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헤어질 결심>은
객관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본질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는 두 남녀의 모험담을 들려 준다.
그러나 그 이야기는 결국 좌절감으로 끝난다.
자칭 '깨끗하고 품위있는' 형사 해준은,
현장, 관찰, 기록, 사진을 믿는다.
거기에 더해 내부자적 관점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쓴다.
상대방의 입장을 배려한다.
해준은 한국어가 서툰 서래를 위해서 후배 형사에게 당부한다.
"가서 목격자 없는 변사체는 부검하는 게 매뉴얼이라고 설명해...쉬운 말로 해드려. [...]
우리 마누라도 안 놀랄 것 같은데. '내 그럴 줄 알았다. 그래서 경찰이랑 결혼하기 싫었다.'"
후배 형사가 서래가 무서운 여자라고 경고할 때도 후배를 가르치듯 대구한다.
"슬픔이 파도처럼 덥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물에 잉크가 퍼지듯이 서서히 물드는 사람도 있는거야."
해준은 서래에게도 자신의 객관적 자세를 자랑한다.
"서래씨가 나랑 같은 종족이란 걸 진작에 알았어요. 남편 사진을 보겠다고 했을 때. '말씀은 싫다고.'
나도 언제나 똑바로 보려고 노력해요."
하지만 해준은 자신의 오인을 확인한 뒤, 자신은 '붕괴'되었다고 선언한다.
"내가 품위 있댔죠. 품위가 어디서 나오는지 알아요? 자부심이에요. 난 자부심 있는
경찰이었어요. [...] 나는요, 완전 붕괴됐어요."
* 영화 속에서, 붕괴는 '무너지고 깨어짐'이라고 정의된다.
이 영화에는 변주처럼 감각의 불완전함을 여러 에피소드들을 통해 반복적으로 이야기한다.
해준의 아내는 담배 냄새로 남편의 '바람 핌'을 '담배 핌'으로 착각하고,
한 의사는 해준의 불면증에 엉뚱한 처방을 한다. 해준의 아내는 그런 의사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선생님 우포 개업한 지 얼마 안 됐죠? 여긴 해 없어요. 안개 때문에."
시간이 흘러, 다시 해준은 서래를 수사하게 되고, 서래에게 '이번 알리바이는 차돌처럼 단단해야 할 것'
이라고 엄포를 놓는다.
여전히 그는 자신이 속한 세상이 본질적으로 거짓과 참을 구별하기 힘든 곳임을 깨닫지 못한다. 그래서
헛되이 자신을 괴롭힌다. 해준은 서래의 정황이 '공교롭다'고 판단하고, 서래는 '참 불쌍한 여자네.'라는
새로운 해석을 내놓는다.
붕괴된 형사는 객관적 사실과 심증, 어디서도 안정을 찾지 못하면서 집요하게 사건에 매달린다.
동료: "범인이 부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왜지요? 침입흔적과 도난흔적과 결박흔이 없어서요? [...]
저 분 오른손 잡인데."
해준: "그러니까 생각을 해야지. 어떡해서 저 여자가 범인인지."
이 영화는 객관과 주관이 뚜렷하게 구별되지 않는, 감성과 이성이 서로 속이는
그런 세상 속을 살아가고 있는,
자신만의 성실함, 강인함, 통찰력으로 무장한 오만한 두 남녀의 팽팽한 대결을 보여 준다.
기껏 상호주관성으로밖에, 그 정도밖에 서로에게 다가갈 수 없으면서,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그래서 괴로운 두 남녀를 보여준다.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