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bry 방아간은 그 당시 마을의 상징이었다. 20년 동안 부근의 이웃들이, 가을 추수가 끝나면 온 갖 곡식들을 가져와 돌아가는 물레방아의 동력으로 멧돌에 갈아 옥수수 빵, 건강식 글릿으로 그들의 입을 즐겁게 했다. 방아간 사용료는 그들이 가져온 곡식의 1/8을 방아간 주인에게 갚는 형식이었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어릴때, 1960년 돌로 만든 맷돌에 콩을 갈아 콩죽을 만들어 먹던 생각이 난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지역과 환경은 다르겠지만 사람 사는 곳의 생활은 별 다름이 없음을 느끼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나무를 아래처럼 십자가 형식으로 차곡차곡 세워 건조시킨다.

큰 통나무를 와건에 걸치고, 소나 말이 끝어 Mabry Mill 에 이동하여 Sawmill 을 사용했다.

Mabry Mill 뒷 전경, 아래의 방아간을 자세히 보면 3 section 으로 분리되어있다. 왼쪽은 나무를 자르는 곳이며 중간은 맷돌로 온갖 곡식을 가루로 생산하는 곳 그리고 오른쪽은 목공소(woodworking shop) 이다. 1910년에 Ed Mabry가 건설한 이곳은 주인이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것 보다는 순전히 이 지역 주민들의 편리를 위하여 건설되었다고 하니, 그 당시 사람들의 이웃을 위한 사랑과 정성이 얼마나 큰 것임을 전시된 공구(equpment) 와 역사를 통해 알수 있다.

첫번째 section, 와건으로 가져온 통나무를 물레방아 동력으로 sawmill 하는 곳이다.


Center section 의 cristmill 로 생산된 밀가루 이다. 한 봉지에 8불이지만 종이 포장이 아닌 천으로 Mabry Mill 의 상징이 표시되어 가격이 비싼편이다. 그러나 이 밀가루 봉지안에 100 년의 역사가 소중이 담겨져 있음을 깨닿으면 구입하고 싶은 마음이 절로 생긴다.


Buckwheat hpper 에 밀을 넣어 맷돌을 돌리는 형식으로 가루가 생산되면 몇번의 공정을 거처 밀가루가 생산된다.

1937년에 촬영한 아래의 사진은 지금처럼 아름다운 연못이 없다.

물레방아 동력이 축(shaft) 으로 연결된 중간에 있는 Gear enable/disable 시키는기기는 100년이라는 역사의 흐름속에서도 grease 가 기계에 잔뜩 묻어있고 아직도 변함이 없이 가동되는 것을 보면 얼마나 철처히 제작되었음을 알수있다.

나무로 만든 휠(wheel)을 가죽으로 만든 belt 로 돌린다.

목재소(Woodworking shop) 의 공구(equipment)들


Mabry Mill 안의 목제소에서 본, 남쪽 블루리지 국립공원 산맥길의 전경



물레방아에 연결된 나무로 건설된 수로 (water line)





마브리 밀은 블루지리 공원길에서 가장 중요한 사진촬영 장소이며, 그 당시 사람들의 풍습과 생활상등, 어떻게 살았는지를 알수있는 곳이다. 그 동안 많은 관광자들을 통하여 도움을 받은 특별한 곳이지만, 지난 수년 동안 물레방아의 휠이 너무 많이 마모되어 기계작동 유지를 위해서는 이곳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국립공원 관리소는 밀의 작동을 위해서는 아래와 같은 Project 를 해야한다. 휠에 부착된 여러 parts 를 새것으로 교체해야 한다. 라며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이럴때 락 펠러 같은 사람이 아직도 살아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이 든다.

미국 서부에 위치한 유명한 옐로우스톤(Yellowstone) 국립공원을 가보면 쉽게 이해가 간다. 락 펠러는 수십만평의 땅을 국립공원에 기증하고 100마일의 제니 호수에서 젝슨 홀 시까지의 락 펠러도로 건설에도 사비로 비용을 기증했다고 한다. 지금도 하루 200번의 화산이 땅속에서 일어난다는 대 자연의 경의가 모두 존재하는 옐로우스톤은 정말 일생에 한번은 꼭 방문하여 관광해야 할 곳이다.






우리의 다음 목적지는 노스케롤라이나 주 에쉬빌 (Asheville) 이다. 이곳 마브리 밀에서 336Km( 210마일)을 운전해야 한다. 날씨는 화창하고 더 높은 가을하늘 덕분에 아름다운 산야를 구경하는데 어려움이 없다.




단선도로에서 공사때문에 10분을 정차하는데 사인을 자세히 보면 빨간불을 지나가면 5,000불 벌금이라고 쓰여있다.

70 km (45마일)제한속도인 블루리지 국립도로는 총길이가 736km (460 마일)이다.


글/사진 孫永寅
첫댓글 옛날의 어떤 일들은 추억이다.
인간은 늙을 수록 추억을 먹고 산다. 미국인들이 개척시대 어렵게 살았던 증거를 모두 보존하여 후손들에게 보여주는 것은 어쩌면 그 속에서 교훈을 얻고자 함일 것이다. 사실 이런 조상들의 흔적을 보존하는 일도 경제력이 뒤받침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먹고 살기 바쁘다면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들 초등학교 시절은 전쟁이 끝난지 얼마지나지 않아 몹시도 궁핍했다.
구호물품으로 나온 밀가루와 우유가루를 학교에서 배급받아 집으로 가면서 입이 하해지도록 먹었던 기억이 난다.
저기 사진에 나오는 맷돌을 보니 개척시대 아메리컨도 우리와 똑 같았던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