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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전까지의 EP에서 자칭 타칭 VIC 5 명당과 Bic 10 명당 중 2곳을 소개하였다.
이제 나머지 8곳과 기타 흥미유발의 북한 김일성주석의 조상묘 등을 더 찾아봅니다.
◆Bic-3). 달성서씨 서성(省) 墓: 경기 포천 설운동 산1- 14,
: 달성서씨의 중흥을 이끈 약봉선생의 터는 낮은 야산의 솟아오른 곳에 자리잡은 대혈로 친다.
이 터는 해룡입수혈로 부르며 조산 천보산과 주산 해룡산의 지맥이 평지로 내려와 혈을 결지하였다. 좌우 청룡과 백호는 낮지만 몇 겹으로 감싸 안고, 백호가 더 발달하여 장손보다 지손과 여인들이 더 발복할 자리라 한다. 안산은 멀어도 태봉산이 봉황의 모양으로 수려하고 먼 조산은 여러 층으로 감싸며 혈을 향해 있어 좋다. 특히 물은 평탄한 내명당에 모여 파구됨이 해룡입수혈로 마치 목이 마른 해룡이 평지로 내려와 물로 향하는 형상을 띤 최고의 대명당으로 보고 있다.
한 묘역에 조부모, 부모까지 3대가 함께 있다. 이전까지 달성서씨 가문에서는 세종 ~ 성종 때까지 6판서와 대제학을 거친 서거정이후로 뚜렷한 인물이 없었으나 약봉의 모친 고성이씨가 소경의 몸임에도 불구하고 귀양지에서 죽은 시아버지와 남편의 유골을 고향으로 모시고 가던 중 하늘이 점지해 준 지금의 이곳에 두 분의 묘를 쓴 이후 명당의 발원으로 달성서씨가 번창하게 되었다고 한다.
약봉선생은 물론 약봉선생의 네 아들을 시작으로 3대 정승, 3대 대제학, 3대 대학자가 지속적으로 배출되면서 조선 중기 이후 명문가로 자리잡게 되었다고 한다.
약봉이 어릴 적 지금의 중림동 약현(藥峴)에 살았었는데, 약봉의 모친은 비록 눈은 안보여도 솜씨가 매우 뛰어나 약식과 약밥, 약주를 만들어 팔면서 약봉을 키웠다고 한다. 약현의 지명은 약봉의 모친고성이씨의 음식과 술에서부터 유래되었다고 한다.
◆Bic-4). 청주한씨 시조 한란(蘭) 墓: 충북 청원 남일면 가산리 537, 회룡고조혈 명당
: 이 터는 소조산은 국사봉으로 북쪽에 평지과협한 뒤 주산에서 동남쪽으로 내려와 혈장을 맺었다.
주산 좌측의 청룡은 길게 터를 감싸고 여러 가닥의 백호들은 청룡 끝의 수구봉(水口峰)을 견고하게 휘돌아 야무지게 만들어 터 안은 아주 안온하다. 특히 이 터의 특징으로 묘지 앞으로 뻗어나간 혈순(穴脣: 혈의 입술)은 높게 올려져 옥호저수(玉壺貯水)형 으로 기맥이 뭉쳐져 있다고 한다.
한란은 고려 개국공신으로 이 명당터의 발복으로 조선조에 이르러 12세 한상질(대제학)을 기점으로 13세 한확(좌의정), 14세 한명회(영의정), 한백륜(우의정), 한치형(영의정)이 줄을 잇고 이후에도 한효원(영의정), 한효순(좌의정), 한응인(우의정), 한흥일(우의정) 등으로 이어지며 가문을 빛냈다.
특히 청주한씨의 여인들은 태조 이성계의 원비 신의왕후 한씨를 비롯하여 덕종의 소혜왕후, 예종의 원비 장순왕후, 계비 안순 왕후, 성종의 원비 공혜왕후, 인조의 원비 인열왕후 등 조선에서 여섯 분의 왕비가 나오셨고, 한확의 누이 두 명은 각각 명나라 태종의 려비(麗妃)와 선종의 공신부인이 되었다.
◆Bic-5). 진성이씨 이정(禎) 墓: 경북 안동 북후면 물한리 89, 작산정사 및 가창재사
: 퇴계선생의 증조부로 세종 때 선산도호부사를 역임하였다.
이 터는 박달산이 조산, 건지산이 주산으로 용맥이 흘러내려 보국이 안정되고 내맥이 뚜렸한 곳으로 기룡혈(騎龍穴)로 보고 터를 잡았다고 한다. 더욱이 특이한 것은 진성이씨 시조인 이석(碩)의 묘 (청송군 파천면 신기리 427)와 아들이며 이정(禎)의 조부가 되는 입향조 이자수의 묘(서후면 명리 산67)까지 세 곳의 묘가 풍수지리상 똑같이 빼어닮았다고 한다. 세 곳 모두 반듯한 명당 이며 모두가 혈장이 좁고, 물 빠지는 파구가 뒤틀려있는 것 까지 같다고 한다.
이 터에서는 선상공 부부가 상, 하장으로 쓰고 있는데 증조모의 터가 더 정혈이란 주장도 있다.
전체적으로 산세가 겹겹이 애워싸고 있어 포근하면서도 위엄이 있는 명당이란다.
◆Bic-6). 광주이씨 시조 이당(唐) 墓: 경북 영천 북안면 도유리 121, 야(也)자형 명당지
: 주봉 예향산의 지맥이 청룡은 낮게 내려왔지만, 백호는 우뚝 솟은 봉우리들을 만들며 회룡고조 형국을 이루면서 안산의 모습을 보이는데 이른바 ‘也’형국의 대명당지란다.
동래정씨 2세 시조 정문도의 화지산 명당터와 흡사한 모습을 보인다고 한다.
이당은 려말 아들 둔촌 이집이 신돈의 탄압에 목숨이 위태롭자 부친 이당을 업고 영천의 최원도 집으로 피해갔다가 이듬해 부친이 죽자 최원도 모친 영천이씨 묘역 밑에 장사를 지낸다. 허나 명당의 주인은 따로 있듯이 이당의 묘가 정혈로 광주이씨가 발복하였단다.
이 분의 부인인 인화이씨부인 묘 역시 ‘광주이씨 始祖妣’라 하여 경기도 8대명당지의 한 곳으로 경기 하남시 덕산동 산24- 1에 있다. 가히 부부가 합동으로다 명당이다.
◆Bic-7). 고령신씨 시조 신성용 墓: 경남 고령 쌍림면 산주리, 만대산 백호배주형 명당.
: 산주리 남서쪽 산주못 뒤의 매화재 아래에 위치한 음택은 풍수지리적으로 우측의 백호가 상당히 높은 것이 특징이란다.
하여 백호가 뻗어나와 안산까지 겸하고 있지만 위세가 당당하단다. 나약한 청룡과 앞의 커다란 귀봉이 몸을 틀어 혈을 외면하는 것이 아쉽지만 겹겹이 명당을 감싸는 산들이 머리숙여 조아리고 외명당이 탁 트인 명당이란다.
일부 풍수사들은 정혈처에서 조금 벗어났다는 평(評)도 있으나 그래도 ‘만대영화지지(萬代榮華地’로 널리 알려져 찾아왔던 것이 아닌가??
고령신씨는 조선조에 정승 3명, 대제학 3명, 문과급제 91명을 배출한 명문가로 대표적인 인물로는 세조의 즉위에 공이 지대한 정난공신 신숙주(영의정)로 한글창제와 특히 외국어에 능통하여 당시 7개국어를 하는 천재성을 보였던 인물이다.
이외에도 동국여지도와 산경표를 완성시킨 조선 풍수와 지리학의 대가 신경준, 풍속화가 신윤복, 단재 신채호 등이 가문의
인물이다.
◆Bic-8). 동래정씨 2세 정문도 墓: 부산 부산진구 양정동 467, 화지산
: 화지산은 태백산맥에서 양산 원효산, 금정산을 거쳐 대간룡이 끝나는 용진처라 한다.
묘소는 ‘야(也)자형’으로 중심으로 이곳의 혈처 앞에 청룡, 백호가 모두 부복하는 형상이
란다. 좌측의 황령산과 우측으로 팔금산과 이어진 수정산 사이로 부산항이 정면으로 들어오고, 영도의 봉래산에 이르기까지 중간에 문필봉들이 무수히 즐비하다...
그 즐비하게 보이는 문필봉 하나 하나가 모두 조선의 정승이 되어서 동래정씨 가문에서 한 섬의 정승이 배출
되었나 보다.
◆Bic-9). 반남박씨 시조 박응주 墓: 전남 나주 반남 흥덕리 산2- 1, 벌(蜂)명당터
: 고려호장을 지낸 박응주의 터이다. 이 터를 잡아준 지관이 천기누설을 염려하여 다른 곳을 알려주었으나 아들 박의가 몰래 엿듣고 이 자리에 묘를 썼다고 한다. 결국 지관은 돌아가는 길에 커다란 벌에 쏘여 벌고개(蜂峴)에서 죽었는데 반남박씨 가문 에서는 지금도 매년 10월 보름에 지관을 위해 제사를 지내주고 있다고 한다. (고개 암벽에 ‘蜂峴’이란 음각을 새겨 기리고 있다.)
이 터는 감결이 상당히 어렵다고 한다. 진산은 자미산(제비산)으로 주변이 나름 구릉으로 감싸여져 사신(四神)이 혈장을 잘 보호하고 있다고 한다. 결혈은 평야 내려온 평강룡(平崗龍)이라 하며, 터 주변에 밖힌 요석들이 모두 지기의 집합체로 힘을 모은다는 의미란다. 갖다 붙여대기 나름인가보다.
뒷산 봉우리가 멍덕(토종벌통 뚜껑) 모양이고, 주변 산세가 꽃밭이다. 자연 묘는 벌통이 된다.
명당의 발복은 자손이 벌 떼처럼 번창하고, 벌들이 꿀을 모으듯 재물과 명예를 받게 된다고 한다.
이 터를 방문한 학생이 이제껏의 배움과 사뭇 달라서 선생에게 질문을 하였단다.
“이곳이 조선 팔도 명당터가 맞습니까?” 선생 曰 “네 눈으로 판단하라! 크게 뜨고 바로 보면 보일 것이다.
안 보이면 명당이 아닐 것이고, 보인다면 이곳이 명당이다.” 우문에 현답이로다.
(※이 인근은 삼국시대 이전의 고대국가의 대형 무덤들이 있는 곳이다. 자미산(고대국가의 수도?)을 중심으로 신촌리, 덕산리,
대안리 등에 30여기의 고대 대형 고분들이 한일 양국 간에 얽힌 역사의 수수께끼를 품은 채 아직도 남아있다,
근간에 나주박물관이 개관하여 볼거리가 많아졌다.)
◆Bic-10). 청주한씨 한광윤 墓: 전남 영광 법성면 영광로4길 119, 재실, 오봉마을
: 4대승상, 7대왕비 백자천손 문무대대로 날 명당, 용사취회형(龍蛇聚會).
시조 한란의 명당발복만으로 부족하였나 청주한씨는 또 하나의 명당터를 가지고 있으니
시조 한란의 적통 6세손으로 고려 명종 때의 인물로 예빈경의 벼슬을 지낸 한광윤의 음택이 명당으로 알려져 있다. (서재공파 파시조)
용사취회형이라 불리는 이 명당은 야산지대로 주산에서 들판을 건너 내려온 용맥(은맥)을 평강용(龍)으로 보고 좌청룡, 우백호를 용(龍)보다 못한 뱀(蛇)으로 보아 용과 뱀들이 모여 머리를 맞대고 회합을 하는 듯한 형상의 명당이란 의미인데, 이곳은 터가 낮은 전형적인 평야지대의 산세로 청룡, 백호, 안산이 모두 혈장이 이루어진 묘역을 향하여 환포하고 있는 형태에 평지에 맺은 혈장이 팽팽히 부풀어 오른 형태로 아미월사체(蛾眉月砂体)라 하여 최상의 처로 풍수사들은 평한다.
물론 혹자는 소문처럼 대단한 명당은 아니고, 강(岡: 묘소 밑의 경사면)이 없는 평범한 무해지지에 불과하다고 폄하하기도 하지만 700년이란 오랜 세월이 지났어도 평지에 결지한 대혈에서 아직도 생기가 응기되어 있는 명당이라 칭하는 이들이 더 많이 존재한다.
한광윤의 아들은 고려조의 대제학직을 지냈고, 손자는 우의정을 역임하였다.
조선조에 이르러 8대손이 수양대군의 자방(한나라 유방의 책사인 장량)인 한명회가 등장하면서 청주한씨의 세를 떨치게 되었다. (충성공파 파시조)
◈ 기타 유명한 명당터
▷전주김씨 시조(김태서公)묘: 전북 완주군 구이면 원기리 안양골 모악산 중턱.
(모악산 등산로 입구-> 선녀폭포 -> 좌측 등산로 진입 400m 지점, 동북향).
: 이북 김일성 주석의 32대 조상 고려 상장군 김태서의 묘이다. 김일성주석은 700년전 조상의 명당 발복으로
49년간 절대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고 하는데, 어째 그 명당의 발복은 그리 시간이 걸려도 그렇게 한참이나
많이 걸려서 오는고??
1994년 7월 8일, 북한의 김일성주석이 급서하자 정치적, 사회적으로 뒤숭숭한 가운데 다른 한편에서는 풍수
이야기가 들끓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도 그럴 것이 1993년 8월에 ‘터’란 풍수 관련책을 출판하면서 저자 손석우씨는 1994년 10월이 되면 전주김씨 시조묘의 정기가 사라질 것이라는 예언에 가까운 예측을 했던 것이 어찌 근접하게 맞아떨어짐으로서 육관도사 손석우씨는 완벽 스타가 되어 버렸다.
나도 열심히 독파했던 책이지만... ‘터’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스토리도 많이 담겨있었다.
국립묘지 내 육영수여사 묘가 수렴장이니, 대원군이 부친 남연군의 묘를 쓰기위해 절을 불태운 이야기 등등.
풍수에서 으뜸 도사가 되어버린 육관도사는 당시 권력자, 재벌가의 이장을 도맡으면서 정부종합청사, 국립
대전현충원, 이순자 여사 할아버지 묘를 용인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조상묘 역시 용인으로, 노태우 대통령의 집안 장지를 잡아주는 등 아무튼 ‘생거((生居)진천), 사거(死居)용인: 살아서는 진천이 좋고, 죽은 후에는 용인 좋다)에 아주 충실하였었다.
아무리 풍수의 명당이라 하여도, 무슨 고려 때 쓴 무덤의 발복이 700여년이나 지나서 북한의 김일성에게 발복을 하겠느냐?? 설령 발복했다해도 그렇게 특정인에게 영향을 준다는 것이 너무 뻥~
(그러니까 ‘풍!!’이 아니고 ‘뻥!!’이겠지만)이 심한 것 아니겠소?
이 묘에서 다시 한 번 소란이 벌어졌었다.
2011년 김일성의 아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숨지면서 다시 이목이 집중되었다.
과연 명당의 발복이 김일성, 김정일에 이어 다음으로까지 이어질까하는 의문에서이다.
나름대로 일가견을 지닌 풍수쟁이들 曰 ‘명당이지만 이제는 혈이 끊겨 풍수지리상 김일성왕조의 3대 세습은
힘들 것’이란 반응들을 교수직을 가진 풍수가들이 보였고, 또 다른 일부 풍수가들은 갈마음수형의 명당자리라 자손들이 부귀하고 크게 흥할 자리이므로 이후의 후계자 즉 김정은의 운까지 활짝 피어있다는 반응도 보였다.
요거이 솔직히 OX게임이지 뭔? 풍수를 보고, 지리를 봅니까? 그냥 ‘모’아님 ‘도’자나요?
아니라는 반응의 풍수고수님들 대개 명당에서의 발복이란 것이 4대조에서 5대조까지 조상의 영향이 후손에게 미치는데, 조상님의 유골이란 것이 통상 50~ 100년이면 소멸하게 되고, 혹 유골이라도 없다면 동기감응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설명한다.
그렇기 때문에 소위 명당에서 발복은 대개가 사후 30년 안팎에서 일어나는 것이 대부분이고 예외라 하더라도 또 100년 이상을 넘기는 경우가 드물다고 설명해 주시는데…
그라몬?? 700년이 지난 후에야 터진 김일성의 발복은 어떻게 된 것인지요??
그라몬?? 혹시, 진짜로다 700년 후 내 후손에게 대박난다면? 당신들 그렇게 하시겠소??
말 만들기 좋아하는 인간들이 주절대는 소리로 밖에는 들리지 않습니다.
그런 걸 믿으라고요?? 자~ 그냥 우리들만이라도 이상한 것에 흔들리지 말고 적당히 사십시다.
여하튼 그렇게나 불가사의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전주김씨 시조묘는 풍수적인 안목으로 볼 때는,
갈마음수형, 삼수부동형(三獸不動形: 삽살개, 매, 학 세 짐승이 상극관계로 균형을 이루고 있는 형국)의 명당터라 하지만 한편 일부 풍수가들은 이 터 역시 여러 면에서 많이 부족한 터라고 한다.
▷육관도사 손석우 묘: 신안(神眼)의 풍수사. 충남 예산 덕산면 상가리 가야산 자락.
: ‘2대 천자지지’로 흥선대원군이 절을 불태우고 석탑자리에 이장해 온 부친 남연군 묘 인근에 자리한 육관의 묘 역시 그가 생전에 말해온 ‘자미원’은 아닌 듯하다.
자미원(紫薇垣)이란? 하늘의 별자리 중 제왕이 거처하는 자리로 천하의 대명당을 말한다.
신라 원효대사는 내포지구 즉 오서산과 성주산 사이의 산과 강이 우리 국토의 내장부와 같다면서 그 내포지구에 자미원이 있다하였다.
한반도에는 자미원, 태미원, 천시원의 삼원에 해당하는 명당이 모두 여덟 곳에 있는데 세 곳은 북한이고,
다섯 곳은 남쪽에 있다고 한다.
생전에 자미원을 수없이 언급하였던 육관선생도 1998년 심장마비로 급사한 후 역시 내포지구인 남연군 묘역 위쪽에 묻혔다. 유가족의 말에 의하면 육관선생이 직접 터를 잡고 ‘북두칠성의 기운을 한 몸에 받는 곳’이라
했다지만, 방문했던 풍수가들은 복치혈로 즉 권력과 부귀보다는 자손대대 건강하고 화목할 수 있는 정도의
자리라고 평한다.
어떠한 명당터도 각각 발복의 시기가 있고, 터와 인연이 있어야 주인이 된다는 것이다. 하여 인연이 아닌 사람이라면 주인이 될 수 없으니 부디 욕심을 버리고 자기 그릇에 맞게 살 것을 명풍수들은 권하고 있다.
시대를 풍미한 풍수가 육관선생의 묘에 대한 평가는 각각이지만,
풍수상 ‘복치혈(伏雉穴: 꿩이 매를 피해 엎드려서 알을 품은 형상)’로 주산 가양봉의 지맥이 석문봉을 타고 내린 용맥이 남연군의 묘로 가고 있는데, 육관의 묘는 용맥의 중간에서 갈라진 용맥이 나와 만든 곳에 자리하고 있다고 한다. 더구나 앞에는 자그만 저수지도 자리하고 있다.
따라서 강한 기운의 대명당은 아니지만 안정적인 좋은 터라는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조선의 명당이란 명제 아래에서 이것 저것 들춰보았지만… 에구궁~
우리네 조상님의 묘터는 한 자리도 나오질 않네요. ㅠ ㅠ
하여, 명당터의 마지막 이야기로 아주 크게 잡아서 ‘조선의 100대 명당’
이렇게 명제를 걸어놓으면 헹여 하나라도 걸릴까하는 막연한 기대감에 묘터 이야기를 조금 더 늘려봅니다.
‘마지막 에피소드에서라도 하나만이라도 나와주소’ 하는 마음을 갖으며…
울 카페 순진성님의 조상님터도 아직 나오지 않았음에도 다소나마 위안을 삼으며.
서울, 경기, 충청… 그래 함 뒤져보자고요. -了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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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진짜 명당은 명당인 모양입니다!;청주한씨의 충북명당터에서 후궁도아닌 정실왕비가 여러분 나신걸보니~^
수고 많으셨어요~재미있고 유익하기도하고~
울하나형부님~짱!!^
동래정씨가 조선 땅덩이의 젤로 좋은 명당자리 다 꽤차고있으니 이를 워쪄.
동래정씨가문이 신안동김문과 만나면서 양 가문이 모두가 윈윈으로다 발전해 버렸는디...
그래서 울 또하나님과 마담올리브님의 꿍짝이 잘맞나보다. 그럴까? 정말??
얼마나 더 큰 영화를 보겠다고..
후세 발복 혜택 지들만 받겠다고..
행하는 짓거리들이라니..
어느 집안 제대로 수장이라 불러도 아깝지 않을 인물 조상님묘 명당터 발복하여 대한민국도 나라나 국민 모두 존경하고 따를 대통령과 주변 능력과 인품 모두 갖춘 좌의정우의정 거느리고 잘 살아보세~..
욕심쟁이 일부계층에게만 한정 발복하시지 마시고 전 국민이 다 웃고 살도록..
에헤라디야~~^^
에혀라디여~-_-;;
에긍 더운데 정리하신다꼬 욕보셨습니당..
시원한 수박빙수라도 사드려야하는데...
휘리릭~ 으로 바꿔타서 이자는 별거 아니야요.
긍게, 참말로 우리나라 백성들은 착한디~~ 너무 착해빠져 그런가? 참말로 나랏님 복은 지지리도 없네욤.
처음부터 별로 깨끗하지 못한 왕가의 핏줄이 세월을 거듭하며 혼탁해지다, 얼띠나랏님 인조를 정점으로 최악을 치닫다
이후 현, 숙, 경, 영, 정조대왕 이후로는 다 끝났시요. 에구 불쌍타, 염색할 줄 몰라 흰옷만 입었다던 백의의 민족....
역사 이야기를 듣자하니 확실히 명당의 터가 있는 것 같슴다.
그런데 그땐 왕권이 세습되던 시대라서 글타치고 직집선거로 뽑는 요새도 나랏님 복은 정말 없는 것 같아요.
저는 또하나인데요.
나랏님 말씀은 동감합니다. 우린 복도 화끈하게~~~
늘 좋은글에 감사를...
하나형부님 시골 우리집도 모시고가서 함 봐 달래야겄네요ㅎㅎ
늘 대단하시단 말씀뿌끼 디릴끼 없어유
감사히 잘 읽고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