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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人間革命 28卷
第1章 廣宣譜 (7~12)
<광선보 7>
마키구치 쓰네사부로(牧口常三郞) 초대 회장과 도다 조세이(戶田城聖) 제2대 회장은 홀로 일어서 현대에 광선유포의 새로운 흐름을 열었다.
야마모토 신이치는 그 사실을 근거로 <제법실상초> 강의에서 자절광포(慈折廣布)를 실현하는 사자(師子)의 정신을 강조했다.
그런데 종문(宗門)은 의도적으로 그 말을 가지고 학회는 니치렌대성인(日蓮大聖人)과 초대, 제2대 회장을 동일시한다며 지극히 왜곡된 시각에서 질문을 보내왔다.
또 신이치가, 도다가 감옥에서 창제하며 “법화경을 색독(色讀)하고 지용보살의 동량(棟梁)으로서 개오(開悟)하셨다.”고 한 말도 이렇게 질문했다.
“지용보살의 동량은 바로 상행보살입니다. 그러면 도다 전(前) 회장 자신이 상행보살(上行菩薩)임을 개오하고 그 수행을 행한 것입니까. 그렇게 되면 대성인은 필요 없겠군요.”
신이치가 도다를 ‘지용보살의 동량’이라고 말한 것은 ‘절복홍교를 하는 재가의 지도자’라는 의미였다.
또 도다 스스로 자신을 ‘지용보살의 동량’이라고 말했다. 도다는 그렇게 자각하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광선유포를 위해 오직 홀로 일어서서 회원 75만 세대 홍교를 지휘했다.
도다의 이 투쟁을 법주(法主)인 호리고메 니치준은 “회장 선생님이 말법에 선달(先達)이 되어 그분들을 불러낸 것이 창가학회(創價學會)라고 생각합니다. 즉 묘호렌게쿄의 오자 칠자를 75만으로서, 상에 불러낸 분이 회장 선생님이라고 생각합니다.” 하고 상찬했다.
여기서 말한 ‘그분들’은 육만항하사(六萬恒河沙)의 대사(大士) 즉 지용보살이다. 신이치는 법주가 한 이 말과 더불어 도다가 전후 일본의 혼란기에 회원 75만 세대 달성이라는 미증유의 정법유포를 지휘한 사실을 근거로 ‘지용보살의 동량’이라고 말했다.
현대에 온갖 법난(法難)을 만나고 불석신명(不惜身命)의 각오로 광포를 추진하는 사람이 바로 ‘지용보살’이고 그 지도자가 ‘동량’이 아닌가! 그렇지 않다면 어디에 ‘지용보살’의 출현이 있다는 말인가!
<광선보 8>
종문은 학회가 초대 회장인 마키구치를 ‘선사(先師)’라고 부르는 것도 문제 삼았다. <닛코유계치문>에서는 니치렌대성인을 ‘선사’라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마키구치도 그렇게 부르는 이유가 “대성인과 마키구치 회장이 같은 의미이기 때문입니까” 하고 질문했다.
학회에서는 제2대 회장인 도다와 초대 회장인 마키구치를 구별하기 위해 도다를 ‘은사(恩師)’고 하고 마키구치를 일반용어로 ‘선사’라고 불렀을 뿐이다.
종문이 이렇게 질문한 배경에는 학회가 ‘회장본불론(會長本佛論)’을 내세운다는 곡해와 사추(邪推)가 있었다.
이 점에 관해 말법의 어본불은 니치렌대성인 한 분이며, 그것은 ‘말법만년에 걸쳐 변하지 않는 근본의(根本義)’임을 재확인했다. 그리고 ‘니치렌대성인이 말법에 출현하신 어본불이라는 사실을 절복을 통해 세계로 알린 것’이 반세기에 걸쳐 고투에 찬 학회의 역사임을 주장하고 이렇게 말했다.
“일상에서 하는 자행(自行)과 화타행(化他行)에서 니치렌대성인을 어본불로 우러르며 니치렌대성인의 혼이 담긴 어본존을 신심의 근본대경(根本對境)으로 삼고 니치렌대성인불법(日蓮大聖人佛法)을 광선유포 하는 것을 실천의 목적으로 삼은 것이 학회정신의 골수이다. 따라서 학회는 회장본불론이 절대 아니다.”
말법이라는 ‘때’도 모르고 오랫동안 석존을 부처로 여긴 것이 일본인의 불교관이었다. 그런 속에서 이처럼 많은 민중이 니치렌대성인을 말법의 어본불로 우러르며, 어본존 근본으로 광선유포에 매진하는 것은 마키구치와 도다로 이어지는 창가(創價)의 사제가 그것을 꿋꿋이 외쳤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을 보아도 회장본불론이라는 것이 망상의 산물이며 학회를 공격하기 위한 구실임이 명백하다.
“악인은 꾸며낸 이야기를 퍼뜨려 결백한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고, 더욱이 맹세코 그것이 진실이라고 말할 것이다.”
이는 고대 그리스의 시인 헤시오 도스가 한 말이다.
정의로운 사람을 함정에 빠뜨리려는 악인의 수법은 지금도 여전히 같다.
<광선보 9>
종문이 한 질문 중에는 남자부 구(區, 우리나라 권 단위 조직)간부가 ‘니치렌대성인 직결의 창가학회’라고 기술한 점을 문제 삼아, 대성인 직결이란 어떤 의미인지를 묻는 것도 있었다. 법주의 존재를 부정하는가라는 취지를 포함한 질문이다.
이는 어본존에게 나무(南無)하고 경지명합(境智冥合) 한다는 뜻으로 법주의 존재를 부정한 것이 아니다.
승려들은 ‘교의 일탈’이라며 학회를 공격하는 재료가 되는 문언을 기를 쓰고 찾으려고 했다.
신이치가 ‘창가불법(創價佛法)’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에 대해서도 “창가불법이란 무엇입니까. 일련정종의 불법 외에 다른 것입니까?” 하고 물었다.
신이치는 절복, 홍교를 위해 사회에 불법을 전개함과 더불어 실천 교학이라는 의의를 담아 ‘창가불법’이라는 표현을 썼다.
또 ‘창가’ 즉 가치창조는 행복의 창조를 말한다. 따라서 행복을 구축하기 위한 불법이라는 의미로 사용했다.
그리고 교학부 간부가 ‘니치렌대성인의 생명철학’이라고 표현한 것에 대해서도 종문은 이것은 “‘니치렌대성인불법’이라고 해야 합니다.” 하고 말했다.
불법의 법리를 ‘생명론’이나 ‘생명철학’으로 논하면 많은 사람이 불법을 이해하는 소지를 만들 수 있다.
불법을 전개하려면 시대에 대응하면서 여러 현대철학과 과학의 성과를 근거로 알기 쉽게 논해야 한다.
불법을 얼마나 시대에 맞게 전개할 것인가. 그것은 광선유포를 추진하는 데 가장 중요한 주제라고 할 수 있다.
그 책임을 포기하고 노력을 게을리 하면 광선유포의 길은 닫히고 만다.
그렇기에 학회는 거기에 최대로 힘을 쏟았다. 그렇게 착실하게 노력했기에 세계 지도자와 지성인도 니치렌불법에 괄목하고 공감해 세계종교로 발전했다.
<광선보 10>
학회는 종문의 질문에 대해 심의를 거듭해 계통을 세워 정리하고 성심성의껏 답변을 정리했다.
종문은 학회가 충분히 이해되는 답변을 보내온다면 각 사찰이 학회를 공격하는 일도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학회의 수뇌들은 비정상적인 사태에 빨리 종지부를 찍어 회원을 지키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학회가 이전부터 생각하고 있는 점을 확인하고 오해를 초래하기 쉬운 표현이 있었다면 종문의 지적을 받아들이려는 자세로 임했다.
학회는 오로지 화합을 바라며 진지하게 대응했다.
머지않아 닛다쓰 법주가 학회의 답변을 받아들이겠다는 취지의 연락을 보내왔다.
이 답변은 ‘교학 상의 기본문제에 관해’라는 제목으로 세이쿄신문 6월 30일자 4면과 대백련화 8월호에 게재해, 모든 회원이 철저히 주지하도록 했다.
이것으로 각 사찰이 학회를 불합리하게 비판하는 일은 사라지리라 믿었다.
그러나 이때도 학회 공격을 부추기는 참언(讒言)이 떠돌았다. 종문을 이용해 일확천금을 꾀하려는 반역자가 책동한 모략이었다.
많은 승려가 학회의 성실한 답변을 역으로 이용해 ‘이때다’ 하고 음습한 중상을 계속했다. 신문에 실린 ‘교학 상의 기본문제에 관해’라는 기사를 들어, 학회의 잘못이 분명해졌다며 비난했다.
학회 공격이 해결되기는커녕 폭압이 더욱 심해졌다.
승려들은 승복의 권위를 내세워 “학회에서는 성불(成佛)하지 못한다”고 핍박하며 단도(檀徒)를 늘리는 데 광분했다.
신이치는 불자(佛子)인 학회원의 고통을 생각하자 ‘어떻게든 회원을 지켜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또 가장 중요한 것은 광포파괴의 모략에 분동(紛動)하지 않는 창가의 진정한 용자를 육성해야 한다고 통감했다.
‘우리 동지여, 열풍이 불어올수록 더욱더 신심의 불을, 광선유포를 위해 꿋꿋이 살아가는 창가의 투혼을 불태워야 한다!’
<광선보 11>
세이쿄신문에 ‘교학 상의 기본문제에 관해’가 발표된 6월 30일 저녁이었다.
대학부 결성 21주년을 축하하는 기념 간부회가 도쿄 아라카와문화회관에서 성대히 열렸다.
참석자 중에는 대학부가 결성된 1957년에 태어난 멤버도 많았다. 이날 모인 대학생들은 스승인 신이치가 권력의 마성과 격렬하게 공방전을 전개하는 와중에 대학부가 탄생했다는 사실에 깊은 의의를 두고 있었다.
인간을 억압하고 지배하려는 모든 권력의 마성과 장절히 싸우는 영원한 투쟁, 그것이 광선유포의 길이다.
창가의 학도(學徒)들은 신이치의 혼을 이어받아 민중을 지키고 광선유포의 선구를 달리는 사명을 끝까지 완수하자는 결의에 불탔다.
사회자가 기념 간부회의 개회를 알리자, 우레와 같은 큰 박수가 장내를 뒤덮었다.
대학부 서기장인 오시야마 가즈히토와 여자대학국장인 마치노 유코의 인사에 이어 대학부장인 아사다 시게오가 등단했다.
아사다는 회장인 신이치가 심혈을 기울여 신(新)대학부가 ‘광포로 달려라’를 작사, 작곡했다고 말한 뒤 노래가 완성되기까지의 경과를 말했다.
“지난달에 열린 6월 대학부간부회에서 신․ 대학부가를 제작하겠다고 발표하자 전국 각지에서 가사를 많이 보내 주셨습니다.
그중에는 쉰여섯 살의 부인이 보내온 가사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여러분의 정열과 진심에 힘입어 제작위원회 멤버가 하나가 되어 노래의 안을 완성했습니다.
그러나 아직 검토할 여지가 많은 가사였습니다.
그저께, 이 안을 야마모토 선생님에게 보여드리자 선생님은 ‘내가 노래를 지어 여러분에게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을 위해 후세에 남을 대학부가를 만들어 주고 싶습니다’ 하고 말씀하시고 그 자리에서 작사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몇 번이나 퇴고하고 바쁘신 속에서도 시간을 내어 작곡도 하셨습니다.”
모두가 신이치의 깊은 마음을 느꼈다.
<광선보 12>
대학부장인 아사다는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이렇게 외쳤다.
“그럼 야마모토 선생님이 작사· 작곡하신 신․ 대학부가 ‘광포로 달려라’ 가사를 발표하겠습니다.
1. 넓은 광야(曠野)에 우리들은 일어서리.
만리를 바라보고 백마도 당당히
어서들 나가자 세기의 용자들
나와 나의 벗이여 광포로 달려라.
2. 아침 해에 빛나는 늠름한 눈동자
자비와 철리(哲理)의 학도(지용)의 영광을
아아 혁신의 영지(英知)는 빛나리
나와 나의 벗이여 광포로 달려라.
3. 지금 넘치는 대하의 흐름에
마음껏 대화하자 은파를 타고서
역사를 창조하는 이 배의 출범을
나와 나의 벗이여 광포로 달려라.”
우렁찬 박수가 끊임없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아사다는 신이치가 작사하면서 대학부에게 준 ‘전원이 인재다’ 등의 3지침을 발표했다.
“우리는 앞으로는 이 ‘광포로 달려라’와 선생님이 주신 지침을 가슴속 깊이 새기고 소리 높여 노래 부르며 고뇌하는 벗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고 ‘광포 선구’의 사명을 ‘있는 힘껏’ 완수하지 않겠습니까!”
이어서 합창단을 비롯해 참석자 전원은 오케스트라 연주에 맞춰 ‘광포로 달려라’를 대합창했다.
‘자비와 철리의 학도’들은 광선유포의 만리를 지향하는 서원을 웅혼(雄渾)하게 노래했다.
계속해서 부회장의 인사와 역대 대학부장을 비롯해 대학부 초창기 역사를 구축한 공로자에 대한 표창이 있은 뒤 신이치가 스피치할 차례가 되었다.
신이치는 ‘무명(無名)의 서민 단체’인 창가학회에서 지용을 겸비한 영재가 이처럼 많이 육성되고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엘리트의 최대 요건은 사회 밑바닥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을 알고 서민을 지키는 일을 최우선으로 하는 신념과 철학을 갖추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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