위를 가리기 위한 기준작으로 선정한 ‘고목과 여인’ 작품의 재질이 피고 측의 주장과는 달리 MDF가 아니라 판지를 합지한 것이 확인됐다”며 “존 릭스씨가 이미 1950~60년대에 박수근 작품을 소장하고 있었다는 근거 자료로 제출한 사진 역시 합성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다”고 설명했다.
이학준 서울옥션 대표는 “존 릭스의 이번 방한을 계기로 '빨래터'에 대한 소모적인 위작 논쟁을 끝내고 미술계가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편 재판부는 내달 중 ‘빨래터’ 위작 여부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린다.
이중섭과 박수근의 차이
이중섭은 선(線)으로 그림을 그렸고, 박수근은 유화의 두꺼운 질감으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사람과 동물의 윤곽을 단숨에 그어 내린 듯한 이중섭의 붓질에는 신기(神氣)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천재 화가'로 불립니다. 이에 비해 박수근의 그림에는 신들린 듯한 붓질은 없는 대신 사람의 내면을 우려낸 것 같은 깊이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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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두 사람의 스타일은 워낙 다르기 때문에 "누구의 작품이 더 우수하다"라고 비교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박수근 작품이 더 높은 경매가를 기록하는 것은 미술시장의 특성에서 찾는 것이 옳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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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이 훌륭하다는 것을 기본 전제로 했을 때, 비싼 작가들의 특징은 첫째 유화를 충분히 남겼고, 둘째 그 유화가 자주 거래된다는 점입니다. 현재 한국미술품감정연구소는 이중섭과 박수근의 작품이 (박수근의 경우 단순 드로잉을 제외하고) 각각 350~400점 정도 남아있는 것으로 파악합니다. 이 중 박수근은 유화가 250여 점인 데 비해, 이중섭의 경우 남아있는 유화는 30점 정도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중섭은 수채화나 은박지에 그린 은지화를 더 즐겼습니다. 앞서 말했듯 그는 '선'을 좋아한 화가이기 때문이지요. 오광수 전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저서 '이중섭'(시공아트)에서 "이중섭은 선묘 중심의 화가라 유채 특유의 물질감이 만드는 마티에르(질감)를 일부러 기피했다"고 분석했습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사람들은 유화에 더 많은 돈을 냅니다. 세계 경매업계 1위인 크리스티(Christie's)가 작년에 팔았던 작품의 낙찰 가격 총액은 유화가 75%를 차지했고 수채화와 드로잉은 합해서 고작 11%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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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유화를 남겼다 해도 시장에서 자주 거래가 되어야 가격대가 안정적으로 만들어지는데, 이 점에서도 박수근이 훨씬 유리합니다. 이중섭의 유화 중 최고로 꼽히는 소 그림은 6~7점 정도 남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홍익대 박물관이 1점, 삼성미술관이 2~3점, 개인 소장자 2~3명이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일단 미술관에 있는 작품은 시장에 나올 확률이 거의 없지요. 그리고 국내의 개인 소장자들도 이중섭 작품 정도를 가지고 있다면 미술 수집을 어지간히 하는 사람들이고 여유자금이 충분하다고 봐야 하기 때문에, 쉽게 이중섭 작품을 내놓지 않습니다.
이에 비해 박수근 유화의 절반 이상은 외국인 소장자들에게 있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박수근이 50년대와 60년대에 미군부대에서 그림을 팔았기 때문에 그때 그의 작품을 샀던 사람들이 아직 가지고 있는 것이지요. 이들은 한국의 미술딜러(화상)들이 찾아가 설득하면 "그 그림이 그렇게 비싸단 말이야?"라며 기뻐서 당장 작품을 내놓습니다. 오죽하면 이런 소장자들을 찾아 미국 대륙을 헤집고 다니는 전문 브로커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 경매에서조차 박수근 유화는 자주 나옵니다. 이번 달에만 해도 지난 18일 크리스티 뉴욕 경매에서 박수근의 유화 두 점이 각각 65만 달러(약 6억5000만원)와 60만 달러(약 6억원)에 팔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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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과 박수근은 모든 면이 정반대였습니다. 이중섭은 6·25 전쟁 중 일본인 아내와 어린 두 아들을 일본으로 보내고 혼자 쓸쓸하게 살다 병을 얻어 40세에 죽었지만, 원래는 평안남도 부농(富農)의 막내아들로 태어나 일본 유학까지 했습니다. 박수근은 강원도 양구 시골에서 태어났는데 부친이 사업에 실패하는 바람에 보통학교(지금의 초등학교)밖에 다니지 못했고 평생 가난했습니다. 이중섭보다 가난하게 태어난 박수근이 죽어서는 이중섭보다 많은 돈을 벌고 있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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