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추석, 고향에 성묘를 다녀오면서 우리의 장례문화에 대하여 고민해 보았다.
코스모스 가득 피어 있는 아름다운 국도를 지나며 이제는 도로 가까이까지 내려와 있는 묘지들이 자꾸 눈에 거슬렸다. 오늘날의 명당은 좌청룡, 우백호가 아니라 좌택시, 우버스라며 한사코 큰 길가에 봉분이나 납골당을 만들었기 때문이리라.
지난 9월11일, 불교계의 거목인 법장스님이 타계하면서 시신을 기증하고 한줌의 재로 산골방식의 장례를 치르면서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우리의 장례방식에 대하여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우리나라의 묘지면적은 국토의 1%, 거주용 택지의 절반, 공업용지의 2.5배에 이른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해마다 전통적인 매장으로 인하여 여의도의 1.2배에 달하는 땅이 묘지로 바뀌어 가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위기감속에 그동안 금기시되었던 화장률이 지난해말 현재 49.71%로 절반을 육박하게 된 것은 고무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최근에는 호화스러운 납골당과 납골묘의 거부감 때문에 자연친화적인 산골(散骨)장례방식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 산골이란 화장한 유골을 가루로 만들어 납골당에 안치하지 않고 강, 바다, 산이나 지정된 장소에 뿌리는 장례방식을 말한다. 이러한 여러가지 방법 가운데 관심을 끄는 것은 단연 수목장(樹木葬)으로서 유회를 나무아래 파묻거나 주위에 뿌리는 방식이다.
수목장은 1990년대 스위스의 전기기술자 우엘리 자우터가 처음으로 도입했다고 알려진 이후 독일, 일본 등지에서 국민들로부터 호응을 얻으며 빠르게 확산되어 가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난해 한국의 수목장 1호로 기록된 김장수 할아버지 나무는 경기도 양평소재 고려대 연습림의 30년생 참나무에 명찰을 달고 올곧게 서있다. 국내에서 이미 조성된 수목장 장소로는 경북 영천의 은해사(소나무 숲), 충남 서대산의 일불사(측백나무 숲), 강원 원주의 문막읍 온누리 가족동산(단풍나무 숲) 등이 있다. 서울시에서는 2007년말까지 경기 파주에 3만평 규모의 산골공원을 수목장 위주로 조성할 계획이라고 한다.
필자는 기회있을 때마다 우리 지역도 수목장 확산을 위해 수목림 조성을 위한 준비가 시급하다고 역설하여 왔다. 그렇지만 아직도 지방자치단체, 종교기관, 시민단체 등에서는 메아리가 없어 참으로 안타까운 심경이다.
전국 어느 지역보다 자연친화적인 환경을 갖고 있는 우리 고장이기에 그렇고, 고향 뒷산의 소나무 아래 묻히고 싶은 출향인구가 가장 많아 더더욱 그렇다. 이제부터서라도 나름대로 수목림을 만들어 후손들에게 울창한 숲을 선물해 주자. 아직 수목장에 대한 인지도는 그리 높지 않지만,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의미에서 우리들의 수목장에 대한 인식은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더욱이 성묘문화가 사라져 가고 있는 요즈음의 현실을 감안할 때, 수목장이야 말로 자손들이 찾아와 나무 그늘에서 쉬었다 갈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아닌가?
나무와 함께 영생하는 수목장, 자연으로 돌아가는 지름길인 수목장!
자신들의 가문을 위해 커다란 봉분, 대궐같은 납골당을 지어 자손만대까지 관리시키겠다는 이기주의는 이제 그만 버리고 수목장으로 장례문화를 바꾸어 가자.
그래서 대리석으로 치장한 볼쌍사나운 묘들도 흉물스러운 콘크리트 납골당들도 우리 주위에서 사라져, 금수강산의 영예를 되찾았을 날이 어서 빨리 왔으면 좋겠다.
요즈음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하여 사회공헌이 강조되고 있음을 보며, 시신기증 후 화장을 통한 수목장의 장례문화는 나눔을 실천하는 가장 바람직한 방법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한다.
토요일 밤이면 어느 방송의 느낌표 프로그램에서 잃은 시력을 되찾아 주는 선행을 하는데, 그 때마다 외국에서 각막을 가져올 수밖에 없는 인색한 기부문화가 참으로 아쉬웠다.
그렇다. 지금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깨어있는 리더들의 적극적인 동참이 필요한 때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