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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지] 곽재용, 장문강
S#1. 박의의 아파트(부루클린)
F. I되면- 자막, <2003년, 부루클린>이 떠오르고- 이어 타이틀이 흐르며-
허름하고 지저분한 아파트, 박의가 침대 옆에 기대어 멜로디가 흐르는 혜영의 목걸이를 만지작거리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전화의 앤서링 머쉰 스위치를 누르는 박의. 테이프가 돌아가며 혜영의 멘트가 들린다.
혜영 : 안녕하세요? 김혜영입니다. 전화를 받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메시지 남겨 주세요. 곧 연락드리겠습니다.
숨을 몰아쉬며 눈물을 흘리고 있는 박의. 다시 한 번 스위치를 눌러 소리를 듣는 박의.
혜영의 멘트가 흘러나오는 동안, 술을 벌컥벌컥 들이마시더니 목걸이를 걸고 권총들을 주머니와 허리춤에 끼우며
비장한 얼굴로 문을 나서는 박의. 엔서링 머쉰에서는 혜영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고- 디졸브-
S#2. 부루클린
부루클린 브릿지가 보이는 거리, 가로등에 불이 들어오고 있다.
축축한 거리의 모퉁이로 모습을 드러내는 박의(朴毅), 가슴에 손을 찔러 넣은 채 비장한 얼굴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권총을 빼어들고 한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박의, 곧이어 총성이 들리며 창문들이 불빛에 번쩍거린다.
총성과 불빛이 이어지다가 건물 안에서 화재발생 경보장치가 울리고- 이어, 창가로 한 남자가 피투성이가 되어 떨어진다.
총성과 불빛은 2층 위로 오르더니 3층, 4층까지 계속 이어지다가-
이어, 건물 밖으로 경찰차들이 들이닥치고- 경찰들 열댓명이 총을 꺼내들고 안으로 뛰어들어간다.
잠시 잠잠한 듯 하더니- 한 발의 권총소리에 이어 경찰들이 쏘는 총소리가 우뢰 처럼 들려온다. 다시 정적이 흐르고-
곧이어- 유혈이 낭자한 박의가 건물 밖으로 토해지듯 나온다.
온 몸이 물에 젖고 피투성이인 박의, 쩔룩이며 도로를 따라 걸어가다가 모퉁이로 사라지고 있을 때에
앰블런스들이 건물 앞으로 달려오고 있다. -디졸브-
S#3. 비행장
비행기가 어둠 속에 불빛을 반짝이며 하늘로 비상을 하고 있다.
S#4. 헬스클럽
암전된 상태에서 자막 <2001년, 서울> -F.I-
헬스클럽에서 땀을 흘리며 운동을 하고 있는 박의. 지친 박의의 얼굴에서 비오듯 땀이 흐르고 있다.
박의 : 내 몸에서는 화약 냄새가 난다. 그건 내 영혼의 냄새다... 죽기 전까지는 육체에서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S#5. 샤워실
샤워를 하고 있는 박의. 피어오르는 뜨거운 증기 사이로 눈이 매섭게 빛나고 있다.
몸에서 허물처럼 벗겨지고 있는 비누거품.
S#6. 화원
리스트의 피아노 소품이 흐르고 있고- 데이지 꽃 한 송이에 벌 두 마리가 앉아있다. 이어, 꽃들 사이로 박의의 얼굴이 보이고-
박의 : 꽃은 화약을 압도하는 향기가 있다.
꽃들을 살펴보는 박의, 벌레들에게 뜯어먹혀 추한 모습의 꽃을 발견하고 냄새를 맡아보더니 잘라내버린다.
박의 : 향기가 없는 꽃은 이미 꽃이 아니다.
화원을 거닐며 꽃들을 관찰하는 박의.
박의 : ...나는 꽃들에게 음악을 들려준다. 향기가 있는 음악... 내 꽃들은 리스트의 피아노 소리를 좋아한다.
밖에서 차가 서더니 한 남자가 국화꽃이 담긴 화분 하나를 들고 들어온다.
화분을 받아서 진열대에 놓는 박의.
박의 : 국화꽃은 내게 할 일이 생겼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화꽃 송이가 화면에 가득차며- 디졸브-
S#7. 박의의 방
화면에 가득찬 국화꽃이 권총의 총구로 바뀌며- 총구를 통해 박의의 사격수 시절의 사진이 보인다.
이어, 총을 겨눠보는 박의, 여러 각도에서 그 모습이 보여진다.
총을 겨누는 사이사이에 삽입되는 플래시 백-
나무에 매달린 허수아비, 총알에 팡-하고 뚫고 지나가며 피가 튄다. 산새들이 후드득 날아가고-
플래시 포워드(마구 흔들리는 화면)- 혜영의 목에서 피가 솟고- 날아가고 있는 목걸이-
정우가 도로를 건너오며 총을 쏴대고 있다. 폐품 더미에서 몸을 굴리며 총을 쏘는 박의.
다시 현실- 생각에 잠겨 권총의 회전축을 볼에 대고 굴리는 박의.
박의 : 리볼버는 현장에 탄피를 남기지 않는다. ...스미스 앤 웻슨 M19, 357 매그넘... 구식이지만
내 손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정확하다... 적이 10미터 안에 있다면 한 치도 틀림 없이 미간의 정 중앙을 맞출 수 있다.
박의가 총을 꺽어 총구를 들여다 보고 각 부분들을 살피다가 한 쪽 눈을 감고 여기 저기를 겨누워 본다.
박의 : 정확한 만큼 ...놈은 무엇보다 예민하다. 총구에 머리카락 하나만 끼여 있어도 총알의 각도가 바뀔 수 있다.
S#8. 락커
키를 돌려 여는 박의. 안엔 누런 종이 봉지가 들어있다. 그것을 꺼내 들고 사라지는 박의.
S#9. 공원
봉지 안에서는 총알 네발과 명함, 사진이 나온다. 명함과 사진을 보고 총알을 쥐어보는 박의.
박의 : 단 한 발도 남겨선 안된다. 만약 총알이 남는다면 반납해야 한다.
경찰의 보고서와 탄알 수가 맞지 않으면 의심받기 때문이다.
S#10. 복합 극장 안
영화를 보고 있는 박의, 주변의 여자들이 눈물을 줄줄 흘리며 통곡을 하고 있다.
영화를 보며 앉아있다가 도중에 시계를 보고 일어나 밖으로 나가는 박의. 극장 복도를 살펴본다.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외인금지를 알리는 금줄을 넘어 층계를 오르는 박의. 비서로 보이는 여자가 사장실에서 나오다가 박의를 발견한다.
여자 : 어떻게 오셨어요?
박의, 미소만 짓고 사장 방으로 들어간다. 의아해서 뒤따라 오는 여자.
앉아서 서류를 보고 있는 사장, 사진 속의 얼굴과 똑같다.
권총을 꺼내 발사하는 박의. 사장의 이마에 정확히 구멍이 뚫리며 서류들이 날려 흩어진다.
박의 : (독백) 하나!
놀라서 소리지르며 달아나는 여자.
박의, 여자에게 아랑곳하지 않고 사장의 머리에 총알 한 방을 더 발사한다.
박의 : 둘!
이어 사장방에서 나와 여자를 쫓아가는 박의. 여자가 옆 사무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버리면- 그 안에서 남자가 뛰어나온다.
안으로 들어가며 남자에게 총을 쏘는 박의. 남자, 심장에서 피가 솟구치며 쓰러지고-
박의 : 셋!
책상 뒤에 움츠리고 숨어있는 여자- 그녀에게 천천히 다가가는 박의.
여자가 책상에 머리를 박고 떨고 있는데- 머리에 사정없이 총을 쏴버린다.
박의 : 넷! ...벌은 꽃을 쏘지 않는다. 하지만 그건 향기가 있을 때이다.
곧바로 몸을 돌려 층계를 내려오는 박의, 박의가 극장 뒷문 쪽으로 내려오면 영화가 막 끝나서 사람들이 우루루 몰려 나오고 있다.
그들에게 합류해서 극장 밖으로 빠져나가는 박의. 이 모든 것이 롱 테이크로 보여진다.
-F.O- 이어 암전된 상태에서 혜영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혜영 : 그는 내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고, 나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 시간이 거의 다 되도록...
내가 그토록 만나고 싶어했던 사람... 말없이 나를 지켜보던 사람... 우리의 첫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S#11. 거리
-F. I- 담벼락에 초상화, 풍경화, 정물화들이 걸려있고- 그 그림들을 주욱 훌터가다 보면 한 남자(정우)의 클로즈 업이 잡힌다.
앞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정우(鄭憂). 또 그를 마주 보는 듯 보이는 혜영의 얼굴. 둘은 서로의 얼굴을 말없이 마주보고 있다.
정우를 마주 보고 있는 혜영의 얼굴에서 서서히 F.O 된다. 암전된 상태- 혜영의 목소리는 계속 이어진다.
혜영 : 월요일에서부터 금요일까지, 난 외삼촌이 경영하는 골동품 가게의 점원이었다.
S#12. 골동품 가게
-F. I- 정갈하게 꾸며진 넓은 골동품 가게,
노란색 조명들이 골동품들을 비추고 있고, 어느 주둥이가 좁은 낡은 화병엔 데이지 꽃들이 피어 있다.
수많은 골동품들 사이에서 얼굴을 드러내는 혜영, 노트에 골동품들의 목록을 정리하고 있다.
혜영 : 그리고... 밤이 되면 아무 생각 없이 내 작품들을 그려댔다. 전시회 때문이었지만...
그때, 난 서서히 골동품처럼 변해가고 있었다.
S#13. 작업실
단출한 원룸, 캔버스들이 이리저리 쌓여있고, 혹은 걸려있다. 그 사이에서 혜영이 그림을 그리고 있다.
혜영 : 토요일과 일요일엔 거리의 화가가 된다.
S#14. 거리
혜영이 의자에 앉아서 초상화를 그리고 있고, 한 쌍의 남녀가 혜영과 마주 앉아서 겸연쩍은 듯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점프컷- 담벼락의 그림들을 배경으로 꼬마가 앉아있다. 그 꼬마의 초상화를 그리고 있는 혜영.
꼬마는 진력이 나는지 꼼지락거리다 벌떡 일어서 달아나 버리고- 엄마로 보이는 여자가 쫓아가 꼬마를 잡아서 다시 의자에 앉힌다.
눈치를 보다가 또 다시 달아나는 꼬마. 혜영이 연필을 놓고 그 모자(母子)를 바라본다.
점프컷- 노인 남자가 포즈를 취하고 앉아있다. 그림이 궁금한지 자꾸만 고개를 길게 빼고 그림을 보고 있다.
점프컷- 미소를 지은 채 포즈를 취하고 있는 한 여자, 하지만 오랫동안 미소를 짓고 있어서 이미 굳어져 있다.
혜영 : 사람들의 초상화를 그리고 있을 때, ...난 사람들의 표정에서 골동품과 비슷한 그 무엇을 느낀다. ...골동품을 보며
먼 옛날의 이야기를 떠올리는 것은... 내 앞에 앉은 사람들의 표정을 보며 그 사람의 인생을 떠올리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다.
점프컷- 혜영의 앞엔 자리가 비워져 있고, 곧 검은 바바리 코트의 남자가 의자에 앉는다. 정우다.
그를 바라보는 혜영, 연필을 잡는다.
혜영 : 하지만 그가 내 앞에 앉았을 때... 난... 그 사람의 인생에 대해 훤히 알고 있는 듯했다.
...바로... 내가 기다리던 그사람이 아닐까 하는 느낌 때문이었다.
무표정의 정우. 도화지에 그려지는 정우의 얼굴- 정우를 바라보는 혜영.
정우의 눈썹. 도화지에 그려지는 눈썹. 정우의 눈. 도화지에 그려지는 정우의 눈, 그리고 입술, 코, 귀 등등이 번갈아 묘사된다.
혜영 : 그는 내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고, 나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한 시간이 거의 다 되도록...
내가 그토록 만나고 싶어했던 사람... 말없이 나를 지켜보던 사람... 우리의 첫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시계를 내려다보는 정우. 혜영, 도화지에서 고개를 들어 정우를 본다. 미안한 듯 미소를 지어보이는 정우.
혜영 : 그는 내가 그림을 반도 채 그리기 전에 시계를 보며 일어섰다.
정우 : 다음에 다시 와서 나머지를 그리면 안되겠습니까?
혜영 : 바쁘신가보죠?
정우 : 예.
혜영 : ...그렇게 하세요. 전... 토요일하고 일요일만 나와요.
끄떡이는 정우,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주며- 미소를 잃지 않고 일어서서 가고-
혜영은 반쯤 그리다 만 정우의 얼굴을 바라본다.
혜영 : 그는 마치 구구단을 외면서 음악 숙제를 하고 있는 어린아이 같았다.
그때, 옆의 화가 한사람이 시계를 보며 보온병에서 커피를 따루어 마신다. -디졸브-
S#15. 작업실
혜영, 그림을 그리려고 이젤 앞에 앉아서 끌쩍거리지만- 반쯤 그려진 정우의 얼굴이 그녀의 시선을 자석처럼 끌어당기고 있다.
혜영 : 전시회 날짜는 다가오고 있었지만 난... 일주일 내내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일을 포기하는 혜영, 침대에 기대어 앉아 커피를 마시며 정우의 그림을 바라보고 있다.
혜영 : ...그의 미완성인 초상화는 많은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게 한다. 나머지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될 수도 있다. ... 하지만 틀림없이 그사람이다. ...그사람이다.
반쯤 그려진 초상화가 화면 가득 차고- 그림이 디졸브 되면, 박의의 얼굴로 변한다. -디졸브-
S#16. 조사장의 사무실 입구
화면 가득찬 박의의 얼굴, 박의가 양 손을 벌리고 무기가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두 남자가 적의를 품고 다가와 검사를 한 후 그를 들여보내준다. 미소로 인사하며 안으로 들어가는 박의.
S#17. 조사장 사무실
박의가 조사장을 바라보고 있다. 돈을 건네주는 조사장, 그 옆에 윤준하가 서있고-
박의, 빙긋 웃으며 손가락으로 다섯을 보여주고 나간다.
준하 : 헷갈라 앤 쿡! 죽이지!
S#18. 거리
혜영이 한 소녀의 초상화를 그리고 있다.
포즈를 취하고 있는 소녀의 뒤로 다가와 혜영을 바라보고 있는 정우, 혜영과 눈이 마주치자 미소를 보내주고-
소녀의 그림이 완성되자 정우가 다가와 앉는다.
혜영 : 토요일 오후 4시 15분... 우리집 전화의 국번호와 같은 시간에... 그는 내 앞에 다시 나타났다.
새 도화지를 꺼내 처음부터 다시 그리려는 혜영.
혜영 : 죄송해요. 제가 부주의해서 ...전에 그리던 그림에 커피를 엎질렀어요.
미소지으며 끄떡이는 정우. 혜영, 정우의 얼굴을 다시 그려가고 있다.
혜영 : ...그는 거실 벽에 자기 초상화를 걸어놓고 감상하려는 사람은 아니다... 왜 내게 사실을 말하지 않는 걸까...
하지만... 사람은 사람들마다 사랑하는 방식이 있는 거다... 그는 끝내 말하지 않을 사람이다.
종이에 그려지는 정우의 초상화, 마무리가 되기 전에 또 시계를 보며 일어서는 정우.
정우 : 또... 가봐야겠네요...
하지만 미소로 답하는 혜영.
혜영 : 또 미완성인 채로 그는 가버렸다. 하지만... 난 다음 주에도 또 그를 볼 수 있다... 또 만날 수 있다.
희망에 잠겨 미소짓는 혜영- 그리다 만 정우의 초상화에서- 디졸브-
S#19. 골동품 가게
골동품들 사이에서 데이지 꽃병을 들고 낡은 의자에 앉아 포즈를 취하고 있는 혜영.
앞엔 그녀의 외삼촌이 주름상자가 달린 낡은 사진관용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주고 있다.
혜영 : 외삼촌이 1915년에 만들어진 프랑스제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주었다.
나도 마치 그 시대에 살았던 사람처럼 데이지 꽃을 안고 포즈를 취했고...
혜영의 여러 가지 포즈. 그리고, 낡은 카메라 옆에서 사진을 찍는 외삼촌의 모습들.
S#20. 작업실
골동품 가게에서 찍은 흑백 사진들- 거기에 혜영이 더 낡게 보이도록 색을 덧칠하고 있다.
그러는 동안, 벽에 걸린 정우의 미완성 초상화(마치 박의의 얼굴처럼 보이는)가 한 쪽 눈만 거울에 반사되고 있다.
마치 그녀를 감시하는 것처럼-
S#21. 거리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들이 주욱 앉아있고, 한 두 사람만 그림을 그리고 있다.
무료하게 앉아있는 혜영. 옆에 앉은 화가가 보온병에서 커피를 따루어 혜영에게 준다. 커피를 마시고 있는 혜영.
혜영 : 다섯시가 되면 내 옆사람은 커피를 마신다.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다행처럼 느껴진다...
초상화가 마무리되면 그는 한동안 찾아오지 않을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디졸브-
S#22. 동.거리
비가 내리고 있고- 화구를 챙겨든 혜영, 화판을 우산처럼 가리고 어느 건물 처마 밑으로 뛰어든다.
그림을 그리던 담벼락을 바라보고 있는 혜영.
S#23. 동.거리
그림들이 걸려있던 담벼락들이 제모습을 드러낸 채 비를 맞고 있고-
그 앞으로 우산을 쓴 사람들이 그림 속의 풍경처럼 지나가고 있다.
혜영 : 오늘... 그 사람은 왜 나타나지 않은 걸까... 난 아주 낭만적인 상상을 해본다.
...그는... 외과병원의 전문의... 나를 만나러 나가려는데, 급한 환자가 들어온다... 할 수 없이 수술실로 다시 들어가고,
힘든 수술 끝에 한 사람의 목숨을 구한다. 그리고 다섯시가 넘어서야 내가 있는 곳으로 출발을 한다.
하지만 교통은 마비되고, 시간은 점점 늦어진다... 그리고 비가 온다. 그는 차에서 내려 달려온다. 비를 맞으면서...
그러다 작은 사고가 일어난다. 빗길에 미끄러지며 어딘가를 다치는 거다. 커다란 상처는 아니지만 옷은 더러워 졌고,
얼굴도 엉망이다. 그런 모습으로 그림을 그려달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래서... 발길을 돌린다.
내일도... 또... 다음 주도 있으니까... 중요한 건 그림이 아니라 그녀를 만나는 거다.
-디졸브-
S#24. 동.거리
혜영이 한 여자를 그리고 있다. 그녀의 애인으로 보이는 남자가 혜영의 뒤에서 참견을 하고 있다.
남자 : 여기... 쌍꺼풀이 조금 틀린데요? 전... 쟤 쌍꺼풀을 제일 좋아해요... 있는 듯 없는 듯 아주 엷잖아요...
그게 제일 매력 있거든요. ...그리고 여기 입술도 있잖아요...
피곤한 듯 보이던 혜영, 정우의 모습이 나타나자 금세 얼굴이 환해진다. 정우가 담벼락 앞에 다가와 서있는 것이다.
정우를 의식하지 않는 척 외면하고 그림을 그리지만 기쁨을 참느라 애쓰는 혜영.
정우의 모습을 다시 보는 그녀, 바바리코트 안으로 팔에 깁스를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이어 여자 그림을 대강 그려서 끝마치는 혜영.
남자 : 어어? 에이 대강 그리면 어떻게 해요? 눈하고 입술 좀 고쳐달라니까.
혜영 : 직접 그려주세요 그게 더 좋을 것 같아요. 자세히 알고 있으니까.
남자 : 에이...
돈을 주고 가는 남녀. 그 자리에 정우가 앉는다. 정우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혜영.
혜영 : 많이 다치셨어요?
정우 : 삔 정돕니다. 앞으로 3일만 이렇게 있으면 되요.
혜영 : 어쩌다가...
정우 : 비오던 날... 빗길에 미끄러졌습니다.
혜영 : ...!
다시 연필을 잡는 혜영. 정우가 혜영을 그윽하게 바라보고 있다.
혜영, 다른 날과는 달리 눈이 따갑다.
혜영 : (독백) 우린 그날 많은 말을 주고받았다. 마치 여러해 전부터 알고 있던 사이처럼...
사실... 그는 나를 여러해 전부터 알고 있었을 것이다.
친근하게 말을 주고받으며 그림을 그리고 있는 혜영과 정우.
그려지고 있는 정우의 초상화, 마무리가 다된 듯 붓을 놓고 정우의 얼굴과 그림을 번갈아 보는 혜영.
정우 : 다 됐어요?
끄떡이는 혜영. 정우, 혜영의 뒤로 와서 그림을 본다. 서로의 볼이 맞닿을 듯 보이고- 혜영은 어쩔 줄 몰라 눈만 깜짝이고 있다.
-디졸브-
S#25. 골동품 가게
손님이 촛대를 사고 돈을 지불하며 나간다. 그때 안으로 들어오는 정우. 혜영, 돈을 정리하느라 정우를 보지 못한다.
혜영 : 어서 오세요.
물건들을 이리저리 보고 있는 정우. 뒤늦게 정우를 발견한 혜영, 미소짓는다.
데이지 꽃이 담긴 화병을 바라보고 있는 정우.
정우 : 이것도 파는 거예요?
정우의 옆으로 다가오는 혜영.
혜영 : 그거 ...가짜예요.
정우 : 이 꽃두요?
혜영 : 아니, 그건 진짜예요.
정우 : 가짜도 팔아요?
혜영 : 때론 그래요... 근데... 제가 여기에 있는지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
정우 : (미소) ...전 모르는 게 없어요.
혜영 : 그 데이지꽃... 사연이 있어요.
정우 : ...?
혜영 : 저희 외삼촌, 가끔 새로 만들어진 물건을 땅에 파묻어요. 한 일년쯤 후에 캐내서 오래된 물건처럼 진열해 놓는 거에요.
근데... 그 화병 속에 데이지 꽃씨가 있었어요. 제가 거기다 넣었거든요. ...일년 후에 가보니까 그 자리에
데이지 꽃이 피어있었대요. 그래서... 외삼촌이 통째로 캐왔어요... 참 신기하죠? 생명이라는 게...
정우 : 데이지 꽃씨라고... 다시 한 번만 말해 주실래요?
혜영 : ...데이지 꽃씨...
데이지 꽃씨...라고 말하는 그녀의 입술을 바라보는 정우.
혜영 : ...?
정우 : ...정말 신기하네요... 이거 살 수 있습니까?
혜영 : ...음...
눈망울을 치켜 뜨고 생각하는 혜영의 표정에서-
S#26. 술집
사람들이 틈도 없이 가득찬 술집,
자리가 모자라 좁은 공간에 놓은 간이 탁자에 마주 앉아 있는 혜영과 정우가 술을 마시며 정답게 이야기를 하고 있다.
데이지 꽃 화분을 마치 애완동물처럼 안고 있는 정우.
시끄러워서 혜영이 악을 쓰며 이야기를 하고, 정우는 귀에 손을 대고 듣는다.
혜영 : ...너무 고마워하지 마세요... 사실 외삼촌... 제 얘기를 듣더니 화병마다 여러가지 꽃씨를 넣어가지고 잔뜩 묻어놨으니까요.
S#27. 혜영의 작업실
커피를 마시며 작품들을 보고 있는 정우와 혜영.
혜영 : ...데이지 꽃씨... 어디서 났는지... 묻지 않으세요?
정우의 표정을 살피듯 바라보는 혜영. 정우, 혜영의 표정을 보더니 미소지으며 그림으로 고개를 돌린다.
작은 다리와 냇가가 있는 그림, 냇가 건너 동산 아래엔 데이지 꽃들이 피어있다.
다시 혜영을 바라보는 정우. 혜영이 정우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다. 조용한 피아노 음악이 흐르며 그 위에-
혜영 : (독백) 그는 내가 기다리던 바로 그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다시 만난 것은 우연이 아니란 것만은 분명하다.
...난 그에게 지난날 내게 일어났던 일을 이야기 해주었다.
-디졸브-
S#28. 동산이 있는 마을 (과거)
기차길이 보이고, 차단기가 있는 건널목이 보인다. 그 주변으로 집들이 보이고 있고- 개천 건너엔 작은 동산이 펼쳐져 있다.
동산 입구에 데이지 꽃들이 피어있고- 개천엔 낡은 통나무 외다리가 하나만 걸쳐져 있을 뿐이다.
멀리서 혜영이 화구들을 챙겨서 자전거를 타고 다가오는 중이다.
혜영 : (독백) 몇해전... 난 여름 내내 그림만 그릴 작정으로 외삼촌 댁이 있는 동네에 틀어박힌 적이 있었다.
그런데... 데이지 꽃이 피어진 곳으로 가려면 반대편 기차길을 다시 건너 한참을 돌아가야만 했다.
혜영이 통나무 앞에 다다르자, 자전거에서 내려 건너편을 바라보다가 다시 자전거에 올라타고 기찻길을 건너 돌아가고 있다.
-디졸브-
S#29. 동. 동산이 있는 마을 (과거)
냇가를 돌아온 혜영이 개천 건너의 동산 입구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S#30. 동. 동산이 있는 마을 (과거)
혜영이 자전거를 세워놓고 통나무 다리 건너를 바라보고 있다.
혜영 : 하루는 자전거를 그대로 둔 채 통나무 외다리를 건너서 그림을 그리러 간 적이 있었다.
화구들을 든 혜영이 통나무 외다리를 비틀비틀 균형을 잡으며 건너고 있다. -디졸브-
냇가 건너편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혜영. 혜영의 건너엔 자전거 혼자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다. -디졸브-
그림을 끝내고 다시 자전거가 있는 곳으로 오기 위해 통나무 외다리를 건너고 있는 혜영,
화구들을 든 양 손을 벌리고 균형을 잡으며 걸어오고 있다.
그러다 엄마! 소리를 내며 미끌어지는 혜영, 간신히 통나무 외다리를 잡고 매달린다. 떨어뜨린 화구들이 냇가에 떠내려 가고 있고-
통나무 외다리에 매달려 있던 혜영, 할 수 없이 물로 뛰어내려 화구들을 잡으러 냇물로 뛰어다닌다.
물에 떠내려 가던 화구들을 집어들고 물에 젖은 채 간신히 냇가를 빠져나오는 혜영. -디졸브-
S#31. 동. 동산이 있는 마을 (과거)
자전거를 타고 가는 혜영, 냇가에서 멀찍이 떨어진 기찻길로 향한다.
혜영 : 그후로 난 개천을 건너기 위해 다시 기찻길을 건너서 돌아가게 되었다.
혜영이 대형 철강코일을 실은 트럭의 바로 뒤를 따라가고 있고, 옆으로 오토바이 한 대가 다가와 트럭을 뒤따른다.
건널목으로 다가가고 있을 때, 차단기가 내려지는 소리가 나고-
혜영은 문득 통나무 외다리가 있는 쪽을 바라본다. 그녀의 눈에 들어오는 작고 예쁜 다리 하나.
혜영 : 난 그날, 그 주위 환경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듯 보이는 작고 예쁜 다리 하나가 새로 놓여진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다리 위엔 비둘기들이 찾아와 앉아있고- 혜영은 미소를 지으며 자전거의 방향을 튼다.
다리로 다가가고 있는 혜영의 자전거, 혜영이 그 다리를 반 쯤 건넜을 때- 우당탕 쾅- 하는 소리가 건널목 쪽에서 들려온다.
놀라서 돌아보는 혜영. 건널목에서는 급히 건너가려던 트럭이 기차를 피하려고 후진을 하다가 뒤따라 오던 오토바이를
덥쳐버린 것이다. 기차가 휘익 지나가고 있는데, 트럭에 실린 커다란 철강코일이 굴러 떨어져 주변을 덥치고 있다.
입이 벌어진 채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는 혜영.
혜영 : 그 작고 예쁜 다리가 내 목숨을 구해 주었다. 처음엔 우연처럼 느껴졌지만...
난 점점 누군가 나를 위해 다리를 놓아주었을 거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디졸브-
석양무렵, 그림을 그리고 자전거를 끌고 다리로 다가오는 혜영.
혜영 : ...난 그 다리를 만들어 준 사람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내 목걸이를 다리에 걸어놓았다.
혜영이 다리 난간에 목걸이를 걸어주고 있다. 이어, 자전거를 끌고 다리를 보며 멀어져 가고 있는 혜영.
이어 디졸브되며 스카이라인을 배경으로 씰루엣의 남자가 다리에 걸린 목걸이를 벗겨서 바라보고 있다.
혜영 : 다음날... 누군가가 목걸이를 가져갔고... 그사람의 흔적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다음해 ...내가 외삼촌을 따라 골동품 가게에 나왔을 때... 누군가 내게 데이지 꽃을 배달해 주었던 것이다.
내 목숨을 구해주고서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그사람만이 내가 데이지 꽃을 그리러 먼 길을 돌아갔던 사실을
알고 있었다. ... 그 사람은 실제하고 있었던 것이다.
-디졸브-
S#32. 혜영의 작업실
샤갈 풍의 한 그림을 보고 있는 혜영과 정우. 혜영의 눈에 이슬이 맻혀있고-
골동품 가게 안에서 누군가가 데이지 꽃을 전해주고 있고, 혜영으로 보이는 여자가 창밖을 주시하고 있는 그림,
창밖엔 남자의 그림자가 골목에 길게 드리워져 있다.
혜영 : 이사람은 꽃 배달원이에요. 데이지 꽃을 저한테 주고 있죠. 전 이걸 전해주라고 시킨 사람이 누굴까 궁금해서
창밖을 보고 있어요. 창밖엔 아무도 없었죠 그래서 그림자로 표현 했어요. ...너무 소녀틱 하죠?
정우 : ...!
혜영 : ...데이지 꽃씨... 그 꽃에서 모아놓은 거죠... 몇 년 전 일이에요.
정우, 발을 옮기며 화판 쪽으로 걸어간다. 계속 그림을 보며 말하는 혜영.
혜영 : 사람은 누군갈 좋아하게 되면 그걸 숨기지 못하죠... 아무리 숨기려 해도 나타나게 되어있어요.
그런데... 그 사람은 끝끝내...
그때, 무심코 혜영의 화판을 들치는 정우, 정우의 미완성 초상화가 숨겨져 있다.
정우 : 그림에 ...커피를 엎질렀다는 말... 사실이 아니죠?
돌아보는 혜영. 정우가 그림을 들어 보여준다.
순간 당황하는 혜영, 아무렇지도 않은 척 말을 돌린다.
혜영 : 네 ...데이지 꽃... 잊을만 하면 보내주고 또 보내줬어요...
그 동안 정우가 혜영의 어깨에 손을 짚으며 그녀 앞으로 다가선다. 혜영, 어쩔 줄 모르고 서있고-
정우 : 사람은 누군갈 좋아하게 되면 그걸 숨기지 못하죠...
혜영 : ...혹시 마음 속에 숨기고 있는 것이 있다면 말해주세요...
정우 : ... 말해줄 것 같으면 왜 지금까지 숨겨왔겠어요...
혜영 : ...그사람이군요... 그렇죠?
정우, 미소만 짓더니 혜영을 안으며-
정우 : 데이지 꽃씨...라고 한 번 만 더 말해보세요!
혜영 : ...데이지 꽃씨...
정우, 그때 혜영을 안으며 키스를 한다.
혜영 : ...읍!
입술을 떼는 혜영, 눈물이 흐른다.
혜영 : 말해보세요... 언제부터 절 알게 됐는지... 전 궁금해 죽겠어요...
정우 : ...아주 먼 옛날부터...
다시 키스를 하는 정우. -F.O-
S#33. 락커
열쇠로 문을 열면 크레파스 상자가 들어있다. 집어들고 걸어가는 박의.
S#34. 박의의 방
크레파스 케이스를 열면 크레파스들 사이에 손가락 만한 크기의 총알 다섯 개가 끼워져 있다. 빙긋 웃는 박의.
S#35. 정우의 집
짧은 F.I-
창가에 데이지 꽃 화병을 내놓는 정우, 이어 바바리 코트와 저고리를 벗으면 가슴에 차고 있는 권총이 들어난다.
TV를 켜놓고 창가에 기대어 신문을 보다가, 신문 너머로 화병을 바라보는 정우.
정우 : 지금까지 난 그녀를 속이고 있었다...
-F.O-
S#36. 거리(정우의 과거)
혜영이 초상화를 그리고 있고, 정우가 마주 앉아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혜영이 도화지로 눈을 돌리면 정우는 그녀의 너머, 도로 건너편의 한약 재료상을 바라본다.
평범해 보이는 한약 재료상 안, 남자 주인이 물건들을 돌아보고 있다.
정우 : 그녀의 모델이 돼서 자리에 앉으면 그 가게가 한 눈에 훤히 들어온다.
게다가 그녀가 나를 가리고 있어서 놈들에게 발각될 염려도 없다.
진지하게 정우의 얼굴을 관찰하며 그리고 있는 혜영. 정우의 눈, 입술, 코 등등이 그려지고-
혜영의 등 뒤에서 본 모습- 정우가 그녀에게 가려서 보이지 않다가,
한 쪽으로 슬며시 머리를 내밀어 그녀의 뒤에 보이는 한약 재료상을 살핀다.
차가 한 대 도착하고, 남자가 자루들을 가지고 내린다. 곧바로 출발하는 자동차-
안으로 들어가는 그 남자가 정우의 시점으로 보이고-
그러다 혜영이 고개를 들면 정우의 머리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정우 : 그 가게에선 모종의 거래가 이뤄지고 있었다.
가게 안에서 주인과 남자가 은밀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듯 보인다. 이어 남자가 나오면 정우가 시계를 확인하며 일어선다.
정우 : 다음에 다시 와서 나머지를 그리면 안되겠습니까?
혜영 : 바쁘신가보죠?
정우 : 예.
혜영 : ...그렇게 하세요. 전... 토요일하고 일요일만 나와요.
그녀에게 미안한 듯 인사를 하며 가는 정우, 도로의 건너편에서 남자가 가는 방향으로 따라서 걷고 있다.
골목 안으로 사라지는 남자. 정우도 도로를 건너 골목으로 들어간다. 골목의 모퉁이를 돌아가고 있는 남자의 옷자락이 슬쩍 보인다.
발걸음을 재촉하며 모퉁이를 돌아가는 정우. 골목은 넓게 뚫려 있지만 남자의 행적은 보이지 않는다.
두리번거리는 정우, 이리저리 왔다갔다 해보지만 남자를 찾을 수 없다.
남자를 찾는 정우의 모습이 마치 누군가의 시점처럼 부감으로 보이고-
S#37. 거리
혜영이 정우의 초상화를 다시 그리고 있다. 마주 앉아서 혜영을 바라보는 정우.
정우 : 그녀 앞에 두 번째 앉아있을 때, 난 두 가지 새로운 것을 발견했다. 첫째... 내 섣부른 미행 때문에
그들의 행동이 조심스러워졌다는 것... 둘째... 그녀가 생각보다 아름다운 외모를 가졌다는 것이다.
진지하게 그림을 그리고 있는 혜영의 모습.
정우 : 그녀는 나를 좋아하는 것처럼 보였고, 내 마음도 조금씩 움직여가고 있었다.
다음에는 다른 장소를 찾아봐야지... 그렇게 생각했다.
S#38. 건물 안
혜영이 화판 앞에서 무료하게 앉아있는 모습이 멀리 보이고, 길 건너에 한약재 상회가 전신주에 반쯤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다.
건물의 창가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정우의 시점이었다.
정우 : 세 번째 발견... 나는 그녀를 훔쳐보는 것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고...
자판기에서 커피를 꺼내 마시는 정우, 옆사람에게 커피를 받아 마시고 있는 혜영을 보자 건배하듯 잔을 들어보인다.
정우 : 그녀는 날 처음 만난 시간에 의미를 두었다. 4시 15분... 그녀의 전화 국번과 같기 때문이다.
오늘은... 다섯시에 그녀와 커피를 마셨다...
-디졸브-
비가 창문을 때리고 있고, 혜영이 화구들을 챙겨 옆 건물의 처마 밑 으로 뛰어들고 있다. 그녀를 지켜보고 있는 정우.
혜영, 초상화를 그리던 장소를 바라보며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 정우, 혜영의 그 모습을 보며 찡한 느낌을 받는다.
그러다, 한약재 상회로 눈길을 돌리는 순간- 남자가 우산을 펴들고 가게를 나서고 있다.
얼른 계단 아래로 뛰어내려가는 정우.
S#39. 거리
남자가 골목 안으로 사라지고, 도로를 건너온 정우는 다른 골목으로 들어가 남자와 마주치는 길을 택한다.
하지만 남자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다. 두리번거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길을 걷고 있는 정우.
그때- 별안간 남자가 뛰어들며 칼로 어깨를 푹 찌른다. 피를 흘리며 넘어지는 정우.
남자, 피식 웃으며 내려보다가 발로 몇대 차더니 몸을 돌려 사라지고-
정우는 어깨를 잡고 고통스러워하면서도 그를 뒤따라 뛰고 있다.
얼마만큼 뒤쫓다가 포기하고 벽에 기대는 정우, 달아나는 남자를 멍하니 보고만 있다. -디졸브-
S#40. 거리
혜영이 한 여자의 초상화를 그려주고 있고, 남자 친구가 혜영의 옆에서 참견을 하고 있다.
팔에 깁스를 하고 나타나는 정우.
정우 : 그날은... 순전히 그녀를 만나기 위해서 그 자리에 가게 되었다.
혜영이 그를 발견하고 기쁨을 참지 못하고 있다.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는 정우. -짧은 F.O-
S#41. 혜영의 작업실
암전된 상태에서 정우의 목소리가 들린다.
정우 : 난 그녀의 눈빛에서 과거에 자신을 사랑하던 남자와 나를 동일시 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질투심을 느끼게 하는 눈빛이었다...
-F.I-
혜영의 작업실에서 정우를 바라보고 있는 그녀의 모습.
정우 : 난 그가 아니지만... 그때 그녀를 만났다면... 나도 그렇게 해주었을 거란 생각으로 위안을 했다. 나도 그녀를 사랑하니까...
사랑하니까... 내가 그녀를 사랑하는 이유는...? 지난날의 작은 일 하나를 잊지 못하고 고마워 하는 성격이니까...
...사랑을 하면 물구나무를 서야한다. 그래야... 머리가 몽롱해지는 걸 막을 수 있다...
S#42. 정우의 집
짧은 F.I- 창밖엔 비가 오고 있고- 데이지 꽃이 비를 맞고 있다.
안쪽의 한 구석엔- 정우가 침대 옆에서 물구나무를 서고 있다.
정우 : ...고백해야지... 일부러 속인 건 아닙니다... 전 사실... 혜영씨가 생각하던 옛날의 그 왕자님이 아닙니다...
하지만 저도 사랑합니다... 고백하기 전에... 선물을 하나 준비하는게 좋겠군... 어떤 선물이 좋을까...
S#43. 박의의 집
조립되고 있는 저격용 총. 여러 부품들의 극단적인 클로즈 업들이 보이고, 손가락 만한 총알이 삽입된다.
S#44. 거리
혜영의 앞자리로 와서 앉는 정우, 말없이 미소만 지어 보인다. 또 그렇게 정우를 마주보는 혜영.
정우가 두 손을 들어 아무것도 없음을 보인다. 마술을 보이려는 것을 알고 기대하며 바라보는 혜영.
손을 마주 쥐었다가 떼면서 가는 실을 잡아 뽑는 정우, 실에 아주 작고 앙증맞은 만국기들이 따라나온다. 웃는 혜영.
이어 그 실에 딸려 나오는 목걸이. 혜영이 놀라서 바라본다.
정우는 만국기를 떼어내고 혜영의 목에 목걸이를 걸어준다.
정우 : 옛날 그 목걸이가 아니라 실망하셨죠?... 새로 산 거에요... 오늘... 다 말할께요... 고백할려고 마음 단단히 먹었어요.
혜영, 미소 지으며 정우를 바라보고-
혜영 : 오늘 손님도 없는데 그냥 일어설까봐요. ...무슨 고백인지 빨리 듣고 싶기도 하구요...
정우 : 저 한 장 더 그려줘요.
혜영 : 또요?
정우 : 응.
혜영 : 이제 안보고도 그릴 수 있어요.
하며 목걸이를 잡고서 내려다보는 혜영.
정우가 그때, 한약재 상회를 넘겨다본다. 그 건물 3층 쯤에서 뭔가 반짝이는 것이 보이고- 정우가 의아해서 바라본다.
정우의 시선을 본 혜영, 무언가 하여 고개를 돌려 뒤를 본다.
순간, 그 건물의 3층 쯤에서 번쩍 하며 탕- 소리와 함께 불꽃이 번쩍이더니- 혜영의 목에서 피가 튀어 정우의 얼굴에 퍼진다.
목걸이가 팽그르르 돌며 공중으로 날아가는 모습이 고속으로 잡히고- 이어지는 비명소리- 이어, 어지럽게 흔들리는 카메라-
정우의 어깨로 혜영의 목을 스친 총알이 관통한 듯 피가 흐르고 있고-
혜영, 영문을 모르며 멍하게 정우를 바라보고 있더니- 옆으로 스르르 쓰러지고 있다. 그녀를 부축하려고 머리를 숙이는 정우,
그 사이에 또 한 발의 총알이 담벼락의 그림에 구멍을 내자- 정우, 권총을 꺼내며 옆사람 들에게 소리지른다.
정우 : 빨리 앰뷸런스 불러주세요! 빨리요!
총을 들고 몸을 일으켜 차도를 건너 뛰어가는 정우.
이어, 건물 3층에서 내려다 본 장면, 정우가 총을 공중에 쏴대며 차도를 건너오고 있다.
달리던 차들이 정우의 앞에서 브레이크를 밟으며 서고- 그의 옆으로 또 총알 하나가 스치며 아스팔트에 생채기를 낸다.
흥분한 정우, 총을 겨누며 건물 안으로 뛰어들어간다.
S#45. 한약재 상 건물
흥분한 정우, 뛰어들어오며 앞을 가로막는 주인과 청년을 닥치는 대로 쏴댄다. 총을 맞고 벌렁 나가떨어지는 주인과 청년.
눈이 뒤집힌 채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 계단 위로 오르는 정우. 정우의 시선에 옥상으로 빠져나가는 그림자가 잡힌다.
정우, 총을 겨누어 쏘려다가 있는 힘을 다해 옥상으로 뛰어올라간다.
S#46. 건물 옥상
문을 열고 뛰어나오는 정우. 하지만 총알이 기다렸다는 듯 그의 가슴으로 파고든다.
푹 고꾸라졌다가 다시 몸을 일으키는 정우. 지붕을 타고 사라지는 남자의 뒷모습이 보인다.
힘겹게 몸을 지탱해 가며 총을 팡팡 쏴대는 정우. 하지만 남자는 떡하니 멈춰 서서 정우를 비웃듯이 바라보고 있다.
박의, 그의 차가운 모습-
정우가 쏜 총알이 바로 옆으로 스치며 벽에 구멍을 내고 있는데도 박의는 여유 있게 몸을 돌려 모퉁이로 사라지고 있다.
정우, 남은 총알을 다 쏴대고도 빈 총의 방아쇠를 당기고 있다.
이어 테라스에 기대며 길 건너의 혜영이 쓰러진 곳을 바라보는 정우, 사람들이 그녀 주변으로 모여들어 에워싸고 있고-
앰뷸런스가 도착해서 혜영을 싣고 있다.
점점 의식을 잃어가고 있는 정우, 테라스에 기댄 채 스르르 쓰러져가고 있다. -F.O-
S#47. 병원 병실
-F.I-
간호사, 데이지 꽃을 들고 들어와 화병에 꽃아주고 혜영이 침대에 앉아서 미소짓는다.
간호사 : 시들만 하면 꽃이 배달되네요... 그쵸?
혜영 : ...
간호사 : 어때요? 오늘 기분은 괜찮아요?
수화로 답하는 혜영. 수화는 혜영의 독백처럼 처리된다.
혜영 : (수화) 네, 좋아요. 나 이제 수화 잘하죠?
간호사 : 정말 수준급이네요.
혜영 : (수화) 혹시... 스위트피라는 꽃 알아요?
간호사 : ...스위트피? 아니요? 근데 왜요?
혜영 : (수화) 꿈에서 봤어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꿈에서 이름을 알게 됐어요. 꽃잎이 나비처럼 날아다니더라구요.
간호사 : 그래요? 좋은 꿈 같은데요... 그럼 편히 쉬세요.
간호사 나가고, 혜영의 표정이 슬픔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디졸브-
S#48. 골동품 가게
혜영이 데이지 꽃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고- 외삼촌이 낡은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주고 있다.
혜영 : 외삼촌은 내가 다시 출근하게 된 기념으로 사진을 찍어주었다.
외삼촌 : 하나, 둘 셋!
찰칵, 셔터가 열렸다 닫히며- 혜영의 포즈가 흑백 사진으로 정지된다. 정지된 흑백 사진-
S#49. 혜영의 작업실
정지된 사진이 그대로 이어지며 즘-아웃되면, 혜영의 뒤에 거리가 보인다.
확대된 사진에 정우를 닮았지만 얼굴이 분명치 않은 한 남자가 거리에 서있는 모습이 보이고-
정우를 닮은 그 남자에게 시선을 집중하는 혜영.
혜영 : 그 사람이다... 분명 그 사람이다. 그사람이 또다시 날 지켜보고 있었다.
S#50. 거리
혜영이 화가들 사이에 앉아서 초상화를 그리고 있다.
혜영 : 그 사람이 나타나 줄거란 기대 때문에, 난 다시 거리로 나오게 되었다.
초상화가 마무리 되고, 포즈를 취했던 중년 여인이 그림을 받아서 일어난다.
이어 그녀 앞으로 한 남자가 앉고 있다. 정우라고 생각하고 고개를 드는 혜영, 하지만 박의가 앉아있다.
혜영 : ...
손짓으로 얼굴을 조금 왼쪽으로 돌려달라고 표시하는 혜영. 박의가 그대로 따르고-
혜영은 됐다고 고개를 끄떡이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박의 : 그녀에겐 특별한 향기가 있다. 마치 데이지 꽃에 둘러싸여 있는 느낌이다.
그림을 그리고 있는 혜영. 박의는 말없이 혜영을 바라보고 있고-
도화지에 입술, 눈, 눈썹, 코 등이 그려진다. 그림은 마치 정우의 미완성 초상화처럼 보인다.
잠시 멈짓 하는 혜영, 다시 그리려다가 손을 떨고만 있다.
눈물이 핑 도는 혜영, 눈물을 한 번 훔치더니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박의. -디졸브-
S#51. 거리(밤)
사람들이 차도로 나와서 택시를 잡고 있다. 그중에 혜영도 보이고,
그녀 앞에 택시가 서면 혜영은 운전수에게 동네 이름을 적은 작은 종 이를 보여준다. 그냥 가버리는 택시.
한숨을 푹 꺽어쉬고 다시 다가오는 택시에 손을 드는 혜영. 택시가 멈추고 혜영은 또 동네 이름을 쓴 종이를 보여준다.
택시 운전수, 피식 웃으며 가버리고- 혜영은 할 수 없이 보도를 따라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얼마만큼 갔을 때, 옆으로 다가와 서는 자동차 한 대. 혜영이 바라보면- 박의가 운전석에서 혜영을 바라본다.
박의 : 타세요. 데려다 드릴께요.
어쩔 줄 몰라 망설이고 있는 혜영.
S#52. 박의의 자동차 안
리스트의 피아노 소품이 흐르고 있고- 혜영이 박의의 옆에 타고 있다. 아무 말 없이 가고 있는 두 사람.
혜영 : 그는 리스트의 피아노 소품이 흐르는 차 안에서 내게 딱 한 번 입을 열었다.
박의 : 전 화원을 하나 가지고 있습니다... 무슨 꽃을 좋아하세요?
혜영이 수첩에 ‘데이지’라고 써서 보여준다. 힐끔 바라보고 다시 전방을 주시하는 박의.
S#53. 혜영의 집 앞
혜영이 차에서 내리고, 고맙다는 말을 쓰려고 수첩을 꺼내 펼쳐든다.
박의 : 괜찮습니다. 수화로 하세요.
말을 하며 손으로 수화를 하는 박의. 미소짓는 혜영, 수화로 고맙다고 표현해 준다.
박의 : 아닙니다.
‘천만에요’라고 수화를 하는 박의. 혜영이 미소지으며 바라보고 있고-
박의가 차를 출발시킨다. 멀어지는 차를 바라보고 있는 혜영의 얼굴에서- 디졸브-
S#54. 화원
데이지 꽃 다발을 만들고 있는 박의.
S#55. 락커
라커를 열고 데이지 꽃다발과 종이 봉지를 안에다 넣고 다시 길을 가는 박의.
S#56. 거리
혜영의 앞 의자에 다가와 앉는 박의. 혜영, 어제는 너무 고마웠다고 수화를 한다.
혜영 : (독백) 그는 일곱시 육분에 내게로 왔다. 정말... 누군가를 생각나게 하는 사람이다.
박의가 혜영을 무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더니 손을 들어올리며 수화를 하기 시작한다.
혜영 : 그는 수화에도 사투리가 있다며 각 지방의 사투리 수화를 보여주었고...
같은 수화를 어떨땐 액션을 크고 빠르게, 또는 액션이 작고 느리게 하고 있다.
그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는 혜영, 그러다 입을 가리고 웃는다.
혜영을 바라보던 박의, 무표정으로 있다가 자신도 웃긴지 피식 하고 한 번 웃는다.
그동안 옆사람은 무슨 말을 했나 의아해서 갸우뚱거리고 있다.
S#57. 레스토랑
피아니스트가 피아노 솔로를 치고 있고- 혜영은 밝은 모습으로 열심히 수화를 하고, 박의는 열심히 듣고 있다.
혜영 : 수화였지만... 나도 오랫만에 수다를 떨어댔다. ...그러다 그는 갑자기 다녀올 데가 있다며 잠시동안 자리를 비웠다.
시계를 보던 박의, 양해를 구하고 일어나 밖으로 천천히 걸어나간다.
S#58. 레스토랑 앞
천천히 여유있게 걸어나오던 박의, 별안간 속력을 내서 뛰기 시작한다.
S#59. 락커
라커가 열리고, 박의가 봉지를 집어들고 뛰어간다.
S#60. 호텔 객실 층
숨을 몰아쉬며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복도 귀퉁이에 기대며 신문을 펴든다.
곧이어 중년 남자가 한 여자와 함께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비틀 거리며 박의 앞을 스쳐지나간다.
신문지 안에 겹쳐 잡고 있는 사진과 남자의 얼굴을 비교하는 박의, 동일인 임이 확인되자 엘리베이터를 바라본다.
엘리베이터 숫자판은 위로 계속 올라가고 있다.
여자에게 부축되어 문 앞으로 다가가는 남자, 문 앞에서 입을 맞추고 있다.
박의, 다시 몸을 돌려 엘리베이터로 가서 스위치를 눌러 놓는다.
그동안 취한 남자는 포옹을 풀며 열쇠로 문을 열려지만 잘 안되고 있다.
여자가 키를 달라고 하지만 이리저리 빼며 고집스럽게 열려고 하는 남자. 엘리베이터는 다시 하강을 시작하고-
남자가 있는 방향으로 주머니에 손을 푹 찔러 넣은 채 여유있게 다가가는 박의. 그동안, 엘리베이터는 내려오고 있고-
박의, 남자와 여자가 열쇠를 가지고 옥신각신 하는 동안 그들을 스쳐지나간다.
마치 다른 방을 찾듯이 그들을 지나쳐 걸어가고 있는 박의, 내려오는 엘리베이터 소리가, 땡- 하고 들리자
획 돌아서며 권총을 꺼내 빠른 걸음으로 남녀에게 다가간다. 그들을 스치며 총을 탕탕탕- 쏴대는 박의,
이어 쉬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엘리베이터로 다가간다. 엘리베이터 문은 이미 열려 있고, 박의가 올라타자마자 문이 닫힌다.
S#61. 호텔 로비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박의가 내려 여유있게 걸어가고 있다.
S#62. 호텔 앞
회전문을 나온 박의, 급히 달려가고 있다.
S#63. 락커
락커 문을 열어 데이지 꽃을 꺼내들고 권총이 든 봉투를 넣는 박의, 문을 잠그고 급히 뛰어가고 있다.
S#64. 레스토랑
혜영이 홀로 앉아있다.
혜영 : 그사람을 기다리고 있을 때, 전기가 나가서 어둠에 잠기게 되었다.
갑자기 불이 꺼지고- 사람들은 어수선하게 큰 소리로 떠들어댄다.
혜영 : 난... 어둠 속에서는 수화를 할 수 없다는 서글픈 생각을 하고 있었고,
웨이터가 하늘하늘 흔들리는 촛불을 가져다 놓고 간다.
혜영, 촛불 위를 올려다 보면- 데이지 꽃을 들고 서있는 박의가 보인다.
혜영 : 그 사람은 어느새 내 앞에 와 있었다. 난 그때서야... 그사람이 왜 자리를 비웠는지 알 수 있었다.
박의가 혜영에게 꽃다발을 전해주며 수화를 한다.
박의 : (수화) 당신의 말은 이제 빛이 전해줍니다.
혜영 : (독백) 당신의 말은 이제 빛이 전해줍니다...
눈물을 글썽이며 미소짓는 혜영. -디졸브-
S#65. 술집
사람들이 틈도 없이 가득찬 술집, 사람들의 취한 목소리가 담배연기처럼 가득찬 실내-
자리가 모자라 좁은 공간에 놓은 간이 탁자에 마주 앉아 있는 혜영과 박의, 수화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디졸브-
S#66. 혜영의 집
피아노 솔로가 이어지며- 혜영이 들어오고 뒤따라 박의가 들어온다. 커피 물을 올려놓는 혜영.
혜영 : 그리고 며칠 후, 난 그에게 데려다 줘서 고맙다며 커피를 대접했다.
방안을 거닐며 그림을 보고 있는 박의, 추억에 잠겨 눈물이 솟을 듯하다.
혜영은 커피를 타고 있고- 박의가 <데이지 꽃이 있는 풍경> 그림을 보는 순간, 전화 벨이 울린다.
동시에 돌아서서 전화를 바라보는 박의와 혜영. 엔서링 머쉰이 작동하고 있다.
소리 : 안녕하세요? 김혜영입니다. 전화를 받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메시지 남겨 주세요. 곧 연락드리겠습니다.
전화는 아무 말 없이 끊기고- 이미 잃어버린 그녀의 목소리를 들은 두 사람, 묘한 감정에 휩싸인다.
박의 : ...!
혜영 : ...!
혜영, 흐느낌을 참으려 주방으로 다가가 커피를 타고 크림을 넣기 위해 길쭉한 크림통에 작은 스푼을 넣는다.
작은 스푼으로 크림을 퍼낼 수 없자, 통을 기울여 커피잔에 붓는 혜영, 그러다 크림이 후루룩 쏟아져 커피잔과 바닥에 잔뜩 쏟아진다.
그때서야 참았던 흐느낌을 토해내는 혜영.
박의가 혜영에게 다가가 어깨에 손을 대려다가 그만두고,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심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디졸브-
S#67. 혜영의 집
정우의 미완성 초상화, 마치 박의를 그린 것처럼 보인다.
혜영이 멍하니 앉아 바라보고 있다. 외면하며 입술을 깨무는 혜영.
혜영 : 얼마후, 그는 날 화원으로 초대했다.
-디졸브-
S#68. 화원
박의의 화원, 혜영과 박의가 꽃들을 보며 걷고 있다. 꽃들을 보며 이야기를 하는 둘의 여러 모습이 물결 흐르듯 디졸브로 겹쳐지며-
혜영 : 그는 꽃들의 이름과 꽃말들을 가르쳐주었다...
박의 : 이건 상사화라고 합니다. 꽃이 필땐 잎이 말라버리기 때문에 꽃하고 잎은 영영 만나지 못하죠. ...이름이 슬프죠?
끄떡이는 혜영.
혜영 : ...!
박의 : 이건 스위트피입니다. 꽃잎이 바람에 날릴 때 마치 나비가 날아가는 것같죠... 그래서 꽃말이 작별입니다.
혜영 : 스위트피... 꿈에서 본 적이 있는 꽃이다... 나비로 착각했던...
박의가 꽃잎 하나를 따서 혜영에게 주면, 혜영이 후-불어 공중으로 날려보내 본다.
하늘하늘 날개짓하듯 날아가고 있는 스위트피 꽃잎. 디졸브-
S#69. 동.화원
데이지 꽃을 보고 있는 혜영과 박의.
혜영 : 그리고... 데이지 꽃을 보고 있을 때... 그는 내게 청혼을 했다.
박의, 어느새 혜영의 뒤로 다가와 서있다. 혜영에게 목걸이를 걸어주고-
혜영은 어색한 듯 목걸이을 내려다 보고 있다. 야릇한 감회-
박의 : ...어둠 속에서도 대화를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어요.
박의, 혜영의 어깨 너머에서 그녀의 손을 잡고 있다. 그녀의 손을 잡은 채 천천히 수화를 하는 박의. 혜영, 눈을 감는다.
혜영의 손을 잡은 박의의 손은 ‘저와 결혼해 주세요.’ 란 뜻의 수화를 하고 있다.
혜영 : ...저와 ...결혼해 주세요.
스위트피 꽃잎이 그녀 앞으로 하늘거리며 떨어지고 있고- 눈물을 흘리는 혜영, 몸을 돌려 박의에게 수화를 해준다.
혜영 : 죄송해요... 전 아직 아무런 결정도 하지 못하겠어요... 아니... 고백할 게 있어요...
박의 : ...!
혜영 : 얼마전... 제가 다치기 전까지... 만나던 사람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사람은... 오래 전부터... 절... 지켜보면서 사랑해준 사람이었어요...
혜영, 눈물을 흘리며 수화를 계속하고 있다.
혜영 : 아주.. 오래된 일이지요... 데이지 꽃이 피어있는 동산이 있었어요.. 전 자전거를 타고 그림을 그리러 그곳으로 가곤 했지요...
그런데 그곳으로 가려면 작은 외나무 다리를 건너야 했어요... 전 그 다리를 잘 건널 수 없었기 때문에...
반대편의 기찻길을 건너서 한참을 돌아가곤 했지요... 그러던 어느날... 전 그 다리를 건너봐야겠다고 생각하고...
박의의 머릿속에 그때의 광경이 그려지고 있다. 디졸브-
S#70. 동산이 있는 마을 (과거)
혜영의 대사가 흐르는 동안 박의의 시점으로 멀리 자전거를 타고 가는 혜영의 모습이 보인다.
이어 자전거를 외나무 다리 앞에 세워놓고 건너가는 혜영의 귀여운 모습- 그림을 그리는 모습-
다시 자전거가 있는 곳으로 건너오다가 미끄러져 매달리는 모습- 물에 첨벙첨벙 빠지며 화구를 줍는 모습 등이 보인다. 그 위에-
혜영 : 건너갔지만... 그림을 그리고... 돌아오던 길에 다리에서 미끌어져 떨어지고 말았지요... 그런데... 며칠후에...
전 아무 생각없이 기찻길을 건너려고 커다란 트럭을 뒤따르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제가 물에 빠진 곳에 작고 예쁜
다리 하나가 새로 놓여진 것을 알게됐지요. 전 자전거를 돌려 그 다리를 건너기로 마음먹었어요... 그런데... 제가...
다리를 반 쯤 건넜을 때였어요... 기찻길에는 사고가 났고... 만약 제가 그 트럭을 뒤따라갔으면 죽었을 거에요...
그 다리가 절 구해준 거였지요... 그 다리를 만들어준 사람... 그 이후엔 나타나지 않다가... 제가 있던 골동품 가게로
데이지 꽃을 보내주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그사람이... 그렇게 보고싶던 그사람이 제게 나타났지요...
그사람은 숨기려 했지만 전 알 수 있었어요. ...근데... 그사람이 또 나타나질 않는 거예요... 제가 다친 것 때문에...
죄를 졌다고 생각하는 거지요... 그사람... 아직도 저를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도 들고... 마음 속에서 지우지 못하고 있어요...
죄송해요...
혜영이 앙증맞은 다리를 바라보며 목걸이를 걸어주고 가는 모습에서. 디졸브-
S#71. 화원
혜영의 말을 들으며 터져나올 것같은 눈물을 참고 있는 박의. 디졸브-
S#72. 거리
혜영이 눈물을 흘리며 걷고 있다.
S#73. 화원
박의, 참고 있던 눈물을 쏟으며 주머니에서 혜영이 옛날에 다리에 걸어놓았던 목걸이를 꺼내 보고 있다.
자신과의 추억을 몰라주는 혜영에 대한 원망과 자책이 겹쳐서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는 박의.
이어 옛날 다리에서 박의가 목걸이를 집으며 바라보고 있는 장면이 겹쳐진다. 디졸브-
S#74. 혜영의 작업실
창밖에 비가 내리고 있고-
혜영이 고민에 잠겨 있다. 창문을 열더니 들이치는 비를 맞으며 하늘을 향해 눈을 감고 서있는 혜영.
혜영 : 난... 전시회 날짜를 4월 15일로 잡아 놓았고... 청혼에 대한 대답을 4월 15일... 4시 15분 이후로 연기해 놓았다.
비를 맞던 혜영, 전화벨 소리가 나자 휙 돌아본다. -F.O-
S#75. 형무소 앞 (정우의 과거)
F.I- 문이 열리고 정우가 나와서 걸어가고 있다.
S#76. 골동품 가게 앞
정우가 길 건너편에서 골동품 가게 안을 바라보고 있다. 혜영이 외삼촌과 같이 있는 모습이 보인다.
떨리는 심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정우. 정우의 눈에 비치는 혜영, 외삼촌과 대화를 하는데 수화를 사용하고 있다.
그 광경을 보고 놀라서 눈물이 핑그르르 도는 정우. 삼촌이 혜영에게 사진을 찍어주려는 듯 낡은 카메라 앞에서 준비를 하고 있다.
입술을 떨며 그 모습을 바라보는 정우, 죄의식만큼 박의에 대한 분노도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S#77. 거리
죄책과, 슬픔, 그리고 총을 쏜 자에대한 분노로 감정을 추스리지 못하는 정우,
거리를 걷고 있는 그의 얼굴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다. 디졸브-
S#78. 초등학교 놀이터
정우가 죄책과 분노를 삭히지 못한 채 벤취에 앉아있다. 그에게 다가오고 있는 장형사.
장형사 : 고생 많았지... 오늘 나오는 거 알았는데... 가보지도 못해서 미안해.
정우 : 병원에 꽃은 배달시켜줬어?
장형사 : 그래... 그놈의 데이지 꽃인가 뭔가 찾느라구 서울시내 안다닌 꽃가게가 없다.
정우 : 수고 했어...
장형사 : 수고는 정형사가 했지...
정우 : 상관없어, 그놈만 잡으면 돼!
장형사 : 정형사가 죽인 두 사람... 마약하고는 관계 없어... 그냥 한약품 밀수하던 놈들이야.
정우 : (버럭) 모르는 소리 하지마! 어떤 자식들이 그래? 한약품 밀수 하는 놈들이 미쳤다고 암살용 총으로 경찰을 쏴? 엉?
장형사 : 내기할까? 이번엔 정형사가 틀렸어!
정우 : 장난이 아냐!
장형사 : 자네가 죽이지만 않았으면 더 알아낼 수 있었잖아! 우린 거기서 밀수된 한약재밖에 찾지 못했어. 이게 다 누구탓인데 그래?
정우 : 그래, 내 탓이야! 그래서 내가 놈을 찾겠다는 거야!
장형사 : 넌 이제 경찰이 아냐!
정우 : 상관 없어! ...그놈은 전문 킬러야. 같은 유형의 사건 자료들좀 구해 줘. 최근에 일어난 총기 사고들 말야.
장형사 : 이거 왜그래? 그건 할 수 없어.
정우 : 자네... 내 말 한마디면 첫째, 경찰밥 더 이상 못먹어! 그리고 두 번째, 앞으론 마누라가 해주는 밥도 못먹어, 알겠어?
장형사의 표정이 난감해지는 동시에- 정우는 복수의 열망으로 가득차고 있다.
S#79. 여관 (부산)
가느란 파도 소리가 들리고- 침대 위에 늘어져 있는 살인사건의 자료 복사물들,
그리고 한 쪽엔 정우가 침대에 걸터 앉아 송수화기를 들고 있다. 송수화기에서 흘러나오는 혜영의 멘트.
소리 : 안녕하세요? 김혜영입니다. 전화를 받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메시지 남겨 주세요. 곧 연락드리겠습니다.
전화를 끊는 정우.
정우 : 그녀가 보고싶을 때, 난 전화를 걸어 그녀의 남아있는 유일한 목소리를 듣는다. ...이것만이 나의 위안이다.
일어나 창밖의 밤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정우. 멀리 등대가 반짝이고 있고- 그의 얼굴로 등대 불빛이 휙휙 지나가고 있다.
S#80. 어느 술집 (부산)
번쩍거리는 술집의 조명등- 외국인 선원들이 모이는 술집, 탁자에 정우가 맥주 한 병을 앞에 놓고 앉아있다.
한 외국인이 들어와 정우에게 손짓을 하며 부른다.
외인1 : 어이 깜온, 깜온! 깜온!
일어나서 그를 따라 나가는 정우.
S#81. 골목길 (항구 근처)
멀리 제 4부두의 화물선 크레인들이 보인다. 그 아래- 골목길 끝에는 한 명의 외국인이 망을 보고 있고-
골목 안에서는 뚱뚱한 외국인이 정우의 돈을 받아 왼손에서 오른손으로 한 장씩 옮기며 세고 있다.
주변에 정우를 에워싸고 농담을 하는 세 명의 외국인.
지루한 듯 기다리고 있는 정우. 한 외국인이 손가락을 꼽으며 한국말을 알고 있다고 자랑하고 있다.
외인2 : 헤이, 아이 노 꼬리안 마니마니... 싸랑함니다. 감사함니다. 아녕하세이요. 앤드, 얼마에요. 비싸요. 깍아조요.
앤드... 앤드... 니기미... 개새끼... 노노, 낫 유, 낫 유. 미안해, 미안해!
정우 : ...
서로 깔깔대고 웃는 외국인들, 무슨 일이 일어날 듯 음습한 분위기다.
돈을 세고 있던 남자, 돈을 들고 뭐라고 하는 폼이 방해가 되서 다시 세어야 한다는 뜻같다. 돈을 처음부터 다시 세고 있는 외국인.
정우는 역겹고 지루하기만 하다. 외국인들의 알 수 없는 말들이 이리저리 오가고, 정우는 잔뜩 긴장한 채 숨죽여 기다리고 있다.
결국, 돈을 다 세고 종이 봉지를 건네주는 외국인. 봉지 안에는 총알들과 탄창, 콜트 한 정이 들어있다.
정우, 봉지 안의 권총을 꺼내 슬라이드를 후퇴 전진 시켜보고 방아쇠도 당겨본다.
그 모습을 보고 멋있다며 또 떠들어 대는 외국인들, 정우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하고 뭐라고 떠들어대며 사라진다.
정우, 한숨을 놓고 탄창에 탄알을 끼운 후 장전을 해서 가방에 넣고 골목 밖으로 나가고 있다.
정우, 거리가 보이는 골목으로 다가서고 있는데- 골목 안으로 들어오고 있는 경찰 두사람이 보인다.
일순, 당황하지만 침착하게 걸어가고 있는 정우. 하지만 경찰들은 정우 앞으로 오며 경례를 붙인다.
경찰1 : 실례하겠습니다. 잠시 검문좀 하겠습니다. 신분증좀 주시죠.
정우, 긴장하지만 태연하려 애쓰고 있다.
정우 : 이봐, 나도 경찰이야, 지금 임무 수행중이니까, 그냥들 가.
경찰1 : 그렇습니까? ...신분증좀 주십시오.
정우 : 그런 거 가지고 있으면 내가 곤란해져. 그러니까 제발 비켜달라구.
경찰 : 그럼, 주민등록증이나 면허증이라도 주십시오.
정우 : 이것보게, (가방을 들어보이며) 이거 증거품이야, 빨리 서에 가져가야돼! 내 신분이 발각되면 큰일난단말야!
경찰1 : 신분증 주십시오.
정우 : 신분증도 가짜야, 알겠어?
경찰1 : 그래도 주십시오. 확인 해보면 알 거 아닙니까?
할 수 없자 신분증을 내주는 정우. 경찰1, 신분증을 받더니 경찰2에게-
경찰1 : 넌 가방 조사해봐.
무전기를 꺼내드는 경찰1, 뒤로 돌아 몇걸음 가서 무전기를 귀에 대고 있다.
경찰2 : 가방좀 열어보세요.
어찌 할까 고민하는 정우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떨리고 있다. 경찰1, 주민등록증을 보며 무전을 치고-
경찰2 : 가방좀 열어보라니까요.
정우 : ...!
정우, 가방을 여는 동시에 권총을 꺼내 경찰들을 겨눈다. 깜짝놀라 바라보는 경찰들.
정우 : 무전기 꺼! 빨리!
무전기를 끄고 손을 내리는 경찰1.
정우 : 신분증 내놔!
그때, 경찰2가 허리에 찬 권총을 꺼낸다. 그모습을 보더니 엉겁결에 총을 발사하는 정우.
골목을 진동하는 탕- 소리와 함께- 경찰2가 가슴에 총을 맞고 쓰러지고-
경찰1도 총소리에 놀라 권총을 꺼내다 정우의 총을 맞고 쓰러진다.
정우, 스스로 한 짓에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골목 밖으로 달아나고 있다.
뛰어가던 정우, 다시 몸을 돌려 경찰1의 시체가 쥐고 있는 주민등록증을 뺏어들고 달아난다.
S#82. 거리
무작정 달려가고 있는 정우, 사람들과 어깨를 수없이 부딪친다.
S#83. 부둣가
바로 코 앞에 등대가 번쩍이고 있고- 권총을 쥔 정우가 둑에 걸터 앉아서 흐느끼고 있다. 디졸브-
S#84. 정우의 집
창밖에 비가 내리고 있고- 정우가 데이지 꽃을 창밖에 내놓고- 비맞는 데이지 꽃을 바라보고 있다.
혜영의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정우, 전화기를 들더니 혜영에게 전화를 건다.
정우 : 내 인생이 더 틀어지기 전에 ...‘데이지 꽃씨’라고 말하는 그녀의 입술을 한 번만이라도 다시 보고싶다.
S#85. 혜영의 작업실
창밖에서 들이치는 비를 맞고 있던 혜영, 전화벨 소리에 놀라 휙 돌아본다.
혜영 : 안녕하세요? 김혜영입니다. 전화를 받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메시지 남겨 주세요. 곧 연락드리겠습니다.
자신의 목소리를 듣던 혜영, 다가가 송수화기를 든다.
S#86. 정우의 집
정우가 글썽이며 송수화기를 내려놓고 있다. 산란한 마음을 어쩌지 못하고 이리저리 오가는 정우.
정우 : 그녀는 메시지를 남기더라도 내게 연락해 줄 수 없다.
S#87. 혜영의 작업실
수화기에서 뚜- 하는 소리가 들리고- 송수화기를 내려놓는 혜영, 창가로 다가가서 생각에 잠긴다.
혜영 : 그사람이다... 바로 그사람... ...난 그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다. 전화번호도... 집도...
하지만 그는 나에 대해 많은 걸 알고 있다... 난 또 한 번의 상상을 해본다... ...그녀는 전화를 받았지만 말을 할 수 없다.
그건 그녀가 집에 있다는 뜻이다... 망설인다... 어떻게 할까... 찾아갈 용기가 없다... 그러다...
그녀가 기다리고 있을 거란 생각을 해본다... 아직도 지난날들을 잊지 않았을 거란 생각을 하는 거다.
S#88. 정우의 집
혜영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정우가 망설이는 장면이 보인다.
혜영 : 결국 그는... 그녀를 만나기 위해 집을 나서기로 결심한다.
외투를 걸치더니 밖으로 나가는 정우.
S#89. 정우의 집 앞
정우가 뛰어나와 비를 맞으며 길가로 달려가 택시를 잡고 있다.
혜영 : 밖엔 비가 내리고 있지만 개의치 않는다. 그녀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이 그의 등을 밀어준다...
그리곤... 얼마 기다리지 않아서 택시를 탄다.
택시가 다가와 서고- 정우가 타고 택시는 출발을 한다.
S#90. 도로
택시가 달리고 있고- 정우가 택시 안에서 시계를 본다.
혜영 : 너무 늦지 않았나, 시계를 본다. ...다행이다... 그녀는 아직 잠을 잘 시간이 아니다...
하지만... 비오는 거리는 생각보다 막히고, 시간이 그 언제보다도 길게 느껴진다.
거리는 차들로 인해 교통이 막혀있다. 정우가 밖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고 있다.
지루한 듯 느끼는 정우, 주머니에서 찌그러진 목걸이를 꺼내 만지작거리며 보고 있다.
혜영 : ...거리는 곧 뚫리고, 택시는 속력을 낸다.
다시 속력을 내서 달려가는 택시- 정우의 얼굴로 그림자와 빛이 번갈아 스쳐지나가고 있다.
S#91. 혜영의 작업실
혜영이 창문을 닫고, 거울로 다가가 선다.
S#92. 도로
도로에서 빠져나와 주택가 쪽으로 달려 가고 있는 택시.
S#93. 혜영의 작업실
혜영, 수건으로 얼굴을 닦고 머리를 만지고 있다.
그때, 딩동 하며 초인종이 울리자- 긴장하며 문 쪽으로 다가가다가- 박의가 준 목걸이를 의식하고 벗어서 주머니에 넣는다.
덜컹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문을 여는 혜영. 문이 열리자 보이는 사람은 다름아닌 박의,
혜영, 실망감과 동시에 무안함이 스친다.
박의 : ...너무 늦지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힘겹게 미소지으며 고개를 가로젓는 혜영. 박의, 들어오며 들고 있던 선물을 혜영에게 주고-
박의 : 지나다가 눈에 띄어서 샀습니다... 풀어보세요.
혜영이 상자를 풀어보면 길이가 30cm정도 되는 긴 티스푼이다. 박의에게 미소로 답해주는 혜영.
박의 : ...커피 한 잔 마실 수 있겠습니까?
끄떡이며 커피를 타는 혜영. 박의, 침대에 걸터 앉고- 혜영이 스푼으로 크림을 덜고 있는데, 크림을 이미 작은 병에 옮겨 놓았다.
그 광경을 보고 있는 박의. 그때, 딩동 하고 초인종 소리가 들린다.
갑자기 긴장을 하는 혜영, 박의를 의식하며 조심스럽게 문으로 다가가 열면- 정우가 비에 젖은 채 서있다.
그를 보더니 말을 하려는 듯 입을 벌리다가 갑자기 눈물을 왈칵 쏟는 혜영.
하지만, 정우는 혜영 너머로 침대에 걸터 앉아있는 박의의 몸 일부분을 보고 실망스러움을 감추지 못한다.
혜영, 설명하기 곤란한 상황을 감추려 밖으로 나와 문을 닫고 정우를 마주보는데- 눈물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다.
혜영의 그 행동을 정우는 이해하지못하고- 아무 말 못하고 혜영을 마주보는 정우, 눈물을 감추려 고개를 외면한다.
외면한 정우의 눈에 들어오는 전시회 포스터-
정우 : ...손님이 있는 줄 몰랐어요... 지나다... 그냥 들렸습니다...
말을 할 수 없는 심정을 괴로워 하며 눈물로 정우를 바라보는 혜영.
정우 : ...다음에 다시 들릴께요... 들어가 보세요... 다친거... 정말 ... 다음에 ...다시 올께요.
입술이 떨려 더 이상 말을 못하고 돌아서는 정우.
혜영, 돌아서 가는 정우를 부르려고 입을 벌려 소리를 지르지만 아무 말도 나오지 않는다.
정우, 뒷모습을 보인 채 돌아가고 있고- 울음을 참지 못한 혜영은 문에 기대어 흐느까고 있다.
커피를 타다가 문 밖에서 흐느끼는 혜영을 느끼며 서있던 박의, 자기 자신이 바로 그 남자란 표현을 하고싶어진 듯-
주머니에서 목걸이를 꺼내 걸어놓더니- 다시 주머니에 넣어버린다.
박의 :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지? ...이건 사랑을 구걸하는 거야... 이러지 않아도 난 그녀를 사랑할 수 있어! ...사랑할 수 있어!
그때, 혜영이 흠뻑 젖은 채 문 안쪽으로 들어오고- 박의, 다시 감정을 추스리며 혜영에게 커피를 가져간다.
혜영, 눈물을 닦으며 박의에게 수화로 말한다.
혜영 : (수화) 저 혼자 있고 싶어요... 이제... 가주세요... 죄송해요...
박의 가슴이 무너질 듯 허탈하다. 끄떡이며 커피잔을 주방에 놓고 문 밖으로 향하는 박의.
박의가 나가자 혜영은 더욱 거세게 흐느끼고-
S#94. 거리
비를 맞으며 걷고 있는 정우, 광고판이 있는 처마밑에 비를 피하려 달려온다. 혜영의 집 쪽을 바라보고 있는 정우-
정우 : 그녀의 방에 다른 남자가 있었다... 비오는 밤에... 그녀는 목소리를 잃었고, 난 그녀를 잃었다... 모든건 놈 때문이다...
그녀의 목소리처럼 놈을 이세상에서 사라지게 만들테다... 놈을 죽이고 말테다!
정우의 뒤, 벽에 보이는 낡은 광고판- 그림이 바래있고 불빛도 껌뻑거린다. 정우가 다시 빗 속으로 걸어나가고-
S#95. 동. 거리
광고판이 있는 처마밑으로 들어와 비를 피하며 혜영의 작업실 쪽을 바라보는 박의.
혜영이 우산을 쓰고 나와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보인다.
박의, 무너지는 심정- 분노와 질투, 슬픔으로 혼란한 박의, 빗속으로 걸어나와 사라지고- 박의가 지나가고 나면 광고판만 남고-
이어, 혜영이 달려와 광고판이 있는 처마밑에서 정우와 박의가 사라진 쪽을 바라보다 돌아선다.
또다시 홀로 덩그라니 남은 광고판-. 껌뻑거리는 광고판에 글자가 보인다. ‘미래는 얼마든지 바뀔 수 있습니다....
화이트 아웃되며-
S#96. 전시장 (밤)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서서히 전시장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혜영의 그림들이 벽에 걸려있고- 사람들이 뷔페를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밖을 흘끔흘끔 바라보는 혜영, 어두운 표정으로 한숨을 쉬다가 이야기에 답하느라 억지 미소를 짓는다.
이어 밖을 보며 다시 밝아지는 혜영의 표정. 박의가 꽃을 들고 다가오고 있다.
혜영이 밖으로 나와 마중하자 꽃을 뒤로 감추는 박의. 이어 안으로 들어오는 두사람.
혜영이 이리저리 사람들에게 잡혀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고, 박의가 <데이지 꽃이 있는 풍경>을 바라본다.
이야기를 하고 있는 그녀를 창가로 데리고 가는 박의, 혜영을 창가에 세우고 뒤에서 어깨를 잡는다.
박의 : 저 데이지 꽃 배달해주는 그림, 아무한테도 팔지 말아요. 내가 살 테니까...
혜영 : (수화) 안되요... 그 그림은 당신에게도 팔지 않을 거예요. 그건 제꺼니까요.
박의가 미소지으며 끄떡인다.
친구 : 혜영아, 이리와봐 또 하나 팔렸어!
혜영, 박의와 미소를 교환하며 친구들에게 다가가고, 박의는 다시 전시된 그림들을 둘러보고 있다.
친구들과 대화를 하는 혜영, 그녀의 친구가 말로 통역해주고 있고-
바람이 한 줄기 들어와 그녀의 머리카락을 흔들고, 그녀는 문 쪽을 바라본다.
선배인 듯 보이는 남자가 문 안으로 들어오며 혜영에게 꽃을 준다. 혜영, 방끗 인사하며 꽃을 받아든다.
선배 : 축하해!
혜영 : (수화) 와주셔서 고마워요.
선배 : 야, 많이 팔린 것 같은데? 부자 되겠어.
혜영, 웃으며 그를 이끌고 뷔페 있는 곳으로 데려가 식사를 권한다.
다시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가는데, 한 여자 친구가 그녀의 팔을 잡고 거울 앞에 놓인 음식들 있는 곳으로 끌고 간다.
친구 : 얘, 샴페인이 다 떨어졌어. 이따가 쓸려고 놔둔 건데 송선배하고 곽작가가 둘이서 다 먹어치웠지 뭐니.
또 사오면 송선배하고 곽작가, 그냥 놔두지 않을 거야. 어떻게 하지?
거울을 통해 송화백을 보고 쿡 웃는 혜영.
혜영 : (수화) 그냥 놔둬, 샴페인 없어도 돼.
친구 : (박의를 가르키며) 저사람이야? 음.. 멋있다.. 받아드릴 거지? 축하해.. 지금처럼 사람들 많을 때 해야돼..내가 바람잡을께.
혜영 : (친구를 잡으며) 아냐, 그럴 필요 없어.
친구, 혜영을 뿌리치고 중앙으로 나가며 손을 치켜들어 박수를 치더니-
친구 : 자, 주목해 주세요. 오늘은 혜영이한테 아주 중요한 날입니다. 전시회도 그렇지만 행사가 하나 더 있거든요.
혜영, 거울을 마주 보고 서서 어쩔 줄 모르고 있다. 친구, 거울을 향해 돌아서 있던 혜영을 잡아끌고 박의 앞으로 데려간다.
겸연쩍은 듯 서서 혜영을 바라보는 박의. 혜영도 마찬가지로 소녀처럼 수줍음을 타며 박의를 바라보고 있다.
혜영을 바라보던 박의, 수화로 약간 길게 보이는 이야기를 해준다. [이 장면은 수화를 모르는 사람은 내용을 미리 알 수 없다]
수화를 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는 혜영, 아직도 정우를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수화를 끝내고 양 손에 데이지 꽃과 스위트피를 각각 들고 그녀 앞에 서는 박의.
혜영, 눈물을 흘리며 한 걸음 다가서 데이지 꽃을 받아든다.
들고 있던 스위트피 꽃을 옆사람에게 주며 다시 짤막한 수화를 보여주는 박의. ‘당신을 사랑합니다.’
혜영, 눈물을 흘리며 박의가 했던 수화를 따라한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박의, 한 걸음 다가서 그녀에게 반지를 끼워준다. 그때, 친구들이 스위트피 꽃잎들을 따서 혜영과 박의의 머리위로 날려준다.
그들 주변으로 진홍색 나비들이 날아 다니는 듯하다.
이어 혜영을 안으며 입을 맞추는 박의. 혜영이 그의 입술을 받아들이고- 사람들의 환호와 박수가 더해지고-
길게 F.O 되는 동안, 그 위로-
혜영 : 다시 온다던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4월 15일은 그와 아무런 연관이 없었고, 그는 더 이상 날 사랑하지 않는다.
S#97. 거리
F.I- 배경으로 전시장 안에서 입을 맞추고 있는 혜영과 박의, 그리고 환호하는 사람들이 보이고,
어깨가 축 늘어진 정우가 전시장으로부터 멀어져가고 있다. 정우의 눈물이 가득한 얼굴에서 허탈한 웃음이 새어나오고 있다.
정우 : 난 분명히 그녀 가까이에 있었다. ...4월 15일... 4월 15일... 난 이 날을 영원히 잊지 않을 거다. 영원히...
F.O-
S#98. 혜영의 작업실 앞 거리 (정우의 과거)
비가 오는 거리를 허탈하게 걸어가고 있는 정우.
정우 : 그날 이후... 질투심과 복수심에 사로잡힌 나는 놈을 죽일 방법에만 몰두했다...
결국... 나는 위험하지만 가능성이 있는 방법을 찾아낼 수 있었다.
-디졸브-
S#99. 정우의 집
정우와 장형사가 자료들을 늘어놓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정우 : 그놈을 고용할 만한 큰 조직들마다 역정보를 흘려보는 거야.
장형사 : ...?
정우 : 어떤 골치 아픈 놈이 구린내를 맡고 뒤를 캐고 있다고 소문을 내는 거지... 얼마 있으면 보고서 작성이 끝난다고
암시하는 거야. 그 보고서엔 얼마 전에 일어난 호텔 복도 총격사건도 포함돼있다고 해야지.
장형사 : 음... 그래서 그 골치 아픈 놈을 깨끗이 제거하려고 살인 청부업자가 등장한다 이거지?
정우 : 그래, 바로 그거야. 암살하기 좋은 장소까지 지정해 주는 거지. 대신 우리가 접근하기도 좋은 장소여야돼.
장형사 : 근데 그 골치 아픈 놈은 누가 하지? 여차하면 머리에 구멍이 날텐데... 어떤 놈이 스스로 표적이 되겠어?
장형사에게 사진을 던져주는 정우. 정우, 자신의 사진이다.
정우 : 바로 나야! 내가... 다시 표적이 되는 거야.
장형사 : ...!
정우 : 내기하자는 얘기 안해?
장형사 : ...
정우의 사진에서. 디졸브-
S#100. 강가
정우의 사진을 보며 총알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박의, 피식 웃으며 사진에 불을 붙여 태우고 있다. F.O-
S#101. 정우의 집
암전된 상태에서-
정우 : 장형사는 모든 채널을 이용해서 역정보를 풀었고, 난 내 목숨을 내놓고 놈과 도박을 시작했다.
화면, 서서히 밝아지면- 정우가 전화기로 혜영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
혜영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정우의 표정에서 알 수 있고, 정우, 전화를 끊고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정우의 머리에 떠오르는 혜영의 얼굴, 문에 기대서서 눈물을 흘리며 정우를 바라보고 있던 모습-
정우 : 그녀는 날 아직도 잊지 않았을 거다... 아니... 아니다... 그때... 난... 낯선 남자와 함께 있던 그녀를 보았지 않던가...
아니... 아...아니... 믿을 수 있는 것은... 내가 아직도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 뿐이다...
디졸브-
S#102. 공장가
정우가 방음벽 앞에서 시계를 보며 서성이고 있다. 앞에는 건물이 한 채밖에 없다.
정우 : 놈이 날 쏘도록 최적의 조건을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놈은 쉽사리 나타나지 않았다.
건물의 주변에서 들락거리는 사람들을 감시하는 장형사. 정우가 지나가는 사람과 이야기를 하고 있다.
S#103. 공장지대
방음벽 앞에 서있는 정우, 그리고 앞의 건물에 숨어서 서성이는 장형사. 누군가의 시점인 듯 망원렌즈를 통해 보이고 있다.
S#104. 거리
장형사의 차를 타고 가는 정우. 장형사가 투덜대고 있다.
장형사 : 그 놈, 나타날지 안나타날지도 모르는데 맨날 이래야 되는 거야?
정우 : 장형사만 똑바로 했다면 놈은 꼭 나타날 거야.
장형사 : 젠장... 감나무에서 감 떨어지기 기다리는 게 낫지... 내기할까? 난 그놈이 안나타는데 걸겠어.
정우 : 그만둬! 넌 천 구백 구십 구년에 지구 멸망하는 데 10만원 걸었다가 졌는데도 안줬잖아.
장형사 : 그럼 넌 지구 멸망하면 나한테 돈 줄려고 그랬냐?
정우 : (피식 웃다가) 잠깐, 차세워!
급브레이크를 밟는 장형사.
장형사 : 뭐야? 그놈이야?
대꾸없이 뛰어나가는 정우. 게시판에 낯익은 그림이 인쇄된 포스터가 붙어있다. 미소지으며 바라보는 정우.
S#105. 정우의 집
전시회 포스터를 벽에 붙이고 바라보는 정우.
정우 : 그녀의 문 앞에 붙어있던 포스터다... 4월 15일... 언젠가 그녀는 그 숫자에 대해 말을 한 적이 있다.
나를 만났던 시간과 그녀의 전화 국번... 난 점점 그녀가 날 기다리고 있다고 믿게 되었다.
...아니... 그녀는 날 기다리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디졸브-
S#106. 동.정우의 집
혜영의 전시회 포스터가 벽에 붙어있고- 거울을 보고 있는 정우. 혼자서 수화를 연습하고 있다.
정우 : 그녀를 만나면 해줄 말을 수화로 연습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수화로 ‘당신을 사랑합니다.’란 말을 반복하고 있는 정우에서. 디졸브-
정우가 물구나무를 서고 있다. 거꾸로 보이는 정우의 얼굴.
정우 : 4월 15일, 내가 그 날에 의미를 두고 있듯이... 놈도 그 날에 의미를 두고 있었다. 바로 그날... 놈이 제발로 나타난 것이다.
S#107. 공원
햄버거를 먹고 있는 정우와 장형사.
정우 : 내 계획대로... 놈은 날 노리고 있었다.
정우, 음료수를 마시느라 고개를 쳐드는데, 박의가 지나는 사람들 사이로 언뜻 보인다.
벌떡 일어나며 바라보는 정우, 박의가 앞에서 차가운 미소를 띠고 서있다.
주머니 속으로 권총을 잡는 정우, 그때 박의가 손가락을 총처럼 들어올리며 피유-하고 쏘는 흉내를 낸다.
그러나 정우, 박의가 자기를 쏘는 줄 알고 총을 발사한다.
총알은 박의를 빗나가고,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며 엎드리고 달아나고 난리다.
몸을 돌려 달아나는 박의. 정우, 쫓아가며 또다시 총을 발사하고-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납작하게 엎드린다.
이어, 박의를 뒤쫓는 정우와 장형사.
장형사 : (뛰며) 그 총 어디서 났어! 이러지 않기로 했잖아!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총을 쏘면 어떻게 해!
사로 잡아야지 배후를 알아내든지 할 거아냐!
정우 : 내기할까? 경찰 총이 범인 맞추는 거 봤어?
소리치며 박의를 뒤쫓는 정우.
장형사 : 넌 지금 경찰이 아냐, 그건 경찰 총도 아니고! 알겠어? 엉? 넌 지금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거란말야!
정우, 오직 박의를 잡으려는 일념으로 앞서 뛰어가고 있다.
S#108. 도로
도로를 건너 공장 쪽으로 달려가고 있는 박의. 공원을 나온 정우, 총을 쏘며 박의를 추적하고 있다.
뒤이어 차도를 건너는 장형사.
박의가 앞에 보이는 공장으로 들어가고 있는 모습이 정우의 눈에 비친다.
박의, 공장으로 다가오는 정우를 보더니 폐품 무더기를 바라보며 달려가고 있다.
S#109. 공장 안
공장안으로 뛰어든 정우, 박의가 폐품 무더기를 향해 달리는 모습을 보고 총을 쏘아댄다.
폐품 무더기까지 다다르지 못한 박의, 총알을 피해 낮은 엄페물을 찾아 몸을 날리고- 장형사와 같이 총을 쏘아대는 정우.
박의, 공장 안의 물건들로 엄폐하며 이리저리 피해다니고, 정우와 장형사, 사격을 하며 앞으로 전진하고 있다.
낮은 엄페물에서 튀어나와 몸을 던지며 폐품 무더기로 뛰어드는 박의.
정우, 총을 쏘아대지만 박의는 무사히 폐품 무더기로 몸을 피한다.
폐품 무더기에 몸을 숨긴 박의, 총을 꺼내고 주머니에 손을 넣어 총알을 찾지만 손에 총알이 잡히지 않는다.
정우 : (장형사에게 낮은 목소리로) 장형사, 저쪽으로 돌아가. 양쪽에서 쏘자구. 내가 엄호할테니까...
박의,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고개를 내밀어 몸을 굴리던 곳을 보면- 총알이 거기에 떨어져 있다.
그때, 박의의 내밀어진 머리를 발견한 정우가 다시 총을 쏘아댄다.
정우 : (장형사에게) 지금이야!
탕탕탕, 정우의 총이 불을 뿜자- 총알이 다시 폐품 무더기를 헤치고- 박의, 머리를 움츠린다.
정우가 뒤를 보면 장형사가 그대로 엎드려 있다.
정우 : 뭐하는 거야?
장형사 : 난 경찰 밥 계속 먹고 싶어. 마누라가 해주는 밥도 계속 먹고 싶고...
정우 : 그럼 빨리 가서 먹고와, 이 병신아!
그동안 박의, 심호흡을 하며 리볼버의 탄알집을 제낀다. 별안간 몸을 일으키며 몸을 굴려 총알을 잡으러 튀어나가는 박의.
정우, 그 모습을 보더니 몸을 일으키며 총을 발사한다.
정우의 총알이 박의의 주변으로 빗발치고- 흙먼지가 패여 일어나는 동안, 박의가 몸을 굴리며 땅에 떨어진 총알을 잡는다.
거의 동시에 총알을 탄알집에 넣으며 다시 제끼고 겨누는 박의의 모습이 슬로우로 보여지고-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불꽃이 번쩍 튀며 정우 쪽으로 총알이 날아간다.
정우, 총알이 자신 앞으로 날아오는 듯 보이자 뒤로 벌렁 넘어진다.
그때, 몸을 일으켜 달아나는 박의, 정우가 다시 몸을 일으켜 총을 쏘아대지만 여유있게 공장을 빠져나가고 있다.
순간, 뒤가 이상하여 돌아보는 정우. 장형사가 그대로 엎어져 있는 모습이 보인다.
다시 눈이 뒤집히며 마구 총을 쏘아대고 있는 정우. 그 위에-
정우 : 놈은 그렇게 미꾸라지처럼 내 손아귀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난 놈을 포기하지 못한다.
포기하기엔 너무 멀리 와버렸던 것이다.
S#110. 전시장 앞(밤)
전시장에 혜영과 친구들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모습이 밖에서 본 정우의 시점으로 보이고-
이어 맞은편에서 그 광경을 보고 있는 정우가 보인다.
정우 :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난 기억하지 못한다. 발걸음이 나를 옮겨놨을 뿐이다.
박의가 전시장으로 들어가고 있는 모습을 발견한 정우, 얼른 어두운 그늘 쪽으로 몸을 숨긴다.
정우 : 그놈이었다... 놈이... 꽃다발을 들고서 그녀에게 찾아온 것이다.
이어 혜영이 박의를 발견하고 밝은 얼굴로 마중 나오는 모습이 보인다.
박의가 꽃을 뒤로 감추고- 어둠 속에 잠겨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정우,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이다.
정우 :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놈이... 데이지 꽃까지 들고서...
어둠 속에서 권총을 꺼내 박의를 겨누는 정우. 권총이 더욱 차갑게 보인다.
그때, 안으로 들어가는 혜영과 박의. 여의치 않자 총구를 내리는 정우, 다시 빈틈이 보이자 총을 겨눈다.
전시장 안에서 그림을 보고 있는 박의가 총 너머로 보이지만- 사람들이 오락가락 하는 바람에 총을 쏠 수 없는 상태다.
혜영은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다.
정우 : 좋다... 그럼 나는 안으로 뛰어들어 놈의 정체를 밝히고 말겠다.
정우, 총을 들고 안으로 뛰어들려는데- 박의가 혜영을 창가로 데리고 다가오는 모습이 정우의 눈에 들어온다.
혜영을 창가에 세우고 뒤에서 말을 하고 있는 박의.
정우 : 놈은 내가 여기에 있다는 걸 알고 있다. 내게 쏠테면 쏘라고 놀리고 있는 것이다. 그녀를 방패삼아서...
내가 뛰어들면 그녀를 인질로 삼겠다는 뜻이다.
이어 말을 끝낸 박의와 혜영, 다시 사람들에게 섞이고-
정우 : 좋다.. 내가 총을 겨누고 뛰어들거나 방아쇠를 당기면 그녀의 전시회는 망쳐질 것이고...잘못하면 그녀는 놈의 인질이 된다.
어둠 속의 정우, 권총을 거두어 주머니에 집어넣는다.
정우 : 좋다...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거다. 천천히 걸어들어가서... 그녀에게 모든 걸 설명해야 한다.
그리고, 놈에게 아주 친한 친구처럼 손을 내미는 거다. 그리고... 놈의 당황하는 모습을 보는 거다.
어둠 속에서 나와 전시장 안으로 당당히 걸어들어가는 정우.
S#111. 전시장 안(밤)
정우, 사람들을 헤치고 대화를 하고 있는 혜영 쪽으로 다가간다.
바람이 한 줄기 들어와 그녀의 머리카락을 흔들고, 그녀는 문 쪽을 바라본다.
그런데, 뒤이어 들어온 선배가 정우를 앞지르며 혜영의 앞에 선다. 혜영에게 꽃을 주는 선배. 혜영, 방끗 인사하며 꽃을 받아들고-
정우는 그녀가 자신을 보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며 박의 쪽을 주시해 본다. 그림을 보고 있는 박의.
선배 : (혜영에게) 축하해!
혜영 : (수화) 와주셔서 고마워요.
선배 : 야, 많이 팔린 것 같은데? 부자 되겠어.
혜영이 말을 끝낸 듯하자 정우, 그녀에게 다시 다가선다.
하지만- 혜영, 정우를 보지 못하고 선배를 뷔페 있는 곳으로 데려가 식사를 권한다.
정우, 그 자리에 멈춰서고- 곧이어 혜영이 다시 정우 쪽으로 오고 있다. 정우,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바라본다.
그런데, 여자 친구가 그녀의 팔을 잡고 거울 앞에 놓인 음식들 있는 곳으로 끌고 간다.
정우, 안타까움에 그녀의 어깨를 잡으려 손을 뻣친다. 하지만 혜영, 멋모르고 친구에게 이끌려 가고-
정우, 할 수 없자 그녀 뒤를 따라가고 있다.
친구 : 얘, 샴페인이 다 떨어졌어. 이따가 쓸려고 놔둔 건데 송선배하고 곽작가가 둘이서 다 먹어치웠지 뭐니.
또 사오면 송선배하고 곽작가, 그냥 놔두지 않을 거야. 어떻게 하지?
거울을 통해 송화백을 보고 쿡 웃는 혜영.
거울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려 혜영의 뒤에 서있는 정우, 하지만 거울엔 자신의 모습이 비치지 않고 있다.
놀라서 거울과 자신의 몸을 번갈아 보는 정우. 거울을 바라보고 있는 혜영도 정우를 알아채지 못하고-
얼른 혜영의 앞으로 오며 그녀를 마주 바라보는 정우. 혜영은 아무 것도 모르고 친구와 말을 하고 있다.
혜영 : (수화) 그냥 놔둬, 샴페인 없어도 돼.
정우 : ...!
친구 : (박의를 가르키며) 저사람이야? 음.. 멋있다.. 받아드릴 거지?..축하해... 지금처럼 사람들 많을 때 해야돼...내가 바람잡을게.
정우 : ...!
혜영 : (친구를 잡으며) 아냐, 그럴 필요 없어.
친구, 혜영을 뿌리치고 중앙으로 나가 손을 치켜들며 박수를 치더니-
친구 : 자, 주목해 주세요. 오늘은 혜영이한테 아주 중요한 날입니다. 전시회도 그렇지만 행사가 하나 더 있거든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듯 그들을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는 정우. EAGLES의 DESPERADO가 흐르기 시작하고-
친구가 말을 하는 동안, 혜영의 볼에 손을 올려보는 정우, 하지만 그녀는 잡히지 않는다.
안타까움에, 정우의 얼굴에서 눈물이 주루루 흐르는데-
친구, 정우와 마주 서 있던 혜영을 잡아끌고 박의의 앞으로 데려간다.
입술을 깨물며 그녀를 바라보던 정우, 다시 거울 쪽으로 돌아서서 자신의 얼굴을 비춰보고 있다.
하지만- 거울엔 박의와 혜영이 마주서서 수화를 하는 장면만 비치고- 정우가 무너지는 심정으로 휙 돌아선다.
슬로우로 보여지는 인서트-
박의가 뒹구르며 총알을 집어 끼우며 총을 쏘고- -정우가 튀어나가려다가 총알을 맞은듯 뒤로 벌렁 나자빠진다.
다시 벌떡 일어나 박의에게 총을 쏴대는 정우, 잠시 후에야 왼쪽 가슴에서 피가 스멀스멀 새어나와 옷을 적시고 있다.
그때서야 총을 맞았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가슴에 손을 대어보는 정우, 피가 묻어나오는 손을 바라다 본다.
손에 묻은 피와 달아나는 박의를 번갈아 바라보며 몇걸음 걸어가다가 픽 쓰러지는 정우,
쓰러진 채 무엇을 잡으려는 듯 손을 뻣치더니 스르르 눈을 감고만다.
움츠려 있다가 고개를 들며 정우의 그 모습을 보고 흐느끼고 있는 장형사-
정우, 눈을 뜬 채 쓰러져있다.
이어 다시 전시장 안-
그제서야 자신의 죽음을 현실로 받아드리는 정우,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혜영과 박의를 바라보고 있다.
정우, 혜영의 앞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 마주 선다.
혜영, 마치 정우의 안타까움을 알고 있는 듯 마주 보고서 눈물을 흘리고 있고-
정우는 혜영의 만져지지 않는 볼을 만져보려 애쓰며 흐느끼고 있다.
혜영, 한걸음 다가서더니 데이지 꽃을 받아들고 정우를 바라본다.
안타까움과 절망이 뒤섞인 흐느낌에 눈물이 쉬지 않고 흐르는 정우, 그때서야 연습했던 수화를 그녀에게 보여준다.
‘당신을...사랑합니다.’
그와 마주 보고 있는 혜영도 답하듯이 수화를 한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서로 마주 바라보며 흐느끼고 있는 두 사람, 그 위로 스위트피 꽃잎이 나비처럼 날고 있다.
다시 한번 그녀의 볼을 만져보는 정우, 하지만 그가 영혼인지 그녀가 영혼인지 서로는 어떠한 접촉도 느껴지지 않는다.
아쉬움과 회한만 남긴 채- 눈물을 뿌리며 그녀에게서 돌아서는 정우.
그 순간에 환호가 터지고- 혜영과 박의가 키스를 하고 있는 모습이 정우의 어깨 너머로 점점 멀어져 가고 있다.
S#112. 전시장 앞 거리
문 밖으로 걸어 나가고 있는 정우.
멀어지고 있는 전시장, 정우는 눈물과 허탈한 웃음을 흘리며 걸어가고 있다.
정우 : 결국... 4월 15일은... 내가 죽은 날이 되었다. 사랑... 단 하나만 하기에도 내 인생은 너무 짧았다.
...살아 있을 때 더 사랑해야 했다. 너무... 늦기 전에... 살아 있을 때... 살아있었을 때...
정우, 눈물을 뿌리며 사라져가고 있다. 디졸브-
S#113. 병원 응급실
정우가 침대에 누워서 죽어있고- 의사들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정우의 얼굴에 흰 천을 덮고 있다.
옆에서 눈물을 흘리며 보고 있는 장형사. F.O-
S#114. 동산이 있는 마을(박의의 과거)
암전된 상태에서 박의의 목소리가 들린다.
박의 : 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첫살인을 끝내고 동산이 있는 마을로 숨어있을 때...
그녀를 바라보는 것만이 나의 위안이었다. 하지만... 난 살인자였고... 그녀는 그림을 그리는 아름다운 소녀였다.
F.I되며- 창문 밖을 바라보는 박의의 모습이 보인다.
멀리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밝은 모습의 혜영이 보이고- 혜영이 다리 앞에 자전거를 타고와 내려서 건너가고 있다. 디졸브-
그림을 그리는 혜영을 바라보며 되지않는 그림을 그려보려고 시도하다 망치는 박의,
다시 혜영에게 눈을 돌리고는 떼지 못하고 있다. 이어 다리를 건너오다가 비틀비틀 떨어지는 혜영이 보이고-
박의 : 그녀는 냇가 건너편에 있었고, 난 이쪽에 있었다... 그녀를 바라보던 난... 언젠가부터 소년으로 변해 있었다...
거기에 작은 다리라도 하나 놓여서 그녀가 쉽게 지나갈 수 있다면... 내 죄는 씻어지고...
또 그녀와 사랑도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디졸브-
그자리에 작은 다리가 놓여져 있고- 여기저기 페인트 칠을 한 박의, 창문 안에서 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밖의 다리를 바라보고 있다.
다리로 달려와 지나가고 있는 혜영, 그때, 우당탕 쾅- 소리가 나며 기찻길에 사고가난다.
그 광경을 보는 혜영과 박의, 순간에 두 사람의 시선이 일치한 것이다.
박의 : 내가 놓아준 다리 때문에 그녀는 뜻하지 않게 목숨을 구했고... 그녀는 내게 목걸이를 남겨주었다.
디졸브-
스카이라인이 펼쳐져 있고- 박의가 다리를 건너고 있다. 다리에서 들리는 작은 멜로디-
박의가 다가가 보면 목걸이에서 음악이 흐르고 있다. 목걸이를 집어들고 바라보며 희미한 미소를 짓고 있다.
하지만 눈물이 스르르 흐르는 박의.
박의 : 내가 사람을 죽이기 전에... 죄를 짓기 전에... 그녀를 만날 수 있었다면... 그녀를 좀 더 일찍 만났더라면...
난... 날이 저물 때까지 그 생각만 하고 있었다.
디졸브-
S#115. 골동품 가게(박의의 과거)
박의가 배달원 차림으로 골동품 가게로 꽃을 배달해 주고 있다.
구석에서 그림을 그리던 혜영이 화분에 박의에게 받은 데이지를 꽂아 놓고 바라보고 있다. 박의가 나가자 다시 그림을 그리는 혜영.
박의, 창문 밖에서 데이지 꽃을 그리는 그녀를 바라보다 사라진다.
박의 : 난 그녀가 보고 싶을 때마다 꽃을 배달해 주었다. 하지만... 그녀는 다리를 놓아주고 데이지 꽃을 보내준 사람이
살인자가 아닌... 환상 속에 있는 왕자님일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디졸브-
S#116. 거리(박의의 과거)
혜영의 뒤쪽 건물 옥상에서 박의가 혜영과 정우를 내려다 보고 있다.
박의 : 또 한 번의 도피생활을 끝내고 그녀를 다시 찾았을 때... 그녀는 나 아닌 다른 남자를 사랑하고 있었다.
박의의 시점으로는 서로 마주보고 입을 맞추는 듯 보인다.
S#117. 주점 앞(박의의 과거)
창문 너머로 많은 사람들 틈에 정우와 혜영이 즐겁게 이야기를 하고 있다. 정우의 손에 들려있는 데이지 화분-
박의의 손에 들려있는 목걸이- 박의의 가슴이 아프게 시려온다.
S#118. 혜영의 작업실 앞(박의의 과거)
박의가 바라보고 있고- 정우, 문 밖으로 나오고 혜영이 배웅을 하고 있다.
돌아서 가던 정우, 다시 돌아 혜영에게 가더니 얼싸안고 입을 맞춘다. 웃으며 거절하는 듯하다가 결국 안겨서 받아드리는 혜영.
박의가 이를 악문 채 눈물을 삼키고 있다.
박의 : 그녀는 놈을 나로 알고 있었다... 놈은 버젓이 거짓말을 하고 있었고...
S#119. 조사장 사무실
조사장과 윤준하가 서있고, 박의가 돈을 받으며 말을 하고 있다.
박의 : PSG1하고 탄알을 구해줄 수 있습니까?
조사장 : 그게 뭔데?
윤준하 : 헷갈라 앤 쿡 PSG1! 저격용 총입니다.
조사장 : 그래? ...내가 못구하는 게 있나? 자넨 대신 뭘 해줄텐가?
박의 : 언젠가... 한 번은 무료로 서비스 해드리죠.
조사장 : 좋아, 얼마나 필요하지?
박의 빙긋 웃으며 손가락으로 다섯을 보여주고 나간다.
윤준하 : 헷갈라 앤 쿡 PSG1! ...죽이지.
S#120. 박의의 방
크레파스 케이스를 열면 크레파스들 사이에 손가락 만한 크기의 총알 다섯 개가 끼워져 있다. 빙긋 웃는 박의.
S#121. 박의의 방
조립되고 있는 저격용 총- 헷갈라 & 쿡 PSG1. 여러 부품들의 극단적인 클로즈 업들이 보이고, 손가락 만한 총알이 삽입된다.
박의 : 요리사도 가끔은 자신을 위해서 음식을 만드는 법이다.
총을 척- 들고 겨눠보는 박의.
S#122. 건물(거리)
저격용 총의 망원렌즈에 들어온 혜영의 뒷모습과 정우, 정우의 머리가 혜영의 옆으로 슬며시 나오고 있다.
그러다 렌즈의 반사 때문에 시선을 올리는 정우. 방아쇠가 당겨지고 있고- 혜영이 뒤를 돌아다 본다.
망원렌즈를 통해서 본 혜영, 목에서 피가 튀고, 슬로우로 날아가고 있는 목걸이-
박의, 혜영이 다치는 모습을 보고 안타까움에 입술을 깨물고 있다.
박의 : 저격용 총을 너무 과신한 탓이었다. PSG1은 내 손에 익은 357 매그넘을 따라올 수 없었다.
F.O-
S#123. 공원
봉지 안에서 나오는 총알과 정우의 사진. 박의, 피식 웃으며 사진에 불을 붙여 태우고 있다.
박의 : 내가 그녀에게 청혼을 한 직후... 놈은 다시 나타났고... 내게 덧을 파놓았다.
놈은 내 의뢰인을 원격조정하고 있었고, 난 덧을 피해서 놈을 처치해야만 했다.
S#124. 화원
한 남자가 국화꽃을 배달해 준다. 받아들고 있다가 집어던져 깨버리는 박의.
박의 : 내가 기회를 노리는 동안, 놈은 집요하게 내 의뢰인을 불안에 떨게 만들었다. 결국... 내게 돌아온 것은...
S#125. 락커
락커에서 봉지를 꺼내가지고 가는 박의.
S#126. 강가
락커에서 꺼낸 봉투를 뒤집어 안에 있는 것을 보는 박의. 총알 한 발과 사진 하나다. 사진 속의 인물은 다름아닌 박의 자신.
박의 : 놈을 처치하지 않으려면 스스로 목숨을 끊으라는 메시지였다... 4월 15일... 아무도 놈이 살아있는 걸 원치 않는다.
주머니에 손을 넣어 찌그러진 목걸이를 만져보는 박의.
S#127. 공장 안(박의의 과거 끝)
박의가 떨어진 총알을 주으며 탄알집에 넣고 총을 쏘고 있다.
가슴에 총알이 파고들자 뒤로 나가떨어지는 정우. 다시일어나 총을 쏘는 정우를 차갑게 바라보며 돌아서고 있는 박의.
가슴에서 피가 스멀스멀 새어나오고 있는 정우, 통증을 느끼며 한 두 걸음 걷다가 스르르 허물어진다.
비장한 얼굴로 총을 늘어뜨린 채 돌아가고 있는 박의의 모습 에서. F.O-
S#128. 박의의 집
F.I- 혜영과 박의의 결혼사진- 이어 카메라는 거실 곳곳에 붙어있는 혜영의 그림들을 훑고-
현관에 놓인 데이지 꽃 화분을 들여다 보며 씨를 수거하고 있는 박의가 보인다. 방문이 열리고 혜영이 잠옷차림으로 나온다.
그녀를 올려다 보는 박의.
혜영 : (수화) 뭐하고 있어요?
박의 : 응... 씨가 열렸어...
몇알의 씨를 기름종이에 넣고 접어서 혜영에게 주는 박의.
박의 : 이거 지니고 있어... 부적이야.
혜영 : (수화) 고마워요... 나도 당신한테 줄 거 있어요.
박의 : ...?
혜영, 몸을 돌려 박의의 등 뒤로 안기며 그의 양 손을 잡는다. 등 뒤에서 혜영을 안은 박의, 혜영이 이끄는 대로 손을 가져간다.
자신의 배에 손을 대주는 혜영. 박의, 임신임을 알고 기뻐하며 혜영을 휙 돌린다. 미소로 마주보고 있던 두사람 입맞추고-
박의 : 이제 난 더 이상 화약냄새를 풍겨서는 안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로부터 멀리 떨어져야 한다.
하지만... 그들은 용납하지 않는다.
디졸브-
S#129. 조사장 사무실
조사장과 준하가 말을 하고 있다.
조사장 : 그놈이... 일에 싫증을 내기 시작했어!
윤준하 : 놈한테 마지막 일거리를 줄 겁니다. 동시에... 경찰들도 일거리가 생기는 거죠.
조사장 : ...!
윤준하 : 걱정 마십시오... 놈은 순순히 잡혀가지 않습니다. 시체가 되기 전까진... 어짜피 죽을 목숨이니까...
S#130. 화원
국화꽃이 배달되고 있다. 심난한 표정으로 국화꽃을 바라보는 박의.
박의 : 얼마 후... 내겐 국화꽃이 배달 되었고, 아내에겐 상자 하나가 배달되었다.
S#131. 라커
키를 열고 봉투를 꺼내는 박의. 인파들 사이로 사라지고 있다.
S#132. 주택 앞
박의가 낯선 남자의 사진을 보고 있고- 남자는 아이들과 같이 외출복 차림으로 차에 타고 있다.
전신주 뒤에 숨어서 권총을 꺼내 겨누는 박의. 아이들의 모습이 자꾸만 남자를 가로막고-
박의, 방아쇠를 당기려 손가락에 힘을 주다가 포기하고 돌아선다.
S#133. 작업실
탁자 위에 상자가 놓여있다. 혜영, 그것을 바라보다가 떨리는 심정으로 상자를 열어본다.
상자 안에서 정우에게 주었던 데이지 꽃 화분을 꺼내는 혜영. 하지만 꽃은 이미 죽어 말라있다.
외면하며 눈을 감는 혜영, 눈물이 주르르 흐른다. 다시 용기를 내어 상자 안의 자신이 그려준 초상화와 수화책을 꺼내는 혜영,
이어 접혀진 전시회 포스터를 꺼내 보며 눈물을 삼키고 있다.
혜영 : 그는 4월 15일에 죽었다고 한다. 그는 또... 자신이 죽을 때를 대비해서 내게 보내줄 목록을 미리 작성해놓았다...
그와 나는 상사화의 꽃과 잎이었다.
상자에 마지막 남은 물건을 집어드는 혜영. 예전에 다리 위에다 걸어주었던 자신의 목걸이, 열어보지만 음악은 흐르지 않는다.
그것을 보며 예전에 추억을 공유하고 있던 남자가 정우임을 확신하며 그 자리에 허물어져 흐느낌을 토해내고 있는 혜영,
모든 것이 자기의 잘못처럼만 느껴져 무너지는 가슴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다.
혜영, 흐느낌을 진정하지 못하고 있는데- 뒤에서 박의가 다가오고 있다. 혜영, 눈물을 훔치며 외면하고 있고-
박의, 다가와 물건들을 하나하나 상자에 다시 집어넣더니 혜영의 손에 들린 목걸이도 뺏어서 보더니
분노와 슬픔으로 차오르는 가슴으로 부르르 떨고 있다.
혜영 : (수화) 당신... 그사람 알고 있었죠?
박의 : ...!
혜영 : ...!
박의, 목걸이를 양 손으로 잡더니 혜영에게 다가간다. 무슨 의식이라도 치루는 듯 조심스럽게 혜영의 목에 목걸이를 걸어주는 박의.
박의의 행동을 멍하니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는 혜영. 박의, 혜영을 강하게 껴안는다. 혜영, 박의의 행동이 혼란스럽기만하다.
박의, 자신의 감정을 숨기려는 듯 혜영을 안고 움직이지 않는다. 그때서야 눈물을 주루루 흘리는 박의.
박의 : 만약 ... 당신한테 위험한 일이 생기면... 데이지 꽃을 생각해!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약에... 만약...
박의, 말없이 돌아서서 얼굴을 보이지 않은 채 밖으로 나간다. 혜영, 나가는 박의와 목걸이를 번갈아 바라보고만 있을 뿐-
S#134. 공장 안(과거)
박의, 몸을 굴리면서 총알을 집어드는 순간, 주머니에 있던 목걸이가 빠져나가고 있다.
목걸이가 땅에 떨어지는 순간, 박의의 총이 발사되고- 총알이 정우의 심장으로 파고든다.
정우, 쓰러졌다 일어나서 총을 계속 쏘아대고 있다.
이내 몇걸음 걷다가 정우가 쓰러져 내리면- 그의 앞에 박의가 떨어뜨린 목걸이가 보인다.
정우, 의식이 희미해지는 동안, 그 목걸이에 손을 뻣쳐 움켜쥐고 있다.
S#135. 현관
작업실을 나와 아랫층으로 내려오고 있는 박의, 눈물을 쏟아내며 발걸음을 점점 빨리하고 있다.
박의 : 내 모든 추억이 놈의 것으로 돼버리고 말았다. 그녀 마음 속엔 더 이상 내가 살지 않는다. 이제... 살아있을 가치가 없다.
...가치가 없다! ...난 이제 살인을 하는 기계로 남았을 뿐이다.
현관의 데이지 꽃 화분에 리볼버를 집어들기 좋게 숨겨 놓고 밖으로 나가는 박의.
S#136. 화원
구석의 한 화분을 들치면 비닐봉지에 싸여있는 베레타 한 정과 탄창들이 보인다.
이를 악물고 눈물을 참으며 권총에 탄창을 끼우는 박의,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간다.
S#137. 미술관
야외 전시장, 몇몇 인파들이 보이고- 주택가에서 박의가 죽이려던 남자가 아이들과 조각들을 보며 걷고 있다.
괜한 분노를 머금고 그를 뒤따르는 박의. 남자는 아이들과 미술관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그들을 따라서 안으로 들어가는 박의.
그가 들어가자 멀리서 박의를 주시하고 있던 혜영이 뒤따른다.
그때, 경찰차들이 몇대 그녀 뒤로 조용히 다가오더니- 사복경찰들이 내려서 이리저리 지시를 하고, 받고 있다.
그들을 보더니 놀라서 안으로 뛰어들어가는 혜영.
S#138. 미술관 안
미술품들을 감상하며 남자를 미행하고 있는 박의.
뛰어놀고 있는 아이들에게 주의를 시키는 남자, 이내 혼자서 미술품들을 보며 걷고 있다.
박의, 그에게서 멀찍이 떨어져 뒤따르고 있다.
미술품을 감상하느라 발걸음을 멈추는 남자. 박의가 벽에 몸을 붙이고 쏘기 좋은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하지만 남자는 멋모르고 미술품을 감상하고 있다.
박의, 벽에 몸을 붙인 채 권총을 꺼내 남자를 겨눈다.
자신에게 총이 겨눠진 줄 모르고 손으로 턱을 바치며 미술품을 감상하고 있는 남자.
방아쇠가 서서히 당겨지고 있는데- 박의의 어깨에 슬며시 닫는 혜영의 손. 박의, 깜짝 놀라 몸을 돌리며 혜영을 겨눈다.
혜영의 눈은 이미 눈물로 젖어있고- 박의, 놀라움과 당혹감에 어쩔 수 없는 심정이다.
자신을 겨눈 총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다가 박의를 껴안는 혜영.
박의, 이를 악물고 눈을 감으며 총을 내리면- 눈물이 주루루 흘러내린다. 혜영, 포옹을 풀며-
혜영 : (수화) 당신이 제게 목걸이를 걸어줄 때 알았어요... 왜... 미리 말하지 않았어요... 왜 지켜보고만 있었던 거예요...
당신이 그사람이라고 왜 말하지 않은 거예요... 당신을 사랑해요... 사랑한단 말예요...
박의, 다시 혜영을 끌어당겨 안더니 한 손으로 흐르는 눈물을 닦아준다. 마치 오랫동안 헤어졌다가 만난 연인들의 모습같다.
박의, 가슴 속에서 기쁨과 희망이 차오르는데- 하지만 그것도 잠시- 박의, 흐느끼는 혜영의 너머로 경찰들이 닥치는 모습을 본다.
포옹을 풀고 뒤로 물러나는 박의. 혜영, 안으로 들어서고 있는 경찰들을 돌아보고 입술을 깨문다.
어찌할 수 없는 심정으로 몸을 돌리는 박의, 눈물을 흘리지만 혜영에게 미소를 보내준다.
혜영, 돌아서 가고 있는 박의의 뒷모습을 가슴아프게 바라보고 있다.
이어,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가 들리고, 남자는 달려온 아이들에게 그림에 대해 설명을 해주고 있다.
그 동안, 그들 옆을 그냥 스쳐 지나가고 있는 박의. 경찰들이 사람들을 둘러보며 박의 쪽으로 다가가고 있고-
혜영, 걸어가고 있는 박의를 바라보며 흐느끼고 있다.
이를 악물고 뒷문 쪽으로 다가가고 있는 박의. 그러나 뒷문에서도 경찰로 보이는 남자들이 다가오고 있다.
얼른 몸을 돌려 반대편으로 걸어가다가 다시 방향을 틀어 다른 쪽 문을 향해 가는 박의,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멀리서 그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는 혜영.
박의, 자동문 쪽으로 점점 가까이 다가가고 있는데- 문 앞에 경찰차가 서더니 형사 하나와 장형사가 내려 문으로 향하고 있다.
장형사를 발견하고 놀라지만 그대로 걸어나가려는 박의, 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와 자동문으로 다가오던 장형사와 눈이 마주친다.
장형사의 동공이 확대되며 권총을 꺼내고- 순간, 숨쉴 틈도 주지 않고 총을 꺼내 장형사를 향해 쏴버리는 박의.
바라보던 혜영, 가슴이 무너지는 심정으로 눈을 감으며 외면한다.
탕- 소리와 함께 자동문이 박살나며 방금 열고 들어선 문으로 장형사가 날아가고 있다.
장형사, 유리문을 깨고 뒤로 나가떨어지는 동시에- 박의, 몸을 돌려 뒤에서 권총을 꺼내는 경찰을 쏘면서 달아나기 시작한다.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드높아지고- 혜영이 눈물을 흘리며 달아나는 박의를 보고 있다.
마주오며 권총을 겨누는 경찰을 쏘며 달려가는 박의. 경찰이 조각상을 부수며 나가떨어지고-
박의는 그를 넘으며 달려가다가 앞에 나타난 경찰을 피해 층계를 뛰어오른다. 경찰들이 쫓아오며 총을 발사하고-
혜영, 울면서 박의가 잘 보이는 쪽으로 자리를 옮겨 바라보고 있다.
층계를 올라 복도를 뛰어가던 박의, 층계를 오르던 경찰 하나를 또 쏘아뜨리고- 이리저리 피해 달아나는 사람들-
총에 맞아 층계를 굴러떨어지고 있는 경찰-
박의, 혜영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던 모습을 보인 것 때문에 형언할 수 없는 심정으로 눈물을 쏟으며 달려가고 있다.
다시 박의를 쫓아 달려오고 있는 경찰들- 한 경찰이 박의의 앞으로 달려나오며 덥치려는 듯 몸을 날리자-
박의, 몸을 굴리면서 공중으로 치솟아오르는 경찰을 쏜다. 경찰, 총에 맞은 채 바닥으로 떨어져내리고-
박의, 뒤쫓아오던 경찰들에게 연이어 총을 쏘며 난간을 타고 아래층으로 뛰어내려간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눈물짓던 혜영이 벽에 기댄 채 허물어져 내리고 있다.
아래층으로 뛰어내려 달려가며 마주오던 경찰을 쏘고 있는 박의, 허물어지는 심정으로 흐느끼고 있는 혜영,
실내는 잠시 정적이 휘감고- 박의가 문을 나서다가 문득 혜영을 바라본다. 혜영도 고개를 들어 자신을 바라보는 박의를 보고-
서로 잠시동안 눈물로 마주보다가- 박의, 밖으로 사라진다.
멀리 달아나고 있는 박의를 바라보고 있는 혜영, 눈물 때문에 시야가 흐려지고 있다.
S#139. 미술관 밖
이를 악문 채 비장함으로 눈물을 참으며 걸어가고 있는 박의.
S#140. 산(과거)
조사장과 박의, 윤준하 등이 사냥을 하고 있다.
S#141. 거리
걸어가고 있는 박의.
S#142. 산(과거)
멀리 허수아비가 보인다. 그것을 바라보는 박의와 조사장, 윤준하.
조사장 : 여기서 저 허수아비 맞출 수 있겠어?
박의 : 해보죠.
윤준하가 박의에게 총을 던져주고- 총을 받은 박의, 허수아비를 겨누고 방아쇠를 당긴다.
이어, 멀리서 산새들이 푸드득 날면서- 허수아비의 머리에 총알이 박힌다. 조사장, 박수를 치고-
다시 윤준하에게 총을 던져주는 박의, 미소로 답한다.
S#143. 동.산(과거)
허수아비 앞에 선 박의와 조사장, 윤준하 등등. 박의가 허수아비를 보며 놀라고 있다. 허수아비는 다름아닌 진짜 사람이었던 것.
박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조사장을 패서 쓰러뜨리고 마구 때리고 있다. 박의의 머리에 총을 대고 겨누는 윤준하.
박의 : (독백) 그것이 나의 첫 살인 이었고, 이후 그들은 총에 묻은 지문을 담보로 날 이용했다. 그들의 허수아비가 된 것이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난 심장이 살아있는 허수아비였다... 하지만 이제 난 ...살인을 하는 기계로 남았을 뿐이다.
머릿속에 미술관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혜영의 눈빛이 스치자- 떨치려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이를 악무는 박의.
S#144. 조사장의 사무실 입구
지하로 내려가고 있는 박의, 앞의 두 친구가 총기 검사를 하려고 다가오고 있다.
한 틈의 여유도 주지 않고 총을 발사하며 안으로 들어가는 박의,
총소리에 놀라 뛰어나오던 청년에게 사격을 하며 걸어들어가고 있다.
박의의 총에 맞은 청년들이 그 자리에서 쓰러지지만, 한 청년이 피를 토해내며 소리지르고 있다.
청년 : 왜그래, 왜그러는 거야!
대답도 없이 청년의 머리에 총을 쏘는 박의, 조사장의 사무실 쪽으로 향한다.
총을 쏘며 나오는 청년들과 잠시 접전을 벌이더니 결국 제압하고, 탄창을 갈아끼우며 조사장의 사무실로 들어간다.
별안간 총탄이 문 옆을 스치며 박의의 눈에 상처가 나고- 박의, 찡그리며 눈을 만지다가 안으로 뛰어든다.
총을 들고 박의를 겨누고 서있지만 두려워 떨고있는 조사장.
조사장 : 니가 원하는 거 다 들어줄게... 이러지마!
총을 내려놓는 조사장. 그를 노려보는 박의, 눈썹과 관자노리 사이에서 피가 흐르고 있다.
조사장의 배에 총을 한 방 쏘는 박의. 조사장이 피 흐르는 배를 쥐고 애원한다.
조사장 : 아직도 안늦었어... 제발... 날 병원에 데려다줘... 제발...
박의 : ...!
머리에 총알을 한 방 더 먹이는 박의.
박의 : 이건 무료 서비스야!
조사장이 쓰러지자 몸을 돌리는 박의, 책상 구석에 여자비서가 웅크리고 숨어있다.
다가가서 머리에 총을 겨누는 박의. 여자가 덜덜 떨고 있다.
박의 : 윤준하는 어디 있지?
여자 : 모... 몰라요... 살려주세요.
방아쇠를 천천히 당기고 있는 박의.
여자 : ... 살려주세요!
데이지 꽃무늬 원피스에 마음이 약해지는 박의, 방아쇠를 당기다가 그만두고 돌아선다.
사무실 밖으로 빠져나가는 박의. 여자가 떨며 울고 있다.
박의 : (독백) 진정한 킬러는 자비를 베풀어선 안된다. 난 이미 자격을 잃고 있었다.
박의가 나가는 것을 보자 전화기로 다가가서 송수화기를 드는 여자.
S#145. 박의의 집
혜영이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온다. 그런데- 거실의 소파에는 윤준하와 일행들이 이미 죽치고 앉아있다.
놀라서 그들을 바라보다가 아래에 보이는 화분의 데이지 꽃 사이에서 리볼버를 발견하는 혜영. 윤준하가 총으로 혜영을 겨누는데-
데이지 꽃 사이의 권총을 바라보다 고개를 가로저으며 눈을 감아버리는 혜영.
S#146. 부루클린의 아파트(얼마후)
어두운 불빛 아래, 윤준하가 붕대를 감은 몸으로 의자에 앉아있다.
담배를 피우며 이야기를 하고 있는 윤준하, 과거의 악몽이 가시지 않은 표정이다.
준하 : 우린 놈의 마누라를 인질로 잡고 놈이 오기를 기다렸지. 그놈은 사격의 명수야. 옛날에 사격 선수였거든...
그걸 잊어서는 안되지... 날아가는 파리도 떨어뜨릴 놈이니까... 놈이 총을 겨누면서 들어왔을 때...
난 놈의 마누라 뒤로 바짝 붙었어... 그년 뒤통수에 가려서 놈을 볼 수 없어야 놈이 날 쏠 수 없을테니까...
난 놈이 마누라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잘 알고 있거든... 난 놈한테 다섯을 셀 때까지 총을 버리라고 소리를 질렀지.
하나, 둘! 그런데... 정확히 셋까지 셌을 때... 놈이 총을 버리더라구... 우린 마누라 때문인줄 알았지.
기가 차다는 듯 한 숨을 꺽어쉬더니 다시 말을 하는 준하.
준하 : ...그런데... 놈은 악마였어. 현관에 있는 화분에 미리 총을 숨겨 놓았던 거야. 주윤발처럼 말야... 봤지? 그 영화...
놈이 총을 뜩 집어들었어! 근데, 누구한테 제일 먼저 총을 쐈는지 알아? 응? 누구겠어? ... 누구겠냐구...
말을 하다 말고 담배를 깊게 빨아드리는 준하.
S#147. 동.박의의 집
박의가 현관 앞에서 총을 겨누고 있다. 머리에 권총이 겨누워진 혜영, 눈을 감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혜영 : 난... 내게 그런 위험이 닥쳤을 때... 데이지 꽃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사람이 뜻했던 현관에 놓인 데이지 꽃이 아닌...
오래 전에 내게... 배달되던 데이지 꽃... 그 꽃을 생각하고 있었다.
박의가 현관에 서있고- 혜영은 눈을 감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마치 정지된 사진처럼 보이는 그들-
준하와 일행들도, 박의도 모두 얼어붙은 듯 정지되어 있다. 그 화면이 디졸브되며- 과거로 바뀌어가고 있다. 디졸브-
S#148. 전시장 안(혜영의 회상)
데이지 꽃을 들고 서있는 혜영. 그 앞에 박의가 수화를 해주고 있다.
혜영 : 내가 청혼을 받아드리던 날... 그는 내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전시장에서 수화를 하고 있는 박의와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는 혜영이 다시 보여지고-
혜영 : ...하루도 빠짐없이 사랑을 고백하는 편지를 받고 있던 여자가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누가 편지를 보내주는지 알 수 없었다.
편지를 쓰는 사람은 그녀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있었지만, 그녀는 그사람에 대해 조금도 추측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우체부가 병을 얻어, 죽고 나서야 그녀는 사실을 알게 된다... 새로 바뀐 우체부는 편지를 전해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난 지금까지 내게 다리를 만들어주고...꽃을 보내준 사람... 그 사람을 한 번도 배달원과 연관지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난...그가 내게 목걸이를 걸어주고 나서야 그 말뜻을 알게 되었다.
다시 박의의 집-
혜영, 눈물을 흘리며 박의를 바라보고 있고- 박의도, 그녀의 모습을 보며 입술을 깨물고 있다.
S#149. 박의의 집
이어 갑자기 리듬이 끊기며- 박의가 꽃 속에 있는 총을 집어 혜영을 향해 쏘는 장면으로 이어지고-
그 총알이 혜영의 이마에 박히며 피를 뿜으며 쓰러져 내리고 있다.
혜영이 쓰러지는 장면을 보며 놀라서 하얗게 질리며 어쩔줄 몰라하는 박의의 표정에서. F.O-
S#150. 박의의 집
암전된 상태에서 박의의 목소리가 들린다.
박의 : 이해할 수 없었다. 난 분명 놈을 쏘았다... 이런 실수는 없었다...
다른 총이 라면 몰라도 그 총은 한 번도 나를 배반한 적이 없었다...
F.I- 박의가 현관 앞에서 총을 겨누고 있다. 박의 앞에 혜영을 인질로 잡고 서있는 준하와 다섯명의 남자들.
박의, 눈을 내려서 화분의 권총을 바라본다. 숨겨진 리볼버가 보인다.
다시 준하를 보는 박의. 준하는 혜영의 뒤에서 총을 겨누고 있기 때문에 잘 보이지 않는다.
박의 : (독백) 조금이라도 얼굴을 내밀면 놈의 머리를 맞출 수 있다. 아내는 충격을 받겠지만... 준하... 저놈부터 처치해야한다.
혜영의 뒤에 바짝 붙어서 총을 겨누고 있는 준하가 소리친다.
준하 : 다섯을 셀 테니까. 총 내려놔! 허튼 수작 피우면 이년 머리 속에 있는 뇌가 어떻게 생겼는지 구경하게 될 거야. 알겠어?
박의, 준하를 노려보고 총을 겨누며 주위의 다섯을 다시 살펴보고 있다. 혜영, 두려움 속에 눈을 감은 채 눈물을 흘리고 있고-
준하 : 하나!
박의의 총을 쥔 손, 방아쇠를 당길 듯하다.
박의 : (독백) 머리를 조금만 내밀어라... 조금만... 조금만...더...
준하 : 둘!
박의 : (독백) 좋아... 내가 총을 놓아주지... 그럼 놈이 머리를 내밀 거다... 그때... 쏘는 거야.
화분의 리볼버를 바라보는 박의.
준하 : 셋!
박의, 총을 앞에다 던져주며 그들을 노려보고 있다. 혜영이 애처럽게 서있고-
박의 : 우리... 여기서 빠져나가면... 그 동산 아래... 다리로 가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
박의, 가슴 속에서 눈물이 차오르지만 준하의 행동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어 박의의 눈에 준하가 부하에게 턱짓을 하는 모습이 보이자- 박의, 화분에 숨겨졌던 리볼버를 집어들어 준하에게 발사한다.
하지만, 총알은 옆으로 살짝 비켜서 혜영의 머리를 뚫는다. 눈이 휘둥그래지는 박의, 혜영이 피를 뿜으며 쓰러지고 있고-
박의,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모습이 슬로우로 보이고-
마치 동물처럼 소리를 질러대는 박의, 준하와 청년들에게 나머지 두 발을 다 쏘고
몸을 굴려 앞에 던져놓은 베레타를 잡으며 발사하고 있다. 준하를 향해 불을 뿜는 박의의 총- 가슴을 맞고 쓰러지는 준하.
바닥으로 쓰러져 내리는 혜영의 모습이 삽입되고-
눈물을 뿌리며 이리저리 몸을 옮겨 청년들을 쏘아대는 박의. 총알들이 거실 안을 이리저리 휘집고-
청년들이 하나, 둘 쓰러져가고 있다. 가슴에서 피를 흘리며, 엉금엉금 기어서 밖으로 탈출하는 준하.
박의, 분노로 흥분해서인지 눈물 때문인지 준하를 맞추지 못하고 있다.
돌아서며 꿈틀대고 있는 청년의 머리에 모든 총알을 다 퍼부어버리는 박의,
혜영 쪽으로 다가와 바라보는 박의, 무릎을 꿇고 앉아 그녀를 안으며 흐느끼고 있다.
흐느끼면서도 분노가 가시지않아 곧 미칠 듯 보이는 박의. 디졸브-
S#151. 동산이 있는 마을
비가 오고 있고- 옛날에 박의가 만들어주었던 나무다리가 페인트가 벗겨진 채 비를 맞고 있다.
그 너머 동산에는- 박의가 나무 아래에 무덤을 파며 흐느끼고 있다. 동산 아래의 승용차 안엔 혜영이 잠자는 듯 누워있고. 디졸브-
S#152. 동.동산이 있는 마을
다리 위에서 비를 맞으며 멀리 보이는 동산을 바라보고 있는 박의, 눈물과 빗물에 흠뻑 젖은 채 흐느끼고 있다.
박의 : ...우리는 알 수 없는 일이 일어나면 신의 조화라고 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 할 수밖에 없다...
신은 나를 지옥의 고통 속에 밀어넣기 위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죽이게 했다.
디졸브-
S#153. 화분
화분에 심어진 데이지가 C.U된다. 한 알의 데이지 씨앗이 가지에서 떨어져 땅으로 내려앉고 있다. 고속으로 그 장면이 보이고-
카메라, 씨앗을 따라 아래를 비추면- 리볼버의 회전판에 부딪치더니 톡 튀어 약실 쪽으로 들어가버린다.
이어 박의의 손이 권총을 집어서 들어올리고- 방아쇠를 당기면-
회전판이 돌면서 총알이 씨앗을 약실로 끌고 들어가고, 총구에서 불이 뿜어진다.
혜영에게 날아가고 있는 총알- 이어, 혜영이 피를 뿜으며 쓰러지는 모습 위에-
혜영 : 안녕하세요? 김혜영입니다. 전화를 받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짧은 F.O-
S#154. 뉴욕(박의의 아파트)
혜영의 목소리 이어지며 자막 <2003년, 부루클린>떠오른다. 짧은 F.I-
박의가 침대 옆에 기대어 멜로디가 흐르는 혜영의 목걸이를 만지작거리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앤서링 머쉰에서는 혜영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혜영 : ...메시지 남겨 주세요. 곧 연락드리겠습니다.
혜영의 목소리가 나오는 동안, 카메라가 전화선을 따라가면 선은 연결되어있지 않다.
다시 스위치를 누르는 박의. 혜영의 목소리가 다시 흐른다.
박의 :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면 복수에 대한 열망에 사로잡힌다. 놈에 대한... 그리고 나 스스로에 대한 복수심에...
이어 술을 벌컥벌컥 들이마시더니 목걸이를 걸고 권총들을 주머니와 허리춤에 끼우며 비장한 얼굴로 문을 나서는 박의.
엔서링 머쉰에서는 혜영의 목소리가 계속 흘러나오고 있고. 디졸브-
S#155. 부루클린
부루클린 브릿지가 보이는 거리, 가로등에 불이 들어오고 있다.
축축한 거리의 모퉁이로 모습을 드러내는 박의, 가슴에 손을 찔러 넣은 채 비장한 얼굴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이어, 권총을 빼어들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박의, 이번엔 카메라가 안으로 따라들어간다.
S#156. 아파트 안(부루클린)
들어오자마자 앞에 서있는 남자에게 총을 발사하는 박의, 남자, 총을 꺼내다 쓰러지고- 층계 위에서 총알이 날아온다.
복도로 몸을 감추며 총을 쏘는 박의, 총알 몇방이 천정의 경보기를 맞추자 스프링 쿨러가 터지고-
물줄기가 사방으로 퍼지는 가운데- 총에 맞은 남자가 층계로 굴러 떨어지고 있다.
박의, 쓰러진 그에게 몇발 더 발사하고- 팔뚝으로 얼굴의 물기를 닦아내며 층계를 오르는 박의,
2층 복도에서 총알이 날아오자 몸을 돌리며 총을 쏴대는 박의, 맞고 쓰러지는데도 총을 갈겨대고 있다.
남자는 쓰러지지도 못하고 총알세례를 받고 있다. 온 복도는 비오듯 물줄기가 쏟아져 내리고 있고-
복도를 걸어가며 문마다 열어보는 박의, 그때 층계 쪽에서 남자가 총을 쏘아댄다.
다시 돌아서며 총을 쏴대는 박의, 남자의 총알에 어깨와 옆구리를 맞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총을 쏴대고 있다.
남자, 총에 맞아 창문을 뚫고 나가떨어지고- 박의, 다시 층계를 오른다. 그러다 팔뚝에 다시 총을 맞는 박의.
층계 위에서는 몸은 보이지 않고 누군가 총만 내놓은 채 쏴대고 있다.
박의가 총을 맞추자, 총이 아래로 떨어져 내리고- 박의는 얼른 뛰어올라간다. 복도로 오르자 남자가 달아나고 있다.
조준을 해서 총을 쏘는 박의. 남자가 핑그르르 돌며 쓰러져 내린다.
그동안 뒤에서 총알이 날아오고- 박의는 무릎을 푹 꿇으며 뒤를 향해 총을 쏜다. 뒤의 사내가 쓰러지고-
박의, 끄응하고 신음을 지르면서 힘겹게 몸을 일으킨다. 그때, 박의의 앞에서 나타나며 총을 쏘는 윤준하.
박의, 뒤로 벌렁 넘어지며 총을 쏜다. 윤준하도 총에 맞아 뒤로 나가 떨어지고-
총을 떨어뜨리고 쓰러진 박의와 윤준하, 박의가 먼저 총을 집어들고 일어서며 쏘자 준하는 다시 총알에 맞으며 뒹군다.
박의, 총을 겨누며 몸을 일으키는 동안, 준하는 문 안으로 몸을 굴려 피해들어간다.
박의, 물이 질퍽거리는 바닥으로 피가흐르는 다리를 질질 끌며 문 쪽으로 다가가고 있다.
그사이에 문 안쪽에서 몸을 내밀며 총을 쏘는 윤준하- 박의도 응사를 하고, 윤준하는 문 안쪽으로 다시 물러선다.
총을 늘어뜨리고 다가가는 박의, 문 안으로 들어서면-
이미 피투성이가 된 윤준하가 힘겹게 손을 들어 총을 팡팡 쏘며 다른 방으로 피신한다.
박의, 그를 뒤따르고- 밖에서는 경찰차들이 들이닥치는 소리가 들리고- 박의는 아랑곳하지 않고 준하를 쫓아가고 있다.
더 이상 달아날 데가 없자 박의 쪽으로 몸을 돌려 총을 겨누는 준하. 박의, 총을 늘어뜨리고 준하를 노려보고 있다.
그때, 경찰들이 박의의 뒤로 닥치며 총들을 겨누고 있다.
경찰들 : (영어) 총 버리고 손들어!
하지만 박의, 아랑곳하지 않고 숨을 죽이며 준하를 노려보고 있다. 그의 얼굴이 화면에 가득차면서. 디졸브-
S#157. 비행장
비행기가 공항에 착륙하고 있다. 디졸브-
S#158. 동산 입구
혜영을 묻었던 동산으로 걸어오며 다리를 건너고 있는 박의, 다리를 바라보며 울음 겨우 참아내고 있다.
그때, 박의의 눈에 보이는 환상- 혜영이 자전거를 타고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다가오고 있다.
박의 그녀를 바라보면- 그녀는 자전거를 탄 채 다리를 건너 동산으로 사라져가고 있다.
그녀를 따라 시선을 돌리던 박의- 동산의 광경을 보더니 놀라서 입이 벌어지고 있다.
그런 그의 얼굴에 눈물이 차오르고- 격한 감동에 휩싸인 박의는 마치 꿈을 꾸는 것같다.
박의 : 그녀는 내가 준 데이지 꽃씨를 간직한 채 죽었고... 추억이 있던 그 자리가 내려다 보이는 곳에 ...뭍혔다.
그의 발 밑으로부터 카메라가 치솟아 오르면, 온 동산이 한 치의 틈도 없이 데이지 꽃으로 가득찬 광경이 펼쳐진다.
마치 천국의 풍경같은 그 동산 앞에서 더 이상의 감정을 참아내지 못하고 흐느끼고 있는 박의.
한 줄기 바람이 불어 동산을 흔들어 깨우면- 데이지 꽃의 물결이 파도처럼 일렁이며, 잎파리들이 날리고-
박의, 울음을 울면서도 희미한 미소가 떠오르고 있다.
S#159. 부루클린의 아파트(동시간, 부루클린)
준하를 노려보면서 미소짓고 있는 박의, 뒤에서 경찰들의 외침이 커지고-
경찰들 : (영어) 다시 말한다! 총버리고 손을 머리에 올려!
박의는 들고 있던 권총을 툭 떨어뜨린다. 준하, 안심하고 미소짓는데- 허리춤에 끼워두었던 리볼버를 꺼내 발사하는 박의.
총알이 준하의 이마 정 중앙에 박히는 순간- 박의의 등 뒤에서 경찰들의 총이 일제히 불을 뿜는다.
박의의 등으로 총알들이 빗발처럼 박혀가고 있고- 박의는 벌집이 되고 있는데도 차라리 평온한 표정으로 쓰러져 가고 있다.
바닥에 피를 뿜으며 척 쓰러지는 박의, 얼굴의 표정은 마치 행복한 꿈을 꾸고 있는 듯하다.
박의의 얼굴에서부터 카메라가 천천히 위로 올라가며. 디졸브-
S#160. 동산
박의가 꽃들 사이에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고, 카메라는 계속 하늘로 솟아오르고 있다.
데이지 꽃으로 가득찬 화면에 박의가 점처럼 보일 때까지. F.O-
S#161. 거리
암전된 상태에서 자막, <1998년>이 떠오른다. -F.I-
거리 풍경이 휙휙 지나가고 있고- 이어 카메라에 달아나고 있는 한 청년이 잡힌다.
뒤이어 쫓아가고 있는 두 남자- 한 남자는 장형사고- 한 남자는 정우다.
결국 쫓아가서 청년을 잡아 수갑을 채우고 있는 정우, 뒤쳐져 온 장형사에게 찡끗 미소를 보내며 손을 내민다.
장형사, 주머니에서 만원을 꺼내 정우에게 주고-
정우 : 왜 만원밖에 안줘?
장형사 : 어제 내가 술 샀잖아!
두사람, 수갑 채운 청년을 끌고가며-
정우 : 그러는게 어디있어? 빨리 내놔!
장형사 : 에이씨!
장형사, 정우에게 만원을 더 주더니 끌고 가던 청년의 뒷통수를 후려갈긴다.
청년 : 왜 나를 때려요?
장형사 : 자식아, 난 너 못잡는데 걸었단말야!
청년 : 그럼 도루 놔주면 되잖아요.
정우 : (뒤통수를 때리며) 넌 임마 2천 3년 까지 썩어야돼! 2천 4년에는 나한테 다시 잡힐 거구.
장형사 : 이사람아, 천 구백 구십 구년에 지구 망한대.
정우 : 그럼 우리 내기할까?
장형사 : 그래, 10만원!
그렇게 옥신각신하며 걸어가고 있는 정우와 장형사, 그때, 하늘에서 갑자기 비가 쏟아지고-
그들은 비를 피하기 위해 광고판이 있는 처마밑으로 달려간다.
광고판이 붙은 처마 밑엔 이미 사람들 몇 명이 비를 피하고 있고- 곧이어 한 두 사람씩 뛰어들더니-
화분을 든 박의가 비를 피해 처마밑으로 뛰어든다. 조금 있더니 화구를 든 혜영이 뛰어와 머리를 털고 있고-
사람들 속에 섞인 세사람은 멍하니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고 있다.
비가 멎어지면서- 사람들이 하나 둘 빠져나가고- 박의, 정우, 혜영, 장형사가 마지막까지 남아있다.
정우와 장형사가 청년을 끌고 거리로 나가 사라지고-
이어, 혜영과 박의, 두사람만 남아서 있다가- 혜영이 처마 밖으로 손을 내밀어 보더니 걸어나가고 나면-
천진하게 화분에 낙숫물을 주던 박의도 하늘을 한 번 보더니 거리로 가버린다.
화면엔 텅빈 벽과 그림이 있는 광고판만 덩그라니 남아있다. 광고판에 보이는 글자, 언젠가 본 듯하다.
‘미래는 얼마든지 바뀔 수 있습니다....’
서서히 어두워지며- 롤링타이틀이 떠오른다.
-끝-
첫댓글 영화하고 완전 딴판이네.... 영화가 훨씬 괜찮다. -_-;;;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