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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 있는 자와 화 있는 자
(눅 6:20-26) “20.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이르시되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21. 지금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 지금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 22. 인자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 23. 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그들의 조상들이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24. 그러나 화 있을진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 25.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 26.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그들의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복과 화를 선포하시다]
< 바른 길을 추구하십시오 >
분당의 A 치과는 선교사들은 무료로 치료해주고 목회자 가족은 할인해준다는 소문이 난 병원입니다. 그러나 그 소문을 듣고 간 사람들에게는 의료보험 되는 것 외에 불필요한 과다 진료로 폭리를 취합니다. 상담만 해도 과도하게 상담비를 받습니다. 그래도 “선교사를 공짜로 치료해주니까 양심적으로 진료하고 치료비도 적게 받을 거야. 설마 과다 진료비 청구를 했을까.”라고 하면서 돈을 지불하지만 왠지 의심이 들고 찜찜합니다.
할인 소문을 듣고 목회자 가족들이 멀리에서 찾아갈 때는 좋은 이미지를 품고 좋은 생각을 하고 찾아갑니다. 그러나 할인해준 비용도 다른 병원보다 실제로는 더 비쌉니다. 그러면 돈을 내면서 의심합니다. “이상하다. 비양심적인 곳 같다. 그러나 아닐 거야. 선교사들을 공짜로 치료해주는 곳이잖아.”
아무래도 이상해서 치과 근처에 사는 사람에게 묻습니다. “그 치과 평판이 어때요?” 그가 말합니다. “거기요. 비싸게 받기로 유명해요. 소문도 안 좋아요. 제게 미리 말씀하셨다면 거기 가지 말라고 말렸을 거예요.” 결국 ‘선교사 무료, 목회자 할인’이란 광고가 ‘신실하고 헌신적인 신앙의 표시’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그렇게 비즈니스에 이용하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싫으시겠습니까? 그래도 그 치과는 20여 년간 아주 커졌습니다.
반면에 분당에 B 치과는 하나님의 이름을 내세우지 않지만 과잉진료를 하지 않고 최대한 적게 비용이 드는 한도 내에서 최상의 진료를 해주고 서민들의 형편을 이해해줍니다. 잘한다고 선전하지도 않고 다른 치과를 비판하지도 않습니다. 동네에서 좋은 실력 있는 의사라는 소문이 났지만 그 치과는 20여 년간 거의 커지지 않았습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외형적으로 큰 A 치과가 B 치과보다 좋은 줄 알지만 실제로는 반대인 셈입니다.
외형이나 사탕 발린 말로 인해 판단력을 잃지 마십시오. 실력과 능력과 지식과 콘텐츠로 커진 것은 잘못도 아니고 외형주의도 아닙니다. 최고의 기술력을 가지고 큰 기업을 이뤘을 때 크다고 무조건 비판하지 않습니다. 좋은 내용을 가지고 커진 것은 심은 대로 거둔 것입니다. 그러나 다단계처럼 내용도 없이 거짓말이나 사탕 발린 말로 커지거나 고수익을 미끼로 커지거나 청탁으로 커진 것 등에는 미혹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교회 중에 거짓말과 사탕 발린 말로 미혹해 외형적으로 커진 이단 교회도 얼마나 많습니까? 병이 치유되면 자기가 기도해서 치유해준 것처럼 ‘치유의 종’이라고 선전합니다. 또한 어떤 교인은 누구의 안수기도를 받아 치유되었다고 선전합니다. 그러나 치유나 축귀는 사람이 한 일이 아니기에 어떤 경우에도 사람은 높여지지 말고 주님만 높여져야 합니다. 그때 사람을 높이면 이단 교주의 하수인처럼 될 수 있습니다. 그런 선전은 이단 교주의 배만 불리고 많은 영혼을 미혹되게 합니다. 그런 이용도구가 되지 마십시오.
간증도 바르고 지혜롭게 하십시오. 잘못된 간증은 이단 교주의 배만 불리고 이단 교주에게 영혼을 매이게 만듭니다. 제가 남의 간증이나 성공 얘기를 설교 중에 할 때 가급적 익명으로 하는 이유도 그 사람의 지역 평판이나 다른 이면의 사실을 잘 모른 채 한 부분만 보고 과잉 선전을 할 위험성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해서 다른 영혼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제공해 미혹의 통로가 된다면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선교사들을 무료로 치료해준다는 소문을 듣고 온 사람에게 폭리를 취하면 언젠가는 그 실체가 드러나고 역소문이 나면서 교인은 배신감을 느끼고 불신자는 교인을 손가락질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큰 배신감을 느끼실 것입니다. 사람은 다 이익을 추구하지만 A 원장과 같은 트릭은 기독교의 이미지를 먹칠합니다. 반면에 B 원장은 돈보다는 동네의 친절하고 실력 있는 의사선생님으로 남는 것을 기뻐합니다. 성도는 A보다는 B의 모습을 모델로 삼아 성공하고 인물이 되어야 합니다.
어떤 성도는 생각합니다. “그렇게 바른 것만 고집하면 어떻게 경제적인 인물이 되는가? 때로는 편법도 쓰고 약간은 과장도 해야 성공하지.” 그러나 나쁜 길로 성공하기보다 성공하지 못해도 바른 길을 택하십시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성공하려면 더 땀을 흘리고 더 지혜를 발휘하고 더 진실하고 겸손하게 사람을 섬겨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바르게 살면서도 인물이 되게 하심으로 기독교의 역설의 축복이 진짜 축복임을 증명해주실 것입니다.
< 복 있는 자 >
외형주의에 사람은 속아도 하나님은 속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진리는 내면과 미래를 잘 보지 못하는 사람의 눈에는 역설의 진리처럼 보입니다. 하나님이 생각하는 복과 화의 개념은 사람의 생각과는 전혀 다릅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복 있는 자로 여기실까요?
1. 너희 가난한 자
본문 20절 말씀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이르시되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이 말씀은 ‘가난한 자’가 무조건 복이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무책임과 게으름에 의한 가난은 복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시고 ‘너희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을 때 ‘너희 가난한 자’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가난한 자’를 뜻합니다. 즉 예수님의 뜻과 삶과 일을 추구해 희생함으로 가난해진 사람을 뜻합니다.
마태복음의 산상수훈에 나오는 병행구절에 의하면 이 구절의 ‘가난한 자’는 ‘심령이 가난한 자’를 뜻합니다. 가끔 보면 물질이 없어도 심령이 교만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복이 없습니다. 반대로 물질이 있어도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부유하면서도 겸손한 자는 그 수가 적기에 더 복된 자입니다. 하나님의 일과 뜻을 위해 가난해지는 것도 복이고 더 나아가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는 것도 복입니다.
또한 “너희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는 말씀은 가난한 자에게 위로와 소망을 주려고 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가난 때문에 절망하지 않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고 희망을 가지고 가난을 탈피하려고 힘써서 그 뜻을 이루면 결국 가난했던 것이 복이 됩니다. 최종적으로 가난한 자가 어떤 복을 받습니까? 성공하거나 부자가 되는 복을 받기보다 하나님의 나라가 그의 것이 됩니다. 즉 천국 평안을 얻고 최종적으로는 천국의 주인공이 될 것입니다.
2. 주린 자와 우는 자
본문 21절 말씀을 보십시오. “지금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 지금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 마태복음에 있는 병행구절을 보면 ‘지금 주린 자’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도 지금의 주린 현실보다는 영적인 사실을 말함으로 주린 자에게 힘과 위로와 소망을 주려는 말씀입니다. 그런 역설의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면 그런 역설의 축복이 주어질 것입니다.
또한 우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한 말씀도 우는 자에게 천국 소망을 주시려는 말씀입니다. 특히 회개의 눈물을 통해 울면 천국 위로도 넘치게 되고 그때부터 놀라운 반전의 역사가 시작되면서 결국 웃게 됩니다. 아모스 8장 11절 말씀을 보면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것이 진짜 주리고 목마른 것”이라고 했습니다. 의에 주린 배를 채워주고 우는 자를 웃게 하려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말씀입니다.
3. 십자가를 지는 자
본문 22-23절 말씀을 보십시오. “인자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 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그들의 조상들이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이 구절에서 핵심 말씀은 ‘인자로 말미암아’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스스로 ‘사람의 아들’인 ‘인자’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사람의 아들로 오신 자’란 암시가 담긴 호칭입니다. 결국 ‘인자로 말미암아’란 말씀은 ‘예수님으로 인해’라는 말씀입니다.
자기 잘못으로 미움 받고 욕먹고 악하다는 말을 듣고 버림받는 것은 저주지만 예수님으로 인해 미움 받고 욕먹고 악하다는 말을 듣고 버림받는 것은 가장 큰 축복입니다. 성도란 예수님을 위해 받는 고난의 십자가를 기쁘게 감수하는 사람입니다. 십자가를 지는 복이 얼마나 큰지 그런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면 기뻐하고 뛰놀라고 했습니다. 십자가는 십자가로 끝나지 않고 부활의 역사를 낳고 하늘의 큰 상급을 예비합니다.
< 화 있는 자 >
누가 화 있는 자일까요? 간단히 말하면 예수님은 복 있는 자와 180도 반대되는 사람을 화 있는 자라고 했습니다.
1. 너희 부요한 자
본문 24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러나 화 있을진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 이 말씀에서 언급된 ‘너희 부요한 자’는 단순히 부자를 의미하지 않고 하나님과 복음과 말씀을 외면하는 불의한 부자를 뜻합니다. 복음을 모르면 부요한 것도 가난한 것입니다. 또한 지위, 권력, 지식, 지혜, 학력 등이 있어도 마음이 높아지고 예배와 말씀을 외면하면 영혼은 빈털터리가 되고 언젠가는 반드시 추락합니다.
왜 부요한 자에게 화가 있습니까? 이 땅에서 위로를 이미 받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이란 미래지향적인 것이고 성도의 삶은 현재보다 미래가 더 나아지는 삶이란 암시입니다. 못살다가 잘살게 되는 것이 훨씬 행복지수를 높여줍니다. 결혼도 많이 가지고 시작하는 것보다 작게 가지고 시작하는 것이 낫습니다. 그래서 현명한 부모는 많은 재산을 물려주지 않습니다. 삶의 의미와 보람과 성취감을 미리 빼앗거나 약화시키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성도의 삶은 미래가 더 나아지는 것이 기본 속성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실패와 후퇴가 있으면 전혀 안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계속 잘살고 성공하기만 바라지 말고 때로는 인생에서 실패도 있고 후퇴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십시오. 중요한 것은 실패와 후퇴 중에도 믿음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조만간 전진의 때가 찾아올 것입니다.
2. 배부른 자와 웃는 자
본문 25절 말씀을 보십시오.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 이 구절에서 ‘배부른 자’는 하나님이 없이 영적인 진리도 외면하고 육신적으로만 배부른 사람을 뜻합니다. 그런 사람은 조만간 헐벗게 됩니다. 또한 ‘웃는 자’는 하나님이 없이 웃고 교만하게 남을 비웃는 사람을 뜻합니다. 그런 사람도 조만간 애통하는 일이 찾아오게 됩니다.
고린도후서 6장 9-10절에는 성경에서 나오는 가장 역설적인 말씀 중의 하나인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없는 것이 있는 것일 때도 많지만 반대로 있는 것이 없는 것일 때도 많습니다. 그런 역설의 진리를 기억하고 늘 겸손함을 잃지 않도록 힘쓰십시오.
3. 칭찬받는 거짓 선지자
본문 26절 말씀을 보십시오.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그들의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이 말씀은 칭찬받는 자가 되면 화가 있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칭찬받은 후에 마음이 높아지면 화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어떤 사람은 칭찬을 잘하는데 인간관계도 오래 가지 못하고 사람들의 신뢰도 잘 받지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의 칭찬이 순수하지 않고 계산적이라고 여기기에 분별력이 있는 사람이 멀리하는 것입니다.
진실한 칭찬과 사탕 발린 말은 다른 것이고 참된 믿음과 영혼을 미혹하려고 내세우는 믿음은 다른 것입니다. 그 차이를 잘 구분해야 자기 영혼을 지킬 수 있습니다. 거짓 선지자는 믿음 얘기를 많이 하지만 그가 말하는 믿음은 영혼을 미혹하려고 내세운 믿음입니다. 칭찬한다면서 불의한 일이나 불의한 사람까지 칭찬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진실한 칭찬은 기뻐하고 수용하되 계산된 칭찬은 잘 구분해서 “나는 그런 칭찬에 마음이 높아지지 않을 것이다.”라고 다짐하면서 자신을 지키십시오.
누가 “목사님! 기도해주셔서 감사해요. 병이 나았어요.”라고 하면 진짜 목회자는 즉시 “제가 낫게 하지 않았어요.”라고 선포하고 기도합니다. “하나님! 그 일을 제 공로로 여기거나 그 일로 제 마음이 높아지지 않게 하소서.” 반대로 거짓 선지자는 자기가 진짜 치유의 종이 된 것처럼 자기가 안수하면 낫는다고 은근히 과시하고 심지어는 선전까지 합니다. 거짓 선지자의 그런 모습은 자기도 죽고 남도 죽이는 길입니다.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다.”는 말씀은 억지로 욕을 많이 먹으라는 말이나 욕을 많이 먹어도 좋다는 말이 아닙니다. 최선을 다해 칭찬 받는 삶을 사십시오. 그래도 누군가 비판하면 그때는 “모든 사람이 칭찬해서 나를 화가 있는 거짓 선지자가 되지 않도록 하는 악역을 그가 맡았구나.”라고 생각하고 넉넉하게 그 상황을 상처가 아닌 감사로 받아들이십시오. 또한 그 비판을 계기로 자기를 성찰한 후 잘못된 길로 가는 것 같으면 그 길을 수정하고 바른 길로 간다는 확신이 들면 그냥 밀고 나아가십시오.
< 사람을 미화하지 마십시오 >
이 세상에 비판받지 않을 완벽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사람을 너무 비판해도 안 되지만 너무 미화해도 안 됩니다. 미화는 ‘미래의 화’를 부릅니다. 영웅적인 사람도 다 약한 존재이고 사소한 실수로 얼마든지 순식간에 망가질 수 있습니다. 영웅 영화의 주인공들은 불사신 같습니다. 사지에서 탈출하고 극한 상황을 극복하고 이 건물 저 건물 다니면서 사람을 구하는 액션을 보이지만 그것은 거짓 현실입니다. 사람을 영웅으로 너무 미화시키지 마십시오.
며칠 전에 영웅 영화의 주인공 역할을 많이 하는 톰 크루즈가 영화 촬영 때 실제 영화에서는 보이지 않는 튼튼한 구조줄을 등에 매고 건물에서 뛰어내리는 연기를 하다가 다리를 삐어 절뚝거리는 장면이 유튜브에 나왔습니다. 그것이 사람의 실상입니다. 지나치게 미화된 사람에게 미혹되면 인생의 길과 방향과 참된 자유를 잃기 쉽습니다. 정말 존경스러운 사람은 적절하게 존경심을 표하십시오. 그러나 지나친 미화는 삼가십시오.
대개 교주들은 스스로를 미화합니다. 그런 사람에게 자기 영혼을 맡기면 죽는 길로 가는 것입니다. 스스로 미화하지 않아도 남이 미화하는 것을 은근히 즐기는 것도 거짓 선지자의 속성입니다. 남이 미화하면 즉시 자신을 낮춰야지 진짜 높은 줄 알면 언젠가는 무섭게 추락합니다. 왕이나 대통령이 정치를 잘해서 백성이 높여주면 더 낮아짐으로 왕좌에서 내려와 백성들에게 더 다가가야 합니다. 사람들이 높여준다고 마음이 높아지면 안 됩니다. 천국에서의 특별선택을 보장해주고 치유를 준다는 교주의 말에 넘어가지 마십시오.
예수님이 참된 치유자라는 말씀에서 끝내고, 믿으면 치유 가능성이 높아지고 하나님이 합력하여 선을 이뤄주신다는 말씀에서 끝내십시오. 그것이 지나쳐서 사람에 대해 ‘능력의 종, 치유의 종’이라는 말을 할 때 그 말을 거부하지 않거나 오히려 선전하는 교주는 즉시 떠나십시오. 그런 사람에게 가는 것은 자기 영혼을 사탄에게 파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 사람이 치유의 종이라면 병 완치율을 높이는 현대 의사는 더 큰 치유의 종이고 요즘의 완치율 확대에 큰 도움이 된다는 자연요법이나 심리치료는 참된 믿음보다 더 큰 치유수단입니까? 아닙니다.
암에 걸렸을 때 평소처럼 행동하고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면 암 치료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폐암 4기로 시한부 인생 판정을 받았다가 최근에 완치된 한 사람이 말했습니다. “긍정적인 마음을 갖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잊고 산 것이 병의 극복에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그것이 심리치료입니다. 심리 치료도 치유에 도움이 되는데 참된 믿음은 얼마나 큰 도움이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선한 섭리를 믿으면 죽음의 공포를 극복할 수 있고 남을 탓하기보다 남에 대해 감사하면서 평안을 찾으면 암 극복 능력도 현저하게 커집니다.
매년 국내 암 환자는 20만 명 이상 발생합니다. 한번이라도 암을 걸렸던 사람도 2015년까지 146만여 명입니다. 사실상 완치를 의미하는 5년 생존율이 계속 높아지면서 최근에 70.3%.까지 되었습니다. 해마다 20만 명이 암에 걸려도 14만 명이 암을 완치합니다. 그 완치된 사람들이 다 간증합니까? 대부분 조용히 있습니다. 최근에 암 완치율 70%가 넘은 사실은 자기만 놀라운 치유의 은혜를 받은 것처럼 과장 치유 간증을 하지 말고 치유를 선전하는 이단 교주를 너무 높이지 말라는 교훈을 줍니다.
완치된 수많은 사람들이 조용히 있는데 교인이 “하나님이 제 기도를 들어주셨어요. 누구의 안수기도로 치유되었어요.”라고 하면서 자기 기도나 특정한 사람의 안수가 능력 있는 것처럼 선전하면 나머지 완치된 사람은 어떻게 치유된 것입니까? 치유 간증을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치유 간증도 겸손하게 해야지 자랑하듯이 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간증이나 은사가 사람을 높이는 것으로 귀결되면 마귀의 미혹에 넘어가기 쉽습니다. 치유 받고 마귀의 미혹에 넘어가려면 차라리 치유 받지 않고 천국 가는 것이 낫습니다.
간증은 간증하는 사람이 극적으로 하려는 심리 때문에 과장될 위험성이 많습니다. 약이 조금 효과만 보면 자기 말의 설득력을 높이려고 약효를 과장 선전하는 경우도 얼마나 많습니까? 왜 그렇게 과장 선전하는 심리가 생깁니까? 자기가 남이 모르는 어떤 길을 발견한 것처럼 하는 극적인 효과를 노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종교적인 치유와 관련해서는 그런 심리가 더 심해질 수 있기에 많은 치유 간증에 그런 과장이 섞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야 자기가 특별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존재처럼 우러러보게 할 수 있고 자기 믿음이 치유의 믿음인 것처럼 과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간증초청을 많이 받으려는 의도를 가지면 간증에 극적인 과장을 섞는 경우가 더 많아집니다. 그렇게 해서 치유를 자랑하고 입으로는 하나님께 영광 돌린다면서 자기가 영광을 받는 간증도 얼마나 많습니까?
그렇게 말이 앞선 사람을 보면 대부분 결말이 나빠지고 다시 병들어 죽는 경우가 조용히 겸손하게 있는 사람보다 더 많습니다. 그런 경우는 이단 교주가 최대한 감춥니다. 좋은 것은 지나치게 뻥튀기하고 나쁜 것은 최대한 감춰서 사람을 미혹하는 것이 이단 교주의 특징입니다. 그처럼 과장 간증은 사람들을 오도하고 거짓 치유로 사람들을 미혹하는 이단 교주의 이용도구가 되면서 하나님의 진노를 부르는 교만한 거짓입니다. 신앙생활을 할 때 이단 교주에게 미혹되지도 말고 미혹의 도구로 이용되지도 마십시오.
누군가의 자랑하는 간증을 듣고 “나도 기도하자. 나도 안수받자.”라고 할 때부터 하나님은 사라지고 사람 및 사람의 행위에 집착하게 됩니다. 기도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병 앞에서 인간적인 것을 내려놓지 않고 오히려 붙잡으려는 헛된 욕심을 부리지 말라는 말입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에 맡기고 기도하면서 사랑하고 용서하는 마음을 가지고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을 기쁘게 하겠다는 마음을 가질 때 놀라운 치유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믿음은 인간적인 욕심을 버리는 것도 포함하는 것입니다. 그때 영혼과 육신이 최상의 상태로 회복됩니다.
치유를 준다는 집회에 가지 말고 “내가 안수하면 치유가 일어나고 귀신이 쫓겨난다.”고 선전하는 사람에게도 가지 마십시오. 그것 자체가 하나님이 아닌 사람이 높아진 모습입니다. 자기만의 특별한 영웅적인 믿음의 능력을 가진 사람이 없습니다. 기도할 때도 욕심과 영적인 허영심을 버리고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힘써 살면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미움과 남 탓 없이 희생적인 삶을 사는 것이 진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참된 영웅적인 믿음입니다. 그런 믿음을 가지고 참된 치유와 참된 복을 얻어 누리는 천국 심령들이 되십시오. -주일설교(17.08.20)
ⓒ 이한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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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지기는 지병으로 생활고를 겪고 있습니다
공과금을 내야합니다 임대료-관리비-통신료-건강보험등...
시장을 지날때마다 먹을것도 못사고 지나는 심정이 오죽합니까?
오랜병고에 모든사람이 외면하고 나이들고 오직 주님이 주셔야
하루를 살아가는 신세입니다 도와주셔야 살고 카페도 운영합니다
오늘은 한분이라도 주님께서 감동주셔서 도와주시길 기도합니다
치료약값 30만원 공과금30만원 먹거리등을 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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