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 나무위키)
4. 삭제 관행
곡이 매우 긴데다가 전개가 장황하고 산만한 감이 있어서 곡의 상당 분량을 삭제하여 공연하는 관행이 있다. 이러한 삭제 관행은 작곡가 본인의 허가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기도 하기 때문에 삭제 버전이 작곡가의 최종적 판단의 결과물로 이해되기도 한다. 다만 악보는 작곡된 직후 1908년에 곧바로 출판되었고, 이후 삭제 버전이 따로 공식적으로 출판되지는 않았다.
명연으로 꼽히는 오먼디의 음반은 연주시간이 47분에 불과할 정도로 많은 부분이 삭제되었는데, 오먼디가 직접 라흐마니노프로부터 지시 사항이 기재된 스코어를 얻어 지휘한 것일 뿐만 아니라 라흐마니노프 본인이 직접 리허설에 참여하여 오먼디에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었다.[2] 이러한 이유로 인해 1970년대까지는 작곡가가 승인한 삭제 버전으로 연주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행이었다. 무삭제판으로 연주하는 것은 라흐마니노프 본인과 교류 없이, 혹은 청자 관점에서의 곡의 수용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고민 없이 단지 출판된 악보를 그대로 연주하는, 다소 무성의한 행동으로 치부되기도 했다. 작곡가가 삭제를 허가한 부분 이외에서도 지휘자의 재량에 따라 추가적인 삭제가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다. 영어 위키백과에 따르면 원곡의 거의 절반에 불과한 35분 정도의 길이로 연주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1970년대 이전에 녹음된 음반들은 -비록 70년대 이전에 녹음된 음반 자체가 거의 없지만- 거의 다 삭제된 버전으로 녹음되었다. 과거 이 작품의 명연주로 알려진 음반들도 삭제 버전으로 연주된 경우가 많다. 어지간한 지휘자들의 경우 실연에서 곡을 삭제해서 연주하더라도 음반을 녹음할 때 만큼은 가급적 원보대로 연주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제 공연에서는 음반 이상의 과감한 삭제가 이루어진 경우가 많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1970년대 중반 이후에는 삭제하지 않고 연주하는 경우가 많다. 적어도 음반을 녹음하는 경우에는 삭제 없이 연주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이러한 변화에는 앙드레 프레빈과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1973년에 무삭제 버전으로 녹음하여[3] 출판된 EMI 음반이 큰 영향을 주었다. 앙드레 프레빈도 1967년에 RCA에서 이 곡을 처음 녹음했을 때는 삭제 버전으로 녹음했지만, 소련 투어 중에 "라흐마니노프는 피날레 부분의 작은 삭제만을 좋아했다"는 정보를 듣고 접근 방식을 재고하여 무삭제 버전을 녹음한 것. 그러나 그는 만년인 2016년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이 곡을 재녹음할 때는 다시 삭제된 버전으로 녹음했다.
일부 영미권 학자들은 1970년대까지 만연했던 삭제 관행이 작곡가 본인의 진의는 아니었다고 보고 있다. 20세기 전반기에 이 작품이 거의 연주되지 못하던 시절 그나마 이 곡을 지휘해 보겠다고 나섰던 지휘자들이 삭제를 해서 연주하겠다고 했고 작곡가는 그렇게라도 연주되는 게 연주되지 않는 것 보다는 낫다는 생각에서 삭제에 동의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근거로는 삭제 버전에 대한 공식 판본이 없다는 점, 작곡가 본인은 삭제되지 않은 버전을 연주했다는 점[4], 그가 1943년 죽기 전에 오먼디에게 곡의 일부 삭제에 대해 "내 심장에서 조각을 잘라내는 것 같다"라고 말한 점 등을 든다.[5]
그러나 한번 출판된 곡은 작곡가가 수정하고 싶다고 해서 마음대로 수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미 출판사가 대가를 지불하고 판권을 사갔기 때문에 높은 위자료를 지불하지 않는 이상 아무리 작곡가라 할지라도 고치고 싶다고 해서 마음대로 고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음악 역사상 이미 출판된 작품을 작곡가가 수정하는 일이 극히 드물다. 오늘날 작품의 판본이 존재하는 경우도 실제로는 작곡가 생전에 복수의 판본이 출판되지 않았다. 판본 문제가 복잡한 브루크너의 경우 생전에 출판된 판본은 하나다. 브루크너는 대부분 출판되기 전에 여러 번 수정을 했고 그렇기에 여러 판본이 존재하는 것이다. 브루크너 작품의 판본 문제는 출판사의 저작권이 소멸된 시점에 제기되었다. 말러의 경우에도 그의 사후 오랜 시간이 지나 출판사의 판권이 소멸된 시점에 유니버설 에디션이 간행되기 시작했다.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은 이미 1908년에 작품이 출판되었고 따라서 이후에 라흐마니노프가 마음대로 작품을 수정할 수 없었다. 다만 기존의 출판된 악보를 가지고 삭제만 행한다면 판권에 위배되지 않는다. 때문에 작곡가 본인이 직접 악보에 삭제를 가하여 지휘자들에게 건냈던 것이다. 따라서 작곡가가 개정판을 출판하지 않았기 때문에 1908년 원보가 그의 최종 의도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오히려 삭제된 버전을 연주한 지휘자들의 주장대로 작곡가가 직접 삭제를 가한 악보가 작곡가의 최종 의도에 더욱 부합할 수도 있다. 물론 삭제의 의도가 자발적인 것이 아니라 주장하는 이들이 있지만 누구도 작곡가의 마음 속에 들어가 보지 않는 이상 알 수 없다. 확실한 것은 작곡가 스스로가 악보에 삭제를 가했고 그것을 연주하도록 했다는 것밖에 없다.
위대한 작곡가일수록 자신이 쓰고 싶은 음악을 그대로 전개하기보다 수용자들의 관점에서 냉정하게 작품을 수정(삭제)하는 일이 빈번하다. 완벽주의로 유명한 브람스도 자신의 작품을 삭제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1번 교향곡을 작곡하는데 오랜 시간 심혈을 기울였던 브람스는 초연 직후 2악장의 상당 부분을 잘라낸 후 출판했다. 그 결과 그의 1번 교향곡은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걸작으로 더욱 높이 평가될 수 있었다. 브람스는 이렇게 삭제나 수정으로 해결이 되지 않는 경우 아예 곡을 소각해 버리곤 했다. 판본 문제가 복잡하기로 유명한 브루크너의 경우 역시 개정의 주요 포커스는 삭제였다. 브루크너는 초연을 거부당하거나, 혹은 초연 이후에 여러 번 개정을 가했는데, 개정을 거칠 때마다 곡은 길이가 짧아졌지만 완성도는 높아졌다.
라흐마니노프 역시 몇 차례 공연으로 청중들의 반응을 접한 후 보다 냉정한 마음으로 작품을 돌아보고 직접 첨삭했을 정황은 충분하다. 물론 1908년에 간행된 악보가 최초의 작곡가의 의도인 것은 분명하고 그렇기에 가치가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작곡가의 최종 의도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삭제 관행이 라흐마니노프의 진의가 아니었다는 근거로 삭제되지 않은 악보로 지휘를 했다고 하는데, 그가 실제로 이 작품을 지휘한 것은 1908년에 몰려 있다. 라흐마니노프는 초연 및 직후 몇몇 도시에서 이 곡을 연속해서 지휘했다. 1908년 작곡가 자신의 지휘로 이루어진 초연 및 직후 공연들은 당연히 삭제 없이 행해졌다. 하지만 성공적이었다는 초연에서도 '너무 길다'라는 평론을 발견할 수 있고, 그 뒤의 공연에서도 지루하다, 장황하다, 전개가 느슨하다는 혹평을 받았기도 했다. 그 뒤로 라흐마니노프는 이 작품을 지휘할 기회 자체가 거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