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용할 양식’은 예수님이 가르쳐 준 주기도문에 들어있기에 크리스천에게 아주 익숙한 구절이다. 이 말의 원래의 뜻은 사람들이 날마다 살아가는 데 요구되는 먹을거리인 식량이다. 그렇지만 식량뿐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생필품을 함축적으로 의미한다.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5가지 항목에 지나지 않은, 길지 않은 기도문에 다소 의아한 내용인 생필품의 요청을 넣으셨다. 평생 부유하게 먹고 살 수 있는 재물이라면 모를까, 겨우 생존을 위해 필요한 생필품을 요구하라는 것은 엄청난 지상의 축복을 기대하고 있는 우리에게 다소 맥 빠지는 내용일지 모른다. 그렇지만 우리는 깊게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예배의 마침을 알리는 즐거운(?) 행사로서 주기도문의 암송을 반복하고 있다.
예수님이 일용할 양식만을 원하신 이유
초등학교 시절의 운동회는 빛바랜 사진처럼 평생 잊지 못할 정겨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전날 사주신 새 운동화를 머리맡에 고이 두고, 잠에서 깨자마자 신어보며 자랑하고 싶어 온 동네를 뛰어다녀본다. 새벽같이 일어나신 어머니는 시장을 오가며 과자며 음료수를 마련하거나, 부엌에서 우리가 점심으로 먹을 김밥을 싸기에 바쁘다. 그 광경을 흐뭇하게 지켜보면서, 우리는 체육복차림으로 신나게 콧노래를 부르며 학교 운동장엘 간다. 점심시간이 다가오면 어머니는 예쁜 옷차림에 칭얼거리는 어린 동생을 달래가며 맛있는 먹을거리를 양손 가득 싸들고 와서, 내가 힘차게 달리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실 것이다. 이윽고 고대하던 점심시간이 되고, 우리는 시원한 나무그늘을 찾아 도시락을 펼치고 신나는 점심시간을 즐긴다. 이처럼 어린 시절의 운동회는 달리기에서 상으로 탄 공책이랑 연필과 함께, 어머니가 준비해주신 맛있는 점심시간으로 인해 기억에서 잊히지 않는다. 봄철 소풍이나 가을운동회, 어느 행사든지 어머니는 내 곁에서 늘 맛있는 먹을거리를 마련해주시기에, 어린 시절은 언제나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겨우 일용할 양식만을 기도할 것을 요구하신 것은, 어린 시절의 어머니처럼 늘 곁에 있어주시고 때를 따라 풍성하게 공급해 주실 것은 암시해주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평생 필요한 식량뿐만 아니라 예기치 못한 불행과 재앙에 대비해서 충분한 재물을 요청하라고 가르치셨을 것이 분명하다. 하나님은 세상을 지으시고 모든 동식물들이 풍성하게 먹고 살만한 환경을 마련해주시고 공급해주신다. 특히 기뻐하시고 사랑하시는 자녀들에게 세상을 다스리는 관리권까지 맡겨 주셨다. 물론 이를 받아들이는 것은 견고한 믿음을 통해서이다. 믿음의 눈으로 본다면 우리가 먹고 사는 걱정은 기우에 불과하다. 하늘을 나는 새와 들에 핀 백합화조차 먹이시고 입히시는 하나님께서 최고로 아끼시는 당신의 자녀들을 외면하실 리가 없다.
하나님이 세상과 더불어 사람들을 지으신 목적은 영광을 받으시기 위함이다. 즉 사람들이 이 땅에 태어난 목적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라는 것을 모든 크리스천이라면 인정해야 한다. 그런데 먹고 사는 것을 걱정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것에 몰두하며 산다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한 자신의 정체성을 잊고 살게 마련이다. 그런 사람들은 현재의 재물에 만족하지 못하고 미래에 필요한 재물을 더욱 모아두며 지키는 데 많은 시간을 바칠 것이다. 재물에 온 정신이 팔려있다면 아마 평생을 그렇게 살 것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일용할 양식을 위한 기도는, 생존에 필요한 재물을 얻는 것에만 관심과 시간을 들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남은 시간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한 본연의 목적에 충실하며 살아야 할 것을 요청하시는 것이다. 물론 이같이 말씀하시는 속내는, 우리가 미래에 필요한 재물은 염려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충분히 공급해 주신다는 약속이 들어있는 셈이다. 사람에게 주어진 몫인, 자신과 가족을 위한 재물을 얻기 위한 노동은 마땅히 행하여야한다. 그렇지만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신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신뢰하는 믿음이 밑바탕에 자리 잡고 있다면 쓸데없는 걱정이나 공상으로 지어낸 염려에 마음을 빼앗기고 불안해하지 않는다. 이를 믿지 못하고 미래의 자신을 위해 더 많은 재물을 쌓으려는 탐욕에 사로잡혀 살아간다면 평생을 걱정과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불안 속에서 살게 될 것이다.
어디까지가 내게 합당한 일용할 양식인가?
우리네 조상들이 살았던 조선시대의 일용할 양식은, 조석(朝夕)이라 불리던 아침과 저녁 두끼의 식사만 해결하면 더 바라지 않았다. 그렇지만 지금은 점심을 추가해 세끼의 식사가 주어져야하고, 식사메뉴나 반찬의 수도 더욱 풍성해지고 다양해졌다. 당뇨병을 가진 환자라면 거친 잡곡에다 기름과 양념이 절제된 적은 반찬일터이지만, 미식가라면 일반사람이 알지도 못하는 다양한 종류의 메뉴를 요구할 것이다. 일용할 양식이 함축하고 있는 생필품이나 생계비 역시 사람마다 기준이 들쑥날쑥하다. 산골에서 텃밭이나 일구면 사는 농부라면, 바람과 추위를 가릴 따뜻하고 아담한 집과 배불리 먹고 살만한 농토만 있으면 좋겠다고 할 것이다. 도시에서 나서 자란 대부분의 사람들은 30여 평은 되어야하는 번듯한 아파트에다 자녀를 대학에 보내며 노후에도 충분한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제법 산다고 하는 이들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강남의 널찍한 맨션아파트와 부부 각각의 자가용에, 해외 명문대학에 자녀를 유학 보낼 형편은 되어야 한다고 내심으로 여기고 있는 지도 모른다. 각자 살아온 환경이 다르기에 최소한의 생존에 필요하다며 여기는 기준이 다른 것도 당연한 것이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세우신 원칙과 우리가 생각하는 기준은 다르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요구가 무엇이었든지 간에,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지 않다면 김칫국만 들이키고 있음이 분명하다. 국민소득이 적잖이 차이가 나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에서 살고 있는 이들이 생각하는 생필품과 생계비는 다르다. 같은 나라에 살고 있다하더라도 소득수준이나 생활환경에 따라 그들이 생각하는 일용할 양식이 같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제시하시는 기준은 무엇일까? 나라의 경제력이나 개인의 소득수준에 따라 다르게 정하신다면 공의로 다스리는 그분의 원칙에 벗어날 것이다. 하나님은 경건의 훈련으로 절제와 자족의 성품이 몸에 밴 상태에서, 그들이 생각하고 원하는 생활수준이 바로 하나님이 정하신 일용할 양식이다. 절제는 영어로 self-control이다. 자신이 원하고 바라는 상태가 아니라 마음을 통제하고 다스리는 상태가 된 성품을 말한다. 자족이란 자신이 처한 환경이나 상황이 어떠하든지 상관없이 만족한 마음의 상태를 말한다. 자족의 성품은 욕심이 사라지고 절제가 몸에 밴 상태에서 자리 잡은 마음이 될 것이다. 절제와 자족이 성품으로 훈련이 되어 마음을 다스리고 있는 상태에서 사람에게 필요한 생존의 조건이 하나님이 바라고 원하시는 일용할 양식이 되는 것이다.
이 기준에 의한다면, 개인의 소득수준이나 그가 속한 나라의 경제력이 아니라 경건의 훈련을 통해 몸에 밴 절제와 자족의 성품의 정도에 달려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호화스러운 강남의 맨션아파트가 아니라 15평의 임대아파트라도 만족할 수 있고, 중산층을 대표하는 고급 중형차는 차치하고 버스와 지하철로 다니더라도 불편함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가난과 빈궁함을 풍요로움과 부요함보다 더 쳐 주시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마음의 상태와 동기이다. 그러므로 형편에 따라 부지런히 일을 하고 지혜롭게 벌어두어 크고 너른 아파트에 살며 자녀를 해외 유학을 시키며 부유하게 살더라도, 돈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곳에 만족하면서 살아간다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용할 양식의 기준에서 벗어나지 않은 것이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절제와 자족의 훈련은 하려하지 않고, 자신이 정한 생활수준만을 고려한 생계에 필요한 재물만을 요청하고 있다. 절제와 자족함으로 마음을 다스리지 않는다면 아무리 많은 재물이라도 만족하지 못할 것이고 더 많은 돈을 요구할 것이 뻔하다. 다른 나라에서 보면 우리는 잘사는 나라에 속하고 먹고 입고 사는 형편은 좋아 보이지만, 우리는 늘 불만스럽고 만족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므로 나보다 부유한 이에게 초점을 맞추기 전에 하나님의 기준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 풍성하고 넉넉하게 공급하시는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절제와 자족으로 마음을 다스리고 있다면 왕궁이나 초막이나 상관없이 평안하고 만족한 삶을 즐기게 될 것이다.
높은 생활수준을 누리려면 능력을 갖춰라.
경건의 훈련을 통해 절제와 자족의 성품이 몸에 배어 돈에 마음을 두지 않고, 최소한의 생계비와 생활환경이 주어지더라도 평안하고 만족한 삶을 살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절제와 자족의 성품은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속세를 버리고 깊은 산중에서 도를 닦는 수도승이 아니라면 모를까, 돈이 삶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을 벌고 관리하는 것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 붓고 있다. 이들은 부와 재물이 안락하고 행복한 삶을 보장해준다고 믿기에 잠에서 깨어 잠자리에 누울 때까지 돈을 좇고 있다.
설령 나름대로 절제와 자족의 성품을 닦으려고 애쓰는 크리스천들이라 할지라도, 궁핍과 가난에서 오는 불편함과 고통을 이겨내리란 쉽지 않다. 또한 이웃과 주변의 생활수준이 높아져서 남과 쉽게 비교되기에 이를 극복하려는 노력은 눈물겨운 고행에 가까울 지경이다. 그러므로 남다른 각오를 세우며 시작했다 할지라도 나약한 의지와 연약한 인내심으로 열매를 거두기 어렵다. 부자가 아니더라도 자녀가 원하는 만큼의 교육비는 적지 않은 돈이 든다. 또한 크고 너른 아파트가 아니더라도 한 가족이 발을 뻗고 누울 좁은 아파트라도 장만하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평균 수명은 늘어났는데 아무런 대책이 없이 노후를 맞이하는 것은 눈물과 고생이 눈앞에 보이는 일이다. 그러기에 절제와 자족함을 갖추는 것도 필요하지만, 최소한의 생활에 필요한 재물을 얻는 능력을 얻는 일이 중요함에 틀림없다.
하나님은 세상을 지으시고 동식물을 포함한 사람들이 충분히 먹고살만한 풍족한 환경을 마련해 주셨다. 그렇지만 이를 얻는 노력은 자신들의 몫이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부지런히 일해서 생계에 필요한 수입을 벌어들여야 한다. 최소한의 생계비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보다 넉넉한 생활비가 필요하다면 부지런히 일하는 것만 가지고는 부족하다. 하나님으로부터 신령한 지혜와 총명을 받아서 삶에 지혜롭게 적용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여러 가지 재능과 특별한 능력을 주셨다. 그 재능을 계발해서 지식과 경험을 쌓는다면 보다 풍부한 열매를 맺을 수 있다. 그렇지만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재능과 적성이 맞는 일에 오랫동안 실력을 갖추고 경험을 쌓는다면 전문가의 반열에 오를 것이다. 자신의 분야에서 전문가의 입지를 굳힌다면 적은 시간을 일해도 많은 수입을 얻게 될 것이다. 직장에 다니더라도 직급과 경력이 쌓여 지위와 수입이 많아질 것이고, 장사와 사업을 한다면 그동안의 경험이 실패의 위험을 막아주며 좋은 관계를 맺어온 많은 고객들이 자산이 되어 고소득의 원천이 될 것이다. 같은 전문직이라도 오랫동안 한 분야에서 오랫동안 실력을 쌓아 명성이 자자한 프로와, 이제 겨우 자격증을 획득하고 이 분야에 뛰어든 아마추어하고는 수입을 비교할 수 없다. 보다 높은 수입을 원한다면 자격과 실력을 갖추는 일이 중요하다. 풍성한 열매를 얻는 수입원과 절제와 자족으로 다듬어진 성품은 생계에 필요한 일용할 양식과 함께 평안하고 형통한 삶을 영위하게 해 줄 것이다.
일용할 양식에 만족하려면
돈을 누구나 갖고 소유하고 쌓아두고 싶어 한다.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갈증이 심한 것도 돈이다. 그래서 부자는 백만장자가 되고자 하고 백만장자는 억만장자를 꿈꾼다. 고기도 먹어 본 사람만이 그 맛을 안다고, 돈도 가져본 사람만이 돈이 주는 즐거움과 뿌듯함을 언제나 누리고 싶어 한다. 그런데 단지 생존에 필요한 일용할 양식에 만족하고 사는 것은 돈을 추구하는 세상 사람들의 성향에 반기를 드는 행위이다. 그래서 돈을 사랑하는 마음이 죄와 악의 시작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크리스천조차도 돈을 쉽게 뿌리치지 못한다. 그렇지만 돈을 추구하고 좇아가는 삶은 영혼을 잃는 지름길로 향한다. 삶에 필요한 재물은 지혜롭게 쌓아두고 관리해야겠지만, 탐욕을 채우는 도구로 쓰인다면 단호하게 거절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갑자기 집에 불이 났다면 급히 들어가서 가장 귀중한 것부터 챙길 것이다. 화급한 사고가 생기지 알지 못한 채 곤히 자고 있는 자녀가 있다면 급히 깨워 안전한 장소로 이동시켜야 할 것이고, 그 다음에 소중한 재물이나 귀중품을 챙겨 갖고 나가야 한다. 평범한 화분이나 지난호의 잡지책 같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을 찾느라고 귀중한 시간을 보내는 이들이 있다면 참 한심할 것이다. 시간이 넉넉하다면 이것들도 챙길 수 있겠지만, 불이 점점 타 들어와서 언제 집이 무너질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순간에 귀중한 것과 사소한 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시간을 낭비한다면 어리석고 미련한 짓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가 사는 세상은 유한하며, 누구나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 지나면 손을 놓고 이 세상을 떠나야한다. 사랑하는 가족이나 귀중한 재산은 물론이고 무엇 하나 가져갈 수 없다. 아무리 아끼는 재물이 있다고 하더라도 저승에서는 아무런 쓸모가 없다. 천국에 들어가려면 하나님의 뜻에 맞는 조건에 맞게 살아야 하는데, 많은 재물을 모으고 쌓아두는 일에 시간과 정력을 모두 소비한다면 결국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기회를 놓치게 되는 어리석은 일이다. 세상을 사랑하고 세상의 재물을 소유하려는 세속적인 삶의 태도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과 반대로 나 있다. 그러므로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그다지 쓸모없는 일에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면 일용할 양식에 만족하며 지나친 탐욕을 다스리고 천국만을 바라보며 살아야할 것이다. 언제 하나님이 불러 가실지 모르기 때문이다.
건고한 믿음은 돈에 기대려는 유혹을 쫒아낸다.
일용할 양식에 만족하고 끝없는 욕심을 채우려는 탐욕을 물리치는 근원은 견고한 믿음에 있다. 세상에서 배우고 경험으로 아는 돈의 힘을 믿느냐,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믿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믿음의 크기에 달려있다. 크리스천이라면 누구나 돈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노라 하겠지만, 견고한 믿음을 동반하지 않는다면 말뿐인 구호에 불과할 것이다. 믿음에 대한 가르침은 오랫동안 교회에서 배워왔겠지만,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믿음의 소유자가 되는 길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적지 않은 크리스천들이 생각하는 믿음의 척도로, 새벽예배와 주일 성수, 성실한 십일조생활 등을 근거로 들고 싶어 하겠지만, 이러한 신앙의 행위가 견고한 믿음을 대신해 주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성경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하는 습관이 바탕이 되고, 쉬지 않은 기도로 성령님과 깊고 친밀한 교제를 생활화하는 것을 요점으로 하는 경건한 신앙훈련으로 풍성한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신령한 지혜와 총명을 받아 평안하고 형통한 삶을 누리고 있어야 한다.
견고한 믿음이 성령님과의 깊은 교제에서 나오는 열매가 아니라, 단지 형식적이고 반복적인 종교행위에서 굳어진 신앙의 습관이라면 아무런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성령의 열매로 일컬어지는 경건한 성품들이 일상의 삶에 드러나지 않는 것을 보고 쉽게 알 수 있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성령님의 내주와 교통하심에 따라 맺어지는 열매이다. 신앙생활의 연륜과 성경지식의 정도에 따라 생겨나는 게 결코 아니다. 적지 않은 크리스천들이 교회에서는 경건한 모습을 보일지라도 가정이나 직장, 사업장에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풍겨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일용할 양식에 만족하며 평안한 삶을 영위하는지 아님 더 많은 돈을 찾아 세속적인 풍조를 좇아 살아가는 지의 선택은, 내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고 성령님이 나를 통치하고 있는 지의 여부로 판가름 날 것이다. 날마다 성령이 함께하며 깊은 교제를 나누며 살아간다면 세상과 세상의 것들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세상에서 필요한 재물들은 전지전능한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시므로 오늘에 필요한 일용할 양식에도 만족하고 감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견고한 믿음만이 불안한 미래에 대한 걱정과 쓸데없는 두려움을 쫒아내고 평안하고 즐거운 날들로 채우게 해준다. 물론 삶에 필요한 재물을 얻기 위해 건강한 직업을 갖고 정직한 노동을 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주어진 몫이다. 그런다면 나머지 모두를 채워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임무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역할까지 가로맡아 걱정하고 염려한다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그러므로 성실한 노동과 더불어 견고한 믿음만 있다면 일용할 양식에 만족하고 언제나 감사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