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간의 긴장과 설레임 속에서 동호회 문화의 첫발을 살사로 내딛게 되었습니다.
닉네임이 마땅히 떠 오르지 않아 책장에 꽂힌 chemistry 단어가 익숙하길래 앞자 다섯글자인 chemi로 지어버리고요.
지금 생각해보니 좀더 여성스런 이름이나 스페인어를 쓸걸하는 후회가 되지만 너무 오래 사용하다보니 불가능할거 같습니다.
첫날 낯선 이들과 베이직을 밟은 첫정모에서 뒤풀이까지 가게 되었는데 가면서 절친에게 문자를 보낸 기억이 나네요.
"요기 만원내고 입장해서 세시간 거뜬히 춤추고 놀았다. 가성비 최고다 재미있었어"라고..ㅎㅎ
뒤풀이 인원은 12명 정도였고 조용한 호프집였는데 담소를 나누다가 갑자기 춤판으로 돌변, 전혀 예상치 못한 그모습이 자유로와 보이고 부럽기까지 했습니다.
늦은 시간이라 다른 손님들이 드문드문 있었는데 그분들도 구경하면서 신기해하는 눈빛을 보내더군요.
많은 사람이 참여하진 않아서 무슨 사교 모임 같은 이미지였다고나 할까요?
그래도 춤에 대한 진지한 대화도 있었고 초보인 저를 배려해주는 따뜻함을 느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뒤로 저는 당장 어떻게 하면 배울 수 있느냐면서 적극적인 모습으로 다가갔는데 이미 왕초보 강습이 시작된 중간 시점이었습니다.
한달을 기다려야 다시 초보 강습이 시작인데 한달을 기다리기 싫어서 중간에 들어가도 되냐고 양해를 구하고 수업에 참여했어요.
강습생이 30명 정도로 지금보다 초보분들이 많았던 기억이 납니다.
한달 후 제대로 저는 이지라틴 4기로 다시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처음 보는 살사 동작이 너무 어려워서 중간에 따라가기는 무리였거든요.
동기생들과 같이 수업 받고 떼로 몰려다니는게 얼마나 즐거웠는지... 마치 학창 시절 향수를 느끼는 기분이었습니다.
6개월 실력으로 초보 바차타 발표회를 이지라틴 1주년 행사로 무대에 전원이 서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네요.
이지라틴 1주년때 가장 꽃은 퍼커션팀 구성이었는데 싱어까지 대단한 라틴 열정였다고 봅니다.
그 퍼커션에 참석한 분 중 한분은 구창모가 싱어였던 실지 <블랙테트라> 팀의 베이스기타 하신 분도 계셨답니다.
지금은 마시마로 캐릭터 사업가로 변신하셨지만..
이지라틴 수업 장소에는 항상 퍼커션을 위한 악기들이 있었으니 재능 있는 분들 다시 퍼커션팀 구성해보는 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 동기분들 중 유일하게 지금도 빠에 가끔 보이는 분이 왕의 여자님이십니다.
보드맨 고문님과 늦둥이 출산해서 알콩달콩 잘 살고 계시는분요.
지금은 춤을 못하시는 실정이지만 왕의 여자님이 제 동기들 중 최고의 에이스였었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왕초보에게 선생님이란 절대적인 분이어서 우린 정모때 선생님 뒤만 쫄쫄 따라다니면서 열심히 베이직을 익혔습니다.
까페 한줄메모장에 선생님을 하야시 아빠, 사라 엄마라고 칭하였으니..
두분이 정모 안나오는 날은 괜히 맥빠져서 마치 고아된 기분이기까지 했답니다.
미모 또한 출중하신 사라샘께서 마침내 해마다 열리는 그 유명한 마이클줄리엣컴피티션에 선수로 참가한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이미 아시다시피 그당시에도 국내 최고의 대회에 거기서 입상하면 인스트럭터의 기회뿐 아니라 살사 스타 탄생의 의미가 컷던 대회였어요.
1회 대회에 끌루이,바사라샘이 우승했고 그뒤로 시스코샘 화라샘 수도 없는 선생님들이 이대회 출신이며 지금의 라틴걸 샘도 이대회 1등 출신이시죠.
지금도 이지에서 강습하고 계시는 마이클 줄리엣 선생님의 기획으로 보석 같은 살사 스타들이 해마다 탄생했으니 두분의 공로는 이루 말할 수가 없답니다.
이대회에 우리의 선생님이 나간다기에 이지분들 모두가 합심해서 전원 참석 응원하러 나서게 된것 입니다.
그때는 광장동이 아닌 서울의 강남 근처 호텔이었고 국내팀뿐 아니라 해외팀까지 참석했었어요.
호텔에서 대회 시작전에 간단한 다과도 먹고 앞풀이 개념으로 응원온 분들끼리 프리댄스까지 추었습니다.
마침내 대회가 시작 되었고 동호회 별로 각자 응원하는 선수들을 격려하는 박수와 함성으로 꽤 긴시간 관람했어요.
눈 앞에서 화려한 살사 공연이 사실은 불꽃 튀기는 경쟁의 한판이라 우린 소리소리 지르면서 몇 안되는 중년 살사의 파워를 보여주기도 했답니다.
우리 선생님은 예술상을 수상하셨고, 지방에서 온 대구팀이 일등했는데 지금의 남자 아톰샘이었습니다.
해외 1등한 중국 팀들과 뒤풀이에서 만나서 우리 이지 사람들 즐겁게 춤 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네요.
이대회를 눈으로 보면서 저는 완전히 살사를 어떻게 즐기는건지 어떤 문화인지 하나하나 알게 된거 같습니다.
이지 분들은 선생님 응원차 그대회에 전원 참석하는 의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중년 살사의 태동기는 초창기라 춤실력이 뛰어나지 않아서 긴장감을 없애느라 정모 시간에 일부러 포도주를 제공하는 분위기였고, 빠에서의 정모는 왠지 두려움이 살짝 있었기도 했답니다.
마침내 이지라틴은 알을 깨고 나오는 심정으로 압구정 가치빠로 정모 장소를 옯기게 되었습니다.
압구정 가치빠 탐방 번개를 지금도 잊을 수가 없는데 당시 열성 분자인 저는 당연 참석 했고요.
몇차에 걸친 회원분들과 아기자기하게 놀다가 당시 친해진 여자분들 집이 멀어서 저의 집에서 하루를 자고 가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습니다.
한분은 이천, 한분은 구리인데 너무 멀어서 그날이 토욜이고 저의 집에서 재워주기로 한건데 마지막 헤어지는 타임에 살세로 한분이 합승,저의 집까지 같이 가게 되었답니다.
어쩔 수 없이 저의 집에서 살사를 추고 엠티 온거 같이 네사람이 놀았네요.
그 분 닉은 공개적으로는 말할 수없습니다.
지금도 정모에 나오는 분인데 고문님이시구요.
담날 이지라틴 게시판 벙게 후기엔
1차..어디
2차 ..어디
3차..어디
4차..1대 3 취침 이라고 적혀서 그걸 본 회원들이 깜놀했답니다 ㅎㅎ
댓글이 모두 호기심 발동이 되어서 그장소가 어딜까? 누굴까?
보다보다 이런 번개후기는 첨본다 는 둥
반응이 재미있었어요.
단순히 선택한 취미에서 중년에 새로운 친구들도 사귀고 이런 재미있는 추억까지도 있었으니...
동호회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이 지배하던 예전의 제모습과는 환골탈태한 셈 입니다.
아뭏든 저는 큰맘 먹고 선택한 이지라틴 첫정모에서 바로 삘 받고 바로 수업 신청하고 빨리 배우고 싶은 생각에 초급과 초준급 수업을 동시에 신청했습니다.
까페에서 하는 모든 엠티든 번개든 정모는 부모님 제사 빼고는 다 나왔으니 마치 스폰지가 물을 흡수하듯이 살사인의 모습으로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살사 선택은 제 인생의 취미에서 탁월한 선택이 되었습니다.
....................................................................................................................
2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