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어서 본 ‘상윳따 니까야 (Saṃyutta Nikāya)’ 12강
오늘은 몇 가지 중요한 내용을 살펴본 뒤에 경전공부를 시작하겠습니다.
1. 가사 만드는 스님
부처님 시대에 가사를 만드는 스님이 계셨습니다. 이 스님에게 좋은 옷감으로 가사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면 자신의 가사를 만들어 입었습니다. 그리고 가사를 부탁한 스님에게 옷감을 쓸 수가 없어서 다른 천으로 가사를 만들었다고 핑계를 댔습니다. 그리고 나쁜 천으로 가사를 만들어 준 것입니다. 어느 날 부처님께서 이 사실을 아시게 되었습니다. 부처님께서 이 스님께 거짓말해서 좋은 가사는 자신이 입고, 안 좋은 가사를 준 것이 사실인가라고 묻고는 질책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이 스님께 ‘바보야’라고 하시며 탐내는 것은 큰 악행이라고 하셨습니다.
보시 바라밀은 붓다가 되려고 하는 보시공덕이 있고,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누르기 위해서 하는 보시도 있습니다. 탐진치가 자꾸 올라오니까 공덕을 쌓는 것입니다. 욕계, 색계, 무색계에 태어나기 위해서 보시 공덕을 쌓을 수도 있습니다. 보시를 하면서 탐진치를 누르려고 하고 없애려고 합니다. 뭔가를 바라면서 하는 보시도 공덕인데 부처님은 모든 공덕을 존중합니다. 부처님 당시 도솔천에 태어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엄청 많았는데 많은 사람들이 도솔천에 태어나기를 발원하는 마음으로 공덕을 쌓았습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공덕과 악행을 없애야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2. 담미까(Dhammika)
부처님의 재가 신도 중 보시공덕이 많은 담미까(Dhammika)라는 신도가 있었습니다. 이 분이 돌아가실 때가 되어 스님들을 초청해 경전을 암송하는 찬팅(chanting)을 부탁했습니다. 찬팅 중에 담미까(Dhammika)가 손을 자꾸 젓는 행동을 했습니다. 그러자 스님들은 담미까(Dhammika)가 자신들을 가라고 하는 줄 알고 제따와나(Jetavana)로 돌아와서 부처님께 이 사실을 말씀드렸더니 부처님께서 ‘천신들이 내려와서 담미까(Dhammika)에게 서로 자기 쪽 천상으로 오라고 할 때 스님들의 찬팅을 듣고 있으니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담미까(Dhammika)가 천신들에게 손을 흔들었던 것’이라고 설명해 주셨습니다.
부처님은 공덕인 뿐냐(Puññā)를 매우 존중했습니다. 악행을 막기 위해서는 뿐냐(Puññā)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힌두교나 다른 종교에서는 하지 말라는 말만 하는데 부처님은 악행대신에 공덕을 지어라, 생명을 죽이지는 말라고 하셨습니다. 부처님은 그릇된 행위를 하지 말라는 말만 하지 않고 그 대신에 해야 할 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뭘 하지마라고 하려면 대신에 뭔가 해야 할 것을 줘야합니다.
3. 스님들의 탁발 음식
스님들은 발우에 공양을 탁발해서 가져오면 공양하실 때 먼저 밖에 첫 번째 탁발음식인 삔다( piṇḍa)을 내놓고 드십니다. 삔다(piṇḍa)는 소량의 음식물 덩어리로 탁발음식물 약간 덜어서 보시하는 것입니다. 이는 어디서 음식을 먹기 전에 꼬시래하는 것과 같습니다. 어디에나 거지가 있을 수도 있고 개가 있을 수도 있고 해서 곤충도 있을 수 있고 그래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밥이 아주 귀한 시대였습니다.
부처님이 아들인 라훌라에게 가르침을 제대로 행하고 있는지 확인해 보기위해 32가지 질문을 합니다. 그 질문은 “제일 첫 번째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라고 물으셨을 때 라훌라는 첫 번째는 밥이라는 뜻으로 아하라(āhāra)’라고 대답했습니다. 두 번째는 정신과물질인 나마루빠 (nāmarūpa)이라고 했습니다. 그 당시 밥은 굉장히 중요했습니다. 음식을 누구에게 준다는 것 자체가 매우 큰 공덕입니다. 옛날에는 먹을 것을 구하기 어려웠습니다. 그 당시는 하루 종일 일해야 밥 한 끼 얻어먹을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 시대는 어려운 시대였습니다. 기원정사에 새들도 많이 오고 사슴들이 많았습니다. 스님들이 명상하시다가 사슴이 나오면 풀도 주고 밥도 주고 했다고 합니다. 부처님도 항상 공양하실 때 제일 처음 음식은 동물에게 보시했습니다. 부처님은 바라고 보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깟사빠 존자도 가사를 부처님께 드렸습니다. 공덕을 바라고 드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4. 깟사빠(kassapa) 존자
당시 깟사빠 존자가 선정에 들어서 7일 동안 계시다가 나오시면 첫 번째로 공양을 올리는 사람은 부자가 된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두타행 제일인 깟사빠 존자가 7일 동안 선정에 계시다가 나오면 매우 가난한 사람들에게 탁발을 나가셨습니다. 부자들은 더 부자가 되고 싶어서 공양을 올리려고 줄을 섰다고 합니다. 한 번은 욕계천상의 사천왕이 내려와서 가난한 할아버지처럼 변장을 하고 깟사빠 존자에게 공양 올렸습니다. 그런데 음식 향도 좋고 맛있는 음식이었습니다. 이 가난한 지역에서 이런 음식을 줄 사람이 없는데 이게 뭔가 하고 신통력으로 보니 이 분은 바로 사천왕이었습니다. 그래서 사천왕은 공덕이 많은 분인데 뭐가 더 아쉬워서 그러냐고 뭐라고 했습니다. 사천왕은 ‘나는 공덕을 더 얻고 싶다’라고 했습니다. 천신들도 욕심이 많습니다.
깟사빠 존자는 전생에 두타행과 같은 바라밀을 많이 닦아 항상 많은 사람들이 따라다녔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먼 사막 같은 곳으로 옮겨야만 했습니다. 거기에 비펄리라는 선인장 종류의 꽃이 있는데 사막에서 항상 꽃이 피는 나무였습니다. 깟사빠 존자가 사막으로 떠날 때 부처님께서는 깟사빠 존자에게 ‘내가 열반하면 이 꽃들이 모두 시들어 없어질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깟사빠 존자가 어느 날 보니 그 꽃이 시들어 부스러지고 없어지는 것을 보고 부처님이 열반하신 것을 아시게 됩니다. 그리고 부처님 제자 중에 인기가 많았던 분이 목련존자이십니다.
5. 신통 제일인 목갈라나(Moggallāna) 존자
신통력 제일인 목련존자는 인기가 아주 많아서 늘 사람들이 많이 찾아왔습니다. 사주팔자를 물어보거나 전생이나 다음 생을 물어보기도 했습니다. 다른 비구들은 그런 말을 하면 계율 상으로 안 되는데 목련존자에게는 부처님께서 허락하셨습니다. 그래서 목련존자를 사람들이 많이 따라다녔습니다. 그때 당시 부처님 말씀보다 목련존자 신통력을 보고 불자가 된 사람이 많았다고 합니다. 신통력에 감동 받은 사람들이 많았던 것입니다.
목련존자는 이교도들이 있는 곳에서 많이 살았습니다. 목련존자에게 사람들이 많이 따르고 다들 불교로 개종을 하니 이교도들이 사람을 시켜서 몇 번이나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때마다 목련존자는 신통력으로 피했습니다. 목련 존자는 계속 나에게 왜 이와 같은 장애가 생기는가하고 선정에 들어서 살펴보니 과거 생에 어머니를 때려서 죽인 과보가 있었습니다. 부처님께 자신의 불선업의 과보를 어쩔 수 없고 회향할 때가 되었음을 말씀드립니다. 신통력으로 죽음을 피할 수도 있었지만 마지막에 이교도들이 사주한 사람들에게 맞아서 열반에 들게 됩니다.
(질문 1) 목련존자가 죽음을 2번을 피하고 3번째가 되었을 때 존자의 능력이 떨어져서 피하지 못하고 죽었습니까?
(답변 1) 목련존자가 가는 곳마다 인기가 많았고 인기가 많은 만큼 비난도 많이 받았습니다. 목련존자는 어머니를 때려죽인 업으로 인해 태어날 때마다 하얀 피부가 아닌 까만 피부로 태어났다고 합니다. 목련존자의 부모님은 하얀 피부였는데 까만 피부의 자식이 나온 것입니다. 요즘은 혼혈아가 나왔다고 생각하겠지만 그 당시에는 쫓겨나는 일이었습니다. 목련존자가 놀림 받을 수밖에 없는 피부를 가지고 태어났고 어려서부터 놀림을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브라흐만 출신이면서 까만 피부를 가지고 계속 태어났고 마지막 생까지도 그렇게 태어난 것입니다. 목련존자는 어머니에 대한 애정이 많아서 과거 생에 본인의 어머니였던 분들을 찾아가 설법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머니 몇 분을 구제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비지옥에 있는 어머니는 설법을 듣지 않아서 구제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아비지옥에서는 그런 설법자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다른 축생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곳에서 과보가 다할 때까지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아비지옥의 존재들에게 아무리 좋은 것을 말해줘도 알아듣지 못합니다.
목련존자가 신통력으로 과거 생을 보니 죽을 때가 돼서 3번째는 죽음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피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는데도 받아들입니다.
6. 지혜 제일인 사리뿟따(Sariputta) 존자
사리불 존자가 마지막 회향할 때 어머니를 제도합니다. 사리불존자 어머니인 사리(Sari)는 이교도였습니다. 동생 4명까지 모두 출가해서 아라한과를 얻었지만 어머니는 브라흐만쪽 사람으로 이교도였습니다. 사리불은 반열반에 들기 전에 어머니께 우유 빚을 갚고 싶었습니다. 우리들은 모두 어머니에게 젖을 먹은 빚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우유 빚’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100년간 아버지를 오른쪽에 어머니를 왼쪽에 모시고 매일 목욕시켜드리고 음식을 드리고 보살펴도 그 빚을 다 갚지 못한다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빚을 갚는 길은 사성제와 팔정도를 이해시키고 깨달음의 길을 알려주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부처님의 양모인 마하빠자빠띠 고따미(Mahāpajāpatī Gotamī)가 부처님께 “부처님은 이제 우유 빚을 갚았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아라한과를 성취한 것을 이렇게 알린 것입니다. 사리불도 부처님처럼 어머니에게 우유 빚을 갚고 싶어서 반열반에 들기 1주일 전에 고향으로 갔습니다. 어머니가 보니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면서 사리불에게 경의를 표하고 가는 것을 보고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쭌다 장로에게 물었습니다. 이때 쭌다 장로는 “사천왕. 삭까. 마하브라마였습니다."라고 하니 어머니는 자신이 섬기는 신 마하브라마가 아들에게 경의를 표함을 알게 되었고 내 아들이 이렇게 훌륭한데 내 아들의 스승은 얼마나 훌륭하실까, 하고 환희심을 내고 있을 때 사리불존자가 어머니에게 법문을 해서 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수다원과를 얻게 되었습니다.
부처님도 숫도다나 왕이 돌아가실 때 머리를 만지면서 법문하셨습니다. 장례식을 할 때도 무덤까지 따라 갔다고 합니다. 빠자빠디 고따미와 숫도다나 왕의 장례식 때입니다.
7. 비구가 1주일동안 부모를 돌볼 수 있는 계가 생겼다.
비구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부모에게 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형제에게는 줄 수 없습니다. 비구는 본인의 부모를 돌봐 줄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에 한해 1주일간 집에 가서 부모님을 봉양할 수 있다고 계율에 나와 있습니다. 부처님 시대에 어떤 사람이 출가하고 싶은데 부모가 반대 했습니다. 부잣집 외동아들인데 출가하면 안 된다고 부모들이 말리니 아들이 한 달을 밥을 먹지 않고 결국 죽게 생겨 부모가 생각하기를 죽는 것보다는 스님으로 있으면 볼 수 있으니 출가를 허락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부모님들이 나이가 많아지면서 눈이 멀어졌고 도둑이 들어 재산을 다 훔쳐가서 거지 신세가 되었습니다. 아들 스님이 고향 쪽으로 와서 보니 부모님이 어렵게 살고 계셨습니다. 그때 당시에 마을마다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이 있었는데 순냐가라(suññāgārā)라고 하는 주인이 없는 집입니다. 부처님도 그곳에서 잠을 잔적이 있다고 경전에 나옵니다. 이 집에서는 3가지 금기 사항이 있는데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카스트 신분이 무엇인지를 물어보지 못합니다. 이 공간의 약속입니다. 부자, 가난한 사람, 거지도 모두가 잘 수 있는 공간이었던 것입니다. 아들 스님은 부모님 두 분을 여기서 살게 했습니다.
스님은 처음에 본인이 아들이라고 말을 하지 않고 부모님을 순냐가라(suññāgārā)에 모시면서 먹을 것과 약을 주면서 봉양했습니다. 부모님은 스님이 잘 해주니 아들 생각이 나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때 스님께서 자신이 아들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스님들 속에서 어떤 스님이 재가자 2명을 키운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스님이 어떻게 재가자를 키울 수 있는가라는 소문이 돌았는데 어느 날 이 아들스님이 부처님께 와서 인사를 드리니 부처님께서는 사두! 사두! 사두! 라고 하셨습니다. ‘사두!’는 ‘훌륭하다’. ‘잘했다’라고 할 때 쓰는 말로 ‘선제’라고 할 때의 말입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스님들은 부모님을 돌봐줄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1주일동안 돌봐줄 수 있다는 계율이 생깁니다. 집에 가서 일주일 있다가 돌아오면 사미계부터 다시 받아야 하는데 그럴 필요가 없다는 계율이 생긴 것입니다. 부모님을 돌보는 일로 비구계가 끊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부모님 허락 없이 출가할 수도 없습니다. 부모님의 허락 없이 출가할 수 없는 것은 불교에만 있습니다.
부모님의 허락 없이 출가하면 악행은 아니지만 자동차가 빨간 신호등에서 멈추지 않고 달리는 것과 같이 계율을 어기는 것입니다. 비구계를 받은 지 10년이 넘으면 제자를 둘 수 있는데 부모님 허락 없이 출가 시키면 이 스님은 다시는 제자를 두지 못합니다. 사미, 사미니는 부모 허락 없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스님이 병이 있으면 치료를 받고 와서 다시 비구계를 받을 수 있습니다.
8. 승가는 왕의 명령에 따라야 한다.
왕실의 군인들이 코살라 왕의 명을 받고 기원정사에 감시자로 와서 출가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왕은 권력자이기 때문에 많은 무리가 모여 있는 승가도 감시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부처님은 이 모든 사실을 다 알고 계셨지만 아무 말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나라의 왕이 얘기하면 바른말이든 바르지 않은 말이든 왕의 명령에 스님들도 따라야 한다는 계율이 있습니다. 그래야 승가가 멸망하지 않고 이어갈 수 있습니다. 나라의 왕과의 관계 중요성을 말해주는 일화가 있습니다.
어느 날 스리랑카의 왕궁을 지키는 군인 1명이 왕비를 사랑하는 불륜이 발생하였는데 왕이 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군인은 살기 위해서 절로 도망가서 출가를 했는데, 숨어 지내면서 기회가 되면 왕비를 다시 만나기 위함이었습니다. 몇 년이 지나 탁발을 나가서 왕비를 몇 번 보았고 왕비도 사랑하는 사람이 탁발 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왕비가 그 스님께 공양 올리면서 편지를 발우 밑으로 줬는데 그만 그 편지가 땅에 떨어져서 왕이 그 편지를 보게 되었습니다. 편지 내용을 보고 두 사람의 사랑이 이어지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왕은 이 사건으로 탁발 나간 스님 60명을 모두 기름 항아리에 넣고 태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이 중에 아라한 스님도 계셨다고 합니다. 왕으로 인해 모든 것이 사라질 수 있고 승단이 위태로울 수 있음을 보여주는 일화라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