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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내일은 해가 뜬다.
1997년 11월에 불어온 I.M.F 태풍은 무서웠다. IMF 태풍은 영세 업체들의 간판을 흔들고, 서민들의 마음을 우울하게 하였다. 중키에 알맞게 살이 붙은 둥근 얼굴에 짧은 머리를 한 영보는 배송차를 몰고 IMF로 건물이 거품처럼 서 있는 신도시 창원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작은 키에 마른 편인 기섭은 조수석에 앉아 오늘 돌아야 하는 거래처 티켓을 정리하고 있었다. 상품 운반으로 다져진 몸이 탄탄하게 보이는 기섭은 가느다란 손으로 납품티켓을 넘기면서 영보를 보면서 말했다.
“형님! 아무리 I.M.F라지만 사장은 해도 너무하다 생각이 안 듭니까? 감원을 했으면 되었지 30%감봉이라니 말이 됩니까? 큰 기업이야 우리 두 배 이상 월급을 받으니까 감원이야 감봉이 있다 하더라도, 우리야 한 가족 밖에 되지 않는 식구로 기본적인 생활도 할 수 없는 월급인데, 큰 기업을 따라, 장에 가면 될 일입니까?”
영보는 기섭의 말을 듣고 조용한 눈으로 말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거리에는 황갈색 나뭇잎들이 새처럼 날아 다녔다. 영보는 평소 말이 없던 기섭이가, 그렇지 않아도 낮은 급여에 감봉을 받은데 대한 불만은 이해가 가서 월급이 얼마 받는지 물어 보았다. 기섭은 가슴에 비참함의 물결이 일어나는 어눌한 말로. 칠십만원이라면 넣던 적금도 못 넣고 있다고 말했다. 기섭은 한 집안의 가장으로 집세와 교통비 이십만원을 제하면 오십만으로, 여동생과 생활해야 하니까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입사한지 얼마나 되는지 물으니, 기섭은 십년 째라고 힘없이 말했다. 영보는 긴 머리에 작업복이 헐렁한 기섭이를 보았다. 검은 눈썹 동안의 계란형 얼굴이 곱상하게 생긴 편이지만 동체가 약하게 보였다.
영보는 사회란 대개가 순응적인 사람 보다, 약삭빠르고 눈치껏 일하며 이론적으로 말을 잘 하는 사람 편에 서 있다 보니, 감봉 당한 기섭이 급여는 너무 적다 생각이 들었다.
“그래 적기는 적구나. 십년이며 연공서열을 생각하면 과장 대우는 받아야 하는데, 그런 기본이나 원칙이 없이 사장이 정하는 것이 기본이니, 오랫동안 일한 사람이 손해를 보는 것 같구나. 그렇지 않아도 적은 급여에 감봉까지 당하여 칠십만원이라니 해도 너무 한 것 같구나.”
기섭은 정리한 티켓을 사물함에 챙겨 넣고 구부린 허리를 폈다. 의자를 편안한 자세로 고치고 안전벨트를 맸다. 몇 번 안전띠 벨트 잠근 장치를 더듬으며 잠그고는 의자 등받이에 기대는 것을 보아 한 말이 많은 것 같았다. 잠시 두 팔로 의자를 집고 기대고 있던 등받이에서 몸을 떼면서 영보를 보며 볼멘 말을 뱉었다.
“형님! 회사가 적자가 많이 나고 어려우며 직원들도 이해하겠지만, 사장은 재력도 있고 감봉을 하지 않아도 되지 않습니까. 지금은 I.M.F전 보다 매출도 늘었는데도, 감원에다 감봉으로 급여는 반으로 줄었으니 그만큼 회사가 이익이고 노동을 착취하는 것 아닙니까?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자는 더 가난해지게 되었으니, 죽을 사람은 죽어라는 거와 같지 뭐니까? 불과 1년 전만 하더라도 일할 사람이 없어 애를 먹었는데..... 지금은 일자리가 없다 보니 꼼짝 마라입니다.” 기섭이는 이어 말했다. “형님! IMF 전 만 해도 ‘종업원은 황제고 고객은 왕이다.’ 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무거운 상품을 납품하는 3D업체인데 복지 시설도 전혀 없고, 급여가 박해서 6개월은 넘기는 기사가 없어서 나온 말입니다. 기사 구하기가 힘들고 사람이 없어 직원을 많이 썼습니다. I.M.F라고 감원당한 나이 드신 분들이 어려울 때 그만 두라 하면 죽으라. 하는 것이니, 제발 일을 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두 손으로 싹싹 빌었습니다. 그렇다고 소용 있습니까. 사장님 말대로 자기 식구라 생각하며 그럴 수 있겠습니까?”
영보가 운전하는 지류를 가득 실은 트럭은 산업 도로에 들어섰다. 이십년 전만 해도 논밭 천지든 화천가에는 개나리들이 앙상하게 늘어서 있었다. IMF를 맞은 공단은 굴뚝 연기도 없이 을씨년스럽게 서 있었다. 자동차 매연으로 검게 거슬린 벚나무 사이로 한 자락의 바람이 지나가자 나뭇잎이 떨어졌다. 영보는 기섭이처럼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대우를 받는 회사가 되려면, 전 종업원이 주주가 되어 이익을 공유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영보는 평소에 조용하던 기섭이가 거칠게 달리는 자동차처럼 화가 난 말을 듣고 위로 하듯 말해 주었다.
“그래봐야 고양이 앞에 쥐 아니냐. 불만이 있으면 가벼운 중이 떠나야지 절이 떠날 수 있나. 능력이 있으면 대기업에 갔겠지. 너나 내나 능력이 없어 이런 소기업에서 일하는 게 아닌가.”
긴 머리카락 헐렁한 작업복의 기섭은 직장을 옮기기 힘든 다는 것을 모르는 것도 아니었다, 사장은 몸이 약한 기섭이를 위해 한약을 지어 준적도 있었다. 그렇지만 기섭은 재력 있는 사장이 해도 너무하다는 생각은 지울 수 없는 모양이었다.
“형님! 그래도 생각 할수록 자꾸 화가 납니다. 십년 근속인데 칠십만원이 뭐입니까? 일할 의욕도 없습니다. 계모임에 가면 친구들 월급에 반도 안 되어 기가 죽었는데, 오히려 친구들 회사는 감봉은 없고 저만 감봉 당했습니다. 어디 말이 됩니까? 어떻게 하면 그만두고 살아가는 방법이 없을까 생각뿐입니다. 어디에 가도 이 정도 급여를 받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기섭이는 옮길 수 있는 직장이 있다면 당장 옮길 듯이 말했다.
기섭이가 화를 내는 것은 다른 곳으로 갈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다. 영보는 이러한 기섭의 마음을 다독여 주고 싶어 물어보았다.
“너는 다른 곳으로 가기는 어렵지 않나. 머리를 좀 다쳤다고 하지 않았니?”
기섭은 울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예, 1979년 주디호 태풍 때 산사태로 좀 다쳤습니다. 아버지는 그 때 태풍에 집이 강으로 떠내려가고 생활을 걱정하다가 간암으로 운명하였습니다, 어머니는 가정을 꾸려나갈 수 없어, M고 2학년 년 때 저하고 여동생을 남겨두고 개가를 안 했습니까.”
“그럼 기섭이 어머니는 계시구나?”
“예, 서울에서 살고 있습니다. 가끔 전화 통화는 합니다.”
영보는 기섭이를 소년 가장으로 만든 태풍이 무서웠지만. 지금은 I.M.F. 태풍은 더 무섭다고 생각했다. 영보는 낡은 작업복 오른 쪽 호주머니에서 담배 한 가치를 꺼내어 물었다. 핸들 옆 시가 코일에 열을 가하여 담배에 불을 붙였다. 담배 한 모금을 힘껏 빨아들이고 후- 하고 내 뱉었다. 차 창문을 열고는 하얗게 흩어지는 담배 연기를 바라보면서 레저용품 도매업을 할 때를 생각했다.
영보는 월남전이 있던 1970년 국민소득 육천 이백불에서, 1978년은 중동진출로 국민소득 만불을 넘어, 88올림픽 후 국민 소득 이만불 시대라고, 레저 붐을 예상하고 레저용품 판매업을 시작했다. 예상이 맞았다. 거래처도 많이 늘어나고 사업을 확장할 무렵인 1997년에 I.M.F를 맞게 되었다. 사업상 자금을 끌어들이기 맞보증을 한 업체에서 부도를 내었다. 영보는 부도가 날 정도는 아니었지만 연쇄부도에 휩싸였다. 사업체는 문을 닫게 되었고, 부모에게 물러 받은 집을 팔게 되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압류까지 당하자 본인은 본인이지만 아내와 자식까지 고통을 당해야 했다. 영보는 일원도 손해를 보지 않으려는 채권자에 대한 실망은 이루 말 할 수가 없었다. 빈 털털이로 누워 있는데 밟고 가는 사람에 대한 분노로 우울하기까지 하였다. 영보는 무작정 배낭을 메고 집을 나왔다. 강원에서 등산을 하기 위해 들어선 산골짜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웃음 띤 얼굴로 삼삼오오 다니고 있었다. 자신만이 인생의 실패자가 된 것 같아 너무도 서글펐다. 산 정상이 가까워지자 사람들 발길이 뜸해 졌다. 정상의 바위에서 아찔한 절벽을 보았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여기에서 떨어져 죽으면 IMF의 각박한 세상과는 만날 일이 없을 것이라 생각이 들자 뛰어 내리고 싶었다. 그러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닌가. 자신이 죽었다고 생각하고 바위에 누워보았다. 구름이 흘러가고 맑은 하늘을 보았다. 순간 다리가 성치 않는 아내와 아들 순철이, 딸 영아가 눈에 어련 거렸다. 죽을 용기가 있을 바에야 무슨 일이든 못하겠나.” 생각하며 다시 일어서리라 이를 악 물었다. ‘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 는 말이 있지 않는가? 영보는 쥭을 생각을 접고 가족이 있는 집으로 향하였다. 밤 12시가 가까운 시간에 어두움을 타고 걸었다. 낡은 스레트 지붕의 주택이 줄지어 서있는 길이었다. 어둠이 삼켜버린 골목에는 허리 굽은 부연 가로등만 부엉이 눈같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영보는 취기가 있는 터라 ‘내일은 해가 뜬다 내일은 해가 뜬다.’ 노래를 부르며 골목길을 올랐다. 영보는 집 앞에서 불빛이 비치는 창문을 보았다. 불빛은 따뜻했다. 가족이 있는 집이란 어머니의 자궁 같이 포근하였다. 영보는 아내를 불렀다. 아내는 아직 자지 않았는지 한 달음에 달려 나왔다. 아내를 영보를 보자 여보! 어디 갔다 왔었어요. 그동안 얼마나 걱정 한 줄 알아요. 밥은 제 때 챙겨먹었어요. 아유! 이 몰골 좀바 얼른 씻고 옷부터 갈아입으세요. 한꺼번에 여러 말을 쏟아내었다. 아내는 영보가 집에서 다시 나가려면 어쩌나 팔을 끼고 방으로 들어갔다. 영보는 농장 옆에 옷걸이 있는 곳에서 윗도리를 벗었다. 옷걸이에는 양복이며 추리닝이 걸려 있었다. 바닥의 다이위에 다리미가 있었다, 양말 들이 널려 있는 것 등 달라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아내 보라는 영보가 벗어주는 옷을 받아 옷걸이에 걸었다. 영보는 세면장에 가서 세면을 하고 나와 곤히 잠들은 아이들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이들을 보면서 찡한 물결이 밀려오는 행복을 느꼈다. 그래 사랑하는 이 아이들을 위해서 내 한 몸이 가루가 되더라도 밝은 빛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이 앞을 가렸다. 영보는 어차피 죽으리라고 생각한 몸이었다. 가족의 행복을 위해 죽을 각오로 일했다. 길거리 장사며, 건설 현장에 품팔이, 보험회사 보험모집인 몇 가지 일을 하여도 생활이 힘들었다. 가족의 안정된 생활에는 직장이란 울타리가 얼마나 중요한가 알았다. 그러나 사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들어 갈 곳이 없었다. 직장에 들어가려 전전긍긍하는데 회계사 사무실을 운영하는 선배에게 전화가 왔다. 집안 형님이 하는 사업체인데 너 사정을 이야기 했더니 사장이 요긴한 자리에 쓸 수 있겠다고 같이 오라 하니까. 같이 가자! 하였다. 사장은 자식도 없고 나이가 많은데다가 이제 몸도 좋지 않아서 회사를 넘기려고 생각하니 너만 거기서 열심히 잘하며 회사 경영을 맡게 될지 모른다고 하였다. 직장생활 할 곳이 있다는 것이 기쁨이었던 영보는 사무를 보면서 차를 몰며 배송을 하게 되었다. 그때 거래처를 잘 아는 기섭이와 한조가 되었다.
기섭이는 야윈 체구에 동작이 좀 뜬 편이지만 무거운 물건을 드는 일이 힘들다고 한 적이 없었다. 일을 하는데 “노”라는 말을 들어 본적이 없었다. 직원들의 어려운 부탁은 기섭이 몫이었다. 남들이 기피 하는 일도 소처럼 말없이 일을 했다. 영보는 (주)대성이 오늘이 있기까지는 기섭이 같은 일꾼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였다. 기섭은 소년 가장으로 열 살 위인 영보에게 형님, 형님 하면서 가정 일도 의논하며 따랐다.
영보는 끝이 뭉텅한 손가락으로 잡은 담배를 입에 물고 힘껏 빨아들이고 내 뱉었다. 가슴을 막고 있던 답답한 심사를 허공에 흩어지는 것 같았다. 담배 연기는 진한 냄새를 남기며 구름처럼 흩어져갔다. 요즘 직원들은 모두 IMF로 마음이 허해져 있었다. 감원감봉 당한 직원들은 하루 일과를 마치면 회사 옆 포장마차에 모였다. 사장에 대한 불만을 욕설로 대신하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술로서 달랬다. 기섭이나 직원들은 사장의 입장을 몰랐다. 그저 돈이 있는 사람이 감봉을 한데 대하여 불만만 토로 할 뿐이었다. 사업주가 자금이 어려워 매일 칼날 위를 걸으며 지낸다는 것을 알 수 없었다. 영보는 그런 체험을 하였고, 자금에 시달리고 있는 사장을 모시고 있었다. 영보는 면접을 볼 때 사장은 “내 나이도 있고 몸도 아프고 하니 이 자리에서 일해야 한다.”며 말했다. 사장은 처음 대하는 사람인데도 자상하게 상대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었다. 옛날에 태어났다면 장수가 될 큰 몸집에 원만한 성격을 가진 좋은 분이라 생각하였지만 IMF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사업은 잘 못 되면 죽음을 생각할 정도 최악까지 이를 수 있다. 월급쟁이는 그나마 자신의 전 재산을 한 방에 날리는 일은 없지 않는가? 영보는 십대에 들어와서 다른 곳에 직장 생활의 경험이 없는 기섭이에게 직장에 대해 이야기 해 주어야겠다고 말했다.
“기섭아 너에게는 대성이 사회에 나와 첫 직장이지”
“예 형님 고등학교 2학년을 마치고 바로 들어왔습니다.”
“그렇구나, 직장생활에 대해 잘 모르겠구나.”
영보는 기섭에게 고생하는 직장일수록 미래의 인생설계에 도움이 된다 고 말해 주었다.
“기섭아 안락한 생활은 정신력을 약하게 하지만 역경은 정신을 강건하게 만드는 거야. 기섭이는 비록 노동은 하지만 단단하게 다져진 몸이 돈 보다 큰 재산이다. 어느 곳에 있던 어떤 일을 하던 자기가 하기 나름이다. 대기업에 있으면서 안주를 하는 것 보다 중소기업에서 장래를 걱정하다보면 자기 개발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 그러다보며 자기 스스로 길을 개척할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는 것이다. 전화위복의 기회로 생각하며 나름대로 일 할 맛이 있는 거야”고 달래었다.
기섭은 언제 화를 내었냐는 듯이 담배 연기에 빨리듯 말했다.
“형님 말이 맞습니다.”
영보는 담배연기가 차 창문으로 꼬리를 감추는 것을 보며 멍한 시선을 창밖으로 던졌다. 바람이 먼 산에 있던 검은 구름들이 몰고 왔다. 차장에 두 세 방울 빗방울이 떨어졌다. 기섭은 차창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보고는 “형님! 차를 세워 보세요.” 하였다. 영보가 “무슨 일이데.” 묻는 말에 기섭이는 “비가 올 것 같은데 천막을 덮고 가입시다.” 하였다. 영보는 그래야 되겠다고 생각이 들어 비상 깜박이를 넣고 도로 변에 차를 세웠다. 기섭은 어느새 화물 위에 올라갔다. “형님 천막 끝을 잡아서 매어 주이소.”하며 화물을 덮고 있는 천막의 고무 끈을 영보 쪽으로 던져 주었다. 영보는 기섭이가 던져 주는 천막을 잡고 끝자락에 있는 고무 끈을 잡아 짐칸에 있는 고리에 매달았다. 기섭이는 차머리 있는 상품부터 천막으로 감싸며 영보에게 고무 끈을 고리마다 매도록 하고 짐칸에서 내려왔다. 기섭은 비가 새어 들어 올 곳이 없는지 꼼꼼히 다시 확인 하였다. “형님 이제 되었습니다, 가입시다.”
영보는 기섭이가 오랫동안 일한 경험에서 우려 나오는 직업적 습관인 줄은 몰라도 야무진 면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영보는 먼저 차 위에 올라앉았다. 핸들을 고쳐 잡고 차 시동을 걸고 시선을 거리에 뿌렸다. 센텔 공장 있는 도로 변에 잘 정리된 녹지의 가로수에서 나뭇잎들이 떨어지고 있었다. 거리에는 낙엽들이 갈 길 몰라 방황하고 있었다. 영보는 낙엽을 낚시 줄에 걸린 물고기마냥 응시하듯 보았다. 낙엽이 어디로 가는지 누구도 알 수 없었다. 신만이 알 고 있을 것이다. 사람의 길도 낙엽의 길과 같을 것이다. 기섭이가 차에 올라와 옆자리에 앉는 것을 보며 생각의 시선을 잠시 내려놓고 넌지시 물어 보았다. “기섭아! 너 방금까지 월급이 적다고 불만을 털어놓더니 상품이 젖을 걱정을 왜 하나?” 기섭이는 담담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미끄러져 있는 방석을 오른 손으로 잡고 고쳐 앉으며 말하였다.
"형님 그래도 내가 회사에 녹을 먹는 한 회사의 재산을 지켜야 되지 않겠습니까?".
"너 정신 상태 하나 좋구나.".
"상품이 종이라 비를 맞으면 안됩니다. 내가 물품을 아끼며 나라 살림을 아끼는 거와 같은 것 아니겠습니까?"
기섭이 말이 맞는 말이었다. 영보는 그렇구나. 국가란 국민 개개인이 맡은 일에 책임을 다 할 때 국가의 힘은 커지는 것이라고, 말하였지만 기섭이가 직업 정신이 투철하다고 생각했다. 영보는 줄 곳 달려오는 차들을 보며 좌회전 깜빡이를 넣고, 천천히 차를 몰면서 잘 정비된 화단이 있는 길을 빠져나와 시내 쪽으로 차를 몰았다. 낙엽들은 달리는 차들의 꽁무니를 따라 나비처럼 날아다녔다. 영보는 차를 몰면서 날아다니는 낙엽을 보고는 기섭이에게 말했다.
“기섭아! 세상은 살아있는 한 어떤 일이든 못 할 일이 없단다. 죽으면 한 잎 낙엽보다 못 하니 살아 있는 한 부지런히 움직여야 하는 거야. 욕심이 덕지덕지 붙은 얼굴은 벌레 먹어 죽은 나뭇잎처럼 추한거야. 없어도 자신을 불태우면 사는 사람은 단풍처럼 아름다운거야. 사장을 봐라. 돈이 많지만 건강을 잃어 항상 미간을 펴지 못하고 살지 않으냐? ‘천석 군은 천 가지 걱정이고 만석 군은 만 가지 걱정을 하며 산다.’고 하지 않는가. 다 욕심 때문이다. 아홉 개를 가지며 열개를 가지려는 욕심,,, 욕심이 사람을 살아가게 하는 의욕을 가지게 만들지만, 과욕은 사람을 병들게도 하거든, 없으면 포기하는 게 많으니 오히려 편안 할 경우도 많은 거야. 욕심은 많은 가재도구처럼 나이가 많아지면 짐이 되는 거와 같은 거지. 기섭아! 어느 사람이 행복하게 산다 할 수 없다. 행복은 개인적이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가장 국민 소득이 낮은 스리랑카 국민이 행복의 지수가 가장 높다고 하지 않느냐. 결국 인간이 추구하는 행복이란 물질의 순이 아니라는 것이다.”
말이 통하는 사람끼리 하는 이야기는 말하는 즐거움과 듣는 즐거움도 있는 것이다. 조용하게 듣고 있던 기섭이는 기분이 좀 까라 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지만 형님! 돈이 없으면 인간의 기본 생활도 못하고, 당장 아쉽고 걱정이 되지 않습니까. 살아가는 한 사람에게는 돈이 있어야 하거든요. ‘돈이면 귀신도 움직인다.’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모두 돈을 벌이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지만 형님! 물질은 사용해야 되는 것이지 소유해서는 안 됩니다. 한 사람이 꼭 움켜지고 있으면 경제 윤리에 위배되는 것 아닙니까. 내가 다 먹을 수 없는 음식을 남 주기 아까우니까 썩혀서 버리는 거와 같은 것 아닙니까? 돈이란 인체의 혈처럼 돌아야 되니까요. 필요 한 만큼 가지고 나머지는 사회에 베푼다면 아름답고 살기 좋은 세상이 되지 않겠습니까?”
사람이란 나름대로 개성과 상상의 날개를 펼 수 있는 능력을 타고 났다. 좀 얼띠어 보이는 사람에게도 진지하게 이야기를 해보며 그 내면에는 놀라운 세계가 있는 것이다. 그 잠재되어 있는 능력은 겉으로 보아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영보는 좀 전의 표정과는 달리 활발하게 이야기 하는 기섭이를 보며, 사람은 누구나 지식과 정보를 축척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차이가 나는 것은 노력과 열정의 차이라 생각했다.
“그래 맞다. 돈은 벌이되 어떻게 사용하나가 문제이다. ‘돈은 개처럼 모으고 정승처럼 써라‘ 했다. 열심히 모으되 인간답게 써야한다. 사회복지를 위한 후원이나, 불우 이웃을 돕는데 쓴다든지, 문화 사업에 기탁은 아름답게 쓰여 지지만, 돈으로 검사. 판사를 사는 사람은 소를 사고 파는 것처럼 모두를 돈으로 계산하여 주고받는 추한 용도에 쓴다면 추하게 써지는 거야. 인간은 생각을 기록하고 교육하는 지능이 있어 공룡보다 오래 지구에 생존하였고, 먹이사슬에서 제일 위에 있는 거야. 인간이란 물질 보다 혼이 있어야 되는 거야. 낙엽은 썩어서 다른 생명을 살리는 거름이 되는 것처럼, 돈을 모았다 해도 다른 생명을 위해 거름이 되는 것이 중요한 거야. 베풀며 그만큼 돌려주는 것이 자연의 이법이거든. “
차는 산업도로로 빠져나와 창원 병원을 지나 공단 관리청 앞에 신호등에서 좌회전 깜빡이를 넣고 중앙로로 들어갔다. 도청 앞으로 십차선 도로가 곧게 뻗어 있는 도로 변에는 좌측에는 창원 호텔과 어는 통 큰 여사장이 투기를 하면서 지었다는 캔버라 십팔층 건물이 우뚝 서있었다. 우측에는 삼성생명의 빌딩과 (주)대동 빌딩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쌍둥이 빌딩처럼 서 있었다.
“기섭이 너는 몸으로 사회를 위해 베푸는 것이니까, 몇 년 또는 몇 십 년 후 너는 사회에서 노력한 만큼 받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니 너무 억울하게 생각 할 필요가 없는 거다. ‘돈을 아끼면 부자가 되고 말을 아끼면 성인이 된다고’ 적은 돈이지만 아껴 쓰면 되는 것이다. 너는 가난하게 살 관상이 아니니 먹고 사는 데는 걱정이 없을 것이다.”
기섭은 차창 밖을 주시하고 손을 의자에 대고 앉아 있다가, 영보를 돌아보며 아주 친근감이 가는 표정으로 말했다.
“형님 그렇게 보입니까? 형님! 형님한테는 배울 것이 많습니다. 이 회사에 들어와서 얻은 것이 없지만, 얻은 것이 있다며 형님이 말해 주는 것입니다. 살다 보면 운이 쫙- 필 날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 너는 그렇게 될 거야.”
“그렇지만 형님! 30%감봉되어 혼자 몸으로 있는 저도 힘이 드는데, 형님은 식솔을 거느리고 더 힘드시겠습니다.”
“총각이 늙은이 같은 소리를 하는 구나!”
“안 그래도 친구들이 속 늙은이라고 합니다.”
영보는 안타까운 듯이 긴 숨을 쉬었다. 거리는 헐벗은 나무들만 앙상한 팔을 벌리고 있었다. 찬바람이 휭-하게 불어오는 거리에 날리는 낙엽을 보고, 영보는 IMF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은, 모두 저 낙엽 같을 것이라 생각을 하였다. 기섭이가 회사를 생각하는 것을 사장이 알아야 하는데 묵묵히 소처럼 일하는 사람은 그저 소거니 생각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회사의 기둥 역할을 하는 것은 기섭이 같은 사람인데. 기업은 사회적 기업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이 납품처에 도착하게 되었다.
영보는 풍기상사에서 상품 입고를 끝마치고 박사장에게로 갔다. 얼굴이 큼직하고 목이 짧아 그런지 목소리 톤이 컬컬한 박사장은 영보가 가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해준다. 요즘 일요일만 되면 마음수양을 할 겸 절에 다니면서 붓글씨도 배우려 다닌다는 박사장은, 반백의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플라스틱 의자를 꺼내어 주며 자리에 앉으라며 말했다. 영보는 플라스틱 의자에 앉으면서 한지에 한자로 써놓은 ‘가화만사성’ 붓글씨를 보았다. 붓글씨를 배운 적이 있는 영보 인지라 “사장님 상당히 잘 쓰는 붓글씨입니다.” 며 말했다.
박사장은 “뭐 잘 쓰기는 붓글씨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는데.” 쉰 듯한 굵은 목소리로 멋쩍은 미소를 띄었다. 박사장은 손에 들고 있던 붓 펜을 종이 위에 놓고는 의자를 당겨 영보가까이로 다가와 앉으면서 영보에게 물었다. “김부장 요즘 어때? 보다시피 우리는 장사가 통 안대네, 개미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아 걱정이 되네.” 영보는 박사장이 묻는 말에 대성의 입장을 이야기 해 주었다. “사장님 우리도 마찬가집니다. 장사도 되지 않는데, 메이커에서는 외상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주문을 받지 않고, 즉시 현금을 내라 하니 우리는 결재해야 할 금액이 적은 금액이 아니라 더 힘듭니다.” 박사장은 이해가 간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야 우리가 이렇게 힘든데 큰 곳에는 더 힘들겠지.” 영보는 거래처를 이해하려고 하니 박사장에게 좀 미안하게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결재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어 “사장님 오늘 현금이 되면 결제가 좀 해 주시지요.” 하였다. 이야기를 하다 현금 결제 말이 나오자 사람 좋게 보이던 박 사장은 상기된 얼굴에 두툼한 눈을 찌푸리면 말했다. “아니 김부장 월말 결제를 하면 현금 결제나 마찬가지이지 월말도 안 되었는데 자꾸 결제이야기를 하면 어떻게 해? 월말에 송금 해 주겠네.” 화를 내었다. 박사장은 동아의 김사장과 나이가 비슷하고 친구처럼 터놓는 사이였다. 영보가 현금 결재가 되지 않으면 물품 공급이 어렵다고 말하기 곤란한 표정을 짓는 것을 보고 박사장이 다시 말했다.
“아니 김부장 20년 동안 대성 물건을 팔아 주었으며 한 달 정도 거저 주어도 될 텐데 한 달을 못 기다리나? 그동안 많이 벌었으면 어려울 때 거래처를 도와주지 못할망정 더 쪼아되니, 이래가지고 거래를 하겠나? 우리가 죽으면 대성도 죽는 게 아닌가. 결국 같이 공생공영 하는 사이가 아닌가. 어려울 때 있는 사람들이 도아야지 오히려 부자가 더 설치니 원! 김사장이 수금이 안 되었다고 무슨 말을 하거든 월말이 되면 바로 송금시켜 주겠다고 하더라고 해주게.”
영보는 수금이 잘 되지 않았다. 또 회사에 무슨 소리를 들을지 모른다. 거래처는 육하원칙으로 말이 맞는 이야기이다. 영보 생각도 마찬 가지였다. 거래처가 살아야 대성도 사는 것이다. 거래처가 있기 때문에 대성이 있고, 내가 이 회사에 근무를 할 수 있는 것도 거래처가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런 생각에 미치자 영보는 더 이상 수금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다.
영보는 배송을 끝내고 사무실에서 장부를 정리하자니, 10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김사장도 아직 퇴근을 하지 않고 책상에 앉아있었다. 김사장은 서류를 정리하고 있는 영보 곁으로 와서 수금 리스트를 한 번 보자고 하였다. 김사장은 영보가 정리한 수금리스트를 보고 수금이 안 되어 걱정이라고 하였다. “어음은 하루를 걸러 돌아오고, 메이커에서 현금이 아니면 물품 공급을 못하겠다고 하니, 수금이 안 되면 자동 부도가 나는 거네, 어음이 돌아 올 때 마다 피가 거꾸로 돌아가는 느낌이라네. 자금에 신경을 쓰니 몸이 점점 아파서 자리에 일어설 힘도 제대로 없네. 현금을 받지 않고 물품 공급을 한다면 우리가 더 버티기 힘드네.”라고 말하였다.
영보는 거래처 상황을 사장에게 말해 주었다. “사장님 거래처는 IMF로 신경이 예민한 상태이니, 수금이 안 된다고 물건은 공급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거래처가 있어야 우리 회사도 있는 게 아닙니까. 거래처를 칼로 두부 자르듯이 자를 수가 없지 않습니까? 정우상사 안 사장은 현금이 되지 않으면 물품 공급을 할 수 없다는 말에 배신감을 느끼고 충격 받았다 합니다. 안사장은 ‘일 잘하는 월급쟁이를 내일부터 나오지 마라는 말과 같은 말이지 그러면 아무 대책 없는 월급쟁이나 마찬가지로 죽으라는 말과 같은 것이 아니냐. 며 야단쳤습니다. 수금도 거래처의 사항에 따라 완급 조정이 필요합니다.”
사장은 살찜이 많은 얼굴에 잔잔한 눈으로 영보를 보면서 말하였다. “전에 있던 강상무가 돈을 빼 돌리지 않았다면 이렇게 까지는 되지 않았을 텐데,.. 기업은 사람이야. 사람 잘 못 쓰면 기업은 망하게 되는 거야...기업은 사람이라는 말을 너무 절감하네, 하루하루 부도를 생각하면서 살아가다보니 사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네, 나는 나이도 있고 사업의 스트레스로 건강도 좋지 않아서, 이참에 자네가 인수하여 경영을 해 보게, 사업은 체력이라고, 자네는 젊으니까 잘 할 것 같으네 ”
영보는 김사장이 허리를 꾸부정하게 하여 의자의 손잡이를 잡고, 비틀거리며 겨우 일어서는 것을 보면 건강이 얼마나 안 좋은지 알 수 있었다. 영보가 경리를 얼마 보지 않았지만 월 자금 계획서를 작성하여 보면 어음이 하루를 걸려 돌아왔다. 윗돌을 빼어 아랫돌을 막고 아랫돌을 빼어 윗돌을 막고, 돌려 막아야 했다. 사장은 적지 않는 돈을 계속 넣고 신경을 쓰다 보니 건강 상태는 더욱 나빠져 한계에 부딪혀 있었다. 영보는 사장이 부도가 날 것이라고 해도 (주)대성은 거래처도 많고 열심히 하면 분명이 일어설 수 있는 업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맨 땅에 헤딩을 하면서 사업을 하다 IMF를 맞아 최악의 경우를 경험하였지만, (주)대성 정도 자리를 잡은 기업이라면 일으켜 세울 수 있는 자신이 있었다. 영보는 ‘우물 주물 하다가 내 그럴 줄 알았다.’ 버나드 쇼의 묘지명처럼 기회는 다시 오지 않는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영보는 김사장의 말을 받아들이고, 사장이 끌어들인 돈의 일부를 장기적으로 갚기로 하고 (주)대성에 대하여 양도 양수 계약서를 작성하여 기업을 인수하여 경영을 하게 되었다. 영보는 토, 일요일 밤낮 없이 온 몸을 받쳐 회사에 나와서 일하였다. 특히 기섭이는 회사에서 붙어살다 시피하며 영보를 도왔다. 기업은 열정과 노력이었다. 영보는 평소 생각했던 대로 내 회사가 아니라 직원들 회사라는 생각으로 일하였다. (주)대성은 명실 공히 사회 기업으로서의 분위기로 바뀌어져 갔다. 4대 보험 가입과 회사 이익에 대한 종업원 지주제 도입 등 직원들에게 급여 중 일부는 주식으로 주기로 하였다. 직원도 회사에 주인이라고 말을 듣고 회사 발전을 위해 더욱 매진하였다.
IMF라지만 직원들이 회사의 지주로 경영 상태가 오픈 되고 보니 어려움을 같이 공감 할 수 있었다. 어떻게 하면 IMF시대를 헤쳐 나갈 생각들도 내어 놓고 하였다. 직원들은 회사가 자금이 어려워 몇 번의 부도 위기를 아는 터라 회사의 어려움을 같이 인식하고 월급은 반은 현금으로 반은 주식으로 받는데 동의하여 열심히 일하였다. 영보는 회사가 개인 회사가 아니고 종업원 회사라 모두가 사장이라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직원 모두 몸을 아끼지 않고 열심히 일한지 3년 만에 결산을 해보았다. 당기 순이익이 나게 되어 주주인 종업원들에게 현금 배당을 할 수 있었다. 영보는 회사의 이익이 난 부분에 대하여 현금 배당을 실시하였다. 그 때 배당을 받은 직원들의 감동이란 이루 말을 할 수 없었다. 모두 회사에 대한 기대와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회사는 부채는 거의 갚았고 자금의 어려움에서 서서히 벗어나게 되었다. 거래처에서 어음으로 결재하던 관행이 현금결재로 바뀌어 지고, 어음 만기일에 부도가 많았던 어음이 줄어들자 오히려 내실 있는 회사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5년이 지나자 (주)대성은 새 건물을 지었고 규모는 2배 이상이 커져있었다. 기업은 변하지 않으면 발전이 없다는 말이 실감이 났다.
목련 꽃이 꽃샘추위 속에 봄을 알리며 꽃망울을 터트릴 때였다. 영보가 앉아있는 사장실에 노크를 하는 사람이 있었다.
“사장님 기섭이입니다.”
“그래 서부장 들어오느라.”
영보는 많은 서류가 꽂혀 있는 책상위에 놓인 노-트 북 컴퓨터를 열심히 두드리고 있다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기섭이를 보고 하던 일을 멈추고 말하였다.
“그래 서부장 무슨 일이 있나? 서부장이 있으니 든든한 생각이 든다.”
기섭이는 영보 앞에 곧 바른 자세로 서서 예전과 다름없이, 영보가 아껴 주는데 대한 감사와 존경이 우려 나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사장님이 아껴 주시는데 비하며 제가 하는 일이 없는 것 같습니다. 사장님이 계시는 이 한 몸 아끼지 않겠습니다. 여자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정조를 받치고 남자는 목숨을 받친다’ 안 했습니까.”
“녀석은,”
기섭이는 무슨 기쁜 일을 알리는 일이 있는 것처럼 바쁘게 숨을 쉬었다. 기섭의 얼굴에 기쁨이 가득 넘친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기섭은 사장실 벽면에 걸려 있는 달력을 보드니 영보에게 말했다.
“사장님 저 드디어 결혼 하게 되었습니다.”
영보는 생각도 하지 않은 일이라 기섭이 쪽으로 의자를 돌려 앉았다. 놀라는 표정이 연역한 얼굴로 전에 들은 적이 있어서 말했다.
“뭐! 정말이냐! 요사이 잘되어가는 아가씨가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네가 결혼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누가 먼저 결혼을 하자 했는냐? 물로 처녀 쪽이겠지.”
“예 그렇습니다. 저가 꼬인 거지요. 나애리 쪽에서 데이트 신청을 하였습니다. 연애를 한지 1년 정도 됩니다. 저는 결혼 할 처지가 못된다하니, 나애리가 적극적으로 결혼을 하겠다하였습니다. 자기 아버지 어머니도 나애리의 성화에 못 이겨 승낙했습니다. 승낙한 뒤 장인이 그러시던 군요. ‘잘되었다. 귀한 외동딸인데 사위가 부모가 없으니 아들처럼 다리고 같이 살며 되겠다.’ 하던군요. 영보는 언뜻 들은 적이 있었다. 나애리 아버지는 성질이 불같았으나 신앙심이 깊었고 늦게 본 고명딸에게는 너무나 자상한 아버지라는 것이었다. 슬하에 자식이 없어 기도 끝에 낳은 고명딸이었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딸 하나에 부부는 모든 애정을 쏟아 갔지만 나애리는 날 때부터 난치병이 있었다. 골수가 정상인보다 부족하여 머리의 통증을 항상 호소해야 했고, 항상 보충적인 약을 투약해야 했다. 나이가 들어 결혼을 걱정할 나이에 나팔관이 작아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나애리는 결혼을 생각할 처지가 못 되어 부모의 걱정은 태산 같았다. 그런 나애리였기에 순하고 착실한 기섭에게 끌린 것이었다.
“그래 정말 잘 되었다. 결혼 날짜는 언제 잡았나.”
“4월 21일 일요일입니다. 그 날이 결혼 날짜가 좋다 하던군요”
“그래 축하한다. 8년 전에 비하며 지금은 나도 많이 나아지고 자네도 많이 좋아졌어. 상당히 발전 했구나. 그래 결혼까지 하게 되었으니 그것보다 더 반가운 일이 있겠나. 정말 축하 하네!”
기섭이 결혼식 날은 하늘에 구름 한 점 없이 쾌청하였다. 꽃샘바람마저 훈훈하였다. 영보는 기섭이 결혼식을 지켜보았다. 성당에서 하는 결혼 성사라 결혼은 성스럽게 올려 졌고 기섭이는 자못 진지하였다. 아버지 대신에 삼촌과 재가를 한 어머니가 와 있었고, 장인 장모는 젊고 후덕하게 보였다. 영보는 식장에서 면식이 있는 사람을 만났다. 신부의 집안 아재가 된다 하였다. 나형식은 기섭이와 나애리의 결혼을 보고 ‘평강공주와 바보 온달의 결혼’ 이라고 하였다. 신부 집의 아버지는 경찰관 출신으로 살기도 넉넉한 집이라는 것이었다. 신부는 무남독녀로 서울 S여대를 나왔고 신랑은 가진 것 없고 고등학교도 겨우 나왔고, 능력이 있는 남자도 아니라는 것이었다. 여자는 똑똑하고 대가 찬 여자였다. 둘이는 도저히 결혼이 성립 될 수 없는 사이라 하였다. 그러나 영보는 달랐다. 사람마다 타고난 운명의 길을 걷는다. 그 길은 알 수 없다. 기섭이는 현재를 인정하고 착하게 열심히 살아가고 있으니까 제 눈에 안경이라고 나애리의 마음에 든 것이다. 헌신짝도 짝이 있고 새신 짝도 짝이 있다고 그 보상으로 늦은 나이지만 하느님이 맺어준 인연이라 생각이 들었다.
기섭이는 결혼식을 끝내고 “사장님 잘 다녀오겠습니다.” 활짝 웃으면서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떠났다.
영보는 오색 색종이에 풍선을 달은 차를 탄 기섭이가 많은 사람의 축하를 받으며 가는 것을 보았다.
“그래 신혼여행 잘 갔다 오너라. 그래 우리 각자 어려웠던 길을 잘 견디어 왔고, 어두운 시절을 잘도 참아 온 거야. 그것이 지금 빛을 본거야 어둠 속에 빛은 더욱 눈 부신거야. 항상 내일은 해가 뜬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잘 살아야 한다.” 영보는 차 꽁무니가 살아진 길을 한참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