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 직장 동료가 지인한테 얻은 감자라며 한 봉지 가져왔다. 즉시 깎아서 삶았다. 약간의 탄내를 풍기며 지난날 추억이 향기되어 피어 오른다. 사무실 직원들도 무슨 냄새냐고 야단이다. 한 접시 건내주었다. 잘 먹었다는 인사가 푸짐하게 되로 주고 섬이되어 돌아왔다.
언제먹던 감자인가, 어린시절 주린배를 채워주던 감자, 하지가 다가오면 보라꽃 흰꽃이 골골이 수를 놓고 떡잎에 낙엽이 보이면 감자밭으로 간다. 건실한 포기를 뽑아내고 호미로 파면 어머니의 썩은 시체에 탯줄을 걸고 크고 작은 자식들이 줄줄이 달려있다. 껍질이 톡톡터진 중년이 된 감자, 아직 젖먹이를 면치 못한 새끼감자 까지, 대식구를 거느린 감자 가족이 일제히 땅 위로 이민을 오는 순간, 굵은 것만 골라 강판에 갈아 밀가루 조금 섞어 부침개를 부친다. 먹을 입들이 먼저 달려와 대기의 줄이 길다. 한 장 부치면 젓가락 몇 개가 두어 번 왕복하면 뚝딱 없어진다. 이렇듯 감자 부침개는 항상 만족을 채우지 못하고 감질을 남긴채 다음으로 미뤄지고 말았다.
중노동을 하면서도 늘 배는 등에 붙어있고 노동보다 더 큰 가난이 대물림으로 이어져 왔기에 배고픔은 일상이라 물로 허기를 채웠다. 꼬리 달린 보리밥에 나물로 끼니를 해결하고 간식이라곤 몰랐으니 이 보다 더 좋은 새참은 없었다. 급하면 그냥 쪄도 분이 팍신하고 부드러워 이가 부실한 노인들이나 어린아이는 밥 대용으로 먹곤했다. 또 여인네들 길삼 인생길에 친구처럼 동참했던 피감자는 아리고 맛이 덜 하지만 만만한 간식으로 부담없이 먹었다. 굵고 맛있고 좋은것은 더욱 맛나게 소금간과 단맛을 가미해 남자들에게만 제공했다. 껍질 깐 감자 먹는것도 죄스러워 눈치보며 먹었다.
아주 작은 감자는 골라서 조림으로 해 먹고 또 양이 많으면 깨끗이 씻어서 큰 독에 담고 물을 가득 부어 햇빛이 드는 곳에 비니루로 싸매어 얼마간 썩힌다. 생감자는 더운물을 가장 싫어한다. 씌워놓은 비니루가 빵빵하게 부풀어 오르고 거품을 가득 빼물며 성깔을 부린다. 온 동네 냄새를 퍼트리며 시위를 한다. 절대로 몰래 할 수 없는 일, 시간이 지나면 조용히 가라 앉는다. 비니루를 벗기고 보면 감자가 전부 동동 떠 있다. 다 썩어서 물이 가득 들어있다. 말랑한 감자를 터트려 채로 거른다. 가만히 가라앉혀 앙금을 만든다. 빛 좋은 날 단단히 가라앉은 앙금을 물을 따라내고 널어 말린다. 너무 마르지 않을 때 채로 잘 내려서 가루를 만든다. 익반죽해서 울타리 콩이나 동부콩을 넣고 떡을 하면 투명한 잿빛을 띄우며 쫀득하고 맛있어 절대로 값싼 음식이 아니다. 묵도 쑤고 도배하는 풀도 쑤고 요긴하게 사용했다.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썩어서 먹는것은 감자 뿐이란다
집에오니 택배가 와 있다. 친정에서 보낸 아직 흙이 묻은 방금 캔 감자이다. 몇 개를 삶는다. 가뭄으로 영양이 부실하여 맛이 예전만 못할줄로 알았는데 생각보다 맛있다. 옛날에는 보라색 감자, 분홍색 감자, 노란감자 흰감자 이었는데 지금은 모두 흰감자 뿐이다. 감자를 먹으며 생각한다. 농사란 하늘과 사람의 합작품이다. 어느 한 곳이 소홀해도 제대로 된 농작물을 기대할 수 없다.
나도 농촌에서 불혹을 넘기고 상경했다. 농사란 정말 피를 말리는 작업이다. 비가 많이 와도 걱정, 안 와도 걱정, 태풍이 불어 논밭이 다 쓸려갔을 때는 인생 다 된것 같고 살맛이 안 난다. 그러니 농작물을 보면 대충 짐작이 간다.
부모님과 오빠가 돌아가시고 행하니 넓은 집을 외로움으로 채우며 올캐언니가 선산을 지키고 있다. 코 끝이 찡 하다. 당신 자식도 육남매나 두었는데 이 늙은 시누이가 뭐 이쁘다고 지독한 가뭄에 애지중지 키운 감자를 나에게 까지 보냈을까? 순홍안가에 뼈대를 세워주고 가난한 내 부모님을 끝까지 모신 소중한 여인, 활처럼 굽은등, 두꺼비같은 손에 운명처럼 들려진 호밋자루, 앞을 봐도 뒤를 봐도 애둘러 산 뿐인 동네, 사이사이 골짜기에 미로처럼 들어 앉은 구들장 논 밭, 오빠가 남기고 간 유산을 소중히 지키며 살고있는 순진하기 그지없는 노인이다. 한글도 모르는 분이 주소는 어떻게 알았으며 누구의 도움으로 보내셨을까?
감자 상자를 바라보며 생각한다. 어떻게 먹으면 맛있게 먹을 수 있을까? 고추장 감자찌개도 해 먹고, 볶아서 반찬으로도 먹고, 또 납작납작 썰어서 튀김도 하고, 부추 한 단을 사고 감자를 채설고 청량고추 한 개를 썰어넣고 감자전을 부친다. 옛날 농사지을 때 자주 만들어 들에 새참 내 가던 생각이 뒤 따라 온다.
추적추적 비가 오는 날, 인부들을 사서 고추딸 때 불같이 달려와 바람처럼 해 내가던 음식, 바로 감자전이다. 얼굴에 땟국물을 흘리며 정말 맛 있다고 엄지척을 건내주던 내 고마운 이웃들, 지금은 어디서 무얼하며 살고 있는지 나 처럼 흐물흐물 늙어가고 있겠지, 한 친구는 울산 어디에 살고 있고 또 한 친구는 포항 어디에 살고 있단다. 가족같이 수족같이 지내던 아리도록 짠한 내 젊은 날의 스케치, 도봉산에 올라서 아득히 박무 너머로 자음과 모음을 조립하니 궁금증이 기어나와 사연을 잰다. 그리움에 살을 입혀 띵똥!! 내 고향에 소식을 전송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