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진 전무와 나는 초등학교 4,5,6학년 내리 같은 반을 한, 동네 친구 인연으로 이제까지 절친으로 지내왔었습니다. 내가 해암회 입시에서 떨어져 시름에(?) 잠겨 있을 때에도 병진이가 선배들에게 땡깡부려, 내가 보결로 해암 18기가 되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고, 약간 험하게 생긴 하드웨어로(소프트웨어는 전혀 아니지만) 보디가드로도 쓸만했었습니다. 지난 주 토요일 새벽에 전화 받고 병원 가보니 금새라도 일어날 것 처럼 편안하게 숨쉬고 있었는데 그게 다 기계에 의존해 생존 중이란 이야기 듣고는 얼뜨기 기독교인 인지라 기도도 안 나오고, 인생무상 운운하는 개똥 철학도 생각이 안나고, 갑자기 대학 입학 후 병진이집 마루에 앉아 조용필이란 신인가수의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듣던 그 때가 생각 났습니다. 이유는 나도 모릅니다. 눈물도 났습니다.
18기의 트로트 메들리를 도입한 것도 병진이였고, 2학년 초 정숙씨(현재의 재수씨)와의 첫 만남 때도 같이 있었고, 전남 함평에 면회갔던 일도 생각이 납니다. 어릴 때 병진이가 우리집에 오면 내 막내동생과 우리집 강아지가 너무 좋아했었는데 공중에 들어 올렸다, 돌렸다, 내동댕이 치고, 내가 보기에는 괴롭히는 것 같은데 좋아들하니 이해가 안되었지만.... 울산에 있을 때는 자주 못 보다가 최근에 서울오고 나서 골프도 한번 쳤고 가족 모임도 가졌었고 자주 볼 기회가 많았었는데 이런일이 생기는 군요.
병진아 좋은데 가서 편히 쉬거라 시간 나면 고딩 때 같이 듣던 팝송이랑 조용필 1집도 꼭 찾아 들어봐라. 그리고 해암인 여러분 볼수 있을 때 자주 봅시다.
18기 최해진 (박해진 아님, 유사상품에 유의하시길)
첫댓글 79년 10월 이후 휴교령으로 학교에는 갈 수 없고 당시 동규선배(15기)께서 수안동에서 독서실 관리를 하였습니다. 매일 아침만 되면 수안 독서실에 병진 형, 용성 선배 등과 모여 공부했습니다. 일명 수안 카지노에서... 매일 병진형과 나는 가지고 온 용돈을 용성형에게 뺏겼습니다. 그래서 병진형과 나는 밴또(도시락)으로 불렸습니다. 그해 가을, 겨울, 봄을 수안 카지노에서 인생의 많은 공부를 함께 했습니다. 병진형이 갑자기 군에 가는 바람에 형 대신 시험도 한 과목 쳤습니다. (형은 공대 화공과 나는 사범대 교육학과) 이름만 쓰면 되었으니... 이제 병진형을 볼 수 없어 슬픔니다.
두분의 이야기가 마치 어느 소설의 한귀절처럼, 어느수필의 에피소드처럼 아련한 그리움으로 들리우네요
순수의 시절 그애틋함이 ....저도 그런친구가 불현 생각이 나네요
형님들의 슬픔에 동참은 못하지만 바라보는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네요
삼가 고인이신 병진선배의 명복을 빌어봅니다
마음으로 응원합니다 해암18기 선배님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