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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 4장
요단강을 건너는 일에서 언약을 새롭게 하신 하나님을
기념비를 세워 대대로 기억하라 (찬송 시편 2편-파일첨부) 시편2편.pdf
2018-2-15, 목
맥락과 의미
여호수아 1-4장은 하나님께서 언약을 새롭게 하신 일을 가르칩니다. 지금 우리도 이 말씀을 읽고 예배할 때 하나님께서 언약을 새롭게 하시면서 언약에 신실하게 행동하십니다.
1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나타나셔서 “모세가 죽었다. 그러나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강하고 담대하라. 네가 밟는 땅을 너에게 주겠다.” 약속하셨습니다. 모세와 함께 하시던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와 함께 하겠다고 새롭게 헌신하셨습니다. 2장에서는 정탐꾼이 여리고로 갔을 때에 기생 라합과 정탐군들은 언약을 맺습니다. 라합은 정탐꾼을 신실하게 살려 줍니다. 정탐군도 앞으로 여리고 성을 멸망시킬 때 라합의 가족을 살려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3장에서 언약궤가 요단강물을 멈추게 하는 것도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백성을 물로부터 보호하시는 신실성을 나타냅니다. 3장과 4장에서 요단강을 건넌 이야기를 반복하여 말합니다. 반복되는 이야기에서 중요한 것은 12개의 돌들입니다. 요단 강 가운데에 12개를 세우고, 요단 강가에도 12개를 세웁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구원의 일을 기념하는 표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하기 위해 기념비를 세웁니다. 4장은 하나님께서 은혜로 요단강을 건너게 하신 것을 기억하면서 하나님을 경외할 것을 가르칩니다. 이렇게 해서 요단강은 건넌 역사는 시대 마다 새롭게 기억되어야 하는 “항상 오늘 우리의 이야기”가 되게 합니다. 지금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해 주시는 일에 대한 비유이기도 합니다.
1. 하나님께서 요단강을 건너게 하신 일에 대한 기념비를 세움 (1-9절)
1) 하나님께서 기념비를 세우도록 명령 (1-7절)
백성들이 건너기를 마친 후에 열두 지파에서 한 명씩 사람들을 뽑았습니다. 그들이 강 가운데서 기념돌을 한 명 당 하나씩 총 12개 가져가라고 합니다. 그들이 머무는 장소에 세우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리고 또다른 돌 12개를 강 가운데 제사장이 선 곳에 세우게 하십니다.
돌을 세운 목적은 후손들에게 그 돌이 표징이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후손들이 요단강가에서 그 돌을 볼 때마다 무슨 돌인지 물을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구원하셨다는 것을 후손들에게 계속 가르치도록 하십니다. 대대로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도록 했습니다.
6절에서 표징, 7절에서 기념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에 대한 표입니다. 언약궤가 요단강에 서 있을 때 물이 끊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요단강물이 끊어지게 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을 새롭게 하셨습니다. 앞으로 계속 보호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약속을 새롭게 하셨습니다.
백성들이 앞으로 이것을 계속 기억하고 기념할 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이것을 기억하며 하나님의 백성은 어떤 상황에서든지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며 나아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섭리 가운데 그 백성을 인도하실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명령대로 요단강 가운데에 기념비를 세움 (8-9절)
언약의 하나님의 명령 앞에서 여호수아는 그대로 행했습니다(8절). 3장에서 요단강을 건널 때 제사장들이 먼저 들어간 것도 순종이었습니다. 그 말씀을 기억하게 하는 돌을 가져가라 하시는 것에 대해서도 순종했습니다. 또다른 돌 12개를 요단강 가운데에 세우는 일에도 순종합니다. 요단강 가운데에 있는 돌은 앞으로 직접 눈으로 보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백성들은 요단강을 바라볼 때마다 저 가운데에 돌이 있다는 것을 떠올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요단강을 기적으로 건너게 하셨던 이야기를 계속할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보이는 것 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앞으로 성막과 성전 안에 언약궤를 둘 것입니다. 성막과 지성소 안에는 백성들이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 말씀을 통해서 지성소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있다는 것을 압니다. 언약궤 위에 구름으로 임재하시는 영광의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경배할 것입니다.
2.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고 요단강을 지나감 (10-24절)
1) 제사장들과 요단 동편에서 땅을 분배받은 백성들이 앞장서서 증거궤를 들고 요단강을 건너감 (10-19절)
요단강을 건넌 이야기에서 직분자와 모범을 보이는 성도들의 이야기가 강조됩니다. 궤를 멘 제사장들이 믿음과 순종으로 섬겼습니다. 그들이 먼저 위험한 물 속에 들어갔습니다. 백성들이 다 건너기까지 머물러 있었습니다(11절). 동쪽 지역에서 땅을 미리 분배받은 두 지파 반은 먼저 싸우러 나갔습니다. 이들이 가장 앞장서서 요단강을 건넜습니다(12절). 직분자가 먼저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먼저 복을 받은 성도들이 먼저 헌신해야 합니다
요단강을 건거는 이야기의 중간에 백성들이 여호수아를 모세처럼 두려워하게 되었다는 말을 해 줍니다(14절). 3:7에도 같은 말이 나옵니다. 요단강을 건넌 이야기는 여호수에게 하나님이 주신 권위가 있음을 하나님께서 확정하신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제사장과 백성들에게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여호수아에게 말씀합니다. “제사장들을 올라오게 하라.” (16절) 그 말에 순종하여 제사장들이 올라오자 다시 요단 물이 흘렀습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우리 가운데서도 직분자를 통해 언약을 신실하게 이루어 가십니다. 먼저 직분자인 목사가 먼저 헌신할 때 교회가 바로 세워져 갑니다. 가정의 가장이 바로 서서 먼저 헌신하고 모범을 보임으로 가정을 세워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을 주시고 능력을 주셔서 권위를 세우실 것입니다. 가정과 교회의 직분자들이 이런 역할을 잘 감당하도록 기도하고 격려합시다.
2) 하나님의 명령대로 길갈에 기념비를 세움 (20-24절)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에서 올라온 뒤 여리고가 앞에 보이는 길갈에 진을 칩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요단강에서 가져온 열두 돌을 그곳에 기념비로 세웁니다. 장차 그 돌을 보며 후손들에게 가르칠 것입니다. 우리 부모들도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하나님 말씀을 가르쳐서 그들이 계속 언약의 복을 누리도록 해야 될 것입니다.
가르칠 내용을 21-22절에서 말해 주십니다. “40년 전에 하나님께서 우리 조상들에게는 홍해를 마르게 하셔서 길을 내셨다. 그와 같이 오늘날 하나님께서 우리 앞에서 요단을 마르게 하셔서 길을 내셨다.”고 증거하게 합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의 구원을 행하신 하나님께서 땅을 차지하는 구원을 행하셨다는 이야기를 후손들에게 계속 계속 전해줄 것입니다.
이 기념비는 온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알게 하할 것입니다(24절). 하나님의 백성들도 그것을 알 것입니다. 그러나 아는 것에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할 것입니다.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기적의 력을 알고도 경외하지도 않고 순종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백성들은 이 말씀을 들을 때 하나님을 영원히 기억하고 두려워할 것입니다. 경배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기적적 능력을 경험하게 하셨다면 하나님을 두려워 하며 사랑합시다.
우리 성도들이 만약 하나님의 기적의 능력만 알고 그것만 기대하고 있다면 우상숭배자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능력으로 주신 복을 너머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예배하는 데 까지 나갑시다. 하나님의 능력과 우리의 경배가 만나는 곳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우리 죄를 요서하시고,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게 하신 이 능력을 보이신 하나님께 감사찬양하시다.
믿고 복종할 일
우리도 자녀들에게 신실하게 말씀을 가르쳐서 은혜의 말씀이 계속 기억되도록 합시다. 그때에는 강이 갈라지는 기적이 일어났지만, 지금은 그런 표적들이 자주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인 은혜의 수단, 말씀과 성례와 기도 가운데서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언약에 신실하십니다. 그때 그 기적을 이루신 하나님께서 오늘도 우리가 예배 가운데서 우리를 만나시고 은혜를 베푸십니다.
앞서간 구약 백성들에게 하신 구원의 은혜, 또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원의 은혜를 말씀으로 듣고 계속 기억합니다. 특별히 성찬에 참여하고 세례를 받을 때 구원의 표와 기념을 봅니다. 예배 가운데 계속 그 이야기를 듣고 믿을 때에 신비하게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새롭게 오셔서 만나 주십니다. 이것이 강이 갈라지는 것보다 더 큰 기적입니다.
요단강을 건너게 하신 하나님께서 지금도 우리의 삶 가운데서 일하십니다. 우리가 할 일은 요단강의 두려운 물을 보지 않고 언약의 말씀을 기억하고 나가는 것입니다. 예배 가운데 신실하게 하나님을 만납시다. 그 말씀을 의지하여 일상을 살아갑시다. 두려움 없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합시다. 그러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도 그 나라를 누리게 하실 것입니다.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지금도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오늘도 함께 하나님 이름을 부릅시다. 구원의 은혜를 우리에게 베풀어 주심을 찬양합시다.
<참고>
유월절 및 홍해를 건넌 사건과 요단강을 건넌 사건의 유사성
오늘 말씀에서는 출애굽기 12,14장에 나오는 유월절 및 홍해를 건넌 사건과 동일한 표현과 내용을 반복합니다.
1) 유월절 때 천사들이 이집트 지역을 두루 다니면서(아바르) 이집트의 장자들을 죽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넜습니다(아바르).
2) 유월절과 홍해를 건넌 것, 요단강을 건넌 것 모두 이스라엘 백성들을 죽음 가운데에서 살리신 일입니다.
3) 하나님께서 홍해를 마르게(야베쉬) 하셨듯이 요단강도 마르게(야베쉬) 하셨습니다(수 4:23).
4) 유월절 이야기를 후손들에게 말해주라고 두 번 명령하셨습니다(출 12:27, 13:14). 오늘도 요단강을 건넌 사건을 후손들에게 말해주라는 명령을 두 번 반복합니다(수 4:7,22).
5) 유월절 사건을 표와 기념으로 삼으라고 하셨습니다(출 12:13,14, 13:3,9). 요단강을 건넌 것도 표와 기념으로 영원히 기억되게 하십니다(수 4:6,7).
하나님의 백성과 맺은 언약의 표시: 라합과 요단강 건너기
여호수아 1-4장은 하나님께서 언약을 새롭게 하신 일을 가르칩니다. 지금 우리도 이 말씀을 읽고 예배할 때 하나님께서 언약을 새롭게 하시면서 언약에 신실하게 행동하십니다.
2장 기생라합의 믿음에 나타난 언약: 정탐꾼이 여리고로 갔을 때에 기생 라합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 하늘에 아래로 땅에 하나님이다.”고 고백합니다. 그녀는 여호와께서 그 분의 백성에게 행하신 일을 들었고, 여호와 하나님을 인정하고 믿습니다. 성령께서 그녀의 마음 속에 믿음을 일으켰음을 알 수 있습니다. 멸망할 자기 백성들로부터 뛰쳐 나와 하나님의 백성의 한 사람으로 여겨지기 원했습니다.
언약맺기: 이제 라합과 이스라엘의 정탐꾼 사이에 언약을 맺습니다.
12,13절 “내가 너희를 선대(헤세드로 행함)하였은 즉 너희도 내 아버지 집을 선대(헤세드로 행함)하여 생명을 죽는 데서 건져 내기로 이제 여호와로 맹세하고 내게 진실한 (에메트) 표(오트)를 내라”
14절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땅을 주실 때에는 인자하고 인자(헤세드)하고 진실(에메트)하게’ 너를 대우하리라(행하리라)”
인자와 진실은 하나님이 백성에게 맺으신 언약관계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이제 언약의 사랑과 신실성이 이방인 중의 한 명인 기생 라합에게도 나타납니다. 백성의 대표로서 정탐꾼들도 그 인자와 진실을 행합니다. 사람끼리의 맹세 가운데 하나님의 언약을 서로가 받아들이는 언약이 들어 있습니다.
언약은 행함: 말과 의식으로 이루어 지지만 반드시 행해야 합니다(선대, 행함)
3, 4장에 여리고를 거너는 데서 나타난 언약
언약궤 ( 3:3,6,6,8,11,14,17 4:7,9,18) . 백성과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요단강을 멈추게하여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언약궤는 하나님께서 백성들과 함께 하시며 (임재) 능력을 행하신다는 표시입니다.
물이 ‘끊어 졌다’(카라트)=”잘랐다.” (3:13,16, 4:7,7)
물이 끊어졌다는 이 표현은 원래 “언약을 맺는다(카라트=자르다)”에 쓰입니다. 언약을 맺을 때는 짐승을 잘라서 피를 내고 제사를 드리면서 확증합니다. “만약 내가 언약을 어기면 죽음을 각오합니다.”는 표시입니다. 이번에는 짐승 대신 물을 사용하십니다. 죽을 수 있는 사람들을 살려 주십니다. 요단 물이 그치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새롭게 맺으십니다. 살아남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계속적으로 보호해 주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표징(오트, 4:6절), 기념(자카룬,4: 7절)
요단강가의 12개의 돌은 하나님이 언약에 신실하게 백성을 구원한 것에 대한 표와 기념이 될 것입니다. 그 표와 기념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계속 일으킬 것입니다.
라합과 정탐군의 만남, 그리고 요단강을 건너는 것은 단순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백성의 언약의 이야기입니다. 그 언약의 사랑 관계 안으로 들어 가는 이야기입니다. 그 언약의 약속을 이루어 가는 이야기입니다. 그 이야기는 오고 오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하나님의 언약의 신실함에 대한 기념이요 표와 인입니다. 성례 때에 우리도 그 표와 기념을 사용하며 그리스도를 만나고 하나님 만나 것입니다.
언약의 완전함(탐맘)
3:16 흘러가는 물은 온전히(탐맘 17절) 끊어졌습니다(카라드).
3:17, 4:10, 10, 11, 이스라엘 백성은 마른 땅 가운데로 행하여 요단을 건너기를 마쳤습니다(탐맘. 개역 개정에는 번역이 생략됨). 즉 건너기를 완성했습니다.
마친다 (탐맘)은 마친다는 뜻도 있지만 하나님 앞에서 “온전하다. 비난하라 것이 없다”는 뜻으로도 쓰입니다(시 18:25, 19:13, 73:9).
이 말과 어원이 같은“탐밈”은 하나님 앞에 바치는 제물이 온전하다는 뜻입니다(출 12:5, 레 13:10). 한 사람의 삶이 하나님께 바쳐지는 거룩한 제물 처럼 “온전하다”는 뜻으로도 쓰입니다(창 6:9, 신 18:23)
하나님의 백성이 언약관계에서 드려야 할 제물과 삶은 이렇게 온전해야 합니다.
요단강을 건너는 구체적 사실과 함께 하나님의 언약의 신실함이 영적 실제적으로 임재: 환유법
홍해 건넌 이야기에는 쓰이지 않았던 언약에 관련된 단어들이 요단강을 건너는 데에는 쓰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시내산에서 그리고 모압 평지에서 백성과 맺었던 언약을 때문입니다. 요단강을 건너는 일은 홍해를 건너는 일 보다 작은 사건 처럼 보이지만, 더 온전한 제물과 삶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에 대한 상징입니다. 요단강을 건넌 것은 역사적 사실이지만, 그 사실은 비유가 됩니다. 즉 사실과 함께 있는 영적 실재를 가리킵니다. 이러한 비유를 “환유”라고 합니다.
칼빈 목사님이 성찬에서 “이것은 나의 살/피다”는 표현은 예수 그리스도 그 분에 대한 환유라고 했습니다. 빵과 포도주는 보통 빵과 포도주로 사실로 있지만, 빵과 포도주와 함께 그리스도께서 임재하시기 때문입니다.그리스도께서 성령님을 통해 우리와 교제하시고 죄를 용서하시고 생명을 부어 주시는 영적 실재가 함께 있습니다. 세례와 성찬에서 그리스도의 임재가 “영적 실제적으로” 임재하는 것과 같습니다.
요단강 건너는 것은 한번 만 이루어진 “특별한 은혜의 수단, 특별한 성례”였습니다. 세례와 성찬은 그리스도의 재림 때까지 계속 반복되는 “보통 은혜의 수단, 보통의 성례”입니다. 이제 신약시대에는 계속적으로 당신의 임재를 경험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립시다.
제사장이 언약궤를 메는 것을 12명의 지파의 대표들이 돌을 멤(나사아)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언약궤를 메었습니다(나사아, 3:6,6,8,13,14,15,15,17, 4:19,10, 16,18)
12 지파의 대표 12명이 각각 돌을 메었습니다(나사아, 4:3,8). 그들이 돌을 멘 것은 제사장이 언약궤를 멘 것이 계속되는 일입니다. 연장되는 것입니다. 비록 돌을 메었지만 하나님의 임재의 “환유”를 메고 갔습니다. 영광스런 일입니다.
주일 강단에서 말씀을 선포하는 목사의 직무나, 가정에서 경건회를 인도하는 목사의 직무는 다 같이 영광스런 일입니다.
서다(아마드)
언약궤를 멘 제사장은 요단 강에 “섭니다 (3:8 들어 서라. 3:17 굳게 섰고, 4:10서 있고). 그러자 흘러 넘치는 요단 강물이 섰습니다(아마드, 13 쌍여 서다, 16-쌓이고)
제사장은 한갓 인간입니다. 요단 강물에 떠밀려 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들이 멘 언약궤도 나무에 금을 입힌 물질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제사장과 언약궤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임재하셨습니다. 서 있는 제사장과 함께 하나님께서 서 계셨습니다.
하나님이 물 가운데 서 계실 때 흐르던 물이 서서 가만히 있었습니다.
오늘도 교회와 가정의 직분자에게 하나님이 능력으로 임재하십니다. 직분을 다하기 위해 우리가 들어 가야 할 위험한 강물들을 두려워 하지 맙시다. 직분자가 담대히 굳게 설 때, 하나님의 굳게 서심이 나타납니다. 직분자가 담대하게 서 있을 때, 강물과 같은 위험들이 서 있고, 우리의 성도와 가족은 안전하게 건너갑니다. 작은 일들 하나 하나 가운데서도 우리는 굳게 서서 우리에게 맡겨진 사람들을 안전하게 보냅시다. 우리 인생 끝날 때 까지 우리는 굳게 서서 우리에게 맡겨 진 사람을 안전하게 천국으로 인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