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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좌담
*출처: 이동범 외(2013). ≪한글 숨바꼭질≫(한글가온길 18인의 한글 작품 결과자료집). (주)컬쳐앤로드 문화유산활용연구소. 104-121쪽.
▼ 일시: 2013년 11월 30일 토요일 저녁 6시
▼ 장소: 광화문 AGIsociety 회의실
▼ 참석자: 김슬옹(사회), 한재준, 이동범, 김영철, 구슬기
▼ 도움: 손혜인
▼ 녹취 및 사진: 최슬기
■ 들어가는 말
서울시가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대표적인 역사자원 다섯 곳을 관광자원으로 발굴하였습니다. 수도 한복판을 흐르는 한강, 600년 조선의 도읍을 감쌌던 한양도성, 2천 년 전 고대사를 고스란히 담은 한성백제, 서민들의 애환과 삶의 냄새가 그대로 배인 동대문 DDP, 그리고 한글유산으로 빛나는 세종대로……
그 중, 세종대로는 인류가 탄생시킨 최고의 알파벳으로 수많은 언어학자들에게 칭송받는 한글이 탄생한 곳이며, 한글을 만드신 세종대왕이 나신 곳입니다. 또한 강제 멸실의 시기에 한글을 지키고 집대성한 조선어학회와 주시경 선생, 한글의 현재와 미래를 살찌우는 한글학회도 이곳에 연을 두고 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공간을 새롭게 재탄생시키려는 노력에 많은 분들이 힘을 보탰습니다. 한글을 사랑하는 18명의 기성작가들은 ‘한글숨바꼭질’ 사업에 기꺼이 동참하였고, 수도 서울의 제일 복판 세종대로에서 한글의 가치를 감동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많은 땀과 시간을 내어 풍성하게 키워냈습니다.
서울시와 종로구, 여러 관련 부서와 주민, 작가와 추진업체 간의 협업은 2인3각 게임만큼이나 일보 일보를 걷는 일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꼭 해야 할 일이기에, 하고 싶은 일이기에 힘과 마음을 내어 결국 값진 결과물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한글숨바꼭질을 갈무리하며, 한글이 무르익은 이곳 광화문에 특별한 이야기장을 마련했습니다. 동참하신 작가 분들과 스토리텔링 원고를 감수하신 자문위원, 사업추진을 맡은 컬처앤로드가 한 데 모여 솔직하면서도 발전을 위한 토론과 애정 어린 비판의 자리가 될 것입니다. 이런 뜻 깊은 자리를 마련해준 서울시에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이 자리의 이야기들이 미래농사를 위한 훌륭한 밑거름이 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이동범
컬처앤로드 문화유산활용연구소 대표
한재준 회의 시작에 앞서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이동범 소장님께서 제게 한글숨바꼭질사업에 대한 도움 요청을 하시고 동의를 구하실 그때가 바로 김영철 대표께서 영국에서 귀국한 직후였죠. 광화문 근처에서 커피 한 잔 나누며 이동범소장님과 주고받았던 내용을 전해드렸지요. 그때 제가 한탄을 좀 심하게 했던 것 같습니다. 예산 3천만 원으로 스물 몇 곳에 한글조형물을 설치하자고 하더라. 두 군데라면 모를까 스물 몇 곳이라니? 그래서 이 사업은 아예 안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렸더니, 이젠 되돌릴 수 없는 사업이라고 하더라. 어떻게 이런 사업이 광화문 한복판에서 추진되고 있을까. 이런 터무니없는 사업을 도와 달라고 하니, 내가 지금 껴들면 함께 망할 것 같고, 그냥 놔두자니 그것도 너무 안타깝다. 이건 아무래도 제도나 절차상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반복되는 상황을 바로 잡을 대안이 떠오르질 않는다. 지금 조건으로는 잘해낼 자신도 없다. 그래서 그냥 망치게 놔두는 것이 대안이라는 어느 후배의 조언대로 미련 없이 거절할까 고민 중이다. 이런 내용 이었지요. 그런 저에게 김영철 선생이 한방 날리더군요. ‘평소에는 지원금 없이도 그런 일을 나서서 할 것처럼 주장하시더니, 그나마 지원금까지 준다는데 왜 거절하려 하세요?’ ‘지금 한탄하는 내용들을 바로 잡으려면 그 내용을 기록으로 남기는 게 중요합니다.’ 그러면서 그 기록을 책으로 만드는 일은 자신이 돈 안 받고 거저 돕겠다고 하더군요. 이 대목에서 용기를 얻었습니다. 그래서 이동범 소장님을, 한글가온길 사업을, 서울시를 돕게 된 것입니다. 물론 다 한글 때문이었지요.
김슬옹 그러면 자연스럽게 〈한글 숨바꼭질〉 프로젝트(이하 숨바꼭질이라 칭함)가 이루어지게 된 배경, 동기부터 말씀을 나누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숨바꼭질이 이루어지게 된 배경을 이동범 대표께서 먼저 말씀해 주십시오.
이동범 초기 아이디어는 역사에 명소화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장소 다섯 군데 중에서 고민하다 세종대로가 선택되었습니다. 세종대로는 한글이 탄생한 장소인 경복궁을 포함하며 한글이 겪은 우여곡절을 잘 보여줄 수 있는 장소입니다. 한글을 못 쓰게 했던 조선 총독부가 있었던 곳도 이곳이었고, 일제에 의해 탄압되었던 과정과 그것에 저항해서 지키려고 했던 조선어학회, 한글의 대중화를 이끌었던 한글학회까지 이 모든 것들이 몰려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한글과 관련돼 우리에게 남겨진 것은 무엇이냐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물론 한글을 만드신 세종대왕의 이름은 남겨져 세종대로,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세종대왕 동상, 세종이야기 등 이런 것들이 존재하지만, 한글 관련 역사자원, 문화자원이라는 것 중 딱 떠올려지는 것이 너무 약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이런 한글을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데 있어서 너무 근엄하지 않게, 의무감, 당위성 등을 가지고 접근하게 하는 것보다 언뜻 떠올리면서 의미들을 곱씹어 볼 수 있는 그런 방법이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하다 생각난 것이 그림 찾기였습니다. 옛날에 한글은 저항에 많이 쓰였습니다. 이는 지배층의 도구였던 한자와 달리 지배층과 피지배층을 아우르는 전인적인 요소를 한글이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 부분에서 벽서사건이 많이 일어났고 그림 찾기는 여기에서 힌트를 얻은 것입니다. 한글이 탄압받을 때 그것을 살리려 했던 학자들과 저항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곳곳에 한글을 숨기고, 그 숨겨진 한글을 사람들이 찾아내 한글의 가치와 의미, 재미를 찾아가게 해보자. 그래서 그림 찾기를 통해 역사 찾기를 해보자. 이것이 한글 숨바꼭질의 주요 계기이자 의도였습니다. 두 번째는 그런 것을 찾는 과정에서 아주 소소한 발견의 재미를 느끼게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이 발견의 재미라는 것은 한재준 교수님을 뵙고 조금 뒤에 잡은 주제였습니다. 그때 한재준 교수님이 ‘조형물은 쓰레기다.’라고 하셨습니다. 아름답다고 만들어진 조형물이 왜 쓰레기인가 의아했는데, 하신 말씀의 의도는 ‘취지는 좋으나 그것이 결과적으로 사람들에게 굉장한 안 좋은 것을 전해준다면 결국 그것은 쓰레기로 적용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현재 만들어진 많은 조형물이 취지랑은 다르게 쓰레기처럼 되는 경우가 많다는 거죠. 그런 부분들을 피하기 위해서는 환경과 조화가 이루어져야 하고, 그런 조화를 이루려면 세계 최고의, 한국 최고의 거대 조형물이 아니라 주위 환경, 역사, 이야기와 융화될 수 있는 작지만 소중한 것들이 필요하겠구나하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그림 찾기 콘셉트와 맞겠다 생각했습니다. 찾아다니려면 관심을 가져야 되고, 신경 써서 봐야 되잖아요? 신경 써서 봐야지만 보일 만큼의 소소한 조형물이 있고 그것을 찾아 발견하는 재미가 있으면 좋겠구나 싶어, 튀지 않으면서 조화를 이루는 작은 조형물을 생각해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무엇인가 이야기를 전달하는데, 조형 속에 숨겨진 작가의 메시지라든가 그 역사적인 공간에 대한 작가의 해석 혹은 의도와 같은 메시지를 드러내고 전달해주는 과정에서 한글 숨바꼭질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작품의 개수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처음에 스물 몇 개였던 것은, 후보작들을 떠올려 보고 거기에 의미가 있을만한 것들을 찍어보니 스물 몇 개였던 것이고. 이중에서 몇 개를 우리가 해석해서 작품화 할 것이냐는 다른 문제니까요. 의미 있다고 다 만들어버리면 나중 사람들이 할게 없잖아요. 그래서 어쨌든 18개 작품들이 만들어지게 됐습니다. 일단 과정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또 얘기하고 취지만 먼저 말씀 드렸습니다.
김슬옹 한글이 갖는 전인적인 소통의 가치와, 역사적인 가치, 예술 작품이 갖고 있는 나눔의 가치, 놀이의 가치까지 결합시켜서 이런 프로젝트를 기획하셨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면 이 프로젝트는 서울시 공모에서 공모를 하신 건가요?
이동범 네, 맞습니다.
김슬옹 이 아이디어 자체를 서울시에서 요구한 것은 아니죠?
이동범 저희가 처음 공모를 할 때 원래 작품은 숨바꼭질이 아니었습니다. 원래는 명소화 사업으로 여러 스토리텔링을 발굴하고 그걸 가지고 가시적인 프로그램과 눈에 보이는 조형물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처음에 저희가 그 스토리로 코스로 만들고, 그 코스에 솟대 모양의 안내판을 기획했었습니다. 그러다 계획이 바뀌고 서울시와 얘기하다 처음에 의논했던 기본적인 뼈대만 살리고 나머지는 다시 시작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더 좋은 방법을 찾기 위해 브레인 스토밍 하다 이 숨바꼭질이 나오게 된 거죠.
김슬옹 그러면 핵심 아이디어는 이동범 대표님 생각이신 건가요?
이동범 저 개인이라 생각하면 안되고, 우리 컬쳐 앤 로드 팀원 전체의 생각입니다.
김슬옹 그러면 그 기획을 서울시를 통해서 성립시키고, 또 우리나라 최고의 한글 예술가들을 불러 모으셨는데, 그 과정을 말씀해 주세요. 어떻게 예술가들을 불러 모으셨는지요?
이동범 다 아시는 소리 아니겠습니까? 그것은 제가 조금 전에 얘기하던 한재준 교수님 덕분이 였습니다. 처음 저희는 이 프로젝트의 시간이 짧고 예산도 부족하여 이것을 소화할 수 있는 분은 많지 않겠다 생각해 자문을 구하기 위해 제 지인 중의 한 분이신 부산대학교 김성계 교수님을 찾아갔습니다. 찾아가서 프로젝트의 기본 콘셉트에 대해 이야기하고 또 관련 이야기를 들며 좀 도와달라 부탁했습니다.
김슬옹 김성계 교수님의 전공은 무엇입니까?
이동범 그 분의 전공은 디자인이십니다. 처음 디자인 콘셉트을 구축하는 데 협조해 주셨고, 조언을 해주셨습니다. 사실 당시 저희는 제한된 시간과 제한된 예산으로 할 수 있는 것은 한 팀으로 구성돼 작품을 만드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할 수 없다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김성계교수가 이 부분에 많은 어려움과 한계가 있다며 좀 더 좋은 작가와 작품이 모아지게 해야 한다 얘기하셨습니다. 그래서 고민하던 차에 한재준 교수님 말씀을 들었습니다.
김슬옹 김성계 교수님으로 인해 한재준 교수님과의 아름다운 인연이 이루어진 것이군요.
이동범 예. 그렇게 이야기를 전해 듣고 한재준 교수님이 어떤 분이신가 저도 궁금해 찾아봤더니,한글 관련 이런저런 역할도 되게 많이 하셨고 활동을 하여서 제가 무조건 찾아 뵙겠다고 한교수님께 연락 드렸습니다. 그 때 한재준 교수님이 롯데월드 내에서 한글을 주제로 전시회를 하셨고 교수님을 뵈러 그곳에 가서 굉장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도 국어 국문학을 전공 했는데 한글에 대한 해석을 이렇게 할 수 있구나 싶었고, 굉장히 오래 고민했을 그런 표현들을 보면서 반드시 이분하고 이야기를 해봐야 되겠다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만나 제가 교수님께 부탁을 드렸어요. 이 작업을 하는데 여러 가지 도움을 주십시오라고 부탁을 드렸습니다.
김슬옹 김성계 교수님을 만난 때가 언제였나요?
이동범 그 때가 올 초였습니다. 2월 정도였어요
김슬옹 아, 올해 2월 초.
이동범 네.
김슬옹 그럼 한재준 교수님을 만난 것은 언제였죠?
이동범 3월인가 그랬을 거예요. 그리고 만나기 전 김성계 교수와 상의를 했어요. 한재준 교수와 만나겠다고 했더니, 김성계 교수가 한재준 교수가 이 분야에 대해 제일 잘 아시고, 좋은 작가들도 많이 알고 계시니 적극적으로 물어 보라며 초기과정을 도와줬어요. 이 일이 잘 되려면 한재준 교수님하고 더 적극적으로 하라고 하면서 본인이 일종에 디딤돌 역할을 한 거죠.
김슬옹 김성계 교수님은 디딤돌 역할만 하시고 직접 참여는 안 하신 건가요?
이동범 그 전에 궂은 일은 다해주셨죠. 시안 작업 해달라는 것도 다 해주시고. 어쨌든 그렇게 김성계 교수와 얘기했는데, 한재준 교수님이 NO하면 저는 끝나는 거잖아요. 그래서 불안해 가지고 한재준 교수님께 ‘어떻게든 도와주십쇼, 모든 것들은 선생님이 하자는 대로 다 할 테니깐’라고 말씀 드렸죠.
김슬옹 삼고초려를 하신 건가요?
이동범 네, 근데 선생님께서는 굉장히 취지는 좋으나 쉽지 않다며 그 이유로 기간이 절대적으로 짧고, 예산이 너무 부족하다 들었고, 그런 부분에서 이 계획이 제대로 나올 것 같지 않다 라며 굉장히 부정적으로 말씀하셨어요.
김슬옹 그렇죠. 우리 한재준 교수님은 늘 제대로 된 준비, 이것을 강조하시거든요.
이동범 네.
김슬옹 한재준 교수님은 우리가 다 아는 철두철미한 원칙론자시죠.
이동범 저도 사실은 그래서 지적 받았죠. 원래 콘셉트은 한 팀이 조형물을 다 만드는 거였는데, ‘그렇게 해서는 좋은 작품이 못나온다. 그렇게 나와서는 안되고 그렇게 될 수도 없다.’ 라고 말씀하시니까 억장이 무너지죠. 그렇지만 어쨌든 좋은 취지로 시작된 것이기에 시작도 하기 전에 무너져서는 안 되겠다 싶어 어떻게든 그 부분을 살릴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없는지, 교수님께 부탁을 드리면서 방법도 한번 찾아주십사 요청을 드린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 이야기는 교수님께서 말씀해주세요.
한재준 롯데월드 한글전시 마무리하는 날, 전날 밤을 꼬박 새운 상태였어요. 그런데, 그날 오전에 꼭 만나야 된다고 해서, 기왕이면 준비된 전시도 보시라고…
이동범 저,저기 밤새고 나서 집에 들어가셔야 되는 날이였어요. 들어가기 직전에 날짜는 확인해 가지고 하시면 될 것 같아요.
한재준 이전에 진행했던 전시들도 악조건들이었고, 그때도 진이 다 빠진 상태에서 그런 무리한 계획을 또 듣게 된 거지요. 그 후에 사업계획을 구체적으로 더 듣기 위해서 두 차례 쯤 더 뵈었지요? 예산이나 기간에 비해서 계획한 작품수가 지나치게 많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재차 확인했습니다. 예를 들어 한글날을 기념하기 위한 일회성사업인가. 행사가 끝나면 철거할 예정인가라고… 그런데 반영구적인 조형물이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어떻게 예산을 3,000만원으로 계획하나요? 보통 도심 공간에 조형물 1개를 설치하려면 최소 1,500만 원 이상은 투입해야할 텐데… 이해가 안 되더군요. 그러니 3,000만원이면 두 점의 조형물을 설치할 수 있을까 말까한 예산인데… 그런데 알고 보니 컬쳐앤로드의 아이디어는 제가 팀을 조직해서 중심 역할을 하면, 가능할 것이라고 판단했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제자들을 동원해서 진행하는 형식을 계획하셨던 것 같아요. 이건 뭐, 변두리 간판사업이나 달동네 미화작업도 아니고… 말하자면, 담벼락이나 건물벽면 또는 구석구석에 아이디어 중심의 그림이나 간단한 조형물을 설치하는 구상이더군요. 그런데 저는 이미 한글마루지사업의 취지나 배경을 대략 알고 있었거든요. 중요하고 의미 있는 사업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문화정체성을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에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이지요. 그런데 기본태도나 예산계획을 들으니 난감할 수밖에요. 문화중심지역으로 잘 살릴 계획이라면, 좀 더 진지한 태도로 접근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무엇을, 어떻게, 왜? … 이런 부분이 신중하게 결정되지 않았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기간도 촉박하고, 일의 순서도 뒤바뀌었고, 영구 보존할 작품이라면, 작가 선정뿐만 아니라 설치공간의 적정성, 시민의식이나 욕구등도 고려되어야하고, 제작방법이나 재료등도 일정한 수준을 넘어야할 텐데… 차라리 그 예산을 한글과 세종이도의 가치를 제대로 널리 알리고, 한글마루지 지역을 깨끗하게 정리하는 데에 투입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은가 조언도 드렸었지요. 조형물도 관리를 잘못하면 쓰레기가 되는 것인데, 섣불리 참여했다가는 크게 후회할 일이 되겠더군요.
이동범 그렇죠.
한재준 그래서 제가 고민을 했던 겁니다. 그런 고민을 하던 차에 김영철 대표께서 용기를 주셨고… 아니, 자극이었네요. 급소를 찔렸다고 할까. 그것을 계기로 제가 다른 대안을 생각하게 된 것이지요. 그래서 결국 이동범 소장님께서도 어떻게든 예산을 더 늘려 보겠다고 하셨고, 거의 두 배로 늘려 주셨지요? 저는 작가존중, 작품관리와 보존에 대한 책임, 사업 내용과 과정을 기록으로 남길 것, 이 세 가지를 부탁드렸습니다. 이 조건만 받아주시면, 제가 헌신하는 자세로 도와 드리겠다. 그래서 공식적인 직함이나 책임은 없이, 또한 다른 별도의 조건 없이 작가를 모시는 역할을 맡겠다. 그리고 저도 작가들 중 한사람 역할을 하겠다. 또한, 제가 부탁을 드리고 모신 도의적인 책임이 있으니, 작가들의 입장을 대변하고 소통하는 역할도 함께 돕겠다. 그래서 이 사업이 시작된 것입니다. 곧바로 안상수 작가님부터 시작해서 약 2주 동안 열여섯 분을 한 분 한 분 직접 모셨습니다. 물론 모든 여건이 부족한 상태였기 때문에 제가 부탁드리기 편한 분들 중심으로 모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김슬옹 그럼 안상수 선생님은 주시경 가로등 작품을 해 주셨죠. 가로등처럼 길을 밝히는 구실을 해 주신 거죠.
한재준 처음에는 저 혼자서 여러 분을 모시는 게 부담도 되고 해서 대표성을 가진 몇 분께 추천을 받는 형식으로 진행할 계획이었는데, 직접 몇 분께 연락을 드리다 보니 그것 또한 부담을 드리는 일이더군요. 아시다시피 불편한 조건이었으니까요.
김슬옹 그렇죠. 사람 모시는게 제일 힘들죠.
한재준 정말 그게 일이에요. 일일이 연락을 드려야 되고, 아쉬운 거 말씀 드려야 되고, 그래서 결국은 직접 마무리했습니다. 물론 작가 섭외 과정에서 서울시의 요청도 일부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무명작가, 젊은 작가도 포함해 달라는 협조 요청이었지요. 시기적으로 늦은 감은 있었지만, 제가 놓쳤던 부분이었기에 그 의견도 일부 반영했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조건의 부적절성에 대한 의견은 많았지만, 사업 참여에 대한 부탁은 한 분도 거절 없이 받아 주셨습니다. 정말 놀랍고 고마운 일이지요. 참여해 주신 작가님들께 정말 고맙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이동범 100%의 참석률이군요.
한재준 실제 참여 작가들에게 드린 총예산은 개인당 200만원 정도였습니다.
이동범 정확히 223만 원 입니다.
한재준 이런 기회에 꼭 밝히고 싶은 내용 중의 또 하나가, 바로 그 예산입니다. 왜 터무니없이 적다고 하는 것인가? 이건 원고료와는 또 다른 개념이거든요. 아마도 대부분의 작가들은 실제 제작이나 설치과정에서 지원금 이상의 비용이 들었을 것입니다. 물론 작가들은 나중에 서울시로 부터 받은 전체 액수에 대한 세금도 내야 하지요. 특정 직업을 가지고 계신 분은 이중 소득이 되니 더 많은 세금이 부가되기도 하구요. 그런데 공무원을 비롯한 대다수의 시민들은 그 돈의 대부분을 작가의 수입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작품 제작 과정에 대한 이해가 너무도 부족한 상황이지요. 작가가 스케치 한 장 넘기면, 모든 게 결정되고, 설치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더군요. 이런 조형물 설치 예산을 재료 구입비나 순수 제작비를 기준으로 책정하는 것 자체에 문제가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작가를 존중하는 문화가 자리 잡아야 하고, 창작물의 가치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합니다.
이동범 고민하고 연구를 해야 되는 거죠.
한재준 아니요. 고민할 문제가 아닙니다. 즉각 바꿔야 합니다. 제 경우엔 장소를 물색하다가 결국엔 한글회관 외벽을 선택했습니다. 새로운 조형물을 설치하는 쪽보다는, 현재 있는 것을 개선하는 쪽으로 선택했고, 또 평소에 한글학회와 관계도 있고 그래서 협조도 잘 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지요. 그래도 협의 과정이라는 절차가 필요한 것이니, 이를 위한 스케치나 모형도 만들어야 했습니다. 건물 주인이나 관련되는 분들께서 만족스러워하지 않으면, 작가는 수 없이 또 다른 접근도 해야 합니다. 서로 호흡이 맞지 않으면, 여러 차례 계획을 바꿔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한글숨바꼭질 사업처럼 공공성이 강한 경우엔 특히 예상치 못했던 일들로 일정이 늘어질 수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엔 중도 포기 또는 취소되는 경우도 있지요. 이런 상황에 대비한 관공서나 주민의 입장도 필요하지만, 작가에 대한 존중과 배려도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동범 그렇죠. 그래서 또 시행착오를 겪게 되니까요.
한재준 제작 과정에서도 의도와 다른 결과가 나와서 실패하는 경우도 있고, 그러면 다시 만들어야 하고, 심지어는 설치 후에도 다시 바꿔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일반 시민이나 공무원들은 그런 이해가 부족해요. 작가라는 사람들은, 적당히 스케치 한 종이 한 장을 공작소에 맡기면 바로 완성물이 나온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요. 작은 결과물 하나가 얼마나 많은 시간이 소요 되고, 그 속에 창작자의 어떤 열정과 노고가 숨겨져 있는 지를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걸 알면, 작품을 더 잘 깊이 즐길 수도 있는데 그 부분도 놓치고 있는 것이지요.
김슬옹 이동범 대표님한테 죄송한 말이지만 결국 이번에 참여한 예술가들께서는 자원봉사를 하신거네요.
이동범 네.
김슬옹 이번 작가들께서 예술혼을 바친 것은 한글의 나눔의 가치와 같습니다. 나중에 역사가 또 보상을 하리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 열여덟 분이 처음부터 끝까지 참여하신 거죠? 중간에 바뀌시거나 그런 분은 없나요?
이동범 네
한재준 사업 진행 도중에 그만 둘 생각했던 분도 계시죠? 장소가 몇 번이나 바뀐 분들도 있고…
이동범 네. 그때 우여곡절이 좀 있었어요. 우여곡절이 여러 가지 있는데, 아까 말씀하신 예산문제 같은 경우, 저희가 처음부터 예산을 그렇게 박하게 잡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처음 예산은 4,000만 원이었고, 주시경 선생님 생가가 워낙 부각이 안돼 있기 때문에 그곳에 설치될 가로등이나 벤치에도 따로 예산을 잡아놓았어요. 그러나 아까 말씀 드렸듯이 서울시와 협의를 거치면서 처음 계획에 기본만 남기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게 돼서 예산 역시 재편성하게 됐습니다.
그 때 23년 만에 한글날이 공휴일로 지정돼서 그런 날에 사람들에게 한글의 가치나 의미 등을 고취시키며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대중적인 행사를 벌이자 해서 생각해 낸 것이 도미노였습니다. 나중에 무산 됐습니다만 그게 무엇이냐면, 광화문에서부터 세종로 공원, 세종문화회관을 지나 한글 가온길까지 거기로 도미노를 설치하고 그것으로 한글의 재미와 가치를 전달하려는 일회성 행사였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준비하는 과정이 복잡하고, 개인 뿐만 아니라 집단 참여 역시 생각하다 보니 너무 많은 예산이 들어가 몇 개 프로젝트는 합치기도 하고 빼고 하는 과정에서 예산이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김슬옹 그러면 최초의 예산 4,000만 원이라는 돈은 누가 정한 건가요?
이동범 아! 그거는 저희가 정한 겁니다.
김슬옹 서울시에 응모 할 때 정한 건가요?
이동범 아니요. 응모 할 때는 작가님 한 분에 보조자 분들을 팀으로 구성해서 예산을 숨바꼭질하고 주시경 가로등과 벤치 이 두 개 작업으로 잡아 놨는데, 나중에 이것이 합친 거예요. 두 개를 합치고 예산은 그렇게 줄어든 거죠. 그런데 교수님 말씀을 들어보니깐 이 예산으로 하는 것은 어렵다 느껴 도미도 사업으로 뺀 예산을 다시 숨바꼭질에 가져와 나중에 5,000만 원으로 만든 거죠.
김슬옹 우여곡절이 많았군요.
이동범 네, 그런 우여곡절이 있었죠.
김슬옹 그럼 잠깐 진행과정 말씀 드리면, 먼저 참여하신 분들과 얘기 좀 나누고 그 다음에 내용과 전시 후 평가문제를 짚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18분들 중 두 분이 나와 계신데, 김영철 선생님이 처음 참여 하게 된 동기는 무엇이며, 참여하고 나서 보람 같은 것은 어떤 게 있습니까?
김영철 한재준 교수님께 제가 말씀 드린 것처럼 어차피 한글은 중요하고 그것에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이 해야 할 일이기에 200만 원이든 얼마든 간에 명분이 주어진다면 해야 하는 일이라 생각에 시작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김슬옹 그럼 대표님께서는 한글 디자인 쪽은 어느 정도 공부하시고 이쪽으로 어떤 작품을 내셨나요?
김영철 한글 디자인을 따로 공부했다기 보단, 디자이너들이 한글이란 소재를 가지고 디자인하는 것이 당연하고 제가 만드는 책들도 한글로 된 것이디 때문에 한글에 대해 알 수 밖에 없죠. 그러면서 한글의 문제점도 알게 되고 그와 관련된 작업도 하게 되고 그렇습니다.
어쨌든 이번 작업은 삶에 나무라는 제목이고 가로수 밑에 가로수를 보호하는 철제가 있는데 그 철제를 링으로 해, 한글을 주제로 한 판 작업을 했습니다.
김슬옹 그 주제를 선택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김영철 아, 저도 주제가 한 번 바뀐 적은 있어요. 원래 공원 안에 ‘퐁당퐁당’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작업을 하려 했는데, 그곳에 공사를 한다 해서 밖에서 주제를 찾다가 바닥이라는 것이 드러나지 않으면서 자꾸만 생각해 보게 하는 장소인 것 같아 선택하게 됐습니다. 그 가로수 길을 쭉 보시면 제일 허약한 나무가 하나 있어요. 제가 설치한 나무가 그 나무입니다. 그 나무의 판을 바꿔주었습니다.
김슬옹 여기 취지를 보니깐 아주 힘든 우리 삶이라 할지라도 거부 할 수 없는 삶의 몸짓, 열정 이런 걸 담았다고 쓰여 있네요.
김영철 그렇게 볼 수 있죠.
김슬옹 한글로 인해 지금 살아있는 삶에 희망을 주는 나무가 됐네요.
김영철 그렇죠. 아마 한글이 그래야 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창제 원리도 그랬고.
김슬옹 한글의 역사성과도 맞아 떨어지고 많은 보람을 느끼셨겠어요. 그렇죠?
김영철 네
김슬옹 그러면 구슬기 선생님은 어떤 동기로 참여하게 됐나요.
구슬기 한재준 교수님 소개로 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걸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슬옹 그러면 주제 선택과 설치 과정에 대해 간단히 말씀해 주시겠어요?
구슬기 광화문 시대에 화단을 처음엔 주시경 선생님 집터 앞으로 하고 싶었는데, 거기가 우여곡절이 많더라고요. 주민분들이 안 좋아하시는 것도 있고, 제가 소화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서 가온길 끄트머리로 장소를 선택했습니다. 그곳의 화단이 쉬는 공간이라 그곳에 이름을 붙여주고 싶었어요. 또 한글에 자연적인 특성도 있고, 그래서 이름을 숨이 되는 쉼으로 정했습니다.
김슬옹 우리 한글을 조화의 문자라고 하는데, 구슬기 선생님은 이런 한글의 특성을 살려 주변과 조화가 잘 되는 작품을 만드신 것 같습니다.
작품 18개 주제가 다채로운데, 이걸 어떻게 정하게 되었는지요? 한재준 교수님께서 말씀을 해주세요. 처음부터 기획된 주제를 배열한 건가요? 아니면 자유롭게 한 건가요?
한재준 사실 이 프로젝트는 한편으로는 많은 반성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이런 성찰의 기회를 의도적으로 만든 것이기도 하고, 이게 제도상으로 일정한 기간이 정해져 있었고 예산도 한정 되어 있었고 어떻게 하면 주어진 예산과 기간을 가장 효과적인 활용해서 주어진 문제를 풀어낼 것인가? 지혜를 짜낸 결과죠. 그런데, 어찌 되었건 결과를 봐서는 아까 김슬옹 박사님이 한글이 지배층과 하층민이 서로 조화되도록 역할을 하는 문자다. 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런 관점에서 보면, 좀 더 다양한 작가들이 좀 더 이 지역과 공간에 대한 역사나 상징성에 대해서 깊이 이해한 후에, 예산의 한계에 대한 부담을 줄인 상태에서 진행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이런 반성입니다. 기본적으로 제 방침은 주어진 기간도 짧았고, 처음에 컬처앤로드 쪽에서는 컨텐츠에 따른 작품 제작을 구상하셨지만, 저도 작가의 한 사람 입장에서 보면, 주어진 텍스트를 해석하는 정도의 발상보다는, 주어진 내용이나 조건은 참고만 하고, 작가 스스로 해석하는 것이 오히려 더 창의적이고 다양한 형태의 작품을 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을 했습니다. 제가 모신 작가 분들은 충분히 그런 역량을 갖추신 분들이었기에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자신이 있었지요. 사실 사업 참여를 부탁드릴 때부터 모시기 위한 짧은 글을 드렸는데, 그때 가장 강조해서 드렸던 말씀이 이 한글가온길의 중요성이었어요. 한글이 태어난 곳 경복궁과 한글을 만드신 세종대왕이 태어나신 곳을 상징하는 길이라는 점이지요. 바로 이런 의미 있는 거리에 작가님들의 귀한 작품을 한 점씩만 남겨 주십사고 부탁드렸습니다. 그동안 한글을 주제나 소재로 꾸준히 작업해 온 그런 분들로 모셨습니다. 기획은 컬쳐앤로드가 했지만, 해석은 작가들이 다양하게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김슬옹 그럼 구체적인 장소선택은 작가님들의 자유인 건가요?
한재준 처음엔 컬쳐앤로드가 서울시와 협의해서 몇 군데 가능한 지점을 골라 주셨어요. 저는 이 내용을 작가들께 알려 드렸고, 자유롭게 마음에 드는 곳 한두 군데를 고르도록 했고, 그 내용을 공유하면서 서로 조율하여 확정했지요.
김슬옹 네 겹치면 안되니까요.
한재준 그래서 저는 나중에 선택했습니다.
김슬옹 아, 역시 대장님답게
한재준 아니요, 모시는 입장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김슬옹 그런데 결국 제일 좋은 것을 택하신거 아닌가요?
한재준 결국엔 그게 하늘의 뜻이었던 것 같네요.(웃음)
이동범 오늘 논의 시간이 충분하다면 잠시 기획 초기 틀 부분에 대해 부연설명 하겠습니다. 한교수님이 제게 말씀 하신 대로 이런 역사적인 공간을 해석하고 해석된 부분을 국민들과 나누기 위해선 공감대 형성이 중요합니다. 이것은 설명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상징적인 장소가 갖고 있는 역사성, 문화적인 의미, 가치가 사람들에게 호소력 있게 전달되었을 때 형성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런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했으니 이제라고 시작해보자 해서 시작한 것이 이번 서울시 프로젝트입니다. 그리고 무엇으로 공감대를 형성 할거냐 할 때 생각한 것이 스토리텔링을 활용한 역사명소화 사업이었어요. 역사를 자원화시켜서 관광명소화 시킨다는 거죠. 그러면 정상적으로 진행되려면 스토리텔링을 발굴하고 발굴된 스토리텔링을 작가들이 해석을 통해서 표현해 내야 맞는 순서거든요? 근데 스토리텔링 발굴 작업과 표현하는 작업을 동시에 시작한 겁니다. 이건 말이 안 되는 거죠. 그러니 결국 큰 틀만 잡게 된 거에요. 한글의 역사, 문화적인 공간, 창제의 공간 그리고 그것을 반포해가는 실현의 공간, 그것이 지켜지는 공간, 그리고 그것을 미래화 시키는 공간 이런 부분으로 큰 테마만 던지고 나머지는 작가 분들의 역량을 가지고 이끌어 나갈 수 밖에 없었죠. 한교수님이 말씀하신 방식대로 갈 수 밖에 없었던 거죠. 그렇게 해서 작가적 역량이 뛰어난 분들로 꾸려졌는데, 서울시 김보경 주무관이 신인작가들도 참여해서 다양한 견해를 보여줬으면 좋겠다 의견을 더해 지금의 작가 18분이 형성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장소를 선택해야 하는데, 이것도 정상적이라면 선택된 범위의 공간에서 작가 분들이 헌팅을 해야 되는 거잖아요? 여기가 좋다라고. 그렇게 해야 되는데, 그렇게 못했던 거예요. 시간제약도 있었고, 사유화된 공간에 공공 작품이 들어가는데 많은 제약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작가 분들이 완전히 자유롭게 장소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저희들이 작가 분들이 작품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역으로 찾아 드린 겁니다. 작가 분들과 같이 투어를 하고 맘에 드는 장소를 선택해 서로 중복되지 않도록 고른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 문제가 무엇이었냐면, 그것에 대해 사전에 어느 정도 동의를 해줬던 분들이, 예로 들면 거기 대표 분들이 해당 주민 분들하고 회의를 통해서 결정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던 거예요. 결국 어떻게 됐냐면 아예 그것을 원천적으로 부정한 분들도 계셨고, 처음에는 동의를 했다가 나중에 합의를 하는 과정에서 안 하겠다고 하셔서 뒤집어진 때가 있었고 이런 우여곡절들이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장소가 몇 번 바뀌었습니다. 그렇게 장소를 허락 받기 위해 저희가 일일이 다 찾아가 횟수로 따지면 수십 번이 넘습니다. 계속 전화하고 찾아 뵙고 동의서 받고 다시 또 전화 드리고 약속잡고 그런 우여곡절을 겪었는데, 이게 개인뿐만 아니라 관공서도 문제가 있었던 거예요. 저희가 협조요청 공문을 보내면 그것을 충분히 검토해 답을 주면 되는데, 작가가 내일 모레 설치 하러 가는 날 갑자기 안 된다고 하는 겁니다. 되게 황당한 경우죠. 주어진 여건도 어려웠는데 그런 외부적인 상황들도 있었던 거죠.
어떤 일이든 사람이 하는 일에는 한계와 오류가 발생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한계라는 것은 그것이 왜 문제인지 알지만 극복 할 수 없을 때 한계라 합니다. 그 다음 오류라고 하는 것은 문제라고 인식하며 해결 할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그 당시 제가 밀고 나간 것은 한계는 어쩔 수 없지만 오류는 범하지 말자입니다. 이렇게 주어진 여건과 상황이 좋지 않아도 그 틀에서 최선의 선택 최대의 노력을 통해서 위기를 해결 해보자 해서 끝까지 진행한 것이죠. 그래서 사실 작가 분들이 엄청 고생하셨습니다.
김슬옹 대표님 말씀 듣고 보니 이번 프로젝트가 완성된 것은 기적이었네요.
이동범 솔직히 이렇게 18개 작품들이 다 나올 줄은 몰랐어요.
김슬옹 예술이 고난 속에 꽃핀다 하지만 너무 심했다는 생각이 드는데, 진짜 고난 속에서 꽃이 핀 건가요? 김영철 대표께서 말씀해 주세요. 고난을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김영철 일단 그전에 이 프로젝트를 작가의 입장에서 이야기 해보도록 할게요. 한글에 관련된 전시 또는 연구는 지금 대표님께서 말씀하신 서울시 프로젝트 이전에도 꾸준히 논의되어 왔습니다. 특히 공공디자인 이라는 것은 10여 년부터 열풍이 불기 시작해서, 꼭 한글이 주제가 아니더라도 공공이라는 영역 속에 어떤 작품이 설치돼야 하는지 끊임없이 논의되어 왔습니다.
김슬옹 아 그렇죠.
김영철 그런 상황에서 이 프로젝트를 접했을 때, 모든 작가들이 ‘한글 숨바꼭질,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했을 거에요. 그 이유로 첫째, 공공장소에 예술 작품이 들어설 때 대부분 기념비적 또는 랜드마크와 같은 효과를 위해 작가들에게 작품을 요청하는데 숨바꼭질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죠. 기념비적으로 세워진 작품들은 시간이 지나고 보니 관리도 관리지만 자기 작품 세계를 거만하게 표현하여 보기 안 좋고, 공간의 문맥과 상관없이 지어져 오히려 환경을 해치고 있더라는 겁니다. 그에 반해 이번 숨바꼭질 사업은 주변과 조화를 이루며 공간을 생각했기에 좋다라고 느꼈던 겁니다. 그리고 둘째, 스토리텔링이 의미가 있다는 게 좋습니다. 이렇게 들어내지 않으면서 소박하게 숨어서 보여주는 방식은 좋은데, 한글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는 논의가 잘 안됐던 것 같아요.
한글에 관해서 누구는 손으로 쓰시고, 어떤 분은 아트 작품으로 하셨는데, 이런 부분에 대해서 논의를 하고 싶었는데, 안돼서 아쉽습니다.
김슬옹 네, 결과적으로 18개를 쭉 살펴 보니 일단 제목부터 다채롭습니다. 제목부터 ‘ㅈ을 가진 사나이’, ‘쉼’, ‘나는 한글이다’등 명사로 끝나는 것도 있고 문장으로 끝나는 것도 있고 다양합니다. 주제도 다채롭고 거기에 표현하는 방식도 개성 있다 보니 알찬 것 같았습니다.
김영철 그런 면에서는 알차고 좋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한글에 관해 본질적으로 하고 싶은 말인지 의문이 듭니다. 지금까지 디자이너들이 한글 숨바꼭질과 같은 작업을 무수히 많이 해왔는데, 왜 우리를 또 이것을 반복하고 있는지도 의문입니다. 디자이너 뿐만 아니라 학교의 학부생들도 이런 작업을 무수히 많이 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모르고 보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건 한글과 관련 있는 전문 연구자들조차 이런 작업이 있는지 모른다는 겁니다. 또 23년만의 공휴일로 한글날이 지정되어 그것을 기념으로 서울시에서 만든 사업인데, 관련 공무원들조차 잘 모릅니다. 처음으로 이렇게 한글에 대해 접근하고 있다 생각합니다. 반면 작가들은 ‘또 이런 작업을 하는건가.’라는 생각을 했을 겁니다. 이번 프로젝트의 성과 자체는 좋다 얘기 할 수 있지만 또 하나 우리가 왜 이것을 끊임없이 반복하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남습니다.
죄송하지만 이번 사업에 대한 논의를 조금 더 진행해볼게요.
오늘 보니 안지용 작가가 작품을 설치한 곳에 새로운 작품이 말뚝처럼 세워져 있었습니다. 안지용 작가가 그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며 고심한 작품을 전혀 배려하지 않은 행태였습니다. 그 작품을 뭐라 하는 게 아닙니다. 작품에 우위가 있듯이 행동한 태도에 문제가 있다는 겁니다. 이 사건을 보며 우리가 한글을 비롯해 공공디자인이라는 것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논의가 필요하다 느꼈습니다. 최소한 여기 참여했던 작가들은 그 문제에 대해 굉장히 많은 고민을 하고 작품을 설치했습니다. 작품을 어떻게 멋있게 놓을지 고민하기보단 환경을 해치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풀어 넣으려 했습니다. 그것이 이번 사업의 좋은 점인데, 위와 같은 문제들이 지금도 벌어지니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한재준 문제가 나온 김에 조금 더 보태자면 그만큼 문화적으로는 많이 무지 한 거 같아요. 공간을 해석하는 거나 조형물을 갖다가 설치할 때 시민의 문화의식이 중요한데, 기본 예의도 별로 없고 제가 보기엔 아직은 뭔가 불균형한 상태라는 것입니다. 저것도 하나의 폭력이거든요. 저는 안지용 작가께 너무 죄송하고 상황 파악도 제대로 안된 상태라 아직 전화도 못 드렸어요. 광화문 연가 작업하신 김경균 작가께도 그랬지요. 장소를 이리 저리 옮기면서 작업 리듬을 다 깨버렸으니까요. 이번 문제만큼은 서울시가 어떻게 해서든 안지용 작가님과 잘 협의해서 해결해 주십사 부탁드릴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방송에서 저 내용을 다룬다고했나요?
이동범 네, k디자인에요.
한재준 그렇다면 저 상황이 문제 꺼리로 다뤄질 수 있겠네요. 한편으로는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시민들이 이런 상황을 알 필요가 있어요. 작품이라는 게 뭔가?
작품을 감상하고 즐기는 또 다른 방법을 알리는 기회가 되면 좋겠어요. 제가 보기에 안지용 작가는 거기에 일부 무너져 있던 돌담 그 공간을 잘 활용 했거든요. 제가 작가 입장이었어도 그 배경의 나무까지도 다 검토했을 거예요. 그런데, 오늘 확인해 보니, 이미 나무도 흙도 다 파헤쳐져 있고, 그 바로 옆에 어떤 기둥이 세워져 있었어요. ‘아, 이거야 말로 정말 몰상식이다.’라고 참담함을 느꼈지요.
김슬옹 한글학회에서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그런거 아닌가요?
한재준 모르지는 않았겠지요. 한글학회는 돌볼 겨를이 없는 것인지, 미관에 대해서는 무심해 보여요. 외형도 하나의 언어라는 태도를 가졌으면 좋겠어요. 지금 주시경 선생님 동상 그 뒤편에 표식판 하나가 붙어 있죠. 사실 그것도 떼어내야 합니다. 동상 뒤편에 무슨 아크릴판으로 만든 표식을 또 갖다 붙이는 자체가 한힌샘 선생님에 대한 예의도 아니고, 그 조형물을 만든 조각가에 대한 예의도 아니지요. 조형물 그 자체의 가치에 대한 태도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시민의식의 문제일까요 아니면, 시청 직원들의 문제일까요? 대한민국 서울 광화문에서 저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정말 뉴스거리입니다. 정말 지혜롭게 잘 해결하길 바랍니다. 처음 이 사업에 대한 협조 요청을 받고 제가 고민 했던 게 바로 이런 일이예요. 만약 제가 서울 시장이라면, 예산 5000만원을 다르게 활용했을 겁니다. 우선, 이 지역, 이 동네 사람들, 이 지역을 지나다니는 많은 사람들에게 한글의 가치와 세종의 가치를 잘 알리는 일을 먼저 했을 겁니다. 그 다음은 청소를 깨끗이 하고, 지금 있는 것 중에 쓸데없는 것은 다 치우고, 꼭 있어야 하는 공공 시설물들은 더 견고한 것으로, 보기에도 좋게, 더 좋은 재료로 바꾸고 싶습니다. 이 동네 사는 사람이 한글이 뭔지를 제대로 알고, 그 가치까지 잘 알고, 세종 이도라는 분이 왜, 어떻게 한글을 만들었는지 잘 알게 되면, 자연히 스스로 한글과 그 가치를 잘 가꾸게 될 것이거든요. 아마, 이웃 사람들도 나서서 거들게 될 겁니다. 간판도 로마자보다 한글로 바꿔보자고… 소통의 거리, 세계 문자의 거리로 만들자고 나설 수도 있겠지요. 그러면서 자연히 좋은 것들이 나오는 것이 바람직한데, 무언가 순서가 뒤바뀐 기분이에요. 시민이 원치 않는 걸 마치 억지로 나서서 하고 있는 꼴이라고 할까요. 그러다보니, 대접도 제대로 못 받고 있는 것이지요.
김슬옹 일단 문제점부터 나왔는데 먼저 긍정적인 평가부터 다시 정리해 보겠습니다.
김영철 긍정적인 평가라고 한다면 이번에 참여한 숨바꼭질 사업의 주제와 태도가 좋았던 것 같습니다. 작가들도 그런 태도에 입각해 주변환경을 해치지 않았고, 멋 부리지 않으면서 멋 부리는, 한글정신에 맞춰진 작품이 최대 성과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8개 중 하나의 작품만 평가를 한다면 ‘뭐 이게 멋있느냐, 작품성 있느냐’ 하는 의문이 들 수 있지만 전체를 봤을 때 시민디자인을 실천한 작품인 것 같아서 좋은 것 같습니다.
한재준 그러니까 작가 분들이 다 참여한 거죠.
김슬옹 네. 그럼 이걸 직접 본 사람들 반응 같은 것은 조사 하셨나요? 언론반응까지 포함 해서 대표님께서 말씀해주세요.
이동범 저희가 18개 작품이 설치될 때 다 참여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가능하면 보자 해서 작품이 처음에 선정될 때부터 그걸 해석하고 설치하는 과정 대부분에 참여를 했습니다. 그런데 작품을 설치 할 때 시민분들이 호기심을 가지고 그 과정을 지켜보셨고, 그분들에게 작품의 의미, 배경 등을 설명해드리면 굉장히 재미있어 하셨습니다.
김슬옹 언론 반응은 어땠습니까?
이동범 저희가 아직 중앙일간지 기자 분들하고 접촉을 못했습니다만 전통문화를 소개하고 알리는 신문사 대표님이 직접 제게 오셔서 충격을 받았다며 숨바꼭질 작품을 하루에 한 작업씩 소개하겠다 하셨습니다. 저희가 앞으로 홍보를 더 해야겠지만 제가 볼 때 이것은 뜰 거 같아요. 왜냐하면, 이게 하루 아침에 이루어 진 게 아니라 작가 분들이 본인의 축적된 역량을 조직적으로 다양하게 표현해 낸 것이기 때문이죠.
김슬옹 저는 학교선생님들 연수를 자주 다녀요. 자주 다니면서 이걸 소개했더니 답사 프로그램으로 기획을 해서 한번 돌고 싶다는 선생님이 많았죠. 한글 역사가 그러했듯이 작품의 가치는 더 흘러가면서 빛을 발할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앞에서 프로젝트 문제점에 대한 얘기가 일부 나왔는데, 이와 관련하여 더 나은 발전을 위해 아쉬웠던 점을 논의해보겠습니다. 구슬기 선생님 먼저 말씀 해주시기 바랍니다.
구슬기 저의 바램은 여러 사람들의 평가를 듣고 보완할 점을 찾았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시민들뿐만 아니라 한글을 연구하시는 분, 디자이너 각각의 전문적인 평가를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걱정스러운 것은 환경에 영향을 받을 작품의 보수, 보완입니다.
김슬옹 지금 본다면 완벽한 작품이더라도 환경이 바뀌면 어떻게 될 지 모르죠. 그것을 고치거나 보안할 그런 여지나 계획이 있나요?
이동범 네, 이 부분은 제가 꼭 얘기하고 싶었던 겁니다. 아까 한교수님이 잠깐 안지용 선생님 작품에 조형탑이 세워진 얘기를 하셨는데 이것은 사후관리와 관련하여 모든 것을 압축해 보여주는 사건이라 생각합니다. 이것은 ‘event’가 아니라 ‘accident’입니다. 큰 사건인데요. 서울시가 한글 가온길 사업이라는 것을 하기로 하고 그것을 지속적으로 운영해 나가기 위해 장기발전 계획을 세우는 와중에 이런 사건이 터진 겁니다. 저는 한편으로 잘 됐다는 생각이 듭니다. 문제가 많지만 이것을 초창기에 개선하는 것이 앞으로의 발전에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겠다 생각한거죠. 가온길 사업을 할 때 이것을 다루는 과에 ‘역사도심과’와 ‘관광과’가 있어요. 그러면 이 두 과가 협력해서 가야 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것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어요.
이번 사건에 대해 제가 알아봤더니 한글날 때 광화문 광장에 설치했던 조형물을 행사가 끝나고 놓일 데가 없으니까 이곳 한글학회 앞에 놓인 겁니다. 그러나 공간은 창고가 아닙니다. 대중들이 오고 가는 거리가 창고가 되어서는 안 되죠.
김슬옹 한글학회가 서울시와 합의를 안 했나요?
이동범 서울시의 요청에 의해서 한글학회가 허용을 해 설치를 하게 된 거죠. 그런데 문제는 한글학회는 한글에 전문가일수는 있지만 공간의 설치, 해석에 관해선 전문가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 영역이 소중한 만큼 남의 영역도 소중하다는 것을 알아야 하죠. 그런 부분이 아쉽습니다. 서로 잘난 구석이 있고 못난 구석이 있어 잘난 구석은 자기가 하고 못난 구석은 보완을 하면 되는 겁니다. 이게 바로 협업입니다. 이런 협업에 대한 필요성이 절실히 느껴집니다.
김슬옹 위원회는 있습니까?
이동범 네, 위원회는 있습니다. 초창기에 위원회를 만들긴 했는데, 구멍이 많이 뚫린 상태죠. 이것을 보완해 적당한 규제를 해야 합니다. 유럽 선진국들을 보면 공간의 높이부터 색까지 규제하잖아요. 그 규제는 자유를 억압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모두의 행복과 바람을 위해 규제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규제는 다른 말로 배려입니다. 초기 한교수님께서 작가들을 배려해 달라 부탁하셨는데, 작가에 대한 배려 뿐만 아니라 공간에 대한 배려도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런 부분에 대해서 모두가 합의할 수 있는 혹은 합의해 나가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이 생략되어 버렸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고 봅니다. 지금 이곳에 한글이 살아남아 있는 게 무엇이 있습니까? 경복궁하고 한글학회 딱 2개 밖에 없습니다. 그곳의 오랜 역사와 가치를 하나로 복원해 나가려면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단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위원회가 있는 것인데, 이 위원회가 서울시와 소통이 안돼서 문제인 겁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이런 부분들을 보완해 사업에 망을 형성, 가온길 이후 미래적 사업과 연결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한재준 작가와 작품을 존중하는 태도와 문화가 있으면 저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지금이라도 어떤 제어장치가 필요합니다. 지금 설치한 작품 주변, 적어도 반경 1m 정도 안에는 다른 구조물 설치를 제한 한다던가 하는 그런 원칙이 적용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그걸 상식이라고 보는데, 그래서 전문가가 필요한 것이지요.
이동범 교수님이 말씀이 맞기는 하지만 저는 다른 접근도 필요하다 봅니다. 왜냐하면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있는 분들은 그 안에 있는 코디네이션은 잘하지만 우리가 한 작업은 바깥이니 다르다고 봅니다.
한재준 그런 정도의 수준을 갖춘 사람이 관리를 해야 하는 거죠.
이동범 네, 맞습니다. 근데 우리는 아직 외부적인 공간에 설치를 할 때, 모든 것을 종합적으로 지휘할 수 있는 무엇이 없습니다. 없었기 때문에 처음 하려 하니깐 많은 손이 있었죠. 공간을 관리하는 종로 구청과 설치를 했던 서울시 그리고 서울시에 이것을 자원했던 관광과, 도시에 경관들을 관리하는 역사도심과 등 굉장히 많은 혈관들이 있었다는 겁니다. 이 혈관들을 통제할 뇌에 역할이 없다는 것이 문제여서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고 있는 거죠. 이게 개별적으로 보면 좋은 걸지도 몰라도 전체 합은 엉망이 되는 겁니다. 이런 부분들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와 각 혈관이 연결되는 길을 터주어야 하는 작업 필요합니다. 그래야 좋은 취지의 것들이 만들어 지는 거죠. 그래서 한글 가온길 사업에 관해서 앞으로 후속 사업이 만들어 질 것 아니겠어요? 또 만들어질 때 먼저 진행했던 사업과 후속 작업의 협의가 필요합니다.
김슬옹 글쎄, 우리는 세계 최고의 과학적이고 예술적인 한글을 만들어 놓고 많은 사람들이 이류 문자 취급을 해왔습니다. 최고의 이런 예술작품을 만들어 놓고, 이류 작품으로 취급한다면 대단히 큰 죄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일류 한글을 지켜나가듯이 조형물들을 지켜나가는 방안을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그러면 이것으로 1차 한글 숨바꼭질에 대한 얘기를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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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철 문제점에 대해 먼저 거론해보겠습니다. 우리는 한글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글자이고, 보편적이니까 대단하게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도 한글에 대해 정확하게 알 필요가 있으며 구분해서 볼 수 있는 눈을 길러야 합니다. 그래서 외국사람에게 정확하게 한글을 알려 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한글에 대한 이해가 안 되어 있거나 제대로 파악이 안되다 보니 한글날 행사나 한글 관련 콘텐츠 사업을 하는데 문제가 있어도 작품이 의미 있다는 식으로 넘어가니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습니다. 이 두 가지 측면을 논의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김슬옹 좋습니다. 한글의 융합적 가치를 다목적인 측면에서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이야기를 풀어가도록 하죠. 그 동안 한글은 국어학자나 한글학자의 범위 내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글은 창제부터 철학성, 예술성, 문화성, 민중성, 소통성 등 융합성을 갖고 있습니다. 이러한 융합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문제제기를 김영철대표께서 해주셨습니다. 그러면 먼저 한글 융합성에 대한 가치를 디자인 차원에서 추구해 오신 한재준 교수께서는 한글을 어떻게 바라 보시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한재준 저는 지난 2013년 한해 동안 ‘이기불이’를 여러 차례 강조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훈민정음 해례본 제자해서 표현된 내용이지요. 이치가 이미 둘이 아니다 라는 뜻 아닙니까? 사람들이 한글을 자꾸 단편적으로 보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그런 표현을 강조했습니다. 앞으로도 당분간은 이 내용을 강조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얼말글의 가치는 그런대로 자주 하고 있지만, 글이라는 큰 개념에 포함되어 있는 ‘꼴’의 가치는 많이 놓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글을 빛내기 위해서도 앞으로는 얼말글꼴이 함께 강조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융합이라는 표현도 다분히 서구적이지요. 우리는 이미 세상의 이치가 둘이 아니라고 알고 있어요. 배워서 아는 것이 아니고, 그냥 살면서 곰곰이 생각하면 깨달을 수 있는 이치이지요. 이런 것들을 책이나 글로만 배우려고 하고, 그 편리성 때문에 자꾸 나누어서 생각하다 보니깐 이젠 전체를 보는 통찰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한글에 대한 연구만 해도 그 동안은 주로 어문학적인 관점의 연구가 대부분이었고, 국민들 대다수도 한글 연구는 어문학자 중심으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죠. 한글 운동에서도 바른말 고운말 운동은 많이 하고 있는데 꼴에 대한 운동은 거의 없지요. 그 개념도 부족하고, 그 가치에 대한 인식도 부족한 상황입니다.
김슬옹 잠깐만요, 교수님께서는 고운꼴, 바른꼴, 쉬운꼴, 3대 꼴을 내세우셨지요.
한재준 훈민정음 해례본 세종 서문에 있는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끌어낸 것인데요. 무엇을 만들거나 어떤 일을 계획할 때, 더 쉽고 더 편리하고 더 쓸모 있는 것을 추구하자는 주장입니다. 고운말 바른말이 필요한 것처럼, 곱고 바른 꼴도 당연히 필요합니다. 글자꼴만이 아니라, 한글맞춤법에서도 그런 태도가 필요하지요. 띄어 쓸 것인가 붙여 쓸 것이냐, 어법이나 문법에서도 이런 태도와 기준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훈민정음해례본 서문에 그런 철학과 내용이 강조되어 있는데, 아직까지 띄어쓰기체계 조차 정립되지 않았다는 점도 아쉬운 부분입니다. 물론 해례본이 발굴된 지 73년 밖에 안 되었고, 본격적인 연구가 이제야 시작되는 분위기니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겠지요. 지금부터라도 그런 기준과 중심을 잡아야할 것입니다. 더 강조해서 말씀드리자면, 소리 꼴 뜻의 가치를 동시에 살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글꼴이 동시에 다루어져야 한글이 온전하게 빛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슬옹 맑을 꼴이 ‘맑은 꼴이 된다.’라는 측면에서 말씀해주셨고 맑은 꼴이 되려면 세종대왕께서 직접 쓰신 훈민정음 서문에 나와 있는 그런 한글의 가치를 자연스럽게 실행하는 것이야말로 한글의 맑은 꼴이며 그것이 ‘융합적 가치이다.’라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그러면 이동범 소장께서는 현장에서 문화적인 측면을 어떻게 보셨습니까?
이동범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한글학회를 중심으로 경복궁을 복원할 때, 광화문 현판을 무엇으로 쓸거냐 논란이 있었습니다. 한문으로 하는 것에 대해 반대하고 한글로 해야 된다라는 주장이 있었지만 결국 한문으로 쓰여졌죠. 그것을 보면서 왜 그랬을까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결국 취지가 좋다고 모든 것이 이루어 질 수는 없다 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의 말, 글, 꼴에서 한자와 한글은 각각의 쓰임이 있습니다. 그러나 한자가 주는 표의적 기능과 한글이 갖고 있는 표음적 기능을 둘 다 쓰며 또 통합해서 쓰는 것은 한글로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자어지만 한글로 표현해도 충분히 이해가 되는데, 그 의미가 불확실할 경우 우리가 어원을 찾아서 한자를 보는 경우가 있는 거죠.
그런 취지로 본다면, 저는 광화문 광장도 한글이니깐 당연히 쓰여져야 한다는 게 아니라 다른 근거로 이야기 하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경복궁이 우리나라 제1의 법궁이고, 그곳의 이름을 정도전이 지었는데, 광화문만 세종이 이름 지었습니다. 세종대왕이 지은 광화문만큼은 한글로 하자고 제안했다면 저는 50% 정도 국민들이 찬성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한글이니까 써야 한다라고 주장하면 지지를 얻기 힘들어 질 수 있어요. 요즘 젊은 친구들이 이모티콘을 쓰면서 핸드폰을 쓰잖아요? ‘ㅇㅇ’와 같은 문자를 볼 때 한글을 많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보면 한글을 혼탁하게 한다라고 말씀하신 분도 있습니다. 그러면 저는 달을 가리킬 때 달을 봐야지 손가락을 보면 어찌하냐는 말을 할 것 같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한글이라는 것이 표현할 수 있는 영역이 굉장히 넓다는 거죠. 넓고 편하다는 겁니다. 한글의 발음기호적 특성 때문에 외래어도 한글로 자연스럽게 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ㅇㅇ’을 쓰던 ‘ㅇㅋ’을 쓰던 간에 이런 것들을 허용해줘야 한다 봅니다. 이것들은 한글을 혼탁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한글을 다양하고 풍성하게 만드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문제는 찌개를 찌게까지 허용한다는 데 있습니다. 이렇게 기준 없이 허용하는 것은 원래 의미를 잘못 이해하게 해 한글을 혼탁 하게 만들 겁니다. 그래서 저는 오히려 한글을 매개로 다양하고 풍성하게 표현하는 것들을 적극적으로 찬성 해주고, 한글 창제 시 원래 쓰던 음역을 확장 시키던가 하는 등 새로운 기준을 창조하는 게 아니라 최소한 세종대왕이 만든 것을 복원해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슬옹 한재준 교수님께선 쉬운 원리로 만들어진 한글의 가치를 말씀해 주셨고, 이동범 대표님께서도 한글이 갖고 있는 가치와 쓸모를 다양한 상황 맥락에 맞게 쓰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쯤에서 한글학자 측면에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까 한재준 교수님께서 맑은 꼴에 대해서 말씀하셨는데, 한글의 과학성과 예술성은 사실 입말, 곧 말에서 나오는 거거든요. 우리말 자체가 굉장히 섬세하게 발달돼 있던 거죠. 그래서 이런 첫소리, 가운뎃소리, 끝소리와 같이 섬세하게 갈라지는 말이 전세계에서 우리나라 말밖에 없습니다. 그것을 세종대왕께서 정확히 파악하셔서 초성자, 중성자, 종성자를 쓸 수 있는 문자를 만들었습니다. 또, 초성과 종성이 서로 연관 관계가 있어요. ‘곰’에서 미음이 종성이지만 조사 ‘-이’가 붙으면 ‘곰이[고미]’가 돼서 미음이 초성으로 이동하거근요.. 이렇게 초성과 종성이 순환을 하는 이치를 세종이 정확하게 포착해서 문자화시켰기 때문에 아주 자연스러운 뛰어난 문자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한글이란 말은 문자를 가리키는 말이지만 그 안에서 입말을 수용하는 역사와 전통성, 자연스러움이 담겨있는 거죠. 아까 이동범 대표께서도 말이 갖고 있는 풍부한 것들을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을 해주셨는데, 같은 맥락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또 하나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 한글이 초성 중성 종성으로 잘 쪼갤 수도 있고 합칠 수도 있고 또는 초성과 중성으로만 된 글자도 있는 등 다채로움을 큰 특징으로 갖고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것을 가지고 우리가 표현의 다양성, 예술의 다양성이라는 측면으로 발전시키지 못해왔다는 면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다양성을 살려나가는 것이 한글의 가치와 의미를 더 풍부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재준 제가 좀 껴들어도 되겠습니까?
김슬옹 네
한재준 김박사님께서는 지금 우리말에서부터 한글의 특성이 비롯된 점을 강조하셨는데, 그러다 보면 자꾸 초점이 또 흐려질 수 있습니다. 바로 그런 말 중심의 분위기 때문에 저는 꼴 중심으로 연구하는 사람들과 말 중심으로 연구하는 사람들 간의 깊은 대화가 필요하다고 보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말이 특별했으니, 세상에 없던 글자 한글이 태어날 수 있었지요. 그 가치에 대해서는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더 주목해야 할 부분은, 그렇게 특별한 말을 독창적으로, 또한 완벽에 가까운 체계로 시각화시켜낸 그 점이 바로 한글이 훌륭한 핵심 이유라는 것입니다. 제가 꼴의 우수성을 강조해서 말씀드리는 것은, 말의 가치를 깍아 내리거나 우리말을 빛내지 말자는 뜻이 아닙니다. 그동안 자꾸 말글 쪽으로만 집중하다보니깐 한글의 우수성을 강조하고 살려야 할 시점이나 자리에서까지, 자꾸 우리말의 특수성에 대해서만 초점이 맞춰져 왔다는 것이지요. 자꾸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한글이 온전하게 자랄 수 없습니다. 구체적인 예를 하나 들자면, 김박사님 페이스북에 올려진 사진 중에 그 '솟을문'이던가요?
김슬옹 솟을샘이었습니다.
한재준 아. 네, 그 솟을샘. 이름이 아름다우니까요.
김슬옹 솟을샘에서 제가 1983년에 연세대학교 도서관 아르바이트하면서 직접 달았죠.
한재준 그 솟을샘과, 또하나가? 닫은문 드나드는문?
김슬옹 네, “닫은 문, 드나다드는 문”이라고 표기한 문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렸죠.
한재준 네. 맞습니다. 바로 그 표현, 말은 이해하기 쉽고 아름다운데, 그 꼴에서는 아쉬운 부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시각적인 질서가 부족합니다. 그러니까 오른쪽에 붙어 있는 드나드나드는문 표시에서는 글자간격이 조밀조밀한 데, 왼쪽의 닫은문 표시에서는 닫 은 문. 이렇게 벌어져 있어요. 그러면 닫은문은, 닫 은 문. 이렇게 띄엄띄엄 천천히 읽으라는 신호로 작용하게 되는 것이고, 드나드는문은, 드나드는문. 이렇게 빨리 이어서 읽으라는 암시를 주게 됩니다. 이런 부분도 꼴의 역할이고 가치예요. 꼴도 정리가 잘되어야 소통이 잘되는 거죠. 그런데, 그동안에 한글을 어문학적인 관점 중심으로만 봐왔기 때문에 바로 이런 꼴의 가치에 대해서는 소홀했던 것입니다. 이런 예는 그 외에도 너무 많습니다. 서울시나 문화체육관광부 회의 때에 자료로 내어 주는 여러 서식류들을 잘 살펴보세요. 정말 그런 꼴들이 말이 아니거든요. 한글학회 지하에 있는 얼말글회관 간판도 지나치게 크고 글자사이도 너무 넓게 배열되어 있습니다. 이런 점들이 기능은 물론이고, 보기에도 불편하게 한다는 거예요. 골목은 좁은데 간판 글자는 너무 크고 표현도 지나쳐 보이니, 시끄럽게 보이는 것입니다. 정갈하게 글꼴도 조금 더 작게 하고, 글자의 위치나 사이도 더 적절하게 배열하면, 훨씬 읽기도 쉬워지고, 식별성도높일 수 있지요. 저는 어문학 전문가들과 대화할 때, 이런 내용을 '디자인'이라고 표현하다보니 자꾸 거리감이 더 생겼던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무슨 밥그릇 싸움 같은 분위기로 바뀌는 경우도 있었어요. 전문 분야를 너무 세분화하다보니, 부분을 보는 눈은 밝아졌을지 모르지만, 전체를 보는 눈은 퇴화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김슬옹 좋은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세종대왕도 꼴을 강조하셨습니다. 예로 ‘ㅈ’은 가로획과 밑의 두 획간의 간격과 넓이를 고려하여 만들어진 겁니다.
이동범 세종께서 한글을 만드실 때, 음악적 요소에서 많은 것들을 힌트로 얻으셨잖아요? 그래서 음의 높낮이라든가 길이가 길고 짧은 것들을 다해서 동양 5음 ‘궁(宮)・상(商)・각(角)・치(徵)・우(羽)’를 대입 시켜 목구멍에서부터 입술까지 멀고 가까운 것들에 맞게끔 해서 한글을 만들지 않으셨습니까? 이런 부분을 보면 우리가 한글을 만들어 낸지 600년이 다 되가는데 우리가 이런 부분에서 갖고 있는 음운적인 요소, 음악적인 요소들이 아까 말씀하신 디자인이 아니겠습니까. 그런 꼴의 가치들을 제대로 표현해 내고 발전시켜 냈느냐 라고 반문 했을 때는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지금 얘기하면 꼴 갑을 떤 거죠. 제 값을 못했다는 겁니다.
김슬옹 중국이 소리꼴을 적기 위해 천년 이상을 노력합니다. 황제가 통일하면 문서라는 것을 보냅니다. 자기들 명령을 백성들에게 알리기 위해서 말이죠. 그러기 위해 통일된 문자, 통일된 발음이 필요한 것이죠. 그래서 발음을 정확히 적으려고 천 년 이상 노력해요. 그런데 뜻 글자는 불가능한 겁니다. 그러다보니 궁여지책으로 노력 해 나온 것이 반절법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세종대왕께선 소리꼴과 글꼴을 만나게 하기 위해서 소리에 담긴 음악의 이치, 천지자연의 이치를 글꼴에 담은 거죠.
이동범 제 얘기가 바로 그런 얘기 입니다. 한글이 갖고 있는 표음적 기능이라는 것이 발음 기호로써 시작된 것 아닙니까? 김영철 선생님께서 발음기호적인 부분을 설명해 주셨는데, 그런 취지에서 ‘내가 표현하고 싶은데 표현할 수 없는 것들에 답답함을 표현’할 수 있게 만들어 주신 거죠. 표현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있는데, 그것을 좁혀 버린 거에요. 얼마 전 다큐멘터리에서 한글을 모국어로 쓰는 사람,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 중국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 등 여러 언어집단 사람들을 모아서 다양한 동물소리를 듣게 한 뒤 이를 표현하게 했더니, 다른 언어는 바로 적지 못했는데 우리 모국어를 사용하는 아이들은 바로 듣고 적어냈어요. 그리고 우리 말로 적은 소리가 음의 데시벨 패턴과 가장 유사했습니다. 이것은 한글의 표음적 기능 때문입니다. 그런 기능의 의미를 왜 축소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꼴도 소리를 표현해 내는 하나의 몸체이지 않습니까? 한글이 만들어진 지 100년도 안됐는데, 이런 부분들을 충분히 연구해야 합니다. 문화재는 보존 관리하는데 원형을 보존하고 원형을 되찾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한글은 세계 유네스코에 지정되어 있는데, 왜 원형을 못 찾을까요?
한재준 거기에다가 원형이라는 것이 외형만이 아니구요. 그 속에 담긴 철학을 아직도 제대로 못살려 내고 있다는 거죠. 이동범 소장님께서 표음적 특징에 대해서 말씀하셨는데, 사실은 단순히 발음기호 같은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고, 물론 저도 그렇게 배워왔고 최근까지 그렇게 알고 있었습니다만, 한글이 꼴에도 뜻이 담겼다는 것입니다. 표의성이지요. 표의성. 제프리 샘슨 교수를 비롯한 몇 학자들이 그것을 자질특성이라고 표현했잖아요. 퓨추럴시스템이라는 표현, 그런데 저는 더 나아가서 표의성이라고 표현해도 된다고 봅니다. 쉽게 말해서 꼴에도 뜻이 있다는 거잖아요. 근데 우리는 한글을 그저 소리를 표기하는 글자 정도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다 보니, 아직도 그 특성을 온전히 살려 쓰지 못하고 있어요.
김영철 한글창조훈민정음을 보면 여러 가지들이 나오지만 꼴에 관한 부분을 무시 할 만큼, 근데 제가 판단하기에는 구식인 것 같아요. 무슨 말이냐면 그렇게 표기체계를 만든 것이잖아요. 하다못해 표기체제를 우리가 표기할 때 다른 나라 말을 표기하지 못하면 알파벳으로 표기하듯이 한글이어도 되는 것이잖아요. 그걸 주장해서 우리 한글을 쓰자하는 것은 아니고 그만큼 소리를 담을 수 있는 그 시스템이 만들어진 게 한글이라는 소리입니다. 소리로만 표현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우리 것인데 우리 스스로가 무엇이 좋은지 모르고 우리가 잘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런 상황인데 자꾸 몇 명 학자들이 엉뚱한 것만 연구해서 저는 답답합니다.
꼴의 가치라는 것은 단순히 예쁜 꼴의 가치가 아니고 꼴의 가치라는 표현 속에 담긴 뜻은 꼴에도 뜻이 있다는 것을 알려야 된다.
거기까지 나아가야 하는 겁니까?
한재준 진도를 조금 더 나가면 구체미술 얘기도 해야 되고 비구상도 얘기해야 되고, 꼴에도 일정한 체계가 있다는 것을, 메시지가 담겼다는 것을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활용해야 된다는 거죠. 아직까지는 우리가 꼴이 소리를 시각화하는 수준 정도로만 이해하고 있는 상황이죠. 모든 것을 얘기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이런 대화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형태 그 자체만으로도 구체적인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 라는 것. 서로가 그 정도의 인식이 있을 때에 편안한 대화가 가능하겠지요.
김슬옹 솔직히 말씀 드리면 한글을 과학적인 문자라고 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표현입니다. 과학적인 문자는 서양의 잣대잖아요. 한글은 그 이상을 갖고 있거든요. 과학적인 의미도 중요하지만 음양오행, 음악 같은 융합적 요소를 가지고 꼴의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동범 부연설명하자면 과학의 ‘과’자가 ‘종 과(科)’자 잖아요. 그것을 한문화 시킨 것이 과학입니다.
‘과’라고 하는 것은 즉, 디지털입니다. 근데 한글에 디지털만 있습니까? 아날로그도 있습니다. 아날로그가 있기 때문에 과학이라고 얘기하는 것은 한글이 갖고 있는 맑은 꼴에 디지털 영역 요소만 표현한 겁니다. 그러나 디지털 영역이 아닌 아날로그 영역이 훨씬 더 많다는 거죠. 예를 들어 음양오행에서 계절감과 입술의 모양, 혀의 모양 이런 부분을 다 연결 시켜서 그 꼴을 표현해 냈기 때문입니다.
김슬옹 그렇죠. 천지자연의 문자를 만들다 보니까 과학의 문자가 된 거지, 과학의 문자를 먼저 만들려고 한 것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한글이 갖고 있는 본래적인 가치와 원리를 무시하고 서양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을 지양하고 이를 극복해야 한다 생각합니다.
이동범 오리엔탈이라고 하는 것도 사실 서양에 동쪽이니깐 오리엔탈이라고 하는 것이지 왜 우리가 동양입니까.
한재준 서양의 가치가 동양의 가치로 표현되는 거 같은데, 우리 세대만 해도 배워왔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문자라고 하면, 한자나 로마자 같은 문자를 상상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런데, 한글은 이들과 많이 다른 문자잖아요. 한글을 자꾸 다른 문자의 가치 기준에서 평가를 하다 보니까 한글의 진짜 가치를 놓치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완전히 차원이 다른 문자거든요.
이동범 교수님이 전시를 하실 때 어원적인 의미를 트리로 표현한 작품이 있잖아요. 다른 것들은 줄기와 뿌리로 엮어져 있는데, 한글만 다른 형태로 되어있어요.
한재준 그 정도는 언어학 하시는 분들도 다 아시죠. 다 아시는데 여러 글을 읽어 보면 문자라는 표현에서 차이가 있다고 보여요. 예를 들면 저는 로마자나 한자는 통합적인 의사소통체계라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 많아요. 그런데 한글은 문자의 기능을 뛰어넘은 하나의 의사소통 체계라는 것이지요. 거기에다가 한글은 엄연히 작가가 누구인지가 분명한 예술이기도 하지요. 진행형 예술이에요. 세종 이도를 작가라고 표현하면 쉽게 받아 드릴 수 있는데, 이런 생각을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려면 시간이 좀 걸리겠죠. 세종은 우리가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예술품을 창작했어요. 근데 이 작품은 벽이나 공간에 고정된 작품이 아니고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 계속 살아서 움직이는 진행형 예술인거예요. 그런데 우리가 직접 체감 하지 못하고 있어요. 추상 이전 시대에 예술을 대하는 것처럼, 그 때는 비구상의 세계를 상상도 못했잖아요. 마치 그런 상황에 처해 있다고 보는 거예요. 머지않아 세계가 인정할거라고 저는 봅니다. 그런 차원의 대화도 필요하고, 검증도 필요하다고 봐요. 이런 태도를 가진 사람들이 힘을 모아 통합교육과정이라도 만들어야하지 않을까요?
김슬옹 세종 융합 한글 대안학교를 세우죠.
한재준 정부가 언젠가는 해줄 거라고 기대하면서 계속 강조하고 주장하지만 정말 벽이 높고 두껍다고 느껴요. 해도 해도 대화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가끔은 영국 같은 나라가 부러운 거예요. 영국은 디자인교육을 초등학교 때부터 하니까. 초등학교때부터 크게 두 갈래로 나눠 고등학교까지 가지요. 아트앤디자인 코스가 있고 아트앤테크놀러지 코스가 있답니다. 그러니 함께 공부했던 친구들이 고등학교 졸업 후에 헤어져서 대학 졸업 후에 만나면, 누군가는 교육부에서 일하고, 또 다른 친구는 산업자원부에서 일하고, 누구는 디자이너로 일하는데, 서로가 디자인의 중요성을 설명할 필요가 없지요. 이미 기본은 다 아니까. 기본 태도가 되어 있는 거지요. 그러니까 저런 새로운 조형물을 설치한 자리에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았는데, 또 다른 조형물을 어울리지도 않게 바로 옆에 세우는 안타깝고 우스운 일은 생기지 않을 수밖에요. 그런데 우리는 디자인에 대해 얘기하려면 이건 아직도 별난 세계예요. 그러니 대화부터가 잘 안 되는 거예요. 초등학교 때부터 이해해야 하는데, 말하자면, 일반 교육으로서의 디자인교육, 일반교육으로서의 예술교육이 튼실했더라면, 우리가 이렇게 힘들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듭니다. 불균형한 교육이 빚어낸 결과들이지요. 법관이 예술의 가치를 잘 모르면, 창작권의 가치를 놓칠 수밖에 없지요. 저는 실제 법정에서 그런 판정을 경험하기까지 했어요. 이런 상황들이 우리를 갑갑하게 하는 겁니다. 그래서 몇몇 사람들은 교육개혁부터 시작하자고 하는 것이지요. 지금 현실의 문제도 중요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역시 교육이 따라와야 되겠지요.
김슬옹 예, 그러면 한글이 갖고 있는 융합적 가치에 대한 얘기는 충분히 한 것 같고, 김영철 대표님께서 하실 말씀 없으신가요?
김영철 저는 딱 한마디만 하겠습니다. 이렇게 됐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말 쓰는 것도 좋고 논의하는 것도 좋은데, 아직도 한글이 어떤 글자인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인식이 되지 않았어요. 고차원적으로 가지 않더라도 우리나라 사람에게 인식이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한글날 때 그것만 해도 세계적인 행사가 될 것 같습니다. 나머지 것들, 즉 우리말 우리글은 세미나로 옮겨서 학자들끼리 따로 말을 나누고요.
김슬옹 예. 그럼 우리 교육에 대해 말씀하셨고, 선생님께서 소리 중심의 특별한 행사를 말씀해 주셨는데 그럼 마지막으로 우리가 한글 세계화를 위해서든 한글의 융합적 가치를 실제로 우리 삶 속에 일어나게 하는 전략과 대안에 대해서 얘기를 하고 오늘 마무리 하도록 하겠습니다. 한재준 교수님께서 융합적 교육이 될 수 있는 학교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는데, 구체적인 대안이 있나요?
한재준 교육은 학교에서 할 수 있고, 동네 교실에서도 할 수 있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가능하다고봅니다. 최근에 한글가온길 사업의 하나로 한글독음프로그램을 개발했잖아요. 한글독음 프로그램, 김슬옹 박사님은 사용해보셨습니까?
김슬옹 못했습니다.
한재준 한번 활용해 보시죠. 저는 그걸 사용하면서 정말 기가 막혔어요. 그런 걸 하면서 왜, 꼴 전문가들은 참여를 안 시켰는가. 예를 들어 '흙'이라는 소리에 맞추어 '흐' 라는 글자의 받침을 찾아서 옮기는 기능 같은 것들이 있어요. 물론 유용은 하겠지요. 그런데 더 나은 한글에 대한 노력은 많이 아쉽더군요. 한글가온길 사업에서 1단계로 진행한 사업인데,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어요. 거기에서 글자가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보면, 이 정도로 만들기 위해서 어떤 과정을 거쳤을까? 어떤 경험들을 바탕으로 했을까. 참 갑갑해요. 어떤 분은 너무 잘 만들었다고 하던데, 저는 저걸 어떻게 잘 만든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가. 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들이 그런 것을 만들 때는 정말 진지하게 접근해야 하는데, 그렇게 아쉬운 결과가 나온 것은 기초연구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금 한글 세계화를 얘기하고 있잖아요. 그런데 세계화가 되려면, 먼저 기본이 되어야 하는 거예요. 산업화에서도 표준화가 먼저예요. 정부 당국자들은 산업화를 하자고 말은 하는데, 표준화는 생각을 안 해요. 표준화 없이 어떻게 산업화가 가능합니까. 기준과 원칙들이 있어야 되는 거잖아요.
김슬옹 자음과 모음에 관한 기본 매뉴얼 자체가 표준화가 안 되어 있잖아요. 발음 기관의 움직임을 섬세하게 다룬 제대로 된 매뉴얼이 필요합니다.
한재준 김박사님도 문제를 제기한 거지만, 기윽 니은 디읃 시읏이라고 가르쳐도 될 것을 굳이 기역 니은 디귿 시옷 이라고 헷갈리게 하냔 말이죠. 더 쉽고 쓸모 있게 만들려면 과감하게 더 치열하게 논쟁해서 이게 정말 옳다면 바꿔야지요. 최세진의 훈몽자회 때문에 절대 바꿀 수가 없다. 우리들의 선생님이 정한 것이니 절대 바꿀 수 없다. 그런 법은 없지요. 세상에. 지금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다면, 충분히 검토해야 하고, 바꿀 수 있다면 바꿔야지요. 어떤 근거로? 훈민정음 해례본을 보세요. 쉽게, 편리하게, 쓸모 있게, 이런 내용이 다 들어 있습니다. 일종의 매뉴얼인데. 진짜 세계화를 꿈꾼다면, 먼저 기본을 잘 다져야 합니다. 세계화와 상업화는 다른 거지요. 어떻게 부풀릴까, 어떻게 상업화할까. 이런 접근 보다 어떻게 하면 더 잘 쓰게 할까를 생각해야 하고, 또 다른 하나의 길은 예술적으로 풀어내는 방법이겠지요. 우리가 생활 속에서 멋지게 쓰고 있으면, 외국 사람들이 와서 이걸 어떻게 우리도 쓸 수 있겠냐고 물어보거나, 다른 나라 글자들도 서서히 한글을 닮아가게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과정이거든요. 근데 기본은 잘 다지지도 않고 그걸 팔겠다. 나누겠다. 그러다 보면, 진짜 한글은 사라질 수 있는 거지요.
김슬옹 그렇다면 기본적이 취지나 가치를 알리기 위해서 교육이 필요한 건데요. 제도권 교육은 어려우니깐 일단은 프로그램으로 진행해 보는 건 어떨까요?
한재준 한글을 글자 한글로만 접근하지 말고, 다른 한 쪽에서는 예술 한글로 접근해야 됩니다. 그래야 세계 사람들도 한글의 신비함에 더 관심을 갖게 됩니다. 이런 가치를 살리면, 한글이 조금 한 단계 올라가는 수준이 아니라 훌쩍 많이 올라갑니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실용화에 예술을 품게 하자는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김슬옹 기본 방향부터 해서 방향을 얘기해주셨습니다. 이것을 실행으로 옮기기 위해서는 기본 강좌라도 개설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강좌개설방식은 어떤 방식이 좋을까요.
김영철 제가 생각하기에는 그런 강좌들이 있겠지만, 이번에 숨바꼭질도 재미있었잖아요? 재미있는게 가장 좋을 것 같아요. 제가 찾아본 것인데, 이걸 꼭 보여드리고 싶어요. 사장님이랑 전시하려 한 건데, 이처럼 표음 체계로 우리는 얼마든지 재미를 줄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습니다. 새로 개발할 필요 없어요. 어떻게 보여주는 가에 따라 다른 거거든요. 예를 들자면 ‘한글로 놀자’ 라고 했어요. 근데 그것도 각 나라말로 표현할 수 있잖아요. 한 예로 리플렛을 만들잖아요. 자기나라말 한글로 쓰고 영어로 하잖아요. 우리는 이런 전략을 새워보는 거에요. 그걸 영어로 ‘I Have a Dream’을 쓰면 한글로 ‘아이 헤브 어 드림’을 쓰는 거에요. 대놓고 한글날에 공식적으로 각 나라 말을, 우리말로 표현하는 겁니다. 그렇게 쓰인다는 것 자체가 재미있는 예술품이 될 수 있어요. 행동하면 됩니다. 근데 왜 이런 쉬운 방법으로 안하고 어려운 한국말로 해서 얘기하려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심플한 것을 굳이 어렵게 풀지 않아도 되요.
한재준 굉장히 긍정적인 시각이시네요.
김영철 그 정도로 우리가 일단 해놓고 이루어 놓은 것을 보고 분석하고 연구하고 난 것이 훨씬 낫잖아요? 그것만이라도 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한재준 그런데 지금처럼 가면 결국 한글은 사라지고, 중국의 조선문만 살아남을 수도 있는 상황인데…, 미제 한글, 일제 한글을 다시 수입해서 쓰게 될지도 모르고…
이동범 이어서 교육 얘기를 다시 하자면 손가락이 아니라 달을 보게끔 만들어야 되는데 우리나라 교육이 손가락만 보게 하는 것이 많다는 겁니다. 우리가 수학을 공부할 때 지금까지도 수1정석을 푸는 이거 굉장히 충격적인 거예요.
무엇이냐면 왜 이런 현상이 생기는지에 대해 상상력, 창의성의 고갈로 볼 수 있다는 거죠. 아이들이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지식은 많이 늘지만 그 지식을 형성해 나가는 어떤 기초라고 하는 것이 약하면은 발전하는데 한계가 있는 거거든요. 근데 우리는 소위 일본을 따라 ‘imitation 발전’만 발전을 하는 거예요. 그러면 세계 제일은 무엇이냐면, 없는 것을 만드는 것이죠. 무한대 영역인 블루 오션(blue Ocean) 영역에서 만들어야 하는 것인데, 굉장히 경쟁이 치열한 레드 오션(Red Ocean)에서만 놀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깐 수학을 공부하는데 전부 공식을 외우게 한 다음, 세계 수학 올리피아드하면 다 상위권 1위~3위안에 들어갑니다. 그러나 주어진 조건 식을 싹 빼버리고 새로운 것을 만들면 우리나라 지금까지 김대중 대통령 빼고 노벨평화상 받은 사람 있어요? 일본 보세요. 수 십명 수 백명 되는데 우리는 없어요. 왜 이런 현상들이 생기느냐, 대한민국 국민이 머리가 없어서 그러는 것이 아닌 교육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한글도 마찬가지 입니다. 아까 저는 한글의 세계에서 아까 나온 한글의 3대 원칙 쉽고 편리하고 쓸모 있게 이게 적용되면 되는 겁니다.
쉬워야 되는 한글의 띄어쓰기를 어떻게 해야 할 지 아직도 모르겠어요. 붙여야 될지 띄워야 될지 아직도 모르겠다는 겁니다. 지금 초등학교 교육에서 어떻게 하는지 아십니까?
헷갈리지 말라고 다 띄워나요 다 찢어놓습니다. 이게 말이나 되는 이야기 입니까? 이런 일이 어디 있냐는 얘기죠. 그래서 우리 교육이라는 것은 원리 기본적으로 알면 보이고 보이면 사랑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런 부분에서 보면 우리가 한글이 좋다, 뛰어나다라고 백번 말해 소용이 없습니다. 한글이 갖고 있는 의미에 대해서 정확히 안다면 그것을 사랑하게 된다는 거죠. 그래야지만 그 애정 속에서 다양한 말과 글과 꼴에 대해서 상상력들을 펼칠 수 있는 ‘힘’, 동력이 생긴다 라고 보여져요.
보면은 우리 태극기는 전세계 국기 중에서 가장 철학적입니다. 가장 디자인적이에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태극기 한번 그려 보라고 하면 제대로 그리는 사람이 있습니까? 근데 제가 5분만 가르치면 다 그리게 할 수 있어요. 왜냐, 원리를 가르쳐주면 쉽습니다. 그게 음양오행 우주에 변화를 나타내는 거잖아요. 그게 양과 음에 조화로 인해서 우주가 생성, 소멸을 한다는 것이고, 그것을 양과 음에 사계로 표현했는데, 그게 힘이 제일 강한 것, 제일 약한 영역 그리고 양에 영역에서 음에 영역에 발생되고 있다는 것, 음에 영역에서 양에 발생하는 것, 이 원리를 가르쳐주면 금방 배워요. 그런데 그것을 외우게 하면 오늘 외우고 내일 까먹습니다. 한글도 마찬가지에요. 한글이 갖고 있는 원래에 의미들을 정확하게 하면 재미있게 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오행과 음양이란 개념이 삼차원적인 공간개념 이런 것들로 된것을 굉장히 표현화 시켜서 ‘나는 한글이다.’라고 표현 하셨잖아요.
이런 부분들은 아이들이 놀이를 통해서 원리를 이해 하고자 하면 아이들도 재미있어 할거예요. 그리고 이런 게 한글이구나하는 것을 통해서 굉장한 상상력들이 발동 될 수 있다라는 거죠.
김슬옹 네. 교육의 내용에 대해서 총정리를 해주신 셈이네요. 오늘 자세한 것을 결정 할 수 없으니깐 대략 이렇게 하는 것이 어떨까요. 좋은 방향을 제시해 주셨으니깐 우리가 세종한글 융합모임 이런걸 만들어서 아니면 한교수님이 하시는 모임을 더 발전 시켜도 좋고요. 그렇게 해서 자주 만나면서 이것을 교육 프로그램으로 만들고 프로그램이 완성됐을 때, 공개하여 강좌를 열고 이렇게 진행하면서 학회도 만들고, 연구소도 만들고 발전시켜 나가면 어떨까요?
이동범 네 좋습니다.
김슬옹 그러면 내년 5월이 세종대왕 탄생 기념일인데 5월 초에 탄생 기념일로 해서 세종 한글 융합 사단 법인을 발족하는 겁니다.
한재준 좋은데요. 조금 구체화 하려면, 저는 앞에 세종을 빼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왜냐면 왕의 직함이라 권위적으로 느껴질 수 있고, 그냥 한글에 집중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디자인 쪽에서 작은 모임을 하잖아요. 저는 이대로 하고 오히려 김 박사님이 어문학이나 다른 분야의 분들과 모임을 했다가 이 두 모임을 만나게 하는 것이 어떨까요. 그게 저는 자연스럽다 봅니다. 또 소리 분야의 분들도 따로 모임을 가져 나중에 합치는 방법도 검토해 주시기 바랍니다.
김영철 지금 말씀하시는 것이 제가 적어놓은 것 입니다. 관련 단체들은 어떤 것이 있으며 각각의 차이는 무엇인가, 지금까지 얘기 된 것은 주로 어떤 분야에 논의 되었는가 였습니다. 이제 우리는 합치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한글에 대해 이야기하는 단체나 모임을 합치고 이런 과정에서 제대로 된 사람들이 형성될 것 입니다. 융합된 한글이 커지면, 내가 장사치라 했을 때, 장사할 게 많아 질 겁니다. 한글 작업에도 힘이 커지게 될 겁니다. 그래서 모으는 쪽으로 한글이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한재준 여기 계신 모든 분들처럼, 말글꼴의 기본정신에 동의하는 분들이 모여야 하고, 우리 한글의 현실 문제에 대해 공감하는 분들끼리 모여서 나름대로 준비하시고, 다들 각각의 모임에서 준비를 하셔야 돼요. 나름대로의 색깔이 있기 때문에, 이쪽은 이쪽대로 하고, 학생은 학생대로 하고, 준비가 되면, 어느 시기엔 다 같이 모일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각각의 모임이 채 성숙되기 전에 어느 하나가 중심이 되어 억지로 끌어가면 큰일하기 어렵습니다. 그 중심이 군림하고 싶어 할 수 있습니다. 모임이 권력화 될 수 있지요. 큰 틀만 만들고 다음을 위해서 뒤에서 지원을 해주는 방식이 제일 좋은 것 같습니다. 아까 교육의 문제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그게 바로 제도거든요. 모여야 제도를 바꾼다 생각합니다. 아까 노벨상 못 받은 이유도 나왔죠. 가능성 있는 인재는 있는데 왜 못 받느냐. 제도의 탓도 있습니다. 검증을 충분히 해서 나온 인재는 국가가 계속 지원을 해야 하는데, 아직 대한민국은 그런 면이 부족해 보입니다. 전문성을 살리기 어렵지요. 우리가 지금 말하고 있는 조직이 만들어지면 그런 인재를 지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김슬옹 세종대왕께서 그런 접근을 가지고 한글을 만드셨어요. 처음에는 음악 전문 모임을 만들고, 거기서 표준을 만들어 표준 음악과 악기를 만들고, 그 다음 이천과 장영실 중심의 과학자 그룹을 만들어 그들을 키워 최고의 과학 업적을 남기고, 이런 식으로 해서 최종단계에서 훈민정음을 꽃 피우게 한 것이죠. 우리가 꿈꾸는 과정이 세종대왕의 전략과 비슷합니다.
이동범 그게 일종의 종합예술입니다. 우리가 세종대왕의 위대함을 얘기할 때 흔히 리더쉽만 얘기하는데 물론 그것도 훌륭한 부분이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부분은 세종대왕이 한 다양성의 복원입니다. 그것을 이어 받아 발전시키는 게 좋을 것 같고, 김슬옹 박사님이 그런 부분들의 교량 역할 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가 마무리 단계에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사업을 하다 중도에 그만두는 것이 엄청 많습니다. 어떤 일이 세계화하려면 꾸준히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세계화 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세요. 세계 1위 한 것 중 단기간에 이룬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삼성에서 제일 많이 판 애니콜 핸드폰의 경우, 끊임없이 버전이 업그레이드하며 나왔습니다. 현대 소나타, 아반떼, 그렌저 모두 같습니다. 지속되어야 문제를 끊임없이 개량해 나가면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프로젝트하면서 해보다 안 되면 중도후퇴, 중도후퇴, 그렇게 프로젝트의 무덤처럼 되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그렇게 되면 안되고 죽은 자리에 꽃 핀다라는 생각으로 계속 나아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문제점을 개선하고 계승시킬 것은 계승시키고 그래야 문화가 꽃 피우는 거고 그래야 문화창조, 융성과 같은 주제를 현실화시킬 수 있습니다. 사실 이번 숨바꼭질 같은 경우, 작가의 개인 역량에 많이 의존해 내년에는 어떻게 할 것이냐는 문제가 남게 됩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발굴한 이야기를 가지고 작가들이 표현하는 형태로 발전시키면 된다 봅니다. 또 이런 프로젝트들도 지속시켜 세종마을에 창조적으로 적용시키는 게 필요하다 봅니다.
김슬옹 이것으로 〈한글 숨바꼭질〉 프로젝트를 계기로 더 나은 한글, 쓸모 있는 한글의 미래를 위한 좌담회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