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국어생활 2002년 봄호는 '띄어쓰기'에 대한 내용을 특집으로 다루고 있으며, 국어를 알고 싶다에서는 이 내용을 연속으로 발행할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 바랍니다.
국립국어연구원 홈페이지(www.korean.go.kr)를 방문하시면 새국어생활 내용을 모두 볼 수 있습니다. <발행자 주>
이익섭 /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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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맞춤법과 띄어쓰기'라 한다.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보면 그 속에 띄어쓰기 항이 분명히 들어 있다. 즉 띄어쓰기는 맞춤법의 일부다. 그럼에도 '맞춤법과 띄어쓰기'라고 하여 마치 두 가지가 대립적인 관계에 있는 듯이 말하곤 하는 것이다.
이는 띄어쓰기가 유난히 우리를 괴롭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리 시달리고 저리 시달리면서 자연히 따로 떼어 얘기하지 않으면 안 될 만큼 띄어쓰기에 대해서는 할 얘기가 많아진 것이다. "각 단어는 띄어 쓰되 조사는 그 앞 말에 붙여 쓴다"라는 띄어쓰기 규정은 극히 간명하다. 이것만 보면 띄어쓰기에서 우리가 고생을 겪을 일은 없을 듯이 보인다. 그러나 가령 원고지 10매쯤의 글에서 맞춤법 교정을 본다면 띄어쓰기에서 틀린 것이 나머지 맞춤법 전부에서 틀린 것보다 더 많은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분명 띄어쓰기는 한 골칫거리가 아닐 수 없다.
물론 띄어쓰기의 어려움이 순전히 개인적인 문제일 수도 있을 것이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것을 틀리는 경우가 그것인데 이것은 그 개인의 문제이므로 사실 우리로서는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다. 공부를 더 하여라, 국! 어사전을 부지런히 찾아보는 습관을 길러라 하는 얘기를 해 주는 것이 고작일 것이다. 문제는 공부를 제대로 하는 대다수에게도 띄어쓰기가 어렵다는 데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띄어쓰기를 이처럼 어렵게 만들어 놓았을까? 이 어려움에서 헤어나는 길은 없을까? 이번의 특집은 이에 대한 해답을 모색해 보기 위한 것일 터인데 과연 어떤 길이 있을까? 늘 제자리를 맴도는 답답함이 미리 발걸음을 무겁게 하지만 어디로든 길을 떠나 보는 게 가만히 앉아 있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이 기획은 『표준국어대사전』의 문제점을 자성(自省)해 보자는 뜻도 담긴 것이라 생각되어 특히 그쪽으로 초점을 맞추어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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띄어쓰기의 어려움에는 근원적인 문제가 있다. "각 단어는 띄어 쓰되"라고 할 때의 '단어'가 그리 단순한 개념이 아니라는 것이 그것이다. 우리는 '새언니', '이슬비'를 한 단어라 하여 붙여 쓴다. 그런데 '새 옷'이나 '오월 비'는 두 단어라고 하여 띄어 쓴다. 당연해 보이고 그 구별 또한 쉬워 보이지만 그것이 그리 단순하지 않다.
가령 '여름방학'은 한 단어인가, 아니면 두 단어여서 '여름 방학'! 으로 띄어 써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받았다고 하자. 자신있게 대답하기가 어렵다. 다음 예를 더 보자. 이들이 한 단어여서 붙여 쓸 것들인지 아니면 지금 예시(例示)된 모양대로 띄어 써야 할 것인지를 각자 풀어 보기로 하자.
(1) ㄱ. 출판 문화
ㄴ. 문화 유산
ㄷ. 문학 청년
ㄹ. 문학 소녀
ㅁ. 문학 잡지
ㅂ. 문학 예술
ㅅ. 장편 소설
ㅇ. 문예 사조
ㅈ. 공예 미술
ㅊ. 표준 검사
ㅋ. 표준 집단
ㅌ. 표준 물질
ㅍ. 표준 광물
여러분은 어떤 결론을 얻었는가? 모두 붙일 것들만 모아 놓은 것 같은가 아니면 그 반대인 것 같은가? 지금 '같은가'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데 사실 누구도 자신있게 대답하기 어려울 것이다. 일부는 붙여 써야 할 것 '같고' 일부는 띄어 써야 할 것 '같기도' 할 것이다. 실제로 어떤 국어사전에는 '여름방학'이 한 단어(명사)로 올라 있고(1) 어떤 국어사전에서는 비록 표제어로 올라 있는 경우에도 구(句)로 올라 있다.(2) 또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보면 이 사전 안에서도 앞의 (1ㄱ)에서 (1ㅍ)까지의 예 중 일부는 다음의 ㄱ에서처럼 붙여 쓰는 것으로 되어 있고 일부는! 다음의 ㄴ에서처럼 띄어 쓰는 것으로 되어 있다.
(2) ㄱ. 출판문화, 문화유산, 문학청년, 문학소녀, 문학잡지, 문학예술
ㄴ. 장편 소설, 문예 사조, 공예 미술
(3) ㄱ. 표준검사, 표준물질
ㄴ. 표준 집단, 표준 광물
그런데 그 기준이 무엇인지 쉽게 잡히지 않는다. 가령 '문학잡지'나 '문학청년'이 붙는다면 '문예사조'나 '장편소설'은 말할 것도 없이 붙어야 할 것 같은데 그렇게 되어 있지 않다. 또 화학 분야의 '표준물질'은 붙여 쓰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광업 분야의 '표준광물'은 띄어 쓰는 것으로 되어 있다. 앞의 테스트에서 만점을 받는 사람은 아마 하나도 없을지 모른다.
이는 근원적으로 단어의 속성과 관계된다. 어떻게 되면 한 단어며 어떤 경우에는 두 단어인가? 도대체 어디서 어디까지가 단어인가? 이 물음에 대해 아직까지 어떤 뛰고 나는 언어학 이론도 시원한 대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띄어쓰기의 어려움은 무엇보다 이 근원적인 난관에서 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이것은 전문가가 어떻게든 해결해 주면 상당 부분 풀릴 문제이기는 하다. 우민(愚民)이 스스로 나서서 고민할 문제는 아! 닌 것이다. 그저 국어사전을 찾아보고 '새언니'가 한 단어로 올라 있으면 붙여 쓰고, 없으면 '새 언니'로 띄어 쓰면 된다. 요즈음은 컴퓨터로 찍다 보면 빨간 밑줄로 무식을 일깨워 주기 때문에 굳이 국어사전까지 가지 않고도 대부분 해결되기도 한다.(그런데 지금 내 컴퓨터에서는 '새언니'로 붙여 쓰니 계속 빨간 줄이 떠오른다. 무식한 컴퓨터 놈!)
그런데 문제는 이 어려움이 바로 전문가에게 주어진 어려움이라는 점이다. 앞의 '여름방학'에서 보듯이 전문가들이 바로 이 문제에서 헤매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민들의 걱정은 가라앉을 수가 없다. 국어사전은 믿을 만한가? 만일 우리가 기대야 할 국어사전이 이 문제를 책임져 주지 않을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한 사전에서는 '여름방학'을 한 단어로 올려놓았는데 다른 사전
에서는 그러지 않았다고 하면 자포자기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마침 국가의 이름으로 낸 최초의 국어사전인 『표준국어대사전』이, '표준'이라는 이름까지 달고 나와 최종적으로 판정을 내려 줄 수 있도록 되어 사정은 한결 호전(好轉)되었다. 그런데 『표준국어대사전』이 과연 믿음직한 최후의 보루인가? 『표준? 뭬箏六瑛禍뼁【??'여름방학'을 띄어 쓰는 것이 원칙이되 붙여 쓸 수 있도록 해 놓았는데 이제는 그것만 믿고 안심하고 따라가면 되는가? 마음 놓고 '문학잡지'는 붙여 쓰고 '문예 사조'는 띄어쓰기만 하면 되는 것일까? 『표준국어대사전』의 지시니까 마음 놓고 '출판문화'는 붙여 쓰고 '장편 소설'은 띄어 쓰면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