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을 위하여/강신주/천년의 상상
1부-시인을 위하여
“인문학은 다른 학문과 달리 고유명사의 학문이다.”는 강신주의 말처럼, 시를 읽으면 각자 독자의 영역임을 인정해 주고 있는 것 같아서 인상적인 문장이다.
시인 김수영에 대해서 강신주의 시선을 따라가니, 더욱 더 김수영 시인을 이해하게 되었다.
1968년 6월 16일, 내가 태어나고 약 3개월 후에 시인은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렇게 가면서 얼마나 아쉬웠을까?
“김수영은 자기 자신으로 살고자 평생 게릴라처럼 지내야만 했다.”는 문장에서 현실 생활의 고됨과 끝없는 투쟁의 삶을 살아온 그의 삶을 대변해주는 문장처럼 읽힌다.
보통 사람에 비해서 훨씬 더 민감하고 섬세한 시인, 자유를 꿈꾸었던 시인 김수영,
‘한 번 밖에 없는 자신의 삶을 자신의 스타일로 살아 내야 한다.’는 김수영 시인과 강신주 작가처럼.
버지니아 울프 그녀도 말하고 있다.
No need to hurry.
No need to sparkle.
No need to be anybody but oneself.
서두를 필요도 없고 반짝일 필요도 없고 자기 자신 말고는 다른 누군가가 될 필요도 없다고.
긍지의 날(1955.2)
피로도 내가 만드는 것
긍지도 내가 만드는 것
그러할 때면은 나의 몸은 항상
한치를 더 자라는 꽃이 아니더냐
오늘은 필경 여러 가지를 합한 긍지의 날인가 보다
암만 불러도 싫지 않은 긍지의 날인가 보다
모든 설움이 합쳐지고 모든 것이 설움으로 돌아가는
긍지의 날인가 보다
이것이 나의 날
내가 자라는 날인가 보다
김수영, 신동문, 이병주
김수영 시인의 시의 불친절함-날 선 시인은 자기만의 풍경을 그린다. 그래서 시는 불친절하다.
김수영 시인이 품은 理想은 시인이 되는 것.
김수영 시인이 위대한 것은 시인이 되려는 필사적인 노력을 멈추지 않았기 때문.
시에 반역하는 마음, 시를 탄생시킬 수 있는 마음은 고정된 의미망으로부터 벗어난 구름처럼 자유로운 마음이다.
기질은 특정 사물이나 사건에 정해진 반응을 하도록 훈육된 습관이나 타성의 다른 이름이다.
그는 사태와 자기가 하나로 붙어서 생긴 타성을 벽이라고 부르며 경계했다.
김수영은 산문을 통해 삶의 어떤 순간에 드러나 자신의 나체를 있는 그대로 포착하고 드러내려고 했기 때문이다.
평생에 맞선 세 가지 적, 죽음과 가난과 賣名
구름이 되려는 기대가 시인에게 평생 설움을 안겨다 주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