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추석을 맞은 것이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십 년은 넘은 듯하다. 외국에 살다 보면 추석 같은 명절이 문제다. 생각 없이 지나가기가 일쑤고 날을 기억했어도 딱히 찾아갈 친척도 없으니 말이다. 그래도 첫 몇 해는 아이들에게 우리 명절을 알려줘야겠다는 생각에 슈퍼에서 쌀가루와 찹쌀가루를 사와 익반죽을 해 송편 모양을 아이들한테 만들어 보이기도 했지만 아이들이 크고 나니 그냥 지나가기 섭섭해 전이라도 부쳐 먹지 않으면 추석은 여느 평일과 다름없이 지나가곤 한다. 추석을 앞두고 방문한 조국은 모든 것이 생생한 느낌이다. 누가 서울 하늘이 매연으로 찌들었다고 했는가? 인천공항에서 친정인 돈암동으로 가는 길 내내 하늘은 한없이 푸르고 높았다. 아직 채 단풍이 들지 않아 여전한 녹색의 가로수들도 반갑다. 추석을 이틀 앞둔 팔순의 거동이 어려운 어머니는 먼 곳에서 온 큰딸을 보며 반가움에 눈물이 고이신다. 추석 음식을 위해 장을 보러 나가는 새언니와 함께 서울에 도착한 그날 피곤한 몸을 끌고 노량진 시장을 따라나섰다. 시장에는 활기가 있다. 예전에 싱싱한 생선과 횟감을 사러 가끔 들르곤 했던 노량진 시장은 옛 모습은 찾기가 어렵고 규모도 커져서 어시장 자체가 모두 실내에 위치해 있다. 안으로 들어서니 가게마다 환하게 불을 밝히고 손님을 맞고 있다. 추석 대목인 것이다. 가게 이름에 한반도 내로라하는 수산 도시들이 한자리에 다 모여 있다. 정읍상회, 목포유달수산, 부안꽃게, 영광수산, 한라수산, 제주전복, 당진수산, 김천상회, 천안상회, 용문수산, 전라도, 나주수산, 변산상회, 완도전복, 청해낙지……
차례상에 올려놓을 동태전을 팔기위해 하얀 동태포를 뜨고 있는 상인들, 싱싱한 모듬 횟감을 사기 위해 수족관 사이를 바삐 돌아다니고 있는 손님들, 한쪽에선 톱밥 속에 들어 있는 게가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손님을 부르는 상인, 명절 때 빠질 수 없는 동태전을 위해 동태포를 두 뭉치 샀다. 한곳에서 지금 막 풀어놓은 파닥거리는 준치가 손님을 부른다. 횟감으로는 큰 것들을 따로 챙겨 놓았는데 가격이 꽤 나간다. 그러나 구이하기에 적합한 작은 것들은 훨씬 저렴한 가격에 옆자리로 돌려지고 있다. ‘썩어도 준치’, ‘가을 준치’라지 않는가. 말레이시아에서 수 년 동안 구경 한 번 못한 준치를 욕심껏 봉지에 집어넣었다. 준치 구이를 해 먹으리라. 가격이 저렴한 작은 크기의 준치가 얼마나 눈이 선명하고 비늘이 단단한지 조금 손이 가더라도 횟감으로도 손색이 없어 보였다. 물오징어도 몇 마리 샀다. 왜 이리 생선 욕심이 생기는지…… 열대 나라인 말레이시아에서 먹는 생선은 한국 생선과 맛이 다르다. 하얀 살의 달콤하고 고소한 맛이 덜하다.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말레이시아에 오셔서 큰아들인 우리와 함께 살고 계시는 시어머님은 생선을 잡수실 때면 하시는 말씀이 있다. “여깃 것들은 모두 뜨뜻한 물에서 자란 것들이라 맛이 없어. 사람이고 생선이고 찬물에도 살아보고 고생을 좀 해야 살도 단단하고 고소함도 더한 법인데……” 항상 더운 여름 날씨뿐인 말레이시아에선 바닷물이 따뜻해서 생선들이 살기가 너무 편하다는 어머니의 이론이다. 겨울의 쨍쨍한 한기를 알지 못하는, 열대 바다에서 어려움 없이 자란 생선은 고소하고 깊은 맛이 없다는 어머님의 이론이 과학적인지는 알 수 없어도 말레이시아 조기는 한국 조기보다 맛이 없고, 말레이시아 병어도 한국 병어보다 맛이 없는 게 사실이다. 환하게 불을 켜 놓은 가게들 뒤편에는 흔히 ‘아나고’라고 부르는 붕장어 회를 따로 파는 곳이 있단다. 새언니와 함께 시장을 몇 바퀴 돌며 피곤해진 다리를 쉬기 위해 횟집에 앉았다. 거대한 수족관 절반이 꿈틀거리는 붕장어로 가득 채워져있었다. 젊은 부부가 주인이다. 아내가 솜씨 좋게 붕장어 세 마리를 잡아낸다. 남편이 도마 위 못에 머리를 걸고 껍질을 벗겨내 씻어 주자 아내가 옆에 있는 기계 속에 넣었더니 기계가 붕장어를 조그맣고 얇은 횟감으로 잘라내 주는 게 아닌가.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었다. 잘라진 조각을 다시 작은 기계에 넣었는데 그게 바로 횟감에서 물기를 제거시키는 건조기 짤순이였다. 이곳에서도 기계화와 자동화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짤순이 덕분에 물기 없이 뽀송뽀송하게 잘린 붕장어를 맛깔스러운 초고추장에 찍어 먹었다. 그 고소한 맛이란…… 잠시 자동화에 놀랐던 마음은 자취를 감추고 순식간에 세 마리의 붕장어를 해치웠다.
횟집이 모여 있는 골목에서 앞쪽으로 나가 봤더니 새우 천지다. 한쪽에는 말레이시아 새우라고 쓰여져 있는 이름표도 보였다. 나는 새우는 안중에도 없다. 말레이시아는 새우 천국이기 때문이다. 새언니는 새우를 담고 나는 그 옆에 있는 미더덕과 작은 굴을 담았다. 그리곤 반대편 가게에 누워 있는 은빛 나는 반짝이는 갈치에 한눈을 팔고 있었다. 생선 봉지를 든 양손이 이미 무게로 손가락이 아플 지경인데도 나는 갈치는 꼭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갈치도 말레이시아 갈치는 싱겁기가 이를 데 없기 때문이다. 굽거나 졸여서 먹을 때 하얀 살에서 나오는 단맛이 그곳 갈치에게는 없다. 이것도 시어머니의 이론에 해당되는 것 같다. 말레이시아 가격에 비하면 열 배가 넘는 거금을 주고 두 마리를 구입했다. 새언니는 내 생선 욕심에 혀를 내두른다. 일단 시장을 나서기로 했다. 건어물 쪽은 아직 발길도 돌리지 못했다. 생선을 차에 두려고 갔는데 새언니는 경동시장으로 옮기자고 한다. 해물을 샀으니 제수용품이나 야채는 돈암동 집으로 가는 길에 경동시장에서 구입하는 것이 신선하다는 언니의 의견이다. 올림픽 도로를 한참을 달려 청량리 경동시장으로 갔다. 대학 시절 중 3짜리 남학생의 과외선생을 일 년여 했던 적이 있다. 바로 그 집이 경동시장 근처였다. 버스에 내려서 그 집으로 걸어가는 길에 나는 일부러 시장 안쪽으로 들어가 기웃기웃 구경하길 좋아했다. 예전에는 지금과 같이 건물 안에 시장이 있는 게 아니라 노천 골목마다 같은 종류의 물건들을 쌓아 놓고 팔았다. 생선 파는 곳을 지나, 떡 파는 곳도 있고, 돼지 갈비를 구워서 파는 곳도 있었다. 인삼을 무더기로 모아 놓고 파는 곳도 있었고 한약재를 파는 곳에 지네를 보고 놀란 적도 있다. 아줌마들이 함지박을 앞에 놓고 다양한 야채를 팔기도 했었다. 거의 삼십 년 만에 경동시장에 온 것이다. 노량진 시장처럼 몇 층의 건물 내로 시장이 들어앉았다. 가장 뚜렷한 변화라면 한약방을 비롯한 제대로 된 약령시의 모습으로 변한 거다. 삼십 년 전에도 물론 인삼을 비롯해 각종 한약 재료들을 팔긴 했었다. 그런데 이젠 약령시 하면 서울에서 전통 시장으로 경동시장을 손에 꼽는다고 한다. 이제 전통 시장도 일종의 전문시장의 모습으로 변해 가나 보다. 들은 대로 한의원도 있고 약재 관련 가게가 많다. 삐뚤 빼뚤, 가게 주인의 성품을 보여 주는 듯, 크고 작은 글씨로 당귀, 구절초, 도라지, 오미자, 엉겅퀴 등을 모아 놓고 파는 곳에는 어릴 때 꽈리를 불기 위해 속을 비게 만드느라 고생을 했던 자연산 꽈리가 타래에 묶여서 팔리고 있다. 수삼을 출국 전에 구입하러 한 번 더 와야겠다고 생각을 하면서 재래시장 쪽으로 들어가는 새언니를 따랐다. 태풍으로 야채가 금값이라는데 이곳은 생각보다 싸다고 좋아한다. 충청도 서산 색시인 새언니는 서울 토박이 시어머니 밑에서 추석이면 반드시 토란국을 끓여야 하는 것으로 배웠다. 시집 오기 전에는 먹어 본 기억도 없다는 토란국을 새언니는 우리 엄마 못지않게 맛있게 끓인다. 얼마 만에 보는 토란인지 토실토실한 토란을 사고 송편을 찐다고 솔잎도 샀다. 싱싱한 버섯도 샀다. 대파와 가지런한 쪽파, 연두색 호박도 얼마나 예쁜지…… 그동안 못 보던 야채들이 반갑다. 손에 가득 비닐봉투를 들고 이제 친정으로 간다. 우리 땅에서 난 신토불이로 추석 음식을 만드는 거다. 시장엘 가니 내가 고향에 왔다는 게 실감이 난다. 서울에서 태어나 말레이시아로 가기까지 삼십여 년을 산 곳. 6백 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아름다운 내 고향. 오랜만에 추석을 바로 내 고향에서 맞는다. -한나프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