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대의 등산칼럼> 52회
에코(Echo), 산에서 사라지는 메아리.
산악인들 사이에서 널리 쓰이는 보통명사 '에코(Echo)'는 메아리 또는 산울림이라는 뜻이다. 이 단어는 로마시인 오비디우스 가 쓴 ‘변신 이야기‘에 실린 비극적인 두 남녀 나르키소스(Narcissus)와 에코의 슬픈 사랑이야기가 어원이 되고 있다.
한 떨기 수선화로 변해버린 아름다운 청년 나르키소스와 헤라의 저주를 받아 상대방의 음성만 따라할 뿐 자신의 마음을 말로 표현할 수 없게 된 숲의 요정 에코는 사랑을 고백을 할 수 없게 된 채 흉내 내는 목소리만 남게 된다는 비극적인사랑이야기가 기원이 되고 있다.
에코는 동료를 찾거나 긴급 상황 발생 시 구조를 요청하거나, 동료에게 자기의 위치를 알릴 때 사용했던 육성신호다.
70-80년대 만해도 야영장 주변이나 암벽에서 에코를 주고받는 산악회가 많았으나 지금은 에코를 사용하는 산악회는 찾아보기가 어렵다. 휴대폰과 성능 좋은 소형무전기가 보급되면서 과학문명의 이기에 밀려 사라져 버린 등산문화가 되었다. 20년 전만해도 북한산 인수봉이나 설악산의 울산암. 설악골 주변의 야영지에서 자기 팀의 위치를 확인하는 에코 소리를 자주들을 수 있었다.
대부분의 산악회들은 다른 산악회와는 차별화된 에코를 만들어 그들만의 독자적인 존재감을 나타냈고 동료 간에는 연대의식을 가지고 에코를 외쳐대며 동지애로 똘똘 뭉쳤다. 각 산악회에서 사용하던 에코는 그 의미가 회명을 간략하게 줄여 자기들만의 독특한 의미를 부여하여 사용하고 있었다.
지금은 에코가 사라져가는 추세이지만 아직도 몇몇 대학산악부에서는 정통성을 고수하면서 사용하고 있다. 이들이 사용하고 있는 에코의 의미 속에 숨어있는 일화나 만들어진 유래를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한국대학산악 연맹은 영문약자인 KSAF에서 K를 생략하고 앞머리에 이봐! 라는 의미의 주의를 끄는 소리 hi 붙여 “하이-셉”(hi-SAF)이란 에코를 만들어1976년부터 사용하고 있다. 가톨릭의대 산악부의 에코는 “까대-까대”다. 이는 가톨릭의대의 준말 ‘가대’를 반복해서 만들었으며, 음이 약해 앞머리에 강한 악센트를 주어 “까대”로 부른다.
건국대학의 경우는 “핫-조이”(Hot Joy)다. 같은 팀끼리의 재회의 즐거움을 표현한 에코다. 하계등반 도중 헤어졌던 팀들이 종주를 마치고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재회의 기쁨을 ‘핫 조이’로 표현한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경희대학교의 에코는 “하이, 럭키, 럭키”(Hi, Lucky, Lucky)다. 산과 사회생활 모두가 항상 즐겁고 복된 행운이 함께하는 삶이되기를 기원한다는 의미에서 이렇게 정했다한다. 고려대학의 경우는 “하이-야”(Higher)다. 1954년 창립멤버들이 만든 에코이며, ‘더 높은 곳’을 지향하는 산악인들의 도전정신을 의미한 표현이라 생각된다.
광운대학의 경우는 “헤이-럭키”(Hey-Lucky)다.1964년 산악부 창립산행 시 만들어졌으며, 다시 만날 때까지 아무런 사고 없이 행운을 빈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동국대학교는 “디-원”(D-one)이다. D는 동대의 머리글자이고 One은 항상 ‘첫째’라는 자부심의 표현이라고 한다. 즉 동대산악부는 첫째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동덕여자대학의 경우는“하이-아씨”다. 여성스런 면모를 지니고 있는 에코다. 교내 동아리 명칭이 ‘산 아씨’산악부이기 때문에 이런 에코가 만들어졌다. 산속에서 “하이-아씨”를 외치면 어디선가 장난기 어린 화답으로 “하이-총각”이라는 외침이 들려오기도 한다. 이는 동덕의 에코에게 구애하는 미남 총각 나르키소스의 외침이 아닐까?. 상명여자대학교는 “자하-디어”다. 학교의 위치가 있는 자하문과 학교의 상징물인 사슴(deer)을 합성한 ‘자하 골 꽃사슴’을 의미한다.
이화대학교 문리과대학 산악부는 “반니”다. 반니라는 에코가 생긴 유래는 장기등반 중에 대원 한 명이 행방불명되어 여러 명이 분산하여 찾으러 다니는 가운데 ‘우리
애 못 봤어요?’ ‘우리 애 ’봤니’에서 반니가 생겼다고 한다. 산에서 ‘반니!’하고 자기 팀을 부르면 어디선가 ‘못 봤다’라는 화답이 온다고 한다.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의 에코는 “하우 어웨이”(How away)이다. 1949년 산악회 창립당시부터 불러온 에코다. 등반도중 앞뒤 대원 간의 소통을 위해 ‘얼마나 떨어져 있느냐’라는 뜻으로 부르게 되었다 한다.
명지대학의 에코는 “때때로”다. 때때로 산에 간다는 간결한 의미가가 포함되어 있다. 인천대학의 에코는 “앗-싸”다. 평소 자기능력이상의 능력을 발휘할 때 자연스럽게 나오는 소리가 앗-싸다. 어려운 등반을 할 때 이 소리를 외침으로서 힘을 얻게 됨으로 에코로 정했다고 한다.
“까우악”(CAUAC)은 중앙대학교 산악부의 에코다. Chung Ang University Alpine Club의 약칭을 에코로 정했다. ‘까우악!’하고 외치면 어디선가 까치가 ‘까악!’하고 화답을 할 것 같다. 한양대학교는 “엘라떼”(ELLATTE)다. 1958년 창립당시부터 사용했으며, 불어로 ‘모여라’라는 의미다. “와우-웨이야”는 홍익대학교의 에코다. ‘와우 산의 애들아’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산으로 퍼져라’라는 의미를 줄임말로 표현한 ‘산퍼’는 서울교육대학의 에코다. 한국학생산악운동의 효시가 된 76년 전통의 양정산악회의 에코는 ‘와이시(YC)'다. 영문이름 'Yang Chung'의 머리글자를 에코로 쓰고 있다. 간결한 이미지를 주는 에코다. 성균관대학의 에코는 “아야. 킹고”다. 학교의 상징인 은행나무 깅코(gingko)를 발음의 편의상 강한 음 (kingko)으로 바꾸어 쓴다. 한국외국어대학의 에코는 “흡산(HUFSAN)"이다.
이 밖에도 많은 산악회가 에코를 가지고 있으나 잘 쓰지 않고 있다. 몇몇 일반산악회의 에코를 살펴보기로 하자.
코오롱등산학교 동문회의 에코는 ‘코락(Ko Rock)‘이다. 코오롱등산학교의 머리글자 Ko와 Rock(바위)를 합성하여 ’코락‘으로 정했으며, 동문회원들이 ‘고락(苦樂)’을 함께하겠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하이락 산악회의 에코는 회명과 동일한 ‘하이락(High Rock)'이다 높은 바위 즉 거벽을 지향한다는 의미다. 인수봉의 고전적인 루트 ’크로니 길‘개척의 주인공으로 널리 알려진 크로니 산악회의 에코는 ’크로니(Crony)‘ 다. 회명과 에코 모두가 부르기 좋고 느낌도 좋다. 크로니는 ‘다정한 친구’ ‘친한 벗’ ‘옛 동무’라는 뜻이다. 외설악 유선대의 인기리지 ‘그리움 둘’을 개척한 산 바라기 산악회의 에코는 ‘산만 바라 본다’는 의미를 지닌 ‘산바’다. 그리움 둘이란 리지 이름은 악수원정에서 유명을 달리한 두 동료를 그리면서 붙인 이름이다.
외설악 장군봉 남서 벽의 ‘꼬르데 길’ 개척에 일조를 한 꼬르데(Cordee) 산악회의 에코는 ‘산악회명 그대로인 ’꼬르데‘다. 줄을 함께 묶고 등반하는 동료를 의미하는 독일어 자일샤프트(Seilschaft)와 같은 말이다.
60-70년대 선인봉의 표범 길과 요델 버트레스. 설악산의 석주길 등 개척등반의 파이오니였던 요델(Yodel)산악회의 에코는 회명 앞에 하이(Hi)를 붙여 ‘하이 요델(Hi Yodel)' 이다.
이 밖에도 일반인들이 산에 올라 외치는 에코 중에는 “야호”가있다.
우리가 흔히 쓰고 있는 “야호”는 독일어의 “요호(Johoo)”가 변한 것이다. 독일어권에서는 산정에 오르거나, 어려운 고비를 극복한 후 기쁨의 함성으로 외치는 말 이며, 요호 이외에도 “베르그 하일(Bergheil)”도 있다. 그 뜻을 풀이하면 “산 만세”라는 의미다. 또한 영어권에서는 요호(Yo-ho)라고 부르기도 한다.
산 정상에 올라 건너편 산을 향하여 고성을 지르는 것은 인간이 대자연속에서 외로움을 떨치기 위해 메아리를 통해 자기의 존재를 확인하려는 의도도 있는 듯하다. 산정에 올라 고성방가하거나 큰소리로 함성을 지르는 일은 유독 우리나라 사람만이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발성연습을 하러왔는지 착각할 정도로 주변 사람을 의식하지 않은 채 정적을 깨고 고성을 외치는 사람들도 많다. 산은 휴식공간이지 놀이터나 노래방이 아니다. 산에서 고성을 지르는 일은 되도록 자제해야 한다. 특히 여러 팀이 잠들어있는 야영장에서 고성으로 에코를 외치는 것은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이기적인행태다.
오늘날의 우리산은 많은 인파가 북적이다보니 훼손과 오염이 가중하고 등산객들의 고성방가와 차량접근으로 소음공해까지 겹치고 있는 실정이다. 산은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요 본래의 산주인은 등산객이아니라 거기에 살고 있는 뭇 생명들 이다. 그들은 사람보다 먼저 그 산에 깃들어 오래도록 살아온 존재들이다. 우리는 이들에 대한 배려를 잊고 있다.
‘야호’소리는 산에 사는 생명들에게 긴장감과 스트레스를 준다. 산에 사는 동물들 입장에서 보면 ‘야호’ 소리를 지르는 일은 남의 집 방문 앞에 서서 큰소리를 지르는 일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산에서의 고성방가는 특히 조류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새들이 받는 스트레스는 매우 심각해 산란을 포기하거나 부화중인 알을 깨뜨려 버리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또 먹여 살려야 할 새끼들마저 버리고 둥지를 떠나는 일도 있다고 한다.
첫댓글 아! ... 암호같은거네요....
동국대산악부의 d-one은 산행출발과 도착시 대열을 갖추면서 하는 구호이고 산행시 에코는 go-way입니다~ 1959년 1월 적설기 설악산 천불동계곡 초등반 당시 대원들이, 우리가 가는 길이 루트가 된다는 결기와 자부심의 표현으로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휴대폰과 특히 무전기의 보급이...편리해졌지만...추억과 낭만을 빼앗어 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