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병교육대
의무적으로 시간에 맞춰 입영열차를 타니, 열차가 무거운 침묵속에서 달리고 달리더니 의정부까지 왔다. 그곳에서 형식적인 신체검사를 받고 신병교육대 배정을 받았다. 내가 배정받은 곳은 2×사단 신병교육대였다. 버스를 타고 도착한 날은 198×년 1월 18일쯤이었다. 살이 에일 듯한 추운 날씨였다. 시설은 그야말로 열악했다. 건물은 시멘트 벽돌로 지은 오래된 막사였다. 첫날 자리 배정을 받고 더블백을 관물대에 정리한 뒤 생활관이 정해졌다. 날씨가 너무 추워 연병장에서 하는 교육은 많이 자제 되었다. 그런데 하룬가 이틀인가 지나자 내 옆자리에 새로운 동기가 들어왔다. 그는 참 머리가 좋았다. 암기를 정말 잘하는 천재였다. 우리가 아무리 외워도 길어서 잘 외워지지 않던 ‘군인의 길’을 그는 조교 앞에서 막힘없이 줄줄 외워냈다.
모든 암기 사항 발표는 처음부터 내 옆의 신병에게 시켰다. 아마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조교나 교관들이 그의 머리를 시험해 보는 것 같기도 했다. 그 동기는 특별했다. 밤마다 자주 불려 나가 늦게 돌아오곤 했다. 어느 날 밤늦게 들어온 그에게 내가 물어봤다. “너는 왜 밤마다 맞고 들어오냐?”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나는 데모하다가 잡혀서 군대로 끌려왔어.” 그리고 자신이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2학년이라고 했고, 부모님은 자신이 군대에 잡혀온 사실을 모른다고 했다.
그 이후 고문관이었던 나도 그를 유심히 보게 됐다. 아침 기상과 동시에 실시되는 3km 구보에서 군가를 부르며 노래에 맞춰 발을 구르며 뛰는 시간에도 그는 제대로 뛰지 못했다. 밤마다 어디선가 맞고 돌아온 탓인지 늘 지쳐 보였다. 그러면 조교는 뒤에서 손짓과 발길질까지 해 가며 억지로 뛰게 만들었다. 그렇게 밤마다 어디론가 끌려갔다 와 힘겹게 훈련을 받던 그도 몇 주가 지나니 덜 불려갔다. 결국 그 친구도 길고 긴 6주 훈련을 마쳤다. 마침내 자대 배치가 내려지고 우리 모두는 이등병 계급을 단 의젓한 군인이 되었다. 우리들 대부분은 GOP 철책부대로 갔으나, 그와 다른 몇몇은 GOP로 가지 못하고 전방 부대에 남았다. 혹시 월북 할까봐 그랬나 그땐 잠시 그런 생각도 했었다. 현재 나는 그가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까 그게 무척 궁금하다.
이후 3대대 2중대 1소대에 배치된 나는 신병교육대에서 배운 총검술과 군가들이 군 생활에 큰 힘이 되어주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가장 많이 부르게 된 노래들이 있다. ‘멋진 사나이’, ‘너와 나’, ‘멸공의 횃불’, ‘팔도 사나이’, ‘전우’ 같은 군가들은 행군할 때나 작업할 때, 또 힘든 순간마다 불렀다. 아마 그런 군가들이 없었다면 고된 군 생활을 견디기가 훨씬 힘들었을 것이다. 지금도 산에 올라가면 군가를 콧노래로 부르며 야~호를 외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