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점: 3단계 치료법의 독특한 당뇨처방 어깨에 뜸 떠 간단히 와사풍 고쳐 자궁암 환자 약 5첩으로 고치기도 20살 무렵 노인에게 의술 계시받아
강원도 속초에서 버스를 타고 해안선 길을 따라 북쪽으로 한 시간 반 가량 달려 도착한 고성군 거진면 죽정 리. 푸른 동해 바다와 험준한 산으로 둘러싸여 10여 가구가 모여 사는 이곳은, 5~6km쯤 가면 통일전망대와 휴전 선이 나오는 등 교통이나 인적이 뜸한 오지이다. 하지만 마을 뒤 야트막한 고개 너머 윤형근(尹亨根, 취재 당시 92세) 할아버지 댁에는 외지에서 찾아오는 손님이 심심치 않게 있으니, 그것은 윤 옹에게 약 처방을 받기 위한 난치병 환자들이다. 윤 옹은 25살 때 우연히 얻은 <방약합편>을 읽고 또 읽어 의술을 깨우친 후, 70년 가까이 각종 질환을 고쳐 오고 있다. 이제 윤 옹의 집은, 변변한 의료기관조차 없는 이곳 산골마을 사람들에게는 친근한 '사랑방 병원'이 되고 있다. 또 각종 난치병에 걸려 병원을 전전하다 찾아오는 외지 사람들에게는 재생의 희망을 얻는 위안처가 되고 있기도 하다. 그곳에서 2박 3일 머물며 동네 사람들과, 인근 거진의 식당·상점·여관에서 만난 사람들에 많은 취재를 할 수 있었다. 그들이 들려주는 아야기는 각종 난치병에 걸려 치료방법을 찾지 못하고 안타까워하던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내용들이었다. "와사풍은 백발백중으로 고친다." "축농증도 신기하게 낫더라." "이런 산골에서는 꼭 필요한 의원이다." "중풍 에 걸려 반신불수 되었던 자신의 남편도 윤 옹의 처방대로 약 지어 먹고 나았다." "위암에 걸려 사형선고 받고 차에 실려 왔던 어느 부인은 약 몇 첩만에 멀쩡히 나았다." "의술이 하도 신통하여 미국에서도 교포가 치료 받으 러 왔다." "한의과생들이 의술을 배우러 노인네를 찾아온다." 윤 옹이 살고 있는 곳은 버스가 정차한 죽정리 삼거리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삼거리에서 산쪽으로 5분 가 량 걸어 고개를 넘으니, 대문도 없는 널찍한 마당에 덩그러니 서 있는 한옥집과 함께 기둥에 붙은 '윤형근'이라 고 쓴 문패가 눈에 들어왔다. 마당에는 벌써 환자가 타고 왔음직한 강원도 번호판을 단 봉고차가 있고, 방문 앞에는 여남은 켤레의 신발 이 놓여 있었다. 방 안에는 허름한 잠바 차림의 시골 노인이 환자에게 둘러싸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필자가 간 날은 마침 일요일이라 휴일을 이용하여 강원도와 외지에서 연이어 환자들이 찾아왔다. 그들이 호 소하는 증상도 "잠이 안 온다" "머리가 항상 맑지 못하다" "입이 바싹바싹 탄다" "전신에 신경통이 심하다" "몸이 푸석푸석 붓는다" "조그만 일에도 깜짝깜짝 놀라고 자지러진다" "숨이 가쁘고 힘이 없어 아무 일도 못 한다" 등 다양했다. 조용히 뒷전에 앉아 환자와의 대화를 경청했다. 먼저 서울 상도동에서 왔다는 김기정(취재 당시 50세 남자) 씨와의 대화를 들어보자. "머리가 아파요?" "머리가 항상 맑지 않아요." "간장 질환 있어요?" "그건 모르겠는데, 전체적으로 피로가 자주 와요." "간장이란 건 병이 있어도 잘 몰라요. 자신이 병이 있다고 알면 벌써 쇠한 지 3년이 되었다고 봐야 해요. 술 먹어요?" "예" "술 먹지 말아요. 술은 간장에는 독약이야. 그리고 피로한 건 양기가 물러서면 그래요. 남자는 양(陽)으로부 터 있어요. 양기가 좋아야 건강하거든. 양기가 물러서면 몹시 피로를 느끼게 돼요. 입은 안 말라요? 자고 나면 입이 쓰지 않아요?" "씁니다." "입이 마르고 입맛이 쓴 것은 심장에 화가 세서 그래요. 그게 심하면 물을 많이 먹고, 당뇨로 돌아갈 위험이 있어요. 저녁에 자다 깨면 잠이 덜 오지 않아요?" "잠은 잘 안 깨는 편이예요." 윤 옹은 환자에게 병 증상을 하나하나 물어 가며 옆의 보따리에서 증상별로 처방전을 일일이 뽑았다. 보따리 에는 1백여 가지의 처방전들이 수십 장씩 복사되어 있었는데, 1백여 가지의 처방전을 다 모으면 한 권의 약방문 책이 족히 되고도 남을 듯하였다. 그 처방전들을 세밀히 기록한 공책이 있었으나, 따로 책이름은 없었다. 처방전 을 다 뽑은 윤 옹은 10여 장의 처방전 내용을 환자에게 일일이 설명해 주었다. "이건 가미승마황련탕(加味升麻黃連湯)이라고, 골 아프고 혈압 높은 데 먹는 약이지. 두 첩을 지어 먹으면 되 는데, 이거 대나무 일곱 잎 넣고 한 첩을 두 번 달여 먹어요. 그 다음 입이 마르고 입맛이 쓰고 물이 자구 먹히 는 건 심장에 화혈(火血)이 있어서 그러는데, 가미연자황련탕(加味蓮子黃連湯)은 심장의 열을 식혀 주는 약이예요. 이것은 대나무 일곱 잎 넣고 두 첩을 다섯 번 달여 먹어요. 이건 기침이 나고 가래가 끓고 숨찬 데 먹는 가미소 자강기탕(加味蘇子降氣湯)이예요. 이건 폐암에도 쓰는 좋은 약이예요. 대나무 다섯 잎 넣고 한 첩을 재탕 두 번 씩 해서 다섯 첩을 닷새 먹어요. 그리고 저녁에 잘 때는 방을 뜨습게 해서 몸을 덥게 해야 나아요. 기침병은 아 무리 약이 좋아도 차게 하면 아니 나아요." 그리고 이런 처방전을 그대로 한약방에 가지고 가서 약을 지어 먹으라고 당부한다. 처방이 많은 이유는 증 상별로 하나하나 병을 잡아 나가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다음엔 서울에서 온 이성자(취재 당시 40세 여자) 씨와의 대화 내용이다. "애기 낳았어요?" "셋 낳았어요." "팔다리 저리거나 아프지 않아요?" "예, 손끝도 차고 허리와 팔다리가 저려요." "몸이 으슬으슬 춥다가도 얼굴이 확 달아 오를 때가 있지요?" "예." "그건 산후증 때문이예요. 아주머니가 애기 셋 낳았다면 어느 애기였던가 산후조리가 잘 안 되었어. 손끝이 차고 팔다리가 저린 것도 산후증으로 인해 피가 잘 돌지 않기 때문이예요. 혈압은 어떤가요?" "정상이예요." "소화는 잘 돼요?" "소화가 안 되고 쓰리고 아파요." "속에 뭉텅이가 있나요?" "있는 것 같아요." "이것 똑똑히 들어요. 이건 가미내소옥설산(加味內消沃雪散)이라고 위하수·위궤양·위암에 먹는 약이예요. 파 한 대 넣고 재탕 두 번 해요. 이건 가미소풍활혈탕(加味疏風活血湯)이라고 으시시 춥다 얼굴이 확 달아 오르 는 산후증과 어깨·팔다리·허리가 아픈 각기 신경통에 먹는 약이오. 이건 약 먹고 저녁에 방 뜨습게 하고, 이불 덮고, 등골에 땀이 술술 나게 한 시간씩만 땀을 내요. 피라는 건 덥게 하면 물러지게 마련이니 이 약이 들어가고 정성스럽게 땀을 내면 피가 잘 순환돼 나아요. 방문을 꼭 닫고 공들여 땀을 내야지 찬바람 쐬면 땀 내나마나예 요. 그런데 산후증은 이 약 다섯 첩 먹는 동안 머리가 무겁던 게 거뜬해지고 몸이 가벼워지면서 낫지만, 어깨· 팔·다리 아픈 각기신경통은 이 약 다섯 첩에 덜 낫는 수가 있어요. 그러면 다섯 첩 더 지어다 먹어요." 그리고 윤 옹은 자신이 처방해 준 약을 먹을 때 금기해야 할 사항과 그 이유를 설명해 준다. 금해야 할 음 식은 일반 한약을 복용할 때와 동일했으나, 우황청심환·웅담을 금해야 한다고 지적하는 점이 특이했다. 이들 약 은 약성이 세어서 한약의 약성을 죽이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성자 씨가 가고 나자 이번에는 강릉에서 온 뚱뚱한 체격의 김명기(취재 당시 49세 남자) 씨가 윤 옹의 앞 에 와 앉았다. "머리 아파요?" "머리가 자주 아파요. 평상시 장도 나쁩니다." "피로하지 않아요?" "자주 피로해요." "입은 마르지 않나요?" "그런 건 없어요. 근데 담이 등으로 해서 옆구리로 해서 돌아다녀요." "그건 혈액 순환이 아니 돼서 그런 거예요. 팔다리에 신경통이 있지요?" "예" "혈액 순환이 안 되니 자연 신경통이 있을 수 밖에 없는 거요. 기침 가래 있나요?" "기침은 있고 가래는 없어요." "변비 있는가요?" "변비는 있어요." "소화는 잘 되는가요?" "잘 안 돼요." "술 자시고 나면 배가 아프지 않아요?" "술 먹으면 그 다음날 아침 설사 나고 그래요." 그건 주체가 있어서 그런거요. 사람은 대소변이 시원하게 나가야 돼요. 대 소변이 시원치 못하면 속에 가스 가 차고 좋지 않아요. 변비 있으니 먼저 그것부터 잡아야 돼요. 몸이 붓는 건 대소변이 잘 나가지 않아서 그래 요." 그러면서 윤 옹은 먼저 변비약인 가미자윤탕(加味滋潤湯) 5첩의 처방전을 내주었다. 그리고 이어 병증에 해 당하는 양기를 보충하여 피로를 덜할 수 있는 보약인 가미육미지황탕(加味六味地黃湯), 주체를 가시게 할 수 있 는 가미대금음자(加味大金飮子), 혈액 순환을 잘 되게 하여 팔다리 신경통을 가시게 할 수 있는 약 가미소풍활혈 탕(加味疏風活血湯), 심장을 진정시켜 두통을 다스리는 신경안정제 가미온담탕(加味溫膽湯) 처방전을 내주었다. 다음엔 주문진에서 온 홍숙자(취재 당시 48세 여자) 씨와의 화 내용이다. "어디가 아픈가요?" "가슴이 너무 아파요. 숨도 많이 차고, 그러다 쓰러지기도 해요. 병원에 가면 신경성이라 하는데, 약을 지어 다 먹어도 여전히 그래요." "깜짝깜짝 놀라기도 하나요?" "예. 깜짝 놀라 자빠지면 자지러지고, 자지러지면 곧장 그대로 뻗어요. 정신은 있는데 말을 못 하고 한 20~30분 있다 깨어나요. 이렇게 된 것은 속이 많이 썩으면서도 말을 못하고 살아왔기 때문인데, 정신이 갈수록 흐려지고 멍청해지는 것 같아요." "혈압은 어떤가요?" "높아요." "입이 마른가요?" "많이 말라요." "소화는 어떤가요?" "위 사진을 찍어 보니 위가 부었다고 해요. 아랫배가 아파요." "변비는 있는가요?" "예. 그런데 할아버지, 한 가지 여쭐 게 있는데, 병원에 가니까 아랫배가 아픈 건 자궁염증 때문이라고 자궁 을 들어 내라고 해요. 의사 이야기는 자궁에 염증 생길 우려가 있고, 고통스러우니 아예 들어 내라고 해요." "그건 들어 내선 안 돼요. 수술하는 건 부득이한 사정에서나 하는 거지 무턱대고 하는 게 아니예요. 수술이 란 아무리 잘해도 십 년은 감수(減壽)해야 해요. 그건 수명과 대단히 영향이 많아요. 지금 여기 오는 여자들 자 궁수술이다 뭐다해서 자궁 건드리고 허적거려 놔, 신경통이다 냉이다 염증이다 해서 오는 여자 많아요. 냉이 있 는가요?" "냉은 없어요." "냉이 없는데 무슨 자궁염증이 있어요. 염증이란 건 이리 됩니다. 애기 안 낳으려고 긁어 내려다 자궁이 긁 히면 그게 곪는 수가 있어요 그게 자궁내막염이예요. 그걸 순리로 다스려야지 아무리 고통스럽다고 우격다짐으 로 무작정 잘라 내면 그 화가 더 커요. 그리고 열이 난다고 해서 냉수 찜찔하는 것도 못된 치료요. 열이 나는 건 대개 혈압이 높고 심장에 열이 나기 때문인데 냉수를 쓰면 혈관이 굳어져 그대로 터져요." 그러면서 윤 옹은 홍숙자 씨에게 혈압 내리는 약인 가미승마활혈탕(加味升麻活血湯), 변비약인 가미자윤탕 (加味滋潤湯), 입 마른 데 먹는 약인 가미연자황련(加味蓮子黃連)탕, 위장약인 가미내소옥설산(加味內消沃雪散), 심장 신경안정제인 가미온담탕(加味溫膽湯), 산후 각기신경통에 쓰는 가미소풍활혈탕(加味疏風活血湯) 등의 처방 전을 해주었다. 옆에서 지켜 본 결과 윤 옹은 병의 진단을 주로 문진(問診)에 의해서 하였다. 예로부터 동양의학에서 병의 진단은 의사가 환자의 오한과 열나는 상태·땀·머리와 몸통의 상태·대소변·음식과 입맛·가슴과 배 등의 상 태를 물어 보는 문진(問診), 의사가 환자의 의식 상태·얼굴의 색깔과 윤기·체격·영양상태·몸가짐·살갗 등을 살펴보는 망진(望診), 맥을 짚어 보고 환자의 몸을 만져 보면서 병적 증상을 찾아내는 절진(切診), 말소리·숨소 리·기침 소리·딸꾹질 소리·신음 소리를 들어 보고 입안 냄새와 대소변의 냄새를 맡아 보면서 병적 증상을 찾 아내는 문진(聞診)이 있다. 이를 사진법(四診法)이라 한다. 대개 윤 옹이 물어 보는 내용은 머리가 맑은지, 피로가 있는지, 혈압이 높은지, 잠이 잘 오는지, 기침 가래가 있는지, 팔다리가 저리는지, 대소변은 잘 보는지, 소화가 잘 되는지, 입맛이 없고 입이 마르지는 않는지, 힘이 달 리지는 않는지, 자궁에 염증이나 냉이 있는지 등이었다. 한편 윤 옹의 처방은 일반적인 한약처방에 비해 약재가 3배 가량 많았다. 그리고 처방전도 증세에 따라 일 일이 해주다 보니 보통 한 사람 당 5~6씩 되었다. 처방 당 약을 지어먹는 양은 보통 2~10첩씩이었다. 처방이 많 고 약재가 많이 들어가는 것에 대해 윤 옹은 요즘의 병은 옛날과 다르기 때문에 약성을 응용하여 다른 약재를 가미해야 하고, 또한 순서적으로 병을 하나하나 잡아 나가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런 윤 옹의 처방을 받고 환자들은 대개 인사치레로 5천원씩 놓고 갔다. 간혹 "얼마 드릴까요" 하고 묻는 이가 있으면 윤 옹은 "종잇값이나 주시오"라고 담담히 말하였다. 이런 윤 옹의 처방에 대한 치료효과는 어느 정도일까. 치료 차 온 사람들에게 물어 보았다. 먼저 강원도 정 선에서 온 김재곤(취재 당시 50세 남자) 씨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전에도 여기 오셨습니까?" "대여섯 번 왔어요." "어디가 아프신가요?" "제가 아픈 게 아니라 제 아내가 아파 여기 처방을 받아 약을 지어 먹었지요." "효과가 있었나요?" "제 아내는 오래 전부터 빼짝빼짝 마르고 두통과 복통이 심했어요. 그런데 관록 있는 병원에 가서 종합 진 단해 보았지만 이상이 없고 신경성이라고만 해요. 그간 여러 가지 치료를 받았지만 효험이 없었어요. 재작년엔 더욱 악화돼 피가 순환이 안 돼 몸 한 쪽은 차갑고, 심장이 약해져 조그만 일에도 벌벌 떨고, 음식을 먹으면 구 토하는 등의 증세를 보였어요. 그리고 먹질 못하니 체중이 10kg이나 빠지고 정말 말도 못할 지경이었어요. 양약 도 엄청나게 먹어 부작용도 심했어요. 그러다 여기 와서 처방을 받아 약을 지어 먹었는데, 당장 구토를 동반한 두통이 없어졌어요. 일단 식사를 하게 되니 체중이 점차 돌아오고, 이젠 건강을 많이 회복했어요. 목 뒤에 땀이 흐르는 것만 고치면 되겠어요. "병원에서 못 고친 병을 고쳤으니 기쁨이 크겠어요." '병원에서 못 고친 병 고쳤다고 하면 누가 믿으려 하지 않아요. 산골 영감이라고 누가 알아주려고 하지 않지 만, 여기 오는 사람들 이야기 들어 보면 우리 집사람만 효험을 본 게 아니예요. 다들 고마워서 올 때면 음료수나 과자를 사오는데, 부담도 없고 병도 치료할 수 있으니 우리 같은 사람들에겐 여기가 안성맞춤이예요." 김씨의 말을 듣다 보니 집안으로 들어오면서 마루에 가득 쌓인 음료수 상자를 본 생각이 났다. 김씨도 집에 서 해온 떡과 인절미를 윤 옹에게 선물하며 몇 번이고 각별히 감사의 마음을 표시하였다. 김씨는 자신이 소개해줘 정선에서 윤 옹의 처방으로 산 사람만도 40~50명은 된다며, 위장병에 시달리는 아 들과 냉증에 시달리는 딸의 처방을 추가로 해 가지고 갔다. 그가 소개해준 사람이 많은 만큼 그가 경험한 치료효과도 컸으리라 생각하였다. 강릉에서 온 박선자(취재 당시 52세 여자) 씨는 친정어머니가 윤 옹의 처방대로 약을 지어 먹고 반신불수의 중풍이 나았고, 그 뒤 시댁 어른도 비슷한 증세를 치료했다고 한다. 주문진에서 온 최순희(취재 당시 52세 여자) 씨는 교통사고를 당한 후 어혈 타박통으로 머리가 반쪽으로 쪼 개질 정도로 아팠다고 한다. 허리도 아파 그 동안 병원치료도 많이 받고 한약도 많이 먹었지만 낫지 못하다, 윤 옹의 처방대로 약을 지어 먹고 나서 비로소 쑤신 게 한결 사라졌다고 한다. 그는 부인병으로 고생하는 이웃집 아주머니를 소개해 데리고 와 처방전을 받아 가지고 갔다. 이 밖에 몇 사람에게서 체험담을 더 들을 수 있었으 나 내용은 비슷하였다. 윤 옹은 올해 아흔두 살이다. 눈·귀·이빨이 말짱하고, 기력은 서른 가량은 밑으로 보일 만큼 정정하였다. 슬하엔 아들 둘과 딸 셋을 두었는데, 큰 아들도 벌써 일흔 살이 넘은 노인이라 한다. 고향은 현재 살고 있는 죽 정리 마을이며 같은 곳에서 15대째를 살고 있다. 그의 아내는 그와 동갑으로 18살에 시집와 지금껏 해로하고 있는데, 몇 번이고 '가려는 걸' 갖은 약을 써서 억지로 붙잡아 두고 있다고 한다. 지난 겨울을 지나며 이번에는 예전보다 심하게 앓고 누워 있는데, 그의 아내가 죽으면 그도 의술을 그만두려 한다고 말한다. 자기 사람도 못 고치는데, 어떻게 남을 고칠 수 있냐는 게 그 이유 였다. 그가 의술을 배운 것은 25살 때이며, 우연한 일이 계기가 되었다. 당시에 현재 살고 있는 거진에서 북으로 10리 가량 떨어진 대진에 갔다가, 길가 막걸리 집에서 어떤 백발 노인 한 분을 만났다. 하얀 머리 하얀 수염에 흰 바지저고리를 걸친, 일흔 살쯤 되어 보이는 그 노인이 윤 옹에게 <방약합편> 새 책 한 권을 주며, 막걸리 값 이나 달라고 했다. 그래서 그는 은전 50전짜리 두 개를 주었다. 당시 쌀 한 말에 1원 했으니 쌀 한 말 값을 치 른 셈이었다. 그리곤 잠시 있다 보니 그에게 <방약합편>을 준 노인은 어디로 간 지 모르게 사라졌다. 지금도 그는 그 노 인이 사람이라고 생각치 않는다. 그 책을 집에 가지고 와 본 그는 의서임을 알고 읽기 시작했는데, 보기만 하면 금방 잊어버려 나중에 베껴 가면서 수백 번을 읽었다. 그 베낀 분량만 해도 한 짐은 될 것이라고 그는 들려준다. 그렇지만 의술하라는 팔자소관인지 공부를 하면서 전혀 싫증이 나지 않았다.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編義自見)이라고, 그렇게 한 10년 지나니 책의 내용이 선연히 머리에 들어오고 문리 (文理)가 터졌다. 어떤 약재의 약성은 무엇이고 어떤 병엔 무슨 약을 써야겠다는 문리가 열리고 자연히 응용이 되었다. 당시에 그는 동의보감을 구해 읽었더니, 그가 생각한 문리 그대로였다고 한다. 그러나 윤 옹은 현재 연 로한 관계로 자신이 터득한 한약재의 약성과 가미의 기준을 하나하나 설명하지는 못했다. 윤 옹이 보여 주는 당시 백발노인에게 받은 <방약합편>은 손때가 얼마나 묻었는지, 색이 바랠 대로 바래고 닳을 대로 닳아 있었다. 그것은 바로 윤 옹이 의술을 깨친 흔적이었다. 아무튼 윤 옹의 의술은 <방약합편>을 달 통한 의술이라 하겠다. 이렇게 의술을 터득하던 윤 옹의 첫 번째 환자는 그의 딸이었다. 하루는 딸이 학교에 갔다가 울면서 돌아왔 다. 왜 우느냐고 물으니 귀가 먹어 이제 학교에 못 가게 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그때 의서를 보고 배운 실력(?)을 발휘하여 처방을 내 약재를 구해 먹었더니 감쪽같이 나았단다. 그 뒤에는 그의 어머니가 중풍에 걸려 쓰러졌는 데, 그때도 그는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자신의 처방대로 약을 지어다 모친을 멀쩡히 일으켜 세웠다. 윤 옹이 읽고 의술을 터득했다는 <방약합편>은 조선 말기의 명의인 황도연(1808~1884)이 집필한 책이다. 1885년 (고종 22년) 1권1책으로 출판되었다. 책의 앞부분에는 약재의 약성을 외기 쉽게 노래처럼 엮은 약성가 (藥性歌)를 비롯하여 약성 강령과 병증에 따라 약을 쓰는 방법들을 설명하였고, 책의 뒷부분에는 치료효과가 좋 은 저자의 경험방을 실었다. 또 <방약합편>에는 5백26개의 약처방이 실려 있는데, 거의 모두가<동의보감> <의종손익> <제중신편> 등 우 리 나라 의학책에서 골라 낸 좋은 처방들이다. 이 처방은 3단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는데, 매 처방의 조성·용 량·만들어 쓰는 방법·적응증·가감법·처방 출처 등을 실었다. 처방의 윗단에는 개별적으로 5백14종 약의 성 미와 적응증을 집약하여 약성가 형식으로 실었다. 그런데 윤 옹은 평생 의술로만 살아온 것은 아니다. 20살에서 35살까지는 거진 면사무소와 고성 읍사무소에 서 공무원 생활도 했고, 35살에는 명태잡이 배 다섯 척을 부리는 선주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고기가 잘 안 잡혀 5년만에 토지 있는 것 댓 마지기만 날리고 물러나야 했다. 그는 고기잡이에 실패했던 것은 활인성(活人性)을 해 야 할 의원이 살생업(殺生業)을 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사업에 실패한 그는 그때부터 묵묵히 농사를 짓고, 아파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약처방을 내주는 일로 일관 했다. 처음에는 집안 식구나 일가 친척이나 동네 사람들 봐 주었는데, 그의 처방을 받고 환자들이 쉽게 낫자 자 연히 인근에서 찾아오는 사람의 수가 많아지기 시작했다. 용하다는 소문도 났다. 의사면허가 없는 그에게 찾아오 는 환자가 많아지자 한때 환자를 피해 다니기도 했지만, 결국 찾아오는 환자를 물리칠 수 없었다고 한다. 병원에 가도 못 낫고 찾아오는데, 모르면 몰랐지 약을 쓰면 번연히 나을 걸 알면서 돌려보낸다는 건 사람의 도리가 아 니었다는 게 그의 말이다. 지금까지 그가 치료해 온 환자수는 하루 평균 5명. 최근에는 부쩍 많은 환자가 찾아온다고 한다. 50년 넘게 환자를 손 봐 주었으니 그의 손을 거친 환자수는 7만 명은 족히 넘는다. 그가 주로 완치해 내는 병은 와사풍· 축농증·당뇨병·중풍·신경통 등이고, 간혹 암 환자도 있다고 한다. "와사풍은 25살 적에 배운 것이야. 당시 가족 중에 하나가 와사풍이 생겼는데, 사방에 수소문하니까 '어디 가면 어떤 노인이 잘 고친다'고 하더군. 가보니 우리 일가 영감인데, 노환에 걸려 누워 있었어. 그런데 그 영감이 '너희는 영리하니까 내가 얘기한대로 하면 잘 나을 것이다' 그러면서 어깨에다 뜸을 뜨면 낫는다고 가르쳐 주더 군. 와서 실제로 해보니 잘 나아." 윤 옹은 스물다섯 살 적부터 와사풍 환자를 수천 명 고쳤다고 말하는데 그 방법은 간단하였다. 먼저 주먹을 힘껏 쥐고 팔을 옆으로 벌리면 어깨에 움푹 들어간 곳이 나오는데, 그곳에 쌀알만한 뜸장을 뜸을 뜬다. 입이 왼 쪽으로 돌아갔으면 오른쪽 어깨에, 오른쪽으로 돌아갔으면 반대편인 왼쪽 어깨에 뜬다. 한차례 3~5장 뜨는데 이전에 침을 맞은 사람은 보름 간격으로 서너 차례 해야 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한 차례만 시술해도 시술 후 3~4일이면 입이 제자리로 돌아온다. 와사풍은 대개의 병원에서 고치기 힘들어 하는데, 이처럼 간단한 방법이 있다니 놀라울 뿐이다. 축농증 역시 윤 옹이 1백% 완치를 자신하는 병인데, 미국에서도 교포가 치료를 받으러 온다고 한다. "한 번은 서울서 수건을 코에 대고 축농증 환자가 왔어요. 어찌 왔냐 물으니 '축농증 수술을 15번 했는데 낫지 못하고 이제 죽어도 좀 덜 아프다 죽고 싶어 왔습니다'고 말해. 보니까 병원에선 축농증 수술만 할 줄 알았 지 수술하면 수술 파상독이 있는 걸 몰라. 그래서 약을 댓 첩 해서 주니 약 갖다 먹고 한 일주일 있다 왔는데 멀쩡히 됐어. '할아버지 덕택에 아프지 않고, 이제는 나을 가망이 있어서 약을 더 지으러 왔어요' 그래. 그만큼 무슨 병이든 약은 있게 마련이야." 한편 당뇨병 또한 윤 옹이 치료에 자신하는 병 중의 하나이다. 그는 당뇨병은 심장에 화혈(火血)이 있어 입 이 마르고 물이 많이 먹히는 것이 시초인데, 위장 또한 약해져 당분이 빠져 나간다고 한다. 따라서 당뇨약을 쓰 기 전에 구갈약을 먼저 쓰고, 다음에 위장약을 차례로 쓰면 나을 수 있다고 한다. 다른 데에서 당뇨병을 못 고치 는 건 이런 원리와 순서를 모르기 때문이라 한다. 윤 옹은 이 당뇨 치료법을 논문으로 발표할 생각이었으나, 의 사면허가 없는 이유로 논문 발표가 불가능하였다고 말한다. 한편 윤 옹은 오늘날 대표적인 난치병인 암 질환자도 고친 적이 있다고 들려준다. 윤 옹의 아야기를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재작년에 서울서 자궁암에 걸린 부인네 둘이 왔어요. 뭐라 하냐면 '저희는 자궁암인데 병원에서 못 고친다 는 사형선고 받았습니다. 먹고 싶은거나 실컷 먹다 가라고 그러더군요. 그런데 사형선고는 받았어도 죽정리 할아 버지한테 한 번 왔다가 죽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왔습니다'고 말해. 그래서 5첩씩 먹으라고 처방을 해주었는데, 왔다 간 지 닷새 된 아침에 전화 왔어. 첫마디가 '할아버지 감사합니다. 어제부터 자궁에서 피도 아니고 고름도 아닌 게 쏟아져 나오더니 깨끗이 나았습니다' 그래. 한 달 전에 한 사람이 찾아왔는데, '제가 재작년에 자궁암 고 친 사람이올시다. 그건 잘 고쳐 줘서 나았습니다만, 위장병이 있어 마저 고칠려고 왔습니다' 그래." 윤 옹의 막내딸도 역시 자궁에 혹이 생겨 병원에서 수술하기로 약속하고, 윤 옹이 처방해 준 약 5첩을 먹고 서 수술하겠다는 날 병원에 갔단다. 그런데 병원에서 눈이 휘둥그래지면서 "아니 당신 혹이 다 없어졌는데 이게 어이 된 일이오?" 하더란다. "우리 아버지가 처방해 준 한약 5첩 먹은 것 밖에 없어요" 하니, "그리 좋은 게 있나. 혹이 다 없어졌으니 그냥 가세요" 했다고 한다. 윤 옹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시간이 많이 흘렀다. 25살 나이에 우연히 접한 <방약합편>을 통해 의 술을 통달한 윤형근 옹. 그의 의술세계는 <방약합편>에 근거하고 있지만, 한약재의 약성을 터득하여 본방(本方) 과는 달리 약재를 세 배 이상 가미(加味)하는 등 오늘날의 각종 난치병을 고치는 그 나름대로의 의술이 있었다. 돌아서 나오는 길에도 환자들의 행렬은 이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