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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行狀) - 정인홍(鄭仁弘)
[원문] 先生姓曺氏。諱植。字楗仲。系出昌山。高麗太祖德宮公主下嫁。生子瑞。爲刑部員外郎。於先生始祖。高祖諱殷。中郎將。妣郭氏。縣監興仁之女。曾王父諱安習。成均生員。妣文氏。學諭可容之女。王父諱永。不仕。妣趙氏。監察瓚之女。考諱彥亨。通訓大夫承文院判校。娶忠順衛李菊之女。
[독음] 선생성조씨。 휘식。 자건중。 계출창산。 고려태조덕궁공주하가。 생자서。 위형부원외랑。 어선생시조。 고조휘은。 중랑장。 비곽씨。 현감흥인지녀。 증왕부휘안습。 성균생원。 비문씨。 학유가용지녀。 왕부휘영。 불사。 비조씨。 감찰찬지녀。 고휘언형。 통훈대부승문원판교。 취충순위이국지녀。
[번역] 선생의 성은 조씨(曺氏), 휘(이름)는 식(植), 자는 건중(楗仲)이며, 본관은 창산(昌山, 창녕)이다. 고려 태조 때 덕궁공주가 하가하여 아들 서(瑞)를 낳았는데 형부원외랑을 지냈으니, 이분이 선생의 시조가 되신다. 고조부의 휘는 은(殷)으로 중랑장을 지내셨고, 비(비모)는 곽씨로 현감 흥인의 딸이다. 증조부의 휘는 안습(安習)으로 성균생원이었고, 비는 문씨로 학유 가용의 딸이다. 조부의 휘는 영(永)으로 벼슬을 하지 않으셨고, 비는 조씨로 감찰 찬의 딸이다. 아버지는 휘가 언형(彥亨)으로 통훈대부 승문원판교를 지내셨고, 어머니는 충순위 이국(李菊)의 딸이다.
[원문]
以弘治辛酉六月壬寅。生先生於嘉樹縣之兎洞。未冠。以功名文章自期。有駕一世秩千古之意。請書喜讀左柳文字製作好奇高不屑爲世體。屢捷發解。名震士林。
[독음]
이홍치신유유월임인。 생선생어가수현지토동。 미관。 이공명문장자기。 유가일세질천고지의。 청서희독좌류문자제작호기고불설위세체。 누첩발해。 명진사림。
[번역]
홍치 신유년(1501년, 연산군 7년) 6월 임인일에 가수현(嘉樹縣, 삼가) 토동(兎洞, 토끼골)에서 선생을 낳으셨다. 갓을 쓰기 전(성인이 되기 전)부터 공명과 문장으로 스스로 다짐하며, 한 세상을 압도하고 천고의 세월을 꿰뚫을 뜻을 품으셨다. 청서(請書)와 《좌전》, 유종원의 글을 즐겨 읽으셨으며, 글을 짓는 데 기이하고 높은 것을 좋아하여 세속의 평범한 문체를 가벼이 여기셨다. 향시(發解)에 여러 번 합격하여 그 이름이 사림에 떨쳐졌다.
[3단락: 상가(喪家)의 슬픔과 학문적 전환]
[원문]
嘉靖丙戌。遭先大夫憂。廬墓於三年。先生家世淸貧。授室金官。婦家頗饒。奉母夫人就養。乙巳。丁憂。奉樞還葬于先大夫墓東岡。廬墓如初。身不脫衰。足不出廬。服闕。因居本業。
[독음]
가정병술。 조선대부우。 여묘어삼년。 선생가세청빈。 수실금관。 부가파요。 봉모부인취양。 을사。 정우。 봉추환장우선대부묘동강。 여묘여초。 신불탈쇠。 족불출려。 복궐。 인거본업。
[번역]
가정 병술년(1526년, 중종 21년)에 부친상을 당하여 3년 동안 묘소 곁에 여막을 짓고 살으셨다. 선생의 집안은 대대로 청빈하였는데, 금관(金官, 김해)에서 장가를 드니 처가가 자못 넉넉하여 모부인을 모시고 가 봉양하셨다. 을사년(1545년, 인종 1년)에 어머니 상을 당하시자, 영구를 모셔와 부친 묘소의 동쪽 언덕에 장사 지내고 처음처럼 여묘살이를 하셨다. 몸에서 상복을 벗지 않고 발은 여막 밖을 나가지 않으셨으며, 3년 삼우상을 마친 뒤에는 본업(학문 수양)에 힘쓰셨다.
[4단락: 뇌룡사와 산천재 수양]
[원문]
近舊宅構一室曰雞伏堂。俯前流結茅屋曰雷龍舍。使工畫者摹雷龍狀。棲諸壁。晚卜頭流山下。其室復以雷龍名。別構精舍。扁曰山天齋。老焉。
[독음]
근구택구일실왈계복당。 부전류결모옥왈뇌룡사。 사공화자모뇌룡상。 서제벽。 만복두류산하。 기실부이뇌룡명。 별구정사。 편왈산천재。 로언。
[번역]
옛 집 근처에 방 한 칸을 지어 '계복당(雞伏堂)'이라 하고, 앞 시냇물을 굽어보는 곳에 띳집을 지어 '뇌룡사(雷龍舍)'라 하셨다. 화공을 시켜 용이 우레처럼 잠겨 있는 모양을 그리게 하여 벽에 내걸으셨다. 만년에는 두류산(지리산) 아래에 터를 잡으셨는데, 그 방을 다시 뇌룡이라 이름 짓고 별도로 정사를 지어 현판을 '산천재(山天齋)'라 하고 그곳에서 늙어가셨다.
[5단락: 세상의 어지러움과 은거]
[원문]
先生豪邁不群。明見高識。出於天性。中廟丁酉。先生年三十七。于時國家無朝夕之虞。獨見有曼達之幾。遂請命先夫人。棄學子業。筮遁山林。愛宜春之明鏡臺。往來棲息。累歲月。作山海亭于金官之炭洞。講學蓄德。不願乎外者。亦有年矣。
[독음]
선생호매불군。 명견고식。 출어천성。 중묘정유。 선생년삼십칠。 우시국가무조석지우。 독견유만달지기。遂청명선부인。 기학자업。 서돈산림。 애의춘지명경대。 왕래서식。 누세월。 작산해정우금관지탄동。 강학축덕。 불원호외자。 역유년의。
[번역]
선생은 호방하고 출중하여 무리와 섞이지 않았으며, 밝은 식견과 높은 견해는 천성에서 나왔다. 중종 정유년(1537년), 선생의 연세 37세 되던 해에 당시 국가에 당장 눈앞의 근심은 없었으나, 홀로 장차 방탕하고 오만해질 조짐을 알아채셨다. 이에 어머니께 청하여 과거 시험을 위한 학문을 버리고 산림에 숨어 사셨다. 의춘(宜春, 의령)의 명경대를 좋아하여 왕래하며 머무르신 지 여러 해였고, 김해 탄동에 '산해정(山海亭)'을 짓고 학문을 강론하고 덕을 쌓으며 바깥 세상을 탐내지 않으신 지 또한 여러 해가 되었다.
[6단락: 벼슬길 사양과 직언]
[원문]
中廟始授獻陵參奉。不就。明廟除爲主簿典牲暑宗簿也。又除爲縣監丹城也。皆不就。上疏不報。其後。又授司紙。不就。丙寅。以遺逸召。辭。復以尙瑞院判官徵。乃拜命。引對思政殿。上問治亂之道。爲學之方。對曰。古今治亂。載在方策。不須臣言。臣竊以爲君臣之際。情義相孚。洞然無間。此乃爲治之道。古之帝王。遇臣僚若朋友。與之講明治道。
今雖不能如此。必須情
[독음]
중묘시수헌릉참봉。 불취。 명묘제위주부전생서종부야。 우제위현감단성야。 개불취。 상수불보。 기후。 우수사지。 불취。 병인。 이유일소。 사。 부이상서원판관징。 내배명。 인대사정전。 상문치난지도。 위학지방。 대왈。 고금치난。 재재방책。 불수신언。 신절이위군신지제。 정의상부。 동연무간。 차내위치지도。 고지제왕。 우신료약붕우。 여지강명치도。 금수불능여차。 필수정
[번역]
중종 때 비로소 헌릉 참봉을 제수했으나 나아가지 않으셨다. 명종 때 주부(전생서, 종부시)를 제수하고, 또 단성 현감을 제수했으나 모두 나아가지 않으셨으며 상소(단성현감 사직소)를 올렸으나 왕이 답하지 않았다. 그 뒤에 또 사지(司紙)를 제수했으나 나아가지 않으셨다. 병인년(1566년, 명종 21년)에 은일(隱逸, 숨은 선비)로 부르시니 사양하다가, 다시 상서원 판관으로 부르시자 비로소 명령을 받아 사정전에서 임금을 뵙게 되었다. 임금이 치란(통치와 어지러움)의 도리 및 학문하는 방법에 대해 물으시니, 대답하여 말씀하시길 "동서고금의 치란은 서책에 기록되어 있으니 신의 말을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신은 가만히 생각건대 임금과 신하 사이는 정과 의리가 서로 신뢰하여 투명하게 가림이 없는 것, 이것이 곧 정치를 잘하는 길이라 봅니다. 옛 제왕들은 신하들을 친구처럼 대해 함께 치국을 강론하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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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행장 (行狀) - 후반부
[7단락: 임금의 학문과 인재 등용에 대한 직언]
[원문]
今雖不能如此。必須情
義相孚。然後可也。又言生民離散。如水之流。救之當如失火之家。人主之學。出治之本。必須自得。徒聽人言。無益也。上又問三顧草廬事。對曰。必得英雄然後。可以有爲。故至於三顧亮。亮一顧不起。或者時勢然也。然與昭烈同事數十年。竟未能興復漢室。此則未可知也。
[독음]
금수불능여차。필수정 의상부。연후가야。우언생민리산。여수지류。구지당여실화지가。인주지학。출치지본。필수자득。도청인언。무익야。상우문삼고초려사。대왈。필득영웅연후。가이유위。고지어삼고량。량일고불기。혹자시세연야。연여소열동사수십년。경미능흥복한실。차칙미가지야。
[번역]
지금 비록 이와 같이 하지는 못하더라도 반드시 정(情) 과 의리가 서로 신뢰한 뒤에야 정치가 가능합니다." 또 말씀하시기를, "백성들이 흩어짐이 마치 물이 흐르는 것과 같으니, 이를 구하기를 마땅히 불난 집을 구하듯 해야 합니다. 임금의 학문은 정치를 해나가는 근본이니 반드시 스스로 터득해야 하며, 한갓 남의 말만 듣는 것은 보탬이 없습니다." 하셨다. 임금이 또 삼고초려(三顧草廬)의 일에 대해 물으시니, 대답하시기를 "반드시 영웅을 얻은 뒤에야 무언가 해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제갈량(諸葛亮)을 세 번이나 찾아가기에 이르렀으나, 제갈량이 한 번의 부름에 일어나지 않은 것은 혹 시세(時勢)가 그러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소열제(昭烈帝, 유비)와 수십 년을 함께 일하고도 끝내 한나라 왕실을 부흥시키지 못했으니, 이것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하셨다.
[8단락: 벼슬을 사양하고 세태를 비판함]
[원문]
遂去歸故山。隆慶丁卯。今上嗣服。以敎書召之。辭曰。臣老甚。病深罪深。不敢趨命。宰相之職。莫大於用人. 今乃不論善惡。不分邪正。蓋時有近臣。於筵中白上曰。曺植所學。異於儒者。故以此辭。有旨繼下。必欲微起。復辭曰。請獻救急二字。以代獻身。因歷擧時弊十數條曰。百疾方急。天意人事。有未能測。舍此不救。徒事虛名。論篤是與。
[독음]
수거귀고산。융경정묘。금상사복。이교서소지。사왈。신로심。병심죄심。불감추명。재상지직。막대어용인. 금내불론선악。불분사정。개시유근신。어연중백상왈。조식소학。이어유자。고이차사。유지계하。필욕미기。부사왈。청헌구급이자。이대헌신。인력거시폐십수조왈。백질방급。천의인사。유미능측。사차불구。도사허명。론독시여。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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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떠나 고향 산천으로 돌아오셨다. 융경 정묘년(1567년, 선조 즉위년), 지금의 임금(선조)이 왕위를 계승하여 교서(敎書)로써 부르시니, 사양하여 말씀하시기를 "신은 몹시 늙고 병이 깊으며 죄가 깊어, 감히 명령에 나아가지 못하겠습니다. 재상의 직분은 사람을 쓰는 것보다 큰 것이 없는데, 지금 선악을 논하지 않고 사정(邪正)을 분별하지 않으니..." 하셨다. 대개 그때 어떤 근신(近臣)이 경연 중에서 임금에게 아뢰기를 "조식의 학문은 유학자와는 다릅니다." 하였으므로 이 때문에 사양하신 것이다. 어지(御旨)가 계속 내려와 반드시 붙들어 일으키려 하시니, 다시 사양하며 말씀하시기를 "청컨대 '구급(救急)' 두 글자를 바쳐 몸을 바치는 것을 대신하겠습니다." 하시고는, 인하여 당시의 폐단 열 가지 남짓을 차례로 열거하며 말씀하시기를 "온갖 질병이 바야흐로 시급하니 천의(天意)와 인사(人事)를 측량할 수 없는 바가 있습니다. 이것을 버려두고 구하지 않은 채 한갓 허명(虛名)만 일삼으면서, 말만 그럴듯하게 하는 자를 찬동합니다." 하셨다.
[9단락: 헛된 명예를 경계하고 실천을 강조함]
[원문]
幷求山野棄物。以助求賢美名。名不足以救實。如畠餅之不足以救飢。請以緩急虛實。更加審處焉。時主上方問儒學。諸賢滿朝。論說性理。而朝綱不振。邦本日壞。先生蓋深念之。故及之。戊辰。又下旨趣召。辭上封事云云。批下云。觀此格言。益知才德之高矣。轉授宗親府典籤。以病辭。不就。朝廷虛位以待者逾一年。
[독음]
병구산야기물。이조구현미명。명불족이구실。여묘병지불족이구기。청이완급허실。경가심처언。시주상방문유학。제현만조。론설성리。이조강불진。방본일괴。선생개심념지。고급지。무진。우하지취소。사상봉사운운。비하운。관차격언。익지재덕지고의。전수종친부전첨。이병사。불취。조정허위이대자유일년。
[번역]
(이어서 세태를 비판하기를) "아울러 산야에 버려진 물건(인재)을 구하여 현능한 이를 구한다는 아름다운 명성만 도우려 하니, 명성은 실질을 구제하기에 부족함이 마치 그림의 떡이 굶주림을 구제하기에 부족함과 같습니다. 청컨대 완급(緩急)과 허실(虛實)으로써 다시금 깊이 살펴 처신하십시오." 하셨다. 이때 임금께서는 바야흐로 유학을 물으셨고 여러 현인들이 조정에 가득하여 성리(性理)를 논설하였으나, 조정의 기강은 떨치지 못하고 나라의 근본은 날로 무너져가고 있었으므로, 선생께서 대개 이를 깊이 염려하셨기에 이 말씀에 미치신 것이다. 무진년(1568년)에 또 성旨를 내려 조속히 부르시니, 상소(封事)를 올려 사양하시고... (생략) ... 비답(批答)이 내려와 이르기를 "이 격언을 보니 재능과 덕의 높음을 더욱 알겠도다." 하셨다. 종친부 전첨(典籤)으로 옮겨 제수했으나 병으로 사양하고 나아가지 않으셨다. 조정에서 자리를 비워두고 기다린 지가 1년이 넘었다.
[10단락: 백성을 걱정하며 임종을 맞음]
[원문]
辛未。大凶歉。上賜之粟。因陳謝。復以疏意申啓。而更剴切焉。是年十二月。疾作。鍼藥久不效。上遣中使問疾。未至而終。壬申二月八日也。享年七十有二。士子相弔。爲斯文慟。不獨門下輩也。
[독음]
신미。대흉겸。상사지속。인진사。부이소의신계。이갱개절언。시년십이월。질작。침약구불효。상견중사문질。미지이종。임신이월팔일야。향년칠십유이。사자상조。위사문통。불독문하배야。
[번역]
신미년(1571년), 크게 흉년이 드니 임금께서 곡식(粟)을 내리셨고, 인하여 감사 인사를 드리며 다시 상소의 뜻을 거듭 아뢰셨는데 더욱 간절하셨다. 이 해 12월에 병이 도지어 침과 약이 오래도록 효험이 없었다. 임금께서 중사(中使)를 보내 병 문안을 하게 하셨으나, 도착하기 전에 돌아가셨으니 임신년(1572년) 2월 8일이었다. 향년 72세였다. 선비들이 서로 조문하며 유학(斯文)을 위해 통곡했으니, 홀로 문하(門下)의 제자들뿐만이 아니었다.
[11단락: 후세의 평가와 삶의 자세]
[원문]
先生天資旣異。克治力久。義爲之質。而信以之成。力量足以岳立萬仞。神采可與日月爭光。一切世好。視若草芥。而不以此望於人。以仁。以義。吾何慊乎。而不自輕以求用。方嚴淸峻。而和易懇惻之意。未嘗不相濟。高蹈遠引。而愛物憂世之念。未嘗一日忘。
[독음]
선생천자기이。극치력구。의위지질。이신이지성。력량족이악립만인。신채가여일월쟁광。일체세호。시약초개。이불이차망어인。이인。이의。오하겸호。이불자경이구용。방엄청준。이화이간측지의。미상불상제。고도원인。이애물우세지념。미상일일망。
[번역]
선생은 타고난 자질이 이미 남달랐고 사욕을 이겨내는 공부(克治)가 오래되어, 의(義)로써 바탕을 삼고 신(信)으로써 이루어내셨다. 그 역량은 족히 산이 만 길이나 높게 우뚝 선 것 같았고, 정신과 풍채는 해와 달과 더불어 빛을 다툴 만했다. 일체의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은 짚신짝처럼 여겼으나, 이것을 가지고 남에게 바라지는 않으셨다. "인(仁)으로써, 의(義)로써 하니 내가 무엇을 부족해하겠는가?" 하시고는, 스스로를 가벼이 하여 세상에 쓰이기를 구하지 않으셨다. 방정하고 엄숙하며 맑고 험준하셨으나, 온화하고 평이하며 간절하고 지극한 뜻이 일찍이 서로 조화를 이루지 않은 적이 없었다. 세상에서 높이 고고하게 처신하며 멀리 은둔하셨으나, 만물을 사랑하고 세상을 걱정하는 염려(愛物憂世)는 일찍이 하루도 잊으신 적이 없었다.
[12단락: 효성과 청빈한 삶]
[원문]
其事親也。晨必省。昏必定。終不或輟。親老家貧。薪水猶歡。不欲爲祿
[독음]
기사친야。신필성。혼필정。종불혹철。친로가빈。신수유환。불욕위록
[번역]
부모를 섬기심에는 아침에는 반드시 살피고 저녁에는 반드시 잠자리를 정해 드리셨으며, 끝내 혹이라도 그치지 않으셨다. 부모님이 늙으시고 집이 가난했으나, 땔나무와 물을 긷는 등 힘드는 봉양 중에도 오히려 기뻐하셨고, 봉록(祿)을 위해 벼슬하려 하지 않으셨다. (후략)
제시해주신 이미지의 텍스트는 &남명선생행장(南冥先生行狀)&의 결말 부분입니다.
앞 페이지에 이어, 남명 선생의 일상생활에서의 실천 철학, 사람을 대하는 태도, 그리고 당시 학문 풍토에 대한 매서운 비판과 선생의 진정한 학문적 가치를 논하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의미 단락별로 [한자 원문], [한글 독음], [한글 번역]을 정리해 드립니다.
8. 행장 (行狀) - 결말 (끝)
[13단락: 부모 봉양과 제사]
[원문]
仕。執親之喪。遵禮不愆。其友睦也。家藏盡以業兄弟。一毫不自與。與弟桓居共一垣。出入同門。年老無嫡嗣。以承重付桓。
[독음]
사。집친지상。준례불건。기우목야。가장진이업형제。일호불자여。여제환거공일원。출입동문。년로무적사。이승중부환。
[번역]
(앞 문장에 이어) 벼슬하려 하지 않으셨다. 부모상을 당해서는 예를 준수하여 허물이 없으셨다. 형제간에 우애가 두터우셨으니, 집에 소장한 것(재산)을 모두 형제들에게 주어 생업으로 삼게 하고 털끝만큼도 스스로 가지지 않으셨다. 동생 조환(曺桓)과 한 담장에 살며 한 문으로 출입하셨다. 나이가 들어 적장자가 없자, 승중(承重, 조상의 제사를 잇는 큰 책임)을 조환에게 맡기셨다.
[14단락: 사람을 대하는 예우와 경계]
[원문]
其接物也。雖鄙夫野人。必和顔溫語。使得盡其情。爲善必面稱。有過輒導於相識之人。不諱其病痛。因投鍼劑。使之自治。雖疎遠。不沒其長。雖親愛。不掩其短。至於觀人之際。視察之鑑。斤雨之蘊。有未易窺測者。
[독음]
기접물야。수비부야인。필화안온어。사득진기정。위선필면칭。유과첩도어상식지인。불위기병통。인투침제。사지지치。수소원。불몰기장。수친애。불엄기단。지어관인지제。시찰지감。근우지온。유미이규측자。
[번역]
사람을 접대함에는 비록 비루한 지아비나 촌사람이라도 반드시 화평한 얼굴과 따뜻한 말씨로 대하시어, 그 진정(盡情)을 다하게 하셨다. 선을 행하면 반드시 면전에서 칭찬하셨고, 허물이 있으면 즉시 서로 아는 사람을 통해 인도해 주셨으며, 그 병통(결점)을 숨기지 않고 침과 약(비판과 조언)을 던져 스스로 다스리게 하셨다. 비록 소원한 사이라도 그 장점을 묵살하지 않으셨고, 비록 친애하는 사이라도 그 단점을 덮어주지 않으셨다. 사람을 관찰함에 있어서는 시찰(視察, 두루 살핌)의 감식안과 근우(斤雨, 맑고 깨끗함)의 깊은 지혜가 있으셨으니, 쉽게 엿보고 헤아리기 어려운 점이 있었다.
[15단락: 백성을 걱정하고 임금의 도를 밝힘]
[원문]
其不忘世也。念生民困悴。若痼瘻在身。懷抱委囊。言之或至鳴噎。繼以涕下。與當官者言。有一分可以利民者。極力告語。覬其或施。屢徵不起。不見是而無憫。人或認爲高抗不仕之人。而不知初非潔身長往之士也。當趨朝命。奏對誠切。再上封章。披瀝丹悃。則君臣之義。初不欲廢也。
[독음]
기불망세야。념생민곤췌。약고루재신。회포위낭。언지혹지명열。계이체하。여당관자언。유일분가이리민자。극력고어。기기혹시。루징불기。불견시아무민。인혹인위고항불사지인。이부지초비결신장왕지사야。당추조명。주대성절。재상봉장。피력단곤。칙군신의。초불욕폐야。
[번역]
세상을 잊지 않으셨으니, 백성들의 곤궁하고 초췌함을 생각하시기를 마치 고질병(痼瘻)이 몸에 있는 것처럼 여기셨다. 마음속에 품은 생각(委囊, 깊은 지혜)을 말씀하시다 때로는 오열(鳴噎)하시고 잇달아 눈물을 흘리셨다. 벼슬을 맡은 자와 이야기할 때 일부분이라도 백성을 이롭게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극력을 다해 일러주고 혹시라도 시행되기를 바라셨다. 여러 번 부르셨으나 일어나지 않으셨고,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도 근심하지 않으셨으니, 사람들이 혹 선생을 고고하게 저항하며 벼슬하지 않는 사람으로 인식하기도 했으나, 당초에 몸만 깨끗이 하고 세상을 등지고 떠나버리는 선비가 아니었음을 알지 못했다. 조정의 명령에 부응해서는 아뢰는 답변(奏對)이 성실하고 간절하셨으며, 두 번이나 봉장(封章, 상소)을 올려 붉은 정성(丹悃)을 피력하셨으니, 임금과 신하의 의리를 당초에 폐기하고자 하지 않으셨던 것이다.
[16단락: 참된 학문의 부재와 시속(時俗)의 병폐 비판]
[원문]
蠱之上九。傳曰。士之高尚。亦非一道。有懷抱道德。不偶於時。而高潔自守者。有知止足之道。退以自保者。有量能度分。安於不求知者。有淸介自守。不屑天下之事。而獨潔其身者矣。或者先生於此數者。居一焉。病今之士習偷弊。利欲勝而義理喪。外假道學。內實懷利。以趨時取名者。擸世同流。壞心術誤世道。豈特洪水異端而已。觀其行己做事。往往專不似學者所爲。俗學輩從而譏訶焉。此固取名蔑實者之罪也。其間倘有眞實爲學者。亦被假僞之名。初可痛也。然特患學不眞實而已。庸何病於此乎。
[독음]
고지상구。전왈。사지고상。역비일도。유회포도덕。불우어시。이고결자수자。유지지족지도。퇴이자보자。유량능도분。안어불구지자。유청개자수。불설천하지사。이독결기신자의。혹자선생어차수자。거일언。병금지사습투폐。리욕승이의리상。외가도학。내실회리。이추시취명자。렵세동류。괴심술오세도。기특홍수이단이이。관기행기주사。왕왕전불사학자소위。속학배종이기하언。차고취명멸실자죄야。기간당유진실위학자。역피가위지명。초가통야。연특환학불진실이이。용하병어차후。
[번역]
《주역》 고괘(蠱卦) 상구(上九)의 전(傳)에 이르기를, "선비의 고상함 또한 한 가지 길만이 아니다. 도덕을 품고서 시대와 부합하지 않아 고결하게 자신을 지키는 자가 있고, 그칠 줄 알고 만족할 줄 아는 도리를 알아 물러나 자신을 보호하는 자가 있고, 자신의 능력을 헤아리고 분수를 헤아려 남이 알아주기를 구하지 않으며 안주하는 자가 있고, 청렴하고 강개하게 자신을 지키며 천하의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홀로 그 몸을 깨끗이 하는 자가 있다." 하였으니, 혹 선생께서는 이 몇 가지 중에서 하나에 해당하실 것이다. 지금 선비들의 습속이 태만하고 폐단이 있어, 이익을 탐하는 욕심이 앞서고 의리가 상실되었음을 걱정하시었다. 겉으로는 도학(道學)을 빌려 쓰나 내심은 실로 이익을 품고서, 시세를 좇아 명성을 취하는 자들이 한 세상을 압도하며 세상과 휩쓸려 마음 쓰는 법(心術)을 망치고 세상을 그르치니, 어찌 유독 홍수와 이단(異端)뿐이겠는가. 그들이 자신을 다스리고 일을 처리하는 것을 보면 왕왕 전적으로 학자가 할 바와 같지 않건만, 속학(俗學, 세속의 학문) 무리들이 따라서 꾸짖고 나무라니, 이는 본래 명성만 취하고 실질을 묵살하는 자들의 죄이다. 그 사이에 혹시라도 진실로 학문하는 자가 있다면 역시 가짜(假僞)라는 이름을 입게 되니, 처음에는 통탄할 일이었다. 그러나 다만 학문이 진실하지 못함을 걱정할 따름이니, 어찌 이것에 병폐가 있겠는가?
[17단락: 본성에 대한 말 잔치를 경계함]
[원문]
每聞初學高談性命之理。未嘗不訶止之曰。爲學。初不出事親敬兄之間。始學之士。或不能於其父母兄弟。而遽欲探天道之妙。此何等學也。何等習也。李芒嘗出使嶺外。芭曾以喜讀中庸。爲時所推。以書抵先生。論義理疑處。答曰。相公以植棄舉業入山林。意或積學有見。而不不知被欺已多矣。此身多病。仍投閑靜。只爲保持餘生。義理之學。非所講也。遜辭靳遞。實有深意。芭卒爲乙已兇魁。
[독음]
매문초학고담성명지리。미상불가지지왈。위학。초불출사친경형지간。시학지사。혹불능어기부모형제。이거욕탐천도지묘。차하등학야。하등습야。이망상출사령외。파증이희독중용。위시소추。이서저선생。론의리의처。답왈。상공이식기거업입산림。의혹적학유견。이부지피기이다의。차신다병。잉투한정。지위유지여생。의리지학。비소강야。손사근체。실유심의。파졸위을이흉괴。
[번역]
매번 초학자가 본성(性)과 천명(命)의 이치를 고상하게 논하는 것을 들을 때면, 일찍이 꾸짖어 제지하며 말씀하시기를, "학문하는 것은 애초에 어버이를 섬기고 형을 공경하는 일상생활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제 막 배우기 시작한 선비가 혹 제 부모와 형제에게도 제대로 못하면서 갑자기 천도(天道)의 오묘함을 탐구하고자 하니, 이것이 도대체 무슨 학문이며 무슨 습속인가?" 하셨다. 이기(李芑)가 일찍이 령외(嶺外)에 사신으로 나갔을 때, 파(芭, 영남의 인물인 듯)가 일찍이 《중용》 읽기를 좋아하여 당시 사람들에게 추앙받았으므로 선생에게 편지를 보내 의리의 의심스러운 점을 논했는데,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 "상공께서 제가 과거 공부를 버리고 산림에 들어갔으니 마음속에 혹 학문을 쌓아 견해를 가지고 있을까 생각하시나, 속임수를 당한 지가 이미 많음을 알지 못하십니다. 이 몸은 병이 많아 한적하고 고요한 곳에 던져 오직 남은 생을 보전하고자 할 뿐이니, 의리의 학문은 강론할 바가 아닙니다." 하셨다. 겸손한 말씀으로 거절하고 사양하신 것은 실로 깊은 뜻이 있었으니, 파는 결국 을사사화(1乙已)의 흉악한 두목이 되었다.
[18단락: 선인의 가르침을 계승하고 실천함]
[원문]
深以此出處爲君子大節。泛論古今人物。必先觀其出處。然後論其行事得失。嘗曰。近世以君子自處者。亦不爲不多。出處合義。蔑乎無聞。頃者。唯景浩庶幾古人。然論人欲盡。畢竟有未盡分矣。丙寅升命時。李一齋亦
[독음]
심이차출처위군자대절。범론고금인물。필선관기출처。연후론기행사득실。상왈。근세이군자자처자。역불위불다。출처합의。멸호무문。경자。유경호서기고인。연론인욕진。필경유미진분의。병인승명시。리일재역
[번역]
깊이 이 출처(出處, 세상에 나아가고 물러남)를 군자의 큰 절개로 삼으셨으니, 고금의 인물을 두루 논할 때 반드시 먼저 그 출처를 보고, 그런 뒤에 그 행사의 득실을 논하셨다. 일찍이 말씀하시기를, "근세에 군자로 자처하는 자 또한 많지 않은 것은 아니나, 출처가 의리에 합당하다는 것은 들은 바가 거의 없다. 근래에는 오직 경호(景浩, 퇴계 이황의 자)만이 고인(古人)에 가까웠다. 그러나 사람을 논할 때 완벽을 기하고자 하나 결국에는 다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 하셨다. 병인년(1566년)에 임금의 명령을 이어받을 때 일재(一齋) 이항(李恒) 역시... (후략)
以司畜. 召至京師. 一日相見. 士子坌集. 一齋以師道自任. 與後輩講論義理. 先生因杯勺. 遽爲之戱曰. 君與我儘是盜. 盜名字竊官爵. 乃敢向人論學爲. 胡不譬君牛角. 不甚敬重. 士子多怪議. 先生謂. 一齋浪同世習. 儼然以賢者自當. 吾所不服也. 當與李府尹楨友善. 久之. 所趨頓異. 頗與相失. 後因事絶之. 先生不苟從. 不苟默. 識者雖好之. 不知者. 亦顧惡之. 隱見必欲相時. 自守不欲徇人. 牢關巖穴. 死而不悔. 謂之翔千仞鳳凰. 可也.
[독음]
이사축. 소지경사. 일일상견. 사자분집. 일재이지도자임. 여후배강론의리. 선생인배작. 거위지희왈. 군여아진시도. 도명자절관작. 내가향인론학위. 호불비군우각. 불심경중. 사자다괴의. 선생위. 일재랑동세습. 엄연이현자자당. 오소불복야. 당여리부윤정우선. 구지. 소추돈이. 파여상실. 후인사절지. 선생불구종. 불구묵. 식자수호지. 부지자. 역고오지. 은견필욕상시. 자수불욕순인. 뢰관암혈. 사이불회. 위지상천인봉황. 가야.
[번역]
(앞 문장에 이어) 사축(司畜)으로 계실 때, 소집되어 한양에 이르셨다. 하루는 이일재(李一齋, 이항)와 서로 만나게 되었는데, 유생들이 떼로 모여들었다. 일재는 스승의 도리를 자처하며 후배들과 의리(義理)를 강론하고 있었다. 선생께서 술잔을 따르시다가 문득 이를 가지고 농담을 하시기를, "그대와 나는 참으로 도둑이라네. 명예를 훔치고 벼슬을 훔쳤거늘, 어찌 감히 사람들을 향해 학문을 논하는가? 어찌 자네를 소뿔(牛角, 쓸모없는 것)에 비유하지 않겠는가?" 하시니, 그리 정중하지 않은 태도였다. 선비들이 많이 해괴하게 여기고 의논했다.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일재는 세속의 습속을 그저 휩쓸어 따르면서, 점잖게 스스로 현자인 체하니 이는 내가 복종하지 않는 바다." 하셨다. 당시에 부윤 이정(李楨)과 우애가 깊었으나, 오랜 시간이 지나 지향하는 바가 문득 달라져 자못 소원해졌으며, 나중에는 일 때문에 절교하셨다. 선생은 구차하게 따르지 않았고 구차하게 침묵하지도 않으셨으니, 아는 자는 비록 좋아했으나 알지 못하는 자는 도리어 미워했다. 은거하거나 세상에 나설 때는 반드시 때(時)를 살펴야 했고, 스스로를 지키되 남을 따르려 하지 않으셨다. 바위 굴에 굳게 문을 닫아걸고 죽어도 후회하지 않으셨으니, 이를 '천 길 높이 날아오르는 봉황'이라 일컬어도 괜찮을 것이다.
[20단락: 옛 성현들의 출처(出處)에 대한 독창적 견해]
[원문]
惜世之君子. 出爲時用. 要做好事. 事敗身傷. 貽禍士林. 正坐見幾不明. 相時不審. 又不知與元豐大臣同之義也. 當國大事者. 不知幾. 不相時. 不協心. 强銑自任. 胡亂作爲. 或相前却. 因較勝負. 初非赤心謀國. 只是徇私意而已. 有人問使先生得行於世. 做得大事業否. 曰. 吾未嘗有德有才而不長. 豈得當了事. 但尊舊相奬後輩. 推拔多少小賢材. 使之各效其能. 坐觀其成功. 吾或庶幾焉.
[독음]
석세지군자. 출위시용. 요주호사. 사패신상. 이화사림. 정좌견기불명. 상시불심. 우부지여원풍대신동지의야. 당국대사자. 부지기. 불상시. 불협심. 강선자임. 호란작위. 혹상전각. 인교승부. 초비적심모국. 지시순사의이이. 유인문사선생득행어세. 주득대사업부. 왈. 오미상유덕유재이불장. 기득당료사. 단존구상장후배. 추발다소소현재. 사지가효기능. 좌관기성공. 오혹서기언.
[번역]
안타깝게 생각하시기를, "세상의 군자들이 세상에 나아가 쓰임을 얻으려 할 때, 좋은 일을 하고자 하나 일이 실패하고 몸이 상하여 사림(士林)에 화를 끼치게 되는 것은, 바로 일의 기미(幾)를 보는 것이 밝지 못하고 때(時)를 살피는 것이 정밀하지 못한 탓이다." 하셨다. 또한 (남들이 알지 못했던) 북송의 원풍(元豐) 대관들과 뜻을 같이했던 의리도 알지 못했다. 나라의 대사를 맡은 자들이 기미를 알지 못하고, 때를 살피지 않으며, 마음을 합치지 않고서, 그저 억지로 기예를 뽐내며 스스로 임하여 무질서하게 행동하거나, 혹은 서로 나아가고 물러나면서 승부를 다투게 되니, 애초에 진심으로 나라를 도모한 것이 아니라 그저 사사로운 뜻을 따랐을 뿐이다. 어떤 사람이 묻기를 "만약 선생께서 세상에 나아가 도를 행하실 수 있었다면, 큰 사업을 해내셨겠습니까?" 하니, 대답하시기를 "내가 덕(德)과 재(才)가 있으면서 길러내지 못한 적이 없거늘, 어찌 일에 당착하지 않겠는가? 다만 옛 정승들을 존경하고 후배들을 장려하며, 적지 않은 어진 인재들을 가려내고 발탁하여, 그들로 하여금 각기 그 재능을 다하게 하고 앉아서 그 성공을 지켜본다면, 나 또한 (큰 사업에) 거의 가까웠을 것이다." 하셨다.
[21단락: 인재 등용과 과거 제도에 대한 정론]
[원문]
或言今之科擧. 決不可廢. 曰. 古有選士法. 士比肩而出者. 皆良才. 譬如養得林木. 棟樑栭桷之材. 靡有不具. 比株而伐之. 以構大廈. 養之有道而取不遺. 材用自無不足矣. 當謂. 諸葛孔明. 爲昭烈三顧而出. 欲爲於不可爲之時. 顧未免有小用之憾. 若終不爲昭烈起. 寧老死於隆中. 天下後世. 不知有武侯事業. 亦未爲不可矣. 尙論古人. 不拘前言. 更求一段新義. 往往如此.
[독음]
혹언금지과거. 결불가폐. 왈. 고유선사법. 사비견이출자. 계량재. 비여양득림목. 동량이각지재. 미유불구. 비주이벌지. 이구대하. 양지유도이취불유. 재용자무불족의. 당위. 제갈공명. 위소렬삼고이출. 욕위어불가위지시. 고미면유소용지감. 약종불위소렬기. 녕로사어륭중. 천하후세. 부지유무후사업. 역미위불가의. 상론고인. 불구전언. 경구일단신의. 왕왕여차.
[번역]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지금의 과거(科擧) 제도는 결코 폐지할 수 없습니다." 하니, 대답하시기를 "옛날에는 선비를 선발하는 법(선사법)이 있어, 선비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배출되는 자가 모두 훌륭한 인재였다. 비유하자면 숲의 나무를 잘 길러낸 것과 같아, 동량(棟樑, 대들보와 기둥)이나 이각(栭桷, 작은 기둥과 서까래) 등의 재목이 갖추어지지 않음이 없었다. 나무 그루터기에 비기어 베어내더라도 큰 집을 지을 수 있었으니, 기르는 도리가 있고 취함에 빠뜨림이 없었다면 인재를 등용함에 스스로 부족함이 없었을 것이다." 하셨다. (독창적인 성현관을 보여주는 부분으로) 말씀하시기를, "제갈공명(諸葛孔明)은 소열제(昭烈帝, 유비)의 삼고초려(三顧草廬)를 입어 세상에 나왔지만, '해낼 수 없는 때'에 무언가 해내려 했으니, 도리어 '소용(小用, 작게 쓰임)'이라는 아쉬움이 있음을 면치 못했다. 만약 끝내 소열제를 위해 일어나지 않고 차라리 융중(隆中)에서 늙어 죽었더라면, 천하의 후세 사람들이 무후(武侯, 제갈량)의 사업이 있음을 알지 못했더라도 괜찮았을 것이다." 하셨다. 옛 사람을 숭상하여 논할 때 전인의 말에 구애받지 않고, 다시 한 단계 새로운 의미를 찾아내심이 왕왕 이와 같으셨다.
[22단락: 26세에 겪은 학문적 전환과 실천 철학]
[원문]
其爲學也. 先生年二十六歲時. 偕友人肄業於山寺. 讀性理大全. 至許魯齋之言曰. 志伊尹之所志. 學顔淵之所學. 出則有爲. 處則有守. 丈夫當如此. 出無爲. 處無守. 所志所學. 將何爲. 於是. 始悟舊學不是. 心愧背汗. 惘若自失. 終夜不就席. 遲明揖友入而歸. 自是. 刻意聖賢之學. 勇猛直前. 不復爲俗學所撓. 飛揚不羈之氣一頓點化. 動靜語默. 非復舊時樣子. 猶自以謂或未消了.
[독음] 기위학야. 선생년이십륙세시. 해우인이업어산사. 독성리대전. 지허로재지언왈. 지이윤지소지. 학안연지소학. 출칙유위. 처칙유수. 장부당여차. 출무위. 처무수. 소지소학. 장하위. 어시. 시오구학불시. 심괴배한. 망약자실. 종야불취석. 지명읍우입이귀. 자시. 각의성현지학. 용맹직전. 불부위속학소요. 비양불기지기일돈점화. 동징어묵. 비복구시양자. 유자이위혹미소료.
[번역]
그 학문을 하심에는, 선생께서 연세 26세 되시던 때에 친구들과 함께 산사(山寺)에서 학문을 닦으시며 《성리대전(性理大全)》을 읽고 계셨다. 허로재(許魯齋)의 말에 이르러, "이윤(伊尹)이 뜻을 두었던 바에 뜻을 두고 안연(顔淵)이 배웠던 바를 배우니, 세상에 나아가서는 해냄이 있고 숨어 살 때에는 지조를 지킴이 있어야 한다. 장부라면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하거늘, 나아가서 해냄이 없고 숨어 살면서 지조를 지킴이 없다면, 뜻을 두고 배우는 바가 장차 무엇을 위한 것이란 말인가?" 한 것을 보고, 이에 비로소 과거에 했던 학문(구학)이 올바르지 않았음을 깨달으셨다. 마음속이 부끄러워 등에서 땀이 나고, 멍하니 스스로를 잃어버린 듯하시더니, 밤새도록 잠자리에 들지 않으셨다. 날이 새자 친구들에게 읍(揖)하고 들어와 고향으로 돌아가셨다. 이때부터 성현의 학문에 뜻을 두기로 단단히 마음먹고 용맹하게 곧장 앞으로 나아가셨으며, 다시는 세속의 학문(과거 공부)에 의해 흔들리지 않으셨다. 위로만 날아오르고 굽히지 않던 기상이 단번에 교화(點化)되어, 움직임과 고요함, 말과 침묵이 다시는 옛 시절의 모습이 아니었다. 도리어 스스로는 혹 (과거의 나쁜 습속이) 다 해소되지 않았을까 염려하셨다.
[23단락: 실천 중심의 독서와 자성(自省)]
[원문]
其讀書也. 不曾章解句析. 或十行俱下. 到切己處. 猶自以謂或未消了.
[독음]
기독서야. 불증장해구석. 혹십행구하. 도절기처. 유자이위혹미소료.
[번역]
그 책을 읽으심에는 한 번도 장(章)을 해석하고 구(句)를 분석하는 일에 그치지 않으셨고, 혹 열 줄을 함께 내려 읽으셨으며, 자신에게 절실한 부분에 도달하면 도리어 스스로 혹 (다 소화하지 못했을까) 염려하시곤 했다.
復古聖人微辭解奧旨。人不易曉者。周程張朱相繼闡明。靡有餘蘊。學者不患其難知。特患其不爲己耳。只要喚覺其睡。覺後。天地日月。將自觀得矣。未嘗著書。只有讀書時箚記要語。名之曰學記。先生氣宇淸高。兩目烱烱。望之知其非塵世間人物。言論英發。雷厲風起。使人潛消利欲之念而不自覺。其動人如此。
옛 성인의 은미한 말(微辭)을 풀이하고 깊은 뜻(奧旨)을 밝히셨으니, 사람들이 쉽게 깨닫지 못하는 것을 주돈이(周), 정호·정이(程), 장재(張), 주희(朱)가 서로 이어 밝혀내어 남은 정수(餘蘊)가 없게 되었다. 학자는 그 알기 어려움을 걱정할 것이 아니라, 다만 그것을 실천하지 않음을 걱정할 따름이다. 오직 그 잠들어 있는 것을 깨우기만 하면 된다. 깨어난 뒤에는 천지와 일월을 장차 스스로 보아 터득할 것이다." 하셨다. 일찍이 책을 저술하지는 않으셨고, 다만 독서할 때 중요한 말을 차기(箚記, 메모)해 두신 것이 있으니, 그것을 이름하여 《학기(學記)》라 하셨다. 선생은 기우(氣宇, 풍채)가 맑고 높으셨으며, 두 눈이 형형하여 바라보면 진세(塵世) 간의 인물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언론(言論)이 빼어나게 발현되어 우레가 치고 바람이 일어나는 듯하시어, 사람들로 하여금 사사로운 욕심을 남몰래 사라지게 하면서도 스스로 깨닫지 못하게 하셨으니, 사람을 감동시키심이 이와 같으셨다.
燕居。終日危坐。未嘗有惰容。對貴客不爲動。接卑幼不以懈。年踰七旬。常如一日。其自然如此。於嘉樹先業甚尠。歲或不熟。家人蔬食不繼。先生怡然不以爲意。山居之後。菑畬所收。僅賴以不死。先生照然常若甚飽。
평소 머무르실 때에도 하루 종일 단정히 앉아 계셨으며, 일찍이 게으른 용모를 보인 적이 없으셨다. 귀한 손님을 맞이해서도 동요하지 않으셨고, 비루하거나 어린 사람을 접대해서도 게을리하지 않으셨다. 연세 70이 넘으셨으나 언제나 하루같이 한결같으셨으니, 그 자연스러움이 이와 같으셨다. 가수(嘉樹)의 선업(先業, 물려받은 재산)이 심히 적었으니, 해에 흉년이라도 들면 집안사람들이 거친 음식조차 잇지 못했으나, 선생은 화평한 얼굴(怡然)로 마음에 두지 않으셨다. 산에 거처하신 뒤에는 밭에서 거둔 수확으로 겨우 굶어 죽지 않음을 의지했으나, 선생은 언제나 크게 배부른 듯 환한 모습(照然)이셨다.
罹疾之日。絶而復蘇者數。不以死生毫髮亂義。不絶婦人手。令旁室不得近。少間。輒以敬義字。整整爲門生言曰。此二字極切要。學者要在用功熟。熟則無一物在胸中。吾未到這境界以死矣。平生所存。至此益驗矣。嗚呼。
병에 걸리신 날에 기절했다가 다시 살아나신 적이 여러 번이었으나, 사생(死生)의 문제로 털끝만큼도 의리를 어지럽히지 않으셨다. 아내의 손을 거절하지 않으시면서도, 첩은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셨다. 잠시 병세가 호전되면 즉시 '경(敬)'과 '의(義)' 두 글자를 정돈하여(정정) 문생들에게 말씀하시길, "이 두 글자가 극히 절실하고 긴요하다. 학자는 그 공부를 익숙하게 하는 데 힘써야 한다. 익숙해지면 한 물건도 가슴 속에 남지 않는다. 나는 아직 이 경계에 도달하지 못하고 죽노라." 하셨다. 평생 마음속에 지니셨던 바가 이에 이르러 더욱 증명된 것이다. 아!
偏荒晚世。道學未唱。而先生傑然奮起。不由師傅。能自樹立。逈發獨往。蓋亦民鮮能久矣。此非阿所好之言也。是冬。頭流木稼。識者頗爲哲人憂。先生果得疾不瘳。卒之日。烈風暴雨。人以爲不偶然也。娶南平曺氏忠順衛琇之女。先歿。生男一女一。男曰次山。風骨不常。九歲而天。女適萬戶金行。生二女。長適權知承文院副正字金宇顒。次適幼學郭再祐。先生於內子。雖不好合。終身不絶恩義。
변방의 거칠고 어지러운 세상에 도학(道學)이 아직 제창되지 않았건만, 선생께서는 걸출하게 떨치고 일어나셨다. 스승에게 배우지 않고서도 능히 스스로 학문을 세우셨고, 멀리 발현되어 홀로 고결하게 행하셨으니, 이는 대개 백성들 중에 오래도록 해낼 수 있는 자가 드문 일이었다. 이것은 내가 아첨하여 좋아하는 사람에 대한 말이 아니다. 이 해 겨울에 두류산(지리산)에 목가(木稼, 나무서리)가 내리니, 식자들은 자못 어진 사람에 대해 걱정했는데, 선생께서 과연 병을 얻어 낫지 않으셨다. 돌아가신 날에 사나운 바람과 폭우가 쳤으니, 사람들은 우연한 일이 아니라고 여겼다. 남평 조씨(曺氏) 충순위 수(琇)의 딸에게 장가드셨으나 먼저 돌아가셨다. 1남 1녀를 낳으셨으니, 아들은 차산(次山)이라 하는데 풍채와 골격이 평범하지 않았으나 9세에 죽었다. 딸은 만호 김행(金行)에게 시집가서 두 딸을 낳았으니, 맏이는 권지 승문원 부정자 김우옹(金宇顒, 동강)에게 시집갔고, 둘째는 유학 곽재우(郭再祐, 망우당)에게 시집갔다. 선생은 아내에게 비록 부부간의 화합을 좋아하지는 않으셨지만, 종신토록 은혜와 의리를 끊지 않으셨다.
先生與李判官希顏爲知己友。內外與通。李嘗曰。曺某於其夫婦間。尤有人所難能者。而人莫之知也。未知所指。其爲朋友所信服。可見。晚得旁室。生三男一女。曰次石。娶府使金水生女。曰次磨。未娶。曰次碀與女。皆幼。四月初六日。葬于山天齋後壬坐丙向之原。不得歸附於先壠者。勢或使然也。嗚呼嗚呼。隆慶六年壬申閏二月日。門人生員鄭仁弘。謹狀。
선생은 판관 이희안(李希顏)과 지기지우(知己之友)가 되시어 내외로 소통하셨다. 이희안이 일찍이 말하기를, "조식은 그 부부간에 더욱 남들이 해내기 어려운 면이 있으나, 사람들이 이를 알지 못한다." 했으니, 지적한 바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가 친구에게 신복(信服)을 얻었음을 볼 수 있다. 만년에 첩을 얻어 3남 1녀를 낳으셨으니, 차석(次石)은 부사 김수생(金水生)의 딸에게 장가들었고, 차마(次磨)는 장가들지 않았으며, 차쟁(次碀)과 딸은 모두 어리다. 4월 6일에 산천재(山天齋) 뒤 임좌병향(壬坐丙向)의 언덕에 장사 지냈다. 선영(先壠)에 모시지 못한 것은 형세가 혹 그렇게 만든 것이다. 아! 만력 6년 임신년(1572년, 선조 5년) 윤 2월 일, 문인 생원 정인홍(鄭仁弘)은 삼가 행장을 올리노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