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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금자탑 한글을 온 인류의 문자로
* 한글의 세계화는 전세계에 우리의 슬기와 용기를 널리 떨치는 위대한 문화적 업적이 될 것이다. 한국민족이 선진국 문턱을 바라보고 어지간히 경제적 성공을 거둔, 그러나 문화적 기여는 과히 평가받지 못하는 민족으로 그치느냐, 아니면 만인이 공유할 세계문자를 지닌 문화민족으로서 인류에게 기억되느냐의 기로에 서 있다. -박양춘(한글학자·언어학자)
* 우리 주위에는 항상 글자가 있고, 우리는 그것을 항상 손쉽게 이용하고 있기 때문에 자칫하면 글의 가치나 중요성이 간과되기가 쉽다. 그러나 자세히 생각해 보면, 글이야말로 우리 문화의 생명선이라는 것을 너무나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에 글자가 없었더라면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위대한 사상도 벌써 이 세상에서 사라진 지 오랠 것이고, 법률도 과학도 문학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우리는 아직도 미개한 암흑세계에서 살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글로써 대대로 우리의 역사를 이어받고 있으며, 글로써 모든 문명을 이어받고 있다. 글자가 있음으로써 우리는 편지를 쓸 수 있고, 타자를 할 수 있고, 인쇄를 할 수 있다. 인쇄술은 한 사람의 사상이나 생각을 수백만 명의 독자에게 전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한다. 수만, 수십만의 낱말이 적힌 책은 손쉽게 세상 아무 곳에나 운반되어 새로운 독자를 맞을 수 있다. 정부간의 통첩이나 사업상의 여러 거래는 타자된 글로서 이루어진다. 멀리 떨어진 부모 자신이 서로의 안부를 전할 때, 모든 사랑하는 이들이 서로의 정을 나눌 때, 젊은이들이 사랑을 고백할 때, 그것은 이들이 서로의 정을 나눌 때, 젊은이들이 사랑을 고백할 때, 그것은 흔히 편지로 이루어진다. 문명의 급속한 발전은 디스겥이나 Fax 같은 고속도의 문자 전달 방식을 제공하기에 이르렀으니, 이 역시 문자가 기본이 되어 있다.
* 요즘은 어른이나 어린이를 막론하고 책을 읽는 시간보다 TV에 매달려 있는 시간이 더 길어지게 되었다. 그렇지만, 아무리 많은 시간을 TV에 소비하여도 제대로 된 책을 한 권 읽는 것만 못하고, 아무리 배우들이 명연기를 보여도 글이 묘사할 수 있는 감정이나 사상의 표현은 따르지 못한다.
* 먼 옛날 어디선가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 전세계로 퍼져 나갔다. 인류의 역사에 비해서 문자의 역사는 그리 오래지 못하다. 글자가 어디서 시작되었는지를 연구하기 시작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글자가 어디서 시작되었는지를 연구하기 시작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아직도 어느 나라에서 누가 언제 문자를 발명했는지 아무 기록도 찾지 못했다. 다만 어떤 개개의 문자가 누구에 의해서 만들어졌는지 막연히 전해 오고 있을 따름이다. 인류문화사상 가장 위대한 공적인 문자 발명은 특정한 개인을 (아인슈타인이나 에디슨 같이) 지명할 수가 없기 때문에, 자칫하면 무시당하기 쉽다. 그러나 우리 한글은 세종대왕이라는 발명가가 엄연히 존재한다.
* 처음의 상형문자는 자음 앨화벹으로, 그리고 오늘날의 자모음 앨화벹이 되었다. 그것은 정복자, 상인 또는 선교사 등을 통해서 전파되는 동안 여러 민족의 머리를 빌려서 이루어졌다. 문자가 타지방 또는 타민족에게 전수될 때, 새로운 사용자들의 새로운 소리를 나타내기 위해서 완만한 그러나 꾸준한 개량을 거듭해 온 것이 앨화벹이다. 거기에 비해서 한글은 5세기 반 전에 한 분의 천재 임금님이 당시 조선 왕조의 최고 두뇌 집단을 이끌고, 과거에 구애됨이 없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듯 만들어 낸 글이다. 한글이 너무나 독창적이고 과학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한글의 과학성, 정교함이 너무나 뛰어나서 이러한 문자 자체가 어떤 개인의 힘으로 한 나라에서 한 세대 사이에 만들어졌으리라고는 누구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많은 국내외 학자들은 한글의 기원에 관해서 구구한 논쟁과 억측을 거듭하였다. 중국 서체의 하나인 전자(篆字), 인도의 산스크리트 문자, 몽고 문자, 여진 문자, 시리아 문자, 티벹 문자 등에서 한글의 기원을 찾으려는 그럴사한 학설이 만발하였다. 인간이 수천 년에 걸쳐서 이룩한 일을 불과 한 세대에 이루어 놓았으니, 사람들이 그 기원에 대해서 구구한 억측을 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1940년에 500년 동안이나 숨어있던 훈민정음 해례본(解例本) 원본이 발견됨으로써 모든 구구한 억측은 일소되고 말았다. 한글의 자체나 조직이 절대로 독창적이라는 것은 창제자들이 ‘천지 자연의 소리가 있으면 천지 자연의 글이 있다’고 말한 자신에 찬 선언에서 벌써 움직일 수 없는 사실로 증명되고 있다.
* 한글이 현재 사용되고 있는 기본 글자는 모음 10개와 자음 14개로 도합 24개로써, 이는 세계에서 가장 간단한 문자 체계이다. 된소리 자음 5개(ㄲ, ㄸ, ㅃ, ㅆ, ㅉ)를 자음에, 복합모음 11개(ㅐ, ㅒ, ㅔ, ㅖ, ㅘ, ㅙ, ㅚ, ㅝ, ㅞ, ㅟ, ㅢ)를 모음에 합치면 자음 19개, 모음 21새가 된다. 또한 받침으로 쓸 수 있는 부호는 기본 자음 14개와 복합자음 7개(ㄴㅈ, ㄴㅎ, ㄹㄱ, ㄹㅁ, ㄹㅂ, ㄹㅎ, ㄹㅅ)를 합친 21개가 된다. 한글의 표기 가능한 소리는 이론적으로 8,778개(19×21×21+399=8,778)가 된다. 일본 글자가 표기하는 소리는 201개이고, 중국 글자가 나타낼 수 있는 소리는 427개이다. 영어 앨화벹이 나타낼 수 있는 소리는 한글보다 적을 것이지만 그것보다도 글자 한 개가 너무나 여러 가지 소리를 나타내는 점에서 1자 1음의 철칙을 지키고 있는 한글과는 비교가 안 된다. -박양춘
* 오늘날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문자를 향유하게 되었지만, 그것은 세종대왕과 그를 따르는 학자들의 두뇌만으로 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모든 두뇌를 묶어서 한 방향으로 움직여 나가는 조직력, 숭화사상에 젖은 당시의 반대론자들을 잘 다스려 나가는 행정력, 가능한 외세의 압력을 배제할 수 있는 외교적 수완, 외국 학자의 의견도 서슴없이 자문하는 포용력, 자기 뜻을 글로 펴지 못하는 백성을 딱하게 여기는 사랑,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전제군주로서의 권력을 가진 세종대왕이 계셨기에 이 거대한 작업은 완성될 수 있었다. 그는 세심하였고, 만사에 철저하였고, 이 일의 지속성을 다짐하려는 집념을 갖고 계셨다. 그는 우리 문화의 르네상스를 이룬 영명한 군주임과 동시에 개인으로서는 우리 국민 모두의 귀감이 될 수 있는 인격자였다.
* 조직은 단순명료하지만 어떠한 배합도 용서하지 못해서 원초적인 소리밖에 표기하지 못하는 것이 일본 가나문자다. 융통성은 있어서 많은 소리를 나타내기는 하지만, 아무러한 원칙이 없어서 혼란스럽기만 한 것이 영어 앨화벹이다. 단순명료하면서도 융통성과 원칙이 함께 갖추어진 우리 한글은 철저한 삼분법에 입각한 자모음의 조합으로 아주 많은 소리를 아무 혼란도 없이 표기할 수 있는 기능을 가져다주었다. 울퉁불퉁, 올록볼록, 오순도순, 얼렁뚱땅 등 형태, 행동, 태도까지 묘사하는 의태어가 이렇게도 발달됐다는 사실은 우리 글자의 다양성과 치밀성에서 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 한글은 다른 나라 글에 비해서 시초부터 광범위한 여러 가지 소리를 대표하는 자모음 부호를 가지고 있었지만, 이러한 부호들은 초성, 중성, 종성에서 철저한 규칙에 따라서 또 한 차례의 조합을 이루어서 또다시 무수한 음절을 만들어 낸다. 이 모든 글자들이 아직도 1자 1음의 원칙을 철저히 지키고 있고, 모든 조합이 일사불란한 원칙에 따라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그 글자들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조금도 혼란시키지 않는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한글만이 진정한, 그리고 유일한 음소문자이며, 전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글자라고 주저없이 주장할 수 있다.
* 일본 가나문자의 모양은 모두 한자를 변형시켜서 만든 것이기 때문에 소리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형체이지만, 글자와 글자 사이에도 아무런 연관성이 없어서 50자를 모두 따로 외워야만 된다. 즉, あかさたな(아가사다나)의 경우 글자 상호간의 형체상 연관성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같은 소리들의 한글 표기는 ‘아가사다나’와 같이 모든 글자를 통해서 ‘ㅏ’라는 형체의 공통분모가 존재한다. 한자도 획을 제외하고는 별로 공통성이 없을 뿐 아니라 숫적으로 40,000자나 되고, 30획이 넘는 글자도 드물지 않다. 영어 앨화벹에서는 직선, 곡선이 사용되고 글자의 크기와 위치 때문에 시각호소율은 높으나, 상호연관성은 전혀 없어서 필기체와 인쇄체의 52자를 모두 외워야만 된다. 우리 한글의 형체가 얼마나 뛰어난가를 새삼 느끼게 된다.
* 영어 앨화벹에서는 A를 ‘에이’로, I를 ‘아이’로, H를 ‘에이취’로, Z를 ‘젯트’ 등으로 부르는데, 이들 호칭은 그 글자들이 실제로 음절의 일부분으로 읽힐 때의 소리와 별로 연관성이 없다. 거기에 비해서 기역, 니은, 디귿, 리을 등으로 부호의 소리 자체를 호칭으로 삼고 있는 우리 한글은 처음부터 합리적이면서도 이론이 명쾌하다.
* 한글 전체의 호칭은 처음에는 정음(正音)이었다. 정음이라 함은 옳은 소리라는 뜻이며, 그밖의 모든 글이 정음이 못 된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자신 있는 떳떳한 태도인가. 정음이라고 세종대왕께서 부르신 데는 이 글이 우리 조선사람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 인류 전체가 공유할 옳은 글이라는 뜻이 깃들어 있는 것을 우리는 이해해야 된다. 세종대왕의 목적은 인류 전체가 모든 소리를 옳게 표기할 수 있는 문자를 만드시는 것이었다.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한글’이라는 호칭의 ‘한’은 ‘크다(大)’는 뜻과 함께 한국의 ‘한(韓)’을 표시하는 말이므로 ‘정음’과 뜻이 통하는 호칭이다. 일반의 서민적인 호칭으로서는 “가나다라도 모르는 것이…” 또는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등의 글자 그 자체를 이름으로 대용하고 있으니 필자는 여기에서 우리 한국사람들의 가장 실용적이고 합리적인 면을 보는 것같이 느껴진다.
* 모든 면에서 세심한 배려를 한 한글은 세상에서 제일 배우기 쉬운 글이다. 아니, 배운다기보다는 익히면 되는 글이다. -박양춘
* 일본글자가 수가 적어서 일본말 배우는 데 쉬운 면도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큰 오산이다. 일본글자가 아주 국한된 소리밖에 표기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은 여러 가지 무리한 방법을 쓸 수밖에 없었고, 또한 많은 한자어를 쓸 수밖에 없었다. 일본말의 50% 이상이 한자 수입어라는 것은 우리 사정과 비슷하다. 그러나, 문제는 중국사람이 427개의 발음부호, 즉 다른 소리를 갖고 있는 데 비해, 일본사람은 201개의 소리밖에 없다는 데 있다. 중국에서도 허다한 동음딴뜻말이 있으니, 소리가 적은 일본에서는 얼마나 많은 딴뜻말이 생길지 쉬 짐작이 간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이 모자라는 글자를 최대한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 1932년 ‘중국교육부 국어통일준비위원회’에서 심사 결정한 ‘國語常用之彙(국어상용지휘)’는 9,000자를 수록하고 있다. 상용한자가 9,000자라면 지식인으로 행세하려면 15,000이나 20,000자를 알아야 할 것이다. 정보처리용 문자코드로서 20,900자의 한자가 등록되어 있다는 사실은 이것을 뒷받침한다. 중국 최대의 사전 강희자전(康熙字典, 1716년)에는 49,030자가 수록되어 있다. 이 많은 글자들을 옥편에서 찾는 일도 쉬운 것이 아니다. 우선 손끝으로 쓰면서 몇 획인지를 세어서, 부수색인 쪽으로 가서 그 부수를 찾고, 거기서 페이지를 알아서 그 쪽으로 가면, 또다시 나머지 부분이 몇 획인지를 세어 봐서 그 글자를 찾아내게 된다. 어떤 때는 하나의 글자의 상하좌우 어느 부분이 부수인지 알기 힘든 때도 있고 간단히 줄인 부수를 찾아봐야 하는 등의 복잡성까지 겹친다. 최종 목적 페이지에 도달해서도 같은 획수의 글자가 많으면 몇 페이지를 샅샅이 뒤져야 한다. 심지어 소리를 알 때에도 획수를 셀 필요가 있다. 이것은 한글사전이나 영어사전을 찾아보는 일에 비해서 너무나 복잡한 작업이다. 한자의 획수 또한 문제이다. 한자사전을 살펴보면 20획이 넘는 글자들이 수두룩하다. 한자의 평균 획수가 몇인지 아무 자료도 갖고 있지 않다. 평균 10획은 될 것이다. 한마디로 글자는 많고 소리는 적은 것이 중국문자이다.
* 수많은 동음딴뜻말은 중국사람들의 의사소통에 커다란 지장을 가져왔다. 중국사람들이 회화를 나눌 때, 유난히 말소리를 높이거나 글자를 그리는 시늉을 많이 하는데, 이것은 자기 말이 오해되는 것을 예방하려는 데서 무의식중에 하는 동작이다. 중국 TV방송을 보면 가극, 드라마, 영화, 그리고 심지어는 뉴스시간에까지 화면 밑에 자막이 나온다. 외국 영화도 아니고 외국 말이 그때 사용되고 있는 것도 아닌데 한자 자막이 나오는 이유는 동음이의어가 일으키는 혼란의 가능성 때문이다.
* 현재 중국에서는 모택동이 신민주주의론에 적은 “문자는 일정한 조건 밑에서 개혁되어야 하며, 언어는 민중에 접근하여야만 된다.”는 기본 방침에 따라서 한자의 간략화와 로마자화(字化)의 두 가지 노선을 추진하고 있다. 1956년부터 간체자가 인쇄물에 정식으로 채택된 뒤부터 종래의 한자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용금지로 되어 있다. 앞으로 우리나라에서 한자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도 두 가지의 한자를 배워야 할 것이다. 우리가 과거에 배운 번체자(繁體字)를 배우면 현재의 출판물이나 간행물을 읽을 수 없을 것이다. 한자 혼용론자들에게는 큰 숙제거리가 하나 생겼다고 할 수 있다. 중국어의 로마자화에 관해서는 주은래 수상이 일본의 방중사절단에게 “21세기의 문제이다.”라고 말했다고 보도된 바 있다. 중국말의 로마자화는 사성(四聲)의 문제도 있어서 용이한 문제가 아니다.(사성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중국글자와 같이 네모진 한글이 더 적합하다.) 한자가 배우기 힘들고, 쓰기 힘들고, 따라서 읽기도 힘들다는 것은 중국 사람들 자신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현대 중국문학의 아버지로 추앙되는 노신(魯迅)은 “한자(漢子)가 망(亡)하느냐 민족이 망하느냐.”라고 하는 극단적 표현을 써 가면서 한자의 어려움을 개탄하였고 중국 문자의 로마자호를 주창하였다.
* 영어 앨화벹은 우리 한글에 가장 근접한 문자체계이다. 자모음 글자의 수도 26자로서 우리 한글 부호의 수와 비슷하다. 앨화뱉은 원래 상형문자에서 시작되어 여러 번의 부분적인 개량을 거듭하여 온 것이기 때문에 한글에 비해서는 훨씬 비과학적이다. 한글같이 1자 1음이 아니라 모음 글자 한 개가 평균 7~8가지의 소리를 대표하고, 자음도 한 자가 평균 세 가지의 소리를 대표하는 그러한 문자이다. 거기에는 어떤 원칙도 없고, 주로 기억에 의지해야 되는 표기법이 있을 뿐이어서 영어권의 사람들에게는 스펠링은 그야말로 요람에서 무덤까지 따라다니며 괴롭히는 문제이다.
* 우수한 문자체계의 첫째 조건이라고 할 수 있는 단순명료함과 1자 1음의 원칙은 영어 앨화뱉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영어의 복합모음조차도 여러 가지 소리를 또다시 내게 되는 예를 무수히 확인할 수 있으며, 거꾸로 한 가지 소리를 포기하는 방법이 영어에서 얼마나 많을 수 있는지도 관찰하기 바란다. 대표적인 예로 ‘ou’ 즉 ‘오우’라는 이중모음을 표기하는 방법으로 o, au, aw, ew, eo, eau, oa, oe, oo, ou, ow 등 11가지의 방법이 있다. 우리 자신도 평소에 대단한 도량을 갖고 이러한 황당한 철자법을 크게 나무라지도 않고 열심히 외워 왔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러한 철자를 열심히 일생 동안 외워야만 하는 그들이 가련하다. 우리가 한글을 쓸 때 ‘오우’라는 소리를 표기하기 위해서는 그때 그때 단어에 따라서 ‘오, 아우, 아우-, 에우, 에오, 에아우, 오아, 오에, 오오, 오우, 오우-’ 등에서 한 가지를 골라서 써야 한다면, 우리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그 방면에 소비해야 될 것인가, 이러한 수고를 할 필요가 없는 우리 국교생과 중학생이 학력평가 국제 비교에서 종합 성적 1위를 차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 실제로 모든 영어 낱말에서 일어나는 예외들은 어떠한 훌륭한 언어학자들도 당혹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가령, boatswain(배의 갑판장)은 누가 읽어도 ‘보우트 스웨인’이라고 읽어야 할 것 같은데 실제로는 ‘보우슨’이라 읽는다. 선생님이 ‘보우슨’이라고 크게 읽을 때 boatswain으로 스펠링해야 되는 학생들을 생각하여 보라. 우리가 한글철자법을 힘들다고 하는 것은 너무나 안이한 사고방식이다.
* 상형문자, 표의문자, 표음문자 중 어느 한 가지에 귀속시켜야 한다면 앨화벹은 물론 표음문자가 될 것이다. 그러나, 앨화벹의 글자는 한글과 같이 한 가지 음소만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음소를 대표한다. 이러한 문자는 하나의 음소를 대표하는 부호가 아니고 어떤 집단적 소리를 표시하는 상징에 불과하므로, 이러한 문자는 음소군 문자, 상징적 음소문자 또는 유사(類似) 표음문자라고 부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진정한 음소문자는 오직 한글뿐이다.
* 한글을 로마자로 표기하는 것은 힘들다못해 불가능할 지경이다. 그것은 우리 한글이 모든 소리를 너무나 세분해서 치밀하게 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어에 ㄱ, ㄲ, ㅋ와 같은 소리가 없는 것이 아니고, 소리는 있지만 표기방법이 없을 뿐이라는 것은 이미 언급했다. 영어를 한글로 표기하는 것은 그리 힘들지 않은데 한글을 앨화벹으로 표기하기는 매우 힘들다는 사실은 한글이 그만큼 더 많은 소리를 세분해서 표기하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증명하는 사실이기도 하다.
* 이렇게 복잡하고 무원칙한 문자를 가진 영어가 그래도 오늘날 전세계의 공용어가 되었으니 우리는 그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영국이 한때 세계를 지배했던 강대국이었다는 이유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징기스칸도 한때는 세계를 제패했지만 그들의 언어는 보잘것없는 영향을 남겼을 뿐이다. 영어가 오늘날 외교, 과학, 문학, 경영 등 모든 분야에서 다른 언어를 압도하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영국 사람들이 자기 나라 말을 사랑하는 마음과 자기 말을 가꾸려는 노력에 연유한다. 나영균(羅英均) 교수의 [문학적 산책]에서 ‘이 조용한 가운데 불꽃을 튀기는 효과는 언어에 대한 비상한 관심과 애정과 능력을 가진 영국인들간에만 통하는 쾌감을 주는 듯 했다.’라는 몇 줄의 글을 읽었을 때, 나는 많은 공감을 느꼈다. 영국사람들의 영어에 대한 애정은 각별한 바가 있다.
* 우리들은 그들의 무원칙한 표기법을 비판하기 전에 그들의 태도에서 많은 것을 배워야 하리라고 믿는다. 세계 여러 곳의 다른 나라에서 자기들에게 없는 말, 자기들에게 필요한 말을 주저없이 받아들여서 주저없이 그대로 사용하고, 새로운 말을 만들어 내고, 사전 편찬에 남달리 많은 수고를 하고 있다. 이런 노력들이 오늘날의 영어의 지위를 확보하게 한 요인이 된 것이다. 이것은 외래어에 대해서 극도로 신경질적인 후랑스어의 위상이 차차 떨어지고 있는 것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 지금은 외국에서 밀어닥치는 거센 물결에 수동적인 대응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능동적으로 만사에 대처하는 방법을 생각해야 될 때다. 인간은 약할 때 변화를 두려워한다. 자신감이 마음속에 가득 차 있을 때는 오히려 변화를 촉구한다. 외국문화의 물결을 두려워하는 것은 문화적 약소민족이 하는 짓이다. 외국어를 배운다는 것은, 외교 경제 분야에서 실제적 효능을 얻기 위한 것만이 아니다. 모든 언어에는 그 뒤에 숨어 있는 문화가 있다. 하나의 외국어를 자기 것으로 만든다는 것은 자기 이외의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배우고, 이질적인 것에 대한 통찰력과 이해를 키우는 것이다. 많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외국어를 익혀서 세련된 문화감각을 지닌 국제인이 되어 주었으면 한다.
* 흐르지 않는 강물은 썩는다. 과거의 영광에 안주하는 대국은 쇠망의 길을 걷지 않을 수 없었다. 새로운 기술 투자를 소홀히 하는 기업은 오래가지 못했다. 우리 한글이 아무리 우수하고 배우기 쉽다고 하여도 거기에 안주해서 아무런 투자나 노력도 하지 않는다면 시시각각으로 변해 가는 이 시대의 상황에 부응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문자나 언어상의 진취성과 국가의 발전은 상호 연관되어 있다. 중국이 세계의 서적의 절반을 출판하고 있을 때, 중국은 세계의 최대 강국이었다. 그리이스가 세계 최초의 모음 앨화뱉을 만들어 냈을 때, 그리이스 철학과 문예가 찬란하게 피어났다. 셰익스피어가 허다한 세로운 낱말을 써내고 있을 때, 영국은 세계 최강의 공업국가가 되었다. 진취적 기상으로 각 분야의 개혁을 이룰 때, 그 나라는 항상 비약적인 발전을 하였다.
* 서비스, 셔터, 커브, 서포터 등의 외래어가 새국어표기법이라는 책에, 문교부 외래어표기법의 범례로서 버젓이 실려 있다. 영어를 아는 사람이 영어의 감을 가지고 읽는 것이 아니라, 영어를 전혀 모르는 어린이가 이 글자를 또박또박 읽을 때 그것을 알아들을 수 있는 영어권 사람들은 드물 것이다. 차라리 싸-뷔스, 샷타-, 카-브, 싸포-타-와 같이 ㅓ를 전부 ㅏ로 대치하면 잘 알아들을 것이다. ㅆㆍ-뷔스, 샷ㅌㆍ-, ㅋㆍ-브, ㅆㆍ포-타-와 같이 표기하면 완벽한 표기가 된다. 또한 이러한 표기로 된 외래어를 평소에 접하던 어린이들은 후일 교실에서 영어를 배울 때 정확한 발음을 다시 배울 필요가 없다.
* 한글의 장점을 논할 때 한 가지 뒤로 미룬 것이 있었다. 그것은 한글이 파열음 쪽으로는 세밀한 표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ㄱ, ㄲ, ㅋ; ㄷ, ㄸ, ㅌ; ㅂ, ㅃ, ㅍ; ㅈ, ㅉ, ㅊ 등, 모두 같은 구성으로 짝을 이루어 세밀하게 모든 파열음을 분석 표기하고 있다.
* 영어에는 된소리가 들어 있는 단어가 너무나 많다. 다만 영어 앨화벹에는 부호가 따로 준비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그들도 우리도 잘 느끼지 못한다. s=ㅅ 또는 ㅆ, k=ㄲ 또는 ㅋ, p=ㅍ 또는 ㅃ, t=ㄸ 또는 ㅌ과 같이 한 개의 글자가 때에 따라 습관적으로 다르게 발음된다. 나는 영어에서 s자를 ㅅ과 ㅆ의 두 자로 읽는다는 사실을 어떠한 책에서도 읽은 기억이 없다. s라는 글자는 모음 앞에서는 ㅆ이 되고 자음 앞에서는 ㅅ이 된다. 미국 친구들에게 이 사실을 지적하여 주면, 모두 이상한 얼굴로 쳐다보며 설마 하는 표정이다. 그들에게 두 가지 단어를 되풀이 읽게 하면서 방청자들로 하여금 주의 깊게 듣게 하면, 수차례에 걸친 반복과 나의 설명으로 그들은 겨우 자기들이 두 가지로 발음하고 있다는 사실에 동의한다. 그러면서 자기들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었던 것을 외국사람인 네가 어떻게 그렇게 섬세하게 분석할 수 있는가 하면서 경탄해 마지않는다. 그때마다 나는 세종대왕이라는 영명한 군주가 만들어 놓은 한글은 영국사람이나 미국사람들의 내파음(內破音)이나 외파음(外破音)을 정확히 구별해서 표기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해 준다. 그들도 의식하지 못하는 것을 지적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 한국사람의 발음이 이 방면에서는 아주 발달되어 있고, 귀도 그만큼 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글자가 없을 때는 그 소리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세종대왕은 우리에게 그때 그 당시의 모든 소리를 표기할 수 있는 글자와 함께, 미래에 있어서의 문자 생활에 무한한 가능성을 부여하셨다. 이 무한한 가능성을 깨닫지도 못하고, 더구나 그것을 이용할 생각은 꿈에도 못하고 있는 우리를, 그분은 아마도 무척 답답한 마음으로 우리를 내려다보고 계실 것이다.
* 우리나라 사람들은 장음이라고 하면 흔히 아-트, 티-, 코-스와 같은 단음의 장음만을 생각한다. 그러나 외국에서는 아이스(ㅏ+ㅣ), 페인트(ㅔ+ㅣ), 카우(ㅏ+ㅜ), 아이(愛ㅏ+ㅣ) 등의 2중모음, 그리고 iao, iou, uai, uei 등의 삼중모음도 당연히 장모음으로 취급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글에는 장음을 표시하는 부호가 없어서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장음이 잊혀진 지가 오래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전통적으로 2중모음이나 3중모음을 줄여 단모음으로 만들어왔다. 중국어의 ai(愛)는 ‘애’로, hao(好)는 ‘호’로, tai(太)는 ‘태’로, xiao(小)는 ‘소’로 우리나라에서는 사정없이 단음화해 버렸다. 우리 고유의 말들도 ‘보아’는 ‘봐’로, ‘기어서’는 ‘겨서’로, ‘두어’는 ‘둬’로, ‘어린아이’는 ‘어린애’로, ‘저애’는 ‘쟤’로 줄이기를 좋아한다. 이것은 세종대왕이 우리에게 너무 많은 소리글자를 만들어 주셔서 그런지, 우리나라 사람들의 천재적인 음성복합 능력 탓인지 연구해 볼 문제이다. 우리 외래어 표기법에 의하면 ‘보트’나 ‘코트’로 표기하는 boat나 coat도 ‘보우트’나 ‘코우트’로 발음해야 한다. ‘코트’나 ‘보트’가 일상생활 회화에 섞일 때 그것을 알아들을 미국사람은 없다. 일본사람들이 ボ―ト(보-또)나 コ―ト(코-또)와 같이 장음으로 표기하는 것은 참으로 영리한 태도이다. ‘코커콜러’는 말도 안되는 표기이며 차라리 “코-카 코-ㄹ라”로 표기하면 거의 완전한 발음이 된다.
* 한국과 일본의 신문 잡지 기타 간행물에 사용되는 외래어 표기를 비교해 보면 오히려 일본 표기가 훨씬 더 정확할 때가 많다. 이것은 한국 사람들의 무신경이라고 할 정도의 적당주의와, 일본사람들이 모자라는 글자로나마 잘 이용해서 정확하게 표기해 보려는 완전주의의 차이에서 오는 결과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이유는 일본사람들이 장음 부호(-)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장음부호 ‘-’는 일본에서 사용하는 부호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절대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하는 이가 있다. 이것은 좁은 소견이며, 지나친 애국주의의 소산이라고 생각된다. 더구나, 장음부호가 배우기 힘든다는 데 이르러서는 그들의 지능수준을 의심하게 된다. 주은래가 앨화뱉은 어떤 한 민족의 점유물이 될 수 없다고 했듯이, 우리도 장음부호 ‘-’같이 단순명료한 부호는 국적을 따질 필요도 없이 주저말고 사용해야 한다.
* 시인도 사용해야 될 정도로 장음 부호는 우리에게 절대로 필요한 부호이다. 다른 어떤 부호보다도 간단한 장음 부호 사용에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을 말할 수 없이 크지만, 잃을 것은 하나도 없다. 우리보다 속이 좁은 일본사람들도 장음 부호를 거침없이 쓰고 있는데, 그들보다 더 넓은 마음으로 외국문물을 수용하는 우리가 장음 부호에 대해서는 소아병적인 거부감을 나타냄으로 인해 우리말은 경직화된 병신글이 되고 있다.
* 기회 있을 때마다 말한 대로 일본문자는 한글에 비해서 말할 수 없이 저급의 문자이지만, 모든 외국소리 표기에 있어서 그들은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일본사람들은 할 수 없는 일도 하려 드는데, 우리는 왜 이렇게 쉽게 할 수 있는 장음부호 사용도 기피하고 있을까. 이것은 우리의 자만심에서 오는 것이 아니면 나태에서 결과하는 것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가 없다. 고정관념의 일대 전환이 필요한 때가 왔다. 정부는 시대에 뒤떨어진 규정을 현대화하고, 학자는 한글의 국제화, 미래화를 꾀하고, 시인·문필가·출판사·사전편찬자, 그리고 모든 부모와 시민의 참여로 장음 부호를 비롯한 그밖의 유용한 부호가 하루속히 사용돼서, 우리글이 효능적이고 생동하는 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 유구한 역사의 흐름에서 생각할 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기간은 보잘것없이 짧은 것이다. 그리고, 장구한 역사 속에서 중요한 점은 소멸하지 않고, 성장하는 데에 있다. 우리 한글도 강해져야 한다. 우리들 자신을 포함해서 모든 인류가 사랑하고 자랑할 수 있는 문자로 발전시켜야 한다. 글자라는 것이 불변의 것이 아니고, 부단히 변화를 거듭하여 왔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문자의 불변성을 고집하려 들든가, 모순덩어리의 규칙을 내세우고 개량의 길을 막으려고 하는 것은 나라의 장래를 위해서도 잘못된 일이다.
* 일본사람들은 자기들의 글자 부족에서 오는 난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외래어를 많이 수입하였다. 그중에서도 일어의 주류인 한자를 이용해서 무수한 새 말을 만들어 냈다. 경제(經濟=經世濟民), 민주화(民主化), 안전성(安全性), 민족성(民族性), 과학적(科學的), 정계(政界), 군사력(軍事力), 문명(文明), 현대(現代), 반대(反對), 원칙(原則), 회화(會話), 계획(計劃), 교통(交通) 등 주로 화, 성, 적, 계, 식, 론, 력, 율과 같은 글자로 끝나는 많은 새로운 단어들이 일본에서 만들어졌다. 그런데, 이 단어들은 모두 중국으로 역수입되어 현재 중국에서 아주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다. 일본에서 만들어진 말을 역수입하는 데 중국 사람들의 자존심이 가만히 있었을 리 없다. 그러나 일본에서 제조된 단어들이 아주 적절한 단어였으므로 결국은 대중에 의해서 기꺼이 수용되었고, 또한 수많은 중국 지식인이 일본에서 교육을 받았다는 사실이 일본 한자어의 역수입을 불가피하게 하였다. 우리도 현대 이 단어들을 요긴하게 쓰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위에 든 예는 극히 일부분의 낱말인데도 불구하고 이들 낱말이 없다면 우리 일상생활에서 상당한 불편을 느낄 것이 분명하다. 아마도 우리나라 사람들의 대부분은 위에 예시한 단어들이 중국에서 들어온 말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말이라는 것은 이렇게 돌고 도는 것이다. 이마당에서 국적을 따지기도 어렵고 굳이 그것을 따질 필요도 없다고 본다. 내가 이러한 이야기를 되풀이하는 것은 모든 것을 좁은 마음으로 생각하지 말고 큰 마음으로 바라보자는 뜻에서 하는 것이다. 우리가 말을 수입해서 아무 저항감 없이 사용하고 있을 때, 글자를 가지고 왈가왈부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어떤 이는 “그러나 우리는 ‘문명’이라는 우리 자신의 소리를 부여하지 않았는가.”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말은 그때와 지금의 시간적 공간적 차이를 잊어먹고 하는 말이다. 우리가 분명히 깨달아야 할 것은 소리가 많아서 표현력이 풍부하고, 구조가 분명해서 신속 정확한 의미파악이 가능하고, 소리나 형체가 아름다워서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글자야말로 시공을 초월해서 살아남는다는 사실이다.
* 모든 것을 길고 긴 역사적 안목으로 보다 넓은 시야에서 보고, 과거에 집착하기보다는 미래를 바라보면 일을 꾸미자. 일본사람들이 모자라는 글자를 가지고도 그 문자의 가능성을 완벽에 가깝도록 이용하고 있는 태도를 배우자. 중국사람들이 꾸준히 간체자를 만들어 내고 있는 개혁정신과 인내심을 배우자. 영국사람들의 수용력과 융통성을 배우자. 그리고 모든 것을 간단명료하게 만들려는 미국사람들의 실리주의도 배우자. 우리가 우리글자에 대한 막연한 자만심만 가지고 자아도취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우리글자를 온 세계에서 으뜸가는 글자로 만들어서 온 인류의 사랑을 받는 문자로 만드는 작업을 곧 시작해야 된다. 말에 있어서도 그렇다. 우리가 아무 노력도 없이 우리말에 대한 지나친 평가나 자랑을 일삼고 있을 때가 아니다. 우리말을 아름답게 만드는 길은 우리가 좁은 마음으로 생각하고 있는 국어순화와 같은 것이 아니다. 우리말을 듣기 좋게 하는 탁음, 장음, 류음 등을 완전히 살리는 방법을 마련해서 실천해야 한다. 아름답고 간단한 인사말을 만들어서 보급시켜야 한다. 우리에게 생소한 사물이나 사상을 표시하기 위해서 쓰지 않을 수 없는 말, 무리하게 우리말로 대체해서는 오히려 오해가 생기거나 어색하게 되는 말, 과학과 기술의 신속한 흡수를 위해서는 한가하게 적절한 대체어를 기다릴 수 없는 말, 이러한 외국말은 주저없이 수용해서 사용하여야 한다. 그와 같은 경우, 이왕이면 원음을 재현한, 완벽한 표기를 사용해서 쓰자. 일단 우리글로 표기되면 그것은 결코 외국어일 수 없으며, 당당한 우리말이 된다.
* 영어에 관한 한, 우리 사회에는 2중언어가 존재한다. 하나는 TV, 신문, 잡지, 간판 등에서 우리가 일상 접촉하는 해괴한 표기의 영어이다. 또 하나는 교실에서 배우는 영어나 외국인과의 회화에서 사용해야 되는 영어이다. 이 두 가지의 영어를 하나로 만드는 작업은 빨리 시작될수록 좋다. 한번 익힌 말을 교정해 가면서 다시 배워야 하는 시간과 정력의 낭비를 이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얼마 되지 않는 시간과 자본의 투자로, 그 투자의 몇 천 몇 만 배의 과실을 거두어들일 수 있는 이 사업은 한시라도 바삐 시작되어야 한다.
* 우리의 잃은 글자를 되찾을 때, 또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소리임에도 불구하고 표기할 부호가 없던 것을 보충할 때, 그것은 우리 언어생활에 엄청난 힘을 더해 줄 것이다. 우리 학생들의 영어에 대한 위화감은 친근감으로 변할 것이요, 그들의 영어는 너무나 뚜렷한 진보와 개량을 보일 것이다. TV나 출판물의 외국어 표기가 정확하게 이루어질 때, 한국 사람은 매일 수백 개의 외국단어를 자연스럽게 익히는 거대한 교실에 살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의 혜택을 얻을 것이며, 작은 노력으로 산 영어를 익히게 될 것이다. 한국의 1개 신문기사나 광고에 나타나는 외래어가 800단어를 넘는다는 사실은 외래어 사용을 감정적으로 거부하고만 있을 단계는 이미 지났다는 것을 말한다. 외래어를 사용해도 우리식 소리로 바꿔서 사용해야 된다는, 즉 ‘쟈-만(German)’보다는 ‘저먼’이라고 해야 우리말 같다는 이상한 이론은 시대에 뒤떨어진 생각이다. 외국어를 우리말로 만들 때는 정확한 표기를 해서 우리말로 만들자. 이것이 21세기를 살아갈 인간의 지혜요, 지구촌에서 지도적 역할을 담당하기를 원하는 자의 현명한 태도이다. 우리가 여기서 얻을 것은 두 번 배울 것을 한 번으로 줄임으로써 수억 시간을 절약하고, 한국사람의 소리에 대한 감각을 섬세하게 만들고, 동음딴뜻말을 줄이고, 더 오랜 시일에 걸쳐서는, 우리말을 부드럽고 쾌감도가 높은 말로 만드는 것이다. 이 일은 한글이 기왕 가지고 있는 능력을 개발하여 이용하는 것이며, 그 이익은 국민 모두에게 골고루 돌아간다.
* 실제로 발음 되는대로 외국어가 표기되지 않는 문제는 외국에 나와서 거주하는, 외국여행을 하고 있는, 앞으로 그럴 가능성이 있는 모든 한국사람의 문제이다. 그리고 국내에서 외국사람을 상대해야 되는 사람, 외국어를 배우고 있는 사람, 이렇게 부연하다 보면 결국 한국사람 모두의 문제이다. 외래어 표기법을 만드는 데 참여한 사람, 현재 그 못난 외래어 표기법을 감싸고 지키고 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책임이 얼마나 무겁고 큰 것인가를 통감해야 할 것이다. 그들의 책임이란 다른 것이 아니고 못난 외래어 표기법을 하루속히 개량 또는 폐기하고, 외래어 표기를 현재의 우리 글자로나마 옳게 표기하는 것과, 한 발자국 더 나아가 우리에게 없는 소리를 표기할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일을 할 지도자를 단 한 사람도 갖지 못한 한국사람은 불행한 사람들이다. 세종대왕이 새삼 그리워지는 때이다.
* 요즈음 fighting이라는 단어가 젊은이들 사이에서 많이 애용되고 있는 것 같다. 무슨 일을 하기 시작할 때나 헤어질 때까지도 ‘파이팅!’하고 서로 외치는 장면을 TV에서 자주 보게 된다. 아마 ‘건투를 빈다’, ‘싸워 이기자’와 같은 뜻으로 사용하는 모양이다. 이 단어는 우리가 현재 갖고 있는 글자로 ‘화이팅’이라고 해도 아주 훌륭한 표기가 되는데 왜 꼭 ‘파이팅’이라고 쓰고 또 그렇게 발음되어야 하는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 한글이 없었더라면, 우리의 문자 문명은 지금 어디에 서 있을까. 생각만해도 소름이 끼친다. 만약에 세종대왕이 한글대신 일본글을 만드셨다면, 일본사람들은 그것을 어떻게 계승하고, 어떻게 개량하고, 어떻게 이용하고, 어떻게 퍼뜨리고 있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일본사람들은 아마도 외래어를 소리나는 대로 정확히 표기하고, 없는 소리는 새로운 표기방법을 강구하는 등 이 모든 일들을 100년 전에 벌써 모두 이루어 놓았을 것이다.
* 한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한국에서는 한글의 개발에 관한 일이 항상 관의 주도로 은밀하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외 민간 주도로하든가 또는 관에서 주도하더라도, 현상모집, 공개토론, 취사선택의 과정을 거치면서 많은 민간인의 참여를 유도하지 못하는가. 문자의 개조나 개량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진정한 국민의식의 개조. 국민의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도 이런일은 공개리에 추진되어야 한다. 한글을 인류의 문자로 만드는 세계화, 한글을 캄퓨-타-화 하는 미래화를 위해서, 활자체의 개량과 필기체의 창조는 꼭 이루어져야 한다. 이 모든 일의 기초가 된다고 할 수 있는 풀어쓰기의 실현이 아직도 요원함을 볼 때,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통감하지 않을 수 없다.
* 우리는 “표준말은 현재 서울을 중심으로한 중부지역에서 교양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말씨로 한다.”고 아주 좁은 뜻의 정의를 내리고 있는 데, 중국사람들은 폭넓게 정의를 내리고 있다. 중국의 방언은 우리들의 방언과 같이 약간의 차이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고, 그야말로 거의 외국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차이를 서로간에 가지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언어 통일의 필요를 느끼고 있지만 감히 표준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 ‘널리 통하는 말’이라는 보통어로 부른다. ‘기초방언’이라고 하는 데서도 우리의 ‘방언’이나 ‘사투리’라는 말이 풍기는 ‘시골말’이라는 느낌은 전연 감지할 수가 없다. 또, ‘국어’라고 하지 않고 ‘한민족 공동의 말’이라고 하고 있는 데도 소수민족을 무시하지 않으려는 그들의 배려가 엿보인다. 한국 같은 좁은 땅에서 표준어와 지방어를 필요 이상으로 구별하고 차등 대우하든가 표준어에다 성역과 같은 권위를 부여하려고 하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같은 영어를 국어로 사용하고 있는 나라이지만 미국과 영국에서는 언어에 대한 개념이 기본적으로 다르다. 영국에서는 영어는 공용어이지만, 미국에서는 다만 가장 보통으로 사용되는 언어에 불과하다. 미국에서 몇해만에 한 번씩 ‘영어를 공용어로 하기 위한 헌법 수정안’이 상정되곤 하지만, 그때마다 부결된다. 요컨대, 미국의 경우, 영어는 미국에 온 이주자들의 최대공약소적인 언어일 뿐이다. 단일민족이 살고있는 좁은 땅에서 어떤 특정지역의 말을 표준어라 규정해서 류음을 말살하는 분들의 음향감각이 의심된다.
* 모든 선진국언어가운데 류음이 빠진 언어는 한국말 뿐이다. 영·중·일어에는 류음, 장음, 탁음이 모두 갖추어져 있다. 이탈리아 말이나 스페인 말에는 류음이 너무나 풍부하다. 후랑스사람들은 류음을 너무나 아끼는 나머지, 목구멍 깊숙한 곳에서 내는 독특한 r소리를 만들어 냈다. 우리에게도 류음이 있었건만 두음법칙의 적용은 오늘날 모든 류음을 철저하게 제거하는데 성공하였다.
* 영국사람들은 조용하고 점잖게 말한다. 그렇지만 영어는 힘차게 말할 수 있는 언어이다. 전 수상 샛챠-가 의회에서 토론하는 것을 들으면 여자말 같지 않게 힘차고 정정하다. 의사당에서 정치토론을 하는 데 적합한 언어이다. 후랑스사람들의 말소리는 비교적 조용한 편이다. 항상 자신의 소리를 억제하려고 하는 그런 화법이다. 입안에서 울리는 듯한 소리나 코에서 내는 듯한 소리(an, ain, en, in, on, un 등의 소리는 모두 콧소리가 된다)로 말하며, 그 대신 얼굴 표정과 손짓이 풍부하다. 복잡한 발음은 입을 비교적 작게 그리고 부자연스러운 모양으로 만든다. 전체적으로 우아한 느낌을 주며 사랑을 속삭이는 데 가장 적합한 언어이다. 일본어는 소리가 모자라는 글자지만 장음, 탁음, 류음의 표기법은 완전히 갖추어져 있다. 화엄(華嚴)폭포에서 투신자살한 후지무라 미사오가 남긴 시의 한 구절에는 장음, 탁음, 류음이 골고루 들어 있다. 그래서 그런지 그가 남긴 시는 별다른 뜻이 없는데도 그 당신의 모든 젊은이에게 애송되었었다. 일본사람들은 류음을 좋아하는 듯하다.
* 우리 말에 장음이 없어서 너무 빠르고 각박하게 들리고, 탁음이 없어서 부드러움과 울림이 없고, 특히 류음을 없애 버려서 유창함과 음향도가 모자란다. 후랑스에서는 힘든 발음은 국민에게 강요하면서까지 그들의 언어를 아름답게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우리도 그들을 따르지는 못할지언정, 지도층이 언어의 류려함을 말살하는데 앞장서서야 되겠는가. 장음, 탁음, 특히 류음이 우리말에도 풍부해져서, 우리 말이 세계에서 으뜸가는 아름다운 말이 되어주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 류음과 새로운 부호들은 커다란 공헌을 할 것이다. 북한에서는 아직도 두음 ‘ㄹ’을 그대로 발음하고 있으며, 두음법칙의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위에 지적한 이유에서 나는 북한의 방식이 옳다고 생각한다. 장차 통일의 과정에서 글자나 말의 통일에 관한 회의나 작업도 전개될 것이다. 그때 이 ‘ㄹ’ 음에 관해서는 남한측이 기꺼이 양보해야 될 것으로 믿는다. 즉 아무 곳에서나 지켜지고 있는 원칙에 따라서, 표기는 원음대로 하고, 읽기는 선택에 맡기는 것이 가장 간단한 해결방법일 것으로 생각된다.
* 한글은 지금 있는 그대로도 그나름으로 매우 훌륭하다고 하는 사람도 많다. 그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들은 한글이 우리나라 사람들 이외의 사람들을 위해서 무슨 공헌을 하였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만을 위한 글자일 때, 그것은 세계문화에 별다른 공헌을 못한 것이며, 그 자랑은 우리들만의 자랑일 뿐이다.
* 세종대왕과 그의 제자들은, 아쉽게도, 중국을 주로한 한자문화권의 몇몇 국한된 나라만을 상대로 할 수 있었을 뿐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상대하고 있는 나라들은 그때 우리 조상들 앞에 존재하지 않았으며, 따라서 존재하지 않는 나라들의 소리를 표기하려는 노력은 있을 수 없었다. 오늘 우리가 접촉하고 있는 나라들은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나 우리 조상들이 알고 있던 중국보다 더 우리에게 가까운 나라들이 되었다. 정음 창제자들이 오늘날 우리가 처해 있는 환경 속에 놓여 있었다면, 무엇을 시도했을 것인가. 정음으로 자연의 소리는 무엇이든지 표기할 수 있다고 한 그들의 자신감 넘치는 언명은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너무나 분명히 말해 주고 있다. 그렇지 않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은 현상을 유지하려는 저의에서 엄연히 존재하는 역사적 사실을 아예 외면할려는 사람들이다. 새소리를 생각하는 사람이 어찌 사람의 소리를 마다하겠는가. 한글의 보강을 늦추거나 주저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과 현실적 요구가 웅변으로 말해주고 있다. 사실에 있어서 세종대왕의 근본 정신이 퇴색하지 않고 후손들에 의하여 제대로만 계승되었더라도, 오늘날 우리는 훨씬 더 찬란한 문화를 자랑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미 500년이 늦었다. 이제 그 일을 더 이상 지체시킨다면 그것은 과거에 저지른 과오를 다시금 되풀이하는 것 밖에 안 된다. 사태를 올바로 파악하고 전진의 길을 택해야 한다. 과거를 청산 못하고 거기에 집착함은 패자의 길이요, 미래를 바라보며 도약을 기하는 것은 승자의 길이다. 우리는 미래를 향해서 개혁과 전진을 계속하여야 한다.
* 한글은 지금, 창제 당시보다도 못한 글자가 되었다. 우리 한국사람의 성급한 행태의 하나로, 한때 필요 없다고 생각된 글자들은 모두 사정없이 없애버렸기 때문이다. 왜 우리에게는 당장은 필요 없는 것 같더라도, 잠시 옆으로 밀어 두고, 다시 쓸 날이 오기를 기다리는 느긋함이 없는지 모르겠다. 반면, 한 번 만든 규칙은 그것이 아무리 시대에 뒤떨어져도 그것을 고칠 생각도 못하는 어리석음이 있다. 해방 직후에는 아무 기반도 없는 상태에서, 각인각색의 이론이 터져 나오고 저마다 제멋대로 하겠다는 사태가 벌어졌으므로,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서 강력한 관이나 학회의 통제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만든 규칙은 언젠가는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 된다. 모든 분야의 질서가 자리잡힌 지금, 정부는 지나친 간섭을 그만하고, 간접, 우회적인 지도 역할을 해야 될 때가 왔다고 본다.
* 우리나라에 점 한 개 줄 한 개를 첨가하지 못하게 규정하고 있는 시대착오적인 법칙이 존재하는 이상, 한글의 발전은 있을 수 없다. 한글은 우리들만의 글자로 머무를 수밖에 없고, 그것은 한글이 의당 차지하여야 할 세계적 위상이 아니다. 모든 소리를 정확하게 표기할 수 있는 간단명료한 문자체계의 창조는 온 인류의 오랜 꿈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좀처럼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었다. 한글만이 이러한 인류의 꿈을 이루어 줄 수 있는 문자체계라는 것은 지금까지의 논술로 충분히 이해되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세종대왕이 이루어 놓으신 인류문화사상의 금자탑은 지금껏 땅 속에 묻혀 있을 뿐이다. 그것은 첫째로 500여년간 한글에 대한 온갖 푸대접을 감행한 사람들의 죄과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의 우리들의 태만과 무관심도 그에 못지 않게 큰 죄악이라고 할 수 있다. 한글이 어떤 나라의 소리라도 모두 정확하게 표기할 수 있다는 사실과 그 무한한 가능성이 알려질 때, 그것이 모든 사람들에게 얼마나 신선한 충격을 던져줄 것인가를 생각하여 보라. 그들은 당연히 우리의 문자 문명에 대한 관심과 존경을 표시할 뿐 아니라 끝내는 그것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 어떤 사람은, 새로 부호를 만들어서 새로운 소리를 표기하는 것은 누구나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오히려 그럼으로써 550년전에 만들어진 한글의 역사적 가치에 먹칠을 하는 결과가 되고 말 것이 아닌가 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바로 이해해야 할 것은 첫째, 한글이 모든 소리를 표기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우리가 덧붙이려는 몇몇 개의 부호가 아니다. 세종대왕이 창제한 치밀하고, 조직적이고, 융통성 있는 문자체계가 그것을 가능케 한다. 550년 전에 마련된 가능성을 우리가 지금 발굴하고 있을 따름이다. 둘째로, 새로 부호를 만드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상하게도 인류는 부호를 새로 한 개 만들어서 사용하는 데도 무척 소심하였다. 앨화뱉 C에다 줄을 한 개 그어서 G자를 만들었을 때, 그것이 인류에게 얼마나 큰 공헌을 하였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 줄 한 개를 붙이는데 수백년이 걸렸다. 새로운 부호를 만들어서 필요한 곳에 사용하는 일은 우둔한, 우유부단한, 자기 안일만을 생각하는 자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총명하고, 결단력 있고, 인류 문화의 장래를 생각하는 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박양춘
* 말이나 글자나 모두 무수한 변천과 개량을 거듭해 왔고, 그러한 개량은 항상 우리 인류에게 커다란 이익을 가져다 주었다. 우리는 역사에서 배워야 한다. 소극적 대응과 신경질적 반응만으로는, 어떠한 발전도 기대할 수 없다. 우리가 팔짱을 끼고 관망하고 있는 한, 한글은 보잘 것 없는 글자로 남아 있을 것이다. 적극적 수용과 대담한 개량으로, 우리들 자신과 인류에게 간편하고도 완벽한 문자를 제공하여야 한다.
* 동북아 3국어에는 공통점이 많은데 그중의 한가지는 글자형체가 모두 네모난 글자라는 것이며 이것은 외국 언어학자들이 자주 지적하는 사실이다. 이 네모난 글자형체야 말로 중국의 4성을 표시하는 데 안성맞춤이다. 이상 말한 소리의 공통점과 글자의 공통점은 장차 이들 세 나라 사이에 어떤 공동작업이 충분히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그러한 가능성 외에도 우리가 참조해야 될 사실은 세 나라 사이에 언젠가는 성립될 수 있는 경제 협력체의 가능성이다. 유랖공동체, NAFTA 등, 세계는 지역적 경제 공동체로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 사실인즉, 아세아만이 예외일 수는 없다. 장차 이 세 나라 사이에 공통된 문자의 필요성이 생길 때, 그것은 아마도 한글로 낙착될 것이다. 중국의 신해(辛亥)혁명을 이어받아 제제(帝制)운동을 폈던 원세개(元世凱)라는 대 정치가가 있다. 허웅선생에 의하면, 이 사람은 한자를 대체하는 데 앨화벹 대신 한글을 사용하자는 주장을 폈다고 한다. 여기에는 한글의 글자체가 네모꼴이 돼서 4성 부호의 표시가 용이하다는 것도 중요한 이유의 하나가 되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일본에서도 “신대문자(神代文字)”를 사용하자“는 비슷한 운동이 있었다.
* 중국 한자는 한가한 세상에 모필로 한시나 적고 있기에 알맞은 글자이며, 사람이 태양을 따라 지구를 돌 수 있는 바쁜 세상에 적응할 수 있는 글자는 아니다. 장차 캄퓨-타-에 의한 정보처리가 중심이 되는 시대에는 더욱 더 낙후된 글자가 된다. 한편, 일본글자도 그들이 스스로 인정하고 있듯이 글자의 부족 탓으로 생기는 동음딴뜻말의 홍수로, 외래어를 대량 수입하지 않으면 안될 지경에 이르렀다. 중국어나 일어는 세계에서 으뜸가는 아름다운 언어들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들이 가진 글자는 모두 치명적인 결점을 안고 있다. 그들이 돌파구를 찾을 때 가장 완벽한 해결방법을 제공할 수 있는 것은 한글뿐이다. 쓸모없는 우월감, 이유없는 자존심을 버릴 때, 아세아에서의 한글문화권 성립은 어떤 면으로는 필연적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한글문화권의 무대는 마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연출가와 배우들이다. 배우들이 자만심, 우월감, 배타심 같은 것을 버리고, 오로지 보다 나은 문자생활을 위해서 움직이게 할 수 있는 연출가가 나타날 때, 이 일은 저절로 이루어질 것이다. -박양춘
* 우리가 한글을 세계공용문자로 보다 완미한 조건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우리 한글에 결핍된 음성부호를 과감히 보충하여야 하겠다. 이 일은 어떤 민족이나 다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오직 한글을 갖고 있는 우리만이 할 수 있다. 무릇 인간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모두 바르고도 쉽게 표기할 수 있고, 그 체계자체가 과학적인 문자체계는 오직 한글 뿐이다.
* 한국의 앨화벹은 언문이라고 알려져 있으며, 극동에 있어서 오직 하나의 자생 앨화벹이다. 어떤 학자는 이제까지 실제로 사용된 가장 완벽한 음성표기 체계라고 생각하고 있다. - Encyclopedia Americana
* 한글은 모름지기 어떤 나라에서 사용되는 문자체계보다도 가장 과학적인 문자체계이다. -라이샤우아(주일대사)
* 그것이 궁극적으로 한국사람을 위해서 생각될 수 있는 최고의 글일지는 몰라도 한글은 인류의 지적 업적 가운데서도 위대한 업적의 하나로 평가되어야 할 것임은 의심할 바 없다. -졔후리 쌤슨 교수(영국 언어학자) [Writing System](1985)
* 한글은 모든 문자체계 가운데서도 우수하고 합리적인 것으로 정평이 있다. -와다나베 길용, 스즈끼 다까오 [한국말을 권함]
* 일본어는 가장 많은 중국어를 수입했기 때문에 동음어(同音語)의 누적을 초래하여 표음문자화(表音文字化)를 거의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는 감이 있다. 외래어는 이러한 국어의 혼란이나 불편을 구(求)해 주는 구세주(救世主)이다.…(중략) 불쌍한 일본어가 아니겠는가. -카도까와서점(角川書店) 발행의 외래어사전 서문 중에서
* 한국와 일본이 함께 중국의 ‘한자문화권’에 속하면서 한쪽은 한글, 한쪽은 가나문자를 만들어 냈다는 사실을 무척 흥미로운 일이다. 여기에서도 헤엄쳐 건너갈 듯싶은 현해탄을 사이에 두고 한일 두 나라의 ‘문화의 격차’가 실감되기 때문이다.…(중략) 그 역사야 어쨌든, 한글은 한자와 전혀 관계없이 태어났다는 의미에서 매우 독창적인 문자이다. 이에 반해 일본의 ‘가나’는 ‘히라가나’나 ‘가다까나’를 막론하고 한자의 초서체나 획 등에서 따온 글자인 것이다. 따라서, 독창이라고 하기보다는 한자의 형태를 살리면서 모양만 바꾸어 놓은 글자라 하는 것이 옳겠다. 즉, 한국의 ‘한글’은 한자에 대해 ‘혁명적’이고 일본의 ‘가나’는 ‘개량적’이다. 외래의 문물을 받아들여 자기 나름대로 소화시키고 ‘양념을 쳐서’ 새로이 일본적인 것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 일본문화의 특징이다. 그러나, 한국문화는 몇백 년이라는 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생활할 때 터무니없이 거창하고도 독창적인 것을 생산해 내는 모험에 넘치는 가능성의 문화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구로다 카쯔히로 [한국인은 한국인이다]
* 한 가지 남은 의문은 중국 한자의 운명이다. 우리는 모두 한자가 지울 수 없는 공헌을 역사에 남긴 것에 대해서 동의한다. 한자가 앞으로도 영구히 변함 없이 살아남을 것이냐, 원래의 형체에서 변할 것이냐, 또는 표음문자에 의해서 대체될 것이냐, 그 대체 문자가 라틴문자일 것이냐 또는 그밖의 어떤 표음문자일 것이냐. 우리는 거기에 대해서 성급한 결론을 내릴 필요가 없다. 글자의 변천에서 실증되는 바와 같이 어떠한 언어도 과거에 변하였고 또 장래에도 변할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날 모든 다른 민족의 언어나 문자가 서서히 하나로 혼합될 날이 올 것이다. 인류의 언어 발전에 있어서의 추세는 모든 언어가 서로 접근한다는 것이며, 그것은 드디어 각 언어 사이에 커다란 차이가 없어질 때까지 계속된다. -주은래 (周恩來, 중국 혁명지도자)
* 한글은 인간의 말의 반사경이다. 반면 영어를 비롯한 어떤 문자들은 잡탕(mess)이다. - Jared Diamond
* 학자들은 ‘세종대왕의 28개의 부호는 전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앨화벹이며 가장 과학적인 문자체계’라고 말한다. 한글은 초이성적(ultrarational)인 문자체계인바, 그 이유는 다음의 세가지 특징으로 이해된다. 첫째 한글의 자음과 모음은 한눈에 식별할 수 있다. 그리고 상호 관련있는 소리의 부호들은 비슷한 형체의 상호 관련있는 부호로써 구성되어 있다. 일례를 들면, 원순모음 ‘ㅜ’와 ‘ㅗ’를 대표하는 모음부호 사이의 유사성, ‘ㄱ’, ‘ㄲ’, ‘ㅋ’ 등 연구개엄부호의 유사성 등은 매우 합리적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자음부호의 형체는 그 소리가 발음될 때의 입술, 입, 혀의 위치를 나타내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ㄴ’과 ‘ㄷ’ 부호는 혀 끝에 입천정이 올라붙은 상태를 나타내고, ‘ㄱ’ 부호는 혀 뿌리가 목구멍을 막는 모양을 묘사하고 있다. 20세기의 학자들은 이러한 ‘부호와 발성기관 형체의 연관성’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1446년에 반포된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해례본이 1940년에 발견됨으로써, 그들은 위의 이론이 너무나 분명하게 밝혀져 있음을 발견하였다. 마지막으로 이들 부호들은 수평 또는 수직으로 묶어져서 네모꼴 안에 든 음절 문자가 된다. 이때 각 음절문자 사이의 간격은 낱말과 낱말사이의 간격보다 작다. 결과적으로 한글은 음절문자와 음소문자의 장점을 모두 갖추고 있다. 불과 28개의 부호만 외우면, 그 부호들이 모아져서 음절이 될 때, 그 응집된 형체는 신속한 읽기와 뜻의 파악을 가능케 한다. - Jared Diamond
* 가장 주목할만한 일은 세종대왕의 영도아래, 한글이 창조되었다는 사실이다.…(중략) 그의 가장 우수한 학자들의 도움으로 한글은 창조되었다. 오늘날 이것은 전세계에서 가장 훌륭하고, 가장 단순한 글자라고 인정되고 있다. 세종이 발명한대로 이 앨화뱉은 14개의 자음과 11개의 모음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한 개의 모음이 빠진 것 외에는 꼭 같은 형태로 남아 있다. 이 24개의 부호는 인간의 목청에서 나오는 어떠한 소리도 놀라운 정도로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조합될 수 있다. 그것은 세종대왕과 그의 학자들이 한국것은 물론이려니와 많은 외국의 문헌을 연구하여 음운론의 원칙을 연구하였기 때문이다.…(중략) 그러나 4대조왕 세종에 비견할만한 임금은 없었다. 그는 천부의 재능의 깊이와 다양성에 있어서 한국의 레오나-드 다뷘치라고 할 수 있다. -파알 S. 박 여사(1932년 퓨-릿짜-상과 1938년도 노우벨문학상의 수장자) [The Living Reed]
* 한 나라의 국어의 힘은 외국어를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삼켜서 소화하는 데 있다. -괴테(독일의 위대한 시인이자 두뇌)
* 다만 싫든 좋든 상당한 정도로 외래어가 통용되고 있는 상황하에서 불필요하게 억지로 반벙어리 소리를 하는 것이 좋을까 하는 문제를 제기하고 우리의 시대적 필요를 쉽게 충족시키는 방법이 있음을 지적하고자 하는 것뿐이다. 폐지된 글자를 부활하고 훈민정음의 구성 원칙에 따라 글자의 초성에 자음을 병서하는 방법으로 모든 외래어를 표시하며, 또한 한글의 미흡한 점을 보완하는 문제를 제의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것이 세종대왕께서 훈민정음을 창제한 기본정신에 부합하는 일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윤석현 선생
* 세종대왕 때만 해도 글자를 크게 썼기 때문에 지금같은 깨알 글자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한글을 깨알같이 붙여 쓸 경우 자형의 문제로 종종 오독이 발생할 수 있다는 건 사소하지만 명백한 단점이라고 할 수 있어요. ‘흥’을 ‘홍’이나 ‘훙’으로 읽게 되는 경우가 흔하지 않습니까. 자체에도 문제가 없지 않아요. 영어 앨화뱉처럼 대문자, 소문자, 고딕, 이탤릭체 같은 자체 구분이 없어 글자를 늘어 놓았을 때 시각적으로 너무 밋밋하고 단조로운 느낌을 받게 됩니다. 개발이 필요한데 물론 그 여지나 가능성은 널리 알려져 있다고 봐요.(1992년 10월 7일자 중앙일보 인터뷰 기사 중에서) -이기문 교수
* 영국 리즈대학의 샘슨교수는 1985년 Writing System이란 저서에서 한글을 특별히 독립된 한 장으로 다루면서 그것의 독창성과 과학성을 극찬하고 있습니다.…(중략)… 이 분이 이듬해인가 서울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덕수궁 세종대왕 동상 앞에 가더니 넙죽 엎드려 큰 절을 올리는 것을 보고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미국 시카고대학의 매콜리 교수도 해마다 한글날이면 강의마저 집어 치우고 자기 집에 학생들을 불러 파티를 엽니다. ‘언어학자가 반드시 기념하여야 할 경사스러운 날’이라는 거지요.(1992년 10월 7일자 중앙일보 인터뷰 기사 중에서) -이기문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