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각 지방의 명칭
○ 지방명칭의 유래와 사용시기
오늘날 통용되고 있는 8도의 지방명칭은 고려시대부터 조선 초기까지 만들어진 이름들이다. 그러나 그 지역의 범위까지 확정된 것은 조선 태종 - 세종 때 서북방면과 동북방면의 여진족을 몰아내고 압록강 - 두만강 일대를 우리 강토로 회복한 이후부터이며 그 시기는 대략 1500년대 초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00道」라고 할 때의 ‘도(道)’는 “00방면으로 가는 길”이라는 뜻으로서 원래는 조선시대 역을 관장하는 찰방의 관직 앞에 붙어있었던 명칭과 비슷한데, 조선시대의 광역지방명칭으로 이런 체제를 따르게 된 것 같다.
가. 경기도(경기道) : ‘경기’란 ‘서울을 둘러싼 그 문지방’이라는 뜻이다. 곧 도읍지의 주변지역을 말한다. ‘경기’라는 이름은 1018년(고려 현종 9) 처음으로 사용되었고, 충청도의 북부 일부가 들락날락하였으나 대체로 경기좌도는 한강이남 지역, 경기우도는 한강 이북지역이 해당되었다. (좌.우도는 서열상 좌도가 먼저이다.) 관찰사는 처음 수원에 주재하였다가 뒤에 광주(廣州)로 옮겼으며, 감영을 기영(畿營), 감사(관찰사)를 기백(畿伯)이라 부른 것도 모두 경기의 ‘기’를 붙인 것이다.
나. 강원도(江原道) : ‘강원’이란 이름은 강릉(江陵)과 원주(原州)의 머리 글자를 합하여 만든 이름이다. 강원지방은 삭방도, 춘주도, 동주도, 연해명주도, 교주도 등의 이름으로 불렀으며, 1395년(조선 태조 4) ‘강원’이라는 이름이 처음 사용되었다. 관찰사는 원주에 주재하였으므로 감영을 원영(原營), 감사를 동백(東伯)이라 불렀는데, ‘동’은 관동의 ‘동(東)’자를 붙인 것이다.
다. 충청도(忠淸道) : ‘충청’이라는 이름은 충주(忠州)와 청주(淸州)의 머리글자를 합하여 만든 이름이다. ‘충청’은 1106년(고려 예종 원년) ‘양광충청주도’라고 할 때 최초로 ‘충청’이라는 이름이 사용되었다. 대체로 충청좌도는 지금의 충청북도, 충청우도는 지금의 충청남도 지역에 해당된다. ( 좌.우도는 모두 서울의 궁궐에서 남쪽을 바라볼 때의 방향임) 관찰사의 영은 공주에 두었으므로 감영을 금영(錦營), 감사를 금백(錦伯)이라 불렀는데, 이것은 모두 금강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라. 전라도(全羅道) : ‘전라’란 전주(全州)와 나주(羅州)의 머리글자를 합하여 만든 합성지명이다. 1018년(고려 현종 9) 처음으로 ‘전라도’라는 이름이 사용되었으며, 그전에는 강남도, 해양도, 전광도라고도 불렀다. 1407년(조선 태종 7)군사 행정상 편의에 의하여 좌, 우도로 나누었는데, 동쪽 산악지대를 좌도, 서쪽 평야지대를 우도라 하였다. 관찰사는 전주에 두었으므로 감영을 완영(完營), 감사를 완백(完伯)이라 하였는데, 여기서 ‘완’은 옛 이름 완산주의 머리글자를 취한 것이다.
마. 경상도(慶尙道) : ‘경상’이란 경주(慶州)와 상주(尙州)의 머리글자를 합하여 만든 이름이다. 1106년(고려 예종 원년) 경상진주도라고 할 때 처음 ‘경상’이라는 이름이 사용되었다. 동남도, 영남도, 산남도, 경상진주도 등으로 불렀으며, 1314년(충숙왕 원년) 경상도로 되었고, 1407년(조선 태종 7) 좌, 우도로 나누었는데, 낙동강 동쪽을 좌도, 서쪽을 우도라 하였다. 관찰사는 대구에 주재하였으며, 그 감영을 영영(嶺營), 감사를 영백(嶺伯)이라고 불렀는데, 여기서 ‘영’은 지금 영남의 ‘영(嶺)’과 같이 고개를 뜻하는 이름이다.
바. 황해도(黃海道) : ‘황해’라는 이름은 황주(黃州)와 해주(海州)의 머리글자를 합하여 만든 이름이다. 본래 관내도, 서해도, 풍해도, 황연도라고도 하였으며, 1407년(태종 7) 황해도라 하였고, 그해에 좌,우도로 나누었다. 여기서 좌도는 동쪽, 우도는 서쪽 지방을 뜻하였다. 관찰사는 해주에 있었으므로 감영을 해영(海營), 감사를 해백(海伯)이라 불렀다.
사. 평안도(平安道) : ‘평안’은 평양(平壤)과 안주(安州)의 머리 글자를 합하여 만든 이름이다. 본래 패서도, 북계, 서북면, 관서라고도 불렀으며, 1413년(태종 14) 평안도로 고친 것이다. 지리적 위치에 따라 동도와 서도를 나누기도 하였으며, 관찰사는 평양에 있었으므로 감영을 패영(浿營) 또는 유영(柳營) 혹은 기영(箕營)이라 하였고, 감사를 기백(箕伯)이라 불렀다. 여기서 패영의 ‘패(浿)’는 패수, 즉 대동강을 말하며, 유영의 ‘유(柳)’는 옛 평양의 이름이 유경(柳京)이었기 때문이다. 또 기영의 ‘기(箕)’는 이곳이 기자의 옛 터전이기 때문이다.
아. 함경도(咸鏡道) : ‘함경’이란 이름은 함흥(咸興)과 경성(鏡城)의 머리글자를 합하여 만든 이름이다. 그전에는 함길도, 삭방도, 동계, 동북면, 영길도 등으로 불렀다. 1509년(중종 4) 함흥부의 감영을 회복할 때 함경도로 고쳤다. 관찰사가 함흥에 주둔하였으므로 감영을 함영(咸營), 감사를 북백(北伯)이라 불렀다. 북백의 ‘북’은 관북의 북을 취한 것이다.
○ 지방 명칭의 별칭
가. 영남(嶺南) : 경상도의 별칭으로 교남(嶠南)이라고도 불렀다. 영남의 ‘영’은 고개를 뜻하며 조령(鳥嶺), 죽령(竹嶺), 추풍령(秋風嶺) 등의 고개가 그 경계가 되고 있다. 그러나 그 고개 중에서도 대표적인 고개가 조령(제 1관문 - 제 3관문이 있음)이 되므로 조령이남을 영남이라 한다. 교남은 영남과 같은 뜻을 지닌 말이다.
나. 호남(湖南) : 전라도의 별칭으로 금강하류 남쪽을 뜻한다. 대개 호남의 ‘호(湖)’자를 호수를 뜻하는 것으로 판단하여 김제 벽골제 이남으로 보는 견해가 있으나 금강의 옛 이름이 호강(湖江)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호’는 조선시대에 강변이나 바닷가에도 흔하게 붙여져 있었으며, 서울의 동호(東湖,지금 동호대교 부근의 한강), 마호(麻湖, 지금 마포 앞 한강)와 같은 이름들이 많다. 또 고려 때에도 호남을 강남도(江南道)라 불렀는데, 이것도 역시 금강의 남쪽을 뜻한다.
다. 호서(湖西) : 충청도의 별칭으로 호중(湖中)이라고도 한다. 이 지역도 ‘호(湖)’를 제천의 의림지로 보는 견해가 있으나 금강 상류의 강변에는 호서루(湖西樓)니, 금호루(錦湖樓)니 하는 누정들이 있고, 금강의 옛 이름이 호강으로서 이 강이 충청지방을 휘돌아 흐르기 때문이다.
라. 기전(畿甸) : 경기도의 별칭이며, 기중(畿中), 또는 적기(赤畿)라고도 한다. ‘기(畿)’는 원래 중국에서 서울을 중심으로 5백 리 이내의 땅을 말하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서울을 둘러싼 땅, 그 주변지역을 말한다. 곧 ‘기’가 문지방, 뜰, 또는 안마당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마. 관동(關東)과 관서(關西), 영동(嶺東)과 영서(嶺西) : 강원도의 별칭이며, 관동, 관서의 ‘관(關)’은 대관령이 아닌 철령관(鐵嶺關)의 동쪽과 서쪽을 말한다.(신증동국여지승람 등) 한편 영동과 영서는 대관령 서쪽을 뜻하는 이름이므로 이들이 근래에 서로 혼용되고 있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관동은 무방하되, 관서는 평안도를 말하므로 대관령 서쪽의 강원도 지방은 ‘영서’라는 이름으로 고쳐 써야 할 것이다.
바. 해서(海西) : 황해도의 별칭이며, 해서의 ‘해(海)’가 해주라는 설, 예성강 하구의 벽란도라는 설이 있다. 당시의 정황이나 벽란도진의 성세를 감안할 때 예성강 하구설이 더 무게를 갖는다.
사. 관서(關西) : 평안도 지방의 별칭으로서 철령관의 서쪽을 뜻하는 이름이다. 강원도 지방의 관동, 관서와 혼동하기 쉬우나 관서 = 평안도는 문헌상 오랫동안 사용되어 온 이름이다.
아. 관북(關北) : 함경도의 별칭으로서 철령관의 북쪽지방이라는 뜻이다. 우리 나라 최고의 산악지대를 이루는 북쪽지방으로서 철령위 문제, 여진족 침입 문제 등 영토분쟁으로 늘 말썽이 된 곳이다. 그러기에 철령을 중심으로 관서, 관북, 관동이라는 지명이 생겨난 것이다.
○ 그 외에 사용된 광역지명(廣域地名) 등
앞에서 소개한 우리 나라 8도의 명칭과 별칭 이외에도 왕실이나 조정에서 사용된 지역이름이 많이 나오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을 뽑아서 여기에 풀어보았다.
가. 상사도(上四道) : 서울을 중심으로 하여 위(북)에 있는 4개 지방을 말한다. 곧 강원도, 황해도, 평안도, 함경도이다.
나. 하삼도(下三道) 또는 삼남(三南)지방 : 서울에서 남쪽에 있는 3개 지방을 말한다.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이다. 이들은 모두 궁성의 남쪽에 위치하므로 하삼남 또는 삼남지방이라고도 하였다.
다. 기호(畿湖)지방 : 경기도지방과 호서(충청도)지방을 합하여 부르는 이름이다.
<팔도명칭에 따른 평-정도전>
경기도는 경중미인(鏡中美人) 충청도는 청풍명월(淸風明月)
전라도는 풍전세류(風前細柳) 경상도는 송죽대절(松竹大節)
강원도는 암하노불(岩下老佛) 황해도는 춘파투석(春波投石)
평안도는 산림맹호(山林猛虎) 함경도는 니전투구(泥田鬪狗)
조선 정조 때의 문신 석재(碩齋) 윤행임(尹行恁: 1762-1801)은 대사간. 도승지. 이조판서, 대제학 등을 역임한 규장각 학사(學士)로 어느 날 정조 임금과 각도인(各道人)의 성격에 관하여 한담소일(閑談消日)할 때 재학(才學)이 뛰어난 그가 8도의 인물을 평하는 적절한 함축미를 내포한 사자단구(四字單句)가 오늘에 전해오는바 소위(所謂) 그 사자평(四字評)은 다음과 같다.
*경기도 - 경중미인(鏡中美人)
경기도의 지형을 말하기 보다 그 지방 사람의 성격을 말한 것이다.
중앙집권의 중심지로 교제술이 능란하고 누구에게도 마음을 주는 듯 하면서도 속으로는 찬물 속의 술과 같아 거울에 비치는 미인처럼 바라볼 수만 있지 접촉할 순 없다는 뜻에서 생긴 말이다. 또한 거울 앞에 선 미인 격으로 이지적이고, 명예를 존중한다.
*충청도 - 청풍명월(淸風明月)
맑은 바람과 밝은 달처럼 부드럽고 고매(高邁)하여 풍류를 즐기는 고상한 면이 있다.
그 지형이 산세가 수려하다거나 거세지 않고 금강처럼 평온하고 구수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타인에게 지나치게 경쟁을 하지도 않고 대자연의 순리대로 떠나가는 것과 같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전라도 - 풍전세류(風前細柳)
바람결에 날리는 버드나무처럼 멋을 알고 풍류를 즐기며 시대에 민감하게 적응하면서 살아간다. 옛말에 전국이 흉년이 들어도 전라도만 풍년이 되면 식량걱정이 없다고 할 정도로 곡창지대로 유명했다. 이곳은 땅이 좁은 데 사람이 많아 동요가 잦고 그런 반면 의지가 그다지 강하지 못하여 확고한 주장이 부족한 성격을 나타내기도 한다.
*경상도 - 태산준령(泰山峻嶺), 태산교악(泰山喬嶽) 또는 설중고송(雪中孤松)
큰 산과 험한 고개처럼 선이 굵고 웅장하고 험악한 기개가 있다.
경상도인은 성질이 우락부락하고 고집이 세어 사람 맘이 조용하고 경솔함이 적다 하여 설중고송(雪中孤松)이라 하였다.
*강원도 - 암하고불(巖下古佛)
큰 바위아래 있는 부처님처럼 어질고 인자하여 누가 알아 주든지 말든지 자기 할 일을 해 나간다. 땅이 넓지만 사람이 적어 접촉의 기회가 드물어 사람들의 마음이 순진하고 정직하다는 뜻으로 암하고불(巖下古佛)이라 한다.
하지만 그 속엔 부처를 앉혀 높은 형상으로 하잘것없는 우두머리란 속뜻이 있기도 하다.
*황해도 - 석전경우(石田耕牛)
돌밭을 일구는 소와 같이 묵묵하고 억세어 고난을 이겨내는 근면성이 있다.
돌 많은 밭을 소가 갈고 있는 형태로 토지가 척박한 까닭에 사람들이 부지런하면서도 특별한 인물이 없다는 뜻이다.
*평안도 – 맹호출림(猛虎出林)
숲 속에서 나온 범처럼 중국인과의 접촉이 잦고 호랑이가 자주 출몰한다 하여 맹호출림(猛虎出林)이라 하였던 평안도는 매섭고 사나워 용맹하고 과단성이 있는 관서(關西)인의 기질을 표현했다.
*함경도 - 니전투구(泥田鬪狗)
전국에서 동토가 척박하기로는 함경도가 제일이다.
세종 때는 경상도인 30만 가구를 이민시켜 살게도 했으니 워낙 사람이 살기 싫어했던 곳인가 보다. 토지가 넉넉지 않거니와 먹고 살길이 막막하여 이들은 조그만 이익에도 달려들어 마치 진흙탕 속에서 싸우는 개처럼 猛烈하고 악착스럽고 강인한 의지와 인내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