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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일시: 2021. 9. 3.~5.(금~일) - 음력(7. 27.~29.), 일출 06:00~일몰 18:53
●산행지: 춘천지맥 1구간(청량봉-거니고개)
●산행코스: 청량봉-922.5m봉-하뱃재(56번 국도)-1,075.2m봉-1,081m봉-1,005m봉-응봉산 안부-응봉산(1,096.5m)-444지방도(물넘이재)-444지방도(행치령)-451지방도-931.2m봉-갈림길-백암산 갈림길-문내치-가마봉 갈림길-황병고개(임도)-소뿔산(1,118m)-1,044.0m봉-838m봉1.1km-가마봉(924.7m봉)-거니고개(44번 국도)
●먹거리: 생수2리터, 빵3(옥수수호떡), 자유시간2, 양갱2, 단백질바3, 사탕15, 알마겔3, 토마토케챱
●준비물: 침낭커버, 고아텍스, 바람막이2, 스틱, 헤드랜턴, 구급약, 피부연고, 무릎보호대, 부직반창고, 마스크3, 충전지2, 충전짹, 손수건, 면수건, 휴지, 물티슈, 스패츠, 팔토시, 말방울, 세라컵, 비닐우의, 매트, 은박매트, 경광점멸등, 호르라기, 안대, 귀마개, 머리띠, 양말, 여분의류, 띠지39
●거리: 약 57.68Km (하뱃재 접속 8.32km)
●소요시간: 49.53h
●누구랑: 나홀로
●경비: 시외버스7,400, 하뱃재36,000, 조각공원7,000, 버스2,230, 뒤풀이22,000, 시외버스7,400
●날씨: 15~28
●산행경과:
* 9. 3.(금)
- 14:51 : 하뱃재/ 율전삼거리/ 슈퍼, 민박
- 16:44 : 청량봉(1,053.5m)/ 삼면봉(평창군 봉평면→홍천군 서석면, 내면)
- 17:50 : 미약골삼거리봉(920.3m)
- 18:28 : 하뱃재/ 율전삼거리/ 슈퍼, 민박
* 9. 4.(토)
- 04:25 : 하뱃재/ 율전삼거리/ 슈퍼, 민박
- 05:40 : 매봉(1073m, 개념도 1,075.2m)/ 삼각점봉
- 08:07 : 삼각점봉(1,094.8m)
- 08:52 : 삼각점봉(1,089m봉)
- 10:25 : 각근봉/ 아미산(960.8m)분기봉
- 11:34 : 응봉산 갈림 공터/ 정상 우측 20m/ 편도1.5km 응봉산(1,103m)
- 13:55~14:20 : 행치령(575m), 마의태자비 우측으로 도로따라 350m 물 보충
- 13:5? : 삼면봉(홍천군 서석면, 홍천군 내면→인제군 상남면)
- 14:58 : 아홉사리재/ 451번도로/ 사각정자/ 인제군 표지석
- 15:?0 : 응봉산분기점(934.8m)/ 삼면봉(인제군 상남면, 홍천군 서석면→내촌면)
- 17:22 : 가득봉갈림길(970m)/ 가득봉 편도 1.7km
- 18:12~18:27 : 백암산갈림봉(1,104m)/ 백암산 좌측 300m
- 18:19 : 백암산
- 19:00 : 문내치/ 슬치/ 임도
- 20:14~20:45 : 휴식
- 21:13 : 가마봉직전 임도
* 9. 5.(일)
- 07:38 : 가마봉직전 임도
- 08:10~08:46 : 가마봉갈림봉(1,137.2m)/ 좌틀/ 가마봉 편도400m
- 08:23 : 가마봉
- 09:15 : 암봉
- 09:34 : 황병고개(군사포장도로)/ 항병고개
- 09:56 : 삼면봉(1,002m)/ (홍천군 내촌면, 인제군 상남면→남면)
- 10:03 : 오매자고개(930m)/ 삼면임도경계면(인제군 남면, 홍천군 내촌면→두촌면)
- 11:18 : 소뿔산군무선송신탑
- 11:32 : 윗괘석 안부, 우측 아래 물
- 12:08 : 소뿔산(1,107.8m)
- 12:19 : 소뿔바위
- 12:35 : 범의터갈림길/ 안부
- 14:10 : 암봉(1,076.4m)
- 14:21 : 달음재(973m)/ 안부
- 14:32 : 신흥동 안부/ 고개
- 15:28 : 작은가마봉/ 산불감시카메라
- 16:43 : 거니고개(332m)/ 건이치/ 44번 국도/ 휴게소(식당, 매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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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천지맥 세부 구간거리
청량봉-1.9km-922.5m봉-3.6km-하뱃재(56번 국도)-1.7km-1075.2m봉-1.8km-1081m봉-4.1km-1,005m봉-1.1km-응봉산 안부-0.6km-응봉산(1,096.5m)-4.3km-444지방도(물넘이재)-1.1km-444지방도(행치령)-451지방도-2.1km-931.2m봉-갈림길-2.9km-백암산 갈림길-1.3km-문내치-2.7km-가마봉 갈림길-1.4km-황병고개(임도)-2.3km-소뿔산(1118m)-2.0km-1,044.0m봉-1.5km-838m봉1.1km-가마봉(924.7m봉)-2.6km-거니고개(44번 국도)
* 구간거리
- 청량봉~아홉사리재 23.7+접속 5km
-. 청량봉~하뱃재(율전삼거리) 5.8km
-. 하뱃재~청량봉 왕복: 12.3km
-. 하뱃재~아홉사리재 18km
-. 하뱃재~행치령 15.9km
-. 하뱃재~응봉산 10.6km
- 아홉사리재~홍천고개 39km
-. 아홉사리재~거니고개 25.7km
-. 아홉사리재~황병고개 12.7km
-. 아홉사리재~신흥동안부 20.6km
- 행치령~거니고개 27.1km
-. 행치령~황병고개 15.5km (백암산, 가마봉 왕복)
-. 황병고개~거니고개 11.6km
-. 거니고개~홍천고개 14.3km
-. 신흥동안부~홍천고개 18.4km
* 식수 공급지 및 산행 정보
- 장평택시: 033-332-4379
- 하뱃재:곳간(민박,033-433-5460), 진부식당(슈퍼,수도033-435-8392), 동원여인숙(033-435-0792)
- 무네미고개: 수유마을 식수보충
- 행치령 마의태자비: 우측 444번 도로따라 350m 좌측 계곡에서 물 보충
- 윗괘석 안부: 소뿔산군무선송신탑에서 내려선 윗괘석 안부 우측 아래 물 보충 가능해 보임.
- 거니고개: 청정조각공원휴게소(033-462-0034), 식당, 매점
- 신남개인택시: 033-461-6009
- 인제버스터미널: 033-463-2847
* 서울에서 하뱃재 가는 길
- 동서울~홍천: 06:15, 06:40,~10:45, 10:50, 11:21,~16:40, 16:50, 17:20~22:20, 1h~1.50h, 7,400~12,300
- 홍천~내면행: 1번홈, 율전삼거리 하차, 시내버스 07:10, 10:20, 13시, 1.07h, 1,400원/ 시외버스 08:00, 11시, 15시, 18:30, 0.52h, 7,600원
- 청량리~평창: 19:22, 20:15, 21:52, 1.20h, 18,000
- 동서울~장평: 13:50, 16:20, 17:55, 20:20, 1.50h, 11,800~14,800
- 장평~흥정리: 택시20,000, 0.25h
* 홍천에서 서울 올라오는 길
- 5번홈: 06시~20:30, 30분 간격, 22시 막차, 1~1.40h, 7,400~13,100~2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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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살 아래 팀동료가 야근 도중 몸이 좋지않아 새벽 3시에 조퇴했는데 퇴근 무렵 뇌출혈로 중환자실에 입원했단 소식을 듣고, 무거운 마음을 안고 출발한 춘천지맥이었습니다. 마음은 가락재, 최소한 홍천고개까지 요망하였으나 몸이 원하는대로 거니고개(청정조각공원휴게소)에서 멈춰섰습니다. 출발하기 전에 물 1리터를 장착한 상태로 배낭 무게를 달아보니 10kg이 조금 넘네요. 등로에는 계속 시원한 바람이 불어 산행하기 좋은 조건이었으며 이번 1구간 인제 상남과 남면에 걸친 갑둔리, 김부리 일대는 어마무시한 반경(여의도 면적의 8배)의 육군과학화전투훈련단 군 부지가 거반 다였고 월광은 새벽 3시경이나 떠오르는 그믐달이었습니다.
최근에 춘천지맥 끝지점이 양쪽으로 갈리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영춘 세대와 지맥 세대의 세대차이라고 보아집니다.
한치고개를 지나 새덕산과 송이재봉이 갈리는 갈림봉(450m봉)에서 어디를 향하든 산자분수령에 위배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정맥이 입해처를 향한다는 산자분수령원칙과 일치하여 합수점을 향하는 지맥도 수개가 존재하므로 기로봉(450m)에서 남산면 서천리 춘성대교로 향하는 북서향이 아니라, 남서향의 송이재봉 방향으로 맥을 이어가 북한강과 홍천강이 만나는 합수점(춘천시 남면 관천리 본말)에서 맥길을 끝내는 경우가 많아지는군요. 영춘세대에서 영춘지맥을 하는 경우 영춘지맥 이론에 따라 그 끝이 춘성대교가 맞겠으나 최근 춘천지맥과 영월지맥이 따로 분리되는 추세에서 춘천지맥 단독으로 진행할 경우 합수점으로 향하는 메리트가 하나 더 존재하기 때문이기도 하답니다.
저 또한 춘천지맥의 세대입니다. 고로 아래의 이유로 춘천지맥의 끝을 합수점으로 향하기로 하였답니다.
영춘지맥은 한때 산꾼들에게 중형 태풍 이상의 위력과 맞먹는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다. 영춘지맥 만큼은 지맥의 끝이 합수점, 물줄기 운운하며 산꾼들을 혼란에 빠뜨리던 사람들도 산줄기가 본말이 있으니 영월지맥과 춘천지맥을 나누는게 맞고, 춘천지맥은 청량봉에서 분기하여 대룡산에서 봉의산으로 향하는 소양남지맥과 대룡산에서 또다시 남쪽으로 분기하여 응봉산에서 합수점으로 향하는 홍천북지맥으로 분류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감히 내밀지 못할 정도였다. 그만큼 신 산경표의 저자 박성태선생님이 전성기에 만들은 영춘지맥의 지론이 빈틈없이 꽉 짜여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영춘지맥은 영월지맥과 춘천지맥 그리고 이 두 지맥을 잇는 한강기맥의 일부를 합쳐 부르는 이름으로 월간 사람과 산에 연재를 하면서 이 두 지맥을 합쳐서 영춘지맥이라고 소개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임진강을 제외한 한강유역의 울타리는 한북정맥, 백두대간, 한남정맥이다. 천마지맥과 앵자지맥을 경계로 하는 팔당댐 이후의 한강 하류를 제외하면 남북으로 한강기맥을 경계로 북한강과 남한강이 구분되고 동서로는 영춘지맥을 경계로 한강상류와 한강 중류가 구분된다. 이는 북한강 상류와 중류의 경계는 북한강이 처음으로 경기도계(界)를 만나는 지점을 거쳐 한북정맥으로 이어가는 것으로 봤고 남한강 상류와 중류의 경계는 남한강이 처음으로 충청북도계(界)를 만나는 지점을 거쳐 백두대간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그래서 춘천지맥이 홍천강의 끝으로 가지 않고 춘성대교로 가서 화악지맥을 따라 한북정맥에 이르러 북한강 상류와 중류의 경계가 되고 영월지맥이 평창강의 끝으로 가지 않고 태화산 아래 샘골로 내려가서 마대산과 형제봉을 지나 백두대간에 이르러 남한강의 상류와 중류의 경계가 된 것이다. [영춘지맥의 이론]
그러나 추세는 이제 확연히 춘천지맥과 영월지맥으로 나뉘었다. 영월지맥과 춘천지맥을 합쳐서 영춘지맥이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편의상 두개의 지맥을 합쳐서 하나로 부르는 것이지 영춘지맥이 하나의 지맥은 아니다. 그렇다면 춘천지맥의 끝 또한 홍천강과 북한강의 합수점으로 이끌린다. 이는 『산경표』의 산자분수령을 지맥의 합수점이론으로 견강부회하는 일부의 주장에 따르기 보다는 영춘지맥을 영월지맥과 춘천지맥으로 분리하는 데에 따른 합수점으로 끌림 현상인 것이다. 즉, 영춘지맥의 시작과 끝은 화악지맥과 맞닿는 경강교가 될 것이나 춘천지맥의 끝은 두 강의 합수점이라는 매리트가 존재한다. 더군다나 영춘지맥의 끝은 제이드팰리스(한화골프장)에 막혀 우회해야 한다니 끝에서 물에 가라앉는 합수점 쪽이 더 매력을 갖는다.
춘천지맥의 출발점인 청량봉을 향하는 방법을 알아보니 여러가지가 있네요.
서석2리에서 임도로 장곡삼거리로 오르는 방법, 미약골입구에서 홍천강 발원지 미약골로 올라서는 방법(5.6km), 하벳재에서 왕복(편도 5.8km)하는 방법, 평창군 봉평면 흥정골 무이분교(폐교)에서 임도를 따라 장곡삼거리(7km)로 오르는 방법, 홍천군 내면 자운리 괸돌마을 임도차단기에서 접근하다 쉼터 뒤로 치고 오르는 방법(접속 3.8km) 등이 있습니다만 저는 가장 저렴한 방법으로, 홍천에서 시내버스를 이용하여 하뱃재로 가서 청량봉을 왕복하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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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천지맥(春川枝脈)이란?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지리산을 향하여 남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상의 두로봉(1,422m)에서 분기하여 오대산 비로봉(1,563m), 계방산(1,577m), 회령봉(1,309m)를 지나 양수리 두물머리를 향하여 서쪽으로 산줄기 달려가는 한강기맥상의 청량봉(1,052m)에서 다시 북쪽으로 춘천지맥이 분기하여 하벳재에서 고도를 낮추다가 다시 솟구쳐 응봉산(1,103m), 백암산(1,099m), 가마봉(1,192m)까지 북쪽으로 향하다가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소뿔산(1,118m), 가마봉(925m), 매봉(800m), 가리산(1,051m), 대룡산(899m), 응봉(759m), 연엽산(850m), 꼬깔봉(421m), 봉화산(515m), 새덕산(488m)을 거쳐 춘천의 경강역 뒤편 춘성대교로 향하여 북한강에서 그 맥을 다하는 약 127km의 산줄기를 말한다.
춘천지맥의 남쪽 지역과 한강기맥의 북쪽 지역 사이에는 홍천강이 흐르고 춘천지맥의 북쪽 지역에는 소양강이 흐른다. 이 처럼 춘천지맥은 소양강과 홍천강의 경계를 이루다가 대룡산에서 소양강과 작별하고, 봉화산을 지나 한치고개 까지 홍천강의 북쪽 벽을 이루다가 춘천 남산면 서천리의 강경역과 춘성대교 사이에서 북한강으로 이어져 그 맥을 다한다. 북한강은 관천리에서 홍천강을 흡수하고 양수리에서 남한강과 합쳐져 한강으로 흐른다.
♤ 춘천지맥 개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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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천지맥이 지나는 동네
* 평창군
강원도 중남부에 있는 군으로 백두대간과 한강기맥 분기점에 위치해 1,000m 이상의 높은 산지로 둘러싸여 있다. 고랭지채소 재배가 주로 이루어지며 옥수수·감자·배추 등이 생산된다. 횡계리 일대에는 목축업이 활발하다. 또한 오대산과 대관령, 용평 스키장 등 관광자원을 중심으로 동해안과 연결된 관광개발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청동기시대의 고인돌이 발견되고 있어 산간지역인 이 지역에서 사람의 거주가 일찍부터 시작되었음을 보여준다. 부족국가시대에는 예맥국의 영역이었다. 삼국시대에 들어 고구려(또는 신라라고도 함)의 영역이었다가 신라의 삼국통일 후 757년(경덕왕 16)에 백오현(白烏縣)이 되었다. 고려초에 지금의 이름인 평창현으로 개칭되었다. 조선초인 1392년(태조 1)에 태조 이성계의 고조부인 목조의 비 효경왕후 이씨의 고향이라 하여 평창군으로 승격되어 조선시대 동안 유지되었다. 평창의 별호(別號)는 노산(魯山)이었다. 지방제도 개정에 의해 1895년에 충주부 평창군, 1896년에 강원도 평창군이 되었다. 1906년 월경지 정리로 동면을 정선군으로 이관하고, 강릉의 두입지였던 대화면·진부면·봉평면을 합속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군북면·남면·북면이 군내면으로 통합되었다. 1917년에 군내면이 평창면으로 개칭되고, 1931년에 정선군에서 도암면이 편입되었으며, 1934년에는 대화면이 대화면과 방림면으로 분리되었다. 1979년에 평창면이 읍으로 승격되고, 1983년에 진부면에서 용평면이 분리되었다. 1960년대 이후 고랭지채소농업의 증가, 1970년대 이후 산지개발정책의 전개에 따른 축산업 발달과 목장의 증가 및 영동고속도로 개통, 1980년대 용평지역의 대규모 관광지 개발과 관광에의 관심 고조 등으로 지역의 변모가 촉진되고 있다. 2007년에는 도암면의 명칭이 대관령면으로 변경되었다. 2011년 7월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열린 제123차 IOC 총회에서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되었다. 평창올림픽은 아시아에서는 3번째, 대한민국에서는 최초로 개최되는 동계올림픽이다. 백두대간과 한강기맥의 분기점에 위치하고 있는 동북쪽의 오대산(1,563m)을 비롯해 1,000m 이상 되는 높은 산지로 둘러싸여 있는 내륙의 고원지대를 이루고 있다. 험한 산들이 군내 전역에 남북으로 연이어 있으며, 남부지역이 다른 지역에 비하여 약간 낮은 편이다. 백두대간이 뻗어내린 동쪽에는 선자령(仙子嶺, 1,157m)·고루포기산(1,238m)·장군바위(1,140m)·노인봉(老人峰, 1,338m)·발왕산(發旺山, 1,458m)·옥녀봉(玉女峰, 1,146m)·박지산(博芝山, 1,394m)·가리왕산(1,561m)·청옥산(靑玉山, 1,256m) 등 1,000m 이상의 고봉들이 연이어 있으며, 대관령(832m)이 위치하고 있다. 한강기맥이 지나는 북쪽과 서쪽에는 보래령(寶來嶺)·회령봉(會靈峰, 1,309m)·흥정산(興亭山, 1,277m)·태기산(泰岐山, 1,261m)·청태산(靑太山, 1,200m)·계방산(1,577m)·사자산(獅子山, 1,120m)·백덕산(白德山, 1,350m) 등이 연봉을 이루고 있다. 도암면 횡계리 주변을 비롯한 군의 일부 중앙부에는 고위평탄면이 발달해 고랭지농업과 축산업이 이루어져 주민의 생활근거지가 되고 있으며, 백석산(白石山, 1,365m)·백적산(白積山, 1,141m) 등이 솟아 있다. 남쪽에는 무동산(舞童山, 633m)·노성산(魯城山, 400m)·옥녀봉(玉女峰, 590m)·삼방산(三芳山, 980m) 등의 1,000m 이하의 산들이 솟아 있다. 계방산에서 발원하여 군의 남북을 관류하여 남한강에 합류하는 평창강은 속사천으로도 불리며 남류하다가 봉평면에서 흥정천, 대화면에서 대화천, 방림면에서 계촌천과 합류하여 평창읍에 이르러 심하게 곡류하며 영월군에 흘러든다. 두로봉(1,421.9m)에서 발원한 오대천은 진부면을 지나 명주군에 흘러가며, 군의 동북부를 흐르는 송천은 황병산(黃柄山, 1,407m)과 선자령의 분수계를 기점으로 심하게 곡류하면서 도암면을 관류하여 정선군으로 유입한다. 군내를 흐르는 대부분의 하천들은 감입곡류하천으로, 주변에는 좁은 충적평야가 펼쳐져 있다. 남부에는 석회암지층이 분포하여 카르스트 지형이 발달했다. [포탈에서 발췌정리]
* 홍천군
강원도 중서부에 있는 군으로 홍천강 유역에서는 중기 구석기시대의 유물과 유적이 발견되어 매우 오래 전부터 이 일대에 사람이 거주했음을 보여준다. 백두대간의 서사면에 있는 험준한 산악지대로 동쪽으로 백두대간의 연봉이 남북으로 달리고 있어 지세가 동부는 높고, 서부로 갈수록 점차 낮아진다. 도내에서도 특히 산이 많고 인구가 희박한 지역이다. 홍천잣이 특산물로 유명하며 대추 밤 송이버섯도 생산된다. 산이 높고 물이 맑아 피서지로 적합하나 관광사업 개발이 부족한 편이다. 동북부에는 백두대간이, 동남부에는 한강기맥이 뻗어내려 해발 1,000m 이상의 전형적인 산지지형을 이룬다. 구룡덕봉(九龍德峰, 1,388m)·약수산(藥水山, 1,306m)·응복산(膺伏山, 1,360m)·두로봉(頭老峰, 1,422m)·오대산(五臺山, 1,563m)·계방산(1,577m) 등이 동쪽 경계를 이룬다. 중부에 아미산(峨媚山, 961m)·백우산(白羽山, 895m)·공작산(孔雀山, 887m), 서부에 매화산(梅花山, 752m)·금확산(金確山, 655m)·종자산(種子山, 581m) 등이 솟아 있고, 서쪽 끝에는 영춘지맥이 동서로 길게 이어져 경기도 가평군과 자연경계를 이룬다. 하계망은 크게 둘로 나누어지는데, 홍천강을 중심으로 한 중서부 유역과 내린천(內麟川)을 중심으로 한 동부 유역이 그것이다. 홍천강은 서석면 생곡리 미약골산에서 발원하여 내촌천이라고 불리면서 흐르다가 북부 중앙의 매봉(800m) 기슭에서 발원한 장남천(長南川)과 합류하여 서쪽으로 흘러 북한강에 유입한다. 한편 내면 명개리 망월봉에서 발원한 소양강은 계방천이라고 불리며 북서류하다가 자운천 등과 합류하여 내린천이라고 불리면서 인제군으로 흘러 들어간다. 이들 하천이 일대의 기반암을 침식하여 홍천읍·내촌면·동면·북방면·화촌면을 포함하는 홍천분지를 이루었다. 분지 내에는 500m 내외의 구릉성 산지가 솟아 있고, 하천 연안에는 충적지가 펼쳐져 있다.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의 벌력천현이었다가, 신라의 세력 확장에 따라 벌력천정을 설치했다. 통일신라시대 757년(경덕왕 16)에 녹효현으로 개칭되어 삭주도독부의 영현이 되었다. 고려초 940년(태조 23)에 홍천현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홍천현이라는 이름은 조선시대 동안에도 유지되었다. 홍천의 별호(別號)는 화산(花山)이었다. 지방제도 개정에 의해 1895년에 춘천부 홍천군, 1896년에 강원도 홍천군이 되었다. 1945년 8·15해방이 되면서 38°선 이남에 있던 인제군의 인제면 등 3개면을 홍천군에 편입했으나, 6·25전쟁 때 인제군이 수복됨에 따라 1954년에 남면과 인제면을 다시 인제군으로 환속했다. 1963년에 홍천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73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춘성군 동산면 북방리·풍천리가 홍천군 북방면·화촌면으로 편입되었고, 양양군 서면 명개리가 홍천군 내면에 편입되었다. 한편으로는 홍천군 내면 미산리가 인제군에, 남면 상창봉리는 횡성군으로 이속되었다. 1983년 남면 상오안리가 홍천읍으로 편입되었고, 두촌면 천치리는 천현리로 명칭을 변경했다. 1995년 북방면 성동리 일부가 화촌면 구성포리로 편입되었다. [포탈에서 발췌정리]
* 인제군
강원도 중북부에 있는 군으로 국내 행정구역 중 군 단위에서는 가장 넓은 군이다. 백두대간의 서쪽에 자리잡은 산간지방으로, 강원도 내 800m 이상 되는 높은 산 가운데 약 1/5이 분포해 있다. 군의 북쪽은 휴전선과 맞닿아 군사분계선이 지나고 있으며, 동쪽은 향로봉(1,296m)·설악산(1,708m)·점봉산(1,424m), 서쪽은 대암산(1,304m), 남쪽은 방대산(1,444m)·구룡덕봉(1,388m) 등이 솟아 있다. 이러한 높고 험준한 지세는 이곳에 많은 고갯길을 발달시켜 일찍이 진부령(530m)·미시령(826m)·한계령(1,004m) 등이 동서교통로로 이용되어왔다. 홍천군 내면 명개리 만월봉 남쪽 계곡에서 발원한 소양강이 군 중앙을 흐르며, 동쪽에는 북천·한계천, 남쪽에는 방대천, 북쪽에는 서화천 등이 소양강에 합류하여 소양호를 이룬다. 인공호인 소양호가 군 남서쪽에서 북면 원통리까지 이르러 소양호 선착장에서 인제읍 남북리 군축교에 이르는 60㎞의 뱃길이 내설악으로 가는 중요한 수상교통로이나, 유량이 풍부한 하절기에만 이용이 가능하다. 6·25전쟁 후 격전지였던 인제군은 넓은 면적에 비해 인구밀도가 가장 낮다. 지형상 높고 험준한 고개가 많아 교통이 불편한 편이다. 내륙산간에 위치해 자연경관이 빼어나고 희귀 동·식물이 많으며 삼림이 울창하여 주요 산들이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인제읍 느티나무와 상남면 은행나무는 수령 500년이 넘는 보호수이다. 내설악을 비롯하여 소양호·백담사 등 관광자원이 풍부하다. 삼국시대에 고구려의 오사회현(烏斯回縣) 또는 저족현(猪足縣)인데, 통일신라시대의 지방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희제현(狶蹄縣)으로 이름을 바꾸고 양록군(楊麓郡, 양구)의 영현이 되었다. 고려초인 940년(태조 23)에 인제현으로 개칭했으며, 1018년(현종 9)에 춘주, 후에 회양의 속현으로 병합되었다가 1389년(공양왕 1)에 감무를 둠으로써 독립했다. 조선초 군현제 개편 때 인제현이 되어 조선시대 동안 유지되었다. 별호(別號)는 영소(靈昭)였다. 지방제도 개정으로 1895년에 춘천부 인제군, 1896년에 강원도 인제군이 되었다. 1906년 월경지 정리에 의해 춘천과 강릉 일부를 편입하면서 면적이 확대되었다. 1914년의 군면 폐합으로 군내면·동면이 군내면으로, 내면일리면·내면이리면이 내면으로 통합되었으며, 1916년에 군내면이 인제면으로 개칭되었다. 1945년 8·15해방 후 북면과 서화면 일원, 인제면·기린면의 일부가 북한에 편입되고 나머지 지역은 홍천군에 편입되었다. 6·25전쟁 후 격전지였던 이곳의 대부분 지역이 수복됨에 따라 홍천군에 편입되었던 지역 중 내면을 제외한 인제면·기린면·남면이 다시 인제군에 이관되었으며, 1954년 휴전협정이 성립되면서 수복지구 임시행정조치법에 따라 미군정으로부터 행정권을 되찾았다. 이때 양구군 해안면이 인제군으로 편입되었고, 홍천군 신남면을 남면으로 개칭하여 인제군으로 복구시켰다. 1963년 해안면과 서화면을 통합했다. 이듬해 1964년 인제읍 귀둔리, 남면 갑둔리, 기린면 상남리, 서화면 해안에 출장소를 개설했다. 1973년에는 춘성군 북산면 수산리, 양구군 남면 상수내리·하수내리가 인제군 남면으로 통합했고, 홍천군 내면 미산1리·미산2리를 기린면으로 편입되었다. 또한 인제군 남면 두무리를 양구군 남면으로, 서화면의 현리·오유리·만대리·후리·월산리·니현리 등을 양구군 동면으로 이속시켰다. 1979년에 인제면이 인제읍으로 승격했다. 1983년 기린면의 상남출장소가 상남면으로 승격되어 상남리·하남리·미산리와 남면 김부리를 관할하게 되었다. [포탈에서 발췌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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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지맥을 어떻게 시작할까 여러모로 고민하다 여건에 따라 아침에 퇴근하며 한숨 자고, 홍천터미널에서 시내버스를 이용하여 하뱃재로 가서 청량봉만 다녀오고 쉬다가 다음날 아침 일찍 출발하는 거로 정했습니다.
하뱃재에 도착하니 율전여인숙, 동원여인숙 진부식당, 율전식당 모두 장사를 접었어요. 장사를 할려도 오가는 사람이 없답니다. 오직 한곳 전에 희수네식당이 "곳간"으로 바뀌어 민박겸 식당을 운영하는데 유독 그집만 약초꾼들이 달방으로 꽉 차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율전초등학교 후문에 있는 사각정자에서 자야지 하고 곳간에서 식사를 하며 얘기가 오가는 중에 손님이 잠깐 집에 다니러 간 빈방이 있는데 2만원에 사용할거냡니다. 그리해서 짐을 풀고 청량봉에 다녀와 한숨 푹 자고 새벽에 출발했네요. 청량봉에 다녀오니 약초꾼들이 닭볶음탕에 반주하며 한잔 건네는데 저는 내일 산행이 있다며 사양을 했습니다. 한잔 하고 싶었지만 술먹으면 장거리 산행이 조금 더 힘들어요. 끝나고 먹음 되죠 안 그래요~ 곳간 사진이 없네요. 중요한건 저 진부슈퍼 앞에 수도가 보입니다.
♤ 흥정계곡
봉평면 시가지에서 6번 국도를 따라 5km정도 올라가다 보면 우측으로 아름다운 자연 경관과 맑은 물의 계곡이 나타나는데 이곳부터가 흥정계곡이다. 흥정산(1,278.5m)과 회령봉(1,309m)에서 발원하여 봉평면 흥정리에서 용평면 백옥포리까지 이어지는 흥정계곡은 선캄브리아기 흑운모 편마암이 주로 분포되어 있다. 물이 차고 맑은 청정 계곡으로 평균고도가 590m 고랭지대로 여름에도 보일러를 돌릴 정도이다. 팬션단지인 허브나라가 인접해 있고,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작가 가산 이효석의 고장인 봉평 효석문화마을이 지척이다. 한강기맥 장곡령과 구목령으로 이어지는 임도는 홍천군 서석면과도 연결된다. 맑은 계곡을 배경으로 자리한 허브나라 등 흥정계곡을 찾는 방문객은 연간 5만을 달하는데, 가산 이효석의 <메밀꽃필무렵>의 배경지인 봉평지역에서 율곡선생의 사당인 봉산서재와 양사언의 글자가 새겨져 있는 팔석정등과 함께 명소로 자리하고 있으며, 한 여름철에도 15°C를 넘지 않아 피서지로서 최고이다. 그리고 냉수성 어류인 송어, 산천어 등 다종의 민물고기가 서식하고 있다.
♤ 불발령(1,052m)/ 불바라기재/ 불발현/ 불발재
불발령은 아름다운 숲길이라 하여 산악 자전거, 트레킹 코스로 각광을 받고 있지만 1970년대까지만 해도 걸어서 넘어야 했던 험준한 고갯길이었다. 지명 유래는 횃불(火)을 밝히(明)면서 넘었다고 해서 불바래기재ㆍ 불발현ㆍ 불발령ㆍ 불발재 등으로 불렸다. 한편 한국전쟁 전초전이라 불리는 불발령사건 때에 마을 주민들이 전투하는 국군들의 식사를 전담해서 이 고갯마루까지 지고 왔다고 하고, 동학 농민항쟁 때에는 동학군들이 이 고개를 넘어 최후의 격전지인 자작고개로 진군하였다고 전해진다.
♤ 미약골/ 미암동
미약골은 춘천지맥 분기봉인 청량봉에서 하뱃재 방향 2.3km 북쪽의 920.3m봉에서 북서방향으로 뻗어 내리는 계곡으로, 하뱃재에서 남서향으로 56번 국도따라 약간 떨어져 있는 홍천강발원지 입구, 미약골 테마공원 사이 계곡이다. 미약골은 높은 산과 계곡으로 둘러쌓여 한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곳으로 홍천강 발원지로 일컬어지는 골짜기다. 인근의 큰 봉우리로는 횡성에 속한 운무산과 평창에 속한 흥정산이 있고, 미약골 발원지를 찾아가는 등산로 끝에는 청량봉이라는 한강기맥의 산이 있지만, 산 이름보다 미약골로 더 알려져 있다. 옛날 이 곳을 지나던 풍수가가 지세를 둘러보고 삼정승 6판서가 나올 명당 자리라 말하기도 하였고 이곳의 지세는 학이 울고 촛대바위가 아름답게 치솟았으며 선녀가 하강하여 목욕을 했다는 암석폭포 등 바위들이 각기 아름다운 형상을 하고 있어 미암동 또는 미약골이라 이름지었다 하며 원시림의 자연생태계의 보고로써 이 계곡에서 용천수가 샘솟아 흘러내린 물은 내촌천이란 이름이 되어 서석면과 내촌면을 지나 홍천읍 동쪽 두촌면의 철정교에서 홍천강에 합류된다. 400리 흘러 북한강 청평댐으로 유입되는 홍천강 제1의 발원지이다.
♤ 청량봉(淸凉峰, 1,053.5m)/ 삼면봉(평창군 봉평면 → 홍천군 서석면, 내면)
청량봉은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과 홍천군 서석면· 홍천군 내면이 갈리는 삼면봉으로 한강기맥에서 춘천지맥이 분기하는 봉우리다. 청량봉이란 이름은 신산경표의 저자 박성태씨가 영월지맥· 춘천지맥을 명명하면서, 산경표에서 이 일대 산군을 청량산이라 표기했음을 상기하여 청량봉이라 명명했다고 하는데, 이 봉에서 춘천지맥으로 들어서면 평창군을 벗어나 홍천군으로 들어서게 된다. 청량봉에서 한강기맥의 불발령 남쪽 물줄기는 흥정천을 거쳐 평창강물이 되고, 북쪽으로 흐르는 춘천지맥의 오른쪽과 한강기맥 불발령의 북쪽으로 흐른는 물줄기는 자운천과 내린천을 거쳐 소양강물이 되며, 춘천지맥의 왼쪽과 장곡현 서쪽의 물은 내촌천을 거쳐 홍천강이 된다.
- 청량봉에는 3등삼각점(봉평 302/ 2005재설)과 이정표(현위치번호/ 구목령 H-17, ←구목령 8.18km, →하뱃재(율전삼거리) 5.7km, ↓불발현 1.16km)가 있다.
- 청량봉삼각점에서 산불감시초소를 지나 삼면봉에 내려서면서 평창군 봉평면을 뒤로하고 온전하게 홍천군으로 드는데 좌측(왼편)은 서석면이고 오른쪽은 내면으로 갈려 행치령 삼면봉까지 계속 이어진다.
♤ 962.4m봉
Y자형 갈림봉으로 좌측 능선은 미약골로 내려가고, 지맥길은 우측으로 내려선다.
♤ 미약골삼거리봉(920.3m)
미약골갈림봉에서 지맥길은 우측이다. 좌측으로 내려서면 미약골인데, 미약골은 화전민이 터를 일구고 살던 지역이었으나 그들이 떠나면서 통제구역으로 지정되어 출입이 금지되었다가 사람이 떠난 뒤 15년만인 2012년 6월부터 문을 연 지역이라 원시림의 모습을 잘 갖추고 있다.
- 4등삼각점(봉평 405/ 2005재설)과 미약골삼거리 코팅지 표지판이 있다.
♤ 908.4m갈림봉
우측 멀리 한강기맥상의 계방산(1,577m)이 시야에 들어온다. 지맥길은 갈림봉에서 우측으로 이어간다.
♤ 하뱃재(650m)/ 율전삼거리
들머리인 하뱃재는 홍천군 서석면과 내면의 경계에 있는 재로, 56번 도로가 지난다. 도로 우측에 이동통신탑 기지국이 있고, 내면 관광안내도와 56번 도로 개통비가 서있다. 예전에 돌배나무가 많아 뱃재란 이름을 얻었고, 뱃재의 위쪽 마을, 또는 웃뱃재에서 창촌리의 장전평으로 가는 재를 웃뱃재/ 되뱃재라 하였으며 뱃재에서 웃뱃재로 가는 큰 고개의 아래에 있다 하여 하뱃재가 되었다.
- 서쪽 방향의 마을 안으로 통하는 아스팔트길로 마을 포장길을 5분여(약 450m) 들어서면 나오는 간이이동화장실과 녹슨 컨테이너 박스 옆 개인가옥 좌측으로 보이는 묘지가 들머리다.
♤ 홍천군 내면(內面) 율전리(栗田里)/ 밤바치
강원도 홍천군 동부에 위치한 내면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넓은 면이다. 율전리는 내면 서쪽에 위치한 리로 본래 강릉군 내일리면 지역으로 밤나무가 많으므로 밤바치 또는 율전리라 하였는데, 제26대 고종 광무 10년(1906)에 인제군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가진포(加眞浦), 생둔리(生屯里)를 병합하여 다시 율전리라 하여 내면에 편입되었는데, 1945년 38도선이 생김에 따라 홍천군에 편입되었다. 내면 율전1리 이건국씨는 율전1리 뱃재마을 땅 대부분을 홍천군에 기증하고 사망했으며 율전1리 주민들은 매년 마을회관에 모여 무후자 제향을 거행하고 있다. 무후자 제향은 후손이 없어 제사를 올리지 못하는 고인의 영령을 추모하며 주민들이 모여 제를 올리는 행사다. 내면 율전리와 광원리에 2,000여억원을 들여 설비용량 3000㎾규모의 풍력발전기 17기를 건립하는 대규모 풍력발전소 건립이 추진되고 있다. 율전리는 대부분의 지역이 낮은 산지로 이루어진 산촌이다. 개인산(1,341m) 아래 자리하며 내린천이 마을을 북쪽으로 둘러싸며 흐른다. 자연마을로 난치나뭇골, 물안골, 우리울, 우물골, 화랑동 등이 있다. 난치나뭇골은 난치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고, 물안골은 통물방아가 있어서 물방골이라 불리다가 물안골로 변형되었다. 우리울은 지역이 높고 사방으로 둘러 있어서 울타리를 쳐 놓은 것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우물골은 어귀에 좋은 우물이 있어 생긴 지명이다. 화랑동은 호랑이가 많았었다 하여 생긴 명칭이다.
- 율전식당 건너편, 여인숙 앞이 율전삼거리 버스정류소다.
♤ 당집
당집은 부락의 수호신이 있다고 믿는 마을 가까운 산이나 언덕의 고목이나 바위들이 그 대상이 된다. 가장 원초적인 민간신앙의 하나다. 당산의 금(禁)줄은 부정(不淨)을 막기 위하여 문이나 길 어귀에 건너질러 매거나 신성(神聖)한 대상물에 매는 새끼줄로 인줄이라고도 한다. 볏짚 두 가닥을 새끼손가락 정도의 굵기로 왼 새끼줄을 꼬아서 만든다. 아이를 낳으면 대문에다 금줄을 쳤는데, 사내아이의 경우에는 숯덩이와 빨간 고추를, 계집아이의 경우에는 작은 생솔가지와 숯덩이를 꽂는다. 금줄은 간장을 새로 담을 때 간장 맛이 좋고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해 독의 윗 부분에 둘러 묶기도 하였다. 한편, 집안에서 고사나 푸닥거리를 할 때에는 대문간에는 물론 담장이나 울타리에도 금줄을 치는데, 이 경우의 금줄은 너비 2㎝, 길이 20∼30㎝ 정도의 백지조각을 무수히 꽂는다. 집 밖에서 치성을 드릴 때에는 치성의 대상이 되는 고목이나 큰 바위에도 금줄을 친다. 동네 전체를 위한 동제를 지낼 때에는 제사 지낼 장소나 당집에는 물론 동네 주위에 있는 당산나무와 장승에도 금줄을 치고 심지어는 동네 전체의 주위에 치기도 한다. 동제 때 금줄을 쳐놓으면 그 동네에는 외부 사람의 출입이 금지된다. 동제를 지내기 전에 와 있는 외부인은 동제가 끝나야만 그 마을에서 떠날 수 있고, 같은 동네 사람도 외지에 나갔다가 금줄이 쳐져 있으면 들어올 수 없다. 이와 같이 금줄은 여러 면에서 쓰이고 있는데 그 기본적 의도는 금(禁)하는 기능을 발휘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인간생활에 해를 끼치는 것을 접근시키지 않고 침범할 수 없게 하는 것이다.
- 들머리 좌편 공터에 당산나무 아래 당집이 있다.
♤ 권대감(權大監), 서곡대사(瑞谷大師), 마의태자(麻衣太子) 등의 인물 설화
설화는 전승(傳承)을 토대로 형성되는 문학이다. 설화 전승자와 수용자가 한 자리에서 전달과 표현 그리고 수용이 동시에 이루어진다. 지역과 관계를 맺으며 전승하는 설화들은 해당 지역의 다양한 자연적・사회적・문화적 환경과 영향관계를 지닌다. 특히 역사적 사건을 바탕으로 한 인물설화는 사건들을 구체적인 증거물과 관련시켜 전승하기도 하며, 설화 전승을 통해서 역사 속에서 숨겨지거나 잊혀진 사건과 인물들을 남겨두기도 한다. 강원도 홍천군의 산간지역인 내면과 내촌면 일대에서 전승하는 권대감(權大監), 서곡대사(瑞谷大師), 마의태자(麻衣太子) 등의 인물 설화들은 이야기로서의 흥미유발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증거물을 토대로 마을 제의 및 지명 형성 등에 영향을 주고 있다. 권대감설화는 ‘신화적 전설’의 형태로 강원도 홍천군 내면 광원리, 자운리, 율전리, 명개리, 창촌리 등을 중심으로 전승하고 있으며, 전승 권역이 어느 정도 제한되어 있다. 특히 자운리와 광원리는 ‘말무덤’과 ‘권대감사당’, ‘삼봉약수’ 등의 설화 증거물을 중심으로 비교적 전승력이 활발하다. 권대감설화는 삼봉약수의 발견과 지역민들의 치료, 말무덤의 유래, 칡이 없는 이유, 신으로서의 영험담 등이 주를 이룬다. 이들 설화들을 조합해 보면, 권대감은 ‘고개’를 넘어 내면으로 들어 왔으며, 내면에 거주하면서 지역민들을 치료해 주었고, 사후(死後)에 내면 지역 마을신으로 좌정(坐定)하는 모습을 보인다. 곧 권대감이 마을신으로 좌정한 내면지역에서는 이들 설화들이 마을 제의(祭儀)의 타당성과 형성의 모태로 작용하고 있다. 서곡대사설화는 강원도 홍천군 내촌면 서곡리를 중심으로 전승하며, 고승(高僧)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다. 천리안(千里眼)으로 화재를 진압(동면 수타사, 원주 서곡리 절, 해인사 등)하거나, 사냥꾼들의 놀림을 극복하는 지혜로운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서곡대사설화의 전승 권역은 홍천군에서 횡성군, 원주시까지도 확장된다. 마의태자설화는 홍천군 인근 지역인 인제군 김부리를 중심으로 전승한다. 설화 속에서 인제군 김부리로 가기 위해 마의태자가 홍천군 지역을 지났다고 하며, 마의태자의 지나는 모습과 행위를 석탑(石塔) 등의 증거물과 지명 등으로 남기고 있다. 이들을 통해서 산간지역 고개를 넘는 마의태자의 긴박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 매봉(1,073m, 개념도 1,075.2m)/ 삼각점봉
하뱃재에서 바라보던 그 봉우리다. 매봉 직전 갈림길에서 지맥은 우측으로 떨어지지만, 20m 직진하여 매봉에 다녀와야 한다. 들머리 하뱃재에서 2km(약 1시간) 거리로 잡목으로 정상에 조망은 없으며 선답자들 띠지가 많이 매달려 있다.
- 판독불가 오래된 삼각점이 있다. 내림길 좌측으로 멀리 한강기맥 마루금과 운무산이 보인다.
♤ 대명산(大明山, 1,079.2m)
잘록이안부(928m)에서 15분여 급경사 오르막을 올라 1,035.3m봉에서 좌측으로 방향을 바꾸어 약간 내려서다가 다시 앞쪽 잡목사이로 우뚝 솟은 대명산을 올라섰다가 좌틀로 내려선다. 별 특징은 없고 바닥이 역암이다.
- 살짝 트이는 우측 방향 앞으로 진행해 가야 할 1,094.8m봉과 1,102.1m봉 능선이 뾰족하게 가늠된다.
♤ 서봉산(棲鳳山, 1,094.8m)
잘록이안부(941m)에서 다시 150고지 이상을 쳐 올려야 한다. 봉황의 서식지라는 이름인데 유래는 알 수 없다.
- 반쯤 뽑힌 삼각점인지 도근점(보조)인지가 기울어져 있다.
진행하며 나무사이로 태기산 풍력발전단지 팔랑개비가 보입니다만 좀 더 가면 사진찍기 좋은 조망터가 있겠지 하면 기회를 잃게 되더군요. 우측으로는 구름이 낮게 가라앉은 소양강 상류는 계방천과 자운천, 방내천이 모여지는 곳으로 보입니다. 그것도 사진을 찍어볼까 하면 마땅한 자리가 나오지 않네요.
♤ 1,086.8m봉/ 삼각점봉
잡목에 가려 조망은 전혀 없다.
- 4등삼각점 (현리 450, 2005 재설)이 있다.
♤ 큰노루목재(993m)
키낮은 산죽과 잡목이 어울린 잘룩이 안부이다.
♤ 각근봉(981m)/ 아미산분기봉
춘천지맥이 하뱃재를 지나 약 10km 거리인 981m봉에 이르러 맥길은 우틀이고, 좌측 능선길인 남서쪽으로 지맥을 분가시키는데, 6km 거리에 아미산(峨媚山, 960.8m)이 솟아 있으며 고양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다.
♤ 각근치(刻近峙, 970m)
1,000.3m봉'에서 10분여 완만하게 내려서면 각근치다. 981m봉에서 10분 거리인 각근치(刻近峙)는 절골에서 진장동계곡으로 넘나들던 옛길이다.
♤ 서석면 검산리(儉/檢山里)
강원도 홍천군 서석면의 동북쪽에 위치한 리(里)이다. 곧너미 고개, 까끈재(각근치), 삼신산 등이 있다. 자연마을로는 버들금미, 샛말, 안구랭이 등이 있다. 버들금미는 버드나무가 많이 있었다 하여 유래된 이름이다. 샛말은 명동과 둔지 사이에 있어 붙여진 이름이고 간촌(間村) 또는 새마을이라고도 한다. 안구랭이는 둔지 안 구렁진 곳에 있어 생긴 지명이다.
♤ 임재(896m)
각근치에서 찐빵과 만두를 오르내리며 고도를 낮추어 이정표(←응봉산 0.6km, ↓절골쉼터 5.4km, 각근봉→ )가 서 있는 임재로 내려선다. 왼편으로 서석면 수하리 방향 절골로 내려가는 길이 열려있다. 하뱃재에서 약 10km 지점이다.
♤ 응봉산 갈림 공터(1,096.4m)/ 정상 우측 약 20m
임재에서 응봉산까지 200고지 정도를 다시 가파르게 30분 쳐올려야 한다. 넓은 헬기장에 장다름 원 산악회에서 붙인 정상 표지판(응봉산/ 1,103m)과 이정목(←안절골 5.8km, ↓인제, 통골 5.4km→), 응봉산 등산안내도가 있다.
♤ 응봉산(鷹峰山, 1,103m)
응봉산은 아미산분기봉/각근봉(970m)에서 북으로 약 1.5km 더 나아간 곳에 솟은 산이다. 서석면과 내면 경계를 이루는 이 산은 홍천군 외곽의 시군과의 경계선 상에 놓인 산들을 제외하면 홍천군 내에서는 가장 높은 산이다. 이 산줄기는 계속 뻗어나가 행치에 이르러 인제군 경계를 이루며 백암산(1,099.1m)~가마봉(1,191.5m)으로 이어진 후 소양호변 매봉(800.3m)에서 남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가리산(1,050.7m)~대룡산(899.4m)으로 멀리 이어진다. 응봉산 정상에는 6.25 때의 "상남지구전투" 격전지였음을 말해주는 녹슨 탄피들이 남아 있을 정도로 아직 등산인들 발길이 거의 닿지 않은 산이다. 그만큼 숨은 청정지대로 남아 있다. 정상에서 마주보이는 북쪽 백암산(1,099.1m), 동쪽 문암산(1,145m), 남쪽 아미산(960.8m), 서쪽 공작산(887.4m) 너머 멀리까지 막힘없이 펼쳐지는 조망을 즐기는 것만으로도 이 산을 찾은 보람을 느낄 수 있다.
행치령으로 봉우리 15개 정도를 넘나들며 길게 내려서는데 벌목지 우측으로 보이는 조망이 좋습니다.
♤ 883.9m봉/ 삼각점봉
응봉산을 내려서서 1,017m 폐헬기장을 지나고 다음 봉을 넘으면 또 번호없는 삼각점이 박힌 폐헬기장이다. 응봉산에서 서향하던 지맥은 이곳에서 북쪽으로 바뀐다.
♤ 664.4m봉
행치령으로 내려서는 마지막 봉우리인 시그날이 많이 달려있는 664.4m봉(개념도 677.1m봉)에서 좌측으로 내려선다. 이곳은 지리적으로 서석면과 내면의 경계이고, 도엽명과 행정구역이 일치하지는 않지만 지도제작상 바둑판 틀에 따라 삼각점의 도엽명으로 어론을 사용했다.
- 4등삼각점 (어론 465/ 1985 복구)이 있다.
우측에 있는 배추밭에 인가를 보고 그리 내려서는데, 동남아 인부들 무우밭에 농약을 주는지 두렁을 따라 계속 왔다리갔다리 하네요. 도로로 나가 지나가는 자동차에 물을 구할 곳을 물어보니 여기서 15분쯤 가면 마을이 있다고 하여 행치령으로 올라봅니다. 우측으로 보이는 배추밭 가운데 인가에도 물을 구할 수 있을것 같은데 수도가 없고 식수를 구해다 사용하는지 그리 반갑지 않는가 봅니다.
♤ 수유동삼거리/ 삼면봉(홍천군 서석면, 홍천군 내면 → 인제군 상남면)
행치령 직전 숲길을 내려서서 444번 지방도로로 나서 도로따라 약간 앞으로 나가면 삼거리 갈림길인데, 우측은 홍천군 내면 방내리 소재 수유동(무네미) 마을로 가는 도로이고, 무우, 배추 등 고냉지 채소 재배지이다. 수유동(물너미) 입구를 약간 지난 지점인 행치령 표지석 우측 산마루가 삼면봉으로 능선 우측이 홍천군 내면에서 인제군 상남면으로 바뀌어 날머리인 행치령 이후까지 이어진다. 맥길은 수유동(물넘이) 표지석 뒤로 이어지나 대부분 산꾼들은 좌측 도로따라 행치령으로 진행한다.
- 도로 좌측편에 '行治嶺 / 770m’ 표지석이 세워져 있는데, 고도 표시가 엉터리다. 664.4m봉에서 한참이나 내려왔는데, 고도가 770m로 되어 있다.
행치령 마의태자비에서 오른쪽 444번 도로를 따라 인제군 상남면 상남리 미다리 방향 삼거리로 1km 내려가면 홍천버스를 타는 정류소가 있습니다. 여기서 500m 쯤 도로를 따르다 좌측 계곡에서 물을 얻었네요. 작은 다리가 많아 미다리라는데 그만큼 실개천이 많은 산골이라는 의미....
♤ 행치령(行治嶺, 575m)
행치령은 홍천군 서석면 수하리와 인제군 상남면 상남리를 잇는 444번 지방도가 지나는 고개로, 남쪽으로 가면 홍천군 서석면 수하리(절골)이고, 북쪽으로 가면 인제군 상남면 상남4리(미교)다. 옛날 이 재로 행인(行人)의 통행이 많았다 하여 행치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 홍천군 서석면 방향에 홍천군 표지석과 이동통신중계탑이 있고, 표지석 아래로 서올양양고속도로 행치령터널이 지나고 있다. 이정표(아홉사리재 1.26km→)와 작업대기소 컨테이너박스 사이 홍천군표지석과 컨테이너 옆으로 들어서서 마의태자 넘던 숲길 안내도 옆이 들입목이다.
♤ 인제군 상남면 김부리(金富里)
‘인제군사’에 의하면, 김부리(金富里)는 본래 남면 지역으로 김부동(金富洞), 김보왕촌(金寶王村), 김보왕동(金寶王洞) 등으로 불리웠고 1843년에 김보리(金寶里)라 하였으며 1916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백자동(栢子洞)과 기린면 상남리(上南里)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김부리(金富里)라 하였다. 김부리는 남쪽으로 상남천이 발원하여 미산리 방내천으로 흐르고, 동쪽으로 배미산이 위치하고 있다. 김부리의 김부(金富)는 신라 56대 마지막왕인 경순왕의 이름이다. 신라가 패망하자 경순왕의 장자 마의태자가 이곳에 와서 신라 재건을 이룩하고자 김부대왕이라 칭하고 군사를 모집 양병(養兵)을 꾀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흔히 마의태자가 금강산에 가서 묻혔다고 알고 있으나, 이는 왕건이 마의태자 세력을 무력화하기 위해서 지어낸 소문이고, 실제 마의태자는 이곳 김부리로 들어와 군대를 양성했으며, 설악산의 한계산성에서도 주둔했다 한다. 지금은 폐교가 된 김부초등학교의 옆의 넓은 공터에는 마의태자 유적지라는 비석과 함께 "대왕각"이 서있다. 대왕각 안에는 마의태자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그리고 김부초등학교의 뒷산에는 5층 석탑인 김부대왕탑이 있다. 태자가 죽은 후 유민들이 김부 대왕각과 비문을 세우고, 매년 5월5일과 9월9일에 [新羅敬順大王太子金公鎰之神位] 위패를 모셔놓고, 동제를 지내오고 있다. 자연마을에는 거릿말, 갈밭무기, 달발골, 백재동, 하단지골 등이 있다. 갈밭무기는 이 마을에 갈대가 많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거릿말은 마을이 황병고르· 단지고르· 갑둔리로 가는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는데서 유래되었다.
♤ 마의태자(麻衣太子, 912년? ~ ?)
마의태자는 신라 경순왕(敬順王)과 죽방부인(竹房夫人) 사이의 장자로 휘(諱)는 사서(史書)에 전하지 않으나, 일부 문헌에 김일(金鎰)이라 하며, 부안김씨(扶安金氏)에서 시조로 모시고 있다. 935년(경순왕 9) 10월 신라는 후백제 견훤(甄萱)과 고려 태조 왕건(王建)의 신흥세력에 대항할 길이 없자 군신(君臣)회의를 열고 고려에 항복할 것을 논의하였다. 태자는 천년사직을 하루 아침에 버릴 수 없다고 반대하였으나, 결국 고려에 귀부(歸附)를 청하는 국서(國書)가 전달되었다. 이에 태자(太子)는 종묘(宗廟)에 곡(哭)을 하고 처자(妻子)를 죽이고 통한(痛恨)을 안고 개골산(皆骨山, 金剛山)에 들어가 베옷[麻衣]을 입고 초근목피로 여생을 보냈다고 한다. 그 가운데 흥미로운 것은 마의태자(麻衣太子)가 단지 은거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강원도 인제군 금부리(金富里)에서 두 아들 및 대의지사와 함께 세력을 이루어 신라소국(新羅小國)을 세워 신라 부흥을 꾀했다고 하며, 금부대왕(金富大王)• 김부대왕(金傅大王)으로도 불린다. 인제에 유난히 많은 '다무리'라는 지명은 '국권 회복'을 뜻하는 것으로(《삼국사기》에서 이미 '도로 되찾은 땅'이라는 뜻의 '다물'이라는 말이 언급된 예가 있다), 이를 근거로 마의태자가 신라부흥운동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주장하는 설이 있다.
도로가 직선화되면서 정자가 있는 마루금이 구 도로와 신도로 사이에 섬이 되어 있습니다. 절사면으로 인해 도로를 조금 따르다 우측으로 올라서야 합니다.
♤ 아홉사리재/ 451번도로/ 사각정자/ 인제군 표지석
첩첩산중의 고장 홍천(洪川) 내촌면 와야리(瓦野里) 가령골에서 인제(麟蹄) 상남면 상남리로 넘어가는 재로 451번 지방도가 지난다. 아홉사리재는 구곡현(九曲顯), 가령(可嶺), 가득령(可得嶺), 아홉고개, 아홉싸리 등 여러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지금은 ‘아홉사리재’로 굳었다. 가령골(加靈谷, 加驛谷)은 와야리 북동쪽에 있는 마을로 조선 시대 역(驛)이 있었다고 한다. 홍천군지에 의하면 고개가 높고 험해서 길이 아홉사리로 되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 국가정보원 지도상에는 이 곳에서 도로 따라 서쪽 내촌면 방향으로 1km정도 떨어진 백암산 들머리에 있는 곳을 아홉사리재로 표시하고 있는데, 홍천군 국유림관리소에서 세운 이정표에 의하면 이 곳을 「아홉사리재」로 표시하고 있다.
♤ 아홉사리재 전설
고개 전설로 아홉살이가 전해지고 있는데, 결혼식을 올린 새신랑이 3일째 되는 날 아흔아홉 굽이 도로개설공사에 끌려가 날짜가 가는 것도 모르고 일만 하다 공사가 다 끝나고 돌아오니 태어난 아들이 아홉 살이 되었다라 해서 이 고개를 아홉살이 고개라고 불렸다고 한다. 또 다른 전설로, 아주 먼 옛날 인제군 상남면 상남리에 사는 열여섯 처녀가 험준한 이 재를 넘어 홍천군 내촌면 와야리 권씨댁으로 시집을 왔다. 시집 온지 1년만에 아들을 낳은 색시는 부모님이 너무 그리워 친정에 가고 싶어 했다. 상남의 친정엘 가려면 시집올 때 넘어 온 이 험한 고개를 넘어야만 했는데, 어린 아이와 함께는 도저히 넘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이가 스스로 먼 길을 걸을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드디어 아홉살이 되던 해에 색시는 아들을 데리고 이 고개를 넘어 친정 나들이를 처음으로 할 수 있었다. 아기가 아홉살이 되어 넘었던 고개라 하여 아홉사리재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전설이다.
특별한 표식이 없으니 그냥 통과!
♤ 응봉산분기점(934.8m)/ 삼면봉(인제군 상남면, 홍천군 서석면 → 내촌면)
좌측편이 홍천군 서석면 수하리에서 내촌면 와야리로 바뀌는 삼면봉 갈림길이다. 좌측으로 50여m 벗어난 지점에 삼각점이 있는 응봉산(935.5m)이 있다.
- 4등삼각점 (어론 460)이 있다. 지맥의 우측이 서석면 수하리 구간으로 행치령 직전 삼면봉에서 약 4.4km 지점이다.
우측으로 가득봉으로 올라가는 임도길을 바라보며 고도를 높이는데요. 갈림길은 사진을 찍을려도 특별한 표식을 찾을 수 없네요.
♤ 가득봉갈림길(970m)/ 가득봉 편도 1.7km
지맥은 좌틀이고, 능선 우측으로 약 1.7km 벗어나 지점에 가득봉이 있다. 가득봉은 북한강의 지류인 소양강과 인북천(麟北川)의 발원지로서 가득봉에서 발원하여 17.7km 남쪽으로 흐르다가 인제군 서화면과 북면의 경계지점에서 폭이 넓어지며, 인제군 인제읍 합강리에서 소양강으로 흘러든다. 인근에는 소재골 계곡, 대암산, 대우산 등 천연보호구역이 있으며 이 지역 일대 산나물이 많다.
♤ 가득봉(可得峯, 1059.7m)
강원도 인제군 상남면 자연속에 소재한 오지의 산이라 접근이 쉽지 않다. 정상은 좁은 공터에 나무로 꽉 막혀 조망은 없다. 가득봉 임도 라이딩이 인기다. 가득봉 정상에는 2등삼각점(어론 23/ 1989 재설)이 있고 선답자 표지만 걸려있다. 백암산과 연계산행이 가능하다.
작년 가실에 제대한 친구 아들네미가 인제 과학화전투훈련단에서 근무한다고 하더니만... 거기가 바로 이 일대로구나~ 갈림봉에 배낭을 놓아두고 백암산에 다녀옵니다. 낙동정맥에 디따시 큰 정상석에 파란 글씨의 백암산이 떠오르네요.
♤ 백암산갈림봉(1,104m)/ 백암산 좌측 편도 300m
백암산은 갈림봉에서 좌측으로 약 300m 정도 벗어나 있다. 여기부터 육군과학화전투훈련단 지역이라는 경고 표지와 함께 국방부 말뚝 #150~#300번이 거니고개 직전까지 일정 간격으로 계속된다.
♤ 백우분맥
백우분맥은 백암산갈림봉(1104m)에서 서쪽으로 분기하여 백암산(1097.1m), 백우산(894.1m), 송곡태산(587.6m), 봉황산(650.3m)을 거쳐 아호라지(451번 도로)를 건너 내촌천과 만나는 홍천군 두촌면 철정리 아호라지 철종교(청벽분맥 건너편)에서 그 맥을 다하는 20.9km의 분맥이다.
♤ 백암산(白岩山, 1,099m)
백암산은 강원도 홍천군 내촌면과 인제군 상남면에 걸쳐있는 산으로 아홉사리고개 좌측에 위치한다. 팔봉산, 가리산, 미약골, 금학산, 공작산 수타사, 용소계곡, 살둔계곡, 가칠봉 삼봉약수와 함께 홍천 9경중에 하나인 가령폭포를 품고 있다. 가령폭포는 영혼을 연다는 뜻의 개령폭포라고도 하며 백암산 서남쪽 기슭에에 위치한다. 해발 950m 산골샘에서 발원되어 50m 아래로 힘차게 떨어진다. 산 들머리 아홉살이고개 오름길목에는 수령이 300년 넘은 밤나무가 세 그루 있다. 개령폭포의 표지석이 있는 산길로 접어들어 오른쪽 길을 따라 오르면 관음사가 있다. 여기서 다시 10여분 가면 홀연히 허공에 걸린 개령폭포의 위용을 만나게 된다. 넓은 공터의 백암산 정상은 시야가 막혀 조망이 없다. 남쪽으로 응봉산(1,103m)이, 멀리 북서쪽으로 방태산(1,444m)이 있다.
- 정상석, 이정표 및 백암산 안내도, 4등삼각점(어론 427/ 2005 재설)이 있다.
문내치에 내려서서 정면 산허리를 휘감는 양회임도로 조금 오르다 멀리 군부대 통신탑이 보이는 반사경이 있는 곳에서 도로 개설로 인한 절개지 사면으로 바로 쳐 올려야 지맥길 능선입니다. 올라서서 나무에 띠지 하나 매달아 두는데 날이 어두워 헤드랜턴을 꺼내듭니다.
♤ 문내치(門內峙)/ 슬치/ 양회임도 따라 올라서면 통신탑이 보임
문내치는 홍천 내촌면 광암리 황철동에서 인제 상남면 상남리 자포대로 넘는 고개였지만, 예전의 모습은 사라지고 지금은 군사도로 역할을 하고 있다. 자포대 서쪽에 문안골(門內谷) 마을이 있는데, 마을 어귀에 문처럼 생긴 바위가 있어서 이름 붙었고, 이 문안골에서 고개이름이 붙었다.
♤ 홍천군 내촌면 광암리(廣岩里)
강원도 홍천군 내촌면에 있는 광암리는 대부분의 지역이 높은 산지로 이루어진 산촌이다. 서쪽으로 장남천으로 흘러들어가는 작은 하천이 흐르며 자연마을로 가족이, 군네미, 느와터, 황철골이 있다. 가족(可足)이는 올바른 사람만이 발을 들여 놓을 수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군네미는 가족이 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느와터는 능와집이 많아 붙여진 지명이다. 황철골은 황철나무가 많았다 하여 생긴 이름이다.
문내치에서 계속 임도를 따르면 1,090m봉을 우회하여 가마봉 아래 싸리재골 생태통로까지 이어지나 보더군요.
♤ 1,090m봉
아래에는 거대한 군부대 통신탑이 있다. 통신탑 너머로는 오늘 가야할 춘천지맥 구간에서 가장 높은 1,118.2m봉이 보이는데 이곳의 춘천지맥 지형은 역 C자 형태로 빙 둘러서 가는 능선이다.
♤ 잘록이 안부(1,002m)/ 싸리치
잘록이 안부를 지나는데, 좌측으로 내려서면 홍천군 내촌면 광암리 싸리재골이고, 우측길은 문안사로 내려서는 길이다. 사람들의 왕래가 끊어진지 오래라 등로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야간 행군으로 거니고개까지 가서 쉰다는 계획은 언감생심, 중간 황병고개에 군부대도 있다하니 야간에 계속 진행하기란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 임도에서 노박을 하기로 합니다. 바람이 엄청 세게 불어서 멈추면 추울 정도입니다. 바람을 피해 임도를 따라 남쪽 사면으로 조금 내려서서 커브 평탄한 곳에 자리를 깔고 쉽니다.
♤ 에코브릿지(싸리재골고개/신설도로)/ 생태통로
동물이동통로와 터널이 지나는 잘록이로 내려선다. 에코브릿지를 지나면서 우측 시멘트 임도와 터널 입구를 내려다 본다. 좌측은 홍천군 내촌면 광암리 윗괘석으로, 우측은 인제군 상남면 상남리 솔봉으로 이어지는 임도다. 행치령에서 약 12km 지점이다.
가마봉갈림길로 오르는데 군부대 참호가 나오면서 군데군데 500cc 생수가 땅에 무데기로 묻어져 있어요. 상시 쓰이는 훈련장이라서 그런건지 일부러 버리고 간건 아닌거 같은데....
♤ 가마봉갈림봉(1137.2m)/ 좌틀, 가마봉은 지맥에서 400m 떨어져 있다.
가마봉갈림봉에서 가마분맥이 분기한다. 행정구역상으로 여기부터 삼면봉까지 우측이 인제군 상남면 김부리이다. 우측에 있는 가마봉에 다녀와 지맥길은 좌틀로 내려선다. 행치령에서 약 12.5km 지점이다.
♤ 가마분맥
가마분맥은 춘천지맥 가마봉분기봉에서 동북쪽으로 분기하여 가마봉(1189.6m), 비득재(446번 도로, 784.8m), 응봉산(982.8m), 길령고개(임도), 가령봉(944.9m), 망태봉(771.4m), 수리봉(703.3m), 매고개(46번 도로)를 거쳐 성재마을 앞 우각천과 어론천이 합류하는 합수점에서 그 맥을 다하는 31.9 km의 맥길을 말한다.
이 지역 지맥이 통과하는 마루금에 군부대 참호가 계속 됩니다. 거기까진 좋다 그거에요.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는게 온 산이 쓰레기 투성이라는 겁니다. 장교가 환경, 위생에 무신경하고, 지휘관이 훈련장을 한번도 순시하지 않았다는건지 정작처에서 작전개념으로 기획을 하고 쓰레기를 수거해야 하겠더군요. 먹고버린 군납용 쓰레기가 어마어마 해요. 그것도 작은 가마봉까지 계속해서.....
♤ 가마봉(1,191.5m)/ 조망 환상적
가매봉( 이 동네사람들은 가매봉이라 부른다)은 강원도 오지마을 인제군 상남면 김부리 남쪽에 우뚝 솟아있는 바위산이다. 정상은 남동쪽 암봉과 남서쪽의 단애와 북서쪽의 암봉으로 나눠볼수 있으나 뚜렷하게 분리되어 있는 것은 아니고 붙어 있는 편이다. 정상부에 사람 얼굴 모습을 닮았다는 얼굴바위가 있는 가마봉은 끝없는 조망이 환상적이다. 너댓평의 공터를 이루고 있는 정상은 그야말로 사방으로 시야가 확 트여 조망이 너무나 시원하다. 먼저 북쪽으로 도솔지맥의 남한쪽 시작점인 대암산을 조망해볼 일이다. 가야할 방향 서쪽으로 소뿔산 넘어 무수한 봉우리들이 길게 펼쳐진다. 춘천시와 경계에 위치한 홍천 가리산, 공작산, 백우산도 조망된다. 북동쪽 전망은 설악줄기를 비롯한 대간줄기이다. 설악산에서 점봉산으로, 그리고 쇠나드리-갈전곡봉-구룡령-응복산-두루봉으로.. 그야말로 백두대간줄기가 한눈에 펼쳐진다. 대간을 이탈한 방태산, 개인산, 맹현봉, 문암산 등 낯익은 산들도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다. 또한 남동쪽으로 한강기맥 두루봉-비로봉-계방산-보래봉으로 잇는 산줄기가 끝없이 펼쳐진다. 남쪽 바로 건너 백암산과 가득봉, 그 뒤의 응봉산 역시 시원하기만 하다. 정상에서 남동쪽으로 2~3m 진행하면 얼굴바위 머리부에 해당하는 곳으로 이곳에서의 조망은 수십길 절벽위에서 보는 것이라 더욱 장쾌함을 연출한다. 솔봉계곡으로 이어지는 상남천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가마봉은 강원도에서도 특히 어중간한 오지마을에 박혀있어 오기 어려운 산이다. 백암산(1,099m)과 약 20리 거리를 두고 마주하고 있어 연계산행이 가능하다. 산행은 김부리초등학교(폐교) 앞 함병골에서 시작한다. 가매봉 함병골 역시 김부리와 함께 병사들이 모이는 장소라는 뜻을 담고 있다. 가마봉일대가 육군과학화전투훈련단 작전지역으로 지정되면서 마을이 사라지고 있으며 산행도 일부 출입이 통제된다.
- 가마봉 정상에는 군삼각점이 있다.
♤ 용소폭포
가마봉 아래에 있는 용소폭포는 가마봉과 대바위산(1091.4m) 사이를 흐르는 상남천 중하류의 바위계곡에 자리잡고 있는데 전설에 의하면 옛날 용소폭포 아래의 소(沼)에는 용이 살고 있었다. 가뭄이 들면 마을 사람들은 이 소에서 기우제를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엄수동에 살던 한 할망의 꿈에 백발 할방이 나타나 '내일 일찍 용소로 오면 나를 볼 수 있다'고 하였다. 이튿날 일찍 할망이 손녀를 앞세우고 용소로 가보니 엄청나게 큰 황구렁이가 폭포를 칭칭 감싸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할망은 무서워서 손녀와 함께 상남까지 도망쳤다. 그때 갑자기 천둥 번개가 치고 안개가 자욱한 골짜기 위로 무지개가 뜨더니 용이 하늘로 올라갔다고 한다.
♤ 암봉(1,116.5m)
황병고개에 내려서기 전의 암봉으로 가마봉 못지 않는 조망봉이라고 한다.
경순왕도 아들 마의태자도 한문만 다르고 똑같은 이름 '부'를 사용했더군요. 인근 갑둔리, 항병골, 다물리, 군량리, 단지골, 행차고개, 수거너미 고개 등등은 다 금강산 개골산이 이쯤이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하더군요. 개골이란 말도 마의태자를 따르는 개골장군 이름이라고 하더이다.
♤ 황병고개(군사포장도로)/ 항병고개
황병고개는 황병골에서 홍천군 두촌면 괘석리로 가는 고개다. 황병고개는 북동쪽으로 황병골을 지나 우각천(牛角川)을 따라 김부리 446번 도로에 내려서고, 남서쪽으로 홍천군 두촌면 상괘석마을을 지나 경수천(鏡水川)을 따라 내려서서 408번도로로 이어진다. 국토지리 정보원 지형도에는 ‘항병고개’와 ‘항병골’로 표기하고 있는데, 인제군 홈페이지에는 항병고개는 황병고개의 또 다른 이름으로 적고있다.
- 항병고개에서 구간을 끊으면, 우측 군사도로 따라 인제군 상남면 김부리 김부교로 내려서는데 탈출 실거리 3.7km이다.
♤ 황병골(黃丙谷)
황병골은 김부리 남쪽에 있는 골짜기로 황병나무가 무성한데 연유하여 명명된 지명이라고 하나, 갑둔향토사적연구회 이태두회원은 싸움에서 항복한다는 뜻으로 풀이하고 김부대왕 통치 체제에 의한 싸움에서 유래된 지명일 것이라고 추측하여 항병골이라고 주장한다.
특별한 이정표가 없는 삼거리입니다. 여기저기 참호만 움푹움푹.... 뚜렷한 직진 등로는 인제군 상남면과 남면의 면계로 향하지만 지맥은 좌틀로 내려서야 합니다. 세르파님 띠지는 낮게 무영객님 띠지는 높게 매달려 길을 안내하고 있네요.
♤ 삼면봉(1,002m)/ (홍천군 내촌면, 인제군 상남면 → 남면)
북향하던 지맥길은 여기서 서쪽으로 좌틀하고 계속 북진하면 술구네미고개로 이어진다. 황병고개에서 이곳까지 올라온 만큼 다시 내리막길을 내려서면 임도를 또 만난다.
♤ 술구네미(수구네미)/ 숯구네미
술구네미 고개는 인제군 남면 갑둔리 서낭거리와 김부리 사이의 큰 고개로, 마의태자가 왕건에 대항하기 위하여 이곳을 근거지로 삼고 수레로 이 고개를 넘어 다닐 때, 고개가 하도 험하고 칡넝쿨이 많아 수레를 두고 걸어 넘어 고개 건너편에 둔 수레를 갈아 타고 다녔기에, 수레를 남겨 두었던 고개 양쪽을 수레너머라고 부르던 것이 고개이름으로 지금까지 남아있는 것이라 한다. 술구네미는 '수레너머'의 사투리란 말도 있다.
삼면봉에서 오매자고개로 내려서는 길에도 안 마신 생수가 비탈에 뒹굴어 다니네요. 몇개 씩 나무 밑둥에 모아두며 내려섭니다.
♤ 오매자고개(930m)/ 삼면임도경계면(인제군 남면, 홍천군 내촌면 → 두촌면)
국가정보원 지도에 의하면, 이 임도에서 삼면이 갈리는 것으로 표시하고 있는데, 좌측이 홍천군 내촌면에서 두촌면으로 바뀌고 우측은 계속 인제군 남면으로 이어져 간다. 좌측은 윗괘석리와 황병고개로 우회하여 이어지는 임도이고, 우측(북쪽)이 호원오미자농원이 있는 오매자골로 이어진다. 오매자골은 수구너미 남쪽에 있는 골짜기로 오미자가 많이 자생했다고 하며 예전에 커다란 농장이 있었던 곳이고, 그 너머로 김부대왕이 수레를 타고 넘었다고 해서 붙혀진 수구네미로 이이진다.
어느 분 후기에 소뿔산이 춘천지맥 최고의 구간이라고 극구 칭찬을 했길래 조망이 그리 좋나 했더니...
줄을 잡고 오르는 암릉과 바위절벽 위험구간이 산타는 맛이 난다는 말씀이었더라구요.
사진을 찍을렸더니 고장난 앰프에서 띠엄띠엄 경고방송이 나오네요. 센서로 작동하는지 모니터링을 하는 것인지... 알았어 그냥 간다고~ 하며 손을 흔들어 주고 진행했습니다.
♤ 1,118.2m봉(개념도 1122.7m)/ 춘천지맥 최고봉/ 소뿔산군통신탑
춘천지맥의 최고봉임에도 이름이 없는 무명봉이다. 우측(북)으로 응봉산과 방태산, 설악권의 산들이 보이고, 가마봉과 황병골, 오미자골들을 속속들이 살펴 볼 수 있는 조망이 좋은 곳이다. 육군과학화전투훈련단 기지가 정상을 점령하고 있고 경고판도 붙어있다.
- 넓은 헬기장이 조성되어 있고 4등삼각점 (어론 430/ 2005재설)이 있다.
♤ 윗괘석 안부(990m)
우측은 인제군 남면 어론리 갈고개로 이어지고 좌측은 홍천군 두촌면 괘석리 상괘석 마을로 내려가는 길인데, 지금은 지나 다니는 사람이 없어 등로가 잡풀만 무성하다. 고개 안부 우측으로 묵은 임도도 보이고, 계곡에 물이 보입니다. 엊그제 비가 와서 그렇겠지만 아래로 조금 내려서면 물을 구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들더군요.
코뿔소를 닮은 바위를 보진 못했습니다. 소뿔산 전위봉에 1,077.7m봉이라 수기로 써둔 무영객님 띠지를 찍었는데 사진이 어디로 갔는지 찾기 힘드네요.
♤ 코뿔소바위(1,004m)
잘록이 안부로 내려서서 다시 오르는 1,099m 갈림봉이 알바 유의 지점이다. 직진하면 알바이고 우틀하여야 한다.
♤ 소뿔산(1,122.7m)/ 군계이자 면계(홍천군-인제군)
춘천지맥 중에 가장 인상적인 산에 든다. 강원도 홍천군 두촌면 괘석리와 인제군 남면 갑둔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산 아래 마을에서 보면 소의 뿔과 같이 2개 봉우리가 봉긋 솟았다 해서 그런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정상에는 홍천군에서 설치한 이정표가 있고 1시 방향으로는 갑둔리로 향하는 뚜렸한 임도가 있지만 지맥길은 좌측으로 이어진다. 소뿔산 전위봉인 1,077.7m봉과 산죽밭을 내렸다가 다시 오르는 소뿔산(1,107.8m)을 멀리서 보면 소의 두 뿔과 같은 모양이라, 뒤쪽 더 높은 산을 소뿔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가마봉에서 거니고개 사이에 우뚝 솟은 산이다. 특히 가마봉에서 소뿔산과 작은가마봉을 지나 44번 도로인 거니고개에 이르는 도상거리 약 15km 거리의 능선길은 그야말로 알려지지 않은 오지의 숨은 산행코스라 할 수 있다.
♤ 소뿔바위/ 횃불바위
소뿔산에서 5분여 진행하면 등로 좌측편에 횃불 모양의 큰 바위가 아슬아슬하게 놓여있는 곳을 지나는데, 일명 '소뿔바위'로 불리는 곳이다. 소뿔바위는 앞쪽으로 세이지우드CC와 그 뒤 백우산(895m)이 조망되는 곳이다.
- 국방부 표지석(#245)이 등로에 박혀있다.
♤ 범의터갈림길 안부
범의터라 하여 호랑이와 관련된 지명인줄 알았는데, 홍천군 지명유래에 의하면, 범의터는 홍천군 두촌면 괘석리에 속해있는 자연부락으로 범의동(凡義洞)이라고도 하며 이곳에서 약 2.1km로 떨어진 곳이며 괘석리(掛石里, 掛夕里)는 두촌면 지역으로 많은 바위들이 층을 이루고 괴어 있는 것 같다 하여 괘석이라 하였는데, 1961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다름재, 벌의터, 샛골, 영수터, 탑거리를 병합하여 괘석리라 하였다.
- 이정표(↑소뿔산 0.9km, 범의터 2.1km→)와 소뿔산등산안내도, 육군과학화전투훈련단장 경고판과 국방부 표지 말뚝(#250)이 있는 안부이다.
♤ 암봉(岩峰, 1,305m)
정상이 능선에서 5m정도 비켜 있다보니 대다수 산꾼들이 등로를 따라 우회해서 다시 내려가 버리는 곳이다. 조망이 좋다. 암봉 정상에 올라서니 동남쪽으론 지나온 백암산과 가마봉이, 남서쪽으론 공작산과 가리산이 보인다. 바로 아래는 범의터를 비롯한 괘석리 일대가 보이고, 괘석리에 자리잡고 있는 세이지우드(블루마운틴) C.C가 내려다 보인다.
♤ 1,074.9m봉
좌측 맞은편 건너편으로 응봉산이 뚜렷이 보이고 우측으로 설악산이 아련하게 보인다. 이정표(↓가마봉(등산로아님) 4.8km, ←소뿔산 1.9km, 지방도408호(달음재) 2.9km→)에서 좌측 소뿔산 방향이다. 군 경고판과 국방부 표지석이 박혀 있다.
- 2등삼각점(어론 24/ 1989재설)이 있다.
달음재 안부에 이정표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 달음재(973m) 안부
좌측 아래에 괘석리 달음재가 위치한다. 다름재[달음재, 다음동(多陰洞), 월림동(月林洞), 월음동(月陰洞), 월림골]는 두촌면 괘석리 서쪽에 있는 마을로 사방이 산으로 둘러 있다.
♤ 1,044.4m봉
국방부표지 말뚝(#267), 군 경고판이 있다. 낙엽이 쌓여 발이 푹푹 빠지고 멧돼지가 길을 헤집어 놓아 걷기에 다소 불편하지만 등로는 좋다.
도로에서 능선으로 달라붙는 접속거리가 짧아 여기서 지맥 구간을 많이 끊는가 봅니다. 내려서는 길도 뚜렷하게 잡목 제거작업을 해두었네요. 이정표는 어디로 떼어져 날라가고 가느다란 지주만 남아 있습니다.
♤ 산흥동 안부고개
신흥동은 홍천군 두촌면 괘석리에 있는 마을로 달음재 북쪽에 형성된 마을인데 대명의-터라고도 부르고 큰 뱀이 많았다고 한다. 대명광산이 생긴 뒤로 큰 마을이 되었다고 한다.
- 우측(북쪽)으로 속새메기 방향이고, 좌측(남쪽) 신흥동, 신흥교 방향으로 골이 깊게 패인 계곡으로 되어 있다. 속새메기 마을 이름은 속새풀이 많아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 작은가마봉(923.2m봉)/ 무인산불감시카메라탑. 국방부표지 말뚝과 경고판
홍천군 두촌면과 인제군 남면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일제시대에 이 산 아래에 대명광산이 있었는데 1940년에 개광하여 해방을 맞으면서 폐광되었다고 하며 그런 연유로 볼 때 예전의 지명은 대명산이었던 모양이다. 산 정상에는 무인감시카메라와 알아볼 수 없는 삼각점이 있다. 지나온 가마봉에 비해 볼품이 없다.
- 가마봉에서 내려서자마자 갈림길에서 우틀해야 한다. 거니고개까지는 주섬주섬 약 3km이다.
♤ 거니고개(332m)/ 간인현(艮寅峴)/ 건이치(建伊峙)/ 44번 국도/ 휴게소
거니고개는 강원도 홍천군 두촌면 건남리, 원거리 북쪽에서 인제군 남면 어론리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고개로, 인제군과 홍천군의 경계가 된다. 건니고개는 옛날에는 간인현(艮寅峴)으로 불렸으나 지금은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간인(艮 어긋날 간 寅 동방 인)방향 즉, 홍천의 동북방에 있는 고개라 하여 간인현이라 불리었고, 이후 음이화가 되어 간이-건이-건니로 변화 과정을 겪은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시대에 고개 아래에 '건이원(巾伊院)'이라는 원집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건이치(建伊峙)· 건률현· 간인현(艮寅峴)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한국지명총람』에 "낮은 고개이므로 사람들이 다니기 편안하여 '넘기 좋기는 거니고개, 놀기 좋기는 합강정'이란 노래도 있다."고 전한다. 합강정은 인제군 인제면 합강리에 있다. 『해동지도(인제)』에 건이치(建伊峙)로 표기되어 있다. 산경표에는 건이산(建移山)으로 나온다.
♤ 청정조각공원
홍천에서 거니고개를 너머 인제로 들어가는 첫 번째 휴게소인 청정조각공원(인제군 남면 어론리 497번지)에는 성을 테마로한 화양(華洋) 고명규(高明圭) 작가의 다양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어서 인제를 찾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고명규 작가는 1943년 충남 서산에서 한옥을 짓는 도편수의 장남으로 태어나, 어릴적부터 나무 다루는 법을 익히기 시작해서 조각가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고명규 작가의 성을 테마로 한 다양한 작품들은 다양한 상징성을 내포하는데 벌과 꽃, 꽃과 열매 민들레 홀씨에서 볼 수 있듯이 생명의 탄생과 대자연의 기운을 내포하고 있어서 보는 이들에게 다양한 상상력의 나래를 펼치게 한다.
거니고개 군부대 정문 건너편 버스정류소에서 40분을 기다려 17:30분 쯤에 인제에서 달려온 버스를 타고...
푸다다다~ 할리오토바이 겁나 넘어다니는 44번 도로 옛적 클링턴휴게소, 두촌면 자은리 가리산 입구, 화양강랜드 건너편 철정휴게소를 지나며 홍천강을 만나고, 화촌면을 통해 홍천읍내로 나왔습니다. 철정리 말고개는 화촌면과 두촌면의 경계로 6.25 개전초기 춘천-홍천전투의 치열한 전적지입니다. 버스로 50분 정도 걸리더군요.
44번 왕복 6차로 도로를 횡단하여 군부대 앞 신호등을 지나 우측 절개지 사면 계단길로 출발한다. 거니고개 조각공원이 내려다 보이고 그 뒤로 가마봉의 모습이 보인다. 홍천군 두촌면과 인제군 남면의 경계인 거니고개에서 북서향으로 이어지다 660m봉에서 대체로 서향하다 삼군봉(802.3m)에서 우측이 춘천시 북산면으로 바뀌며 남향하여 홍천고개 이후까지 이어지게 된다. 거니고개 홍천고개 구간은 차량으로 움직이면 10분에 닿을 수 있는 거리이며 이름있는 봉우리는 매봉이 유일하다.
첫댓글 가을 하늘답게 하늘이 무척이나 푸르고 곱습니다.
푸르른 초록색 옷을 걸친 산은 곧 붉은색으로 갈아입겠지요.
깨져있던 가마봉 정상석은 교체된듯 합니다.
이런 깊은 산중의 정상석도 교체 할 정도면
나름신경을 쓴단건데
쓰레기에도 신경을 쓰면 더 좋았을거 같습니다.
근데 가마봉 근처뿐 아니라
앞으로 가시게 될 대룡산 옆의 녹두봉.
녹두봉 우횟길에는 가마봉에서 본 쓰레기 그 이상을 볼 겁니다. ^^
옛 기억을 소환해 준 산행기...
귀한 글과 귀한 사진 잘 봤습니다.
똥벼락님! 오랜만에 반갑습니다.^^
여전히 지맥 꾸준하게 진행 중이시군요.
녹두봉 군부대 아래 폐오토바이며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선답자 산행기 이미 접해보았습니다.
국민신문고나 국방부 게시판에 형식을 갖춰 투서를 올리는 방법도 있겠으나 괜히 긁어부스럼이 되지않을까 싶어 주저 되네요.
주둔지 병사가 훈련하는게 아닌 외지에서 기동한 대부대 전술이 시연되는 곳인지라 버린 사람이 따로 있어 수거책임을 미루는듯 보였답니다.
경계책임과 마찬가지로 전후부대에게 수거책임을 중첩시키는 지혜가 요구되었습니다. 지휘관의 관심부족이 젤 큰건 물론이고요.^^ 감사합니다.^^
역시 풍라라님 산행기는 혼과 정성이 담긴 산행기 입니다
정말 산행보다 산행기록 남기는 것이 더 어려운것 같네요
나홀로 한번에 장거리 산행 정말 대단 하십니다
행치령 마이태자 흔적도 생각해보는 고개 인것 같네요
영춘지맥 유서 깊고 아름다운 산줄기 입니다
날씨도 좋고 산행 하는 모습 생각 하면서 잘 보고 잘 읽고 갑니다
두루 두루 잘 살펴 보시고 무탈하게 마무리 하시기 바랍니다
담 산행 기록을 기다려 집니다^0^
저번주 가섭지맥 2구간 걸을때
잡목이 엄청 심하단 얘기를 듣고
와룡산님 산행기 정독후에
말구리재, 대간치 같이
잡목 심한곳 요리조리 잘 피해서 편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
꼼꼼하게 써주신 산행기,
뒷사람에겐 큰 힘이 되죠...
감사합니다. ^^
와룡산선배님!
영춘지맥은 시대적 소임을 훌륭하게 마무리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영광스럽게 퇴장하고 있었습니다.
영춘지맥으로 인하여 세인들의 지맥에 쏟아진 관심과 산사람들을 지맥으로 이끌게된 업적은 실로 위대하였습니다.
명문대학 사회지리학 박사과정 연구 논문도 신 산경표보다 더 정확하고 세부적일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한편으로 그 위대함에 숟가락을 얹으려고 지맥에까지 산자분수령원칙을 적용해 합수점을 향하는게 맞는 것처럼 오도(誤導)하여 산사람들의 마음을 갈래치기하고 파벌싸움을 부추긴 얼치기 분들이 떠올라 마음이 분개스럽습니다.
"영춘지맥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 맥아더 퇴임연설의 명대사를 감히 그에게 바칩니다.^^ 감사합니다.^^
춘천지맥 1구간 고생하셨습니다~
이제는 날씨가 산행하시기 딱좋은 시기입니다~
산행당시는 여름이 빨리 지나가기을 바라며 종주한 생각이 납니다~
지금 생각하면 뜨거운 여름날 어케 산행했나 생각도 들구요~
퐁라라님의 힘든 산행기에
대전 한겨례 산악회와 똥벼락님과 함께 산행한 추억이 아련히 생각나내요~
감상 잘하고 감사합니다~
항상 안.줄산을 응원합니다~
또 손가락 다치지 마이소~()()()
법광선배님!
고도를 수기로 써넣으신 띠지가 아직 건재하게 춘천지맥을 지키고 있었답니다.^^
한여름에 똥벼락님과 같이 가마봉에 가셨어요?
똥벼락님이 올려주신 가마봉 사진은 늦가을인데요. ㅋ^^
똥벼락님도 다른 사진을 옮겨주신 모양이네요.
정상석 재질이 그땐 화강암이었군요. 엊그제 보니 나무 목재였는데요.
일대에 넓은 토지를 군부대가 훈련장으로 수용해 민가는 구경하기 힘들게 되었다더군요.
춘천지맥은 전지가위가 필요없어 보여 휴대도 하지 않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일종의 답사한 산에 대한 보고서를 넘어 무슨 논문을 보는듯 합니다.
홀로 60여키로 되는 거리를 타는 것도 버거운 일인데 답사기를 올리는 노고는 또 얼마나 수고로웠을지 짐작됩니다.
라라님이나 다른 이곳 고수 산객님들 산행기를 읽다보면
가끔 힘들다고 느끼는 제 산행은 실은 아들과 소풍가는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산이 있어 타는 것이고
조망 있어 감상하는 것에 불과한 제 산행을 비교해보며
과연 산행이 무엇이고 어떠해야 하는지 생각도 해보게 되네요.
어려운 내겐 다소 지루한 산행기 잘 읽고 갑니다.
수고 많으셨어요.
이슬하선배님!
저의 지론은 하나입니다.
켜켜이 묻어있는 이 산하에 살다 먼저간 생명들의 숨결을 느껴보는 것이고,
후답자가 같은 길을 걸으며 조금이라도 더 세상을 넓게 볼 수 있도록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천지(天地)는 만물지역려(萬物之逆旅)요
광음(光陰)은 백대지과객(百代之過客)이라
인생(人生)을 헤아리니 묘창해지일속(渺滄海之一粟)이라
두어라 약몽부생(若夢浮生)이니 아니 놀고 어이리~
님같이 생각하는 선답자들 덕분에 저희 부자 덜 수고로운 산행이라 항상 감사한 마음입니다.
쾌청한 날씨의 혜택을 제대로 누린 산행이었네요.
올라온 맑은 사진을 바라보는 눈이 절로 힐링이 되는 듯합니다.
소소한 만남, 일상적인 생각거리에서 행복을 찾아가는
퐁라라님의 소탈한 산행궤적이 마음속을 맑게 해줍니다.
아홉사리재 정자에서의 가족들 달달한 소풍 모습들,
그걸 내심 부러워하는 풍경이 눈앞의 모습처럼 사실적으로 그려집니다.
매봉, 응봉산, 가마봉, 소뿔산으로 이어지는 조망의 명산들.
엄청난 업다운에 힘들었을 구간을 허들경기하듯 넘었다는 표현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마음은 최소 홍천고개까지였으나.
몸이 원하는 대로 거니고개에서 멈췄다는 표현이 절묘하게 문학적이네요.
뭐니뭐니해도 퐁라라님 산행의 압권은 노천비박이라 생각됩니다.
산과 하나되는 가장 확실한 방식이기도 하지요.
부디 자신의 몸을 귀히 여겨서 오래도록 산과 함께 하시길 응원합니다. 고생하셨습니다.
범산선배님!
산행하며 집나간 마누라 보다 더 강렬하게 드는 생각이 하나 있었습니다.
더위가 완전히 주저앉기 전에 수박 한뎅이만 더 사먹자~ 이런 생각이 들었답니다.
드뎌 퇴근길에 수박 한뎅이 샀습니다. 큼지막한게 25,000원 이네요.
사과는 먹을만 한게 개당 5,000원 이랩니다. 오메~~ 안 먹고 말지.. 너 다이!!!
부엌에 칼을 들고 주저앉아 동그랭이 숟갈로 락엔락 두통에 수박을 잡아 넣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달달하고 시원한 수박이 맛이 이상합니다.
옹? 이게 뭔 맛이야... 풀냄새도 조금 나고... 설탕 찍어 먹어야 하나??
역시 제철에 먹는 맛이란 따로 있네요.^^
후르츠칵테일, 암바사, 우유를 첨가할까 봅니다. 꿀도 조금 넣고요.
후회가 들지라도 하나 사먹고 가자고 약속했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텐트 무게 때문에 피치못하게 선택하는 노박이라서요.
이슬이라도 피할 지붕이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고요.
이젠 플라이라도 가져가 A텐트라도 쳐야 할까 봅니다.
뱀이 항상 위험합니다. 담배라도 가져 다녀야할까요. 감사합니다.^^
저도 때론 집에서 멀리 산행지까지 왕복하기 귀찮아 연휴면 아들과 산에서 일박하고 산행을 잇고 싶을 때도 있는데 그 넘의 텐트며 매트리스며 엄두가 나지 않아 실행을 못하네요.
아들만 아니면 비닐로 바람만 막고도 어찌 버텨보겠는데...
젊을땐 비닐로 침낭을 붕대감듯 싸고 잠자가며 산행도 했었는데 이젠 엄두가 안나네요. 작은 냉기에도 몸이 얼어붙는 느낌이니 ㅠ
나이탓인지 의지(객기라는 표현이 맞을수도) 차이인지~
이슬하선배님!
조금이라도 더 안전하고 따뜻한 비박지를 찾아 눈을 희번덕거리게 됩니다.^^
그냥 졸며 걸으며 철야로 밀어붙이는 방법도 있지만,,
가급적 깊은 시간에는 두세 시간이라도 쉬어줄려다 보니 무게가 여의치가 않습니다.
풍찬노숙에 한겨울에 텐트 안에서 따뜻한 침낭에 들어앉아 꿀잠을 자는 행복이 항상 그립답니다.
거...누구 발인데...
성스러운 3각점에 꼭 디려 밉니까??
내가 갈때가 됐나? 왜 이러지...??
사진 보니 다시 함 가보고 싶네요.
조위원장님!
오늘은 어디 안 가셨어요?
가마봉에서 서울이 보였다면 믿으실 수 있나요.
그런데 사명산은 맞나모르겠어요.
홍천고개에서 매봉으로 올라서면 그때부턴 도솔지맥이 제대로 윤곽을 드러낼것 같은데요.
1구간에선 소양강이 어디 숨었는지 도지히 찾을 수 없었습니다.
위원장님 띠지 사진 찍은게 어디 있을거 같은데요.
몇년도에 다녀오셨죠?
예전엔 소뿔산-작은가마봉 구간이 등산로가 거의 없었다면서요.
오늘 껌딱지가 건강검진 받으러 갔고, 홀로 집 지키고 있어요.
가마봉에서 서울을 보셨다면.. 쌍안경 끼고..??
영춘기맥 2007년 7월에 갔었네요.
기억이 가물가물 해요. 등산로가 어땠는지 사진을 박아놓지 않아 모르겠구요.
맨눈에 보였다니깐요~^^
춘천지맥을 출발하셨네요.
첫날은 청량봉 다녀오시고 이후 이틀 간 백암봉과 소뿔산을 지나 마무리하셨군요.
오랜 추억을 되살리니 지난 순간들이 떠오르네요.
완연한 가을 정취가 드러납니다.
가을하늘 보며 심신도 맑아 졌으리라 생각되구요.~
거니고개 청정조각공원도 생각납니다.
연 사흘에 걸친 50km가 넘는 마루금 답사하시느라 수고많으셨습니다.
네, 방장님! 방장님 오래된 띠지도 가끔 보았습니다.
다음구간 능선을 바라보니 요철이 없어 크게 걱정되진 않더군요.
가리산 정상에 계단과 데크작업이 한창이라는데 바람을 피해서 잠깐 쉴만한 곳이 있나 모르겠습니다.
그 다음은 대룡산 데크전망대인데 가리산과 대룡산 사이 늘목고개나 가락재에 쉴만한 정자랄지 벤치가 보이지 않아요.
게다가 늘목고개를 지나서부터는 한국전쟁 벙커힐, 한계전투 지역이라 중공군들이 떼죽음을 당해 귀신이 많을것 같구요.
모랫재에는 밤늦게나 도착될것 같습니다. 태풍의 영향이 있을지도 걱정되네요.
날씨가 좋으니 추석 연휴까지 춘천을 마무리할까 봅니다. 감사합니다.^^
춘천지맥 멀리도 가셨네요 군작전지역 밤새내내 통과했던 추억이 소환됩니다 거니고개 조각공원 설악산 다닐때 많이 차박했던 곳이네요 조각공원에서 저도 첫손님으로 막걸리와 아침을 먹었습니다 ㅎㅎ 항상 응원합니다 화이팅입니다 ~~~~
세르파대장님!
저는 황병고개에 군부대가 딱 버티고 있는 줄 알았습니다.
일대에 군인들이 파놓은 참호만 즐비하고...
윗괘석고개 안부에서 비에 맞은 디지털무늬 군용 배낭을 하나 얻어 왔습니다.
아무리 바빠도 그렇지 2017년도 생산이던데 보급품 배낭을 놓고갔지 뭡니까...
아직 쓸만하여 그 무거운 와중에 하나 습득하였습니다. ㅋㅋㅋ 항상 감사합니다.^^
거니고개에서 대추나무 숟가락도 두개 사고,
맛동산과 음료를 구입하여 버스정류소에 앉아 맛나게 먹었는데요.
아마 그 버스정류소 부근에 다음 구간 들머리가 있는 모양이에요. 나무계단 이라던데....
춘천지맥 마음은 가락재 몸은 거니고개에서 멈추셨네요.
우리는 가마봉을 못넘엇습니다.
그날이 일요일인데 군훈련을하고 있었습니다.
사정한다고 될일도 아니고 광암리 마을로 내려가는데 한5km는 되는거 같았습니다.
나중에 거니고개에서 홍천고개까지하고 44번국도까지 6km를 걸어서 내려오고 다음날 가마봉까지 왕복을할려고 했는데 이찌나 덥고 힘들던지 쇠뿔봉까지 갔다가 돌아내려왔네요.
춘천지맥 한구간 고생하셨습니다.
부뜰이운영자님!
얼른 가서 산행기 보고 오는 길입니다.^^
부뜰운영자님 산행기가 아주 자세한데 빠뜨려 먹었네요.
3년 전에 다녀오셨구요. 이때만 해도 산악회 따라서 다니실 때였군요.
소뿔산에서 가마봉 구간이 거리는 짧아도 엄청시리 높은 봉우리가 첩첩입니다.
제 생각엔 거니고개에서 가마봉까지 왕복하기보다는
그 아래 전번에 회군하신 가마봉직전 임도로 내려가 광암리로 걸어나오시는게 나을뻔 했어요.
아님 항병고개까지 백해서 김부리로 내려서셔도 좋았겠고요.
군인들이 파놓은 참호와 버리고간 쓰레기가 엄청난 구간입니다.
국방부에서 일대를 모두 수용하여 과학화훈련단이란 군부대를 만들었는데요. 40만평이 넘나 봅니다.
소양강 일대에서 도하훈련도 가능하고, 미래 가상전쟁에 대비해 훈련하는 곳이라는데...
이제까지 분대전투는 각개전투로 돌격 앞으로! 했는데요.
앞으로는 분대에 드론병사가 드론을 띄워놓고 생중계로 공격을 하지 않을까요.
자동소총을 거치하고 안전한 장소에서 오락게임 하듯 카메라로 전방을 보고 사격을 할것 같습니다.
그나마 춘천지맥 출입을 금지시키지 않는게 여간 다행이 아니었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