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0) - 예종의 건강법
‘옛것에서 지혜를 찾다’
오늘도 장동민 한의사와 함께 합니다.
(전화연결 - 인사 나누기)
Q1. 자, 원장님, 오늘은 조선시대 8대 임금인 예종이지요?
네, 맞습니다. 예종은 세조의 맏아들이자 자신의 형인 의경세자가 20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하자, 그 뒤를 이어 세자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이후 왕위에 오른 예종 또한 겨우 1년 2개월 만에 역시 20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뜨게 됩니다.
이는 사약을 받고 강제로 죽은 단종을 제외하고는 가장 젊은 나이에 죽음을 맞이한 경우인데요. <왕조실록>에는 이러한 예종의 사망원인이 확실히 나와 있지 않습니다. 병이 있다고 기록된 지 2일 만에 바로 예종은 사망하였는데, 왕이 너무 갑작스레 사망하였다는 기록만 여기저기에 나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간에서는 사람들이 예종의 죽음을 두고 단종의 생모인 현덕왕후 권 씨의 저주 때문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Q2. 너무 어린 나이에 사망했네요.
혹시 짐작 가는 이유가 있을까요?
일단 야사에 의하면 20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한 예종은 왕위에 오르자마자 술을 마시는 버릇에 큰 변화를 가져 왔다고 전합니다. 강력한 아버지 세조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부모님 앞에서는 몸 사리는 것이 지나칠 정도였는데, 부왕이 죽은 후부터는 상황이 달라져서 술을 즐겨 찾았었다고 합니다.
특히 문종의 외손으로 경혜공주의 아들인 정미수(鄭眉壽)를 자주 찾아 불러들여 대작하곤 했다고 한다. 경혜공주는 단종의 친누나로서, 동생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가 세조에 의해 역적으로 몰려 폐서인이 된 비운의 여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아들 대에 이르러서는 다시 복위되어, 임금인 예종과 술대작을 할 정도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정작 <왕조실록>에는 예종이 술로 인해 병이 났었다는 기록이 보이지는 않습니다.
Q3. 술이 범인은 아니었단 얘기군요.
그렇다면 예종이 다른 질병을 앓았던 기록은 없을까요?
네 있습니다. <왕조실록>을 보면, 예종은 오랫동안 소위 ‘족질(足疾)’을 앓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정도도 매우 심했던 모양인데, 족질 때문에 오랫동안 정사를 보지 못했다고도 하고, 또한 이 족질 때문에 예종이 사람을 마주 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었다고도 언급되어 있습니다.
원래 족질(足疾)이란 발에 있는 질병이란 뜻인데, 아마도 예종이 앓았던 족질은 단순히 발에 상처가 있거나 발목을 삔 정도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 <왕조실록>을 보면, 그 증상이 어릴 때부터 죽 있었는데 추워지면 통증이 심해진다고 하니, 이는 간신(肝腎)의 기능이 약해져서 양기(陽氣)가 부족해 생긴 각기병의 일종으로 추측해 볼 수 있겠습니다.
Q4. 예종의 증상이 다리에 나타나는데, 원인은 다리에 있지 않을 수 있다는 말씀이군요?
네 맞습니다. 실제 임상에서도 다리나 뼈에 바람이 드는 것 같다며 아프고 저린 증상을 호소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일반적으로 산후조리를 잘 못했거나 유산을 많이 한 어머니들에게 많이 발생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산후풍’이라고 말하는 증상인데, 하초가 허약해서 차가운 기운을 막아내지 못한 결과라고 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통 젊은 남자들에게서는 이러한 증상이 잘 나타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아직 양기가 충만하기 때문에, 하초에 추위를 느끼지 않는 것이지요. 그래서 남자들은 중년 이후가 되면서 슬슬 내복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Q5. 그렇다면 예종은 젊은 남성인데,
왜 그러한 증상이 나타났을까요?
예종의 경우에는 어릴 때부터 이 질병을 앓았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선천적으로 양기가 부족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더욱이 야사에 의하면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술과 여색을 탐했다는 얘기가 나오는데요.
만약 선천적으로 양기가 부족한데, 여기에 더해 계속해서 몸을 돌보지 않고 주색(酒色)을 탐닉했다면 증세가 더욱더 악화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즉 양기가 부족하게 된 것이, 갑작스런 사망을 부추기는 원인 중의 하나로 작용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입니다.
Q6. 이러한 경우 치료법은 있는지요?
옛날에는 나이 드신 분들만 이렇게 시리고 아픈 증상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요새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나타나는 편입니다. 물론 이럴 때는 양기를 북돋우어 주는 것이 다리 질환을 치료하는 근본적인 치료법이라고 하겠는데요.
<동의보감>에는 피로가 누적이 되고 생식기능이 약해져 근육과 뼈가 여리고 아프며 늘어지거나 차갑게 시리거나 마비되는 증상을 치료하는 처방들이 많이 나옵니다. 이러한 처방들을 체질과 증상에 맞춰 복용하면, 아주 좋은 효과를 거두게 되는데요. 물론 경우에 따라 침 치료나 뜸 치료 및 추나 치료 등을 병행 할 수도 있습니다.
Q7. 가끔 집에서 혼자 뜸뜨시는 분들이 있는데,
주의사항 좀 알려주시죠.
맞습니다. 특히 뜸 치료는 각별히 주의할 필요가 있는데요. 만약 양기부족으로 추위를 느끼는 것이 아니라, 급성 열성 질환으로 인해 다리가 아프다면 뜸 치료는 피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간혹 인체의 생리나 병리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돌팔이 사이비업자들이 관절에는 어디가 좋다는 둥 말하면서 마구 뜸을 뜨는 것에 현혹되어, 증상을 악화시켜 오는 분들이 있는데요. 이러한 경우에는 피해보상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침이 되었든 뜸이 되었든 한약이 되었든 간에, 치료행위에 앞서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은 정확한 진단입니다. 예종처럼 다리가 아플 때도 반드시 한의원에 가서 전문가의 진단부터 받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Q8. 다시 예종으로 돌아가죠.
그렇다면 예종의 사망원인은 뭔가요?
사실 아직도 예종의 죽음에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겨우 ‘발에 증상이 있다’는 기록 외에 특별한 병증이 없다가, 이틀 만에 갑자기 사망을 했기 때문인데요. 더욱이 왕이 사망하자 다음번 왕위를 정하는 회의를 조용한 곳에서 따로 논의하자는 얘기까지 실록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사가들의 눈을 피했던 거죠.
그렇게 해서 다음 왕이 정해지는데, 신기하게도 궁궐 밖에서 지내던 자을산군이 어떻게 예종이 사망할 줄 알고서는 미리 궐내에 대기하고 있다가, 예종이 사망하자마자 바로 왕위를 계승합니다. 심지어 예종의 아들이나 의경세자의 큰 아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둘째아들이 뒤를 이은 건데요, 왕위 계승 서열에서 한참 먼데도 불구하고 왕위에 오른 것이지요.
Q9. 듣고 보니, 상황이 좀 미심쩍기는 하네요.
네 그렇습니다. 사실 조선 초기에 왕권을 다진 임금이 태종과 세조인데요, 태종은 왕자의 난을 함께 일으켰던 공신들과 외척 등의 친척들을 모두 죽여 버립니다. 심지어 세종의 처가 식구들까지 모두 숙청해서 세종의 왕권을 강화시켜 주는데요,
이에 비해 왕권을 강화시킨다는 명분으로 난을 일으켰던 세조는, 그렇지를 못했습니다. 자신을 왕위에 오르게 도와준 공신들의 힘이 막강했었는데요, 공신들은 왕의 허락없이 벼슬을 사고 팔 권리와, 심지어 죽을죄를 지어도 면책받을 권리 등을 아예 공식적으로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에 젊은 임금 예종은 공신들의 힘을 꺾기 위해, 이러한 제도를 없앤다고 반포했었는데요, 예종이 죽자마자 바로 원위치가 되어 물거품이 되어 버립니다.
Q10. 듣고 보니, 의혹이 생길 만하네요.
그렇다면 예종의 사망과 다리 질환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걸까요?
만약 다리 질환이 악화되어 사망했다면, 한 가지 가능성은 있는데요. 바로 ‘봉와직염’입니다. 봉와직염은 벌집 모양으로 조직에 염증이 생긴 것을 말하는데요, 요새는 ‘연조직염’이라고도 부릅니다. 예전에는 군대와 같이 위생상태가 불량한 곳에서 많이 발생되었는데요, 요새는 면역력이 떨어진 경우에 나타납니다.
이러한 봉와직염이 방치된 경우에 조직의 괴사가 일어나거나 패혈증이 나타나 갑자기 사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다리 질환으로 갑자기 사망하려면, 이러한 병증으로 전변되었을 가능성을 얘기해볼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실 고열이나 통증과 같은 동반 증상들이 기록되어 있지 않아, 이 또한 가능성이 낮기는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