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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사회를 맞아 우리 주변에서 50-60대 이상 늦깎이 재혼이 늘고 있다.
다른 사람이 무어라 해도 사랑하기 때문에 행복하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황혼 커플들이 있는 반면에, 자식들역시 부모재혼에 대한 인식도 변하고 있다.
조 모씨(여.58세/ 시흥시 장곡동)는 오는 12월 재혼을 앞두고 요즘 신혼살림 준비에 마음이 들떠 있다. 새 집에 들여놓을 세간을 장만할 설렘에 꿈에 부풀어 있다. 종합병원에서 청소하는 일을 하는 조씨는 지난해 가을부터 같은 직장의 동료와 사랑을 키워왔다. 뒤늦게 찾아온 사랑이었지만 두려울 것 없었다.
남편 없이 4남매를 키워오느라 굵어진 손가락 마디가 부끄럽지 않았다. 연애를 시작한 지 3개월, 확신이 서자 조씨는 자식들을 불러 선언했다. “나 결혼할란다.” 는 당당한 어머님 말씀에 자식들은 놀라 어리둥절하였으나, 끝내 동의하고 적극적인 지지와 축하를 받게 되었다.
함께 즐기는 인생의 ‘여가’
그렇잖아도 사별 뒤 홀로 된 어머니를 안쓰럽게 생각해온 자식들은 어머니의 결정을 반겼다. 미혼으로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아들은 “어머니가 연애하시기 전엔, 주말에 친구들과 놀러나갈 때 혼자 집을 지키고 계신 어머니께 너무 미안했다. 이제는 어머니가 주말마다 남자친구와 여행도 하시며 외롭지 않게 지내시니 훨씬 마음이 편하다.” 그는 “내가 나중에 결혼을 할 때 어머니의 재혼 사실이 우리 집안의 ‘흠’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두 분이 행복하게 사시는 모습이 며느리에게도 좋은 영향을 끼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결혼식은 가족끼리 조촐하게 치를 예정이지만 제2의 출발은 화려하다. 예비 남편은 집을 장만했고 휴일마다 함께 놀러가자며 승용차를 뽑았다. 조씨도 운전을 배우기 시작했다. 30여년 전 초혼이 새로운 둥지를 일구고 자식들을 키워내야 할 의무가 있는 ‘생활’이었다면, 두 번째 결혼은 ‘함께 즐기는 여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어떤 소일거리로 시간을 보낼지, 어디를 여행할지 머리를 맞대고 궁리하는 시간이 즐겁다.
당당하게 재혼하는 실버들이 부럽다.
옛 남편이 준비성이 부족하고 많은 결정을 자신에게 미뤘던 데 대해 불만이 컸던 조씨는 그 반대로 매사를 꼼꼼히 기획하고 착실하게 준비하는 새 남편이 만족스럽다. 이들은 재산분배 문제나 자녀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미리 답을 내려뒀다.
새 남편은 집과 차 구입비를 뺀 나머지 돈은 자식들에게 넘겼다. 조씨의 자녀 중 유학과 결혼을 앞둔 두 아이에 대해선, 남편에게 전혀 손을 벌리지 않고 각자 챙기기로 했다. 50대 이상의 늦깎이 재혼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바뀌고 있다. 고령 인구의 증가와 함께 황혼이혼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생겨나면서 황혼재혼에 대해서도 긍정적 변화가 일고 있다.
당사자 역시 자녀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적극적으로 자신과 맞는 짝을 구하려는 움직임이 늘고 있다. 결혼정보사에 따르면 지난 1년 동안 총 2천여건의 상담건수 중, 50~60대 비중이 꾸준히 급증해 올 1월부터 한달 100건을 넘어서고 있다. 결혼알선업체 듀오는 중년 이상 재혼을 원하는 상담자가 급증하자, 5월마다 60대 이상의 ‘효도미팅’을 주선해 미팅 신청을 받자마자 금방 매진되는 사례가 계속되고 있다.
자식에게 유산을 물려주지 않는다.
이처럼 황혼재혼이 각광받는 것은 자식들과의 관계 변화가 가장 큰 이유다. IMF 이후 명예퇴직으로 목돈을 받은 50~60대가 늘어났지만, 예전과는 달리 이제는 유산을 자식들에게 미리 주지 않는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시대에 자신이 직접 노후를 설계해야 한다는 강박이 커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식들도 예전처럼 부모를 자기가 부양해야 한다거나 그들의 삶에 ‘개입’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점점 부모 따로, 자식 따로 각자 책임지자는 경향이 늘어나면서 재혼에 대한 희망도 커지게 된 것으로 분석한다.
“효도미팅에서 만난 어르신들이 연애를 하시다 결혼까지 고려하던 커플이 있었다. 하지만 자식들의 반대가 무섭더라. 아버지의 이런저런 학력과 경력에 어울리는 여자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상대방쪽의 자녀 신상명세서까지 요구하는데 어떻게 성혼이 될 수 있겠는가.” 조건이나 이해관계를 따지는 것뿐 아니라 자녀들의 일방적인 심리적 거부감도 재혼에 큰 걸림돌이었다.
“너희들은 부모의 인생을 잘 모른다”
14년 전 재혼한 김 모씨((68세/정왕동)는 지금의 남편을 사귀면서 곧 가정을 이루고 싶었지만 자녀들이 결사반대했다. “혼자 사는 게 편안하지 다 늦게 꼭 결혼을 해야 하느냐”는 자녀들의 반대에 “너희들은 부모 인생을 잘 모른다”며 5년 동안 설득한 뒤에야 결혼식을 올릴 수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이혼이든, 사별 때문이든 홀로 된 부모가 짝을 찾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일고 있다. 홀어머니를 둔 남편과 결혼한 장 모씨 (보육교사)는 “기회만 닿으면 시어머니께 좋은 사람을 찾으시라고 말씀드렸더니, 드디어 시어머니께 최근 남자친구가 생겼다. 결혼까지는 말할 단계가 아니지만, 훨씬 젊어지고 밝아지셔서 보기 좋다.
짝을 찾으면 깐깐했던 부모도 자식들에게 너그러워진다”고 말한다. 이런 경향은 부모-자녀 사이의 자율성이 커지면서 앞으로 더욱 짙어질 전망이다.
최근 서울시내 중·고교생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 중 73%가 부모의 재혼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부모의 인생에 간섭할 수 없다” “부모도 의지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게 찬성의 이유였다.
김규성
시흥시사회복지협의회회장
사)한국효도회 시흥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