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2월 5일, 목요일, Ushuaia, Violeta de la Montana (오늘의 경비 US $16: 숙박료 40, 식료품 8, 환율 US $1 = 2.85 peso) 오늘은 쉬는 날이다. 쉬는 날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고 보통 긴 버스 여행을 한 다음 날 쉰다. 아침에 느지막하게 일어나서 숙소 딸이 차려준 아침을 먹었다. 매우 친절한 20대 미혼녀인데 이름이 Susana다. 그래서 이곳 이름이 원래 Casa Susana (수사나의 집) 이었는데 Violeta de la Montana로 (산에 핀 제비꽃) 바꿨다 한다. Susana는 영어를 제법 잘해서 어디서 배웠느냐고 물었더니 엄마를 도와서 민박집을 하며 외국 여행객으로부터 배웠단다. Lonely Planet에도 소개된 곳인데 문에 주소는 쓰여 있어도 이름은 없다. 숙소 간판이 없는 셈인데 나는 어제 주소만 보고 찾아 들어왔다. 간판 없는 민박집은 처음이다. 숙소 주인여자는 외국 여행객들이 다 알고 찾아오는데 간판이 무슨 필요가 있느냐고 한다. 맞는 말이긴 한데 그래도 간판은 있어야지. 어쩌면 외국 사람들만 상대하기 위해서 일부러 간판을 안 다는지 모르겠다. 시내구경을 나갔다. 관광도시라 그런지 고급 상점들이 즐비하다. 음식점들도 많은데 가격이 지금까지 여행한 다른 아르헨티나 도시들보다 훨씬 비싸다. 우리는 숙소에서 해먹을 수 있으니 다행이다. 여행 안내소에 가보니 외국 여행객이 많이 오는 도시라 그런지 직원들이 영어를 잘한다. 이곳에서 아르헨티나의 유명한 호반 휴양도시 Bariloche로 비행기로 가려고 했는데 전에는 다니던 직행 비행기가 이제는 안 다닌단다. 꼭 비행기로 가고 싶으면 Buenos Aires로 갔다가 갈아타고 가야한다. 한참 돌아가는 셈이다. 비행기 요금도 훨씬 비싸고 돌아가는 것도 마음에 안 든다. 그렇다면 버스로 가야하는데 역시 돌아가는 것이 마음이 안 든다. 비행기가 안 다니는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이곳에 오기 전에 Bariloche에 들렸다가 오는 것인데 후회가 된다. 어떻게 가던 어쩌면 아르헨티나에서 제일 아름다운 도시일 수 있는 Bariloche에 안 갈 수는 없다. 시내 구경을 대강 끝내고 숙소에 돌아와서 점심을 간단히 해먹고 오후에는 조용히 쉬었다. 숙소는 손님들이 모두 외출했는지 조용했다. 그러나 저녁때가 되니 손님들이 모여든다. Yanis란 이스라엘 젊은이와 얘기를 나누었다. 가무잡잡한 친구인데 머리를 노란색으로 염색했다. 자기 할머니가 1950년에 이라크에서 이스라엘로 이민 왔단다. 할머니 집안이 언제 이라크로 갔느냐고 물어보니 지금부터 거의 3천 년 전이라는데 꼭 30년 전인 것처럼 얘기를 한다. 기원전 597년에 Hammurabi 법전으로 유명한 바빌로니아의 Hammurabi 왕이 지금의 이스라엘을 정복하고 그곳에 살던 유대인들을 바빌로니아로 끌고 갔는데 60년 후에 석방되었다. 당시 대부분 유대인들은 이스라엘로 돌아왔는데 일부는 바빌로니아에 남았다. 자기 할머니는 남았던 유대인들의 후손인데 거의 3천 년 후인 1950년에 이스라엘로 돌아온 것이다. 꿈같은 얘기가 아닐 수 없다. 옛날 고구려와 백제가 망한 후 당나라로 끌려갔던 고구려와 백제 왕족의 후손들이 1,500년이 지난 지금 중국 어느 오지에서 (옛 고구려와 백제 왕족들은 티베트로 보내졌다고 알고 있다) 고향을 찾아서 한국으로 돌아왔다면 얼마나 꿈같은 얘기일 것인가. 1,500년 전도 까마득한 옛날 같은데 3,000년 전이라니, 도대체 감이 안 잡힌다. 그러나 당나라로 끌려갔던 고구려와 백제 유민은 아주 옛날에 사라졌다. 죽임을 당한 것은 아니고 중국 한족에 동화되어서 사라졌을 것이다. 그런데 이 Yanis란 이스라엘 젊은이는 좀 특이하다. 지금까지 남미여행 중에 본 이스라엘 젊은이들과는 생김새가 전혀 다르다. 지금까지 본 이스라엘 젊은이들의 조상은 2천여 년 동안 유럽에 살았고 Yanis의 조상은 거의 3천 년 동안 이라크에 살았다. 생김새는 전자의 경우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백인들이고 Yanis는 영락없는 중동 아랍인이다. 원래의 유대인들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겠지만 2, 3천여 년 동안 다른 민족 사람들 사이에 살면서 피가 섞이게 되다 보니 그렇게 변한 것이다. 아프리카 흑인 유대인들로 있다는데 이들은 생김새 차이에도 불구하고 한 민족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 집 강아지와 금방 친해졌다. 한 5개월 된 것 같은데 나만 보면 놀자고 덤벼든다. 주인 여자에게 물어보니 개가 세 마리 더 있단다. 이 집에서 한 마리, 저 집에서 한 마리, 이웃들이 줘서 네 마리가 되었단다. 미국 같으면 불임수술을 해줄 텐데, 안 해주니 숫자가 늘어 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주인 없는 개들도 많다. 아르헨티나 뿐 아니라 중남미 나라들이 모두 그런 것 같다. 여행지도 Ushuaia는 시내 어디서나 산과 바다가 보이는 경관이 좋은 도시다 남극 유람선이다, 타려고 좀 알아보았지만 너무 비싸서 포기했다, 나중에 후회할 것 같다 (2024년 후기. 후회했다, 그리고 아직 못 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