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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남원문화대학 원문보기 글쓴이: 가람
2012. 4. 30
성인동화
담뱃대와 호랑이
지은이 소 병 호
작품 소개
⌜담뱃대와 호랑이⌟는 성인동화(成人童話)입니다. 원작(原作)은 총 10권인데 여기 소개한 내용은 그 핵심만 요약한 것으로 원작의 10분의1에 불과한 분량입니다. 이작품은 2005년 6월부터 집필에 착수했고 그 동안 생각나는 대로 조금씩 조금씩 추가하여 금년 4월 탈고에 이르기까지 장장7년이 걸렸습니다.
주인공 황 차돌은 작품 속에서 호랑이 코돌과 30년 동안 불변의 우정을 쌓으며 조선과 중국대륙을 무대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스릴과 모험을 통해 3代에 걸친 효도와 충성을 완성하기위해 눈부신 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의 기저에는 독자들에게 특히 인간성상실의 시대를 사는 오늘날의 청소년들에게 사랑하고 용서하는 마음과 의리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고 상상력과 희망, 용기와 지혜에의 분발을 촉구하는 교육적인 메시지가 도처에 숨겨져있습니다.
조만간 출간 될 예정이며 독자 여러분의 많은 참여를 기대합니다.
2012. 4. 30
제산당 에서 저자 올림
소년장사(壯士) 황차돌 탄생
기린산(麒麟山)과 왕정말의 유래
태고 적에 하늘나라에서 신선들이 별 따먹기 놀이를 하다가 실수 하여 별들끼리 부딪치는 사고가 발생 했습니다 그 파편 하나가 작은 별똥별로 바뀌어 지구의 한곳에 떨어졌습니다. 떨어진 별똥별은 수 억년이 지나는 동안 비바람에 씻기고 씻겨 점점 작고 단단한 바위산으로 변해갔습니다. 그리고 바위틈마다 쌓인 흙속에 어디선가 씨앗들이 날아와 박히더니 초목이 무성하게 자라 바위산을 제법 그럴 사하게 꾸며놓았습니다. 사람들은 이산을 기린산(麒麟山)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기린산 아래 인가(人家)가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 하더니 이내 마을이 형성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이 마을을 왕정 말(왕정마을)이라고 불렀습니다. 왕정말은 현재 전라북도 남원시 왕정동을 말합니다.
지금부터 6백여년 전 어떤 훌륭한 장군이 군사들을 이끌고 이 마을을 지나다가 쉬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는 바다건너 일본 땅에서 쳐들어와 운봉 황산에 진을 치고 있던 왜구 2만명을 하룻밤사이에 무찔러 없애고 임금이 계시는 개경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그 장군은 나중에 조선(朝鮮)이라는 나라를 세우고 왕이 되었는데 이분이 바로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랍니다. 그 후 이 마을은 왕이 쉬어 갔다고 하여 왕정말 이라고 고쳐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차돌을 삶아 먹고 생긴 아기, 소년 장사 황 차돌
그 후 이 마을에 황태보 부부가 살았는데 둘 다 마음씨가 착했습니다. 태보의 아내 사매댁은 기린산 아래 있는 마애불(磨崖佛)에 기도하기를 좋아했고. 기도를 드릴 때마다 마애불은 빙그레 웃었습니다. 마애불이란 바위벽에 새긴 부처를 말합니다. 그리고 달밤이면 마을 앞 만복사에 있는 5층 석탑을 돌며 가정의 평화와 마을의 안녕을 빌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사매댁은 마애불에 기도를 드리다가 청학동 도인(道人)을 만나 삶은 차돌을 한 덩이 얻어먹고 배가 점 점 불러 와 열 달 후에 떡 두꺼비 같은 아들을 낳았습니다. 태보는 아이의 이름을 차돌이라고 지었습니다. 차돌의 울음소리는 어찌나 우렁찬지 골목이 떠나갈 듯 했습니다.
“저렇게 울음소리가 큰 것을 보니 장군감이야 !”
“암. 그렇고말고.”
“차돌을 삶아먹고 잉태한 아이라고 하지 않는가 !”
“크면 아마 천하장사가 될 걸세 ”
동네사람들은 제각기 입을 모아 차돌아기를 기렸습니다. 아기는 무럭무럭 자랐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커갈수록 보통아이보다 힘이 훨씬 세어 소년장사라는 말을 들었고 머리가 총명해서 서당공부도 항상 1등이었습니다. 차돌은 부모님의 사랑과 마을 사람들의 기대 속에서 어린 시절을 행복하게 보내고 있었습니다.
차돌이 여섯 살 때 예쁜 누이동생 서운이 태어나 차돌은 더없이 기뻤습니다.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
어느 날 아버지 황 태보는 어디를 다녀온다고 하면서
“차돌아, 서운아. 어머니 모시고 잘들 있거라.”
“아버지, 안녕히 다녀오셔요.”
“아빠, 안녕가.”
“여보, 부인. 석 달 안으로 꼭 돌아오리다.”
“먼 길에 몸조심 하시고 잘 다녀오셔요.”
이렇게 먼 길을 떠난 아버지는 달이 가고 해가 가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차돌은 아버지가 보고 싶어 울 때가 많았습니다.
“어머니, 아버지는 어디 가셨어요?”
“아버지는 할아버지를 찾으러 가셨단다.”
“할아버지요?”
어머니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수 십여 년 전 병자호란 때 청나라가 쳐들어 왔습니다. 그 때 차돌의 할아버지는 의병장이 되어 적군과 용감하게 싸우셨지만 중과부적으로 패하고 임금님은 청나라 황제에게 항복했습니다. 차돌의 할아버지는 생사를 알 수 없었는데 아버지는 끈질긴 수소문 끝에 할아버지가 되놈들한테 끌려가신 사실을 알아내고 할아버지를 찾으러 청나라로 떠나셨다는 것입니다.
소년 가장이 된 차돌, 대장부 십 오세면 나라의 호패(號牌)를 찬다.
그러나 아버지 황태보도 할아버지처럼 영영 돌아올 줄을 몰랐습니다. 홀로계신 어머니 사매댁은 어린 차돌과 딸 서운을 키우면서 살림을 꾸려가자니 홀몸으로는 너무 힘이 들었습니다. 가세는 날로 기울어가 끼니 갈망도 하기 어려울 지경에 이르러 다니던 서당도 그만 두었습니다. 차돌의 행복했던 어린 시절도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차돌은 어머니를 도와 농사와 가사를 돌보기로 결심하고 어머니에게 말씀드렸습니다.
“어머니, 대장부 십 오세(十五歲)면 나라의 호패를 찬다고 합니다. 소자도 호패를 찰 나이가 되었으니 밖에 나가서 생활비를 벌어 오겠습니다.”
“어린 네가 무엇을 해서 돈을 벌어오겠다는 것이냐?”
어머니는 차돌이 대견스러우면서도 안쓰럽기만 했습니다.
“어머니, 우리 동네에 담뱃대 만드는 공방이 있잖아요? 거기서 나이어린 직공을 쓴 대요”
그리하여 차돌은 담뱃대 만드는 공방(공장)에 들어가 일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왕정말은 이미 담뱃대로 유명해져 있었습니다. 차돌은 정직하고 부지런하여 얼마 가지 않아 공방주인의 신임을 얻었습니다.
효자로 소문난 담뱃대 장수 차돌
차돌은 효자로 소문이 났습니다. 공방에서 받은 몇 푼 안 되는 돈을 꼬박꼬박 어머니에게 갖다 드리고 여유가 있으면 꼭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고기반찬을 사다드리는 일을 잊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몇 년 동안 공방에서 일을 하다 보니 차돌도 반 기술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공방에서 받는 품삯만으로는 평생을 가도 가난을 면할 수가 없을 것 같아서 차돌은 아예 담뱃대 장수로 나섰습니다. 어느 이른 봄날이었습니다. 차돌은 그날도 담뱃대를 팔러 나섰습니다.
“어머니, 소자 잘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부디 몸 조심해라. 그리고 항상 언행(言行)을 조심하고 ”
“예. 어머니.”
차돌이 이번에 찾아가는 곳은 지리산 속 이었습니다. 지리산 속에는 골짝마다 작은 동네들이 알알이 박혀 있었습니다. 차돌은 한 번도 가보지 않는 곳으로 그곳은 길이 험하고 멀어서 도부꾼들이 들어가기를 꺼리는 곳이었습니다. 도부꾼이란 물건을 가지고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장사하는 보따리장수를 말합니다.
담뱃대 로고 쏭
차돌은 코재를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왜 코재냐고요? 조금만 엎드리면 코가 닿을 정도로 비탈이 가파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 코재는 지리산으로 들어가는 관문과도 같은 곳으로 이 코재를 넘지 않고서는 달궁이나 심원마을도 갈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장날이면 사람들이 뻔질나게 넘나드는 장 길이기도 했습니다.
무쇠처럼 튼튼한 차돌이었지만 담뱃대 보따리를 지고 가파른 비탈을 오르다 보니 너무 힘이 들어 다리쉼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다리쉼을 할 때마다 자기가 지은 노래를 불렀습니다.
“나랏님 났네, 대왕 죽.
포졸 떴다, 육모 죽.
버릇없다, 애개죽아.
수명장수, 송학 죽.
아리 아리랑
서리 서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 주소.”
차돌이 흥겹게 부르고 있는 노래는 밀양아리랑의 곡을 빌려 다른 가사만 붙인 것으로 요새말로 말하면 로고송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대왕죽, 육모죽, 애개죽, 송학죽 따위는 모두 담뱃대의 종류에 따라 붙여진 이름들이랍니다.
천년된 방솔 나무
드디어 코재 꼭대기에 올랐습니다. 이른 봄날이라, 그리 더운 날씨도 아닌데 차돌은 얼마나 힘이 들었던지 땀을 줄줄 흘렸습니다.
코재 위에는 큰 방솔나무가 한 그루 있었습니다. 방솔나무란 키가 작고 가지가 마치 우산처럼 사방으로 길게 뻗어 있는 소나무를 말하는데 그 밑에 넓고 시원한 그늘이 드리워 져 사람들이 쉬어가거나 화전놀이를 하기에 안성맞춤인 소나무랍니다. 방솔은 반송(盤松)이라는 낱말이 와전(訛傳)된 것입니다. 코재의 방솔나무는 천년이 되었다고 해서 사람들이 천년방솔이라고 부릅니다. 아득한 옛날 어느 도인(道人)이 심었다고 하기도 하고 마을의 경계를 표시하기 위해 사람들이 심었다고도 합니다.
아무튼 천년방솔은 없어서는 안 될 코재의 명물이었습니다. 인월∙운봉∙남원장에 다니는 사람들이 땀을 식히거나 또는 비를 피하기 위해 꼭 쉬어가는 곳 이었으니까요. 차돌은 그 나무 아래서 담뱃대 보따리를 풀어 놓고 잠시 쉬어간다는 것이 그만 벌렁 드러누워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담뱃대와 호랑이
호랑이가 나타나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지금 차돌의 앞에는 큰 일이 벌어지려 하고 있습니다. 커다란 호랑이가 한 마리 나타나 어슬렁어슬렁 차돌을 향해 다가오고 있지 않겠습니까? 호랑이가 아마 사람냄새를 맡았나 봅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차돌은 떼어가도 모르게 코를 곯고 있습니다.
‘그놈 참 잘 생겼다.’
호랑이는 차돌 앞에 쪼그리고 앉더니 머리를 갸우뚱 거립니다.
‘볼수록 잘 생겼는걸.’
녀석은 차돌을 얼굴부터 발치까지 더듬으며 킁킁 냄새를 맡습니다.
‘어휴, 이 맛있는 냄새. 잘생긴 먹이는 냄새부터 다르다니까.?
호랑이는 입맛을 쩍쩍 다시며 잡아먹을 방법을 궁리 합니다.
‘이놈을 어떻게 깨워서 잡아먹는다? 옳지! 개울은 여기서 너무 멀고 일단은 혀로 핥아서 깨워봐야지’
원래 호랑이는 잠자는 동물은 잡아먹지 않고 꼭 깨워서 잡아먹는 습성이 있다고 합니다. 녀석은 코를 곯고 자는 차돌의 얼굴을 싹싹 핥기 시작합니다.
‘어라, 이놈 봐라 핥아도 안 깨네. 할 수 없지. 꼬리에 물을 축여 가지고 와서 깨워야지’
호랑이는 산을 내래갔다가 한 참 만에 돌아왔습니다. 호랑이는 축축한 꼬리를 휘둘러 차돌의 얼굴을 사정없이 후려치기 시작합니다.
호랑이는 잠든 것은 잡아먹지 않는다.
차돌은 눈을 떴습니다. 그리고 너무나 놀라 온몸이 돌처럼 굳어져 손끝하나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사람 살려!’
‘아버지!’
‘어머니!’
하고 아무리 외쳐 보아도 소리가 목구멍에서만 맴돌 뿐 전혀 밖으로 나오지 않습니다. 호랑이는 꼬리에 물기가 마르자 일단 동작을 멈추고 차돌의 얼굴을 한참동안 들여다보더니
‘이런 지독한 놈 봤나? 그렇게 맞고도 정신을 못 차리다니’
이렇게 중얼거리고는 다시 물을 축이러 내려갑니다. 이 기회를 틈타 차돌은 탈출을 시도했지만 도무지 몸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꼬리에 물을 축여 얼굴을 때리는 호랑이
호랑이가 물을 꼬리에 추겨 가지고 오는데 걸리는 시간은 담배 한대 참 정도였습니다. 차돌은 모든 것을 체념하고 죽은 척하고 누워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녀석이 또 물 묻은 꼬리를 휘둘러 댑니다.
“휘익, 철썩 !”
“휘익, 딱 !”
두 뒷다리 사이로 녀석의 고추가 시계추처럼 달랑달랑 흔들리는 것이 보입니다. 아무리 꼬리를 휘둘러 쳐도 먹잇감이 눈을 뜰 줄을 모르자 이젠 호랑이가 지칠 지경입니다.
‘어라, 이놈 보게, 이렇게 잠귀가 멍청한 놈은 오늘 처음 일세 .’
녀석은 투덜거리면서 또 개울가를 향해 산을 내래갑니다.
‘세 번이나 깨워도 안 일어나면 그냥 잡아먹을 수밖에 없겠는걸. 제기랄. 무슨 재미로 잠자는 놈을 잡아먹는 담?’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
차돌이 눈을 번히 뜨고도 꼼짝 못하고 누워만 있을 때,
“차돌아!”
“차돌아!”
하는 소리가 귀창을 떼어갈 정도로 크게 들렸습니다. 순간 차돌은 그 소리는 자나 깨나 그리던 아버지의 목소리임을 알았습니다.
“아버지!”
“이놈아! 뭘 꾸물대는 게냐? 당장 일어나지 못할까?”
아버지가 성난 얼굴로 차돌을 내려다보며 다급한 목소리로 호통을 치십니다.
“예. 아버지!”
하며 차돌은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없었습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이 자리에 오실 리가 있겠습니까?
차돌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궁리에 궁리를 거듭 한 끝에 ‘호랑이가 열 번을 물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속담을 떠올렸습니다.
“그렇다. 바로 이거다.”
순간 차돌의 머릿속을 번개같이 스치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는 담뱃대 보따리를 풀어 대왕죽 세 개를 꺼냈습니다. 대왕죽은 담뱃대 중에서도 가장 크고 긴 것으로 노인이나 지체 높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가장 값이 비싼 담뱃대입니다.
뜨거운 쑥담뱃불로 호랑이의 고추를 지지다.
차돌은 담배를 피울 줄 몰라 담배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불쏘시개로 쓰는 마른 쑥은 많이 갖고 다니므로 담뱃잎 대신 마른 쑥을 담배통에 꼭꼭 다져넣은 다음 부싯돌을 쳐댔습니다.
“탁! 탁!”
이내 불똥이 튀더니 쑥쏘시개에 불이 붙어 연기가 납니다. 성냥이나 라이터가 나오기 전 까지 사람들은 이렇게 불을 일으켰고 항상 지갑 속에 부싯돌과 불 당기는 데 쓰이는 마른 쑥 쏘시개를 준비하고 다녔답니다. 부싯돌은 아버지가 먼 길을 떠날 때 차돌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차돌아. 너는 이 부싯돌처럼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라. 부싯돌은 부쇠(쇳조각)로 아무리 쳐도 깨지지 않고 오히려 불을 일으켜 많은 사람들을 이롭게 한단다.”
차돌은 불이 붙은 쏘시개를 대통에 다져 넣은 마른 쑥담배에 얹어놓고 담뱃대를 빨기 시작했습니다. 쑥담배가 맨드라미꽃보다 더 빨갛게 타면서 담배통이 뜨겁게 달아오릅니다. 이렇게 담배통 세 개를 차례차례 달구어 놓고 있을 때 호랑이 발자국 소리가 또 들려옵니다. 차돌은 담뱃대를 내려놓고 누워서 자는 척 합니다.
호랑이가 또다시 물 묻은 꼬리를 휘두르려 할 때, 차돌은 벌떡 일어나 왼손으로 녀석의 꼬리를 척 휘어 감았습니다. 차돌은 보통사람보다 힘이 무척이나 세어서 어려서부터 소년장사라는 말을 듣고 있었습니다. 휘어감은 꼬리를 힘껏 잡아당기면서 오른손으로 잽싸게 담뱃대를 집어 들어 녀석의 고추를 살짝 지졌습니다. 이 모든 동작들이 눈 깜작할 사이에 일어났습니다.
“흐흐흑 (앗 뜨거워)!”
호랑이는 빠져 나가려고 앞발로 땅을 득득 긁어 댑니다.
“어흥, 어흥 (아이고 나 죽네)!”
차돌은 호랑이의 꼬리를 잡은 왼손에 한번 더 힘을 주었다가 갑자기 확 풀어버립니다. 순간 ! 녀석은 제힘에 못 이겨 용수철처럼 앞으로 튀어나가 바위에 머리를 부딪치고 나동그라집니다.
“탁 !”
“쿵 !”
호랑이의 코에 불도장(烙印)을 찍다
차돌은 두 번째 대왕죽을 집어 들어 입에 물고 깊숙이 그리고 천천히 빨아냅니다. 그는 무서우리만큼 침착한 태도로 다음동작을 조용하게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제 차돌에게 두려움이나 망설임 따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정신일도 금석가투(精神一到 金石 可透)라는 말도 있잖아요? 정신을 하나로 모으면 쇠와 바위도 꿰뚫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차돌은 호랑이 덕택에 그 이치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
호랑이는 한참만에야 정신이 드는지 몸을 부스스 털고 일어나 어슬렁어슬렁 다가옵니다. 앞발을 절뚝거리는 품새가 아무래도 어디를 다친 모양입니다. 녀석은 일단 걸음을 멈추고 차돌의 담뱃대 빠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다시 다가옵니다. 호랑이가 좀 더 거리를 좁혀왔을 때 차돌은 담배통을 엎어서 가볍게 내밀어 녀석의 콧잔등을 꼬옥 눌렀습니다. 마치 도장 찍듯이 말입니다.
“으흑!”
“으흐흐흥 (호랑이 살려)!”
호랑이는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불이 나게 도망쳐 버렸습니다. 어찌나 빨리 뛰었는지 나뭇가지가 꺾이고 돌덩이 구르는 소리가
“우지끈, 우지끈!”
“덱데굴, 덱데굴!”
하고 들려 왔습니다.
아버지! 아버지! 그리운 아버지!
“휴... 이젠 살았다.”
차돌은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 쉬었습니다. 아버지가 깨워주시지 않았더라면 영락없이 호랑이의 밥이 될 뻔한 차돌. 차돌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울컥 솟구쳐 올라 왔습니다. 차돌이 열 살도 채 못 되었을 때 집을 나가신 아버지. 아버지는 십년이 지나도 돌아오시지 않아 몇 년 전부터 집을 나가신 날을 아버지의 제삿날로 정하고 해마다 그날이 되면 아버지의 제사를 지내 왔습니다. 차돌은 아버지가 계신 하늘을 향해 무릎을 꿇고 몇 번이고 큰 절을 올렸습니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이 못난 불효자식을 살려주신 은혜 무엇으로 다 갚으오리까?’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쳐 허공에 대고 엉엉 소리 내어 울었습니다.
“아버지...!”
“아버지...!”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공포에 싸인 코재 마을
차돌은 보따리를 챙겨 짊어지고 서둘러 코재를 내려갔습니다. 코재 아래는 코잿말이라는 이십여 호 되는 동네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는 마을에서 제일 크고 사랑방이 있는 촌장 집을 찾아가 하룻밤 숙식을 청했습니다. 주인은 처음 본 손님을 마치 십년지기나 되는 것처럼 깜짝 반겨주었습니다.
“누추하지만 들어오시오.”
“감사합니다.”
주인은 차돌에게 어디서 왔으며 어느 길로 이 동네를 찾아왔느냐고 꼬치꼬치 캐물었습니다. 차돌은 남원읍내 왕정말에서 온 담뱃대 장수인데 이 마을 뒷산을 넘어왔노라고 했습니다.
“아니, 저 무서운 코재를 혼자서 넘어왔단 말이요?”
“예, 그렇습니다만......”
“그럼 코재를 넘어올 때 아무 일도 없었소?”
“없기는요? 호랑이를 만나서 죽을 뻔 했다가 겨우 살아 왔답니다.”
차돌은 자초지종을 이야기해 주었으나 주인은 믿기지 않는 듯 한 표정이었습니다.
“코재는 대낮에도 열사람 이상이 모여야 넘을 수 있는 고개라오.”
라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해 주었습니다.
코재는 비록 높고 험했지만 사람들이 뻔질나게 다니는 길목이었습니다. 인월장과 운봉장 그리고 남원장날이면 코잿말을 비롯해서 달궁에 이르기까지 여러 마을 사람들의 발길이 밤중까지 끊임없이 이어지는 아주 평화롭고 안전한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두어 달 전부터 어디서 왔는지 무서운 호랑이가 한 마리 나타나 행인(行人)을 해치는 것은 물론 밤이면 인근의 마을에 내려와 소나 돼지. 염소 등 가축을 물어가기 일수였습니다. 어떤 때는 대낮에 내려와서 가축을 물어가기도 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코재와 가장 가까이 있는 코잿말의 피해가 제일 컸습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낮에는 열사람이상이 모이지 않으면 코재를 넘지 못했고 밤에는 마실도 못가고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잤으며 심지어 어린아이들은 요강을 방에 들여놓고 대 소변을 보아야 했습니다.
코잿말의 기적
차돌은 코잿말에서 밥만 얻어먹고 낡은 담뱃대를 고쳐주기도 하고 막힌 부분은 뚫어주기도 하면서 마을사람들과 친하게 지냈습니다. 아직 담뱃대는 한 개도 팔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신기하게도 사흘거리로 가축이 한 마리씩 없어지던 것이 차돌이 코잿말에 들어온 후 보름이 지나도록 단 한 마리의 가축피해도 발생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반대로 이웃에 있는 크고 작은 다른 동네에서는 벌써 소나 돼지가 너댓 마리나 없어져 그 전보다 피해가 더 컸습니다. 이 사실을 깨달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오직 구공서라는 청년 한 사람 뿐.
“어르신네들, 황차돌이 담뱃대로 호랑이를 혼내주었다는 말이 사실인 것 같아요.”
“어이, 자넨 지금도 그말을 믿고 있는가?”
“맞아, 담뱃대 하나로 어떻게 호랑이를 잡는 당가?”
“그사람 거짓말 할 사람 같지는 않던데요”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르더라고 그 놈의 속을 누가 알 것인가 ?”
“맞아, 담뱃대 팔아먹으려고 일부러 포를 한번 떨어 본 것인지도 몰라.”
“어르신네들, 황 차돌이 들어온 후 우리 마을에서는 아직까지 호랑이가 한번 도 안 나타났잖아요? 반대로 이웃 마을에서는 벌써 가축을 몇 마리나 잃었는가요?”
“그래서 그게 담뱃대 장수하고 무슨 상관이 있는데 ?”
“한번 생각들 해 보십시오. 호랑이를 혼내준 담뱃대장수가 우리 동네에 있으니까 호랑이 놈이 냄새를 맡고 무서워서 범접을 못 하는 것이 아니겠어요?”
“야야. 거 쓸데없는 소릴 그만집어 치워라”
“호랑이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이 어디 할 일이 없어서 담뱃대나 팔러 다닌단 말이냐?”
“그렇게 힘이 세면 장수나 포도대장이 되어도 하마 벌써 열 번은 되었겠다.”
“허긴 담뱃대 장수도 장수는 장수 아닌가 잉?”
“그러고 보니 장수가 맞긴 맞구만 그려.”
“하하하하”
“허허허허”
사람들은 구공서의 말을 좀처럼 믿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코재에서 또 호랑이를 만나다
그러던 어느 날 차돌은 갑자기 출타(出他)할 일이 생겼습니다. 담뱃대를 뚫는 가느다란 쇠꼬챙이가 똑 부러져 그것을 붙이려면 성령간(대장간)이 있는 운봉까지 다녀와야만 했습니다. 구공서가 따라 나섰습니다. 구공서는 차돌을 친 형제처럼 믿고 따랐습니다.
“형님, 제가 모시겠습니다.”
“고맙네. 같이 가세나”
마을 사람들은 두 사람을 극구 말렸습니다.
“여보게들, 코재는 열사람 이상이 모여야 넘는 곳이여. 겨우 두 사람이 어떻게 넘을 려고 그러는가? 이 지혜 없는 사람들아.”
“염려 놓으십시오.”
차돌은 여유 만만해 보였습니다.
“아니, 이 사람아, 정 그러면 자네 혼자만 갈 일이지 왜 공서까지 호랑이 밥을 만들려고 그래?”
차돌은 빙그레 웃으며 그들을 안심시켰습니다.
“오늘 해 지기 전에 돌아 올 테니 걱정들 마십시오!”
그러나 사람들은 길을 떠나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근심스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여보게, 공서 아우”
“예, 형님.”
“내 담뱃대 노래 한번 들어 볼랑가?”
“담뱃대 노래라니요? 그런 노래도 다 있는가요?”
“한번 들어 보게나.”
차돌은 담뱃대 로고송을 부르기 시작합니다. 이번엔 봄버들의 곡을 붙인 노래입니다.
삼대독자라, 은삼동.
수명장수에 송학죽아.
못 생겼다, 곰방대야.
쉬어 가자꾸나 고달대야.
에 헤에야 봄버들도
못믿으리로다.
흐르는 저기 저물만
흘러 흘러서 가노라.”
은삼동이니 고달대니 하는 것도 다 담뱃대 이름들이랍니다.
“형님, 참 재미있습니다요”
“그럼 자네도 따라 불러 보게 ”
차돌 일행은 코재에 올라 천년 방솔 밑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했습니다. 이때,
“덜푸덕!”
하고 무언가 무거운 물건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것은 커다란 호랑이었습니다. 바위에 올라 앉아 마을에서 잡아온 돼지를 뜯어먹고 있다가 실족하여 떨어진 것입니다. 구공서가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 외칩니다.
“호랑이다 !”
그러나 차돌은 끄덕도 않고 앉아 있습니다.
“형님, 도망가요. 어서요.”
“허허, 왜 이리 방정을 떠는가?”
“형님. 호랑이라니까요. 저 호랑이 안 보여요?”
“도망가고 싶으면 자네 혼자나 도망가게. 나는 호랑이 따위는 하나도 두렵지가 않다네.”
“예? 호랑이가 무섭지 않다고요?”
공서는 차돌의 등 뒤에 딱 붙어 새파랗게 질려 오들오들 떨고 있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도 다 있지 않겠습니까? 호랑이는 차돌을 보자마자 납작 엎드리더니 부들부들 떨기만 합니다. 뒤에서는 공서가 떨고 있고 앞에서는 호랑이가 떨고 있고 세상에 이렇게 재미있는 일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차돌은 호랑이 앞으로 다가갑니다. 공서는 차돌의 다리를 꽉 잡고 늘어집니다.
“형님. 왜 호랑이 앞으로 무작정 다가가시오? 난 어떡하라고.”
차돌은 호랑이를 살펴보았습니다. 호랑이의 콧잔등에는 동그란 불도장 (낙인)이 또렷하게 찍혀 있었습니다. 담배통 자국이었습니다. 녀석은 얼마 전에 차돌에게 혼쭐이 난 그 호랑이가 틀림없었습니다. 호랑이는 차돌이가 다가가자 눈물을 흘리면서 두 손(앞발)을 모아 싹싹 비는 시늉을 합니다.
‘사람님, 제가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제발 목숨만 살려 주십시오’
차돌은 그러는 호랑이가 가여워서 머리를 쓰다듬어 줍니다. 호랑이는 그제서야 안심이 되는지 긴장을 풀고 차돌에게 머리를 부비며 감격한 듯 색색 숨을 몰아쉽니다.
‘사람님.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차돌은 녀석의 등을 토닥여 호랑이를 안심시켜 주었습니다.
“코돌아, 지금부터 네 이름은 코돌이니라.”
차돌은 코에 불도장이 찍힌 그 호랑이에게 코돌 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담배 피우는 호랑이
코돌이는 돼지를 통째로 먹고 있다가 차돌이 나타나자 그만 기절초풍을 하고 굴러 떨어지는 바람에 먹은 것이 체했는지
“끄억!”
“끄억!”
하고 자꾸만 딸꾹질을 해댑니다. 차돌은 갑자기 장난기가 발동했습니다.
“여보게, 공서. 곰방대에 마른 쑥 좀 다져 넣게”
“쑥담배요? 전 담배를 못 피우는 데요.”
“누가 자네더러 담배 피우랬나? 마른 쑥을 다져넣기만 하란 말일세.”
“예, 형님.”
차돌은 담배통에 불을 붙여 코돌의 입에 물려주고는 물 뿌리 빨아들이는 법을 훈련시켰습니다. 여러 번 되풀이한 끝에 코돌이는 드디어 담배피우는 법을 터득했습니다. 코돌이는 매우 영리한 호랑이인가 봅니다. 담배를 몇 모금 빨아들이자 코돌이는 크게 트림을 했습니다.
“크으르륵 크으르륵!”
매캐하고 쌉싸름한 쑥담배연기가 더부룩한 뱃속을 시원하게 소통시켜 준 모양입니다. 이 광경을 죽 지켜 본 공서는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형님. 형님께서는 무서운 호랑이를 마치 강아지 다루듯 하십니다그려.”
“다 마음일세. 내가 나를 이기는 마음. 그것만 얻으면 호랑이 따위는 두렵지가 않게 된다네.”
호랑이에게 담뱃대 선물
차돌은 코돌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코돌이가 앞으로 지켜야할 금기사항을 일러 주었습니다.
“코돌아, 사람은 절대로 해치지 말아라.”
“사람이 기르는 가축도 절대로 해치지 말아라.”
코돌이는 알아들었다는 듯이 두 귀를 쫑긋 세워 보이고 차돌에게 온몸을 부벼댑니다. 차돌은 새 곰방대를 하나 꺼내 코돌이 입에 물려주면서
“이 곰방대는 내가 너에게 주는 선물이다. 평생 잊지 말고 꼭 물고 다녀라.”
하고는 작별을 고했습니다. 그러나 코돌이는 갈 생각을 않고 납작 엎드려 타라는 시늉을 합니다. 이번에는 차돌이 감동했습니다.
“형님. 어서 코돌이를 타시지요. 사양하면 코돌이가 얼마나 섭섭해 하겠습니까?”
차돌은 코돌이를 타고 가파른 산을 내려갔습니다. 난생 처음 타보는 호랑이이지만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습니다. 산길도 끝나고 드문드문 인가가 보이기 시작할 때 차돌은 코돌이 등에서 내려 잠깐 쉬었습니다. 쉬면서 코돌이는 차돌이 주는 마른 쑥담배를 얻어 피웠는데 연기를 길게 한 모금 빨아들였다가 후우 하고 내 뿜는 모습이 혼자 보기는 아까울 정도로 일품이었습니다.
“코돌아, 수고했다. 그만 가보아라.”
차돌 일행은 코돌이를 돌려보내고 길을 걸었습니다. 한참을 걷다가 문득 뒤를 돌아보니 코돌이가 멀지 감치서 따라오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코돌아, 어서 돌아가. 사람들 눈에 띄면 안돼.”
코돌이는 차마 발이 떨어지지 않는지 자꾸만 뒤를 돌아보면서 어슬렁어슬렁 산 쪽으로 걸어갔습니다.
호랑이를 타고 돌아온 황 차돌
한편 코잿 말 사람들은 그날 해가 넘어가도 차돌과 공서가 돌아오지 않자 장 마중을 나가기로 했습니다. 장마중이란 장에 간 사람이 해가 져도 돌아오지 않으면 가족들이 횃불을 잡고 마중을 나가는 것을 말 합니다. 이십 여명의 장정들이 차돌 일행을 마중하러 코재를 올라갑니다. 횃불 든 사람이 앞서고 징과 꽹과리와 연장들을 나누어 든 사람들은 그 뒤를 따르며 외쳐 댑니다.
“황차도 - 올.”
“구공서 -”
사람들이 목이 터져 라고 부르면서 산 중턱까지 올라갔지만 아무 반응이 없자 징과 꽹과리를 쳐 댑니다. 만일 호랑이가 나타나더라도 놀라 도망치게 하기 위해입니다.
“저기 누가오고 있어요.”
사람들은 잠시 쇠 두드리는 일을 멈췄습니다.
“공서, 공서... 거기 공서 맞는가?”
“예... 모두들 웬일이십니까?”
“휴우, 자네 무사했구만 잉.”
“그러면 무사하지 않고요?”
“담뱃대 장수는 어떻게 되었는가?”
“어떻게 되다니요? 뒤에 오고 계십니다.”
“뒤에 오고 있어?”
“그럼요. 풍물소리가 나길래 무슨 일인가 싶어서 제가 앞에 와본 거예요.”
“야, 공서야 ! 왜 황 차돌이 안 보여? 혹시 호랑이한테...?”
공서친구 하나가 묻는다. 공서가 빙그레 웃으며
“호랑이를 타고 오신단다.”
라고 하니 사람들은 모두 어리둥절합니다.
“뭐라고 호랑이를 타고 온다고?”
마을 사람들에게 호랑이를 소개(?)
이때 어둠속에서 호랑이를 탄 차돌의 늠름한 모습이 또렷이 나타나 보입니다. 사람들은 까무러칠 듯 놀라
“사람 살려”
하고 모두들 놀라 도망치려고 합니다. 차돌이 산이 무너지는 듯한 우렁찬 목소리로
“여러분! ”
하고 사람들을 불러 세웁니다.
“조금도 놀라지 마십시오.”
“......”
“이 호랑이는 심성이 아주 착한 호랑이입니다.”
“뭐? 심성이 착한 호랑이?”
“개과천선한 호랑이예요.”
“호랑이가 개과천선을 했다고?”
“그렇습니다. 이 호랑이는 앞으로는 절대로 사람을 해치지 않을 겁니다.”
“호오...”
“히야...”
모두들 탄복하는 눈치들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기르는 가축도 해치지 않겠다고 나와 약속을 했습니다.”
“호랑이가 사람하고 약속도 할 줄 알아?”
차돌은 마을사람들에게 정식으로 코돌이를 소개했습니다.
“여러분. 이 호랑이는 코돌이라고 합니다. 코돌아, 마을사람님들께 인사 올려라.”
코돌이는 알아들었는지 두 귀를 쫑긋하고 사람들을 향해 앞발을 쭉 내밀고 머리를 숙였습니다. 사람들은 박수갈채를 보내 호랑이에게 답례했습니다.
지리산의 영웅, 천하장사 대왕죽 탄생
마을 사람들은 차돌이 무사히, 그것도 호랑이 코돌이를 타고 개선장군처럼 당당하게 돌아온 것을 보고 환호했습니다. 촌장이 한 마디 합니다.
“동민 여러분! 이제 우리 마을은 아무 걱정이 없게 되었소. 천하장사 황 차돌님과 코돌 호랑님이 지켜줄 것이니 모두들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하기 바랍니다.”
그러자 군중 속에서 누군가 갑자기
“만세. 천하장사 대왕죽 만세!”
라고 외칩니다. 차돌은 당황해서
“여러분. 만세는 대국(大國)의 천자(天子)앞에서나 부르는 소리입니다. 저 같은 사람에게 만세를 부르면 큰일 납니다.”
라고 말렸으나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까짓 대국의 천자가 우리한테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이오? 우리한테는 대국의 천자보다 황장사가 훨씬 더 소중한 분이시오.
“옳소!”
“우리 다 같이 우리의 은인이신 황차돌 장사님께 만세 삼창을 합시다.”
“천하장사 대왕죽 만세!”
“천하장사 대왕죽 만세!”
“천하장사 대왕죽 만세!”
대왕죽은 담뱃대 이름인데 어느새 천하장사의 별명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여러분, 코돌 호랑님도 앞으로 우리 마을을 지켜주실 귀한 손님입니다. 그러니 코돌님께 저녁 식사를 대접해 드리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촌장의 제의에 마을 사람들은 모두가
“찬성입니다.”
“좋습니다.”
하고 집집마다 닭 한 마리씩을 잡아오기로 하여 열대여섯 마리의 닭이 잡혀왔습니다. 코돌이는 그중 몇 마리만 제 앞으로 갖다놓고 나머지는 먹지 않겠다는 뜻으로 사람들 앞으로 밀어 내놓으며 고개를 가로 저었습니다.
구공서는 오늘 있었던 일을 죽 이야기 하면서 코돌이가 오전에 돼지 한 마리를 통째로 먹었기 때문에 저녁식사는 많이 못할 것이라고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여러분, 그러면 남은 닭은 삶아서 우리끼리 나누어 먹읍시다.”
누군가 이렇게 제의하자 또 한사람이 기다렸다는 듯이
“떡 본 김에 제사 지내더라고 오늘밤 풍물 한번 울립시다.”
라며 한술 더 뜹니다. 풍물(風物)이란 꽹과리. 징. 장구 등 농악에 쓰는 악기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그럽시다.”
호랑이와 함께 풍물놀이
그날 밤 코잿말 광장에서는 때 아닌 잔치가 벌어졌습니다. 집집마다 농주(農酒)를 걸러 내오고 푸짐하게 닭을 삶아가지고 내 왔습니다. 아이들까지 모두 나와 닭고기를 얻어먹으며 끼리끼리 장난을 치고 놀았습니다.
그리고는 흥겨운 농악놀이가 시작되었습니다. 어른들은 모닥불 주위를 덩실덩실 춤을 추며 돌고 코돌이는 천하장사 대왕죽을 태우고 굿거리장단에 맞추어 가뿐가뿐 돌기도 하고 아이들을 태워주기도 했습니다. 흥겨운 밤잔치가 끝나자 코돌이는 소리 없이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천하장사 대왕죽의 소문은 삽시간에 꼬리를 물고 지리산의 방방곡곡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호칭도 담뱃대 장수에서 천하장사 대왕죽으로 격상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모두들
“천하장사 대왕죽님!” “천하장사 대왕죽님”하다가 언제부터선가
“왕장사님.”
이라고 줄여서들 부르니 차돌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가 왕씨(王氏)인줄로만 알았습니다. 앞으로는 주인공을 왕장사로 부르기로 하겠습니다.
불티나게 팔리는 담뱃대
황 차돌이 천하장사 대왕죽이 된 후 그 동안 한 개도 못 팔았던 담뱃대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습니다. 코잿말은 말할 것도 없고 인근마을이나 몇 십리밖에 있는 마을에서도 담뱃대를 사러 오는 사람과 고치러오는 사람들로 왕장사가 묵고 있는 촌장댁 사랑방은 날마다 만원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모이기만하면 왕장사와 담뱃대에 관한 이야기로 꽃을 피웠습니다.
“왕장사가 파는 담뱃대는 신통력을 지니고 있다는 군.”
“글쎄 누가 아니래 ? 왕장사가 담뱃대 하나로 그 무서운 호랑이를 때려잡은 것을 보면.”
“호랑이를 때려 잡은 것이 아니고 아예 강아지 다루듯 한다는 거야.”
“그 정도가 아니야. 말처럼 타고 다닌다고 들었네.”
“그 무서운 호랑이를 타고 다녀?”
“왕장사가 출행만하면 어느새 알고 산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태우고 갔다 내려놓고 볼일 다보면 또 기다렸다가 태우고 마을 앞에 와서 내려준다는 게야.”
“그나 저나 나도 담뱃대를 식구대로 하나씩 사주어야겠는데.”
“식구대로 하나씩,”
“며느리도 사주고 엊그제 돌이 지난 손자애도 사주어야겠어.”
“아니, 자네 집은 젊은 아낙과 애기까지 도 담배를 피우나?”
“아, 이 사람아. 왜 그렇게 말귀를 못 알아듣나? 천하장사 대왕죽님의 담뱃대는 곧 부적이라고들 하잖는가? 부적. 몸에 지니고 있으면 재앙을 막아준다는 그 부적 말일세.”
“그래? 나도 식구들대로 한 개 씩 사주어야겠구만.”
“나도 그래야겠네 .”
노인들은 주로 대왕죽을 사서 씁니다. 대왕죽은 담뱃대 중에서도 가장 큰 것으로 노인들이나 부자 또는 지체 높은 분들이 사용하는 것이랍니다. 젊은이들은 곰방대를 갖고 다니는데 곰방대는 길이가 짧아 주머니에 넣거나 허리춤에 꽂고 다니기에 알맞습니다. 일명 애개죽이라고도 하는데
“애개개,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이 벌써 담배를 피우네.”
라는 말의 애개개를 따서 붙인 이름이라고 합니다. 어쨌든 왕장사의 담뱃대는 한 달이 채 못 되어 품절 되었습니다. 대왕죽은 물론 송학죽∙육모죽∙애개죽에 이르기까지 담뱃대란 담뱃대는 모조리 다 팔려 버렸습니다.
행인들이 호랑이와 쑥담배를 나누어 피우는 코잿 길.
한 동안 공포의 길목이 되어 인적이 끊겼던 코재는 예전처럼 평화를 되찾았습니다. 아니 예전보다 더 안전하고 든든한 길이 되었습니다. 코돌이가 지켜주기 때문이었지요. 코돌이는 이제 절대로 사람을 해치지 말라는 주인 왕장사의 말을 철저하게 실천에 옮기고 있었습니다.
늑대나 노루, 멧돼지 등을 잡아먹고 배가 더부룩할 때면 코돌이는 의례 행인(行人)들 앞에 나타나 입에 물고 온 곰방대를 내밀었고 그럴 때면 행인들은 기꺼이 쑥담배를 다져넣어 불을 붙여 물려주고는 함께 피우곤 했습니다.
어두운 밤에는 눈에 불을 켜고 행인들을 산 밑에까지 안내하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행인들이 잃어버린 물건이라도 있으면 냄새로 임자를 찾아 그 집 앞에 몰래 물어다 놓고 가기도 하여 코재는 지리산에 사는 사람들에게 동행인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한 밤중에도 안심하고 걸을 수 있는 정다운 오솔길로 바뀌어 가고 있었습니다.
천하장사가 들려주는 피바위 전설
왕 장사는 구공서를 데리고 코잿말을 나섰습니다. 왕정 말 공방에 가서 담뱃대를 받아오기 위해서였습니다. 어떻게 알았는지 코돌이가 천년방솔 밑에서 왕 장사를 기다리고 있다가 주인이 주는 쑥담배를 한 대 얻어 피운 뒤 인월 부근 까지 태워다 주고 돌아갔습니다.
두 사람은 인월 장터를 벗어나 황산모퉁이에 이르렀습니다. 그곳에 흐르는 인월천의 바닥에 깔린 바위는 모두가 붉은 색을 띄고 있었습니다. 공서는 처음 보는지 물었습니다.
“왕 장사님, 저 바위는 왜 저렇게 붉습니까?”
“자넨 저 바위 처음 보나?”
“네. 처음입니다.”
“이름도 못 들었고?”
“예. 아직 못 들어 봤습니다.”
“저 바위는 피 바위라네”
왕 장사는 피바위에 얽인 전설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옛날 일본 땅으로부터 왜구 2만 여명이 쳐들어와서 이곳 황산에 진을 치고 있었다. 그들은 살인과 약탈과 방화를 일삼았지만 이를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 때 만고의 영웅 이성계 장군이 개경으로부터 군사2천명을 거느리고 달려와 황산아래 진을 쳤다. 적장 아지발도는 눈만 내놓고 온몸을 철갑으로 두루고 있어 창이나 화살도 받지 않았으므로 아무리 공격을 해도 소용이 없었으며 우리 고려군은 그가 휘두르는 창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했다.
이성계장군은 묘안을 짜내 퉁두란으로 하여금 아지발도의 투구창을 활로 쏘아 맞추게 했다. 그 힘이 어찌나 세었던지 화살을 맞은 투구가 뒤로 벌렁 벗겨지면서 턱밑에 묶어 놓은 투구끈이 목을 꽉 죄는 바람에 적장은 숨이막혀 입을 딱 벌렸다. 찰나! 이성계 장군이 쏜 화살 세대가 연달아 적장의 입을 명중하자 적장은 피를 토하고 쓰러져 버렸다.
“아지발도가 죽었다.”
“와 아-- ”
이에 사기 백배한 우리 고려군은 물밀 듯이 적진으로 돌진하여 왜구를 삼대 베듯 무찔렀다. 반대로 장수를 잃은 왜구들은 싸울 뜻을 잃고 도망치기에 바빴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비명소리가 마치 만 마리의 소가 우는 듯 처절했다. 그때 서산에 걸린 달이 막 지려하자 이성계장군은 두 손을 모으고 빌었다.
“하늘이시여, 이원수들을 섬멸할 때까지만 저 달을 멈추어주소서 !”
그러자 달이 갑자기 한길이나 치솟아 올라 적군을 다 무찌를 때 까지 싸움터를 대 낮처럼 훤하게 비추어 주었다. 왜구 2만명 중 살아서 도망친 자는 겨우70여명에 불과했다. 청사에 빛나는 큰 승리였다. 이 승리를 역사는 ‘황산대첩(荒山大捷)’이라고 한단다. 그날 밤 왜구들이 흘린 피는 냇물을 이루었고 바닥에 깔린 바위는 그 피에 물들어 지금까지도 붉은 빛을 띄고 있다.
이야기를 다 마치자 공서는 왕장사의 실력에 탄복해 마지않았습니다.
“왕 장사님은 유식하신데다가 타고난 이야기꾼이십니다. 어찌나 통쾌한지 제 속이 다 후련합니다.”
뜻밖의 봉변
왕 장사 일행은 이약 이약 하다가 운봉장에 도착했습니다.
“공서, 점심이나 먹고 가세.”
“예. 왕 장사님. ”
그들은 어느 주막에 들려 국밥과 막걸리를 시켜놓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먼저 온 손님들은 왁자지껄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었는데 화제는 주로 천하장사 대왕죽에 쏠려 있었습니다. 왕 장사 옆 자리에 갓 쓴 노인과 텁석 부리 중년과 청년 몇이서 막걸리를 마시며 열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자네 천하장사 대왕죽 소문 들어 봤는가?”
“대왕죽이 호랑이 잡았다는 그이야기 말인가?”
“예 어르신. 바로 그이야기 할려고 합니다. 끄윽 !”
“앗 따 이사람아. 힘줄 늘이지 말고 할려면 빨리 좀 하게.”
“글쎄 그 천하장사 대왕죽 말이요. 어찌나 힘이 세던지 호랑이를 주먹 한 방에 날려버렸다지 뭐요? 끄억”
“그래서 호랑이는 어찌 되었다던가?”
“어찌 되긴 뭐가 어찌 돼요? 뻗어버렸죠. 끄억”
“그러고 말았단 말여?”
“호랑이가 죽어 버렸는데 무슨 할 이야기가 더 있어요 끄억”
“예끼 싱거운 사람 같으니라고.”
노인은 더 들을 것 없다는 듯이 자리를 떴습니다.
“여보게, 정말 그게 끝인가?”
“뭐? 끝? 아직도 멀었어, 이 사람아. 내 혓바닥에 기름만 쳐주면 이야기는 얼마든지 있다고.”
성급한 젊은이가 주모에게 술 한 병을 더 청해 텁석부리에게 따라주면서 재촉합니다
“그래서 그 다음은 어떻게 됐어?”.
“말하자면 왕장사가 그 호랑이 가죽을 벗겨서 사냥 복을 지어 입고 다닌 대여.”
“ 그러고 또?”
“호랑이 고기는 마을 사람들이 푹 고아서 몸 보신했다나? 어쨌다나? 아유 나도 그 이상은 몰라, 끄억.”
딸꾹이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니 구공서는 울화가 치밀어 올라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여보시오! 왕장사가 호랑이를 어쩌고 어쨌다고요? 듣자 듣자 하니 못할 말이 없구만요.”
“아니, 네놈이 누군데 끼어들어?”
“누구냐고요? 난 천하장사 대왕죽님을 모시고 다니는 구공서요.”
“네깐 놈이 감히 대왕죽을 모시고 다녀? 어디 꼭 가지 봉타리처럼 생겨가지고”
왕장사가 일어나 젊잖게 한마디 했습니다.
“여러분, 고정들 하십시오. 제가 바로 그 천하장사 대왕죽이라는 사람입니다.”
“ 아니, 저건 또 뭐야?”
“저 사람 담뱃대 장수 아녀?”
“그렇소. 나는 담뱃대 장수요.”
“예끼, 이 사람아, 포를 떨어도 분수가 있지. 천하장사가 어디 할 짓이 없어서 담뱃대 장수를 한단 말인가!”
“여러분, 저런 놈은 본때를 보여야 합니다.”
“맞소. 천하장사 대왕죽은 하늘이 낸 사람이고 우리고을의 자랑거리요.”
“그런 큰 인물을 일개 담뱃대 장수가 모욕을 하고 있소 ”
사람들은 험악한 기세로 달려듭니다. 왕장사는 얼른 꾀를 내어
“불이야!”
하고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저 뒤를 돌아보시오. 큰 불이 났오. 불이야!”
“어디? 어디?”
사람들이 당황하여 우왕좌왕할 때 왕장사는 공서의 손을 끌고 얼른 자리를 피함으로써 위기를 모면 할 수 있었습니다.
“왕 장사님. 호랑이도 무서워하지 않으면서 뭐가 두려워 그런자들을 피하십니까? 혼을 내 주지 않고요.”
공서는 직성이 풀리지 않은 것 같습니다.
“여보게 공서. 그 사람들은 다 우리 편이라네.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우리 편을 혼내 주겠나?”
“딴은 그렇군요. 제가 소견이 짧았습니다.”
천하장사 대왕죽의 소망 하나
왕장사는 길을 서둘렀습니다. 운봉에서 남원성중 까지는 60리가 넘는 길입니다. 왕장사 일행은 해거름 판에 성중에 당도 했습니다. 저자에 들러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반찬거리와 누이에게 줄 비단 옷감을 한 필 사 가지고 왕정말에 있는 집으로 갔습니다.
“어머니, 소자 잘 다녀 왔습니다.”
“차돌아, 얼마나 고생이 많았느냐.”
“오라버니.”
“서운아.”
왕장사는 어머니에게 큰 절을 올렸습니다.
“여보게, 공서. 어머님께 인사드리게.”
“어머님, 뵈옵죠.”
공서도 큰 절을 올렸습니다.
“이 총각은 누구신지?”
“어머니, 소자와 의형제 맺은 사이구만요.”
“아이유, 참으로 고맙소.”
“서운아, 네 오빠 하나 더 생겼다. 너도 인사드려라.”
“안녕하셔요? 공서 오라버니.”
“아. 예”
구공서는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얼굴을 붉혔습니다. 이튿날 왕장사는 공서를 데리고 저자에 가서 장보기를 했습니다
“왕장사님, 무슨 일인데 이렇게 장보기를 많이 하시는가요?”
“실은 내일이 어머님 생신이라네.”
“아, 그러시구만요. 그래서 그렇게 서둘러 오셨구만요.”
“공서”
“내 소원 하나가 뭣인줄 아나 ?”
“글쎄요.”
“어머니 생일상 한번 떡 벌어지게 차려드리는 걸세.”
“왕 장사님은 참으로 효자시구만요.”
“우리 집은 아버지가 나가신 후 너무나 가난하게 살았다네. 그래서 어머니 생일상 한번을 제대로 차려드리지 못했네.”
어머니의 생일 잔치
이튿날 왕장사의 어머니는 생일상을 받고 눈물을 보였습니다.
“차돌아, 고맙다. 내 이렇게 훌륭한 생일상은 처음이다.”
“어머니 많이 드시고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십시요.”
“그래. 그래야지. 그래야 며느리도 볼게 아니냐?”
어머니는 또 아들의 장가 타령이십니다.”
“어머니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십시요.”
“조금만 더가 벌써 몇 번 째냐?”
“죄송합니다. 어머니. 마음에 꼭 드는 며느리 보게 해 드릴게요.”
이날은 동네사람도 모두 초대했습니다. 방이 모자라서 마당에 차일을 치고 멍석을 깔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마당 가득히 들어 앉아 술과 음식을 들며 담소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차돌이는 출천의 효자여”
“암 그런 효자는 이 고을에서는 처음일 것이로구만.”
“이 고을 뿐인가 ? 조선팔도에는 없는 효자지.”
여기 저기서 왕장사의 칭찬이 자자 합니다.
“금년에는 아예 동네 잔치까지 벌였으니.”
“아무나 못할 일이여.”
어떤 청년이 갑자기 화두(말머리)를 돌립니다.
“자네들 혹시 천하장사 대왕죽 소문 들어봤는가?”
“남원 사람치고 천하장사 대왕죽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다요?”
“그런데 그 대왕죽은 어디 사람이 당가?”
등하불명(燈下不明)
그 말에 옆자리에서 십오륙세 쯤 되어 보이는 소년이 혼자 신이 나서 끼어듭니다.
“어르신들, 차돌 형이 바로 천하장사 대왕죽이구만요. 아. 황 차돌 말이어요.”
딱부리라는 별명을 가진 사내가 소년에게 핀잔을 줍니다.
“만석이 너 또 무슨 뻥을 치고 있는 거야? 하여간 저 녀석은 뻥 뚫어진 입이라고 입에서 나왔다하면 뻥이야, 뻥.”
“제가 무슨 뻥을 친다고 그래요? 들어보지도 않고.”
“들어보나 마나야, 임마. 동네사람들이 너한테 한두 번 속아봤냐?”
“그럼 눈 빼기 내기 할까요?”
“차라리 모가지 빼기를 하자꾸나.”
친구 하나가 만석을 두둔하고 나섭니다.
“야, 딱불아. 차돌은 소년장사라는 말을 듣고 있어. 혹 모르는 일이 잖아?”
“에라이 쑥맥 같으니. 소년장사가 아니라 천하장사라도 그렇지. 사람이 어떻게 맨손으로 호랑이를 때려 잡냐?”
딱부리 편을 드는 사람이 훨씬 더 많은 것 같습니다.
“딱부리 말이 맞아. 차돌은 어려서부터 누구하고 싸움 한번 안 해본 천상(타고난) 고진(고지식한 사람)이여.”
“그렇게 용해 빠진 사람이 어떻게 호랑이를 잡아?”
“그것도 맨손으로.”
“거 말도 안 되는 소리 작작 들 하라고.”
사람들이 자기 일을 가지고 옥신각신 하는 것을 보고 황 차돌이 자신이 천하장사 대왕죽이라고 공표(널리 알림)를 하자 사람들은 뛸 듯이 기뻐했습니다.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우리만 모르고 있었구만 잉.”
“허, 우리 동네에 큰 인물 하나 나왔네 그려.”
“하늘이 낸 인물이여”
“옛날에 어느 도사가 저 산을 보고 한 말이 있다 잖아?”
“무슨 말인데요?”
“저 기린산정기로 이 마을에 만고의 영웅이 태어날 것이라고 말이여”
만석이 더욱 의기양양해져 딱 부리를 다그칩니다.
“딱부리 아저씨. 왜 모가지 안 빼줘요?”
“요런 싸가지 없는 놈 봐라. 어디서 감히 어른 별명을 함부로 불러? 뭐? 딱부리? 그러고 모가지까지 빼 달라고? 너는 애비도 없냐? 이놈아.“
딱부리는 만석이 따귀를 한 대 갈겼습니다.
“왜 때려요? 내가 뭘 잘못 했다고 때려요?”
두 번째 소망
어머니의 생일잔치를 성대하게 열어드림으로써 왕장사는 가슴 깊숙이 간직하고 있던 소망하나를 이루었습니다. 이튿날 왕장사는 공서를 데리고 풍악산에 있는 선산에 가서 할아버지와 아버지 산소에 가서 성묘를 했습니다. 왕장사는 틈만 나면 산소를 들러 보고 손질하는 것이 일이었습니다.
“왕 장사님, 궁금한 게 있는데요?”
“뭔가 말해 보시게.”
“왕 장사님의 첫 번째 소망은 어머니 생일상 한번 크게 차려드리는 거라고 하셨지요?”
“그렇다네. 그래서 어제 생일잔치를 열어 드린게 아닌가?”
“그러면 두 번째 소망은 혹시?”
“혹시라?”
“혹시 선산에 석물(石物)이라도 올리는 거 아니신지요?”
석물이란 조상의 산소 앞에 놓은 상석. 비석등을 말합니다.
“석물보다 더 급한 일이 있다네”
“그게 뭔데요?”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행방을 찾는 일일세”
“아니, 여기 계시지 않습니까?”
“이 산소는 가묘(假墓)라네.”
“가묘요?”
그건 그랬습니다. 왕장사의 할아버지의 묘는 할아버지가 전쟁터에서 신던 군화 한짝만 묻은 것이고 아버지의 묘는 집을 나가신 날을 돌아가신 날로 정하고 신주만 만들어 묻은 것입니다.
왕장사의 두 번째 소원은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행방을 찾거나 돌아가셨다면 그 유골을 찾아와 선산에 편히 모셔드리는 일이었습니다. 공서는 왕장사의 눈에 이슬이 맺혀 있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천하장사 대왕죽 상표(商票)
그날 오후에 담뱃대 공방 조 노인을 찾아갔습니다.
“차돌이, 아니 왕 장사 왔는가? 어제 자네 자당(어머니)생일잔치에 가서 너무 잘 먹었네. 내 평생 그렇게 잘 차린 생일잔치는 처음 보았네.”
“과찬의 말씀입니다. 어르신.”
“그런데 그 많은 담뱃대를 불과 두 달 새에 다 팔다니. 아직까지 우리공방 생긴 뒤로 이런 일은 없었네.”
“감사합니다. 모든 것이 공방어르신 덕택입니다.”
“감사할 것 없네. 감사는 내가 자네한테 해야겠네.”
그것은 조 노인의 말이 맞는 말이었습니다. 왕장사의 소문이 퍼져 나가면서 왕정말 공방은 담뱃대 주문이 몰려들고 있으며 그 중에는 다음과 같은 글씨를 새겨 달라는 주문이 적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천하장사 대왕죽”
그리하여 조 노인과 왕장사는 앞으로 왕정말 공방에서 만드는 모든 담뱃대에는 천하장사 대왕죽 이라는 상표를 새기고 그 이익금의 일부는 왕장사의 몫으로 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왕장사는 우선 천하장사 대왕죽의 상표를 새긴 담뱃대 100여개를 주문했습니다. 담뱃대만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을 코잿말로 가져가기 위해서 였습니다.
“ 여보게, 왕 장사 ?”
“예, 어르신. ”
“나를 좀 도와줄 수 있겠는가?”
“예, 하명하시지요.”
“담뱃대 100여개를 만들려면. 그것도 상표까지 새겨서 만들려면 자네도 잘 알다시피 전 직공을 동원해도 족히 한달은 걸릴 걸세. 그러니 자네가 직공들을 독려하여 이 일을 추진해 주었으면 하네만.어디 믿고 일을 맡길만한 사람이 있어야지.”
왕장사는 조노인의 제의를 기꺼이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그날부터 천하장사 대왕죽 상표가 붙은 담뱃대를 제작하는 일을 총지휘하면서 손수 만들어 냈습니다. 물론 구공서와 함께. 일은 예상보다 빨리 진척되어 천하장사 대왕 죽 상표가 찍힌 담뱃대 100여개를 완성하는데 한 달이 채 못 걸렸습니다.
누명쓴 호랑이
왕 장사는 거의 한 달 만에 새로 만든 담뱃대를 가지고 구공서와 함께 지리산으로 돌아갔습니다. 코돌이가 어떻게 알았는지 코재 아래서 기다리고 있다가 왕장사를 코잿말까지 태워다 주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온 것 만큼이나 반가워 했습니다. 코돌이도 마을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으며. 닭고기를 푸짐하게 얻어먹고 어린애들을 태워주기도 하며 해가 질 때까지 놀다가 산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이튿날 이웃동네에서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요즈음도 소나 돼지들이 가끔 없어지고 있는데 사람들이 코돌이 소행으로 여긴다는 터무니없는 말을 듣고는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절대로 그럴 리가 없습니다. 코돌이는 사람은 물론. 가축도 해치지 않는 마음씨 착한 호랑이입니다”
“왕 장사님, 그런 말이 어디 있어요?”
“맞아요. 마음씨 착한 호랑이가 어디 있어요?”
“호랑이는 호랑이입니다. 아무리 착하기로서니 제 버릇 개 주겠어요?”
이 말에 왕장사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습니다.
“그 입 닥치지 못할까!”
그 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모두들 벙어리가 된 듯 숨을 죽였습니다.
“호랑이도 명예가 있는 법입니다.”
“호랑이도 명예가 있다고요?”
“그렇습니다. 착한 코돌이에게 그런 누명을 씌우면 어떡합니까?”
“누명을 씌우다니요 ?”
“ 증거도 없이 죄를 뒤집어씌우는 것이 누명이 아니고 무엇이겠소?”
“왕 장사님, 저희들은 그게 아니고 그냥---”
“제가 반드시 코돌의 누명을 벗겨 줄 테니 그리들 아십시오. ”
왕 장사는 마음에 짚이는 데가 있어서 그들에게 물었습니다.
“요사이 가축피해가 하나도 안 생긴 마을이 어느 마을 입니까 ?”
“밤골이라고 들었소이다만. ”
“ 알겠습니다. 모두들 평안히 돌아가세요. ”
우리 집 소가 없어졌어요
차돌은 저녁밥을 먹은 뒤에 공서만 데리고 아무도 모르게 밤골 촌장댁을 찾아갔습니다. 지리산 사람들에겐 천하장사 대왕죽이 자기 집에 찾아온 것만으로도 대단히 영예로운 일이었습니다.
“왕 장사가 이 밤중에 어인 일이신가?”
“그냥 바람 좀 쐬러 나왔다가 들렸습니다.”
“잘 오셨네. 참으로 고마우이. 이왕 오셨으니 누추하지만 내 집에서 며칠 유하고 가시게.”
“감사합니다. 촌장어른.”
천하장사 대왕죽이 왔다는 소문을 듣고 마을 사람들이 촌장댁 사랑방으로 몰려들었고 촌장은 막걸리를 걸러 있는 것 없는 것 다 내놓았습니다.
“왕장사님 덕택에 우리가 잘 얻어먹습니다.”
“누가 아니래? 왕 장사, 가시지 말고 이 집에서 오래 쉬어 가시게. 내 날마다 와서 이렇게 먹어 줌세.”
“하 하 하.”
“ 허 허 허.”
“왕 장사는 복을 달고 다닌 다니까.”
“별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마을 사람들은 왕 장사와 술을 마시고 담소를 나누며 밤늦게 까지 놀다가 흩어졌습니다. 그런데 이튿날 아직 동이 트지 않은 캄캄한 새벽이었습니다. 누가 찾아와 다급하게 곤히 잠자고 있는 왕 장사를 다급하게 깨우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박 칠성의 아내 동면댁이었습니다.
“왕 장사님, 우리집 소가 없어졌어요. 소 좀 찾아 주시오.”
동면댁은 발을 뻗고 통곡합니다.
“그 코돌인가 하는 호랑이가 물어간 것이 틀림 없구 만요 이를 어째, 아이고 이를 어째.”
“아주머니, 주인아저씨는 어디 계십니까?”
“지금 술에 곯아 떨어져 인사불성이어요”
칠성이 어젯밤 늦게까지 왕 장사와 술을 마시고 놀다가 집에 들어갈 때, 술김에 깜박하고 사립문을 닫지 않는 게 화근이었습니다. 새벽에 나와 외양간을 둘러보니 꼬삐가 끊겨있고 소가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소를 찾아온 호랑이
왕 장사는 서둘러 등불을 켜들고 소가 끌려간 발자국을 따라 갔습니다. 소발자국과 섞여 있는 것은 발자국은 분명 호랑이 발자국이 아니었습니다.
“여러분, 이것은 늑대 발자국입니다.”
“늑대가 큰 소를 어떻게 물어 간담?”
“늑대는 항상 암컷이 같이 다닙니다. 한 놈은 쇠 고삐를 물고 앞서 가고 한 놈은 뒤에서 소를 몰아갑니다.”
이때 산 쪽에서
“음 매 애--- ”
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우리 소 울음소리 맞아요. 우리 소가 살아 있어요.”
동면댁은 금새 얼굴에 희색이 돌았습니다.
“음 매 ---”
소 울음소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습니다. 희미하게 터오는 먼동 속에 코돌이가 소를 끌고 오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사람들은 환호했습니다.
“그러면 그렇지, 코돌이가 가축을 해칠가 있나?”
코돌이가 물고 온 쇠 고삐 끈을 땅에 내려놓고 왕 장사를 태우고 오던 길을 되짚어 산으로 다시 올라가니 사람들도 그 뒤를 따라가 보았습니다. 산모퉁이 후미진 곳에 늑대 두 마리가 죽어있지 않겠습니까? 코돌이가 늑대에게 끌려가는 소를 구해내 끌고 온 것입니다. 코돌이는 누명을 완전히 벗고 예전의 명예를 회복했습니다.
왕 장사는 밤골 마을 사람들에게도 코돌이를 정식으로 소개했습니다.
“코돌아 밤골 사람님들께 인사 올려라.”
그 날 동면댁은 코돌이에게 감사의 표시로 흑염소 한 마리를 잡아 대접했습니다. 그리고 코돌이가 좋아한다는 마른 쑥담배도 한 대 입에 물려주었습니다.
이런 일이 있는 후 천하장사 대왕죽은 더욱더 유명해졌으니 사람들은 대왕죽이 마을에 있어주기만 하면 자신들의 안전과 마을의 평화는 물론 잃어버린 가축까지 되찾아 올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마을끼리 서로 대왕죽을 모셔가려고 경쟁이 붙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이웃마을과 멀리 떨어진 외딴 마을 사람들은 대왕죽을 먼저 찾이 하려고 기를 썼으며 한치의 양보도 하지 않았습니다. 주로 가축피해가 잦은 이십 여개의 외딴 마을 대표들이 모여 대책회의를 열고 줄다리기를 계속 한 끝에 날짜를 정해놓고 돌아가면서 대왕죽을 모시기로 합의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천하장사 대왕죽은 지리산의 영웅이 되어 각 마을을 차례차례 돌면서 지켜주는 살아있는 수호신으로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물에 빠진 소년을 구출한 호랑이
지리산에 봄이 가고 장마철이 돌아왔습니다. 웅덩이 마다 물이 고이고 넘쳐 호수를 연상케 했고 폭포란 폭포는 있는 대로 물기둥을 쏟아내 그야말로 장관이었습니다.
장마가 그치고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어느 날 오후 동네 아이들 대여섯 명이 폭포가 쏟아지는 웅덩이 가장자리에서 멱을 감으며 서로 물장구를 치며 놀고 있습니다. 웅덩이는 크고 깊습니다. 그런데 그 중 한 아이가 물장구를 피하려다 무심코 깊은 곳에 발을 헛디뎌 빠져버렸습니다.
“철수가 물에 빠졌다.”
“이를 어째”
“철수 죽는다.”
아이들은 발만 동동 구를 뿐 감히 뛰어들어 철수를 구출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에 빠진 아이는 빠져 나오려고 발버둥을 치지만 폭포가 쏟아지며 만들어내는 소용돌이에 말려들어 솟았다 가라 앉았다를 계속하며 맴도느라 비명을 지를 겨를조차 없는 절박한 상황입니다. 이때.
“ 어흥.”
하는 소리와 함께 커다란 호랑이 한 마리가 웅덩이로 뛰어들었습니다.
“ 야--, 코돌이다.”
아이 하나가 환호성을 지릅니다. 코돌이는 철수의 뒷덜미를 상처 나지 않게 물고 번쩍 들어올려 철수가 더 이상 물을 먹지 않게 하고는 빠져나오려고 필사적으로 헤엄을 치기 시작합니다.
“야, 동석아. 너 빨리 마을에 가서 알려.”
동석이라는 아이가 불이나케 마을로 달려가고 나머지 아이들은 코돌이를 응원합니다.
“힘내라, 코돌아”
“힘내라, 코돌아”
코돌이도 몇 번이나 물속으로 빨려 들어가곤 합니다. 참으로 처절한 광경입니다. 마침내 코돌이가 해냅니다. 그 무서운 소용돌이를 헤치고 철수를 무사히 구해 낸 것입니다. 아이들이 코돌에게 일제히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
“코돌이 만세”
“코돌이 만세”
너무 감격한 나머지 눈물을 흘리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철수부모와 동네 어른들이 달려왔습니다. 철수는 물을 많이 먹었는지 정신을 잃고 숨만 실낱같이 쉬고 있습니다. 청년하나가 인공호흡으로 철수의 의식을 회복시켜 주었고. 코돌이도 기진맥진하여 한쪽에 쓸어져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것을 다른 청년하나가 눕혀놓고 가슴을 눌러대 먹음었던 물을 토해내고 겨우 기력을 차리게 해주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코돌이를 동네로 데려와 며칠 동안 푹 쉬게 해주고 고기란 고기는 다 먹여 원기를 회복시킨 뒤에 산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이런 일이 있는 후 코돌은 지리산 사람들로부터 절대적인 사랑과 신뢰를 받게 되었습니다.
지리산을 떠나는 지리산의 영웅 대왕 죽
드디어 천하장사 대왕죽이 지리산을 떠날 때가 왔나 봅니다. 왕 장사가 지리산 사람들과 인연을 맺은 지도 벌써 2년이 넘었습니다. 지리산 사람들에게 판 천하장사 대왕죽 표 담뱃대만 해도 수백자루가 넘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아예 지리산에 꾹 눌러 앉아 순박하고 인심좋은 산사람들과 평생을 함께 살고 싶었지만 왕장사를 기다리는 일이 있으므로 떠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왕 장사가 지리산을 떠난다는 소문이 쫙 퍼지자 마을마다 송별잔치를 벌여 일대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송별연에 한번 씩 참석하여 하직(작별) 인사를 올리는 데만도 한달 이상이 걸렸습니다.섭섭 해서 우는 사람이 한 두사람이 아니었고 물려간 소를 찾은 동면댁이나 물에 빠졌다 구출된 철수의 어머니 같은 아낙네들은 발을 뻗고 울었습니다.
“아이고 왕 장사님이 없으면 우리는 어떻게 살라고.”
마을 사람들과 마지막 작별인사를 나눌 때 왕 장사도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 그동안 지리산 사람들과 이렇게도 정이 들었더란 말인가?’
정든 호랑이 코돌과의 작별
구공서가 왕 장사를 따라 나섰습니다. 코재 꼭대기에 오르니 코돌이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왕 장사는 코돌이를 타고 산을 내려간 후 코돌이 곰방대에 마를 쑥을 다져넣고 불을 붙여주었습니다.
“코돌아, 내가 없어도 사람들을 잘 지켜드려야 한다 잉.”
코돌은 두 귀를 쫑긋 세워보였습니다.
“가축도 잘 지켜주고 잉.”
코돌이는 또한번 귀를 세워 보였습니다. 왕 장사는 코돌이를 부등켜안고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코돌이도 몹시 슬픈 듯 온몸을 부벼 대며 색색 숨을 몰아쉬었습니다.
“그럼 코돌아 잘 있거라.”
공서도 코돌이를 쓰다듬어주고 작별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코돌아, 안녕히”
코돌이는 눈빛이 풀어진 채 곰방대를 입에 물고 힘없이 터덕터덕 걸어가다가 열 번도 더 넘게 걸음을 멈추고 왕장사 쪽을 돌아보곤 했습니다. 왕장사도 눈물을 보였습니다.
부자가 된 천하장사 대왕죽
왕장사가 집에 돌아오니 이미 그는 동네에서 첫째가는 부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비록 가난하게 자랐지만 탐욕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자기도 모르게 부자가 된 것은 왕정말 공방에서 만들어내는 천하장사 대왕죽 상표가 붙은 담뱃대가 불티나게 팔려나갔고 조 노인이 그 이익금 중 왕장사 몫을 한 푼도 속이지 않고 왕장사의 어머니에게 꼬박꼬박 갖다 주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또 왕 장사에게 결혼을 재촉했습니다.
“차돌아, 네 나이 벌써 스물둘이다.”
“어머니, 일 년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
“또 일 년이나?”
제가 청나라에 들어가서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행방을 찾아보겠습니다. 1년 내에 못 찾으면 일단 돌아와서 어머니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어머니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네 뜻이 정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구나.”
“허락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어머니”
“ 1년을 넘겨서는 안 되느니라.”
“예. 어머니.”
“어머니, 그 대신 서운이를 짝지어서 어머니를 모시도록 하는게 어떻겠습니까?”
“좋은 신랑감이라도 있느냐?”
“구공서 바로 그 사람입니다.”
그리하여 17세의 황 서운과 19세의 구공서는 혼인식을 올렸습니다. 혼인식은 성대하게 치러졌습니다.
청나라로 떠나는 천하장사 대왕죽
드디어 왕 장사는 어머니께 큰절을 올리고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찾아 머나먼 청국 행에 올랐습니다.
“어머니, 부디 만수무강 하십시오.”
어머니는 눈물 바람을 하셨습니다.
“차돌아, 부디 몸 조심하거라.”
왕 장사는 다른 가족들과 공방사람들과도 일일이 작별인사를 나누고 떠났습니다. 그리고 매제가 된 구공서에게 하는 당부도 잊지 않았습니다.
“여보게, 구 서방 나 없는 동안 자네가 내 대신 아들 노릇을 해주면 고맙겠네.”
“예. 왕 장사님 염려놓으시고 청국이나 잘 다녀오십시오.”
이 이야기는 여기서 일단 멈추기로 하고 독자 여러분의 궁금증을 풀어드리기 위해 예고 편을 짧게 소개해 드립니다.
그 후 왕 장사는 몽고 땅에서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유골을 찾아서 모시고 돌아와서 선산에 안장해 드렸고 호랑이로 인해 파주 백 진사의 딸 백 낭자를 만나 결혼하여 백년해로 하고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그리고 높은 벼슬에 올라 그 이름을 천하(天下)에 떨쳤습니다.
끝
2012. 5
⌜담뱃대와 호랑이⌟ 이야기의 동호 단체
남원제산학당. 남원고전문화연구회. (사) 남원백동연죽 보존회, 남원문화대학, 남원 포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