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서의 제목인 대승기신은 일부 논서의 강령이며 근본종지이기도 하다. 대승기신을 말해본다면 대승에 대한 올바른 믿음을 발기하려 함 때문에 그렇게 말하였다.
대승이란 말은 우리가 믿어야 할 대상으로서의 제법의 자체 (法體)인 일심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법이란 중생의 마음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 마음이 바로 일체의 세간법과 출세간법을 포섭하여 자체(체대)와 그 자체가 지닌 덕상 (상대)과 그 작용(용대)인 일심삼대의 의미를 빠짐없이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의미에서 ' 大 '라고 말하였다.
乘은 이 일심삼대를 싣고 운행하다는 의미를 두고 한 말이다. 왜냐하면 모든 부처님은 이 일심을 타고 보리열반을 증득하였으며, 모든 보살도 이 일심을 타고 육도만행을 광대하게 닦으면서 아래로는 중생을 교화하고 위로는 불과를 구하며, 일체중생도 이 일심을 타고 생사의 세계로 윤회전생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중생심으로서의 일심은 일체성인, 범부의 미혹과 깨달음, 그 인과의 총체적인 모습이다. 그 때문에 논서의 본문에서는 [바로 이 중생의 마음이 일법계대총상법문체一法界大總相法門體이다]라고 말하였던 것이다.
지금은 중생들로 하여금 이 마음이 바로 대승임을 진실하게 믿고 이를 올바르게 이해하여 오류가 없게 하려 하였다. 그 의도는 요컨대 중생들이 대승에 대한 올바른 믿음을 발기하게 하려 하였던 것이다. 때문에 대승에 대한 올바른 믿음을 발기한다는 의미에서 대승기신이라고 말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대승을 믿는 주체는 사람이며, 대승은 믿을 대상인 법이다. 대승에 대한 믿음을 일으키는 (기신) 주체인 사람과 믿을 대상의 법인 대승의 의미를 함께 겸비하여 대승기신이라고 하였는데, 왜냐하면 대상인 대승법이란 중생의 기연 때문에 시설하였기 때문이다.
이 논서를 짓게 된 동기를 말해보자.
부처님이 입멸하신 지 600여년이 지나자, 소승인들은 삼계유심의 올바른 이치를 믿지 않고 마음 밖의 제법은 실유한다고 집착하여 많은 논쟁을 일으켰고, 외도는 사邪된 집착으로 대승의 올바른 법을 파괴하였다. 그 때문에 논주인 마명보살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일으켜 특별히 이 논서를 지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논서의 본문에서 이 논서를 짓게 된 인연의 동기를 말하면서 [소승인의 대승에 대한 의심을 제거하고 외도의 사된 집착을 버리게 하려 함 때문에 이 논서를 짓게 되었다]라고 하였던 것이다.
의심과 믿음은 서로 상반된다. 따라서 지금 이 마음이 대승이라는 것을 믿었다면 믿음의 반대인 의심은 저절로 제거되리라.
이 논서는 능가경, 사익경등 100부의 대승경전을 근본종지로 하여 지었다. 이를 통해 삼계유심 만법유식의 종지를 발명하고 이를 통괄해 일심으로 귀결시켜, 진여문에서 性宗을, 생멸문에서 相宗의 강요를 삼았다.
이로써 범부의 미혹과 성인의 깨달음의 근원을 심도있게 추궁하여 수행의 관건이 되는 요점을 지시하였다
이것을 두고 본문에선 [여래께서 말씀하신 심오광대한 의미를 총체적으로 포섭하였다]라고 하였던 것이다. 이는 실로 대승교의 강령과 근본종지이며, 선문의 적지的旨이기도 하다.
論이란 시비를 결택하여 올바른 이치를 발명한다는 의미이다. 이는 삼장 가운데 경장과 율장이 아님을 간별하였기 때문에 이 논서가 '론'임을 밝힌 것이다.
현수대사의 본소가 정미하고 자상하기 하나 다만 과목과 단락의 맥락이 약간씩의 간격이 생겼으므로 앞에서 이미 번거로운 것은 깎아내고 간략함을 따라 그것을 소략이라 했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그 소략 가운데서 문장과 의미가 약간은 순조롭지 못함이 있었다. 때문에 지금은 본소의 정의를 그대로 따라서 순차적으로 바로 풀이하였다. 이로써 처음 배우는 사람에게 편의를 제공하려 하였을 뿐, 감히 허망하게 억견으로 말한 것은 아니다. 이책을 보는 사람들은 이 소문을 쓴 사람이 못났다 하여 내가 한 말까지를 폐지하지 말고 그에 대한 확신을 자기 마음에서 취하기를 바란다.
법장은 소를 짓고
덕청(감산스님)은 곧장 풀이하다.
이 논서를 지은 사람은 마명보살입니다.
이 논서를 번역한 두사람은 서인도 우선니국의 '진제'와 대주 측천무후 때의 '실차난타'이다.
현수법장스님은 원효스님의 기신론소를 바탕으로 공부하여 소를 썼다고 합니다.
첫댓글
감산스님은 남화사에 육조혜능스님과 함께 '등신불'로 모셔져 있다고 합니다.
또 스님께서는 (측천무후는 아닌 것 같고 ..) 아뭏튼 거시기 분이 어마어마한 시주를 하였는데요
그때는 불교가 너무 쇄락해 있어서 불사에 쓰라고요.
그런데 감산스님께서 굶주리는 백성에게 그 시주금을 다 쓰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많은 곤란을 겪으셨데요.
감산스님의 저술이 많은 까닭이 도망다니면서 법문해주신 것이 책으로 엮어진 것이 많아서 그렇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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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서님 고생해주세요...함께 공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