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4장의 첫 본문은 예수께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는 이야기인데, 마태의 본문과 거의 유사합니다. 몇 군데 표현이 다른 부분이 있고 두 번째 유혹과 세 번째 유혹이 서로 바뀌어있을 뿐 그 외의 내용은 거의 같기에 다시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설명이 필요하신 분은 마태복음 4장 강해를 참조해주시기 바랍니다.
이어지는 본문에는, 예수님이 고향인 나사렛에서 겪으신 일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6~21절을 보겠습니다.
16 예수께서는, 자기가 자라나신 나사렛에 가셔서, 늘 하시던 대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셨다. 성경을 읽으려고 일어서서
17 예언자 이사야의 두루마리를 건네 받아 그것을 펴시어, 이런 말씀이 있는 데를 찾으셨다.
18 "주의 영이 내게 내리셨다. 주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셔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 주께서 나를 보내셔서, 포로 된 사람들에게 자유를, 눈먼 사람들에게 다시 보게 함을 선포하고, 억눌린 사람들을 풀어 주고,
19 주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20 예수께서 두루마리를 말아서, 시중 드는 사람에게 되돌려 주시고, 앉으셨다. 회당에 모인 모든 사람의 눈이 예수에게로 쏠렸다.
21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성경 말씀은 너희가 듣는 가운데서 오늘 이루어졌다."
이 본문은 마가와 마태에는 없고 누가복음에만 있는 고유 자료입니다. 본문에 의하면 예수님은 자신이 나고 자라신 나사렛에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성경을 읽으십니다. 회당에서 예배를 드릴 때, 유대인 성인 남성이라면 누구나 성경을 읽고 해석할 권리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읽으신 본문은 이사야서 61장 1~2절이었습니다. 해당 본문을 보겠습니다.
1 주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니, 주 하나님의 영이 나에게 임하셨다. 주께서 나를 보내셔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상한 마음을 싸매어 주고, 포로에게 자유를 선포하고, 갇힌 사람에게 석방을 선언하고,
2 주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언하고, 모든 슬퍼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게 하셨다.
메시아가 와서 할 일에 대한 예언이 담겨있는 본문인데, 표현이 조금 다를 뿐 같은 내용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억압받고 힘들어하는 민중들을 위로하고 싸매어주는 것, 그것이 바로 메시아가 할 일이라는 것입니다. 다분히 사회개혁적인 이 메시지를 누가는 예수님이 사역을 시작하시는 첫 장면에 담았습니다. 예수운동의 원형이 기복적이고 종교적인 차원에 머문 것이 아니라 현실개혁적인 생명운동이었음을 나타내는 소중한 본문입니다.
예수님은 성경 읽기를 마치신 후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성경 말씀은 너희가 듣는 가운데서 오늘 이루어졌다.’ 이 본문 말씀이 선포된 바로 그날 이루어졌다고 예수께서 선언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날에 이미 시작되었다.’ 예수님의 사역과 함께 이미 하나님의 나라는 시작되었고, 예수사람들의 참여로 완성되어 간다는 것입니다. 장차 죽은 다음에 가는 ‘저 하늘나라’가 아니라, 지금 예수님과 동행하며 이루어내야 할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상,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라는 것입니다.
복음이 그런 것이라면 그게 무슨 종교냐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실 것 같습니다. 보수적인 신앙인들은 다른 종교와 구분하기 위해서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라 복음이다.’ 라는 말을 씁니다. 그러나 진보적인 신앙은 그와는 다른 의미에서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라 복음이다.’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복음의 원형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이루는 역동적인 생명운동이고 현실개혁운동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어지는 본문에는, 예수께서 고향 사람들에게 배척받는 장면이 묘사됩니다. 회당에서 예수님이 성경을 읽고 해석하신 것을 보고 고향 사람들이 감탄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늘 보아오던 평범한 젊은이였다는 점을 들어 예수님을 불신합니다. 예수님이 그들의 불신을 책망하시자, 고향 사람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본문의 원형은 마가복음 6장에 있으며, 마태복음 13장에도 수록되어 있습니다.
4장 후반부에는, 예수께서 귀신 들린 사람과 병든 사람들을 고치셨다는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이 본문들, 그러니까 예수께서 귀신들린 사람과 병든 사람들을 고치셨다는 기록에 대해서는 마태복음 8장을 강해할 때 충분히 설명을 드렸기에 꼭 기억해야 될 내용만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현대 신학자들은 예수님의 이런 행위를 치료가 아니라 치유로 이해한다고 말씀드렸는데 기억하시는지요. 치료는 병을 물리적으로 고치는 것이고, 치유는 마음을 고치는 것입니다. 영어의 healing에 해당하는 말이 바로 치유입니다. 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로해주셔서 그들의 마음이 치유되게 해주셨다고 해석하는 것이 옳다는 것입니다. 귀신이나 악령이 들렸다는 것도, 개신교의 본산지라고 할 수 있는 유럽의 성서학자들 대부분은 정신병의 영역으로 해석합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도 오늘날의 신경정신과 의사나 상담자들처럼 그들의 아픈 마음을 헤아리며 위로해주시고 치유해주신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