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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묶음 성숙 인격
성숙 인격의 모습
20세기 후반에 접어들면서 건전 인격, 성숙 인격, 통일 인격에 관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들 연구를 종합해 보면 성숙 인격에 관해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특질들이 강조되고 있다.
첫째, 성숙 인격은 타고난 자기의 가능성을 성취하고 자주적으로 행동하며 자기의 책임과 역할을 충분히 달성한다.
둘째, 성숙 인격은 자기의 현실을 효율적으로 인지하고 현실 속에서의 자기를 객관적으로 보며 현실과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셋째, 성숙 인격은 확고하고도 타당한 인생 목표를 지니며 통일된 세계관을 세우고 이에 맞추어 행동한다.
넷째, 성숙 인격은 문제를 직접 현실 속에서 해결하기를 좋아하며 자기중심적이 아니라 문제 중심적으로 살아간다.
이 다섯 가지 특질들은 통일된 한 인간의 모습을 여러 가지 측면에서 포착한 것이므로 서로 연관 있고 중첩되기도 한다. 이제 이 다섯 특질을 하나하나 생각해 보기로 하자.
먼저 자기 성취, 자주성, 책임, 소임에 대한 인식, 그리고 이를 성취하는 특질을 생각해 보자.
프롬은 성숙 인격의 핵심적 특질로서 생산적 오리엔테이션을 지니는 것에 관해 지적하였다. 여기서 오리엔테이션이란 사람이 경험하고 행동하는 기본적 태도나 생활 방식의 테두리를 이루는 것을 말하며, 생산성이란 사람에게 선천적으로 주어진 힘을 사용하고 가능성을 실현하는 인간 능력을 말한다. 그러므로 생산적 오리엔테이션이란 인간 조건의 충분한 인식과 자각을 토대로 자기 자신, 타인, 자연에 대해 적극적이고도 창조적으로 관계하는 모습을 말한다. 이러한 오리엔테이션으로 살아갈 때 자기에게 주어진 독자성, 책임, 가능성을 올바르게 깨닫게 되고, 이를 충분히 성취시켜 나가는 자기만의 자주적인 생활이 전개된다.
매슬로우(미국의 인문주의 심리학자)는 성숙 인격을 자기 성취라고 규정하고 자기 성취에 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즉 자기 성취란 각 개인마다 다르게 타고난 가능성, 능력, 자질 등을 스스로 깨달아 이를 충분히 개발시키는 것이다. 말하자면 자기 성취에서는 환경이 자기에게 부여하는 사명을 충실히 달성해 나가며, 인간의 공통된 본성과 각 개인마다 다르게 나타나는 개별성을 충분히 이해하고, 이것을 마음으로부터 수용한다. 또한 한 인간 속에서 여러 가지 요구, 과제, 특질들이 결합되고 통일되어 나가는 것이 자기 성취다.
이렇게 볼 때 성숙 인격이란 이 세상에서의 참된 자기의 위치를 알고 그 자기를 실현시켜 나가는 사람됨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러한 자기는 확대된 자아 또는 적극적인 자아 개념인데, 이러한 의미에서의 자기는 인간으로서의 참된 자기 가치를 고려해 공적 복지 즉 국가, 민족, 인류의 복지를 지향하면서 활동하는 책임감이다.
일찍이 1898년 11월 이상재 선생은(1850-1927) 옥에서 나와 의정부 총무국장을 사임하는 상소문에서 "신(본인)은 정부의 한 관리입니다. 그 직책이나 권한은 상관의 지시를 받아 엄정하게 시행하는 것에 불과합니다만 천부의 병이야 어찌 조금이라도 남에게 양보하겠습니까?"라고 적고 있다. 이는 인간으로서 타고난 천성과 책임을 헛되어 양보할 수 있겠느냐는 자아의 존재 의의에 대한 다짐이라 하겠다. 병이란 인간으로서 타고날 때부터 지니는 정당한 성향과 권리를 말하는데, 이것이 바로 각자의 자주성이며 책임과 소임이다. 또한 이것의 표현과 성취를 해내는 사람됨이 성숙 인격이라고 본다.
둘째, 현실의 효율적인 인지와 그 속에서의 자기의 위치를 객관화시켜 볼 수 있고, 그러면서도 이러한 현실과 자기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문제가 된다. 앞에서 올바른 자아관, 자주성, 책임감에 관해 이야기했지만, 이러한 자기의 성취와 자기 사명의 완수를 위해서는 정확한 현실 파악과 자기에게 주어진 현실 조건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런데 현실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이러한 지적 능력과,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너그러운 정적 태도는 서로가 상보적 관계에 있으며, 어느 한 쪽도 없어서는 안 된다. 사실 정서적으로 너무 흥분하거나 너무 자기중심적으로 동기화 할 때는 정확한 현실 파악이란 생각할 수조차 없다. 또한 정확하고 객관적인 현실 인지가 계속되지 못하면, 마음의 안정성도 지속되지 못하고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지도 못한다.
현실을 정확하게 지각하는 것은 단순한 지적 능력의 소산이 아니라 마음의 안정성, 순수하고 객관적인 무욕 상태, 편견 없는 공적인 자세에서 이루어진다. 물론 이러한 무욕의 바탕만으로 정확한 현실 파악이 다 되는 것은 아니다. 넓고 깊은 지식의 축적과 풍부한 지식을 참고로 할 때 안정되고 편견 없는 자세는 정확한 인식을 가능하게 한다. 일반적으로 사람을 평가할 때 그의 업적을 중시한다. 그런데 성숙 인격이 갖는 이러한 정확한 인지력과 뒤에 언급할 문제 중심성이 근간이 되어서 보통 사람들에게서는 기대할 수 없는 탁월한 업적이 성숙 인격자에게는 자연히 나타날 수밖에 없지 않나 생각한다.
셋째로 중요한 특질은 이해심과 사랑을 지니고 따뜻한 대인 관계를 유지하는 점이다. 올포트(1897-1967, 미국의 성격 심리학자)는 성숙 인격자의 사회관계는 두 가지 요인으로 인해 자연히 따뜻한 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하나는 이들이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고 또 사랑하기 때문이며, 또 하나는 상대의 모든 인간 조건을 이해하고 동정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한다.
프롬도 생산적 오리엔테이션을 지닌 사람에게서 비로소 참된 사랑을 기대할 수 있다고 보았다. 참된 사랑이란 어떤 것이냐는 물음에 대해 네 가지 특질을 내세운다. 즉 사랑하는 상대를 성심껏 돌보아 주는 노고, 상대에게 책임감을 느끼는 것, 상대를 존경하는 것,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지하는 참된 지식이 그것이다. 상대를 위한 노고란 상대의 발전과 행복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이를 위해 스스로 수고를 아끼지 않는 것을 말한다. 실로 참된 사랑이 보여주는 헌신적인 희생은 바로 이 노고라는 특징이 반영된 것이라 하겠다.
상대에 대한 책임감은 어쩔 수 없이 부과되는 의무와는 좀 다르다. 이것은 상대의 여러 가지 문제가 바로 나의 문제인 양 느껴져 그것에 대해 손을 쓸 수밖에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따라서 상대의 문제가 나의 문제로 느껴지므로 상대를 괴롭히는 자가 밉고 원망스럽게 여겨진다. 사랑하게 되면 맹목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열중에 빠진다는 것도 이 특질 때문이라고 본다.
노고와 책임감의 두 특질만이 주가 되어 있는 사랑은 흔히 있는 통속적인데 여기에서는 지나치게 맹목적이고 헌신적이어서 잘못하면 지배욕과 소유욕을 충족시키는 구실밖에 못하게 된다. 그러므로 상대를 존경하고 바르게 인식하는 이지적인 두 요인이 없이는 참된 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한다. 상대에 대한 존경심이란 덮어놓고 복종한다든가 무서워하는 태도가 아니다. 이는 상대의 개별성과 특이성을 파악해 있는 그대로 그의 사람됨을 인정해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상대를 모르고는 존경할 수 없다. 상대방을 정확하게 인식해서 그에 대한 올바른 지식이 있어야 한다. 그렇게 볼 때 상대를 잘 알고 그의 특이성을 인정하는 것은 상대에 대한 이해요 동정이며, 이에 더해서 책임감을 느끼고 그를 위해 있는 힘을 다하는 노고까지 나타내는 바가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해와 동정의 수준이든 사랑의 수준이든 따뜻한 대인 관계는 상대를 잘 알고 존경하는 데 기초를 두고 이루어진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대인 관계에서 이러한 애정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자를 성숙 인격이라고 한다.
넷째, 성숙 인격인은 확고하고도 타당하나 인생 목표를 지니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이들은 통일되고 체계가 있는 인생관과 세계관을 정립해 이에 맞추어 생활해 나간다. 카텔(미국의 성격 심리학자)은 인간이 살아가는 데는 여러 가지 목적이 있겠으나 이 여러 가지를 단 하나의 조화된 인생 목표에 응집시켜 살아가는 사람됨을 통일 인격이라고 보았다. 이렇게 여러 가지 생활 목적들이 가장 중요한 인생 목표에 조화 있게 응집되도록 하려면 필수적으로 통일되고 체계화된 인생관에 따라 생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한다. 리즈만(미국의 사회 심리학자)도 합리적이고 비권위적이며 비강박적인 분명한 인생 목표와 올바른 가치 지향성을 지니고 사는 것을 성숙 인격의 특질로 보았다.
오늘날 교육 특히 대학 교육에서 자주적이며 성숙된 인격을 도야하기 위해 교양 교육이 강조되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통일된 인생관의 수립에 그 목표를 두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물론 교양 교육이란 지성, 의지력, 정서, 체력을 종합해 바람직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인격적 기초를 다지게 하려는 것이지만, 그 핵심은 올바른 인생관의 수립에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다섯째, 성숙 인격의 특질은 문제 중심성이다. 당면한 문제를 직접 현실 속에서 해결하는 데만 만족을 느낄 뿐 공상이나 대리적 해결로 충족하려 들지 않는다. 따라서 자기 중심적이 아니라 문제 중심적으로 일에 열중하기 쉽다. 매슬로우가 지적하고 있듯이 성숙 인격자는 자기중심적으로 자기의 모습이나 문제에 지나치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외적인 문제에 몰두하기 때문에 마음의 불안이나 긴장 또는 지나친 내성적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 또한 자기가 열중해서 하는 일에 해야 할 책임이나 의무감을 느끼고, 공적인 관점에서 꼭 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일단 할 일에 열중하면 쓸데없는 잡념 없이 집중적으로 한 가지 일에만 몰두하며 담담한 심정으로 살아가는 안정된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심적 상태는 의식이 생생하며 아무런 잡념이 없는 무장애 상태다.
성리학에서 말하는 명경지수의 상태, 선에서 말하는 견성의 명묘하고 청정한 마음이 아닌가. 이런 상태에서는 자아 의식이 의식상에 자주 나타나지 않고 오히려, 자기 망각적이 된다. 실없는 동기에 방해되지도 않고 오직 대상 중심적으로 대상에만 응한다.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인식하고 이에 집중해서 객관적으로 대처해 나간다. 그러므로 인지하는 데 대상을 지나치게 단순화한다거나 왜곡시키지도 않고 부당한 추상화도 보이지 않는다. 활동하는 데 집중적이며 정확하고 착실하다. 능률적이며 성공적인 결과가 저절로 나타난다.
요컨대 이 문제 중심성이라는 특질은 단순한 주의의 집중성, 일에 대한 전일성이라는 표면적인 경향에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성숙 인격의 핵심적인 성향이라고 볼 수 있는 의식, 동기, 대상 지향성의 순수성과 안정성에서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지도자의 인격
집단 전체를 이끌어 나가는 위치에 있는 지도자의 사람됨이야말로 그 집단의 운명을 좌우하는 관건이라 하겠다. 이제 올바른 지도자로서 꼭 갖추어야 할 사람됨으로서의 성숙 인격적 특질들을 생각해 보기로 하자.
구성원 서로 서로가 어떤 관계를 가지고 한군데 모여 있거나 혹은 관찰자의 의식 속에 한데 뭉쳐 인지되는 사람들의 모임을 집단이라고 한다. 부양하고 부양 받고, 사랑하고 사랑 받는 관계로 서로 모여 있는 것은 가정이다. 또 어떤 문제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고 어떤 결론을 내리는 관계로 모여 있는 위원회라는 집단도 있다. 정신분석학적으로는 두 사람 이상의 구성원들이 자기의 초자아 속에 똑같이 동일한 모델이나 이상을 지니고 있을 때, 이들은 심리적으로 하나의 집단을 이루고 있다고 말한다. 초자아란 출생 후 부모나 다른 가족으로부터 훈련받아 마음속에 형성된 이상적인 모습이나 표준적 기준을 말한다. 다시 말해서 이 초자아는 한 개인의 이상이나 양심 또는 행동의 기준이라 할 수 잇다. 여러 사람들이 각자의 마음속에 자기가 해야 할 것과 살아갈 방식에 대해 똑같은 생각을 갖고 있을 때, 즉 추구하는 바가 같고 삶의 이상형이 같을 때 이들은 한 집단이 되었다고 본다. 한 집단을 이루면 구성원은 서로를 동일시하게 된다. 무의식적으로 서로가 모방의 대상이 되고, 이로 인해 자기 신뢰는 더욱 굳어져 구성원 상호간에 '우리들'이라는 표현이 자연히 나타나게 된다.
집단 내에서 몇몇 구성원들이 그 중 한 사람에 대해 동일시를 보이며 각자가 지니고 있는 유사한 내적 갈등을 해결해 나갈 때, 그 대상이 되는 사람을 이 집단의 지도자라고 할 수 있다. 지도자가 집단 전체를 어느 방향으로 이끌어 가면, 다른 구성원들은 이에 추종해 나가는 상호 작용의 관계가 있다. 이 관계는 일정한 양식으로 일관성 있게 나타나기도 하지만, 때에 따라 이 상호 작용이 뒤바뀌는 수도 있다. 이를테면 친구들 사이에서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늘 이끌어 나가고, 다른 사람들은 늘 그의 뒤를 따라다닌다. 그런데 사태의 변화에 따라 이끌어 가고 따라다니는 이러한 관계가 교체되는 경우가 있다. 부부 관계에서도 생활의 모든 면에서 부창부수를 고수하기도 하지만, 가사 문제나 자녀 양육에는 아내가 선도적 역할을 맡고 남편은 이에 뒤따라갈 수도 있다. 그러므로 같은 집단 내에서도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지도자가 바뀔 수도 있다.
지도자란 집단을 지도하는 자리에 임명 또는 선출되어 그 직책을 맡고 있는 사람이 보통이지만, 때에 따라서는 그 안에서 다른 사람이 실제적인 실권을 쥐고 지도자 역할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를 감안할 때 집단을 이끌어 나가는 직책에 있는 사람이 반드시 지도자라고는 할 수 없다. 지도자는 또 집단 구성원들의 행동의 촛점이 되는 사람으로 여기기도 한다. 구성원들이 다 같이 애정을 표시하고 자기와 동일시하는 중심적 인물이 있으며 구성원 상호간의 동일시도 생기고 구성원 각자의 이상적 자아 속에 이 중심 인물의 사람됨이 구체화되어 구성원들은 이를 모방하고 추종하는 행동이 나타난다. 그러므로 이 지도자가 이끄는 방향으로 집단을 쉽게 움직여 나간다. 이처럼 집단 구성원과의 정서적 유대를 중시하는 지도자의 개념은 집단의 목표나 기능의 완수와는 관련이 적은 입장에서 지도자를 생각하게 되는 흠도 없지 않다.
집단 속에서 영향력이 많은 사람을 지도자라 생각하려는 경향도 있다. 제반 사회적 상황에서 선도적으로 계획을 잘 세워 여러 사람의 행동을 조직화시키는 능력, 그리고 여러 사람을 잘 이끌어 협동해 나가게 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을 지도자로 본다. 즉 여러 사람을 일정한 방향으로 나가게끔 영향력을 많이 행사하는 자를 지도자로 한다. 특히 이 영향력이 집단 구성원에게 자발적으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이 중요한데, 이렇게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요건은 이 영향력이 집단 전체의 기능이나 발전에 크게 공헌하는 점에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개별적인 구성원에게 미치는 지도자의 영향력은 집단 전체의 진행 과정에 미치는 영향력에 비하면 2차적이라고 하겠다. 사실 지도자의 참된 존재 의의는 집단 전체를 이끌어 효과적인 성취를 이룩하게 하는 데 있다.
이렇게 볼 때 집단 전체의 성취에 적극적으로 크게 영향을 미치는 인물로 참된 지도자를 규정지으려는 입장도 생각할 수 있다. 이 입장에서는 집단 전체의 기능을 효율적으로 발휘하는 데 집단의 통합성, 응집성, 점착성 등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기 때문에 이러한 요인들을 강화시키는 사람이 가장 훌륭한 지도자가 된다. 지도자의 존재를 그가 한 집단 속에서 차지하고 있는 지위나 인망 또는 구성원에게 주는 영향력 혹은 집단의 성취에 공헌하는 정도에 따라 파악하고 있지만, 그리 분명한 해답은 아직 못 얻고 있다. 지도자란 무엇이며 지도력이란 어떤 것인가를 알기 위해 실제로 지도적 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인격상 특징들을 지적한 연구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지도자의 신체적 특징을 살핀 연구를 보면, 키가 크다느니 작다느니 체중과 외모 등이 상관이 있는 것 같다느니 하지만 확실한 결론은 내리기 어렵다. 다만 체력이 강건하고 정력적인 면이 공통되는 특징으로 나타난다. 또 우수한 지능을 지도자의 일반적 특징으로 보는 것이 통설이다. 카텔은 인격 특성 12개 중의 하나로 일반 정신 능력을 생각했는데, 이는 지적이며 현명한 것을 말한다. 여기에는 독립성, 인내력 면을 지닌다. 그런데 이러한 일반 정신 능력이 지도자들에게는 훨씬 강하게 나타나는 편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능력이 그대로 지도력을 좌우하는 것은 아니다. 지도자가 지능이 너무 우수하면 오히려 지장이 많다고 한다. 지도자의 지능 계수가 일반 구성원들보다 30 이상의 높은 차이를 보일 때, 지도 관계는 형성되기 어렵다고 한다. 심리학자 터만(1884-1959)의 천재 연구에서는 큰 집단의 지도자는 구성원보다 지능 계수의 평균의 20 내지 30은 높아야만 제대로 감당해 낼 수 있다고 밝힌다. 자신감 또한 지도자의 중요한 특징이라 하겠다. 위대한 역사상의 지도자들은 대체로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가 정확하고, 이에 더하여 명예욕과 지배욕 또는 인정을 받으려는 욕구가 강한 편이라고 본다. 하여간 집단이 크든 적든 한 집단의 지도자는 그 구성원들보다 자신과 확신이 더 센 편이라 한다. 이러한 자신과 확신이 목표 달성을 위한 활동을 순조롭게 하고 권위를 인정받게 해주기도 한다.
지도자는 강한 인내력, 지구력, 결단력이 있으며 요구 수준이 높은 만큼 근면하고 야심이 많은 편이라고 한다. 카텔은 지도자는 초자아의 세기가 강한 편이라고 주장한다. 이 역시 결단력, 책임감, 자제력, 야심 등이 많은 것을 말한다. 크레치(미국의 심리학자)는 집단의 구성원 중 지배욕이 강한 사람이 지도자로 발전된다 하여 지배욕을 지도자의 불가결한 조건이라고 보았다. 집단 속에서 개인은 다름 사람들과 함께 공동의 목표를 달성시켜 나가면서 동시에 부수적으로 개인적인 다른 욕구를 충족시키기도 한다. 이 때 지도자와 추종자를 구별하게 하는 것은 지도자의 역할을 담당하면서 그것으로써 어떤 강력한 욕구를 충족시켜 나가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있다. 강력한 욕구란 다름 아닌 지배욕 또는 권력욕이며, 지도자란 결국 이런 욕구를 가지고 이를 충족시켜 나가는 사람이다.
지도자의 사람됨의 특징을 찾아보아도 모든 집단의 지도자에 해당되는 지도자 특유의 인격 특질이라는 것은 아직 알려진 바 없다. 다만 지도자에게 바람직한 사람됨의 특징이란 구성원들이 용인하는 목표로 집단을 잘 이끌어 나가고 이를 구성원들이 받아들이게 하는 측면을 갖추면 된다고 본다. 이러한 면을 지니는 사람은 집단을 구성하는 일반인보다는 한층 탁월한 인물이어야 하며, 인격적으로 성숙하고 능률적, 자주적 사람이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인물이란 결국 성숙 인격자를 말하므로 지도자의 특질은 성숙 인격 속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지도자의 기본적 자질은 올바른 사명감을 가지고 이것을 완수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인데, 심리학적으로 이와 같은 모습을 자기 실현 또는 자기 완성이라고 한다. 자기 실현 등으로 표현되는 이러한 성질들에 대해서 앞서 성숙 인격을 논하는 자리에서도 살펴보았지만, 성숙 인격이 보여주는 책임감과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인지력 등의 성숙한 자세들은 지도자의 품성에도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건이라 하겠다.
지도자가 그 구성원들을 통솔해 나가는 행동들을 분석해 보면, 크게 고려성과 선도성이라는 두 요인을 찾아볼 수 있다. 고려성이란 지도자가 상호간의 우호 관계, 신뢰, 존경, 그리고 지도자와 구성원 사이나 집단원 상호간의 따뜻한 관계를 고려해 지도하는 것을 말한다. 또 선도성이란 구성원의 역할을 정의 짓고 조직을 확보하는 것, 의사 소통의 통로를 터주고 일하는 방식을 일러주는 것 등을 말한다. 그러므로 고려성은 집단유지 기능에, 선도성은 집단 목표 달성 기능에 각기 깊은 관계를 갖는다고 하겠다. 지도자의 기능 중 고려성에 관련이 깊으면서도 집단의 목표 달성에도 중요하게 역할 하는 상호간의 애정적 관계를 문제삼아 보기로 하자. 사실 사랑과 이해로 타인과 따뜻한 관계를 유지해 나가는 것은 성숙 인격의 중요한 특질이다.
한마디로 애정이란 말을 쓰지만, 애정에도 여러 가지 종류의 차이가 있다. 호니는 애정 행동을 유발하는 원동력에 차이가 있으며 그에 따라 나타나는 사랑의 감정이나 이에 수반되는 행동에도 차이가 있다고 보았다. 자연스럽게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순수한 사랑일 때는 자발적이고 분별력 있게 행동하지만, 불안에 쫓겨 사랑하는 경우는 강박적 또는 맹목적으로 무분별하게 행동하는 것 같다고 한다.
흔히 인격적으로 한 개인과 접촉하여 쾌감, 안정감, 행복감 등의 정서적 충족을 얻음으로써 그 인격과 영구적인 접촉을 유지하려는 경향성에 대해 애정이라는 말을 쓰고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는 자신의 불안 상태를 면하기 위해 무분별하게 아무에게나 접근하여 의지하려고 하는데, 이 경우 사람의 감정적 충족은 2차적이고 불안에서의 구제가 1차원적인 요소가 된다.
설리반(1892-1949, 미국의 정신 분석학자)은 애정을 어느 특정인이 체험하고 있는 만족이나 안전을 마치 자신의 만족과 안정처럼 느끼는 것이라고 정의하였다. 다시 말해 대인 친교의 욕구가 표출되는 것을 말한다. 대인 친교란 접근적인 인간 관계로서 두 사람이 서로의 개인적 가치들을 인정하고 이를 좋아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런 관계에서는 공동 의식이 생겨 집단 전체의 문제를 우선적으로 생각하게 된다고 한다. 즉 서로의 개인적 가치를 인정하면서도 서로 너와 나의 구별 없이 모든 문제를 우리의 일로 생각하게 되는데, 우리 의식을 갖는 이러한 인간 관계가 바로 사랑이라고 한다.
이렇게 볼 때 애정적 관계란 결국 상대방의 문제를 자기 문제처럼 여겨 이를 해결하기 위해 수고를 다하는 데서 즐거움을 느끼는 성숙 인경의 모습이라 하겠다. 지도자는 모름지기 구성원 각자를 이해하고 장점과 단점을 살핌으로써 그들의 발전과 집단의 목표 달성을 위해 솔선 지도하고 이끌어 나가야 한다.
일반적으로 통일되고 자주적이며 성숙한 인격을 도야하는 과정을 교양이라고 부른다. 교양이란 한마디로 안전감, 지배욕, 명예욕 따위의 하위 욕구 충족이 아닌 참된 인간의 완성을 추구하는 모습이라 하겠다. 아마도 대소를 막론하고 어떤 집단을 올바르게 이끌어 나가려면 참된 인간의 완성을 추구하는 바로 이러한 교양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리라 생각된다.
이 충무공의 인격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역사상 가장 뛰어난 명장으로서 쓰러져 가던 나라를 침략자의 말발굽에서 건졌거니와 공의 인격 또한 높이 평가되어 우리 민족의 대표적 인물로 존경받고 있다. 그러면 공의 인격의 위대성은 무엇일까.
일찍이 이식(1584-1647)은 공의 사람됨을 "법도 있는 몸가짐, 지극한 충성심, 전략과 용병의 지혜, 사무를 통괄하고 결정짓는 조직력과 판단력에서 견줄 자가 없다." 고 지적한 바 있다. 또 설의식(1901-1954, 언론인)은 "꾸준한 예비심과 치밀한 조직력, 크고 넓은 포용성과 드센 통어책으로 보천 욕일 (만천하에 큰 공이 있음)의 대공을 세웠거니와 천생으로 문무와 지용, 충효를 겸하여 미치지 않음이 없었으니, 그는 민족의 태양이시다." 라고 찬탄하였다.
그러면 공의 사람됨을 오늘날 성격 이론의 입장에서 보면 어떠할까. 공의 사람됨을 현대적으로 해석해 보는 것은 우리에게 현실적인 의의를 찾게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공의 성격상 몇 가지 특징을 생각해 보자.
먼저 지적 측면을 살피면, 공은 사태 파악과 상대의 의중을 통찰하는데 뛰어났던 것 같다. 흔히들 성숙 인격의 주요 특질로서 내세우는 것은 혼돈되고 애매한 현실 상황을 신속 정확하게 파악하는 점이다. 이는 비단 우수한 지능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신경성 경향, 욕구 불만, 환상 등에 지나치게 치우쳐서 합리적인 인지를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정확한 현실 파악은 성격적인 성숙성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1952년 4월 30일 조정에 올린 "부원경상도장"에서 임진왜란 초전에 왜적이 불과 10여일 만에 서울까지 육박하게 된 사태를 공은 이렇게 파악하고 있다. 즉 해전으로 바다에서 응전하지 않고 적을 바로 상륙시킨 점, 여러 성이 있었는데도 제대로 수비하지 않고 그대로 도망쳐 버린 점, 정확한 병법도 없이 전법이 제멋대로 였다는 점 등을 실패의 원인으로 들고 있다. 이러한 지적은 평범하고 상식적이지만 당시 패전 상황의 정곡을 파악한 것이라 생각된다.
실전에서도 공은 착실한 상황 판단으로 대처해 나갔다. 임진(1592) 6월 당항포 해전 후 송진포를 떠나 천성, 가덕 등지를 수색할 때이다. 공은 도망간 왜병을 쫓아 부산으로 가 그들을 섬멸하고 싶었으나, 연일 큰 싸움과 오랜 선내 생활로 군사들이 지쳐 있을 뿐만 아니라 양식은 동나고 부상자도 많아서 그동안 도망가 쉬고 있던 적들과의 대전은 승산이 없다고 판단했다. 게다가 양산강의 어구가 좁아서 배가 드나들기 어렵고, 적들은 험준한 지형을 이용해 진을 친 채 정면으로 싸우려 하지도 않을 것이라 보았다. 또한 부산으로 가게 된다 해도 앞뒤로 적을 맞게 되리라 여겨 더 나아가지 않고 회군하였다. 이는 승승 진격하는 용장이라기보다 여러 조건을 면밀하게 계산해 착실하게 싸우는 지장의 모습을 보여주는 예라 하겠다.
이듬해인 계사년 6월 진주가 함락되고 7월초 진양이 함락된 후 왜군이 전라도로 넘어온다는 풍설과 함께 광양에서 왜군들이 관청과 창고를 태우고 식량을 약탈해 간 사건이 있었다. 이때 공은 왜군이 전라도로 넘어올 리는 만무하다고 판단해 염탐해 본 결과 영남 피난민들이 헛소문을 퍼뜨리고 광양에서 분탕질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이런 일은 정유년에도 있었다. 앞 바다에 진치고 있을 때 어부들이 피난민의 소를 잡아먹으려고 왜선이 내습한다는 헛소문 내는 것을 통찰하고 범인을 색출해 처형하였다. 갑오년 7월에는 영의정 유성룡이 죽었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러나 공은 이것이 반대파가 조작한 소문임을 간파하고 통분하는 대목이 있다. 갑오년 9월 조정이 진격 명령을 내렸을 때는 이미 적이 교묘하게 소굴에만 틀어박혀 있었으므로 덮어놓고 진격한다는 것은 경솔한 짓이라고 하며 어리석은 조신들을 한탄하는 대목이 일기에 나타나 있다. 요컨대 공은 현실 사태를 직감하고 이를 분석하는 데 날카롭고 정확하였음을 볼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지능의 우수성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성격의 성숙성에서 이룩되는 것이라 하겠다.
매슬로우는 자기의 천분, 역량, 재능의 충분한 인지와 이의 개발을 자기완성이라고 규정하고 이러한 자기완성의 특질로서 문제 중심성을 강조한 바 있다. 또 로톤(미국의 심리학자)은 성인이 문제에 직면하여 이를 회피하는 방식을 찾는 데 몰두하지 않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 공격을 꾀하는 것을 성인의 특질로 지적한 바 있다. 즉 어떤 일이나 문제를 맞이할 때 그것이 문제 해결의 성패와 어떤 관련이 있을까를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 자체의 성취와 문제 해결을 위주로 생각하고 노력하는 것이 성숙한 사람이나 위인들의 태도라고 한다. 그러므로 직면하는 문제들도 자연히 공동 이익의 관점에서 문제삼고 해결하려 한다.
일에 대한 공의 태도에서도 이 같은 문제 중심성이 여실히 보인다. 임진왜란 초기부터 공은 왜적을 격멸시키되 왜의 머리를 베는 데 관심을 두지 말라는 원칙을 강조하였다. 왜냐하면 목적이 왜적을 섬멸하는 데 있지 머리를 많이 베어 공 세우는 자체에 있지 않기 때문이며, 혹시나 머리를 베는 데 급급해 본 임무인 작전을 그르칠 가능성도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전투보다는 공 세우는 데 급급해 싸움이 끝나면 죽은 왜적의 목을 베러 혈안이 되어 다니는 원균을 몹시 못마땅해 했다. 계사년부터 전투가 소강 상태에 접어들자 공은 전선 제작과 군량 자급책을 위해서 각 고을에서 목수들을 모아 배를 만들고, 또 산전을 개간하고 어로와 제염에 열중하였다. 그리하여 계사년에서 갑오년에 이르는 그 무서운 전염병의 만연을 치루고도 병신년에는 확고부동한 군력을 갖추게 되었다. 이 해에 이원익(1547-1634) 제찰사는 선조에게 한산도에는 통제사의 노력으로 군량이 많이 쌓여 있다고 보고하였다. 이를 증명하는 것을 그 이듬해 정월에 원균에게 통제사 사무 인계를 할 때 한산도에만 군량미가 9.900여 석, 화약 4.000근, 총통 저장량이 300여 개였다는 사실이다.
일상생활에서 이러한 문제 중심성을 보여주는 좋은 예는 정유년 4월에 출옥한 후 바로 모친상을 당하고도 미처 장례를 치루지도 못한 채 백의종군하는 데서도 보여진다. 이때 공은 틈틈이 장례에 쓸 제물을 구해 손수 가공까지 해서 아산 본가로 보내곤 하였다. 백의종군한 처지라 반죄수 취급을 받으면서도 시간만 나면 장례에 쓸 물건을 만들어 보내곤 했다는 것은 일을 좋아하고 또 어떻게든 일을 성취하려는 성격적 특징의 발로라 할 수 있다.
정유년 7월, 공이 8년여에 걸쳐 피땀으로 건설한 수군이 원균의 손아귀에서 하루아침에 전멸된 후, 공은 다시금 통제사로 임명되어 이를 재건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불과 몇 달만에 8,000여 명의 군사와 10,000여 석의 군량미를 확보하고 전선과 총포 제조에 박차를 가하여 옛 한산도의 성황을 이루었다며 이덕형과 유성룡은 공의 비범한 재량을 경탄하였다. 이것 역시 비범한 지략에서 나왔다기보다는 성격상의 문제 중심성에서 이룩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요컨대 충무공이 대소 수십 번의 전투에서 한 번의 실수도 없이 승전을 거둔 것은 공의 신속 정확한 사태 파악 성향과 이 문제 중심성의 덕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말한 문제 중심성과도 관련 깊은 것이지만, 공의 성격상의 특징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위대성은 그가 확실한 목표 의식을 가지고 살았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올바른 인간으로서 도리에 맞게 살아가려고 한 점이라 하겠다.
부귀를 위해서는 방법을 가리지 않는 탐관오리들 속에서 공은 어려서부터 습득한 유교적 세계관을 실천하고 달성시키려고 했다. 이러한 목표 추구에 열중함이 강인했기 때문에 공은 대인 접촉에서 너무 심하다는 오해를 받거나 부하 통솔에 강박적 처벌 경향이 있는 게 아닌가 여겼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부패된 사회에서 그나마 군 규율과 조직을 유지하고 수군의 소기 목적을 달성해 낼 수 있었던 것은 공의 이 같은 확고한 목표 의식의 실천 의욕에서 이루어진 것이라 볼 수밖에 없다. 공을 충성심이나 효성 그리고 부인이나 자녀들에 대한 애정이 지극하다고 우러르는 사람들이 많다. 이것도 따지고 보면 공의 통일된 세계관과 교양의 표시이고 성실한 인간으로 살아가려는 수도자적 태도에서 우러나오는 모습이라 생각된다. 공은 이처럼 확고한 목표 의식과 세계관에 따라 살아가려고 했기 때문에 일거수일투족도 도의 어긋나고 이에 맞지 않는 것은 하지 않으려 했다.
동성동본인 율곡이 만나자고 해도 그가 이조판서의 직책에 있는 한 만나지 않겠다고 자리를 피한 일화라든가, 병조판서가 그를 신임하여 서녀(첩의 난 딸)를 주려 해도 이를 거절했다는 이야기라든가, 발포 지역의 만호(벼슬 이름)로 있을 때 좌수사가 객사 뜰에 있는 오동나무를 베어다 거문고를 만들려고 하자 "이 나무는 관청 물건이라 개인적으로 가질 수 없다. 게다가 다 큰 나무를 함부로 벨 수 있느냐"며 이를 나무라는 것 등은 공의 인생관의 뚜렷함을 그대로 나타내는 예라 하겠다. 하급자로서도 도리에 어긋날 때는 절대로 굽히지 않았으며, 또 상급자가 잘못이 있을 때는 직간을 서슴지 않았다. 그리고 '송사'를 읽고 난 후 쓴 글이나 담종인 도사에게 쓴 편지 답사에서 보이는 적극적인 참여 의식이나 주체성이 발로도 따지고 보면 공의 확고한 인생관과 자기 주체성의 소산이라 생각된다. 공의 성격의 위대성의 핵심은 인간 도리를 깨달아 이 도리에 철저하게 맞추어 나가며, 자기 역할을 찾아서 자기를 마음껏 주장하면서 살았다는 점이라 하겠다.
또 하나 공의 성격 특징으로서 지적해야 할 것은 정서적 통제에서의 성숙성이라고 본다. 사람은 누구나 선천적 혹은 후천적으로 얻어진 정서적 흥분이나 표출이 없을 수 없다. 그러나 순화된 성격일수록 이같은 정서적 격동성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승화시키고 적절하게 통제하여 표출할 때 표출하고 억제할 때 억제한다. 이와 같은 정서적 통제는 개인의 이 세상에 대한 태도 여하에 많이 좌우된다. 자기나 타인, 자연을 주어진 그대로 이해하고 인정할 때, 부질없는 정서적인 흥분, 열등감, 불안감 등으로 고민하게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정서적 안정감은 근본적으로는 자기 인정, 자기가 놓여진 상황에의 긍정에서 온다고 한다. 사실 이러한 자기 인정 또는 상황의 긍정은 수도자의 목표이며 심리 치료나 상담 치료의 근본이 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유성룡이 어릴 때의 충무공을 회고하는 글에 보면, 공은 동네에서 놀다가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만나면 활로 그의 눈을 쏘려 해서 사람들이 공의 집 앞을 지나다니기를 꺼려했다고 한다. 또 정유년에 백의종군하면서 구례에서 하동을 지나 6월 2일 비맞으며 삼가현에 도착했을 때의 일이다. 그 곳 현감은 권율 도원수가 있는 산성에 가서 없고 이방들만이 남아 있었는데, 이들은 충무공 일행에게 식사 대접도 않고 밥을 지어먹으라고 박대했다. 그러자 공은 부하들에게 볼기를 치고 얻어다 먹은 밥쌀을 배상하게 했다. 얼마나 괘씸스럽고 분해서 이렇게까지 자학적으로 분풀이했을까 짐작이 간다.
또 원균과의 관계에서도 공은 내심 굉장히 분해하며 괘씸해 하는 것을 일기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공은 어려서부터 공격적이고 정서적 흥분이 심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그러나 공이 이러한 공격적 불안정감을 대인 관계에서 그대로 표출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지각없이 구는 장수나 조신들을 접할 때면 분통이 터져 나오지만, 이를 가소롭게 웃어넘기고 스스로가 때를 못 만났음을 자인하며 자기 객관화 내지 자기 인정을 통해 정서적 흥분을 제어하였다.
공은 또 술을 좋아하면서도 과음이나 주정을 조심해 실수한 일을 찾아 볼 수 없다. 이같은 조심은 매사에도 마찬가지이다. 이원익이 이순신은 명령에 불만이 있어도 억지로라도 복종하지만 원균은 화를 펄펄 내더라고 선조에게 술회한 것, 유성룡이 공의 됨됨이에 대해 말과 웃음이 적고 용모가 아담하고 삼가하여 마치 참한 선비 같으나 속에는 대담한 기상을 엿볼 수 있다고 술회한 것, 또 김응남(1546-1598)이 공을 평하면서 종용적중(조용하고 알맞은)이라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 것 등에서 볼 때, 공은 굉장히 삼가고 단정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요컨대 공은 어느 정도 불안정감과 공격성은 있었지만, 대적 전투에 공격성을 집중시키고 자기 인정과 수양을 통해 이를 승화 극복하여 정서적인 안정성을 유지해 나갔다고 생각된다.
대인 관계에서의 공의 모습을 보면, 앞서 말했듯이 유교적 세계관에 입각해 이를 몸소 실천했던 공은 고생하는 부하나 백성을 생각하며 잠 못 이루는 밤이 한두 밤이 아니었다고 한다. 이러한 공이었기에 통제사 재임명을 받고 순천에서 보성으로 가는 길에 촌 노인들이 길가에 열지어 술을 바치며 격려하고, 또 고음도에 유배될 때는 백성들이 공을 믿고 몰려들어 불과 3-4개월 만에 옛 한산도 시절과 같은 성황을 이루게 되었다고 한다. 공이 전사했을 때는 이 소식을 듣고 우리 군사나 명나라 군사나 모두 제 아비를 잃은 것처럼 통곡하였으며, 운구할 때는 곳곳에서 백성들이 제사를 차리고 행렬을 따르며 슬퍼했다고 한다. 이는 다 공이 부하나 백성에게 가졌던 마음에 대한 반응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동료나 상급자에 대한 대인 관계에서는 좀 사정이 다르다. 친밀하게 지냈던 상대가 몇몇 뿐이었기 때문이다. 식견, 성실성, 범절에서 뜻이 맞지 않으니 깊은 친교를 가질 수 있는 사람이 제한되게 마련이다. 공이 마음으로부터 존경하고 믿던 사람은 유성룡과 선거이(1550-1598, 임란시 전라병사 부원수), 정도는 다르나 이원익 뿐이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어떻게 보면 냉정하고 거만한 것 같으며, 어느 한두 사람하고만 친밀하게 지내니 미숙하게도 보이지만, 사실은 그런 것이 아니다.
매슬로우는 자기 완성적 인간의 특질로 초월성을 내세웠는데, 공에게서도 이런 초월성을 지적해 낼 수 있다. 보기에는 고독한 것 같지만 고독한 사람이 뼈저리게 느끼는 고민이나 불안이 있는 것도 아니요, 친구가 적고 혼자만의 생활을 은밀히 즐기지만 스스로 잘난 척하는 것은 아니리라. 그렇다고 이들이 친구나 정답게 지낼 만한 상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서로 뜻이 맞는 사람과는 깊은 유대를 갖는다. 아마도 공의 대인 관계에서나 내면생활에서도 이 같은 초월적 경향이 있었던 것 같다. 시정의 우상이나 무반서적 동조 경향에 의해 살아간다기보다 독자적이며 뜻있게 삶을 살아가려는 생활 태도가 이러한 대인 관계를 나타낸 것이라 생각된다. 공은 좋은 경치 특히 월야의 해경을 좋아해 달이 뜨는 밤이면 이에 도취되어 잠 못 이룰 정도로 들뜨는데, 이것의 새로운 해석을 해보고자 한다. '난중일기'에 달이 떠 있을 중순이 기록되어 있는 날이 50개월인데, 이 중 달밤의 정취를 기록하고 있는 대목이 18개월이나 되며 기록된 날짜는 23일 이상이 된다. 이는 단순히 감상주의나 불안 증세로만 보기는 어렵다.
매슬로우는 그의 연구에서 위인들은 신비적인 경험을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의 신비적 경험이란 종교적, 초자연적 현상의 경험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경험적인 느낌을 말한다. 즉 신비적 경험이란 시야에 무한한 수평선을 느끼며 전보다 힘이 더 충만된듯 하면서도 무력감이 곁들여져 황홀, 경이, 외경의 감정이 합쳐진 상태이다. 말하자면 금새 큰 일이 날 듯 하면서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흐뭇한 감정적 경험을 하는 것을 말한다. 보통 사람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하기도 하지만, 위인들에게는 이것이 더욱 뚜렷하고 빈번하다고 한다. 아마도 이런 경험은 몰자아적이고 초월적이며 자기 향상을 느끼게 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이는 위인들의 성격이 성숙하는 데 기초가 된다고 하겠다. 유교에서 수양의 궁극에 이르면 도달된다고 말하는 호연지기니 광대지기상이라든가, 선불교에서 터득하려는 견성의 경지와도 상통하는 성숙된 성격의 정적 기조를 이루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런데 공이 밤바다에서 달을 바라보면서 즐기는 경우, 그의 정적 기조는 근심과 슬픔이 지배적인 것 같다. 단순한 감상적 기분인 것 같으면서도 그 속에는 웃음과 즐거움을 초월하고 자기 객관화가 이루어져 있으므로 이 슬픔은 어떤 높은 경지에의 몰입 융화되어 주어진 상황과 자기의 위치를 슬퍼하면서도 다시 이를 긍정했으리라. 성찰의 도장이 고요한 밤이며, 고뇌를 정화시켜 주고 자기를 찾게 하는 것이 바다와 달 곧 교교한 자연이다. 이러한 경치 이러한 경험에서 공은 필경 본래의 자기, 성성적적한 자기의 진면목에 직면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월남 이상재와 해학
유머라는 말은 웃음을 자아내는 것의 특질 또는 그러한 작용을 말한다. 즉 기이감과 익살스러움, 하찮고 우스꽝스러움, 기대에 어긋남 등의 즐거움을 돋우는 해동, 말, 글의 특질이나 이런 특질을 알아보는 능력 또는 이를 표현하는 능력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웃음을 유발하게 하는 대상의 특질은 무엇이고 이를 감지하거나 표출하는 작용은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 아이젠크는 크게 세 가지 이론으로 나누어 생각한다.
첫째, 어떤 것을 인지 또는 표현했을 때 웃음이 생기는가를 따져 인지 내용의 부조화성과 대조성, 기대에 어긋남 등에서 웃음의 요인을 찾는 인지적 이론이 있다.
둘째, 웃음의 요인을 의욕적인 측면에서 찾는 이론이 있는데, 여기에서는 우월감을 충족과 잘 적응된 상태 또는 억압된 욕구의 충족에서 웃음의 요인을 찾으려는 것이 있다.
셋째, 정서적인 측면에서 순수한 환희와 이와의 연합 또는 여러 정서의 대비 속에서 웃음의 요인을 찾는 이론이 있다. 아이젠크는 웃음을 자아내는 이같은 지, 정, 의의 세 요인이 지적인 요인에 의해 생기는 웃음과, 감정과 의욕의 요인에 의해 생기는 웃음으로 다시 구별 된다고 보았다. 단순하고 익살스러우며 성적이고 공격적인 우스개를 즐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와는 반대되는 우스개를 즐기는 사람도 있는데, 전자는 외향성과, 후자는 내향성과 관련이 깊다고 한다.
시어스(미국의 심리학자)는 우스개를 구조 요인과 주제 요인으로 나눈다. 구조 요인은 종결로 향하는 원 경향성이 급작스레 어긋나면서 처음의 경향성과는 다른 엉뚱한 종결로 귀착되는데, 어떤 우스개든 이 특질이 없는 것은 거의 없다. 반면 주제 요인은 우스개의 필수 요인은 아니지만 상당수가 공격욕, 우월감, 성욕의 충족이 주제가 된다. 전자가 인지적 유머라며, 후자는 정의적 유머다.
프루겔(독일의 정신분석학자)은 우월감과 공격성을 표현하는 유머가 사회의 발달 과정에서 점차 세련되고 인간화하면서 이때까지 공격의 대상이 되어 오던 것을 오히려 동정하고 이와 합해서 제 3자를 공격하는 웃음이 나타난다고 본다. 그리고 플루겔은 이 공격적 웃음이 사회적으로도 정당화되는 방향으로 나타난다고 말한다. 요컨대 유머의 표현도 사회화되어 사회가 정당하다고 보아주는 방식과 대상에 대해 웃게 된다는 것이다.
프로이드류의 사람들은 유머를 자아가 초자아의 입장을 취해 더 고차적인 차원에서 스스로의 불안이나 난처함을 내려다보고 웃음으로써 감정 소모를 절약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울포트는 성숙 인격의 특질의 하나로 유머를 내세우면서 "사랑하는 것을 웃으며 그러면서도 그것을 사랑하는 능력"이라고 정의하고, 이런 능력은 자기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갖게 하는 자기 통찰력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유머는 공격성이나 성욕과 깊이 관련된 우스개와는 근본적으로 구분되는데, 이러한 유머는 참된 자기를 알고 그러한 자기를 객관화시켜 웃을 수 있는 철학적 웃음이다. 따라서 인지적으로 비공격적이고 사회화한 유머는 자기 스스로에 관한 정확한 지식을 갖는 자기 통찰력 혹은 자기 객관화의 힘을 필요로 한다. 즉 예리한 지성으로써 가치 있는 인생관(자아관)에 서서 자기나 남을 보며 웃으면서도 이를 해결해 나가는 방향성이 있어야 이러한 유머는 가능하다.
유머로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분은 한말 민족 운동의 지도자인 월남 이상재 선생이다. 월남은 확고한 자신의 주장을 지키면서도 넓은 도량으로써 노소의 구별 없이 해학으로 대했으나, 그 내용은 결코 난잡하지 않았으며 흔하나 우스개에도 항상 한 가닥의 진리가 포함되어 있어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생각하게 하고 깨달음이 있게 하였다.
그가 갑신정변 후 우정국 말직에서 물러나 있을 때, 좌상, 우상을 역임한 김홍집이 미국에서 귀국해 국정의 개혁을 월남과 같이 논의한 적이 있었다. 김홍집이 탐관오리들의 숙청 본보기로 8도의 감사들을 처벌해야겠다고 말하니, 36세의 월남은 이에 답하길 "여덟 사람까지 죽일 것이 뭐 있소, 세 사람만 죽이면 될텐데?"라고 했다. 말하자면 제 정승만 본보기로 처벌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뜻이다. 김홍집은 이 말에 입을 다물고 말았다.
1888년 주미 공사관의 서기관으로 재직하다가 돌아왔을 때의 이야기가 있다.
고종이 "미국이 우리나라에 대해 호의를 가지고 있느냐?"고 물었을 때 "폐하께서 선정을 베푸시면 미국은 호의를 가질 모양이며, 그렇지 않으면 가졌던 호의도 없어질 듯합니다." 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는 주체적인 집정 태도를 풍자해서 간청한 예로 유명하다. 또 3.1운동 후 옥에서 나온 월남은 한참 동아나 그 청년을 바라보면서 "자네는 지금 호강하며 지내고 있는가?" 라고 하며 반문했다 한다. 우리의 지금 처지가 옥내, 옥외를 가려 힘들 때냐는 뜻이다.
1922년 김윤식이 죽었을 때의 일이다. 박영효가 사회장을 발기했을 때, 망국 대신에 대해 사회장이 결정되었다. 이때 사회장 본부에 "개같은 놈"이라는 투서가 날아들어 본부 사람들이 분개하였다. 그 자리에 참석한 월남이 이 이야기를 듣고 "그래도 대접한 말인데 그래?"라고 하며 투서한 사람을 두둔하였다. 옆에 있던 위원들이 불쾌하게 여기며 이유를 캐묻자, 월남은 "그래도 개는 주인을 아는 동물이야. 망국 대부로서 주인을 알아 보았다고 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해 모두가 아무말도 못하였다고 한다. 월남의 유머에는 상당히 공격적인 것도 많다. 그러나 이것은 개인적인 공격이 아니라 정의적, 국가적 견지에서 이를 해치는 것에 대한 공적 공격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보자.
참찬으로 있을 때 상관인 참정 박제순이 자기 마음대로 임명할 수 있는 위원직 10명을 요구하며 월남에게도 몇 명을 마음대로 임명하라고 했다. 그는 "내게는 위원이 소용없으니 돈으로 대신 주시지요"라고 하며 "늘 팔아 자시니 판로를 잘 아시겠으나 나는 그것을 모르니 소용없습니다"라고 했다 한다. 또 병합 후 청빈 속에서 세금을 못내 강제 집행까지 당했던 월남에게 경성 부윤이 전근 간다고 사전 양해도 없이 발기인에 월남을 끼워 초청장을 돌린 것을 받아 보고는 "가재 전부를 집행해 빈집을 만들더니 마침내 성명까지 집행함은 너무 심하지 않소?"라고 말해 만좌를 웃겼다고 한다.
1906년인가 1907년에 일본 시찰을 가서 병기창을 둘러보던 중 감상을 이야기하라는 일본인에게 "병기창을 보니 일본은 과연 강대국의 면목을 가졌소. 그러나 나에게는 퍽 유감스럽게만 보이오. 성경에 총검으로 일어나는 자는 총검으로 망한다는 구절이 있으니 그것만이 걱정되오"라고 말했다는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다. 그후 1911년 월남이 일본에 갔을 때 구한국 공사관에서 한국 유학생에게 연설하였는데, 그가 부모 잃은 동생들을 만난 것 같다고 말해 장내를 눈물바다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시찰 소감을 묻는 일본인에게 월남이 "새어머니 집을 보니 죽은 어머니 생각이 간절하오." 라고 답해 줘, 객이 다 같이 침통해 했다고 한다. 그 언젠가는 조선군 사령관의 초대연에서 사령관이란 자가 감기로 고생한다고 말하자, 월남은 "감기는 대포로 못 고치시오?"라고 응수했다고 한다.
항상 경찰의 감시 하에 있던 월남이라 경찰에 대한 풍자도 많다. 경찰관이 찾아와 "이리 오너라." 라고 하고 문을 두드릴 때면 "오냐 나간다." 라고 응수하며 나갔다고 한다. 그리고 월남이 어떤 연회에 나가 보니 눈 익은 형사들이 많이 눈에 띄어 "어허 개나리꽃이 만발하였군." 라고 하며 형사의 별명 '개'와 존칭 '나리'를 연결시켜 즉흥적으로 그들을 공격하기도 했다 한다. 별세 며칠 전에도 담당 형사가 문병을 가장해 동정을 살피러 왔는데 가족들이 못 들어가게 하였다. 이것을 안 월남은 그를 들여보내라 하고 들어온 그를 맞으며 "이 사람아, 기어이 내가 죽는 데까지 따라 올 참인가?" 라고 하며 유머스럽게 꾸짖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역시 별세 전 병상에서의 이야기다. 변영로와 구자옥이 문병 가니, 자신이 아끼던 두 청년을 보고 "이놈의 자식들, 내가 뒤졌나 안 뒤졌나 보러 왔지?" 라고 하며 웃기고는 벽쪽으로 돌아 누으면서 눈물을 주르르 흘리더란다. 죽어 가는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웃어 보다가도 죽음의 절대성 앞에 고개 숙일 수밖에 없는 절망감 때문이리라. 아니면 사랑해 마지않던 두 청년과 영원히 이별하는 순간에 차마 울음을 보일 수 없기 때문이리라.
이같이 풍부한 유머를 나타내고 있는 그의 유머 성향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안재홍(1891-1965)은 월남 사회장의 애사 속에서 "해학을 잘 하심이 선생의 평소이신가? 폐부를 찌르시는 해학 속에는 골수에서 우러나오는 분격이 잠기셨고, 낙천적으로 표현하심이 선생의 천질이신가? 화기유유하신 낙천의 그늘에는 천지에 사무치는 비통이 숨으셨다"고 보았다. 또한 변영로는 "치미시는 울분을 본의 아닌 해학으로 대체하시고 복받치는 불만을 진심 아닌 풍자로 교역하셨다"라고 보았다. 말하자면 월남의 유머의 원천을 공격욕으로 본 것이라 하겠다.
그런데 앞서 지적했듯이 올포트는 성숙 인격의 특징으로 자기 객관화 경향을 내세우고, 이 경향의 구체적인 표현으로 자기 통찰력과 풍부한 유머감을 내세운다. 유머는 자기 객관화로 말미암은 자기 스스로 웃는 것이며, 이같은 유머는 근본적으로 공격적이 아닌 것이 특징이다. 그렇다면 공격적인 유머를 나타낸 월남의 성격 성숙성을 의문시해야 하는가. 그렇게 공식적으로 단순히 생각할 것은 아니라고 본다.
월남은 어려서부터 심술과 장난이 심했다고 한다. 그가 18세에 상격하여 과거에 낙방한 후 줄곧 박정양의 식객으로 35세까지 있었으니, 그의 욕구불만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더군다나 나라를 생각하고 정의를 앞세우는 그로서는 당시의 문란상에 대한 불만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므로 그의 유머에서 공격적인 경향이 다분함은 피할 수 없었다고 하겠다.
안재홍이나 변영로가 그의 유머를 공격성의 표출로 보는 것은 정당하다. 다만 그 공격성의 표출이 개인적 공격이 아닌 사회화한 공격이며, 사회가 미워하고 경계 타도하려는 대상에 대한 불만을 승화시켜 나타내고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옳지 못한 상대를 비웃거나 공격하기 위해 사용한 유머라 해도 그 상대는 개인적인 적대, 경쟁 관계의 사람이 아니었다. 그 상대가 사회 일반이 미워하는 부정 관료나 침략자의 협조자였으므로 그의 유머는 사회적으로 공명을 얻었다. 말하자면 공격성이 강하기는 하지만 이것은 사회화되고 인간화된 공적 공격의 형식을 취한 것이 특징이라 하겠다.
물론 그에게서 비공격적인 유머도 많이 나타난다. 박정양이 앓고 있을 때 의사를 데리러 간 사람이 심부름을 소홀히 했다고 꾸지람을 듣고 있자 "심부름 잘하면 또 시키는 법이야"라고 하며 웃어넘긴 것, 3.1운동 후 출감하는 그에게 인사하는 청년을 보고 자네는 호강으로 지내는 셈이냐며 반문한 것, 그리고 김윤식을 개 운운하며 비방한 자를 편들면서 "그래도 대접한 말인데 그래"하고 한 것 등은 표면적으로는 공격적인 것 같지만, 자기 입장을 확고하게 지키고자 하는 깊은 함축성을 지닌 유머이다. 이것은 비공격적인 경향이 두드러지며 깊은 반성을 촉구하는 유머라고 볼 수 있다.
총체적으로 보아 월남의 성격상 활동적인 외향적 경향이 우세해서인지 유머의 내용이 대상 지향적일 뿐 자기 지향적인 면은 적은 편이다. 그리고 그 유형도 인지적이라기보다는 정의적이다. 이것은 깊은 교양과 확고한 자기 입장에 서서 인간화하고 사회화한 인지적 테두리를 통한 유머이기 때문에 단순한 우월감의 충족이나 억압된 욕구의 충족으로 그치는 유머가 아니다. 다 같이 즐길 수 있고 깊은 여운을 주어 생각하게 하는 형식을 취했다고 볼 수 있다.
올포트는 유머를 "자기가 사랑하는 것을 웃으며, 그러면서 그것을 사랑하는 능력"이라고 정의했지만, 월남의 유머는 "우리가 사랑하는 것을 웃으며, 그러면서 그것을 다같이 사랑하는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 웃음은 웃음의 대상을 기반까지 없애 버리는 허무화의 웃음이 아니고, 웃음을 새로이 튼튼한
기반 위에 세워 주는, 웃음의 방향성이 뚜렷한 것이 하나 특색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