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한맥문학> 2012년 2월호(통권 257호)에 실었습니다*
*원래는 <청송문학> 제19집(2011)에 실으려고 원고를 보냈는데 편집자가 깜빡하고는 싣지 않았다는군요.*
‘작지만 큰 일’ 강아지 목욕시키기
내 강아지의 이름은 ‘또또’다. 다른 사람이 키우던 것을 동물병원에서 유가(有價)로 입양했는데 원래 이름이 ‘또또’라기에 바꾸지 않았다. 이름에서 짐작하듯이 수컷이다. 강아지의 생식기능을 제거하는 중성화수술도 입양과 동시에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도 자위행위 습관이 남아 인형이나 방석 같은 것을 보면 지금도 올라타곤 한다.
내 집에 올 때가 세 살이었는데 벌써 열두 살이 되었다. 기껏해야 16년 내지 18년 산다는 말티즈의 수명을 생각하면 이 녀석은 벌써 할아버지인 셈이다. 그런 녀석을 여전히 ‘강아지’라고 부르는 것도 이상하지만 달리 부를 마땅한 표현도 없다. 털의 윤기가 많이 사라졌을 뿐 할아버지 치고는 여전히 유쾌하고 힘이 넘친다. 철저하게 강아지 밥만 먹이고 운동을 많이 시켜서인지 잔병치레가 거의 없다. 체중은 5킬로그램이다.
집집마다 아이들 성화에 못 이겨 애완견을 사주지만 그 관리는 고스란히 부모, 그 중에서도 주로 어머니들 몫이다. 내 경우도 자녀가 아들 하나밖에 없어 동생 대신에 강아지를 입양했다. 아들에게 강아지 관리를 맡기려고 여러 번 시도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아들은 강아지에게 밥을 몇 번 주다가는 그만둬 버렸다. 목욕도 처음에는 아들이 샴푸 질까지는 해 주다가 그것마저도 아들의 대학입시가 가까워오면서 오롯이 내 몫으로 돌아왔다.
강아지 목욕은 쓰레기 분리 배출과 함께 내가 매주 한 차례씩 행하는 주요 가사(家事)이다. 오늘도 아침에 샤워를 하다가 문득 강아지 목욕을 잊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강아지는 사람과 달리 1주일에 한 번만 목욕시키면 되기 때문에 보통은 주말에 내가 손톱을 깎고 나서 강아지 목욕도 시키곤 하는데 그만 깜빡한 것이다. 좀 더 일찍 생각났더라면 강아지 목욕부터 시키고 나서 샤워를 했겠지만 그 순서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우선 강아지 전용 샴푸와 목욕수건을 챙긴다. 목욕 후 손질에 필요한 도구들을 넣어둔 비닐봉지도 미리 선풍기와 드라이기 옆에 갖다 놓는다. 고무장갑을 낀 다음에 소파 위 방석에서 졸고 있는 강아지를 번쩍 들고서 목욕탕으로 갔다. 지금 쓰고 있는 샴푸는 거품이 잘 나서 단 두 번만 샴푸를 짜서 강아지의 얼굴부터 목, 등, 배, 다리, 발, 생식기와 항문, 꼬리까지 문지르고 나면 끝이다.
강아지가 목욕을 즐기는 것 같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큰 저항도 없다. 머리 부분을 헹굴 때만 제 딴에는 잡히지 않으려고 도리질을 치기 때문에 힘이 들지만 나머지 부분은 금방 끝난다. 강아지 전용 목욕수건이란 따로 구입한 게 아니다. 사람이 쓰는 수건 중에서 가장 쉽게 구분할 수 있는 빨간 색 수건을 강아지 전용으로 쓰는 것이다. 그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준 다음에 달랑 안고서는 선풍기와 드라이기가 있는 방으로 옮겼다. 선풍기를 틀어놓은 채 드라이기로 털을 말린다. 나는 요즘 머리를 감은 후에 드라이기를 쓰지 않고 자연 건조시키는데 강아지는 꼭 드라이기를 사용한다. 드라이기로 말려야 피부병을 막을 수 있다고 아내가 말하기에 ‘순종’하는 것이다. 인터넷에 찾아보아도 잘 말리지 않으면 곰팡이나 습진이 생긴다고 나와 있다.
털이 말랐으면 빗으로 귀 털과 꼬리털을 잘 빗어주고 쇠솔로 몸통의 털도 한 번 빗질해준다. 내가 키우는 강아지는 말티즈(Maltese)인데 귀 털과 꼬리털이 긴 편이어서 잘 엉키기 때문에 목욕 때마다 빗어줘야 한다. 너무 심하게 엉켜서 빗질이 안 될 때는 가위로 잘라준다. 그 다음에는 귀 세정제를 귓속에 몇 방을 떨어뜨린 다음에 잘 문질러준다. 귀 청소를 게을리 하면 금방 귀에 염증이 생기기 때문에 1주일에 최소한 한 번은 꼭 해 주어야 한다.
그 다음에는 항문낭을 짜 준다. 항문 아래 좌우에 있는 작은 주머니를 항문낭이라고 하고, 거기에는 경계표시용 액체가 들어 있어 배설할 때 섞여 나오는데 배설량이 적어 고이게 되면 파열할 수 있기 때문에 매번 짜 주는 게 좋다. 그 액체는 냄새가 고약한데다가 어떻게 짤 줄을 몰라 흔히들 동물병원에 맡기기도 하지만 그 짜는 법은 극히 간단하다. 꼬리를 완전히 위로 젖혀 그 밑 부분을 왼손으로 거꾸로 꽉 붙잡은 다음에, 액체가 튀지 않도록 두꺼운 휴지로 항문을 가린 상태에서 항문 좌우를 문지르며 짜 주면 된다. 강아지를 처음 키울 때 그걸 모르고 안 짜줬는데 어느 날 강아지의 항문 주위가 파열되어 피가 흐르기에 동물병원에 데려간 적이 있다. 항문낭을 짜주지 않으면 항문이 두 개가 된다고 동물병원 사람이 말했다. 그 후로는 목욕시킬 때마다 항문낭을 짜 준다.
마지막 남은 것은 이 닦기다. 치석이 생기기 때문에 1주일에 두세 번은 닦아줘야 한다고 하지만 그렇게까지는 못하고 목욕시킬 때만 닦아준다. 전에 한동안은 귀찮아서 목욕 때도 이를 닦아주지 않았다. 그러다가 재작년 미국에 1년 연수 갈 때 동물병원에서 치석을 제거했는데 사람 치아 스케일링 값보다 네 배쯤 줬던 것 같다. 그 후 2년 반도 더 지났기 때문인지 벌써 치석이 많이 끼었다. 앞으로는 강아지 전용 치석제거기를 구입해서 수시로 치석을 제거해줘야겠다. 목욕 후 손질이 다 끝나면 강아지에게 간식거리를 하나 던져 준다. 반시간 정도 씻고 말리고 하는 동안에 잘 참아준 데 대한 보상이다.
때로는 강아지 목욕시키는 것도 귀찮을 때가 있다. 현대인은 모든 것이 자동으로 되고 온갖 문명의 이기(利器)를 활용하는 시대에 살면서도 늘 바쁘다. 내 경우는 ‘남성전업주부’를 자처하며 시간제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인데도 불구하고 항상 시간에 쫓긴다. 결국 시간배분은 우선순위의 문제다. 강아지 목욕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시간은 충분히 낼 수 있다.
강아지 목욕은 작은 듯 보이지만 실은 큰 일이다. 내가 손톱 깎고 샤워하고 이발할 때 강아지를 한 번 떠올릴 마음의 여유만 있으면 된다. 컴퓨터 앞에만 앉아있는 것보다는 팔을 걷어붙이고 강아지 목욕시키기에 나서는 것이 정신건강에는 훨씬 좋은 것 같다. 그뿐 아니다. 강아지를 목욕시킨 날에는 아내와 아들의 표정과 기분도 달라진다. 내가 행한 한 가지 작은 선한 행동이 나비효과(butterfly effect)를 일으키는 것이다. 1주일 내내 머리만 쓰고 몸 쓸 일이 별로 없는 나 같은 사람에게 이렇게 몸 쓸 기회를 주니 그 또한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첫댓글 심양섭 선생님, 강아지 사진 보았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보살피니까 할아버지 같지 않고 예뻤어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이경자 선생님, 감사합니다. 저희 집 또또는 열세 살인데도 별로 아픈 데도 없고 나이도 덜 들어보입니다. 젊을 때 운동을 많이 시키고 사람 먹는 것은 거의 주지 않고 애완견 사료와 스낵만 줘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올해는 더욱 더 좋은 작품 많이 쓰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