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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와 정체성
철학·심리학·사회이론·사진미학·동시대예술론의 통합적 이해
[1] 먼저 바로잡아야 할 개념적 문제
흔히 자아를 “세계를 경험하는 주체”, 정체성을 “그 주체가 자신을 설명한 내용”이라고 구분한다. 입문적 설명으로는 유용하지만, 학술적으로는 몇 가지 보완이 필요하다.
첫째, 자아와 정체성은 완전히 분리된 두 대상이 아니다. 자아가 자신을 이해하고 타인과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정체성이 형성되고, 형성된 정체성은 다시 자아가 느끼고 판단하며 행동하는 방식에 영향을 준다.
둘째, 자아가 언제나 변하지 않는 중심이라는 생각은 학계에서 합의된 사실이 아니다. 데카르트적 전통은 자아를 생각과 경험의 중심으로 보지만, 흄·니체·프로이트·미드·푸코·버틀러 등은 통일되고 투명한 자아라는 생각을 비판하였다.
셋째, 정체성을 단순한 자기 설명으로만 볼 수 없다. 정체성에는 내가 나를 어떻게 이해하는가뿐 아니라 신체의 지속성, 기억, 사회적 역할, 타인의 인정, 국가와 제도의 분류, 성별·인종·계층·직업과 같은 사회적 위치가 포함된다.
넷째, “정체성은 계속 만들어진다”는 말도 “마음먹는 대로 바꿀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 사람은 자신의 정체성을 해석하고 변화시킬 수 있지만, 신체·과거·사회적 조건·경제적 위치·타인의 시선과 제도적 규범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다.
따라서 자아와 정체성은 다음처럼 구분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
자아는 자신을 ‘나’로 경험하고 행동하는 주체성과 자기관계의 구조이며, 정체성은 그 자아가 시간·신체·기억·관계·사회적 위치 속에서 누구로 지속되고 구별되며 인정되는가를 나타내는 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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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자아’라는 말에는 여러 의미가 들어 있다
‘자아’는 영어의 self와 ego를 모두 번역하는 경우가 많지만, 학문적으로는 서로 다른 뜻을 가진다.
1. 경험적 자아
경험적 자아는 “지금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사람이 바로 나다”라는 일인칭적 감각이다.
아픔을 느낄 때 우리는 먼저 아픔을 관찰한 다음 그것이 누구의 것인지 판단하지 않는다. 아픔은 처음부터 ‘나의 아픔’으로 경험된다. 현상학에서는 이러한 상태를 전반성적 자기의식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나는 지금 나를 의식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이전부터 모든 경험에 암묵적으로 들어 있는 자기감각이다. 다만 이것이 독립된 ‘자아라는 물체’가 마음속에 존재한다는 뜻은 아니다.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Self-Consciousness」; Husserl; Sartre)
2. 반성적 자아
사람은 경험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을 대상으로 삼아 생각할 수 있다.
“나는 왜 화가 났는가.”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나는 어떤 사람인가.”
이때 경험의 주체였던 나는 동시에 관찰과 해석의 대상이 된다. 즉 자아는 보는 나인 동시에 보이는 나가 된다.
3. 심리학적 자기개념
심리학에서 자기개념은 자신에 관해 가지고 있는 믿음과 평가를 뜻한다. “나는 내향적이다”, “나는 사진가이다”, “나는 책임감이 강하다”와 같은 자기 판단이 여기에 해당한다.
자기개념은 정체성의 중요한 일부이지만 둘은 완전히 같지 않다. 자기개념이 현재 자신에 관한 속성들의 집합이라면, 정체성은 그러한 속성들이 시간·관계·사회적 역할 속에서 어떻게 하나의 ‘나’로 연결되는가까지 포함한다.
4. 정신분석학의 자아
프로이트의 ego는 단순히 ‘나 자신’이라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욕동, 현실의 요구, 도덕적 규범 사이를 조정하는 정신 기능을 가리킨다. 따라서 프로이트의 자아와 철학에서 말하는 경험 주체로서의 자아를 그대로 동일시하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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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정체성이란 무엇인가
정체성(identity)은 라틴어 idem, 즉 ‘같음’에서 유래한다. 그러나 인간의 정체성은 단순히 변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정체성에는 최소한 세 가지 질문이 들어 있다.
① 지금의 나와 과거의 나는 어떻게 같은 사람인가.
② 나는 다른 사람과 무엇으로 구별되는가.
③ 나는 나 자신과 타인과 사회에 의해 누구로 이해되고 인정되는가.
따라서 정체성은 시간적 동일성, 개별적 차이, 자기이해, 사회적 인정이 결합된 개념이다.
1. 개인적 정체성
개인적 정체성은 기억, 성격, 욕망, 가치관, 신념, 취향, 삶의 계획처럼 자신을 다른 사람과 구별해 주는 특성들의 구성이다.
2. 신체적 정체성
인간은 몸을 가진 존재이다. 얼굴, 나이, 성별, 질병, 장애, 감각과 움직임은 단순히 정체성을 표현하는 외관이 아니라 세계를 경험하는 조건이다. 그러나 신체가 정체성의 전부인 것도 아니다. 외모가 크게 달라져도 한 사람의 법적·도덕적·관계적 동일성이 지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
3. 사회적 정체성
가족 구성원, 의사, 사진가, 남성, 한국인, 특정 세대와 계층의 구성원이라는 위치는 사회적 정체성을 형성한다. 이러한 범주는 개인이 자유롭게 선택한 것만이 아니라 가족, 문화, 역사, 교육, 노동, 제도에 의해 부여되는 것도 포함한다.
4. 관계적 정체성
정체성은 고립된 내면에서 완성되지 않는다. 부모와 자녀, 배우자, 친구, 동료처럼 누구와 관계하는가에 따라 서로 다른 모습의 자아가 나타난다.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는 한 사람에게 자신을 알아보는 사회적 집단만큼 여러 사회적 자아가 있을 수 있다고 보았다. 조지 허버트 미드(George Herbert Mead)는 타인의 태도와 공동체의 규범을 내면화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자아가 형성된다고 설명하였다.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George Herbert Mead」; James, The Principles of Psychology, 1890; Mead, Mind, Self, and Society, 1934)
5. 집단적·문화적 정체성
민족, 국가, 지역, 세대, 성별, 종교, 계급처럼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도 정체성의 일부이다. 그러나 집단적 정체성을 그 집단의 모든 사람이 공유하는 고정된 본질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스튜어트 홀(Stuart Hall)은 문화적 정체성을 이미 완성되어 표현을 기다리는 본질이 아니라, 역사와 권력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생산되며 재현을 통해 구성되는 것으로 보았다. (Stuart Hall, 「Cultural Identity and Diaspora」,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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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자아와 정체성의 정확한 차이
자아는 주로 “누가 경험하고 생각하며 행동하는가”라는 질문과 관계된다. 정체성은 “그 사람은 누구이며, 어떻게 같은 사람으로 지속되고 사회적으로 구별되는가”라는 질문과 관계된다.
예를 들어 내가 사진을 찍으며 장면을 보고, 감정을 느끼고, 촬영 여부를 판단한다면 그때의 ‘나’는 경험하고 행동하는 자아이다.
그런 내가 “나는 의사이자 사진가이며, 상실과 중년의 변화를 탐구하는 사람이다”라고 자신을 이해한다면 이것은 정체성이다.
그러나 두 개념은 다음과 같이 순환적으로 연결된다.
자아가 경험을 해석하여 정체성을 구성하고, 구성된 정체성이 다시 자아의 지각·감정·선택·행동을 조직한다.
예컨대 자신을 ‘의사’라고 이해하는 사람은 환자의 고통을 바라보는 방식과 책임의식을 그 정체성에 맞추어 형성한다. 자신을 ‘사진가’라고 이해하는 사람은 일상의 장면을 단순한 사물이 아니라 촬영하고 해석할 수 있는 이미지로 바라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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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정체성의 지속성은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
1. 로크와 기억의 연속성
존 로크(John Locke)는 사람의 동일성을 영혼이나 물질의 동일성보다 의식의 연속성과 연결하였다. 자신이 과거에 한 행동을 현재의 자신이 의식할 수 있는 범위에서 동일한 인격으로 간주할 수 있다는 것이다.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Locke on Personal Identity」; Locke, An Essa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 II.27)
그러나 “기억이 곧 정체성”이라고 단정하면 문제가 생긴다.
① 사람은 많은 일을 잊어도 같은 사람으로 살아간다.
② 기억은 왜곡되거나 타인의 이야기와 사진에 의해 수정될 수 있다.
③ 어떤 경험을 기억하려면 이미 그것을 경험한 사람이 나였다는 전제가 필요하므로 논리가 순환할 수 있다.
④ 치매나 기억상실이 생겼다고 해서 그 사람의 법적·신체적·관계적 정체성이 즉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기억은 정체성의 중요한 기반이지만 유일하거나 충분한 조건은 아니다. 개인의 동일성에는 신체적 지속, 심리적 연속성, 관계, 책임, 법적 지위가 함께 작용한다. 철학에서도 개인적 동일성의 기준에 관해 심리적 연속성론·신체설·동물주의 등 서로 다른 견해가 경쟁하고 있다.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Personal Identity」)
2. 리쾨르와 서사적 정체성
폴 리쾨르(Paul Ricœur)는 정체성을 두 차원으로 구분하였다.
① idem은 시간이 흘러도 유지되는 동일한 성질을 뜻한다.
② ipse는 성질이 변하더라도 약속하고 책임지는 ‘누구’로서 지속되는 자기성을 뜻한다.
사람은 어린 시절과 현재의 모습이 달라졌어도 자신의 과거를 받아들이고 행동에 책임을 지며 같은 삶의 주체로 살아간다. 리쾨르는 우리가 사건·행동·우연·상실을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하면서 “나는 누구인가”에 답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자기 이야기는 삶이 계속되는 동안 수정될 수 있으며, 타인의 이야기와도 얽혀 있다.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Paul Ricoeur」; Ricœur, Oneself as Another, 1990)
따라서 서사적 정체성은 과거를 그대로 복사한 기록이 아니다. 현재의 위치에서 과거를 선택하고 연결하고 해석한 구성이다. 그렇다고 완전한 허구도 아니다. 실제로 일어난 사건과 신체적 흔적, 타인의 기억과 기록에 의해 제약받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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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타인의 시선과 인정은 왜 중요한가
헤겔(G. W. F. Hegel)은 자기의식이 혼자서 완성되지 않고 다른 자기의식과의 상호인정을 통해 성립한다고 보았다. 나는 다른 사람을 하나의 주체로 인정하고, 동시에 그에게서 주체로 인정받을 때 사회적인 ‘나’가 된다.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Recognition」; 「Hegel」)
따라서 정체성에는 다음 세 층위가 함께 존재한다.
① 내가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② 타인은 나를 누구라고 보는가.
③ 사회와 제도는 나를 어떤 범주에 배치하는가.
이 세 가지는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 나는 자신을 사진가라고 생각하지만 사회는 나를 의사로 먼저 볼 수 있다. 사진 속 인물은 자신을 한 개인으로 경험하지만 언론은 그를 피해자·노인·환자·이주민 같은 범주로만 보여줄 수 있다.
이 불일치에서 정체성의 갈등이 발생한다. 그러나 갈등은 단순한 심리 문제가 아니다. 누가 사람의 이름을 부르고, 어떤 사진을 선택하며, 어떤 설명을 붙이고, 누구의 삶을 사회적으로 보이게 할 수 있는가라는 인정과 권력의 문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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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정체성은 표현되는가, 만들어지는가
전통적인 관점에서는 내면에 이미 존재하는 정체성이 말과 행동과 이미지로 외부에 표현된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현대 사회이론은 표현이 정체성을 단순히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정체성을 형성한다고 본다.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의 수행성 이론에 따르면, 특히 젠더 정체성은 내면의 고정된 본질이 밖으로 드러난 결과라기보다 몸짓·복장·언어·행동·규범의 반복을 통해 안정된 정체성처럼 나타난다. 여기서 ‘수행’은 배우가 자유롭게 역할을 고르는 일회적 연기가 아니다. 사회적 규범이 반복되는 가운데 주체가 형성되는 과정이며, 반복에는 규범을 조금씩 어긋나게 하고 변화시킬 가능성도 있다. (Judith Butler, 「Performative Acts and Gender Constitution」, 1988; Gender Trouble, 1990)
따라서 “정체성은 구성된다”는 말은 정체성이 가짜라는 뜻이 아니다. 언어·행동·관계·이미지를 통해 구성된다는 사실 자체가 인간 정체성이 존재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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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사진은 정체성을 발견하는가, 만드는가
사진은 정체성을 단순히 발견하지도 않고, 마음대로 만들어 내기만 하지도 않는다. 사진에는 서로 긴장하는 네 층위가 존재한다.
1. 흔적의 층위
카메라로 촬영된 사진은 촬영 순간 피사체가 카메라 앞에 있었다는 물리적·인과적 관계를 가진다. 사진은 얼굴, 신체, 옷, 장소의 실제 모습을 일정 부분 남긴다.
그러나 “그 사람이 거기에 있었다”는 사실과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안다”는 판단은 다르다. 얼굴의 흔적이 인격·욕망·기억·삶 전체를 증명하지는 못한다.
2. 선택과 연출의 층위
사진가는 거리, 렌즈, 프레임, 빛, 촬영 순간을 선택한다. 피사체도 표정과 자세, 옷차림을 조절한다. 이후 사진은 선택·보정·배열·캡션의 과정을 거친다.
따라서 초상사진은 사람을 투명하게 보여주는 창이 아니라, 촬영자와 피사체가 특정한 조건 속에서 함께 만든 재현이다.
3. 맥락과 제도의 층위
같은 얼굴 사진도 가족앨범, 주민등록증, 병원 기록, 범죄자 명부, 광고, 미술관에 놓일 때 의미가 달라진다.
앨런 세큘라(Allan Sekula)는 19세기 초상사진이 한편으로는 부르주아 개인의 존엄을 기념하는 기능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범죄자와 피식민자를 측정하고 분류하는 억압적 기록으로 사용되었다고 분석하였다. 사진은 개인을 보여주는 동시에 국가와 제도가 관리할 수 있는 ‘유형’으로 만들 수 있다. (Sekula, 「The Body and the Archive」, 1986; 관련 연구 자료)
4. 관객과 해석의 층위
관객은 사진 속 인물을 자신의 경험과 사회적 관습에 따라 해석한다. 나이, 성별, 직업, 계층, 성격을 얼굴과 옷차림만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따라서 초상사진의 정체성은 피사체에게만 속하지 않는다. 피사체의 자기인식, 사진가의 시선, 매체의 형식, 제도의 분류, 관객의 해석이 만나는 지점에서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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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바르트가 말한 사진 속 자아의 분열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는 사진을 촬영자(Operator), 사진을 보는 사람(Spectator), 촬영되는 대상(Spectrum)의 관계로 설명하였다. 인물사진에서 촬영되는 사람은 살아 있는 주체이면서 타인에게 보이는 이미지가 된다. (University of Chicago, 『Camera Lucida』 해설; Barthes, Camera Lucida, 1980)
카메라 앞에 선 사람에게는 적어도 다음의 모습들이 겹친다.
① 내가 나라고 생각하는 모습
② 내가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은 모습
③ 사진가가 나를 바라보는 모습
④ 실제 사진 속에 나타난 모습
이 네 모습은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다. 자화상에서도 촬영자와 피사체가 같은 사람일 뿐, 이러한 간극은 사라지지 않는다.
바르트의 관점에서 사진은 인물을 고정된 대상으로 만든다. 살아 있는 자아는 계속 움직이고 변하지만 사진 속 인물은 하나의 표정과 순간에 붙들린다. 따라서 사진은 “이것이 나다”라고 말하게 하면서 동시에 “이것은 더 이상 현재의 내가 아니다”라는 시간적 분열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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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자화상은 진짜 자아를 보여주는가
자화상은 반드시 숨겨진 ‘참된 자아’를 드러내는 사진은 아니다. 자화상은 오히려 자아가 자신을 바라보고 낯선 대상으로 만드는 실험이다.
신디 셔먼(Cindy Sherman)은 《무제 영화 스틸(Untitled Film Stills)》 등에서 다양한 여성 인물로 분장하였다. 그녀의 작업은 한 사람의 진정한 성격을 고백하기보다 영화·광고·대중문화가 만들어 온 여성 이미지의 관습을 드러낸다. 한 신체가 수많은 역할로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통해 정체성의 자연스러움과 고정성을 의심하게 한다. (MoMA, 「Cindy Sherman」)
질리언 웨어링(Gillian Wearing)은 가족과 타인의 얼굴을 본뜬 가면을 쓰고 촬영한다. 얼굴은 개인을 확인하는 가장 직접적인 표식처럼 보이지만, 그녀의 작업에서 얼굴은 착용하고 교환할 수 있는 표면이 된다. 동시에 가면 뒤에 남아 있는 작가의 눈은 타인과 자신을 완전히 하나로 만들 수 없다는 차이를 드러낸다. (Guggenheim, 「Gillian Wearing: Wearing Masks」)
자넬레 무홀리(Zanele Muholi)는 《Somnyama Ngonyama—어두운 암사자에게 경배를》에서 자신의 신체와 일상 사물을 사용하여 흑인 신체를 규정해 온 식민주의적·인종주의적 시선에 맞선다. 여기서 자화상은 개인적 고백을 넘어 타인이 독점해 온 재현의 권리를 되찾는 정치적 행위가 된다. (Autograph, 「Somnyama Ngonyama」)
이러한 작업들은 다음을 보여준다.
자화상은 이미 완성된 정체성의 복사가 아니라, 자아가 여러 정체성을 입어 보고 해체하고 다시 구성하는 수행의 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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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기억사진과 가족사진의 양면성
가족사진은 과거의 모습을 보존하고 세대의 연속성을 확인하게 한다. 그러나 가족사진은 가족의 삶 전체를 있는 그대로 저장하지 않는다.
대체로 생일, 여행, 결혼, 졸업처럼 기념할 만한 순간이 선택되고 갈등·질병·소외·침묵은 프레임 밖으로 밀려난다. 이후 남은 사진은 개인의 기억을 보조하면서도, 그 사진에 맞도록 기억을 다시 구성하게 한다.
그러므로 가족사진은 다음 두 기능을 동시에 가진다.
① 이미 존재했던 가족관계와 사건의 흔적을 보존한다.
② 무엇을 우리 가족의 역사로 기억할 것인지 선택하고 조직한다.
바르트가 어머니의 어린 시절 사진을 통해 어머니의 존재와 상실을 사유한 것처럼, 사진은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사랑·애도·부재를 통해 정체성을 다시 경험하게 하는 매체가 된다. 그러나 바르트가 중요하게 여긴 ‘겨울 정원 사진’은 책에 수록되지 않았다. 그 사진에서 어머니를 알아보는 경험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전달되는 객관적 정보가 아니라, 그의 개인적 관계와 기억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진 속 얼굴을 알아보는 것과 그 사람이 ‘누구였는가’를 아는 것이 다르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Barthes, Camera Lucida,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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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동시대예술에서 정체성 작업이 갖는 의미
1. 고정된 본질에서 과정으로 이동한다
동시대예술에서 정체성은 발견해야 할 하나의 진짜 얼굴이라기보다, 시간과 관계 속에서 계속 만들어지고 수정되는 과정으로 다루어진다.
2. 개인적 경험과 사회구조를 연결한다
질병, 노화, 성별, 가족, 이주, 인종, 직업, 상실 같은 경험은 사적인 문제이지만 그 경험을 해석하고 평가하는 기준은 사회적으로 형성된다. 따라서 개인의 자화상은 동시에 그 개인이 속한 시대와 사회의 초상이 될 수 있다.
3. 재현의 권리를 묻는다
누가 누구를 촬영하는가, 누가 사진을 선택하는가, 누가 설명을 붙이는가, 누가 그 이미지로부터 이익을 얻는가가 중요하다. 정체성 작업은 단지 “나는 누구인가”를 넘어 “누가 나를 규정할 권리를 가지는가”를 묻는다.
4. 하나의 정체성으로 환원하는 폭력을 비판한다
한 사람은 동시에 부모, 자녀, 직업인, 예술가, 환자, 시민일 수 있다. 그를 ‘노인’, ‘장애인’, ‘여성’, ‘이주민’ 같은 하나의 범주로만 재현하면 개인의 복합성이 사라진다.
5. 진정성의 개념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연출사진이라고 해서 거짓이고 비연출사진이라고 해서 진실인 것은 아니다. 사람은 카메라가 없어도 상황에 따라 자신의 모습을 조절한다. 연출은 그러한 자기표현의 조건을 의식적으로 드러낼 수 있다.
그러므로 동시대 자화상의 진정성은 꾸미지 않은 얼굴을 보여주는 데 있지 않다. 자신이 어떤 조건과 규범 속에서 구성되었는지를 얼마나 솔직하고 비판적으로 드러내는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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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사진 작업에서 적용할 수 있는 핵심 질문
정체성을 주제로 사진 작업을 한다면 “내 진짜 모습을 어떻게 찍을까”라는 질문만으로는 부족하다. 다음 질문들이 함께 필요하다.
① 나는 나 자신을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② 가족과 사회는 나를 누구라고 부르는가.
③ 내가 원하는 정체성과 실제로 수행하는 역할은 어디에서 충돌하는가.
④ 나의 신체와 얼굴에는 시간·질병·노화·노동의 흔적이 어떻게 남아 있는가.
⑤ 어떤 사진과 기억이 현재의 나를 만들었는가.
⑥ 나는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의도적으로 지우고 있는가.
⑦ 옷·가면·직업 도구·가족사진·빈 공간은 각각 어떤 정체성을 상징하는가.
⑧ 한 장의 자화상과 여러 장의 배열은 서로 다른 나를 어떻게 보여주는가.
⑨ 관객은 내가 의도한 정체성과 다른 방식으로 나를 읽을 수 있는가.
⑩ 나의 사적 경험은 세대·가족·직업·사회적 규범과 어떻게 연결되는가.
중년의 자아를 다루는 작업이라면 젊은 시절의 사진, 현재의 신체, 아버지의 유품, 의사와 사진가라는 두 역할, 가족이 기억하는 나, 내가 되고 싶었던 나를 병치할 수 있다. 이때 사진들은 하나의 결론을 증명하기보다 서로 어긋나는 여러 ‘나’를 드러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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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최종 정리
자아와 정체성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자아는 세계를 ‘나의 경험’으로 살아가고, 자신을 돌아보며, 선택하고 행동하는 주체성의 구조이다.
정체성은 그 자아가 신체·기억·시간·관계·사회적 역할·타인의 인정·제도적 분류 속에서 누구로 지속되고 구별되며 구성되는가를 나타낸다.
자아가 순수하고 변하지 않는 내면의 핵이라고 단정할 수 없으며, 정체성 또한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가면에 불과하지 않다. 인간은 신체와 과거를 가지고 태어나 특정한 사회 속에서 살아가지만, 그 조건을 해석하고 재배열하며 기존의 규범에 저항할 수도 있다.
사진은 정체성을 그대로 복사하는 거울이 아니다. 사진은 실제 존재의 흔적을 남기지만, 동시에 프레임·연출·선택·배열·캡션·유통·관객의 해석을 통해 그 사람이 누구인지에 관한 의미를 만든다.
따라서 사진에서 정체성을 탐구한다는 것은 단순히 “진짜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 일이 아니다.
나는 어떤 신체와 기억을 지니고 있는가.
나는 누구의 시선을 통해 나를 이해해 왔는가.
사회는 나를 어떤 이미지로 규정해 왔는가.
나는 그 이미지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거부하며 다시 만들 것인가.
이 질문들이 만나는 곳에서 자아는 사진의 주체이면서 대상이 되고, 정체성은 사진에 나타난 결과이면서 사진을 통해 계속 새롭게 만들어지는 과정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