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작품론(조지훈,박목월,청록파)

[하늘보기]

Ⅰ. 조지훈 작가분석.

1. 조지훈 개인생애 (1920. 12. 3~1968. 5. 17)

  

조지훈은 1920년 12월 3일 경북 영양군 일월면 주곡 동에서 부친 조헌영(제2대 국회의원, 6.25때 납북)씨와 모친 류노미 사이의 3남 1녀 중 2남으로 태어났다.

(한편, 조지훈 자신의 글 (약력과 느낌 두 셋)에서 '본명은 조동탁 나이는 갓 스물 신유 1월 11일부터 경북 영양군 주곡리가 나의 고향이 되었습니다'라고 한 것으로 1921년 1월 11일이 조지훈의 정확한 출 생년월일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조지훈의 가문은 한양 조씨의 시조 조지수로부터 13대인 호은공 조전 때부터 그 이후 8대에 걸쳐 진사가 났고 향유로써 문벌이 융성하였다. 특히 조선 조 선조 때 조전의 호인 호은을 따서 세운 호은정이 그 지방의 유학을 상징하는 정신적 학문적 산실이 되었다는 사실만 보아도 대단한 유학적 가문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가문의 영향은 민족정신으로 이어진다. 지훈의 증조부인 조승기는 사림으로 세인의 존경을 받았고, 구 조선말 의병대장으로 독립운동을 하기도 했다. 또한 조지훈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조부 조인석은 조선조 말에 사헌부 대감을 지낸 학문과 지조가 높은 성균관 유생이다. 따라서 검소와 절약을 강조하는 청렴한 선비였으며 아들들에게도 검소하고 올곧은 생활을 강조해 왔다. 그러한 조인석은 그의 부친 조승기가 한일합방소식에 자결한 것처럼 6.25한국 전쟁 때 마을이 공산군에 의해 점령당하자 자결한다.

  조지훈의 아버지는 일본 와세다 대학을 졸업한 엘리트로서 조선유학생 학우회장을 맡아 일할 정도로 민족정신이 투철했으며 독립운동을 하다가 옥고를 치르기도 하고 한의학을 공부하여 가난한 타지방에서 찾아오는 환자들을 무료로 진료해 주기도 했다고 한다.

이상과 같은 조지훈의 가문과 혈통은 조지훈의 사상적 바탕을 이루는데도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유교적 휴머니즘과 투철한 민족정신, 절제와 강인한 지조 등은 초기습작시기를 제외하고 그의 시 전반에 걸쳐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조지훈은 어린 시절 조부 조인석 으로부터 개인적으로 서당교육을 받았지만 조지훈의 능력을 보게 된 조부는 그에게 전통과 문벌 계승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조지훈은 9세의 어린나이에 동요를 짓기 시작하는데 그 어린 나이에 당시 주류였던 프로문학의 영향을 받을 만큼 문장가적 기질과 문학에 대한 열정이 있었다. 그 와중에 지훈은 시조시인인 고모 조애영과 형 세림의 영향을 받는다.

(1. 우리 지훈이는 5.6세 때에 이미 천자문을 다 읽었고 15.6세때 대학을 읽을 정도로 총명했습니다. 특히 지훈이는 영남의 '내방가사'를 열심히 외고, 써놓고 또 알려고 노력했습니다. 그가 죽기 전까지도 우리 조씨 문중의 '내방가사'와 '영남내방가사'를 수집했습니다. 그러니까 지훈이가 시인이 된 동기도 역시 이런 시적 감흥의 영향인 것 같습니다)

(2. 당신의 소년 회를 창설하였고, 우리에게 문학의 싹을 길러 준 사람은 나보다 세 살 위의 조숙한 소년, 맏형 세림이었다.)

1936년 16세 때 상경하여 동향의 선배 시인 오일도에게 머물면서 어릴 때 세림의 감상적인 시의 영향으로 습작을 해 나간다. 그는 조선어학회에 출입하면서 민족문화에 관한 학술서적을 잃겄다. 또 1937년 거물급 독립투사로서 옥사한 일송 김동삼선생의 장례식에 참석한 자리인 심우장에서 만해 한용운을 만나게 되며, 그의 "춘일"은 이 때 쓰여졌다고 한다.

이 때 시문학파의 영향과 서양의 탐미주의, 상징주의, 모더니즘 등에 경도되기 시작하면서 서양의 키츠, 에이츠, 발레리, 릴케, 핫세를 좋아하면서도 동양의 도연명, 이백, 두보, 소동파 등의 작품을 탐독하는 등 독특한 시작활동을 하게 된다. 그 외 그리스 신화와 유, 불, 노장사상을 함께 접하며 문학적 감수성을 키워나가게 된다.

  조선어학회 일을 보면서 본격적인 사회활동과 우리말과 글에 대한 애정으로 여러 문인들의 작품을 통해 본격적인 시의 세계를 만들어 가게 되는 그는, 특히 근 현대 민족운동과 불교문학의 대두라 할 수 있는 만해와의 만남을 통해 어려서부터 다져온 민족의식에 바탕한 항일의 방법으로 우리 전통에 바탕한 글쓰기를 계속 한다. 이 무렵 지훈운 1939년 독학으로 검정고시에 합격하여 혜화 전문학교에 입학하게 되는데, 이 사건은 조지훈의 시 정신을 공고하게 확립 시키는 획기적인 전환점이 된다. 그 중 그의 시 정신과 새로운 사상과의 만남인 것이다. 그는 재학 시 정지용의 추천으로 <문장>지에 비로소 1939년 4월 "고풍의상"을 시작으로 "승무(1939. 12)", "봉황수(1940.2)등의 작품으로 문단에 등단하게 된다.

지훈은 작품들에서 말살되어 가는 우리의 정신문화를 감성적인 언어로 되살리고 있다. 지훈은 또, 잠시 쉬는 동안 동탁이란 본명으로 동인지 <백지>를 발간했다. 갓 스물의 나이로 문단에 혜성처럼 나타났지만, 동양의 전통 사상에 깊은 천착 끝에 나온 오랜 준비의 겨정인 것이다.

  1941년 조지훈은 혜화 전문학교를 졸업한 후 불교강원 외전 강사로 부임하게 된다. 이는 지훈이 일부러 선택한 일이었다. 여기서 지훈은 많은 독서와 사고, 그리고 스님들과의 선문선답식의 문학적 정신을 확대 심화 시켜 나갈 수 있게 된다. 이처럼 서구적 탐미주의든, 민족적 전통 지향이든 모두 자연으로의 지향을 꾀하게 된다.

1942년 지훈은 월정사 생활을 청산하고 부친을 따라 쇠약한 몸으로 상경하게 되는데, 이때부터 심한 방황과 갈등 고뇌의 시작이다. "기다림", "도라지 꽃", "바램의 노래"등이 이 시기에 쓰인 작품들이다.

1941년 탄압이 극심했던 때 잠깐 투옥된 적도 있었으나 1943년 이후 당시 조선어학회, 중등 국어 교본 편찬회 등 문화단체를 돕기도 했다.

  <청록집>을 발간하게 된 것은 1946년 6월의 일이었다. 1948년 그가 20년 7개월동안 봉직한 고려대 문과대 교수로 부임하면서 지훈은 시인으로서의 생애와 더불어 학자, 수상가로서의 면모를 갖춘 성숙한 생활을 하게 된다. 이 청록파 시인들은 해방 후 시단을 이끌어가는 주역이 되는데, 일본의 패적으로 복원된 한국문학, 특히 시문학은 아사 직전에 기적적으로 회생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지훈의 시세계도 식민지라는 숨막히는 시대 상황에서 소용돌이치는 역사 현실로 직접 뛰어들고 있다.

이후, 지훈은 전국 문화단체 총연합회 창립위원(1947), 한국 문필가협회 창립위원(1949), 문총 구국대 기회위원장(1950)을 지냈고, 6.25때 문총 구국대를 창설하고 평양까지 종군 하였으며, 1952년 동란 중에도 그는 최고의 자선 개인 시집은 <풀잎단장>을 간행하는 저력을 보인다.

뿐만 아니라, 이때까지 불모성을 면하지 못하던 우리 시단에 '생명'과 '상즉'의 시론으로 용약되는 <시의 원리>(1953)를 피난지 대구에서 출판함으로써 그의 탁월한 학문적 식견을 인정받게 된다.

오직 문학만을 지키고 문학으로서만 살고자 하여 <한국시인협회>의 산파역을 맡았다. 특히 이 무렵에 쓴 <지조론>은 4.19의 암운이 감돌던 자유당 말기 부정과 부패가 만연하여 온통 사회가 걷잡을 수 없는 탁류 속으로 휩쓸려 들어가고 있을 때, 곡학아세를 싫어하고 민족의 진운에 정곡을 찌른 쾌거였다.

지훈의 지조는 매천 황현의 강직한 성미와 유교적인 선비로서의 사명감과 만해 한용운의 용기와 투쟁과 불교 승려로서의 초탈은 인생관에 깊은 영향을 받으면서 지조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그의 지조 있는 인생관은 실천적이고 현실 참여적인 면으로 나타난다. 4.19를 즈음 한 시기에는 시보다는 강력하고 직접적인 논설이 많이 쓰인진 것도 그의 현실 참여적인 모습으로 설명할 수 있다.

  1963 고려대 부설 민족문화연구소 초대소장으로 취임한 이 후, 그는 뛰어난 지도력과 조직력을 발휘하여 시인으로보다는 학자적 입장에서 정열을 보여준 절정기라고 볼 수 있다. 민족문화의 발굴 정리라는 목표 위에 신문학 외에도 국어, 국문학, 민속학, 종교학, 인류학, 무속의 세계에까지 그는 학문과 사상의 영역을 넓혀간다.

그의 주요사업으로는 <민족문화사대계>를 기획 편찬하였으며, 그 1집에 "한국 민족 운동사"라는 논문을 집필하였다. 그의 이러한 학문적 절정은 <한국문화사 서설>(1964. 탐구당)에 실린 19편의 해박한 글로 집약된다.

그 후에도 그는 병석의 몸으로도 한국 시인 협회장을 역임했고, 한국 신시 60년 기념사업을 준비하는 등 바쁜 일정을 보내다가 1968년 5월 17일 새벽, 기관지 확장증으로 영면, 경기도 양주군 마석리 송라산에 묻혔다. 1972년 남산에 그의 시비가 세워지고 1983년에는 그의 고향 영양에도 그를 추모하는 시비가 건립되었다.

2 조지훈 시 사상의 일반적 특색

가. 고전과 자연의 만남

  조지훈은 1941년 3월에 혜화 전문 불교과를 졸업하고 5월에 오대산 월정사에 있는 불교강원의 외전 강사로 부임하게 된다. 이 때의 큰스님으로 존경 받던 방한암 스님의 가르침을 받아 수행을 하며 지낸다. 월정사 선방에서의 생활은 그의 시관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특히 이곳에서 불경을 포함한 여러 고전과 철학 사상서 등을 탐독하고 중국 당나라와 송나라 명가들의 한시를 읽었다. 여기서 말하는 고전은 어느 한 면에 국한된 고전이 아니라 '옛 것'에 대한 탐독이었음을 알 수 있다. 22세 때인 1942년 3월에는 조선어학회의 <큰 사전>편찬위원으로 학문연구를 시작하였다. 논문 "산유화와 서리탄"도 이 때의 수확이다. 그 해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심문을 받았고 경주에서 박목월과 처음 만났다. 조지훈 에게 있어 1940년대 초기는 가장 참혹한 암흑기였으나, 민족문화에 대한 관심으로 그 시기를 헤쳐 나왔다. 그 시기는 내일을 상실하고 오늘을 절망할 때로, 특히 시인들은 노래를 잃고 언어를 잃고 사상을 잃던 시기였다.

  일제가 우리 문화 말살운동을 전개하던 시기, 그렇기 때문에 조지훈은 말살되고 있는 우리 문화의 보물을 정신으로 부각시키는 일에 매진한다. 그것도 체득이 되어 절로 노래가 되어 나오는 것이다. '이는 민족문화에 대한 나의 애착, 그 중에서도 민속학에 대한 나의 관심이 감성 안에서 절로 나온 것이다'고 조지훈은 고백하고 있다.

그의 학자적 생애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그의 학문적 대상 영역은 민족문화 전반에 걸쳐 있었다. 이 같은 민족문화에 대한 학문적 관심은 항상 그가 처하고 있던 시대적 상황과의 관련에서 촉발되어지고, 또 그 학문적인 관심의 밑바탕에는 조국애와 주체적 민족주의 의식이 정신적 기조를 이루고 있었다.

  1945년 민족의 해방과 더불어 지훈의 인생과 시는 하나의 격변기를 맞게 된다. 망국의 한을 안고 산사로, 향리로 방랑하던 지훈은 사회로 뛰어들어 교단과 문화단체의 일들을 정력적으로 보기 시작한다. [한글]지 속간호 편집에 가담했고, 국어-국사교과서 편찬원으로 일을 했다. 또한 조선문화건설협의회 의원, 명륜 전문학교 강사, 경기여고 교사, 전국문필가 협회 중앙위원, 청년문학가협회 고전문학부장, 서울 여의전 교수를 지냈다.

조지훈의 시에 나타난 '고전'의 의미는 책의 의미만으로 한정되지는 않는다, '옛 것'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과 애정이 그대로 시작품속에서 배어 나오는 것이다. "고풍의상" 에서 보는 바와 같이 고풍의상을 소재로 한 한시인의 감흥과 상상의 세계가 몇 구비의 의미를 생성시켜 가면서 영상의 율동을 우리에게 아름답게 체험하게 하고 있다고 하겠다.

  일제의 문화말살 정책이 강행되던 그 시기에 조지훈은 냉철한 역사의식을 갖고 한국 민족의 정신으로서 고전의 세계를 풍요롭게 시화한 것이다. 하지만 그의 시 세계에서 주체적인 미학의 관점에서 나온 작품을 제외하고는 방법적인 면에서 새로움을 추구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고전이 갖는 정형성을 그대로 수용한 것이 아니라 일제하라는 시대적인 상황에서 고전이 갖는 보편성을 수용한 것이라고 본다.

  조지훈 시의 또 다른 특색인 자연적인 면을 살펴보자. 초기 조지훈의 시는 그 어느 것이든지 자연적인 소재와 내용을 담고 있지 않는 것이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월정사에서 외전 강사로 있던 1942년에 한글로 된 모든 신문과 잡지가 폐간 되었다는 비보를 듣고 현실적인 관심을 버리고 자연 깊숙이 파묻혀 순수한 서정을 노래하던 시기의 작품이 주로 자연적인 서정의 이미지를 많이 담고 있다.

이 시기의 시는 추천 받을 당시의 시가 갖고 있는 고전적이고 민속적인 시와는 시 정신이나 기법에 있어서 매우 다른 양상을 보여 주고 있는데, 이 시기의 시에 대해 지훈 자신이 '주로 소품의 서경시, 선미와 관조에 뜻을 두어 슬프지 않은 몇 편이라고 말하고 있듯이 주로 현실적인 관심을 떠난 자연 친화적인 경향을 띠고 있다.

조지훈 시에 있어서 자연적이라는 말의 의미는 이처럼 자연의 모습에 직접 개입하는 형태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나 현상의 흐름을 있는 그대로 읽으면서 본인의 의식의 흐름을 시 이면에 감춰두고 있는 것이다.

나. 자아실현의 길

  문학을 통한 자아실현은 우선은 작품을 통해서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작품이 아무리 훌륭하다고 해도 작자의 삶이 자아실현과 거리가 있다면 그 작품이 영원히 훌륭한 작품으로 남기는 어렵다.

4.19의 격정을 보내고 1968년 작고하기 까지 쓰여진 시편에는 고독과 체념적 허무의식이 짙게 깔린 시들이 발표되었는데 이러한 시들은 다시 본래의 자기로 돌아와 그의 내면의식을 정리하고자 한 또 다른 형태의 자아실현의 길이었다고 본다.

시는 개인의 감정, 즉 구체적이고 주관적인 정서만을 내용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사상, 또는 이념과 같은 요소들이 시의 내용에 담겨 주제를 형성할 수도 있다. 정서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개인적이다. 갑이 느끼는 슬픔과 을이 느끼는 슬픔은 결코 같을 수 없다. 정서는 또한 비의도적인 것이다. 누구라도 '내 저 놈을 기필코 미워해야겠다'고 다짐한 후에 누구를 미워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상황에서 그가 미운 짓을 하면 저도 모르게 그가 미워지는 것이다.

반면, 사상은 혼자만이 간직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특정 집단의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것이다. 즉, 개인적인 생각이 아니라 집단적인 생각이다.사상은 또한 목적성이 강하다. 사람들은 항상 그런 생각들을 의식하고 있고, 의도적으로 간직하려고 노력하기도 한다.

조지훈의 자아실현에 대한 정서와 사상을 극명하게 살펴볼 수 있는 작품이 그의 수필 <돌의 미학>이다. 이 글은 작자의 격조 있는 정신세계를 본인이 경험한 세 가지 돌의 모습을 이야기한다.

첫째가 선을 하면서 바라보단 돌로 인공적이지만, 우아 정적하던 돌과 오대산 월정사에서 내다보던 커다란 바위 돌이다. 지훈은 이 돌을 통해 부동의 정신세계를 추구하는 선의 정신을 표명한 것으로 그것은 곧 예지의 돌이고 지혜의 돌이었던 것이다.

두 번째 석굴암의 피가 도는 생명 있는 돌을 체험한다. 성지순례와 같은 심경으로 경주에 가서 석굴암 불상에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체험을 한다. 선사의 돌이 자연의 돌이라면 경주의 돌은 예술의 돌이다. 인공이 오히려 자연을 확장했다는 감동을 거기서 받는다.

세 번째 가뭄에 타는 언덕 위에서 만나는 큰 바위이다. 소란한 정치파동과 가뭄으로 세상이 피폐할 때도 처음 놓여진 그 자리 그대로 에서 굳건하게 앉아있는 사나운 의지의 돌을 거기서 본다. 지훈은 이를 혁명의 돌이라 부른다.

이처럼 지훈은 돌을 통하여 바라보는 사상적인 흐름이 어느 한곳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돌이 갖는 속성처럼 스스로의 인격도 자연과 인공의 조화, 지혜와 예지의 세게, 결단과 혁명의 부동함을 돌을 통해 보고 배우는 것이다.

즉, 자신의 인생과 사상을 돌 속에 수렴시킨 이 글에서 그의 불교적 분위기와 서정성이 함께 있으며 정적과 여백의 동양정신이 저절로 흐르고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다. 불교사상의 수용

  지훈과 불교와의 관련은 전기적 고찰에서 나타난 바에 의하면 지훈이 불교 학교인 혜화전문 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시작되었으며 졸업 후 1941년 4월 월정사에 들어가면서부터 본격적인 불교 공부와 참선의 수행생활을 한 것으로 되어있다. 지훈 스스로가 시 작품 속에서 불교적 세계를 추구했다고 밝히는 것은 월정사 시기에 한한다.

그러나 추천기 작품인 "승무"를 비롯하여 만년기의 "범종"등 월정사 이외 시기의 시에서도 불교적 성격을 찾아 볼 수 있는 것으로 보아서 지훈의 불교적 관심은 어느 한 시기에 국한되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것으로 볼 수 있다.여러 일화로 볼 때 지훈의 불교의 선에 대한 관심은 월정사에 들어가기 전에 벌써 시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또한 불교 학교인 혜화 전문 학교를 나왔다고는 하나 스물 두 살의 나이로 불교 전문강원의 외전 강사가 되어 학승들을 가르칠 수 있었다는 사실을 보더라도 이미 불교에 대한 적지않은 소양을 쌓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월정사에서 지훈은 승려들과는 달리 비속 비승의 자유분방한 생활에서 자연의 관조의 세계에 몰입할 수 있었고 자기침잠의 공부를 통해 시선 일여의 입장을 취하게 된다. 이러한 지훈의 선에 대한 정의는 시나 선이 만유의 생명을 표현하는 것이요 또는 그 생명에 되도록 가까이 접근하는 것이라 할 때, 그 표현이나 접근의 방법 내지는 도구로 쓰여진 것이 선어로서의 화두요, 시라는 것이다. 지훈의 이러한 불교의 선에 대한 관심은 어디까지나 시인으로서 자신의 시적 추구를 위해 언어 형태적인 면에서나 내용 면에 있어서 선의 언어 표현방법과 사상을 수용한 것으로 이해된다.

이런 의미에서 선과 시의 일치성 즉, 시선일여를 주장하게 된 것이다.이 시기에 대한 지훈의 여러 수상록을 보면 불교 경전에 대한 지식은 물론 도에 대한 이해도 높아서 스님들과 선문답과 고담 준론을 나누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돌의 미학", "방우산장기", "반야사상에 대하여", "대도부문", "역일선다메서창집" , "시선일여"등의 글에서 나타나는 지훈의 불교에 대한 이해와 안목은 상당하여 경전 이해와 선에 대한 지식을 고루 갖추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것은 월정사 시절의 회고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지훈이 수용한 불교의 선이 그의 다양한 시적 추구의 한 방편이라 하더라도 그의 시 정신에 있어서 간헐적이나마 만년기까지 지속되었고 그의 시 세계로 끌어 들임으로서 시의 내용 면에서나 형식적인 면에서 큰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을 볼 때 지훈의 불교 수용의 의의는 크다고 본다.

지훈은 그의 시문학 일반에 관한 생각을 <시의 원리>에서 체계화 시켜놓았다. <시의 원리>는 그의 시론이며 그의 시 작품 세계의 이론적 배경이 되기 때문에 그의 시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시론을 살피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이러한 노력은 지훈의 시 세계를 파악하는데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훈은 시의 근본원리로서의 '단순화,비범화, 전체화는 시의 형식적, 내용적 상징성의 지향으로서 이 세가지를 아울러서 표현한 것이 선의 방법이요, 선의 미학이다’라고 밝힘 으로써 지훈이 추구한 시론이 불교의 선사상과 관련이 깊음을 알 수 있다.

  지훈은 이러한 시관을 바탕으로 불교적 사상이나 발상, 불교와 관련된 것들을 시적 소재로 다루기도 하지만 언어의 형태적인 면에서도 많은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다. 지훈은 시의 표용에 관해서 예술의 정화작용을 종교적 해탈과 관련 지어 영구적이냐 일시적이냐의 차이일 뿐 근원적으로 같은 것으로 보고 있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지훈의 시관은 내용 면에 형식면에서 그리고 표현기교 면에서 불교의 선의 방법과 매우 밀접함을 알 수 있다. 지훈은 분명 승려가 아니라 시인으로서 불교와 선에 접근했으므로 그의 시를 곧 불교시, 선시로 규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지훈은 어디까지나 시인이었으며 그의 시적심화를 위해서 불교적 발상이나 선시의 방법을 원용한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훈은 그의 시에서 불교적 선사상을 융화 시키면서 커다란 시적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또한 지훈의 시 세계에서 뛰어난 부분으로 인정받고 있는 데서 그의 불교 수용의 의미는 충분하다고 본다.

Ⅰ. <고사 (古寺)>작품분석.

<고사(古寺)>

木漁(목어)를 두드리다

졸음에 겨워

고오운 상좌아이도

잠이 들었다.

부처님은 말이 없이

웃으시는데

西域 萬里ㅅ길

(서역 만릿길)

눈부신 노을 아래

모란이 진다

[청록집 (1946)]

이 시는 오래된 절의 풍격이 은은하면서도 깊이 있게 그려져 있어 심오한 선의 세계에 빠져드는 듯 한 감동을 주고 있다.

시인의 주관적 정서의 표출이 배재된 채 서술과 묘사 위주로 이미지와 분위기를 형상화하고 있어서, 시어나 시구 의미에 대한 이해보다 전체적인 인상과 느낌으로 감상해야 한다.

핵심적으로 정리해 보면 성격은 관조적, 회화적, 선적이라 할 수 있고 운율은 3음보이며 표현 비유가 없는 서술과 묘사를 이용해 정밀미를 나타낸다. 그 구성을 기승전결의 구성으로 나누어보면 다음과 같다

1. 기 : 상좌 아이도 잠들음(1,2연)

2. 승 : 선적 깨달음 (3연)

3. 전 : 극락정토의 세계 (4연)

4. 결 : 석양 속에 모란이 짐 (5연)

이러한 구분은 은은한 고사의 풍경이며 주제는 정적 속에서 피어나는 법열과 숙명적인 삶으로 파악해 볼 수 있다. 시에 대한 이해는 때로 시어나 시구의 의미보다 전체적인 분위기, 인상, 느낌으로 파악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이 작품은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오래된 절의 해질 무렵 풍경을 절제된 언어, 민요적 리듬으로 여백이 많은 한 폭의 동양화를 보듯이 그려져 있다.

시인은 '고사'의 은은한 정경을 관조하면서 '상좌아이', '부처님', '눈부신 노을', '지는 모란'등의 대상을 아무런 주관적 정서의 개입 없이 그저 그림 그리듯 묘사하고 있다. 시의 소재들을 바탕으로 시를 이해한다면, 그 대상들이 심오한 선의 세계에 젖어 드는 모습이라 할 수 있다.

'고운 상좌 아이'도 '부처님'도 일체 중생의 상징일 수 있는 '모란'도 모두 '눈부신 노을'과 같은 환희, 희열감에 젖어 정토의 세계인 '서역 만리 길'로 귀의하고 있다.

  고색창연한 절의 은은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고민과 갈등에 싸인 현실로부터 벗이나 아늑하고 평안한 느낌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시에 대한 감상은 충분하다고 하겠다. 또한 이 시는 시인의 주관적 감정을 완전히 배제한 채 묘사와 서술로만 일관하고 있는 작품으로, 각각의 시어나 시구의 의미보다는 전체적인 느낌이나 인상으로 감상해야 한다.

그러나 시인이 사용한 여러 소재들, 즉 '잠든 상좌 아이', '말없이 웃으시는 부처님', '눈부신 노을', '지는 모란'등이 갖는 이미지들이 하나로 통합되어 마침내 '서역 만리ㅅ 길'로 귀의함으로써 , 그가 그린 이 그림은 심오한 선의 세계로 젖어들고 있다.

이 시에 대해 작가 스스로가 다음과 같이 해설을 덧붙이고 있다.

시간과 공간, 대상과 주제, 논리와 감정이 모조리 비약했다. 여기 남은 것은 여기서 체득되는 것은 무엇인가.

(중략)

이 시 <고사>는 선사상에서 피어난 것이거니와 이미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시는 생명의 본질을 파악하는 것이요, 대상을 내적 생명에서 감수하는 것이므로 모두 하나의 범 생명 또는 범심론의 세계에 절로 통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본인의 이 같은 해설에 대해 '범속한 눈에도 그대로 비치는 단조로운 고사의 풍경을 스케치해놓고 선사상을 강요함은 지나치며, 단순한 불교적 색채가 곧 선사상인가. 그것은 본인의 해설일 뿐이다'라는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장문평은 '구미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선의 묘미, 선적 정적의 미가 담겨 위의 해설은 결코 터무니없는 것이 아니다'라고 반론하고 있다. 김동리도 '자연관조의 결과가 선적으로 착색될 때 특이한 상징이 나타났고 초 논리적 논리의 세계가 형성된 우수한 작품 세계'라고 평하고 있다.

위의 주장과 작가의 지론을 긍정하는 방향에서 생각을 정리해보면, 이 시는 깊은 산 속 단청이 낡은 옛 절에 봄도 무르익어 첫여름으로 들어설 무렵, 고요한 대낮에서 저녁 어스름으로 넘어갈 때였다. 법당에는 부처님이 자비 스런 미소를 머금을 뿐, 극락정토가 있다는 서녘으로 노을이 물들어 온다. 서역만리길이 노을 속에 열리고 눈앞에서는 모란이 진다. 선적 분위기와 한 송이 모란을 열반에 드는 중생, 윤회사상의 암시로 그 상상이 가능하리라.

이제 [고사]의 시관에 대한 지훈 시인 스스로의 말을 들어 본다

  깊은 산중 단청이 낡은 옛 절에 봄도 무르익어 첫 여름으로 들어설 무렵 무척 고요한 대낮에서 저녁 어스름으로 넘어갈 때였다. 목탁소리 마저 그치고 산속은 그만 적적하다. 법당에는 부처님이 자비스런 미소를 머금을 뿐 말이 없는데 극락정토가 있다는 서녘으로 놀이 물들어 온다. 서역 만리ㅅ길은 눈부신 놀 속에 열리고 눈앞에서는 모란이 뚝뚝 떨어진다.

그러므로 선의 길에는 아름다움의 번뇌도 있고, 비애의 예지도 있고, 아름다움의 감정도 있으며, 슬픈 정신적 비밀도 있고, 미적 자력도 있으며, 선관적인 시작품도 탄생시켰다.

이러한 불심의 심화로 얻어진 '고사'를 보면 한 걸음 두 걸음 선관의 깊은 경지로 다가가고 있음을 느낀다. 밝고 맑은 기쁨과 슬픔의 조화는 진심으로 대원력이 아니면 불가능학 표현이다. 비애의 비가 아니라 자비의 비다. 몸의 비가 아니라 영혼의 비요, 발원의 비요, 해탈의 비다.

"서역 만리ㅅ길 눈부신 노을 아래 모란이 진다"고 한 시구는 동양적 사상의 수련 없이는 표현불능의 묘를 가지고 있는 시미의 극치이다. 서역 만리의 그 안 마음에 바로 극락정토가 있다고 한다. 여기에 모란이 지는 미경은 심안으로 볼 수는 있어도 속안으로 볼 수는 없는 진관 일지도 모른다. 지훈은 벌써 범속한 속안을 벗어나 선관을 가졌기에 뛰어난 표현을 할 수 있었던 것일런지도 모른다.

※참고자료

- 조지훈의 시에 수용된 불교사상/김정님/원광대 교육대학원 석사/2002.8

- 조지훈 시 연구 /이정은/ 숙명여대 교육 대학원/석사/2003

Ⅱ. 박목월 작가분석.

1. 박목월 개인생애 (1916. 1. 6 ~1978. 3. 24)

박목월은 1916년 1월 6일 경상북도 월성군 서면 건천리의 모량이란 마을에서 박준필씨의 4남매중 맏이로 태어났다. 본명은 영종이며, 소국이라는 아호로 불리기도 하였다. 목월의 부친은 대구 농업학교를 나와 경주 수리조합 이사로 근무하고 있었고, 모친은 열렬한 기독교 신앙을 지니고 있었으며 그에 입각하여 지녀들을 교육시키고 보살폈다.

“ 내가 소년시절을 보낸 곳은 경주다. 지금처럼 개화된 경주는 물론 아니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신라의 고도로서의 폐허다운 애수를 짙게 간직하고 있었다. 40여전 년, 경주는 달빛이 하얗게 비치는 골목길이 어린이들의 놀이터요, 풀이 우거진 봉황대나 잔디가 아름다운 왕을이 어린이들의 생활 무대였다.” ¹⁾

이와같이 목월의 시에 지속적으로 작용했던 자연에 대한 탐구는 집근처에 위치한 신라의 고도 경주에서 어릴 때 자라면서 받은 영향으로 생각된다.

목월은 1933년 대구 계성중학교 2학년 재학시 17세의 나이로 동시 <통딱딱․통딱딱>이 《어린이》에, 〈제비맞이〉가 《신가정》에 각각 당선되었으며 1939년에 경주금융조합에 재직중 정지용의 추천으로 《문장》지의 9월호에 〈길처럼〉, 〈그것은 연륜이다〉가 1회 추선, 12월호에 〈산그늘〉이 2회 추천되었다. 그 후 1940년에 이르러 《문장》지 9월호에 〈가을어스름〉과 〈연륜〉이 3회 추천 완료됨으로써 문단에 정식 데뷔를 했다.

1941년에는 두 번이나 일본으로 공부하러 갔으나 문학은 홀로 공부하는 것이 올바르다는 믿음 끝에 귀국하고 말았다. 그는 귀국 후에도 암흑기로 평가되는 시대에 계속적으로 시를 창작한다. 해방이 되면서 목월의 시작 활동은 본격화되기 시작하였으며 1946년에는 조지훈․박두진과 함께 3인시집 〈靑鹿集〉을 간행했다. 이 무렵에는 동시의 창작에 더욱 힘을 기울였는 바, 1946년 〈박영종동시집〉과 〈초록별〉을 펴냈다. 목월은 1948년 8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던 해 서울로 이사하여 이화여고, 서울대 음대 강사를 역임했으며, 1953년에는 서라벌 예수대학, 홍익대학 등의 강사로 출강한 바도 있다.

6․25전쟁 후인 1955년 12월에는 척 개인시집 〈산도화〉를 간행하였고 1958년에는 수상집 〈토요일의 밤하늘〉등을 펴내기도 하였다. 1956년에 동생 영호의 죽음을 겪은 후 그의 시세계에 변모를 보이기 시작하는데, 1959년 시집 〈난․기타〉를 펴냈으며 수상집 〈여인의 서〉를 냈고 1962년에는 수필집 〈행복의 얼굴〉을 내기도 했다. 1968년 한국시인협회 회장에 선출되었으며, 이무렵 다시 3인 공동시집(조지훈, 박두진, 박목월) 〈청록집이후〉,〈청록집․기타〉를 펴내기도 하였다.

1973년에는 이때까지의 시와 산문을 총정리한 〈박목월 자선집〉10권을 묶어냈다. 또한 1978년에는 원효로 효동장로교회에서 장로안수를 받고 그해 3월 24일 새멱 산책길에서 돌아온 뒤 지병이던 고혈압으로 영면, 용인 모란공원에 안장되었다.

목월의 문단 추천 제자인 이승훈은,

“나이가 들수록 나에게 강한 인상으로 남아있는 것은 인생을 성실하게 살라는 당부이다. 물론 선생님께서는 그런 말씀을 구체적으로 하신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언제나 행동으로 보여주셨다.”  ²⁾

라고 회고하고 있다. 이는 말하자면 시의 기교나 방법보다 성실한 삶의 자세를 강조한 목월의 면모를 증언한 것이라 하겠다.

목월의 시세계는 초기가 자연과 향토적 서정의 중심으로 날카로운 감각을 보여준다. 초기 시에서는 담백한 언어의 함축과 섬세하고 치밀한 의미와의 융합을 꾀하고 있다. 그리고 중기 시에서는 사물을 보는 눈이 심화됨으로써 그의 시소재가 달라진다. 즉 일상생활과 자아의식의 세계로 주로 자신의 무력함과 생의 허무감에 대한 자기성찰을 보여주고 있다. 산문시의 시도와 삶과 인간에 대한 이미지의 추구가 그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후기 시는 주로 죽음과 신에 대한 세계로 나타난다. 그것은 전반부의 향리생활과 후반부의 도회생활 및 신앙생활이 바탕이 되고 있다.

여기에서의 그의 존재연구는 해탈이나 자기초월이 아니라 지극히 당연한 자연의 원리로 받아들여진다. 즉 일상경험에 바탕을 둔 것으로, 모든 존재는 망각된다는 평범한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동양적인 운명주의에 서 있으며 莊子의 不易의 법칙과 무관하지 않다. 목월에게 있어서 시는 하나의 어떤 행위이기 이전에 하나의 삶이었다. 또한 가장 고결하고 순결한 생명과 더불어 존재하는 영원한 것으로 인식하였다.

소월이 민요적 가락과 정조를 근대시에 살려 놓았다면, 목월은 민요적 가락과 정조를 변조하여 현대시에 살려 놓았으며, 지용과 영랑의 세련된 언어와 명징한 이미지, 단시 형식 등은 목월과 서로 다르면서도 공통된 점이 많다.

중요저서로는 『박영종 동시집』 (1945),『초록별』 (1946), 『산새알 물새알』 (1958),『어머니』(1969)와 수필집 『여인의 書』 (1958), 『토요일의 밤하늘』 (1959),『행복의 여울』(1964), 『밤에 쓴 인생론』, 『구름에 달가듯이』 (1968),『불이 꺼진 창에도』 (1969),『사랑의 발견』 , 『뜨거운 점하나』(1970),『박목월과 자선집 전10권』 (1973) 등이 있다.³⁾

2. 작품경향 및 작품분석

김재흥은 박목월 시의 특징을 다섯 가지로 나누어 살피고 있다.⁴⁾ 〈청록집〉 〈산도화〉의 시들을 「자연탐구의 시, 언어미학 추구의 시」, 〈난 기타〉〈청담〉의 시들을 「인생론의 시, 방황의 시」로, 〈경상도의 가랑잎〉과 연작시 <어머니>의 시들을 「자아탐구의 시, 깨달음의 시」로, <사력질, 사력질>이 수록된 『무순』의 시들을 「존재론의 시, 자유지향의 시」로, 그리고 〈크고 부드러운 손〉의 시들을「신성지향」의 시, 신앙에의 시」로 구분하고 있다. 이것은 후기시를 다시 세 부분으로 나누어 놓은 경우이다.

이를 다시 정리하면 자연탐구→인생탐구→자아탐구→존재탐구→신앙탐구의 다섯시기로 구별할수 있다. 이를 통해서 볼 때 그핵심은 인간적인 그리움에 바탕을 둔 자유에의 길, 영원에의 길, 구원에의 길로 구도되어 있었음을 알수 있다.⁵⁾

그러나 오세영 교수는 박목월 시세계의 특징을 자연 함구와 향토성 그리고 기독교적 세계관이라고 분석하고 있다.⁶⁾ 박목월은 40여년의 詩作生活을 통하여 300 여편의 詩를 남겼는데 그 가운데 100여편의 기독교시를 쓴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 중에서 71편의 詩가 그의 死後에 발견된 시집 「크고 부드러운 손」에 실려 있다. 그의 신앙고백적인 시가 여기에 실린 71편과 미발표된 작품까지 합하여 대략 100여편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목월의 詩에서 신앙시가 차지하는 비중이 만만치 않음을 알 수 있다.

박목월의 시의 특성을 총체적으로 이해한다면, 그의 향토적 서정에는 한국인의 전통적인 삶의 의식이 살아 있으며, 이를 통하여 일제 말기 한국인의 정신적 동질성을 통합 하려고한 가치를 인정할 수 있다. 그의 민요풍의 시형식도 그러한 민족적 전통에 근거하고 있다.

시의 세계에 나타난 특성을 각 시를 검토하면서 다음과 같은 구도 즉,  1. 자연과 동일성의 미학, 2. 고향에 대한 향수 이미지 3. 유토피아적 고향의 이미지 4. 기독교 신앙 고백적의 이미지 5. 어머니의 미학적 특성의 순서로 살펴보겠다.

가. 자연과 동일성의 미학

박목월의 초기시는 <청록파>다운 면모를 가장 잘 보여 주는 시라고 할 수 있다. ｢청노루｣, ｢윤사월｣, ｢산도화｣, ｢불국사｣ 등의 시편들에서 나타나는 세계는 전통서정시의 대표적인 특징인 자연과의 동일성의 미학이 깊이 잠재되어 있다. 사물을 바라보는 시적 자아의 위치는 단순한 바라봄이 아니라, 그 세계 속에 깊이 침잠해서 자연과 동화되어버린 존재이다. 이러한 박목월의 초기시는 청록파 세 명의 시인 중에서 문장파적인 세계와 가장 잘 어울리는 시라고 할 수 있다. 󰡔청록집󰡕이라는 시집의 이름도 그의 ｢청노루｣라는 시의 제목에서 따온 것이었다는 점은 󰡔청록집󰡕의 시세계가 가장 특징적으로 박목월의 시에서 드러났다는 점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하겠다.

머언 산 靑雲寺

낡은 기와집

山은 紫霞山

봄눈 녹으면

느릅나무

속ㅅ잎 피어나는 열두 구비를

靑노루

맑은 눈에

도는

구름

박목월, ｢靑노루｣

이 시에서 우리가 눈여겨볼 것은 시적 자아의 시선이다. 첫연에서 시적 자아의 시선은 고개 너머의 원경이다. ‘머언 산’이라는 표현에서 이것을 확인할 수 있다. ‘먼’ 보다 더욱 멀리 느껴지는 ‘머언’이라는 어휘를 씀으로써 시적 자아와 대상과의 거리를 확인할 수 있다. 건너편 산등성이에 서서 멀리 바라다 보이는 자하산의 어딘가에 있는 청운사를 그 지붕 색깔만 구분해서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거리는 다음 연에서는 훨씬 좁혀진다. ‘봄눈’ 녹은 골짜기까지 눈에 들어온다는 것은 이제 산의 봄눈 녹은 골짜기까지 보이는 위치로 어느 정도 다가온 것이다. 이러한 거리의 축소가 3연에서는 더욱 가까와진다. 열 두 구비 돌아가는 작은 길까지 눈에 들어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이 그 다음 연에서는 그 길을 걸어가는 청노루로, 마지막 연에서는 그 청노루의 눈동자에 비친 구름으로까지 연결된다.

이러한 시선의 이동은 단순한 거리의 단축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1연의 ‘머언 산’ 이 시선을 통해 시적 자아는 자연 속으로 차츰 현동화되어 가는 것이다.⁷⁾ 시가 진행될수록 시적 자아는 차츰차츰 자연의 구체적인 세부항목 속으로 들어간다. 청노루의 맑은 눈에까지 이르는 것은 시적 자아가 자연을 바라볼 수 있는 세부항목의 한 절정이다. 그러나 시인은 여기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청노루의 눈에 비친 또다른 세계를 말함으로써 시인이 도달하고자 하는 세계의 한 모습을 보여준다.

나. 고향에 대한 향수 이미지

이러한 박목월의 시세계는 해방 이후 생활 속으로 파고든다. 삶에서 부딪히는 현실적인 고통스런 삶의 양상을 시속에 담아내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초기시에서 보여주었던 전통성의 세계가 함께 내재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가 초기 자연시를 쓰는 배경으로 작용했던 전통적인 서정미학이 여기서는 ‘고향’의 이미지로 자리옮김하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고향’ 이미지는 어떤 면에서 전통에 대한 박목월 나름의 끈질긴 끈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박목월의 이 고향 이미지는 다른 사람에게서는 보기 어려운 면이 함께 나타난다. 그의 고향은 단순히 과거의 추억으로서의 고향이 아니라, 오히려 미래적인 의미까지도 함축하고 있어서 더욱 의미가 있다.

밤차를 타면

아침에 내린다.

아아 慶州驛(경주역)

이처럼

막막한 지역에서

하룻밤을 가면

그 안존하고 잔잔한

영혼의 나라에 이르는 것을.

千年을

한가락 微笑로 풀어버리고

이슬 자욱한 풀밭으로

맨발로 다니는

그나라

百姓. 고향 사람들.

땅위와 땅아래를 분간하지 않고

연꽃 하늘 햇살 속에

그렁저렁 사는

그들의 항렬을. 姓받이를.

이제라도

갈까부다.

무거운 머리를

車窓에 기대이고

이승과

저승의 강을 건너듯

하룻밤

새까만 밤을 달릴까부다.

무슨 소리를.

발에는 足枷(족가)

손에는 쇠고랑이

귀양온 영혼의

무서운 刑罰(형벌)을.

이자리에 앉아서

돌로 화하는

돌결마다

구릿빛 싯뻘건 그 무늬를.

박목월, ｢사향가(思鄕歌)｣

그의 시를 지배하는 중요한 이미지 중의 하나가 향수의 미학이다. 그의 시에 나타나는 향수의 미학은 중기시에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생활의 시에서뿐만  아니라 후기의 시에까지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요소이기도 하다. 그의 초기시까지 이러한 향수의 미학을 읽을 수 있는 단서를 지니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여기서 시인이 파악하고 있는 고향은 전통적이고 사실적인 고향 이미지라고 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유토피아적인 세계라고 할 수 있다. 이 시에서는 불교적 이미지와 기독교적 이미지가 동시에 나타난다. 박목월의 고향이 불교가 가장 왕성한 신라의 수도였던 경주라는 점에서 우리는 쉽게 불교의 영향력을 읽을 수가 있다. 또한 그의 어머니가 독실한 기독교도였다는 점에서 그의 집안에 내려오는 기독교적 전통을 읽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두 가지의 이미지가 교차되면서 박목월만의 독특한 고향이미지를 산출해 낸다. 그것은 단순한 과거지향적인 회고로서의 고향이 아니라, 고통스럽고 힘든 현실을 뛰어넘을 수 있는 힘을 지닌 미래지향적인 유토피아로서의 고향이다. 그것은 또한 시인이 돌아가야 할 시원으로서의 고향이기도 한 것이다.

다. 유토피아적 고향의 이미지

地上에는

아홉켤레의 신발

아니 玄關에는 아니 들깐에는

아니 어느 시인의 家庭에는

알 電燈이 켜질 무렵을

文數가 다른 아홉 켤레의 신발을

내 신발은

十九文半

눈과 얼음의 길을 걸어

그들 옆에 벗으면

六文三의 코가 납작한

귀염둥아 귀염둥아

우리 막내둥아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얼음과 눈으로 壁을 짜올린

여기는

地上.

憐憫한 삶의 길이여.

내 신발은 十九文半

박목월, ｢家庭｣ 중에서

그가 바라보는 현실은 ‘눈과 얼음의 길’이다. 그것은 ‘얼음과 눈으로 벽을 짜올린 / 여기는 / 지상’인 세계, 그래서 시인은 언제나 고통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세상이다. 이러한 세상에서 시인은 자신을 구원해줄 神 앞으로 나아간다. 그렇게 나아간 자리가 앞에서 말한 유토피아적인 고향이다. 이러한 고향의 이미지는 현실의 고통을 이겨내는 중요한 힘의 역할을 한다.

라. 기독교 신앙 고백적의 이미지

1) 절대적인 믿음

목월의 기독교시가 지니는 가장 두드러진 특징의 하나는 신에 대한 완전한 신뢰와 절대적인 믿음이라고 하겠다. 그의 詩에는 신에 대한 회의나 신앙적인 갈등이 거의 표출되지 않으며, 신에 대한 완전한 의탁과 순종, 신앙에의 전적인 수용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침상머리의 스탠드를 켰다.

밝은 불빛에 떠오르는

흰 시이트를 덮은 침상은

나의 하루보다 구김살이 없었다.

간소하게 정결한 침상은

과연 나를 위해 마련되었을까.

송구스럽다. 송구스럽다.

마음이 가난한 자에게만 허락된 잠자리.

스탠드 불을 끄기 전에 나는

잠시 마음을 가다듬었다.

당신이 빌려준 잠자리에서

꿈자리나마 어지럽히지 말자.

             <天使에게>전문

위에 언급된 예가 아니더라도, ≪크고 부드러운 손≫에 실린 대부분의 작품에는 절대적인 믿음과 신뢰, 신앙에의 무조건적인 의탁과 그에 따르는 희망이 강하게 표출되어 있다.

2) 긍정적인 세계관

박목월의 신앙시에서 찾아볼 수 있는 또 하나의 특질은 긍정적인 세계관이다. 이것은 앞에서 살펴본 절대적인 믿음의 상태와 맥을 같이하는 것으로, 대상을 바라보는 시인의 눈이 긍정적인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3) 懇求의 자세

기독교는 인간의 구원을 핵심으로 하는 종교이며, 따라서 기독교적 세계관에 바탕을 둔 시편들은 신을 향한 구원에의 기도가 그 주류를 이룬다고 볼 수 있다. 박목월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어서 그의 신앙시편들에는 詩을 향한 구원에의 갈구가 절절히 드러나고 있다.

그런데, 목월이 이들 시편을 통해 갈구하는 것은 소박한 형태의 자기구원이라는 것이 그 특색으로 지적될 수 있겠다. 다시 말하면, 그의 기도는 對社會的 또는 민중적이거나 세계적인 것에 지향을 두기 보다 자기 자신과 그 가정의 구원과 행복에 목적을 두고 있다. 간혹 드러나는 이웃을 위한 구원에의 기도는 다분히 관념적이며 따라서 그 만큼 절실함의 정도가 약한 것을 알 수 있다.

자기 구원을 위한 기도의 시편으로 주목해 볼 수 있는 것은 <孝子洞>이라는 시이다.

숨어서 한철을 효자동에서

살았다. 종점근처의 쓸쓸한

하숙집.

이른 아침에 일어나

꾀꼬리 울음을 듣기도 하고

간혹 성경을 읽기도 했다.

마태복음 5장을, 고린도전서 13장을.

인왕산 해질무렵이 좋았다.

보라빛 山  어둠에 갈앉고

램프에 불을 켜면 등피에 흐릿한 무리가 잡혔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아아

그 말씀. 그위로 그런 밤일수록 눈물은

베개를 적시고, 한밤중에 줄기찬 비가 왔다.

이제 두번 생각하지 않으리라.

효자동을 밤비를 그 기도를

아아 강물같은 그 많은 눈물이 마른 河  에

달빛이 어리고

서글픈 평안이

끝없다.

박목월 <효자동>전문

마태복음 5장은 산상설교이고 고린도 전서 13장은 사랑의 진리를 설파한 내용이다. 마음이 가난한 자, 슬퍼하는 자는 행복한 사람들이며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라는 산상설교의 내용은 그 당시 시인에게는 너무나 큰 위안이 되었을 것이다. 또한 사랑은 오래 참는 것이며 바라고 믿고 영원한 것이라는 사랑의 진리도 시인에게 크나큰 깨달음을 주었을 것이다. 그런 깨달음과 위안은 회한의 눈물과 함께 새로운 삶에의 의지를 시인에게 불어 넣어 주었던 것으로 보이며 이와 같은 자기구원을 위한 기도는 시인에게 큰 힘을 주었을 것이다.

마. 어머니의 미학적 이미지

박목월의 서정시 속에 아버지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그에 비해 '어머니'는 매우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박목월 서정시에 있어서 '어머니'는 거의 절대적인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즉, 그의 서정시의 근원을 이루고 있다. 본격적인 산업화와 더불어 시작된 분열, 소외와 단절을 경험한 1960년대 자생적 낭만주의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는 그의 시집 『어머니』속의 '어머니'의 미학적 위상은 당대로서는 보편적 의미를 지닌다. 그리고 그것은 1960년대적 의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엄청난 속도로 치달리고 있는 기술문화시대, 소위 디지털 자본주의시대에 우리의 서정시가 나아갈 바 지표로서의 구실도 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소위 '오래된 미래'로서 혼돈에 처한, 상실의 시대 우리에게 신생의 꿈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⁸⁾

박목월의 시집『어머니』에 나타나는 '어머니' 는 바로 서정적 화합을 만들어주는 토대, 곧 근원이 된다. '어머니' 는 시적 자아로 하여금 세계와의 서정적 동일성을 이루게 하는 사랑의 원천으로 나타난다.

다정하게 포개진 접시들.

윤나는 남비.

방마다 불이 켜지고

제자리에 놓인

포근한 의자.

안락의자.

어머니가 계시는 집안에는

빛나는 유리창과

차옥차옥 챙겨진 내의.

새하얀 베갯잇에

네 잎 크로우버.

아늑하고

그득했다.

박목월「가정」전문

이 서정시에 있어서는 모든 사물들이 '제자리에 놓여' 있는 것이 중요하다. 이른바 서정적 질서는 모든 사물들이 소리 없이 제자리에 잘 놓여 있는 가운데 생명적 교감을 할 때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 때 어머니는 가족의 건강을 돌보고 가정을 화목하게 만드는 중심, 곧 사랑의 원천이다. 이 시에서는 무엇보다 '어머니'를 중심으로 모든 사물들이 사이좋게 공존하며 교감하고 있다는 데에 중요성이 있다. 박목월은 생리적인 서정 시인이란 평을 받고 있다. 그가 생리적인 서정 시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어릴 적 고향 경주에서의 행복했던 원체험 때문이다. 어머니를 중심으로 해서 모든 사물들이 행복하게 내밀한 생명적 교감을 누리는 삶을 체험했는데, 그 체험이 그의 삶의 밑바탕에 깔려 있어서 평생 서정 시인이 되게 했던 것이다.⁹⁾

Ⅰ. <박 꽃>작품분석.

< 박 꽃 >

흰 옷자락 아슴아슴

사라지는 저녁답

썩은 초가지붕에

하얗게 일어서

가난한 살림살이

자근자근 속삭이며

박꽃 아가씨야

박꽃 아가씨야

짧은 저녁답을

말없이 울자

(청록집, 1946)

1. 시어해설 및 감상.

* 어둠 속으로 걸어가는 사람의 옷자락이 어떻게 보이는가를 "아슴아슴"하다는 형용태로 나타냈다.

* 저녁답을 : 저녁때

<박꽃>은 가난한 살림살이가 아슴아슴”,“자근자근” 속삭이듯 낮은 목소리로 다가옴으로써 시적 이미지가 아스라한 신비의 희열감을 자아내게 한다. 이렇듯 화평한 영혼의 심상은 울림의 효과를 갖는다. 이런 속삭이는 듯한 움직임을 나타내는 심상어는 문맥 속에서 어떠한 갈등이나 좌절도 수용하는 강한 응집력을 독자에게 제시한다. 나직하고 작은 소리의 시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메시지는 의외로 보다 깊고 아늑한 분위기를 감지하게 하며 이로 인해서 몇 행으로 구성된 단시 형태의 시에서 경이로움과 최상의 시적 쾌미를 맛보게 되는 것이다.

2. 詩에 나타난 의성어·의태어.

原始語의 일차적 기능은 의성어나 의태어에서 비롯했을 가능성이 짙다. 짐승이나 새들의 소리를 흉내 내어 감정을 나타내고 의사소통의 구실로 삼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현대시에 와서도 이 의성어(onomatopoeia)나 의태어(mimesis)의 활용은 과거의 노래하는 시로 불리던 시대와 마찬가지로 詩語로서 혹은 시의 기법으로 매우 유용한 위치를 차지한다.

2-1. 의성어.

삐이 뱃쫑! 뱃쫑

하는 놈도 있고

호을 호로롯

하고 우는 놈도 있고

찌이잇 잴잴잴!

하는 놈도 있고 온통 산새들이 야단이었습니다.

  박두진, 「사슴」부분

바다, 바다, 바다, 바다,

無窮動 바다,

차츰 그 바다에 가까이 가서야

목청이 열렸다.

아아, 아아, 아아, 아아,

마치 처음으로 질러보는 음성인양,

진정 「아아」라는

母音이 있기에 구원이 되는 셈.

박희진, 「바다」부분

"삐이 뱃쫑" "호을 호로롯" "찌이잇 잴잴잴" 등은 直喩的이다. 여러 가지 새들의 소리를 직접 흉내낸 것으로 낱말로서의 의미는 완전 배재되어 있다. 오직 소리만이 존재한다. 즉, voice가 아닌 sound의 상징인 것이다. 반면 박희진의 「바다」는 바다에서 들을 수 있는 소리를 간접적으로 擬聲化시킨 것이다. 즉, 실제의 소리가 아닌 관념상의 의미로 대치시킨 것이다. 작자의 恣意的인 음성기호로서 '바다'가 쓰였다. 이는 이센손(Jon Eisenson)이 그의 「The paychology of speech」의 개념으로 든 ㉠口頭表現(oral symbol) ㉡ 몸짓(gesture visible word) 중에서 ㉠에 해당하다.

① 텨-얼썩, 텨-얼썩, 턱, 쏴……아

  최남선, 「해에게서 소년에게」 부분

② 바다, 바다, 바다, 바다,

  박희진, 「바다」 부분

③ 옥쪼록 빠쪼록 조래 조래……

옥쪼록 빠쪼록 조래 조래……

신석정,「Nostalgia」 부분

결국 ②는 '바다;의 뜻이 아닌 바다의 소리를 은유로 쓴 것인데, 반복되는 리듬感으로 파도소리를 연상하게 한다. 소리뿐만이 아닌 의태적인 이미지도 동시에 제시된다. 이 역시 바다를 간접적으로 연상되게 한다.

"아아, 아아, 아아, 아아,"의 경우도 실제로는 작자의 감탄사를 바다소리로 의성화시킨 간접적인 은유이며 상징이다. ③은 강남으로 돌아갈 제비들의 망향가로 들린다는 의성어로 나타낸 것이다. 심리적으로 향수를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2-2. 의태어.

흰 옷자락 아슴아슴

사라지는 저녁달

썩은 초가 지붕에

하얗게 일어서

박목월, 「박꽃」 부분

얇은 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조지훈, 「僧舞」 부분

방점부분 "아슴아슴"과 "나빌레라"는 모두 간접적인 의태어들이다.

어둠 속으로 걸어가는 사람의 옷자락이 어떻게 보이는가를 "아슴아슴"하다는 형용태로 나타냈고 '나빌레라'는 춤추는 모습을 동작태로 나타낸 것이다.

  박목월은 대체로 어, 우 위 등의 음성모음으로 이루어진 의성. 의태어를 즐겨 쓴다. 또한 그의 시에 나타나는 의성. 의태어는 2은절이나 4음절어에 집중되어 있으며 모양을 나타내는 시각적 상징어가 주로 쓰인다. 사물을 자신의 독특한 감각으로 파악하는 박목월의 상징어는 직접적인 소리의 단순한 의성화보다는 자신의 감각에 의해 변이시킨 독특한 시어들을 사용하고 있다.

  ‘서럭서럭 오는 싸락눈’에서처럼 평음과 긴장음의 대립을 연결시킨 것, 눈이 오는 소리를  ‘쇠랑쇠랑 뿌렸다’라고 표현한 것, 또 ‘청청 우는 총소리’ ‘딩동댕’으로 표현된 물방울 소리는 일반적으로 그 대상에 결합되지 않던 새로운 의성어를 사용함으로써 독특하고 신선한 효과를 획득한 예의다.

  이러한 경향은 의태어 사용에 있어서도 농부의 얼굴을 젖은 촉감으로 파악하여 ‘척척한’얼굴로, 하늘의 별자리를 ‘치렁치렁’이라고 표현하여 별들이 땅에 닿을 만큼 부드럽게 늘어져 있는 상태로 사물화하고 있다.

특히 박목월은 [소슬(蕭瑟)] [하관(下棺)] 등에서 의성.의태어가 작품의 전체적인 의미와 밀접한 유기적 연관성을 갖고 있어 유기적. 통괄적 역할을 수행하는 절묘한 예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의성어나 의태어는 단순히 소리를 모방하고 몸짓을 흉내 내는 것만이 아니라 직유나 은유의 수법으로 시 속에 끌어들인 것을 볼 수 있다.

* 말라르메(Mallarme)가 "시는 아이디어로 쓰는 것이 아니라 말로 쓴다"고 언어의 외형적 기능──모음조화, 자음의 결합, 韻, 리듬, 율격등──에 詩的 성취욕을 보였었다. 즉, 內容語(content word)에 대한 고의적 의미 부여를 경계한 것이다. 이에 앞서 소위 순수시(pure poetry)라는 것도 언어의 내용보다는 "음악처럼 직감적이며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세계"를 추구한 사실도 유의해야 한다. 청각적 자극이나 시각적 자극에 관심을 두어 의성어나 의태어의 시적 활용 가치가 많아진 것이다.

그러므로 의성. 의태어는 현대시에 있어서 다른 시어와 마찬가지로 중요한 시적 기능을 하고 있다. 때로 그것은 주제 자체를 한 언어로 드러내는 중심어 역할까지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참고자료

- 김현자 <한국시의 감각과 미적거리>, 문학과 지성사, 1997.

- 유창돈 <어휘사 연구>, 이우사, 1980.

- 이문걸, 한국 현대시의 감각과 미적 거리에 관한 연구, 동의대학교, 1999.

- 인터넷 http://blog.naver.com/gksdka1876.do?Redirect=Log&logNo=120006867133

   2004.10 (時,형식과 기법 - 의성, 의태어)

Ⅲ.청록파 [靑鹿派] 에 대하여

1. 청록파의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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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훈, 박목월, 박두진 시인>

1939년 《문장(文章)》 추천으로 시단(詩壇)에 등단한 박목월(朴木月)·조지훈(趙芝薰)박두진(朴斗鎭)을 가리키는 말이다.

  각기 시 작법은 다르지만 자연을 바탕으로 인간의 염원과 가치를 성취하기 위한 공통된 주제로 시를 써온 세 사람은 1946년 6월에 시집 《청록집(靑鹿集)》을 함께 펴내면서 청록파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청록집(靑鹿集)》은 A5판으로 박목월의 시 <청노루>에서 책명을 따왔다고 하며, 박목월의 <나그네>를 비롯하여 모두 15편이 수록되었고, 조지훈의 시는 <봉황 수>등 12편이 수록되어 있으며, 박두진의 시는 <향 현> 을 합하여 12편이 수록되어 총 39편이 수록되었다.

2. 청록파의 생성과정

전통서정시의 문학사적 전개 과정을 살펴보면, 한국의 현대시는 크게 세 가지 조류가 중심이 되어 흐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모더니즘 詩와 리얼리즘 詩, 그리고 전통서정시가 바로 그것이다. 1920년대 카프의 등장으로부터 시작된 리얼리즘적 문학을 현실과의 관련에서 이해하고, 해방 후 좌우 대립상황에서 모색되었던 리얼리즘을 60년대 참여시 운동과 70년대 민족문학운동으로 연결되며 80년대까지 문단의 중요한 전통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한국 현대시의 출발점에서부터 민요시 운동이나 시조부흥운동 등을 통해 모더니즘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전통서정성의 세계를 탐색하고 있던 정지용에 의해 주도되어 <문장파>는 《문장》誌를 통해 자신들의 세계관을 구체적인 작품들 때문에 한국 문학사의 중요한 한 축을 형성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를 이어 박목월, 조지훈, 박두진은 전통 서정시의 흐름이 부자유시대인 일제강점기에서 암울의 시대에 울분과 분노의 정신적 반항을 主로 한 詩를 썼으며, 순수문학이 대두한 데에는 정치·문화적, 관계원인과 문단 자체의 직접적 원인을 들 수 있지만 청록파 세 시인의 작품은 이 두 가지 원인을 모두 직접적 원인으로 묶어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세 시인은 각기 시적 지향이나 표현의 기교나 율조를 달리하고 있으나, 자연의 본성을 통하여 인간적 염원과 가치를 성취시키는 시 창조의 태도는 공통 되고 있다. 서정주는 이러한 공통점에 근거하여 "자연파"라고 호칭 한 바 있다. 이 시집에 수록된 작품들은 광복직전의 일제치하에서 쓰여 진 것으로 시사적으로 중요한 의의가 있다.

3. 청록파 세 인물의 사상과 시풍의 특징

  앞에서 언급한 시대적 상황에서 비롯한 이유에 근거하여 청록파 세 인물은 각자 조금씩 다른 사상과 시풍을 가지고 시를 쓰게 된다.

  사상적인 면에서 보자면 박목월은 비합리적이고 왜곡된 사회를 향하여 정면으로 저항하기에는 나는 시로써 접근하기가 얼마나 무력한가를 통감하지 않을 수 없었고, 조지훈은 은둔과 폐쇄와 소극적인 반항, 회의와 방황과 갈구, 정관과 입명의 시심이 문착하던 나의 시라고 했으며, 박두진은 몇몇 동인지에 처음 관계를 맺어 보면서 일정말기의 분노와 굴욕감과 이에 대한 정신적 저항을 동기로 한 문학적 발분의 시대라 할 수 있다. 상술한 바와 일정 때에는 삼가시인 모두 산수 간의 자연을 벗 삼았지만 장년으로 갈수록 설자연적인 인생달관의 입장으로 나아갔다고 보아진다.

  시풍에서 나타나는 각자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박목월은 향토적 서정으로 한국인의 전통적인 삶의 의식을 민요풍으로 노래하였고, 조지훈은 고전미에 문화적 동질성을 담아 일제에 저항하는 시를 썼고, 박두진은 자연에 대한 친화와 사랑을 그리스도교적 신앙을 바탕으로 읊었다.

  이들은 일제강점기 말에 등단하여 한글로 작품을 발표하였고, 자연을 소재로 자연 속에 인간의 심성을 담은 시를 썼고, 광복 후에도 시의 순수성을 잃지 않았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조지훈의 전아한 고전적 취미도 한국인의 역사적 문화적 인식을 일깨우는 뜻이 있으며, 민족의 문화 적 동질성을 환기시킴으로써 일제 치하의 민족의 굴욕을 극복하려 한 의미를 지닌다. 그의 시에서 저항적 요소가 보이고 있음도 그러한 정신적 자세와 연결되고 있다. 생활과 밀접한 관련 속에서 다양한 시적 변모를 보이면서도 관조의 미학이 흐르고 있다.

  박두진에 있어서 자연인식은 원시적 건강성과 함께 강렬한 의지의 상징으로 표현되고 있는데, 그의 기독교적 신앙에서 빚어진 의연하고 당당한 의로움의 생활 신념과 관계되고 있다. 신앙에 근거하여 일제 시대의 민족적 수치를 극복하려는 기세가 나타나있다. 자연과의 친화 속에서 불화의 현실을 인식하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기독신앙을 바탕으로 화해의 세계, 이상향의 세계를 기다리고 있다.

  그들의 독특한 서정세계는 한국시의 새로운 가능성의 제시, 자연시로의 가능성, 친일문학이 주는 상처의 극복을 시사, 한국적 정조를 지키므로써 순수시의 방향 제시와 전통의 맥을 계승, 현실에 대한 적극적 저항이나 식민지 현실의 모순을 극보하는 의식의 결여를 보이나 민족의식의 고양과 민족 동일성 회복의 정서 제시 등에 있어 시사적 의의를 갖는다.

4. 청록파와 자연

  청록파의 공통적 특질은 "자연의 발견"이라는 말과 같이 그들의 모든 시의 배경은 한마디로 "자연"이었다.

  즉 그들의 서정이 항용 있어온 산이나 물, 풀이나 나무 기타 짐승류 혹은 하늘 구름 등에 의탁되면서 그들 나름대로 차분히 노하지도 않고 격하지도 않으면서 자연을 재발견, 재편성하였다는 것이다.

  또한 전체적으로 기록할 만한 사실은 이들 세 사람이 모두 자연에서 시의 소재를 찾아 언어를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 이전의 감상주의자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감탄"이나 "눈물", "서러움" 등의 세계에서 탈피하였다는 사실이다.

  박목월, 조지훈, 박두진에게 자연은 단지 소박한 자연 현상으로의 자연이 아니라, 영원에 이르는 그것의 주재자요 생명이신 하느님의 사랑과 빛과 참과 선과 미의식 그 근원으로서의 자연이다. 그러한 면에서 세 시인의 자연 수용의 양상을 간략히 살펴 보았는데, 아래와 같이 표로 정리하여 비교할 수 있다.

조 지 훈	박 목 월	박 두 진
관조적 정적 선적분위기 귀의적 객관적 거리유지 현실적 자연 동양적 자연	향토적 정적 새로운 공간의 창도(同化) 제시적 맑고 청순한 자연 이상향으로의 자연 동양적 자연	친화적 동적 관념(신앙이나 이상)과 결합(서구적 발상) 근원적 예찬 건강한 자연(생명력 있는 자연) 비유적 자연

5. 청록파가 가지는 의의

  현실·상황 안에 시인·개성을 언어로 파악하고, 시를 통해 독자·개성으로 이해하는 작업을 하기 위해서 우선「청록파」시인들의 작품속의 공통 특질인 "자연의 발견"이라는 말과 같이 그들의 모든 詩의 背景은 한마디로 "自然" 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세 시인은 독특한 자기의 서정세계를 이루어냈는데, 조지훈은 잦은 변모속에서도 관조의 자세를 잃지 않았으며, 박목월은 개인의식의 상승에 의해 순수 서정세계를 이룩했는데, 이는 현실대응으로 이상향을 창조한 것으로 보이며, 박두진은 불화의 현실을 인식하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신앙을 바탕으로 화해의 세계를 지향해 나가며, 그 이상향(이상과 신앙의 세계)의 세계에의 기다림이 지속되고 있음을 보았다. 그들은 현실과의 관계에서 나름대로 자신의 개성을 발휘하였다.

세 시인의 시에 나타난 자연 수용의 양상을 통하여 그들의 자연의 성격을 밝혀 비교하였던 바, 한국시에 있어 자연의 새로운 수용이 엿보였다.

  발화의 양상의 입장에서 그들의 시에 드러난 시적자아를 중심을 대상이나 세계와의 관계를 살펴 그들의 시세계에 대한 확인과 근거를 마련하였다. 그들의 독특한 서정세계는 시사적 의의에서 보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었다.

※ 참고자료

- 이종우, 『청록파 시 연구』, 연세대 석사논문, 1987.

- 박목월 외, 『청록집』, 삼중당, 1986.

- 이종성, 『청록집 연구』, 한양대 석사논문, 1990.

- 김용욱, 『한국 현대시사 연구』, 일지사, 1983.

- 조지훈 외, 『생각하는 즐거움, 생각하는 괴로움』, 자유문학사, 1987.

- 장부일, 『지상강좌』, 한국방송통신대학교, 2000.

- 장부일·조남철, 『현대문학강독』, 한국방송통신대학교, 1994.

- 서수원, 『청록집의 시 대비 연구』, 경남대 석사논문, 19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