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少微通鑑節要卷之三
二世皇帝(이세황제)在位三年(재위삼년)壽二十四(수이십사)
壬辰元年
春(춘)二世東行郡縣(이세동행군현)夏至咸陽(하지함양)謂趙高曰(위조고왈)
봄에 2세 황제가 동쪽으로 군현을 순행하다가 여름에 함양에 이르러조고에게 말하기를
人生世間(인생세간)譬猶騁六驥過決隙也(비유빙육기과결극야)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을 비유하자면 여섯 필의 기마를 달려 작은 틈을 지나는 것과 같으니
吾欲悉耳目之所好(오욕실이목지소호)窮心志之所樂(궁심지지소락)以終吾年壽(이종오년수)
나는 귀와 눈이 좋아하는 바를 다하여 마음으로 즐거워하는 바를 다하고 내 수명을 다하고자 하는데 가하겠는가?”하자,
趙高曰(조고왈)陛下嚴法而刻刑(폐하엄법이각형)盡除先帝之故臣(진제선제지고신)
조고가 말하기를 “폐하께서 법을 엄하게 하고 형을 까다롭게 하여 선제의 옛 신하를 다 제거하고
更置陛下之所親信(갱치폐하지소친신)則高枕肆志寵樂矣(즉고침사지총락의)
폐하께서 친하고 믿을만한 신하로 바꾸어 두면 베개를 높이하고 뜻을마음대로 즐거움을 얻을 것입니다.” 하였다.
二世然之(이세연지)乃更爲法律(내갱위법율)務益刻深(무익각심)大臣諸公子(대신제공자)有罪輒僇死(유죄첩륙사)
2세가 그렇다 하고 마침내 법률을 바꾸고 더욱 각박하고 심하기를 힘쓰니 대신과 여러 공자들이 죄를 얻어 번번이 죽음을 당하였다.
○復作阿房宮(복작아방궁)盡徵材士五萬人(진징재사오만인)屯衛咸陽(둔위함양)
다시 아방궁을 지을 적에 재사 5만 명을 징집하여 함양에 주둔시켜 호위하게 하였다.
○秋(추)陽城人陳勝(양성인진승)陽夏人吳廣(양하인오광)起兵於蘄(기병어기)
가을 양성인 진승과 양하인 오광이 기땅에서 병을 일으켰다.
是時(시시)發閭左(발여좌)戍漁陽(수어양)九百人屯大澤鄕(구백인둔대택향)
이때 여좌까지 징발하여 어양에 수자리를 서게 할 적에 900명을 대택향에 주둔하게 하였는데
勝廣皆爲屯長(승광개위둔장)會天大雨(회천대우)道不通(도불통)度已失期(도이실기)
진승과 오광이 모두 둔장을 하였는데 마침 하늘에서 큰 비가 와서 길이 끊어져 이미 기한을 넘겼음을 헤아려
乃召令徒屬曰(내소령도속왈)公等皆失期(공등개실기)當斬(당참)
마침내 도속을 불러 명령하기를 “공 등은 모두 기한을 넘겼으니 마땅히 참형에 처해질 것이다.
壯士不死則已(장사불사즉이)死則擧大名耳(사즉거대명이)
장사가 죽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죽으면 큰 이름을 남겨야 하거늘
王侯將相(왕후장상)寧有種乎(영유종호)衆皆從之(중개종지)
왕후장상이 어찌 종자가 있겠는가?” 하자, 무리들이 모두 그를 따랐다.
乃詐稱公子扶蘇項燕(내사칭공자부소항연)爲壇而盟(위단이맹)稱大楚(칭대초)
마침내 공자 부소와 항연이라고 사칭하고 단을 만들어 맹세하고 나라이름을 대초라고 하였다.
勝自立爲將軍(승자립위장군)廣爲都尉(광위도위)入據陳(입거진)陳中父老(진중부로)請立涉爲楚王(청입섭위초왕)
진승이 스스로 서서 장군이 되고, 오광이 도위가 되어 진땅에 들어가 점거하였다. 진땅의 부로들이 진섭을 초왕으로 세울 것을 청하자
張耳陳餘曰(장이진여왈)秦爲無道(진위무도)暴虐百姓(포학백성)
장이와 진여가 말하기를 “진 나라가 무도하여 백성들에게 포학하여
將軍出萬死之計(장군출만사지계)爲天下除殘(위천하제잔)
장군이 만 번 죽을 계책을 내어 천하를 위해 잔인한 자를 제거하려 하는데
今始至陳而王之(금시지진이왕지)示天下私(시천하사)
지금 처음으로 진 땅에 이르러 왕을 한다면 천하에 사심을 나타내는 것이니
願將軍毋王(원장군무왕)急引兵而西(급인병이서)遣人立六國後(견인입육국후)
원컨대 장군은 왕이 되지 말고 급히 군사를 이끌고 서쪽으로 가서 사람을 보내 육국의 후손을 세워
自爲樹黨(자위수당)爲秦益敵(위진익적)
스스로 당을 심어 진 나라에 적을 더 많아지게 하십시오.
敵多則力分(적다즉역분)與衆則兵强(여중즉병강)誅暴秦(주폭진)據咸陽(거함양)以令諸侯(이령제후)則帝業成矣(즉제업성의)
적이 많아지면 힘이 나뉘어지고 무리가 함께하면 군사는 강해져 난폭한 진 나라를 주벌하고 함양에 거하여 제후들을 명령하면 제업을 이룰 수 있습니다.” 하였으나
涉不聽(섭불청)自立爲王(자립위왕)
진섭은 듣지 않고 스스로 서서 왕이 되었다.
諸郡縣苦秦法(제군현고진법)爭殺長吏(쟁살장리)以應涉(이응섭)
여러 군현이 진 나라 법의 고초 때문에 장리를 다투어 살해하고 진섭에게 호응하였다.
○謁者使從東方來(알자사종동방래)以反者聞(이반자문)二世怒(이세노) 下之吏(하지리)
알자가 사자로 나갔다가 동방으로부터 와서 모반을 알리자 2세가 노하여 옥리에게 내렸다.
後使者至(후사자지)上問之(상문지)對曰(대왈)群盜鼠竊狗偸(군도서절구도)不足憂也(부족우야)上悅(상열)
뒤에 사자가 이르자 상이 물으니 대답하기를 “여러 도적들은 쥐가 훔치고 개가 도적질 하는 것이니 걱정할 것이 못됩니다.” 하자, 상이 기뻐하였다.
○陳王以陳人武臣爲將軍(진왕이진인무신위장군)以張耳陳餘爲左右校尉(이장이진여위좌우교위)
진왕이 진인 무신을 장군으로 삼고, 장이, 진여로 좌우 교위로 삼아
予卒二千人徇趙(여졸이천인순조)使周文西擊秦(사주문서격진)
병졸 2,000명을 주어 조 땅을 순행하게 하고, 주문으로 하여금 서쪽으로 가서 진 나라를 치게 하였다.
武臣等行收兵得數萬人(무신등행수병득수만인)號武臣爲武信君(호무신위무신군)
무신 등이 순행하며 병을 거두니 수만 명을 얻어서 무신을 이름하여
무신군이라 하고
下趙三十餘城(하조삼십여성)八月(팔월)武臣君自立爲趙王(무신군자립위조왕)
조 지방의 30여성을 함락시켰다. 8월 무신군이 스스로 서서 조왕이 되었다.
○九月(구월)沛人劉邦起兵於沛(패인유방기병어패)下相人項梁起兵於吳(하상인항량기병어오)狄人田儋起兵於齊(적인전담기병어제)
9월 패인 유방이 패현에서 군사를 일으키고, 하상인 항량이 오현에서 군사를 일으켰으며, 적인 전담이 제땅에서 군사를 일으켰다.
○劉邦(유방)字季(자계)爲人隆準龍顔(위인융준용안)左股有七十二黑子(조고유칠십이흑자)
유방의 자는 계이며 사람됨이 코가 크고 용안이며, 왼쪽 넓적다리에
72개의 검은 사마귀가 있고,
愛人(애인)喜施(희시)意豁如也(의활여야)常有大度(상유대도)不事家人生産作業(불사가인생산작업)
사람을 좋아하고 베풀기를 좋아하였으며 뜻이 활달하여 항상 큰 도량을 가지고 있었으나 집안 사람의 생업에 대해서는 일삼지 않았다.
史記本紀(사기본기)
曰(왈)常(嘗)繇咸陽(상요함양)縱觀秦皇帝(종관진황제)喟然太息曰(위연태식왈)
사기 본기에 이르기를 “일찍이 함양에 요역 할 적에 진 황제를 마음껏 보고 한숨을 쉬며 크게 탄식하고 말하기를’
嗟乎(차호)大丈夫當如此矣(대장부당여차의)
아! 대장부라면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하거늘.” 하였다.
○單父人呂公(단보인여공)好相人(호상인)見季狀貌(견계상모)因重敬之(인중경지)曰(왈)
단보인 여공은 사람의 상 보기를 좋아하였는데 유계의 모습을 보고 소중히 여겨 공경하여 말하기를
臣相人多矣(신상인다의)無如季相(무여계상)願季自愛(원계자애)
“신이 사람들의 상을 많이 보았는데 유계와 같은 상은 없었습니다. 원하기는 스스로 아끼십시오.
臣有息女(신유식여)願爲箕帚妾(원위기추첩)卒與劉季(졸여유계)乃呂后也(내여후야)
신에게 여식이 있으니 원한다면 청소하는 첩으로 써 주십시오. 하고 마침내 유계에게 주니 바로 여후가 된다.
○秦始皇帝常(嘗)曰(진시황제상왈)東南有天子氣(동남유천자기)於是(어시)因東游以壓之(인동유이압지)
진시황제가 일찍이 말하기를 “동남쪽에 천자의 기운이 있어 이에 동쪽 지방으로 유람하여 그 기운을 누르고자 하였다.
季卽自疑亡匿(계즉자의망닉)隱於芒碭山澤間(은어망탕산택간)
유계가 바로 스스로를 의심하고 도망하여 숨어서, 망현과 탕현의 산과 늪 사이에 숨어있는데
呂后與人(여후여인)俱求常得之(구구상득지)
여후가 사람들과 함께 찾으면 늘 그를 찾았다.
季怪問之(계괴문지)呂后曰(여후왈)
유계가 이상하여 묻자, 여후가 말하기를
季所居上(계소거상)常有雲氣(상유운기)故從往常得季(고종왕상득계)
“유계가 있는 곳 위에는 항상 운기가 있어 그래서 따라가면 유계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하자,
沛中子弟聞之(패중자제문지)多欲附者(다욕부자)
패현에 사는 자재들이 듣고서 귀부 하고자 하는 사람이 많았다.
初爲泗上亭長(초위사상정장)爲縣送徒驪山(위현송도여산)徒多道亡(도다도망)
처음에 사상 정장이 되어 현을 위해 도형을 받은 무리를 여산으로 호송하였는데 무리들이 길에서 도망하는 자가 많았다.
自度比至(자도비지)皆亡之(개망지)乃解縱所送徒(내해종소송도)曰(왈)
도착할 때면 모두 도망갈 것을 스스로 헤아리고 마침내 호송하는 무리를 풀어주면서 말하기를
公等皆去(공등개거)吾亦從此逝矣(오역종차서의)徒中壯士願從者十餘人(도중장사원종자십여인)
“공들은 모두 가도록 하시오, 나도 또한 여기를 떠날 것입니다.” 하자, 무리 중에 장사로써 따르기를 원하는 자가 10여명이었다.
○劉季被酒(유계피주)夜徑澤中야경택중)有大蛇當徑(유대사당경)季拔劒斬蛇(계발검참사)
유계가 술에 취해 밤에 늪 가운데를 가로지르는데 큰 뱀이 길을 막고 있어 유계가 검을 뽑아 뱀을 베었다.
後人來至蛇所(후인래지사소)有老嫗夜哭曰(유노구야곡왈)
뒤따라 오는 사람이 뱀이 있는 곳에 이르자 늙은 노파가 곡을 하면서
말하기를
吾子(오자)白帝子也(백제자야)化爲蛇(화위사)當道(당도)今赤帝子斬之(금적제자참지)
“내 아들은 백제의 아들이다. 변하여 뱀이 되어 길을 막고 있었는데 지금 적제의 아들이 베었구나.” 하고서,
嫗因忽不見(구인홀불견)後人告劉季(후인고유계)季乃心獨喜自負(계내심독희자부)諸從者日益畏之(제종자일익외지)
할머니는 갑자기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뒤따르는 사람이 유계에게 말하자 유계가 마음속으로 홀로 기뻐하며 자부하였고, 따르는 여러 사람들은 날마다 더욱 경외하였다.
○及陳涉起(급진섭기)沛令欲以沛應之(패령욕이패응지)
진섭이 봉기하자 패현의 현령이 패현을 들어 그에게 응하고자 하니
椽主吏蕭何曹參曰(연주리소하조참왈)
연주리 소하와 조참이 말하기를
君爲秦吏(군위진리)今欲背之(금욕배지)率沛子弟恐不聽(솔패자제공불청)
군께서는 진 나라의 관리가 되어 지금 그들을 배반하고 패현의 자재들을 거느리고자 하는데 따르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願君召諸亡在外者(원군소제망재외자)可得數百人(가득수백인)因劫衆(인겁중)衆不敢不聽(중불감불청)
원컨데 군께서 도망하여 외지에 있는 여러 사람을 부르면 수 백명을 얻을 수 있을 것이며 이들로 대중을 겁주면 대중들은 감히 듣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하자
乃令樊噲召劉季(내령번쾌소유계)時劉季之衆(시유계지중)已數十百人矣(이수십백인의)
드디어 번쾌에게 명령하여 유계를 부르니 이때 유계의 무리는 이미 수십백명 이었다.
沛令後悔(패령후회)父老乃率子弟共殺沛令(부로내자제공살패령)開門迎劉季(개문영유계)立以爲沛公(입이위패공)
패령이 후회하자 부로 들이 마침내 자제들을 이끌고 함께 패령을 살해하고 문을 열어 유계를 맞이하여 그를 세워 패공으로 삼았다.
旗幟皆赤(기치개적)由所殺蛇者(유소살사자)赤帝子故也(적제자고야)
기치를 모두 적색으로 하였으니 뱀을 죽인 자가 적제의 아들이라고 한 까닭이다.
蕭曹等爲收沛子弟(소조등위수패자제)得三千人(득삼천인)以應諸侯(이응제후)
소하와 조참 등이 유계를 위하여 패현의 자제를 거두자 3,000명을 얻어 제후들에게 호응하였다.
○項梁者(항량자)楚將項燕子也(초장항연자야)
항량은 초 나라 장수 항연의 아들이다.
嘗殺人(상살인)與兄子籍避仇吳中(여형자적피구오중)
일찍이 사람을 죽이고 형의 아들 항적과 오중에서 원수를 피해 있었다.
籍少時(적소시)學書不成(학서불성)去(거)學劒(학검)又不成(우불성)項梁怒之(향량노지)籍曰(적왈)
항적이 어릴 때 글을 배웠으나 이루지 못하고 검을 배웠으나 또한 이루지 못하자 항량이 노하니, 항적이 말하기를
書足以記名姓而已(서족이기명성이이)劒一人敵(검일인적)不足學(부족학)學萬人敵(학만인적)
“글은 이름과 성을 쓸 줄 알면 족할 뿐이고, 검은 한 사람을 대적하니 배우기에 족하지 않으며 만인을 대적함을 배우고자 합니다.” 하자
於是(어시)項梁乃敎籍兵法(항량내교적병법)
이에 항량이 마침내 항적에게 병법을 가르쳤다.
籍長八尺餘(적장팔척여)力能扛鼎(역능강정)才氣過人(재기과인)
항적의 키는 8척이 넘고 힘은 구정을 들었으며 재기가 보통 사람을 넘었다.
會稽守殷通(회계수은통)聞陳涉起(문진섭기)欲發兵以應涉(욕발병이응섭)使項梁將(사항량장)
회계수 은통이 진섭이 군사를 일으켰다는 말을 듣고 군대를 내어 진섭에게 호응하고자 항량을 장수로 삼았다.
梁乃使籍(량내사적)拔劍斬守頭(발검참수두)佩其印綬(패기인수)門下大驚(문하대경)擾亂(요란)
항량은 항적을 시켜 검을 뽑아 태수의 머리를 베게하고 그 인수를 차자 문하가 크게 놀라고 요란하였다.
籍所擊殺(적소격살)數十百人(수십백인)一府中皆慴伏(일부중개습복)莫敢起(막감기)
항적이 죽인 자가 수십백 명이며 온 부중이 모두 습복하고 감히 일어서는 자가 없었다.
梁乃擧吳中兵(량내거오중병)使人收下縣(사인수하현)得精兵八千人(득정병팔천인)
항량이 오중의 병력을 모두 동원하고 사람을 시켜 하현을 거두어 정예병 8,000명을 얻었다.
梁爲會稽守(량위회계수)籍爲裨將(적위비장)徇下縣(순하현)籍是時年二十四(적시시년이십사)
항량이 회계수가 되어 항적을 비장으로 삼아 하현을 순행하였는데 이때 항적의 나이 24세였다.
○田儋者(전담자)故齊王族也(고제왕족야)自立爲齊王(자립위제왕)率兵東(솔병동)略定齊地(략정제지)
전담은 옛 제 나라 왕족이다. 스스로 서서 제왕이 되어 군사를 이끌고 동쪽으로 가서 제 나라의 땅을 공략하여 평정하였다.
○韓廣自立爲燕王(한광자립위연왕)
한광이 스스로 서서 연왕이 되었다.
○周市立魏公子咎(주시립위공자구)爲魏王(위위왕)
주시가 위공자 구를 세워 위 나라 왕을 삼았다.
癸巳二年
二世數誚讓李斯(이세수초양이사)居三公位(거삼공위)如何令盜如此(여하령도여차)
2세가 자주 이사를 꾸짖기를 “삼공의 자리에 있으면서 어찌하여 도적
때가 이와 같이 성하단 말인가?” 하자,
李斯恐懼(이사공구)乃阿二世意(내아이세의)以書對曰(이서대왈)
이사가 두려워하며 마침내 2세의 뜻에 아첨하여 글로써 대답하기를
賢主(현주)必能行督責之術(필능행독책지술)以獨斷於上(이독단어상)
“어진 군주는 반드시 독책하는 방법을 잘 행하여 홀로 위에서 결단합니다.
群臣百姓(군신백성)救過不給(구과불급)何變之敢圖(하변지감도)
여러 신하와 백성들은 자기의 과실을 구원하기에도 여유가 없으니, 어찌 변란을 감히 도모하겠습니까?” 하자
二世說(이세열)
2세가 기뻐하였다.
於是行督責益嚴(어시행독책익엄)
이에 독책을 더욱 엄하게 행하였다.
稅民深者爲明吏(세민심자위명리)殺人衆者爲忠臣(살인중자위충신)
세금을 많이 거두는 자를 밝은 관리라 하고, 사람을 많이 죽인 자를 충신이라 하였다.
刑者相半於道(형자상반어도)而死人日成積於市(이사인일성적어시)
형을 받은 자가 길에 거의 반이며 죽은 사람이 거리에 날마다 쌓였다.
秦民益駭懼思亂(진민해구사란)
진 나라 백성들은 놀라고 두려워 더욱 반란할 것을 생각하였다.
○趙將李良(조장이량)襲殺趙王(습살조왕)張耳陳餘收散兵擊良(장이진여수산병격량)
조 나라 장수 이량이 조왕을 습격하여 죽였다. 장이와 진여는 흩어진
군사를 거두어 이량을 공격하여
乃求趙後(내구조후)立趙歇爲趙王(입조헐위조왕)
마침내 조 나라 후손을 찾아 조헐을 세워 조왕을 삼았다.
○二世益遣司馬欣董翳(이세익견사마흔동예)佐章邯擊盜陳王敗走(좌장한격도진왕패주)
2세가 사마흔과 동예를 더 보내어 장한을 도와 도둑을 치게 하니 진왕이 패주하였다.
其御莊賈(기어장가)殺陳王以降(살진왕이항)
그의 마부인 장가가 진왕을 죽이고 항복하였다.
○陳人秦嘉(진인진가)起兵於郯(기병어담)聞陳王軍敗(문진왕군패)乃立景駒(내입경구)爲楚王(위초왕)
진 나라 사람 진가가 담에서 병을 일으켰는데 진왕의 군대가 패했다는 말을 듣고 마침내 경구를 세워 초왕을 삼았다.
景駒在留(경구재류)沛公往從之(패공왕종지)
경구가 류땅에 있을 적에 패공이 가서 따랐는데
張良亦聚少年百餘人(장량역취소년백여인)道遇沛公(도우패공)遂屬焉(수속언)
장량 또한 소년 백여 명을 모아 도중에 패공을 만나 드디어 그에게 소속하였다.
良數以太公兵法說沛公(량수이태공병법설패공)沛公善之(패공선지)常用其策(상용기책)
장량이 자주 태공의 병법으로 패공을 설득하자 패공이 좋아하여 항상
그 계책을 따랐다.
良爲他人言(량위타인언)皆不省(개불성)良曰(량왈)
장량이 다른 사람에게 계책을 말할 적에는 모두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장량이 말하기를
沛公殆天授(패공태천수)故遂從不去(고수종불거)
“패공은 아마 하늘이 내려 주신 듯하다. 그래서 드디어 따르고 떠나가지 않은 것이다.”하였다.
○項梁以八千人(항양이팔천인)渡江而西(도강이서)
항양이 군사 8,000명으로 강을 건너 서쪽으로 갔다.
○鯨布者(경포자)六人也(육인야)姓英氏(성영씨)亡之江中(망지강중)
경포는 육 땅 사람으로 성은 영씨로 양자강 섬 가운데로 도망하여
爲群盜(위군도)聞項梁渡淮(문항량도회)引兵屬焉(인병속언)
도둑떼가 되었는데 항량이 회수를 건넜다는 말을 듣고 병을 이끌고 그에게 속하였다.
○項梁衆至六七萬人(항량중지육칠만인)軍下邳(군하비)進擊秦嘉景駒殺之(진격진가경구살지)
향량의 무리가 6,7만에 이르러 하비에 주둔하면서 진가와 경포를 진격하여 죽였다.
○沛公往見梁(패공왕견양)梁予沛公卒五千人(양여패공졸오천인)
패공이 가서 항량을 만났는데, 향량이 패공에게 군사 5천명을 주었다.
○項梁使項羽(항량사항우)別攻襄城(별공양성)襄城堅守不下(양성견수불하)已拔(이발)皆坑之(개갱지)
항량이 항우로 하여금 별도로 양성을 공격하게 하였는데 양성이 견고하게 지키자 함락하지 못하였으나 이윽고 함락하여 모두 묻어서 죽였다.
○梁聞陳王定死(양문진왕정사)召諸別將會薛計事(소제별장회설계사) 沛公亦往焉(패공역왕언)
항량은 진왕이 정말로 죽었다는 말을 듣고 여러 별장을 불러 설에 모여 일을 계획하였는데, 패공도 또한 거기에 갔었다.
居鄛人范增(거소인범증)年七十(년칠십)素居家(소거가)好奇計(호기계)往說項梁曰(왕설항량왈)
거소인 범증은 나이70으로 평소 집에 있으면서 기이한 계책을 좋아하였는데 항량을 찾아가 설득하여 말하기를
陳勝首事(진승수사)不立楚後而自立(불립초후이자립)其勢不長(기세불장)
“진승이 일을 우선함에 초 나라 후손을 세우지 않고 스스로 서니 그 기세가 길지 않았습니다.
今君起江東(금군기강동)楚蠭起之將(초봉기지장)皆爭附君者(개쟁부군자)
지금 군은 강동에서 일어나니 초에서 봉기한 장수들이 모두 다투어 군에게 귀부 하는 것은
以君世世楚將(이군세세초장)能復立楚之後也(능복립초지후야)
군이 대대로 초 나라 장군으로 다시 초 나라의 후예를 세울 것이라 생각해서 입니다.” 하자
於是項梁然(어시항량연)其言(기언)乃求得楚懷王孫心(내구득초회왕손심)
이에 항량이 그 말을 옳게 여겨 마침내 초 회왕의 손자인 심을 찾아
立以爲楚懷王(입이위초회왕)從民望也(종민망야)
그를 세워 초 회왕으로 삼으니 백성들의 바람을 따른 것이다.
項梁自號武信君(향량자호무신군)
항량은 스스로 무신군이라 불렀다.
○張良說項梁曰(장량설항량왈)
장량이 항량을 설득하여 말하기를
君已立楚後(군이입초후)而韓諸公子(이한제공자)橫陽君成最賢(횡양군성최현) 可立爲王(가입위왕)益樹黨(익수당)
“군께서는 이미 초 나라의 후를 세웠는데, 한 나라에는 여러 공자 중 횡양군 한성이 가장 어질다고 하니, 그를 세워 왕을 삼으면 더욱 당여를 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자
梁使良求韓成(량사량구한성)立以爲韓王(입이위한왕)
항량이 장량으로 하여금 한성을 찾아 그를 세워 한왕으로 삼게 하였다.
○章邯擊魏(장감격위)齊王儋及楚將項它(제왕담급초장항탸)皆將兵救魏(개장병구위)
장감이 위 나라를 치자 제왕 담과 초장 항타가 모두 군사를 이끌고 위 나라를 구원하였다.
章邯大破齊楚軍(장감대파제초군)魏王咎自燒死(위왕구자소사)其弟豹亡之楚(기제표망지초)
장감이 제 나라와 초 나라의 군사를 대파하자 위 나라 왕 구는 스스로 불타 죽자 그 동생 표가 도망하여 초 나라로 갔다.
楚懷王予兵數千人(초회왕여병수천인)復徇魏地(부순위지)立爲魏王(입위위왕)
초 나라 회왕이 군사 수천 명을 주어 다시 위 나라 땅을 순행하게 하고 그를 세워 위왕으로 삼았다.
田榮收兄儋餘兵(전영수형담여병)東走東阿(동주동아)章邯追圍之(장감추위지)
전영이 형 담의 잔여 병력을 거두어 동쪽 동아로 달아나자 장감이 추격하여 그를 포위하였다.
武信君引兵擊破章邯軍於東阿下(무신군인병격파장감군어동아하)追至濮陽又破之(추지복양우파지)
무신군이 군사를 이끌고 장감의 군대를 동아 아래서 쳐부수고 추격하여 복양에 이르러 또 쳐부수었다.
○郎中令趙高(랑중령조고)恃恩專恣(시은전자)以私怨誅殺人衆多(이사원주살인중다)
랑중령 조고가 은총을 믿고 방자하게 멋대로 사사로운 원한으로 사람을 주벌하고 살인함이 매우 많았다.
恐大臣入朝奏事言之(공대신입조주사언지)乃說二世曰(내설이세왈)
대신들이 입조하여 일을 아뢰다가 이를 말할까 두려워 마침내 2세를 설득하여 말하기를
天子所以貴者(천자소이귀자)但以聞聲(단이문성)群臣莫得見其面也(군신막득견기면야)
“천자가 귀한 까닭은 다만 음성만 들을 수 있고 여러 신하들이 그 얼굴은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陛下不如深拱禁中(폐하불여심공금중)與臣及侍中習法者待事(여신급시중습법자대사)事來有以撥之(사래유이발지)
폐하께서 깊은 금중에서 팔짱을 끼고 신하와 시중으로 법에 익숙한 자들과 일을 기다리다가 일을 가지고 오면 헤아리는 것만한 것이 없습니다.
如此(여차)則大臣不敢奏疑事(즉대신불감주의사)天下稱聖主矣(천하칭성주의)
이와 같이하면 대신들은 감히 의심스러운 일을 아뢰지 않을 것이며 천하는 이와 같이 하면 대신들은 성주라 일컬을 것입니다.” 하자
二世用其計(이세용기계)乃坐朝廷見大臣(내좌조정견대신)常居禁中(상거금중)事皆決於趙高(사개결어조고)
2세가 그 계책을 써서 마침내 조정에 앉아서 대신들을 보지 않고 항상 금중에 있으니 일은 모두 조고가 결정하였다.
高聞李斯以爲言(고문이사이위언)乃曰(내왈)
조고는 이사가 자기의 일을 가지고 말한다는 것을 듣고 말하기를
丞相長男李由(승상장남이유)爲三川守(위삼천수)與盜通(여도통)
승상의 장남 이유는 삼천 군수가 되어 도적들과 내통하고
且丞相居外(차승상거외)權重於陛下(권중어폐하)
또 승상은 밖에 있으니 권력은 폐하보다 무겁습니다.” 하자
二世以爲然(이세이위연)乃使人按驗三川守與盜通狀(내사인안험삼천수여도통상)
2세가 그렇다고 여겨 드디어 사람을 시켜 삼천 군수와 도적이 내통하는 상황을 조사하여 징험하게 하고
下斯吏(하사리)斯就獄(사취옥)二世以屬趙高治之(이세이속조고치지)
이사를 옥리에게 내리자 이사는 옥으로 갔으며 2세는 조고에게 맡겨 이사를 다스리게 하자
具斯五刑論(구사오형론)腰斬咸陽市(요참함양시)遂父子相哭(수부자상곡)而夷三族(이이삼족)
이사를 오형에 갖추어 논죄하여 함양저자에서 요참 하였다. 마침내 부자가 서로 통곡하고 삼족이 멸하였다.
二世以趙高爲丞相(이세이조고위승상)事無大小皆決焉(사무대소개결언)
2세는 조고를 승상으로 삼고 일의 크고 작음 없이 모두 조고가 결정하였다.
○項梁已破章邯(향량이파장감)引兵至定陶(임병지정도)再破秦軍(재파진군)
항량이 이윽고 장감을 부수고 병을 이끌고 정도에 이르러 재차 진 나라 군사를 쳐부수었다.
項羽沛公又與秦軍戰於雍丘(항우패공우여진군전어옹구)大破之(대파지)斬李由(참이유)
항우와 패공이 또 진군과 옹구에서 싸워 크게 격파하고 이유를 목을 베었다.
梁益輕秦(량익경진)有驕色(유교색)宋義諫曰(송의간왈)
항량이 더욱 진 나라를 가벼이 여기고 교만한 기색이 있자 송의가 간하여 말하기를
戰勝而將驕卒惰者敗(전승이장교졸타자패)臣爲君畏之(신위군외지)梁弗聽(량불청)
“싸움에서 이기고 장수가 교만해지고 병졸이 게을러지는 자 패하는 법이니, 신은 군을 위하여 두려워합니다.” 하였으나 항량은 듣지 않았다.
二世悉起兵(이세실기병)益章邯擊楚軍(익장감격초군)大破之定陶(대파지정도)項梁死(항량사)
2세가 군대를 모두 일으켜 장감에게 더해주어 초군을 치니 정도에서 크게 격파하자 항량이 전사하였다.
○章邯已破項梁(장감이파항량)乃渡河北擊趙(내도하북격조)趙數請救於楚(조수청구어초)
장감이 이윽고 항량을 격파하고 마침내 황하를 건너 북쪽으로 조 나라를 치자 조 나라가 여러 번 초 나라에 구원을 청하였다.
楚王以宋義爲上將軍(초왕이소의위상장군)項羽爲次將(항우위차장)以救趙(이구조)
초왕이 송의로 상장군을 삼고 항우를 차장으로 삼아 조 나라를 구원하는데
諸別將皆屬宋義(제별장개속송의)號爲卿子冠軍(호위경자관군)
여러 별장이 모두 송의에게 속하게 했으며, 부르기를 경자관군이라 하였다.
○初楚懷王與諸將約(초초회왕여제장약)先入定關中者王之(선입정관중자왕지)
전에 초 회왕이 여러 장수들과 약속하기를 관중에 먼저 들어가 평정하는 자를 왕으로 삼겠다 하였다.
當是時(당시시)秦兵彊(진병강)常乘勝逐北(상승승축배)諸將莫利先入關(제장막리선입관)
이때를 당하여 진 나라 군대가 강하여 항상 승세를 타고 패배하는 자를 추격하여 여러 장수들이 먼저 관중에 들어 가는 것을 이롭게 여기지 않았다.
獨項羽怨秦之殺項梁(독항우원진지살항량)奮身願與沛公西入關(분신원여패공서입관)
유독 항우만이 진 나라가 항량을 죽인 원한으로 격분하여 패공과 함께 서쪽으로 관중에 들어가기를 원하였다.
懷王諸老將皆曰(회왕제노장개왈)項羽爲人(항우위인)慓悍猾賊(표한활적)
회왕의 여러 노장들이 모두 말하기를 “항우의 사람됨은 사납고 잔인해서,
嘗攻襄城(상공양성)襄城無遺類(양성무유류)諸所過無不殘滅(제소과무불잔멸)
일찍이 양성을 공격하면서 양성에 남은 무리가 없었고, 여러 지나 간곳 마다 해쳐서 멸하지 않은 것이 없었으니,
不如更遣長者扶義而西(불여갱견장자부의이서)告諭秦父兄(고유진부형)
장자를 바꾸어 보내 의를 잡고 서쪽으로 가서 진 나라의 부형들을 고유 하는 것만 못합니다.
秦父兄苦其主久矣(진부형고기주구의)今誠得長者(금성득장자)往無侵暴(왕무침폭)宜可下(의가하)
진 나라 부형들은 자기의 주를 괴로워 한지가 오래입니다. 지금 실로 장자를 얻어 가서 침략하고 포악하게 하지 않는다면 마땅히 항복할 것입니다.
羽不可遣(우불가견)獨沛公素寬大長者(독패공소관대장자)可遣(가견)
항우는 보낼 수 없습니다. 오직 패공은 본래 관대한 장자로 보낼 만 합니다.” 하였다.
懷王乃不許羽(회왕내불허우)而遣沛公西略地(이견패공서략지)
회왕이 드디어 항우를 허락하지 않고 패공을 보내 서쪽 땅을 공략하게 하였다.
甲午三年
冬十月(동십월)
宋義行至安陽(송의행지안양)留四十六日(류사십육일)不進(불진)
송의가 행군하여 안양에 이르러 46일간 머무르면서 진격하지 않았다.
羽曰(우왈)國兵新破(국병신파)王坐不安席(왕좌불안석)掃境內以屬將軍(소경내이속장군)
항우가 말하기를 “나라의 군사가 새로이 격파되자 왕이 앉아 있어도 자리가 편치 못하여 나라안을 총동원하여 장군에게 맡기셨으니
國家安危(국가안위)在此一擧(재차일거)
국가의 안위가 이 한번의 거사에 달려있다.
今不恤士卒(금불휼사졸)而徇其私(이순기사)非社稷之臣也(비사직지신야)
지금 사졸을 구휼하지 않고 사사로움을 따르니, 사직의 신하가 아니다.” 하였다.
十一月(십일월)項羽卽其帳中(항우즉기장중)斬宋義(참송의)
11월 항우가 그의 장막 중에서 송의의 목을 베고
乃悉引兵渡河(내실인병도하)皆沈船(개침선)破釜甑(파부증)燒廬舍(소려사)
드디어 모든 군사를 이끌고 황하를 건너가 모든 배를 침몰시키고 솥과 시루를 부수고 막사를 불태운 다음
持三日粮(지삼일량)以示士卒必死(이시사졸필사)
3일치 양식을 가지게 하여 사졸들에게 필사적으로 싸울 것을 나타내자
九戰大破之(구전대파지)虜王離(로왕리)
9번 싸워 크게 이기고 왕리를 포로로 하였다.
○當是時(당시시)楚兵冠諸侯(초병관제후)於是始爲諸侯上將軍(어시시위제후상장군)諸侯皆屬焉(제후개속언)
이때를 당하여 초 나라 군사가 제후의 으뜸이라, 이에 비로소 항우가 제후의 상장군이 되니 제후들이 모두 그에게 속하게 되었다.
○春二月(춘이월)沛公北擊昌邑(패공북격창읍)過彭越(과팽월)
봄 2월 패공이 북쪽으로 창읍을 공격할 적에 팽월을 지났는데
越以其兵從沛公(월이기병종패공)沛公拜越爲魏相(패공배월위위상)使將兵略定魏地(사장병략정위지)
팽월이 자기의 군사를 이끌고 패공을 따르고자 하니, 패공이 팽월을 위 나라 정승으로 삼고, 그로 하여금 군사를 이끌고 위 나라 땅을 공략하여 평정하게 하였다.
○沛公引兵西(패공인병서)過高陽(과고양)
패공이 군사를 이끌고 서쪽으로 갈 적에 고양을 지나는데
高陽人酈食其(고양인여식기)爲里監門(위리감문)
고양인 여식기가 마을의 감문을 하고 있었는데
沛公麾下騎士(패공휘하기사)適食其里中人(적식기리중인)
패공 휘하의 기병이 마침 여식기의 마을 사람이었다.
食其見謂曰(식기견위왈)
여식기가 그를 보고 말하기를
吾聞沛公慢而易人(오문패공만이이인)多大略(다대략)此眞吾所願從遊(차진오소원종유)
“내 들으니 패공은 거만하여 사람을 함부로 대하나 큰 지략이 많으니
이는 진정으로 내가 종유하기를 원하는 바이다.” 하자
騎士曰(기사왈)沛公不好儒(패공불호유)諸客冠儒冠來者(제객관유관래자)
기병이 말하기를 “패공은 유자를 좋아하지 아니하여 여러 빈객 중에 관을 쓰고 오는 자가 있으면
沛公輒解其冠(패공첩해기관)溲溺其中(수닉기중)未可以儒生說也(미가이유생설야)
패공은 그때마다 그 관을 벗겨 그 속에 오줌을 누니, 유생으로서는 설득할 수가 없습니다.” 하자
酈生曰(여생왈)第言之(제언지)騎士從容言(기사종용언)至高陽傳舍(지고양전사)使人召酈生(사인소여생)
여생이 말하기를 “말이나 해보라.” 하자 기사가 조용히 말하였더니, 고양의 역사에 이르러 사람을 시켜 여생을 불렀다.
酈生至(여생지)入謁(입알)
여생이 도착하여 들어가 뵈었는데
沛公方倨牀(패공방거상)使兩女子洗足(사양여자세족)而見酈生(이견여생)
패공이 마침 평상에 걸터앉아 두 여자로 하여금 발을 씻게 하면서 여생을 만나보았다.
生長揖不拜(생장읍불배)曰(왈)足下必欲誅無道秦(족하필욕주무도진)不宜倨見長者(불의거견장자)
여생이 길게 읍만 하고 절하지 않으면서 말하기를 “족하께서 무도한 진 나라를 반드시 주벌하고자 하신다면 걸터앉아서 장자를 만나 보아서는 안됩니다.” 하자
於是沛公輟洗(어시패공철세)起攝衣(기섭의)延生上坐謝之(연생상좌사지)
이에 패공이 세수대야를 치우고 일어나 옷을 입고 여생을 맞이하여 상좌에 앉히고 사례하였다.
酈生因言六國縱橫時(여생인언육국종횡시)沛公喜問曰(패공희문왈)
여생이 6국의 합종∙연횡하던 때를 말하자, 패공이 기뻐하며 묻기를
計將安出(계장안출)酈生曰(여생왈)足下起糾合之衆(족하기규합지중)
“계책을 장차 어떻게 내어야 합니까?” 하니, 여생이 말하기를 “족하께서 일으켜 규합한 무리가
收散亂之兵(수산란지병)不滿萬人(불만만인)欲以徑入彊秦(욕이경입강진)
흩어지고 어지러운 군사를 거둔 것이 만 명을 채우지 못했는데, 이들을 데리고 곧 바로 강한 진 나라로 들어가고자 하니
此所謂探虎口者也(차소위탐호구자야)夫陳留(부진류)天下之衝(천하지충)四通五達之郊也(사통오달지교야)
이는 말하자면 호랑이 입을 더듬는 것입니다. 진류는 천하의 요충으로 사통오달의 들입니다.
今其城中(금기성중)又多積粟(우다적속)臣善其令(신선기령)請得使之(청득사지)
지금 그 성안에는 또 많은 곡식이 쌓여있으며 신은 그 현령을 잘 알고 있으니 청하건대 사신으로 가서
令下足下(령하족하)卽不聽(즉불청)足下擧兵攻之(족하거병공지)臣爲內應(신위내응)
족하에게 항복하도록 하겠습니다. 만일 듣지 않으면 족하께서 군대로써 공격하면 신이 내응하겠습니다.” 하였다.
於是遣酈生行(어시견여생행)沛公引兵隨之(패공인병수지)遂下陳留(수하진류)
이에 여생을 보내어 가게하고 패공은 군사를 이끌고 따라가서 드디어 진류를 함락하였다.
號酈食其爲廣野君(호여식기위광야군)酈生常爲說客(여생상위세객)使諸侯(사제후)
여식기를 부르기를 광야군이라 하였으며 여생은 항상 유세객으로 제후에게 사신으로 갔다.
○夏四月(하사월)沛公南攻潁川(패공남공영천)屠之(도지)
여름 4월에 패공이 남쪽으로 가서 영천을 공격하여 도륙하고
因張良遂略韓地(인장량수략한지)良引兵從沛公(량인병종패공)略南陽郡(략남양군)
장량은 드디어 한 나라 땅을 공략하였다. 장량은 군사를 이끌고 패공을 따라가 남양군을 공략하자
南陽守의降(남양수의항)引兵西(인병서)無不下者(무불하자)所過(소과)亡得鹵掠(망득노략)秦民皆喜(진민개희)
남양수 의가 항복하였다. 군사를 이끌고 서쪽으로 가니 항복하지 않은 곳이 없었으며 지나는 곳에는 노략질을 않으니 진 나라 백성이 모두 기뻐하였다.
○王離軍旣沒(왕리군기몰)章邯軍棘原(장감군극원)項羽軍漳南(항우군장남)秦兵數却(진병수각)
왕리의 군대가 이미 패몰함에 장감은 극원에 주둔하고 항우는 장수 남쪽에 주둔하니 진 나라 군사가 자주 퇴각하였다.
二世使人讓章邯(이세사인양장감)邯恐(감공)使長史欣(사장사흔)請事咸陽(청사함양)
2세가 사람을 시켜 장감을 꾸짖으니 장감이 두려워 장사인 사마흔으로 하여금 함양에 가서 일을 청하게 하였는데
留司馬門三日(류사마문삼일)趙高不見(조고불견)有不信之心(유불신지심)
사마문에서 3일간 머물렀는데 조고가 보지 않고 불신하는 마음이 있었다.
欣至軍(흔지군)報曰(보왈)高用事于中(고용사우중)下無可爲者(하무가위자)
사마흔이 군대에 이르러 보고하기를 “조고가 궁중에서 용사하니 아래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今戰勝(금전승)高必嫉吾功(고필질오공)不勝(불승)不免於死(불면어사)
지금 싸움에 이기면 조고는 반드시 우리의 공을 질투할 것이고, 이기지 못하면 죽음을 면할 수 없습니다.”하자
邯乃與羽(감내여우)約盟洹水之上(약맹원수지상)已盟(이맹)邯見羽流涕(감견우류체)爲言趙高(위언조고)
장감이 마침내 항우와 원수가에서 맹약하였다. 맹약을 마치자 장감이 항우를 보고 눈물을 흘리며 조고에 대하여 말하였다.
羽乃立章邯爲雍王(우내입장감위옹왕)置楚軍中(치초군중)使長史欣爲上將軍(사장사흔위상장군)將秦軍爲前行(장진군위전행)
항우가 마침내 장감을 세워 옹왕을 삼고 초 나라 군중에 두고, 장사 사마흔을 상장군으로 삼아 진 나라 군사를 이끌고 선봉이 되게 하였다.
○初(초)趙高欲專秦權(조고욕전진권)恐群臣不聽(공군신불청)乃先設驗(내선설험)
이전에 조고가 진 나라 권력을 오로지 하고자 하니 여러 신하들이 듣지 않을까 두려워 마침내 먼저 시험삼아
持鹿獻於二世(지록헌어이세)曰(왈)馬也(마야)二世笑曰(이세소왈)
사슴을 가져다 2세에게 바치면서 말하기를 “말입니다.” 하자, 2세가 웃으면서 말하기를
丞相誤耶(승상오야)謂鹿爲馬(위록위마)問左右(문좌우)或默(혹묵)或言馬(혹언마)
“승상은 오판하는가? 사슴을 말이라고 하니.” 하고 좌우에 물으니 혹자는 대답이 없고, 혹자는 말이라고 말하였다.
高因陰中諸言鹿者以法(고인음중제언록자이법)後群臣皆畏高(후군신개외고)莫敢言其過(막감언기과)
조고가 그 일로 은밀히 사슴이라고 말한 자를 법으로 중상하니 뒤에 군신들이 모두 조고를 두려워하여 그의 잘못을 감히 말하는 자가 없었다.
○高前數言關東盜(고전수언관동도)無能爲也(무능위야)
조고가 이전에 여러 번 말했던 관동의 도적은 걱정할 것이 없다고 하였는데
及項羽虜王離等(급항우로왕리등)而章邯等軍數敗(이장감등군수패)關東皆畔(관동개반)
항우가 왕리 등을 사로잡고 장감 등의 군대가 자주 패배하자 관동이
모두 배반하였다.
高恐二世怒(고공이세노)誅及其身(주급기신)乃謝病不朝(내사병불조)
조고는 2세가 노하면 주벌이 자신에게 미칠까 두려워 마침내 병이라 하고 사퇴여 조회에 나가지 않고
陰與其壻咸陽令閻樂(음여기서함양령염락)謀易置上(모역치상)更立子嬰(갱립자영)
은밀히 그 사위인 함양령 염락과 상을 바꿔치고 자영을 바꾸어 세울
것을 도모하였다.
樂將吏卒(락장리졸)入望夷宮(입망이궁)與(數)二世曰(여이세왈)受命於丞相(수명어승상)誅足下(주족하)
염락이 관리와 병졸을 이끌고 망이궁에 들어가 2세를 꾸짖어 말하기를 “승상에게 명령을 받아 족하를 죽이겠다.” 하고서
麾其兵進(휘기병진)二世自殺(이세자살)
병사를 지휘하여 나아가자 2세가 자살하였다.
趙高乃立子嬰爲秦王(조고내입자영위진왕)令子嬰齋當廟見(령자영재당묘견)受玉璽(수옥새)
조고가 마침내 자영을 세워 진왕을 삼고 자영으로 하여금 재계하고 사당을 배알하고 옥새를 받으라고 하였다.
子嬰與其子二人謀曰(자영여기자이인모왈)丞相高殺二世(승상고살이세)
자영이 그의 아들 두 명과 모의하여 말하기를 “승상 조고가 2세를 죽였는데
恐群臣誅之(공군신주지)乃佯以義立我(내양이의입아)使我齋見廟(사아재견묘)
여러 신하들이 주벌할까 두려워 그래서 거짓 의로써 나를 세우고 나로 하여금 재계하고 사당을 배알하라 하니
我稱病不行(아칭병불행)丞相必自來(승상필자래)來則殺之(래즉살지)
내가 병을 핑계로 가지 않으면 승상은 반드시 스스로 올 것이다. 오면 그를 죽일 것이다.” 하였는데
高果自往(고과자왕)子嬰遂刺殺高於齋宮(자영수자살고어재궁)三族高家(삼족고가)
조고가 과연 스스로 오자 자영이 드디어 조고를 재궁에서 찔러 죽이고 조고 집안의 삼족을 멸하였다.
○子嬰(자영)遣將(견장)將兵距嶢關(장병거요관)沛公欲擊之(패공욕격지)
자영이 장군을 보내고 군사를 이끌고 요관에서 막았다. 패공이 공격하고자 하니
張良曰(장량왈)秦兵尙彊(진병상강)未可輕(미가경)
장량이 말하기를 “진병이 아직 강하니 가벼이 할 수가 없습니다.
願先遣人(원선견인)益張旗幟於山上(익장기치어산상)爲疑兵(위의병)
원컨데 먼저 사람을 보내고 기치를 산 위에 더욱 늘어 세우고 의병을 만들며
使酈食其陸賈(사여식기육가)往說秦將(왕설진장)啗以利(담이리)
여식기와 육가로 하여금 가서 진 나라 장군들을 설득하여 이로운 쪽으로 유도하게 하소서.” 하였다.
秦將果欲連和(진장과욕연화)沛公欲許之(패공욕허지)張良曰(장량왈)
진 나라 장군들이 과연 연이어 화해하고자 하니 패공이 허락 하고자 하였는데 장량이 말하기를
此獨其將欲叛(차독기장욕반)恐其士卒不從(공기사졸불종)不如因其懈怠擊之(불여인기해태격지)
“이는 오직 그 장수만 배반하고자 하는 것이니 그 사졸이 따르지 않을까 두려우니 그들이 해이해진 틈을 타 공격하는 것만한 것이 없습니다.”하자
沛公引兵繞嶢關(패공인병요요관)踰蕢山(유괴산)擊秦軍大破之(격진군대파지)
패공이 군사를 이끌고 요관을 에워싸고 괴산을 넘어 진 나라 군사를 공격하여 크게 쳐부수었다.
遂至藍田(수지람전)又戰其北(우전기북)秦兵大敗(진병대패)
드디어 람전에 이르러 또 그 북쪽에서 싸워 진 나라 군사가 크게 패하였다.
右秦(우진)自莊襄王至子嬰(자장양왕지자영)合四十三年(합사십삼년)
이상 진 나라는 장양왕으로부터 자영에 이르기까지 도합 43년이고
子嬰爲王四十六日(자영위왕사십육일)而降于漢(이항우한)
자영은 왕이 된지 46일 만에 한 나라에 항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