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요17:6~14).
6절.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그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이란 아버지께서 그들을 세상의 죄와 사탄의 지배 아래에서 구원하시려고 그들을 세상에서 구별하여 주님에게 맡기셨음을 말한다(요6:37), "세상"이란 말이 본서에 56회 나타나며 그중에서17번이 본장에 나타난다.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는 예슈아 주께서는 언제든지 모든 영광을 아버지께 돌리셨다(마6:13). 뿐만 아니라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6)고 제자들을 가르치셨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 이었다”는 말은 모든 만물의 주인이신분이 아버지이신 것을 말하며(시50:10~12) 예슈아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세상에서 구별하여 예슈아 주님께 맡겨진 자들을 말한다. “그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라는 말은 그들이 율법들을 잘 지켰다는 의미가 아니다. 또한 예슈아 주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을 지킬 것을 명령하시기는(요14:15, 21, 요15:10) 했지만 아직까지 제자들이 말씀을 지킨 정황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렇다면 예슈아 주님의 말씀은 무엇인가? 예슈아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영접했다는 것은(요6:30) 곧 아버지의 말씀을 지킨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시다.
7절. 지금 그들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이 다 아버지로부터 온 것인 줄 알았나이다.
주님은 자신은 스스로 말하거나 행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하신다고 제자들에게 설명하셨는데(요8:28) 그들은 이 말은 믿고 주님이 하시는 말씀과 행하심은 다 아버지께로부터 왔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하셨다.
8절.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며 그들은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
내게 주신 말씀들은 예슈아 주께서 하신 모든 말씀들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가깝게는 요16장의 말씀을 말하고 있다. 제자들은 예슈아 주님의 말씀을 통해서 예슈아께서 아버지께로서 오신 것인 줄을 알았고 또 믿었다.
9절. 내가 그들을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주님은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셨다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라고 하심은 세상을 위하여 구하시지 않겠다는 뜻이 아니다, 주님은 십자가위에서 저들을 위하여“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다”(눅23:34)고 대제사장으로서 기도하셨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이제 다가올 환난을 생각하며 제자들을 위해서 먼저 간구하고 계심을 말한다. 세상도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며(요3:16) 세상도 알고 믿게 될 것을 위해서도 기도하신다(21, 23절).
10절.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 이온데 내가 그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
주님은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라고 하셨는데 이 말은 아버지와 아들의 완전한 연합과 동등 되심을 말씀하신 것이다. 이 말씀은 주님만이 하실 수 있는 말씀이다.
우리는 내 것은 다 주님의 것입니다. 할 수 있지만 아버지 것이 다 내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내가 그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 아버지와 그리고 제자들을 통해서 영광을 아들이 영광을 받으셨다.
11절.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주님은 마치 하늘에 계신 것처럼 말씀하셨다.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주님은 다시 하늘로 가실 것을 말씀하셨다. 그리고 세상에 있는 제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셨다.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내게 주신 자들을)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존하사 우리와 같이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라는 기도는 그리스도인들의 연합의 특성을 말한다. 도덕적으로 영적으로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인 것처럼 제자들도 거룩하신 주님처럼 하나가 되기를 바라신다. 이제 주님께서는 떠나실 것이며 세상에는 제자들만 존재하게 된다. 즉 아직까지 보내실 보혜사 성령도 없기 때문에 잠시 동안이지만 제자들은 홀로 남아있게 되는 신세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예수께서는 자신이 아버지의 주권에 보호를 받은 것처럼 제자들 또한 하나가 되어 아버지의 보존하심으로 보호 받을 것을 간구 하신 것이다.
12절. 내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고 지키었나이다 그 중의 하나도 멸망하지 않고 다만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
주님은 그들과 함께 계실 때에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존하고 지키셨다. 그 중에 하나도 멸망치 않고 오직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멸망의 자식 가룟유다를 제외한 다른 제자들은 모두 지키셨다. 가룟유다의 경우는 시41:9의 말씀이 응한 것이기에 구약의 성취라는 의미에서 이미 예정되었던 것이다.
“멸망”은 헬라어로“아폴뤼미apollumi”를 말하는데“~으로부터. ~으로부터 멀리”을 뜻하는“아포apo”와 “파괴하다의 뜻을 가진 파멸, 멸망, 사망”을 뜻하는“올레드로스olethros”어간에서 유래한 것으로“파괴시키다, 파괴하다, 멸망하다”을 뜻한다. 이 단어에서 사탄의 한 이름인“아불루온”이 나왔다(계9:11) 그것
은“파괴, 내지 파멸을 뜻한다.(요3:16, 롬2:12, 고전8:11).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멸망의 자식"을 말할 때 사용되었는데(살후2:3) 가룟 유다의 경우 하나님의 예언에 의해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 책임이 하나님께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가룟유다의 경우 그 운명이 멸망에 무조건 처하게 되어있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의 인격 자체가 멸망에 이를 수밖에 없도록 타락되어 있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베드로의 경우는 예슈아 주님을 세 번 부인하고 예슈아 주님의 하신 말씀을 기억하고 회개하고 새롭게 예슈아 주님을 따라갔는가 하면 가룟유다의
경우는 자신의 양심의 가책 때문에 자살한 것에서 차이를 알 수 있다.
13절. 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내가 세상에서 이 말을 하옵는 것은 그들로 내 기쁨을 그들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
“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주님은 왜 제자들을 위하여 기도 하시는가를 말씀하시고 계시는데 이는 주님께서 그들을 떠나 하늘에 가셔도 그들을 위하여 쉬지 않고 중보의 기도를 드리므로 그들로 내 기쁨을 그들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함이셨다.
14절.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으로 인함이니이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아버지의 말씀을 주었기 때문에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는데 이것은 주님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므로 미움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베드로는“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데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마19:27)라고 한 말과 같다. 부자 청년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를 것을 권유받았지만 떠나갔다(마19:22). 제자들은 요일2:16에서 말하는 “세상의 정욕과 안목 이생의 자랑”을 다 버리고 주님을 따른 것이다. 즉 제자들이 세상에서 미움을 받는 것은 그들은 주님의 말씀을 듣고 세상의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