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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세계사] (3시간) 비극의 세계대전이 일어났던 이유?!🔥 지옥보다 끔찍했던 전쟁의 시작과 끝
https://www.youtube.com/watch?v=o_XPnfwpr80
스크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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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알려면 먼저 그 40년 전에 정치적 앙숙이었던 두 사람을 만나봐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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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40년 전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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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단일식 누군지 아세요네 왼쪽에는 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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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마지막 뭐 황제라고 할 수 있을까 사실 독일 역사에 있어서 그 두 사람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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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었죠 그러니까 미스마르크가 우리가 보통 독일을 다시 통일했잖아요 이렇게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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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기하잖아요 그 통일 이룰 수 있었던 제일 큰 인물이 이제 바로 미스마르케였죠 윌슨은 군사적인 거 되게 좋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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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레이드 같은 것도 많이 하고 좀 외국 잘못했던 사람으로 이제 알려지긴 했었죠 다니엘의 지금 잘 설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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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주었는데이 두 사람의 외계 정책의 차이가 훗날 벌어질 사라예보의 총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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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대전의 신호탄으로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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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시다시피 독일의 주변으로 그 쟁쟁한 유럽의 강대국이 붙어 있습니다 오스트리아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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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에 프랑스요 바다 건너에 영국 동쪽에는 러시아가 있었죠 비스마르크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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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생국가인 독일제국의 힘을 키우려면 주변 강대국과 곳 정명충돌을 하면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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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다고 생각하고 내시를 다져야 한다고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비스마르크하고 나이 차이가 무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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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살이나 되는 비델리 미사가 새로 이제 황제가 되는데이 빌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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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세하고 생각이 많이 달랐어요 좀 젊었으니까 패기가 있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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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이 힘이 커졌고 더 키워서 더 확장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죠 그래서 내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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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지자고 하는 그 비스마르크하고 독일의 힘을 확장하자고 하는 그릴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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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세하고 매번 부딪힙니다 그래서 결국이 감정의 골을 이기지 못하고 비례를 2세가 사직서를 쓰라고 비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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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크 요구합니다 그래서 결국 비스마크가 총리직에서 물러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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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이 비스마르크의 사직이 나중에 엄청난 폭풍우를 불러 오리라고는 그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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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못했을 거예요 서식서가 왜 그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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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그래서 이렇게 거칠 것이 없어진 비례를 미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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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도 다른 유럽 여관들처럼 해외 식민지를 얻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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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제육제시대였기 때문에 영국이나 프랑스가 유럽 이해 지역에 많은 신민들을 가지고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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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은 그게 없었거든요 그래서 독일도 적극적인 해외 평창 정책을 펼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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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바로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이유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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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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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이요 러시아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는데 러시아와의 관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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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어버리게 됩니다 당시에 그 독일과 러시아는 프랑스 그리고 오스트리아 제국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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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났을 때 서로 중립을 약속한다는 동맹관계였는데 독일이 동맹관계를 깨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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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외교도소를 구축했던 것이죠 반면에 러시아는 오스트리아 제국하고 오랜 갈등을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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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고 있었는데요 두 나라 사유를 조정해주던 독일과의 동맹이 소멸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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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동맹이 필요했던 것이죠 프랑스 예 맞습니다 프랑스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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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맹 관계를 맺습니다 그리고 프랑스가 독일을 러시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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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을 견제하면서 이런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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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단어가 바로 이제 영국이죠 영국은 항상 다른 나라보다 더 강력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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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비례금 2세가 영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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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넘으려면 독일이 강력한 육근뿐만 아니라 해군도 키와 했던 거예요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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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자원을 해군에 투입하면서 해군력을 키우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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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공포심을 느꼈던 나라가는 영국이죠 그래서 영국과 독일 사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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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히 안 좋아지게 됩니다 차이가 다 안 좋아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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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에 있는 나라들이 차이가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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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쳤네요 그래서 영국이 자신의 패권이 흔들리다 생각을 해서 새로운 친구를 찾아요 또 더 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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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호적인 관계를 프랑스와 냈습니다 그래서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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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그리고 영국 그리고 러시아가 동맹국이 동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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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에 세 번째 실수를 하게 되는데요 또 해 예 여기 지도에 안 나와 있지만 여기 이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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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 아프리카 북쪽에 모로코라고 하는 지역이 있는데 요것은 이제 프랑스가 찜했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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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서 이제 차지하려고 했었는데 독일이 것을 방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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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이 자신들도 모로코의 이권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서 프랑스의 움직임을 저지했던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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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가뜩이나 사이가 안 좋은 프랑스와 독일 사이에 또 숫자 하나도 안 좋아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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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된 듯해요 아니 저 정도 지금 상황이 돌아가는 거 보면 야 우리 큰일 났는데 이런 거는 몰랐나 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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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하나 독일이 베를린과 비잔티움을 입고 그리고 마그다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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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는 철도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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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힘이 이제는 동유럽 그리고 중동까지도 확산되게 됐던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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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제일 화를 냈던 나라가 바로 영국이에요 식민 제국을 통해서 전 세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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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주제는 패권 국가였었는데 여기에 바로 독일이 도전하게 됐던 것이고 이런 상황 때문에 영국과 프랑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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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빠지게 되죠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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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바로 살아야 보이 총성 사건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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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1914년 6월 28일입니다 일요일 오전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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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이제 오픈카를 타고 등장을 합니다 대공부부가 그리고 군중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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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으면서 이제 손을 흔들었겠죠 이때 누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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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에서 권총을 뻔합니다 그리고 멈춰서 있는 대공부를 저격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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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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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이 사건이 세계를 뒤흔든 사라예보에 총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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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바로 치명상을 입고 결국 목숨을 이룬 대공 부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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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입니다 오스트리아는 완전 분노의 막 휩싸였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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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저걸 완전히 막 적국이라고 하긴 좀 뭐 하는 거 아니에요 대공을 쏜 인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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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살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름이 까브릴로 프린치 그런 세르비아 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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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모 조직에서 이름이 검은손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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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비아의 어떤 성장과 확장을 방해하지 말라고 의사표현을 한 거겠죠 뭐 죽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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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방해하지 말라고 그래 그거 더 방해하겠다 그래서 제휴익에선 후보자인 대공 부부가 세르비아 청년이 쏜 총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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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서 목숨을 잃었기 때문에 오스트레 대구의 발칵 뒤집히죠 그래서 생각 같아서는 금방 전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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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 오스트리아 제국이 섣불리 세리베아한테 전쟁을 선포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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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세르비아 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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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나라가 있었던 것이에요 어디 러시아 같은 슬라브게 세르비아도 슬라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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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였고 그 다음에 러시아도 슬라브 북한데 러시아는 쉽게 말하면 자기네가 그 슬라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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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맏형이다라고 생각했던 거예요 이건 귀여운 동생 정도로 생각을 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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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가 생각할 때이 세르비아를 건드리면 분명히 러시아가 가만히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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않을 거라고 생각을 해서 좀 화를 꾹 참았던 거예요 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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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이 나타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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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독일이 오스트리아 제국을 자기가 무조건 지원해 주겠다고 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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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 것입니다 그래서 역사께서는 이걸 백지수표라고 하는데요 너희 맘대로 해라 그리고 우리가 뒤를 봐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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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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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8일에 오스트리아 제국이 행동에 나서게 됩니다 독이 도와준다고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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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말하면 용기가 생긴 거죠 그래서 세르비아에게 선전포고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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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럼 이때 누가 나타나겠습니까 러시아 러시아가 군대를 동원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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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로 가게 됩니다 그러면 또 이때 비례림이 제가 가만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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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이 내 형제국가인 오스트리아를 왜 때리느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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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그러니까 또 한 나라가 나오게 됩니다 영프겠죠 영프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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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가 독일로 이제 군대를 동원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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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이 싸고 있는데 뒤통수 왜 치냐 해가지고 독일이 프랑스에게 또 선전포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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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프랑스로 공격하게 될 때 어디를 거치냐면요이 벨기를 거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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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협약을 위반했다고 해서 이때 영국이 독일에게 선전법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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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도 가만히 있고 또 선전포고는 마땅히 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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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때 영국하고 사이가 나빴던 나라가 또 있었어요 그날과 어디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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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저기 멀리 있는 오스만 제국입니다 전함과 연관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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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통수 맞다 생각을 해서 이번 기회에 영국의 본때를 보이겠다고 하면서 오스트리아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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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과 한편이 돼서 전쟁에 끼어들게 되죠 또 한 나라가 이제 불가리한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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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리베와 불가리아 사이의 원래부터 국경 분쟁이 있었기 때문에 세르비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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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제 전쟁을 하게 됐죠 그래서 전쟁이 두 지역으로 나뉘게 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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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이 동맹국입니다 그리고 이제 한쪽이 연합일 텐데 결국이 전쟁의 전선이 유럽의 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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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국가들이 참여하는 상황이 됐다는 겁니다 약간 지금 평소에 사이 안 좋았던 나라들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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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싸우고 있는 표현한 거네 그냥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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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큰 전쟁 이렇게 그 시작은 오스트리아 대공부부의 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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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이었지만 국지전으로 끝날 수 있었던 사건이 전체 유럽의 열강들이 참여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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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쟁으로 이제 바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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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이 전쟁의 소용들에 휩싸인 유럽의 분위기가 어땠을까 한번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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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시기 바랍니다 군인도 그렇고 민간인도 황새는 사실 처음에는 되게 전쟁이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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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끝날 줄 알았어요 그래서 똑같이 당연히 우리 그냥 짝 싸움하고 이제 끝내 버리자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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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었어 사람들이 되게 기쁜 마음으로 갔어요 즐거운 마음으로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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갔다고 해요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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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이도 속이면서 자기가 참여한다고 그런 사례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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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도 마찬가지였어요 드디어 전쟁이라는 말을 많이 쓸 정도로 굉장히 기대하고 그 당시에 사진들을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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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역에서 떠날 때 부모님들은 웃으면서 자기 아이들 보여주고 전체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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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가 우리 가다가 싸우자라는 분위기니까 기꺼이 싸우겠다 이런 거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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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세계의 역사에 있어서 이제 진짜 모든 거 약간 장담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만약에 미스마르크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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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었더라면 과연 여기까지 그 상황이 벌어졌을까라는 생각 많이 해요 왜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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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어떤 뭐 독일의 과대평가하는 거 어떤야만 그런 거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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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영향을 미친 거 같아요 사실 그 빌런 2세가 아무 대책 없이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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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을 한 것은 아니고 믿는 구석이 있었습니다 전쟁의 승자로 만들어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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슐리펜 계획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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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은 유럽의 한가운데 있기 때문에 이점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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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그 단점일 수도 있는데요 어떤 단점이 있을까요 한가운데 위치에 협공을 당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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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은 동부전선에서는 러시아와 싸워야 했고요 서부전선에서는 프랑스와 싸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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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습니다 그래서 이거 슐리펜이라고 하는 장군이 이런 상황을 미리 예상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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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을 세워놨던 거예요 독일과 프랑스는 근대화가 더 많이 되고 있고이 철도로 빨리 병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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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반면에 러시아는 국토가 워낙 넓고 근대화가 상대적으로 뒤쳐져 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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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에 병력을 이동하는데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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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이 계획은요 전제조건이 하나가 있습니다 시간입니다 타이밍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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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을 6주 안에 한 달 반 사이에 다 해야 된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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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게 철도를 통한 병력 수송의 속도를 계산하고 만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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놓은 계획인데요이 계획이 결론을 말한다면 완벽한 실패로 끝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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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와 독일 접경지대는 프랑스가 상당히 방비를 철저히 정몽공기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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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을 해서 우회를 합니다 돌아가는 것이죠 어디로 돌아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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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를 지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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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이 워낙 강력한 육군 국가이긴 한데 벨기가 너무 처절하게 저항을 했기 때문에 여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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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많이 뺏기게 돼요 이게 바로 첫 번째 실패의 원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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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가 바로 생각보다 빨리 군대를 만나러 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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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으로 러시아가 빨리 움직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원래 계기에 따르면 무지막지한 병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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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아서 프랑스로 가서 이제 파리를 점령해야 되는데 당장 러시아가 치고 들어오니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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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력의 일부를 빼냅니다 그래서 돌려서 러시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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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게 되죠 오스트리아가 그때 좀 막아주면 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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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고 있고요 그 다음에 이제 오스트리아도 러시아를 공격하는데 오스트리아 대국은 사실은 좀 약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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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고요 별로 도움이 안 됐습니다 문제는이 서부전선입니다 그 독일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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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가 빠져나가기 때문에 징계 속도가 늦어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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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요인은 바로 이제는 프랑스입니다 독일이 계속 대포로 공격을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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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가 가지고 있는 철도망을 다 파괴해버렸던 거예요 그러니까 열차로 병력이 이동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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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군 입장에서는 이제 포격으로 철도망을 다 끊어 놨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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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군이 그 병력을 지루하지 못할거다 생각하고 이제 승기를 잡았다 생각을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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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난데없이 프랑스군의 원병이 도착을 해서 독일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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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아낸 것이죠 와 이렇게까지 프랑스군이 빠르게 움직이다니 하면서 혀를 내도록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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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를 동원을 해가지고 군인들 이렇게 빨리 이송을 할 수 있었어요 당시 그 프랑스 군인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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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택시를 타고 이동하는 상황을 담은 영상이 있는데요 한번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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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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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 동원령을 내려서 택시 600대를 모읍니다 병력을 태워서 이동을 하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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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그 실어나는 병사의 수가 6천명이에요 근데 6천명이 어떻게 보면 작을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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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지만 급한 전선에 투입돼서 제 역할을 하게 되면서 위기에서 구현했던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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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그러면서 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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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이 미리 세워놨던 슐리 비행기획이 실패하게 됐던 것입니다 독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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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러시아를 두고 프랑스를 두고 싸워야 되는 그 상황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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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몇 달 정도 싸우다가 단기전으로 끝났고 생각을 했는데 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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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정도가 아니었어요 4년 5년이에요 장기전으로 진행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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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그 비극이 20세기 초에 개발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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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과학 기술들이 신무기로 변해서 전선의 투입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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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나게 숱한 병사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상황이 기적이 됩니다 참혹한 세력전이 되었던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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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 9월에 마른 강에서 전투가 벌어지게 되는데 독일군이 파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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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km 앞까지 진격할 정도로 크게 이제 선전을 했었는데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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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한 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떤 무기였을까요 무기 네이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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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탄 아 그 치명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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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위력을 가진 총 가격 연속으로 총을 쏠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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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총 기관총 프랑스군이 영국군이 엄청나게 강력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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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세로 독일군을 공격하고 있었는데 이때 독일군이이 공격을 막아내는 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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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용했던 것이 바로 기관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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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적군이 돌격을 해오면
20:10
기관총을 가지고 대응사극을 하면서 적군의 공격을 막아내고 무수한 병사를 한꺼번에 다 죽일 수 있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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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생각해야 될 점이 그렇게 기관총으로 많은 그 병사들이 목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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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리는데 그 뒤로도 돌격 앞으로라고 하는 19세기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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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전술이 계속 사용되면서 병사들 계속 주고 가게 됩니다 동요 앞으로 하면 안 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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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총을 하면은 네가 앞으로 할 것 같은데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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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사라면 기관총 쏘고 있는데 어떻게 나가 근데 그 사이에 무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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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지고 전쟁치가 달라졌지만 19세기 마인드를 가졌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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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교들이 20세기 전쟁을 지휘하게 되면서 비극이 바로 기관총과 그 기관총이 희생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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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사들의 모습입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됐군요 독일이 마른 전투에서 이제 밀린
21:09
다음부터 도경이 퇴각하게 되는데 더 이상 후퇴를 안 된다 생각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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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를 또 만들어냅니다 뭐를 만들 거야
21:20
지뢰아입니다 자 규현씨 어떻게 생각나는 거 없을까요
21:25
[음악] [웃음] 무기를 만든 거예요 모기는 아니고요 아 무기는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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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진지 체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땅을 파가지고 이거 싸는 담 예 맞습니다 그것을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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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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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식으로 몸을 꽃꽂이 세우고 돌진하다가는 다 죽어가는 거예요 그래서 기관총과 대포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은 땅을
21:57
파고 들어가는 겁니다 사람 키가 보통 이제 1m
22:02
60 70 80이니까 안전해지려면 그 땅을 2m 깊이로 파야 됩니다
22:08
[음악]
22:13
그 다음에 앞에 다시 철사를 공격할 때
22:19
넘어오지 못하거나 아니면 진급 속도를 늦추기 위해서 [음악]
22:25
그리고 적군이 그 어떤 용케 방어선을 뚫고 참호해 들어올 수
22:31
있잖아요 그때를 생각해서 참호를 아주 복잡하게 미로처럼 만들어 봤습니다
22:39
차모에 들어갔을 때 길을 잃고 헤매도록 만든 거죠 본인들도 자기
22:44
핀도 헷갈리는 건가 생겨나게 됐어요
22:59
그리고 이제 전쟁을 하루 이틀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쉴 수 있는 공간까지 만들어 놔요
23:04
그런 참호가 바로 대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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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호의 체계가 복잡해지죠 그래서 이때 처음으로 참호가 대규모로 이제 구축되기 시작을
23:19
했고요
23:25
[음악]
23:32
이 참호의 규모가 얼마였는지 한번 지도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23:40
이 북해에서 시작돼서 스위스 접경지대까지
23:45
참호체계가 완성이 되는데이 길이가 760km입니다
23:51
760km입니다 그걸 다 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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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선거리로 서울에서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까지 이어지는 고려 생각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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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게 하나로 이어져 있는 건 아니죠 그러니까 처음에는 띄엄띄엄 이어져 있었는데 전쟁이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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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화 되고 참호를 더 정교하게 짜다 보니까 거의 하나의 선으로 이어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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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 것이죠 아니 그리고 저기 지금 남아 있어요 일부가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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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으로 덮여 있다고 하는데 항공 사진으로 찍어보면 선이 보인다고 그래요 지금도
24:35
[음악]
24:45
자 지금까지 전쟁을 하면서 뭐 군대 그리고 뭐 정치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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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맹관계 얘기를 했지만 전쟁을 수행했던 일반 병사들이 어떤 상태에 있었는가 이것을 살펴봐야
24:58
됩니다 기관총과 대포를 피해서 참호를 파고 들어갔다고 했죠 [음악] 그 안에서도 사실은 안전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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않았습니다 생명을 위협하는 요소가 상당히 많이 있었어요 일단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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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생입니다 위생 제1차 세계대전 기간이 19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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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5일부터 본격적으로 참여를 파기 시작해서 1915년 그리고 3월 10일까지 그 비가 안 오는 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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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18일이었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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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빼는 하수시설이 없었기 때문에 계속 참호 안에는 물이 차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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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30cm는 항상 차 있었다고 하죠 발목이 항상 젖어 있는 상태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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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또 많이 내리면 허리 겨드랑이까지 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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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올라죠네 사실은 물 피해서 그 참호 밖으로 머리를 내밀면 그 순간 죽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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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게 저격에 목숨을 이길 수 있기 때문에 참아야 되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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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빗물 속에서 며칠 동안 근무를서야 됩니다 다행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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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안차있다고 하더라도 비가 계속 내리니까 옷이 물에 젖어서 불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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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사들이 군복을 입고 그 다음에 외톨입고 총을 휴대하고 비를 맞으면 무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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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어나잖아요 그래서 온 무게만 15kg이었다고 해요 상당히 무겁죠 또 문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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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입니다 최악의 상황인데요 규정에 따르면 참호에서 이제 1.5m
26:47
깊이로 변수를 파야 되는데 [음악] 비가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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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유아도 역류하죠 오모라고 빗물하고 섞여서 계속 차 올라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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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질병이라든지 각종 이유로 주어간
27:09
시체들 뭐 아군 지체 접근시체가 널려 있는데 당연히 부패하겠죠 그래서 엄청난 그
27:15
악취가 나는데 그 악취를 줄일 수 있는 방법 중에 하나가 바로 담배를 피우는 거예요
27:23
근데이 담배로서도 막을 수 없는 또 다른 또 위험요소니
27:28
요인이 있습니다 더 끔찍했던 것이 뭐야 뭐가 있을까요 똥 냄새겠죠 오물
27:34
냄새들 거머리 바로 쥐떼들입니다
27:41
쥐가 보통 조그마니까 얕보기 쉬운데 시체를 먹으면서 토실토실해져 가지고 나중에 이제
27:47
강하지만 크게 됩니다 이제 강하지만 크게
27:55
쥐예요
28:02
저
28:08
뒤가 시체인 줄 알고 먹고 뭐 산 사람은 안 먹고 이랬겠냐고 다 덤비지 않았을 거예요
28:14
참호 안에 물이 차면 쥐떼가 헤엄을 치고 돌아다니는 거야 시체를 파는데 그치지 않고 자고 있는
28:22
병사들을 시체로 착각하고 공격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가다가 주위에 물려서 피를 흘릴 수도 있고 심지어 죽을
28:28
수도 있기 때문에 병사들이 바로 이제 체인이 달린 마스크를 쓰고 잠을 자기도 합니다 얼굴을 보호하기 위해서
28:37
그리고 10분만 아니라 각종 벌레 해충도 이제 들끓는 거예요
28:44
손목 어깨 팔뚝이었는데 파리떼가 수북하게 앉아 있었고 그 다음에 그
28:50
머릿니 있죠 머릿니가 너무너무 창궐을 해서이 두피 안까지 파고드는
28:57
거예요 그래서 너무너무 가렵고 아프니까 병사들이 머리카락을 다 밀어버려 삭발을 하는
29:02
것이었죠 이 정도는 피부병이니까
29:09
그럭저럭 버틴다고 할 수 있는데 최악의 상황은 바로 참호 발입니다
29:14
참호 발 더러운 물에 군화가 졌는데 그래서 벗지도 못하잖아요 비상하게 걸렸기 때문에
29:21
그리고 씻지도 못하고 이런 비위생적인 생활 때문에이 병이 생기는데 이것이
29:26
바로 어떤 증세를 나타내냐면 처음에는 그 발의 신경이 마비됩니다 그리고 건푸르게
29:33
변해서 썩어가요 결국은 발을 절단해야 됩니다 이것을 바로
29:40
참호 바르라고 부른다는 거죠 [음악] 어 뭐야 저게 발이라고
29:46
[음악] 다 썩었네 진짜 이런 참호 바에
29:55
희생된 병사들이 한두 명도 아니고 부대마다 수십 명 전체 군대는 수천명
30:01
수만 명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죠 그러니까 뭐 아파서 뭐 움직일 수도 없고
30:08
이렇게 뭐 창호 발처럼 끔찍한 상황도 있고요 또 연관돼서 아주 힘든 전쟁
30:14
생활 때문에 새로운 물품도 생겨나게 됩니다 방수 아니에요 바로
30:20
트렌치코트입니다 트렌치코트 두 개 그때 나온 거예요이 당시에 나온 트렌치코트의 모습을
30:26
보여주는 그림이 있습니다 한번 볼까요 우비가 들 것 같은데 [음악]
30:32
우리가 알고 있는 영화나 이런데 많이 밑에 버버리라고
30:40
만드는 외투 코트가 많이 있었는데 이런 그
30:47
코트가 제1차 세계제를 통해서 확산이 되고 개량이 되죠 비가 오고
30:53
추위가 몰아치는 참호 안에서 고생하던 영국 장교들이 방수 기능을
30:59
가지고 있는 옷을 찾게 되는 것이에요 그것이 바로 트렌치코트입니다 트렌치가 영어로
31:05
참호랑 뜻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제 차모아에서 있는 코트라고 해서
31:10
트렌치코트라는 말을 쓰는 것이죠 그리고 트렌치코트 보면은 여기 업계에
31:16
견장이라고 하나요 여기에는 이제 장갑을 이렇게 끼우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 장교들이 명령을 더 호루라기를 부는데
31:23
호루라기를 항상 빨리 꺼내서 볼 수 있게 여기다 걸어 놓는 거예요 그런 용도로 이제
31:28
견장에 있었고요 그리고 전통적인 트렌치 코트를 보면 여기 중간중간에 그 d링이라고 하죠 d자 모양의
31:35
금속제 고리가 있는데요 그 용도는 수류탄을 걸고 다니는 용도였습니다
31:41
[음악] 트렌치코트가 지금은 낭만에 대명사지만 실제로 그 기운을 보면 전쟁과 연관된 그래서
31:48
이때 그 브랜드 있잖아요 버거 때 그 브랜드 되게 돈을 많이 벌었다고 들었어요 저 전쟁기간 동안에
31:56
트렌치코트 덕분에 다시 이제 그 볼로 들어가서
32:02
1914년부터 1918년까지 전쟁기간 동안에 서부전선에서 나타난 전투로 인해서
32:08
죽거나 다친 사람 사상자가 269만 명입니다
32:14
질병으로 쓰러진 병사가 무려 352만 명이에요 훨씬 더 많았던 것이죠 갈수록 그
32:21
병력이 부족해지니까 영국에서는 18세부터 41세까지 남성을
32:27
징집하는 영국 최초의 병역법을 만듭니다
32:39
이 독일의 슐리펜 계획이 실패한 뒤에 그 서부전선이 완전히 지지부진한 상황으로 계속 이어집니다
32:46
자 수많은 병사들이 목숨을 희상하고도 겨우 몇 백미터를 뺏고 뺏기는 어떤
32:52
상태가 이어지거든요
33:09
이런 상황이 이어지게 된 것은 바로 이제 살상만을 위한 과학기술의 정점
33:16
핵무기 이러한 그 무자비한 신무기들의 등장으로 인류가 역사상 가장 참혹한 전투를 마주하게
33:22
됩니다 그러니까 인간 도설장을 방불케 하는 소모전이 시작되었었는데 1차 세계대전에서 최악의 전투로
33:29
손꼽히는 전투가 바로 베르덴 전투예요
33:47
과거 독일과 프랑스가 전쟁을 할 때 프랑스가 패전할 때도 마지막까지
33:53
지키면서 저항을 했기 때문에 프랑스의 자존심이었다고 불렸습니다
34:00
당시 근데이 베르덴이 주 전쟁터가 안 좋기 때문에
34:05
베르덴 요소에 있던 병력과 장비들이 빠져나가서 방어력이 허술해진 상태였었는데요 이때
34:12
독일이이 점을 알아채고 리딩을 직접 집중적으로 공격하는 목표를 사는 것이죠
34:20
독일이 베르덴 요새를 선전한 다음에
34:26
요새를 탈환하려고 오는 프랑스군에게 포격을 퍼부어서
34:31
프랑스 군대를 말려죽이는 전술을 세웠습니다
34:37
전쟁을 끝내려면 아예 병사들의 시가 모두 다 말라야지
34:43
끝난다고 생각을 한 거예요 프랑스군도 마찬가지로 독일군을 모두 죽일 때까지 공격을
34:48
퍼붓습니다 결국 모두가 죽어야 되는 그래야지 전쟁이 끝나는 전투가 그 된 것인데
34:55
당시 이런 상황에서 프랑스군에서 복무했던 한 소위가 일기를 남깁니다
35:00
자 일기의 내용을 규현씨가 한번 읽어 주시겠습니까 인류가 미쳤다 너무나 끔찍한 학살이다
35:08
이처럼 끔찍한 공포와 대학살의 아수라장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35:13
지옥인들 이거보다 끔찍하랴 인간은 미쳤다
35:19
이 뒤에 기록이 이어지지 않아요 끝나버립니다 죽은 거예요이 일기를 쓰고 난 다음에
35:27
독일군 포탄에 맞아서이 장교가 생을 마감하게 되죠 이런 총격과 포격
35:33
속에서 병사들이 지옥을 맛보는데요 좀 끔찍한 얘기지만이 포탄이 터지면서
35:38
파편이 튀어서요 배를 다치게 되면 창자가 쏟아져
35:43
그래서 어떤 병사들은 자기 배에서 흘러난 창자를 손으로 움켜쥐고
35:49
쇼크를 먹은 사람도 있고요 그 다음에 머리통이 날라가서 두개골 없이 목숨만 붙어 있는 그런 상황 이런
35:57
식의 참혹한 광경이 계속 벌어지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10개월 동안 지적된
36:02
전투에서 프랑스군의 사상자가 37만 명을 넘었고요 독일군은 비슷하게 33만 명이 넘는
36:10
사상자를냅니다 저희가 워낙 참상이 지독했기 때문에 프랑스군이이 전투를 일컫는 별명으로
36:18
고기분쇄기라고 하는 별명을 붙입니다 고기 분쇄기 엄청나게 많은 병사들이 그런 식으로
36:24
비참한 최후를 맞췄기 때문에 고기 분쇄기라고 하는 이런 별명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36:31
베르덴에서 당시 포탄이 천문학적인 숫자로 이제 그 발사가 되는데 그 중에서 불발탄
36:39
터지지 않고 남아있는 그 포탄이 1,500만 발이라고 그래요
36:44
1,500만 발
36:51
[음악]
37:03
수십 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위험하기 때문에 그쪽 지역이 접근 금지구입니다
37:09
[음악]
37:18
뿐만 아니라 또 다른 최악의 소모어전이 또 벌어지게 됩니다 이전투에서 첫날만 영국군이 6만 명이
37:27
죽거나 다치죠 첫날 하루에 엄청난 피해를 일으킨 또 다른 소모전이 바로
37:33
쏨 전투입니다
37:42
그쪽에서 벌어진 전투라고 해서
37:55
1초당 8명의 사상자가 나오죠 예
38:01
하루 사상자 기록으로는 최고 기록을 경신했고요 손전투 최종 사상자 전투가 끝나고
38:08
나니까 100만 명이 나오는 그러면 왜 이렇게 많은 사상자가
38:14
나왔을까 하는 또 궁금증 우리가 가져야 될 텐데 제1차 세계대전은
38:19
20세기 과학기술의 실험장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 당시에 없었던 새로운 기술들이
38:24
나타나고 그 기술들을 전쟁터에 적용을 한 것입니다
38:30
이 썸전투 첫날에 침묵이 특히 기관총으로 인한 대량학살이 벌어졌고요
38:38
[음악] 하지만 영국도 공세를 멈추지 않았죠
38:45
어쨌든간에이 방어선을 뚫어야 되기 때문에 그래서 회심에 한방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국의
38:51
한 전공 기자가 진흙탕에서 잘 구르는 농기구
38:57
트랙터가 있는데 그 트랙터의 바퀴가 네가 승인 생각하는 그 타이어가 아니라
39:02
무한궤도라고 하죠 그것을 보고 아 이것을 전쟁터에 도입하면
39:08
통하지 않을까라고 생각을 하고 그이 무한궤도식 바퀴를
39:13
침묵이 개발합니다
39:18
[음악] 트랙터에서 나온 거고 그래서 영국 최초의 탱크가 이름이 마크 원이에요
39:25
가장 최초의 탱크
39:38
탱크란 이름이 왜 붙게 됐는가 새로 개발한 아주 비장의 한방이니까 정보가 세나가면 안 되죠 그래서 아무
39:45
명을 붙입니다 암호명을 붙이는데 이것이 바로 이제 모양이 처음에는 물탱크 수조 탱크처럼 생겼다고 해서이
39:54
탱크라고 하는 아무 음악 붙인 거예요 근데 이것이 바로 이제 그 뒤로 쭉 불리게 되는 이름이 된 것이죠
40:03
그래서이 썸 전투에서 처음으로 탱크가 등장을 했고 실전에 투입이 되는데
40:08
처음에는 50대 탱크를 투입하려고 했다고 그래요 그런데 뭐 중간에 고장나고 여러가지
40:13
사정 때문에 실제 전투에 투입된 탱크는 24대였습니다
40:21
초기에 탱크는 그 기관총으로부터 아군을 지키고
40:29
철조망을 무너뜨리는 역할을 하게 되죠
40:34
근데이 한 번도 없었던 무기잖아요 그래서 탱크를 본 독일군이 악마가 온다
40:41
도망가기 바빴다는 거예요
40:48
이런 식으로 온갖 실무기가 그 난무하는 손전투에서 영국군이 수탄
40:54
목숨을 희생하고 전진한 거리가 채 100m도 안 됐어요
41:02
영국의 그 한 군인이 당시 상황을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전투에서 복귀한 뒤에
41:10
점호를 하지 않았다 처음에 그 800명이 투입됐다고
41:15
전투에 그런데 돌아온 병사수가 25명입니다 나머지는 다 죽거나 다쳐서 이제 못
41:22
따라온 것이죠 이렇게 1분에 수백발로 쓸 수 있는 기관총
41:28
철갑을들은 탱크 하지만 이런 것 외에 병사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무기가 따로 있었습니다
41:35
바로 독 같습니다 1915년에
41:42
독일군이 프랑스군을 상대로 처음으로 염소가스라고 하는 교과서를 사용했는데
41:54
이게 그 파인애플하고 후추를 섞어놓은 냄새가 난다고 그래요 이것을 맡으면
42:00
호흡이 가빠지고 입술이 자주빛으로 변하고 낯빛이 잿빛으로 변하고 쓰러집니다 그
42:06
다음에 시름시름 앓다가 며칠 뒤에 죽는 거예요
42:13
이후에 독가스를 중화하는 온갖 종류의 방벽면이 만들어지고 그
42:19
숫자가 2700만개였다고 그래요 엄청나게 많이 만들어지죠 자 그러면
42:25
초창기에 그 방독면의 사진을 보여주는 사진이 있습니다 한번 볼까요 [음악]
42:34
처음에는 좀 허술해 보이는 방독면으로 시작을 합니다 [음악]
42:40
사진이 또 있습니다 오 이제 좀 뭔가
42:45
중요한 것은 이제는 사람만 방독면을 쓰는 것이 아니라 말도 쓰고 있다는
42:51
얘기죠이 당시는 그 말이 상당히 중요했습니다
42:56
물자를 나르고 할 때 1차 세계대전 때마다 말이 없어서는 안 될 어떤 요소였기 때문에 말도 죽으면 안 되죠
43:03
독가스에 그래서 이제 동물에게도 방법론을 씌웁니다 [음악]
43:10
그래서이 1917년부터는 가스를 그 필터 필터를 달아서 한번 걸러낸 다음에
43:18
깨끗한 공기를이 방독면 안에 공급하는 좀 효율적인 방독면이 만들어져서
43:23
표준 방정변이 되죠 [음악]
43:28
그러니까 당나라가 경쟁하듯이 더 강력하고 고통스러운 독가스를 만들어내기
43:35
시작합니다 1915년 말에는 영국에서 포스겐이라고 하는 새로운 독가스가
43:41
등장하게 되는데이 그 포스겐을 마시면요 폐가 녹아버린다고 그래요
43:47
찢어지거나 몇 시간 안에이 폐가 망가진일까 산소 부족으로 결국
43:53
지식사를 하게 됩니다 그럼 당하는 독일은 또 가만히 있지 않겠죠 더 센 거 더 센 거
43:59
청구 17년에 가장 악명 높은 겨자가스가 나온다는데요이
44:04
계좌가스를 흡입하면 12시간 이내에 지독한 고통이 시작되는데 일단 피부
44:11
안팎으로 살이 썩어 들어가고요 온몸에 화상을 입은 것처럼 겨자색 구름과
44:17
물집이 잡히고 기관지 점막이 벗겨진다 그래요 그리고 독가스를 맡았을 때
44:23
시각을 상실하거든요 실명한 거예요 병사들이 서로 이제 한 주로 가기
44:30
위해서 앞에 있는 병사의 그 업계에 손을 얹고 줄줄이 가는 것이죠
44:39
너무 잔인하다 자 그래서 제1차
44:44
세계대전 동안 독하스로 인한 사망자 수가 10만명이고요 부상을 당한 사람은
44:51
130만 명입니다 독가스 등장은 바로 신사적 전쟁
44:57
룰을 지키면서 상대방을 존중하면서 하는 어떤 그런 낭만적인 전쟁의 시대가 끝나버렸다는 것을
45:04
의미한다는 얘기죠 자 그래서 이후에 그 독가스에 참혹함을
45:09
막기 위해서 19205년에 제네바 협약이 맺어지는데 여기서 바로
45:16
화학무기 사용을 금지합니다 [음악] 그런데 이러한 끔찍한 전투를 겪고
45:21
나서도 남다른 생각을 하는 병사가 한 명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45:31
아돌프 히틀러입니다
45:38
이때 아돌피틀러는 독일군의 일원으로서 전쟁에 참여하고 있었고 [음악]
45:47
그가 속한 연대가 있죠 총 그 병력수가 611명이었는데 전투에
45:54
참여 탄 다음에 349명이 전사합니다 첫 전투에서
46:00
근데 히틀러가 살아남은 거예요 그 중에 끼지 않고 그 다음에 250명 중에
46:06
남은 병력 중에 또 한번 전투에 투입되는데 225명이 전사하는데도 또
46:12
살아남습니다 그래서 히틀러가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46:17
자기는 특별한 사람이다 본인 스스로 가요 예 그것이 나중에
46:24
이제 2차 세계대전에 어떤 원흉이자 괴물로서 히틀러가 등장하는 한 계기가 될 수도
46:30
있겠죠 자 지금까지 우리가 주로 이제 지상전만 살펴봤는데요 또 다른 공간이
46:37
있습니다 사운드가 되는 공간 그래서 바로 이제 공조입니다 하늘 그 전까지는 모든 지역의 군대가
46:44
부족입니다 육군과 해군 밖에 없는데 드디어 제 1차 세계대전에서
46:50
처음에는 항공부대에다가 이름으로 나타나는데 공분이 등장하는
46:57
[음악] 처음에는 적을 뭐 공격하는 그런 용도보다는
47:03
적진이 어디에 있고 병력이 얼마고 어떤 상태로 있는가를 보기 위해서 [음악]
47:10
비행기로 날라 올라와서 사진 촬영을 하고 눈으로 보고 이제 보고서를 올린다는 거죠
47:19
이런 정찰기로 사용했는데 정찰기가 날아다니니까 어떻게 대응하겠습니까
47:26
쏘겠죠 쏘기도 하고 아예 그냥 비행기를 딱 날려서 그 비행기에 무기를 달아
47:32
가지고 정찰기를 공격할 수 있겠죠 이것이 바로 전투기입니다 당시 전투기가
47:37
어떤 식으로 싸웠는지 궁금해지지 않습니까 그래서 영상을 또 하나 준비했습니다 자
47:44
보시죠 뭐야
47:51
저번에
48:19
폭탄을 손으로 떨어뜨리는 수작업 방식이니도 당시에는 그 센세이션한
48:24
공격법이었습니다 그전까지 없었잖아요 그런데이 전투기를 처음으로
48:29
[음악] 활용한 나라가 바로 어딜까요 바로 영국입니다
48:35
영국군 조종사 2명이 기지상공을 그 정찰하는
48:41
독일군 정착기를 쫓아내기 위해서 비행기에 경기관총을 싣고
48:46
적기를 향해서 사격을 했던 것이 바로 전투기 시작이었다고 그래요 자 이제는
48:51
이제 하늘을 살펴봤고요 또 하나 공간이 있죠 바다입니다 해전에서는 어떤 신시무기가
48:57
등장했을까 살펴봤을 텐데 영국이 최고의 해양
49:03
병력을 가진 나라였잖아요 영국이
49:08
독일을 해상봉쇄를 해요 바닷길을 통제해서
49:14
독일이 외국으로부터 물자를 얻지 못하게 그것을 영국이 막는
49:19
것이죠 그래서 이런 해상봉쇄를 뚫기 위해서 어떻게 말하면이를 갈고 개발하는
49:26
신무기가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아 잠수함 잠수함입니다 잠수함인데 독일마루는
49:33
운터제 보트라고 해서 예 영어실은 유보트고 독일어로는 우버트라고 하죠이
49:39
잠수함이 전쟁터에서 새로운 파장을 부를 일으킵니다
49:45
1914년에 잠잠기술이 아주 빠르게 성장을 하는데요
49:52
네덜란드 회안에서 독일군 잠수함이 어뢰를 쏴서
50:01
영국군 순양함 세척을 격침하게 되죠
50:07
그래서 1915년에 독일은 영국의 봉쇄 작전에 맞벌 작전으로 영국을
50:12
둘러싼 모든 해역을 전쟁터로 선포하고 연합국과 중립국 가리지 않고 이것은
50:17
선거하는 모든 상선을 격침하는 이른바 무제한 잠수한 작전을 펼칩니다이 기간에
50:24
독일 잠수함의 공격을 받고 침몰하거나 아니면 끌려간 연합국 내지는 중립국의 선박이 모두
50:31
실천적이라 그래요 영국은 독일을 해상봉쇄하고 독일은 또 잠수함으로 영국을 또
50:38
봉쇄하고 이런 상황에서 독일을 해보니 엄청난 사건을
50:44
버리고 맙니다 아일랜드 남쪽에 작은 어촌마을이 있습니다 그 이름이
50:50
퀸 세일이라고 하는 어촌말인데요 여기서 사건이 일어납니다
50:59
[음악] 영국의 여객선
51:04
루시타냐라고 하는 선박이 있는데이 선박의 2천명의 승객과 승무원을
51:10
태우고 킨 세일 바다 앞을 지나가고 있었어요 목적지가 바로
51:15
리버풀이었는데 바로이 루시타니아허가 제1차 세계대전의
51:21
어떤 승패를 바꾸는 역할을 합니다 전쟁 중에 이동하는이
51:28
여객선에 승설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조건을 숙지하고 있어야 됐어요 자 이것을
51:34
보여주는 미국 신문에 실린 발권 광고인데요이 왼쪽에
51:39
노티스 우리 혜성치가 한번 내용을 한번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독일과 영국은 전쟁 중이기 때문에
51:46
독일군은 영국 근해에서 영국 국기를 내건 모든 선박을 격침할 것이다
51:53
영국의 여객선을 타고 대서양을 횡단할 당신들도 마찬가지로 그 위험은 스스로
52:00
감수하라 위험한 상황을 알려주는 것인데 불행히도이 루시타니아오가 독일
52:07
잠수함의 어뢰 공격을 받고 침몰을 해버렸어요 [음악]
52:13
결국이 배가 침몰하면서 무려 1201명이 사망을 하게 됩니다
52:23
그런데 그 1201명 중에 미국 국민들이 있었고 그 숫자가
52:28
178명이었어요 그래서이 사건 때문에 제1차 세계대전의 그
52:34
키맨 역할을 하는 미국이 드디어 등장하게 됩니다 잠자는 사자의 쿼터를 건드렸네요 미국
52:42
들어보면서 끝났구나 그 전까지는 미국이 실제로는 전쟁에 그 참여하지 않았었는데 이런 식으로 자국민이
52:48
사망하니까 이틀 안에 독일과 외교 단지 외교 단절이라고 하는
52:54
초강수를 둡니다
53:23
독일이 미국과 중립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멕시코와 동맹을 맺고 미국을 공격하자
53:30
그 대가로 멕시코에게는 미국의 뺏겼던 텍사스 뉴멕시코
53:37
애리조나를 돌려주겠다 사실은 미국으로서는 엄청난 위협이겠죠
53:44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이 전보가 누설이 돼서 이것을 이제 알게 된 거예요
53:50
독일에게는 끔찍한 실수였던 것이죠 그래서 미국 언론이 모든 그 신문
53:58
지면에이 정보를 공개하고 알립니다
54:04
그래서 지머만 전보 사건을 계기로 미국에서 독일의 반대하는 여론이
54:09
치솟고요 중립을 지키려고 했던 미국의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1917년
54:16
4월 6일에 드디어 독일에게 선전포고 갑니다
54:29
그래서 미국이 1918년 여름까지 100만 명의 미군 변사들을
54:36
유럽전선에 배치하게 돼요 상당히 독일어처럼 위기 상황일텐데
54:42
하지만 독일에게도 희망은 남아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게 뭐냐면
54:51
미국 본대가 유럽에 도착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54:58
그리고 러시아 군인들이 싸우기를 거부하죠 이런 상황에서 결국 일어난 사건이 바로 그 유명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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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혁명입니다
55:22
그래서 결국 러시아 혁명 정부는 국적 끝에 1918년 3월에
55:28
독일과 단독 강화를 맺고 전쟁에서 빠져 나오죠
55:34
[음악]
55:49
독일로서는 상당히 좋죠 동쪽에 러시아가 공격해 왔었는데 러시아가 빠져나가니까 모든 병력을 다
55:56
어디에 출발할 수 있게 된 것이죠 그래서 서부전선으로 모든 경력을 집중하게
56:01
되는데 하지만 서부전선으로 미국이 매달 도착하는 상황인데 여기서 이제
56:08
시간을 끌면 끝으로 불린다고 생각했죠 독일이 마침내 모든 것을 끝낼
56:13
총공세를 시작합니다 미국이 본격적으로 투입되기 전에 영국과 프랑스어를
56:19
몰아붙여서 전쟁 끝나겠다 생각한 것이죠 1918년 3월 21일에 독일이 기습적으로
56:25
독가스 폭탄을 퍼붓고
56:36
독가스 안개를 틈타서 독일군이 연합군 연구로 프랑스의 참호를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56:42
[음악]
56:51
첫날 공세로 승기를 잡아요 하지만 독일군이 이때 4만명을
56:56
잃어버리고요이 4만 명 중에 만 명이 전사자였습니다 그래서 7월부터 100일 동안의 그
57:04
연합군의 반격 즉 100일 전투가 시작이 되는데 8월 8일 본격적으로 시작된 전투에는
57:10
400대가 넘는 탱크 후창기에는 24대였지만 이제는 400대 수준까지 그 탱크가 늘어나서
57:18
투입이 됐고요 드디어 9월 26일 미군은 연합국가 함께 제1차 세계대를 끝내기
57:24
위한 마지막 공세를 시작했습니다 [음악]
57:37
1500대 가까운 비행기가 출격을 했고요이 비행기가
57:42
독일군 참호를 두들기고
57:50
퇴각하는 독일군에게 폭탄 세력을 퍼붓습니다
57:58
단 48시간 만에 드디어 독일군의 방어선이 돌파되기 시작하고 방어선이 뚫린 독일군은
58:04
결국 1918년 11월 초에 독일군의 사절단이
58:10
흰깃발을 들고 연합국 사령관과 정전
58:15
협정을 요청합니다 [음악] 프랑스군 대표하고
58:22
독일군 대표가 상리스마을 근처 꽁페뉴 숲에 열차를 세워두고 사람들의
58:27
눈을 피해서 은밀하게 협정을 진행한 것입니다 자 그래서 이제 11월 11일 오전
58:36
11시 이후에 제1차 세계대전이 끝이 나게 됩니다
58:42
[음악]
58:49
전쟁이 끝나고 나서 폐점국 독일에게는 아주 가혹한
58:55
평화조약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조약을 맺은 장소가 바로 독일제국의 시작을 알렸던
59:00
베르사유 궁전이에요
59:10
[음악]
59:15
1919년 6월 28일에이 베르사유 조약으로 제1차 세계대전은 공식적으로
59:22
종결이 됩니다 독일은 기존 영토의 13%에 이르는 땅을
59:27
내주고요 그리고 독일군을 제안하기 시작합니다 10만명
59:34
이상으로 그 군대를 유지 못하게 되는 거예요 공군들 수 없다 탱크도 만들 수 없다
59:40
잠수함도 가질 수 없다라고 하면서 현대식 무기를 금지하죠 가장 가혹했던 것은 전쟁 피해 복구를 이유로
59:48
대상금을 책정을 해요 전쟁을 일으킨 나라가 너희 독일이니까이 피해를 다 갚아라 해서 그래서
59:54
책정된 배상금이 전쟁 배상금이 무려 1,320억 마르크 수십 년 동안
1:00:01
독일 국민들이 먹지도 않고 자지도 않고 이래서 갚을 수 있는 돈의 액수였던 거예요
1:00:07
[음악]
1:00:14
[음악] 이후에 제국들의 몰락을
1:00:21
독일제국 그 다음에 오스만 제국 러시아 제국도 무너져야 되죠 혁명으로
1:00:26
제국들이 사라지게 되고요 새로운 신생 국가들이
1:00:31
탄생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신생 국가들이 생겨나게 되니까 뭐가 달라질까요
1:00:36
지도가 달라지게 됩니다 제1차 세계대전의 유럽지도 하고 제 1차 세계대전 이후에 유럽지도 하고
1:00:43
많이 다르게 됩니다 러시아는 소련으로 받게 되면 독일은 이제는 공화국으로 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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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마르 공항 그 다음에 오스트리아 헝가리라고 하는 나라는 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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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져서 따로 분리돼서 국가가 되죠
1:01:06
이런 식으로 상황이 전개되는데 전쟁은 끝났지만 이후 상황도 상당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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끔찍했어요 한번 그 수치를 제공하면 제1차 세계대전의 동원된 병사들의
1:01:17
수가 약 6,500만 명이 에요 근데
1:01:22
동원된 병사들 중에서 죽거나 다친 사상자 수가 3,700만 명이 주가가 닫힌 거예요
1:01:31
지금까지 그 전선의 상황과 전쟁의 진행 향상으로
1:01:36
살펴봤는데이 전쟁의 끔찍한 기억이 병사들의 몸에 고산이 남아 있는
1:01:41
거예요 [음악] 너무 많은 동료들이
1:01:47
죽음을 당하고서 보게 되고 나중에는 가까운 사람이 죽어도 감정 상태를 느끼지 못하고
1:01:54
감정이 무뎌지는 거예요 심한 경우엔 잠자기
1:02:00
걷기 말하기라고 하는 가장 기본적인 행동을 못하게 되는 거예요 이런 상태를 가리켜서 영어로
1:02:07
쉘 숍이라고 하는 표현이 있습니다 쉐리라고 하는 말이 조개껍데기라는 표현도 있지만 그 포탄이란 뜻이
1:02:12
있거든요 그래서 포탄의 어떤 충격 더 크게 말하면 전쟁에서 벌어지는
1:02:18
극한적인 어떤 공포심과 긴장상태를 견디지 못하고 정신이 무너져 버리는 겁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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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 있다고는 들었어 그 영화 보면은 그래서 막 후유 그 전쟁 후유증 때문에
1:02:32
현실이랑 막 분간을 못 하고 사람 죽이고 사람 죽이고 그런 상황이 어떤 원조격이 바로이 쉘 속일 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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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이 남아 있습니다 영상을 보고 한번 얘기를 해보죠
1:02:46
자기가 다친 것처럼 걷는 거야 진짜로
1:02:55
[음악]
1:03:08
[음악]
1:03:20
정신병원 정신을 살아도 산게 아니다 계속
1:03:25
총이 포탄이 나오니까 막 아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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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비극이 병사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이것이 확장돼서 가족한테까지도 이어져요이 소모전이 나온 또 하나의
1:03:40
문제가 남겨진 그 가족들의 트라우마인데요이 당시에는 그 부대를 구성할 때 말이죠 무작위로 구성하지
1:03:45
않습니다 같은 고향 출신 병사들로 부대를 만들면 그 부대가 전투의
1:03:53
투입되면 절반 이상이 죽을 수도 있잖아요 어떤 병은 다 전멸할 수 있죠 그러면 한 날 1시에 그 모든 그쪽
1:04:02
지역의 집에 전자통치가 날라가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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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우리가 어떤 가족이 한 명 죽었다고 했을 때 그 가족
1:04:13
전체가 충격을 받고 정상적인 생활을 못하는데 그런 식의 비극이 어느 한 집 두
1:04:20
집이 아니라 그쪽 지역 전체에 다 벌어진다는 얘기죠 근데 이런 상황은 영국뿐만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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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벌어질 수 있고 독일에서도 벌어질 수 있습니다 스탈린이 그 소련을 장악하고 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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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밖에서 아주 급박한 그 상황이 벌어지게 되는데요 그것이 바로 제2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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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 대전에 바람이 징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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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겼던 것이죠 [음악] 그래서 세계정사가 아주 혼란스러웠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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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인데요 이때 모스크바에서 [음악] 1939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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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일어나기 직전에 국제사회를 아주 깜짝 놀라게 만드는
1:05:03
일이 벌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당시 상황을 보여주는 또 사진이 하나 있는데요 같이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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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또 스탈린이 있죠 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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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하게 웃고 있죠 그러니까이 사진에 관한 설명을 해야 될 텐데요 이것이 바로 그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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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그 철천지 원수 같았던 소련과 독일이 조약을 맺는 장면입니다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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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습니다 독일과 소련이 서로 침공하지 않겠다는 전쟁 금지 조약을 맺고요
1:05:42
그래서 우리가 흔히 역사에서는 독소 불가침조약이라고 하죠
1:05:51
자 이런 식으로 10년 동안 서로를 침공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하고요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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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에 이제 긴밀하게 서로 협조를 한다는 내용이 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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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조약이 맺어지기 불과 몇 달 전만 하더라도 모든
1:06:08
인간은 평등하다는 원칙을 내세우는 국가가 바로 소련이었죠 그리고 독일은
1:06:15
인류 사회는 인종에 따라서 구분이 되고 지배민족과 피지배 민족이 있다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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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의 이념 즉 국가 사회주의 나치즘은 내세웠습니다
1:06:39
도저히 둘이 섞일 수 없는 이념이었는데 한순간에 이제 이런 이념 차이를
1:06:46
뛰어넘어 가지고 우방국가가 되는 거야 그럼 그 이유가 뭔가를 살펴봐야 될
1:06:52
텐데요 사실은 그 독일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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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전국으로서 항공 아니면 전차부대를 가질 수 없다는 그 귀하게 적용 대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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됐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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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 그 국제 그 기구였던 국제연맹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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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제 따돌림 받는 국가였고 이런 상황에서 1939년에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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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리였던 히틀러가 유럽의 패권 국가가 되겠다라고 생각을 하면서 영국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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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게 도전할 계획을 세웁니다
1:07:48
[박수]
1:07:55
그래서 독일은 유럽을 점령하기 위해서 좀 뒤가 안전해야 되겠죠
1:08:03
동쪽에 있는 소련을 묶어둘 필요가 있었고
1:08:08
소련에게 먼저 불가침 조약을 제안합니다 이것을 이제 스타일링이
1:08:13
받아들였던 것이죠 그러면이 독일과 소련이 조약을 맺은
1:08:18
건데 부분이 이제 독일과 소련에서 오셨으니까 각각 어떻게 배웠는지가 궁금해요
1:08:24
우리도 이제 학교에서 거의 대해서 배웠는데 우리 해피하우스 달린 조약이라고 하고
1:08:31
근데 분명히 아까 이제 막 서로 그냥 평화인 척하는 약간 그런 약속이라고 우리가 이렇게 배웠었어요
1:08:38
러시아에서 거의 배우진 않아요 왜냐하면 이거는 설현의 실수 약간 설현의 만행이라고 보이기 때문에 그
1:08:46
당시에 히틀러랑 조합을 했다라는 곳 자체가 너무나도 이제 안 좋은 이미지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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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에 지금도 그걸 약간 조금 시시하는 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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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는 역사교육 하나는 철저하게 하는 거 같아요 그래서 그 당시에
1:09:05
실제로 독일은이 독서불가친 조약을 맺자마자 거의 곧바로
1:09:11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이 되었던 것입니다
1:09:34
독일은 폴란드를 제압하고 그 다음에 덴마크
1:09:39
노르웨이 네덜란드
1:09:45
1940년에는 그 막강한 프랑스를 점령해 버립니다
1:09:59
유럽 대륙의 거의 모든 나라가 독일의 지배하에 들어갑니다 바나나
1:10:04
섬나라였던 영국만이 버티고 있었습니다
1:10:10
영국과 전쟁을 하는데 영국이 끝내 그 버티면서 항복을 하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이때 히틀러가 상당히 초조한
1:10:20
상태가 됐고요
1:10:27
[음악]
1:10:49
이때 소련은이 독서불 같은 조약의 조건에 따라서 독일의 전쟁에 필요한
1:10:55
각종 물자와 원자재를 아낌없이 독일에 제공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1:11:01
당시 스탈린과 히틀러의 만남을 표현한 그림이 있는데요 상당히 재밌거든요 한번 보죠
1:11:15
천생연분 알러뷰 포레버 1939년 10월에 미국의 신문에
1:11:22
실린 만평인데요이 두 사람의 허니문이 과연 얼마나 오래갈지 궁금하다
1:11:28
궁금하지 않느냐 이렇게 물어보는 것이죠 그거에 전제는 언젠가 깨지게 분명하다는 거네요
1:11:34
국제사회에서도이 두 사람이 결국은 이득을 위해 서로의 이익을 위해서
1:11:39
잠시 손을 잡았지만 그 허니문이 미들 관계가 오래 가지를 못할 것이다 이렇게 이제 그
1:11:46
약간 비꼬는 만평을 그렸던 것이죠 실제로이 만평들이 됩니다
1:11:51
결국 그 2년이 최 되지 못해서 히틀러가 조약을 일방적으로 깨고
1:11:57
소련을 기습공격했죠
1:12:06
1941년 6월 21일 일요일이거든요 새벽 4시에 독일이 180만
1:12:13
명의 대령령을 투입해서 전쟁 준비를 마치지 못했던 소련 국경 전체에 무차별
1:12:19
폭격을 가하고 공격을 시작합니다 [음악]
1:12:28
그리고 소련이 워낙 큰 나라니까요 3개의 진격 방향으로
1:12:34
목표를 설정하는데요
1:12:43
첫 번째 목표가 레닌그라드 그리고 당연히
1:12:48
소련의 수도였던 모스크바로 향하게 되고요 그리고
1:12:54
식량자원이 아주 넘쳐나는 우크라이나로 갑니다 그래서 키예프를
1:12:59
점령하고 더 나가서 하르코프라고 하는 도시까지도 점령하려고 했었죠 내 스탈린이이
1:13:07
독일이 공격할 거라는 사실을 전혀 몰랐을까라는 의심을 이제 우리가 가져야 될 텐데요 사실 독서 전쟁
1:13:13
전날에 독일군이 분명히 기습공격을 한 것이다라고 하는 그 정보를 가지고 그
1:13:20
넘어온 독일 군인이 있었어요 그런데 이런 보고를 받았는데도
1:13:26
스탈린이 그것을 무시해 버립니다 [음악]
1:13:34
믿지는 않았어 확신이 없었는데 왜냐하면 독일이 공격한다고 하는 정부가
1:13:40
들어가면 소련군이 대비를 하기 위해서 병력을 옮기겠죠 [음악]
1:13:45
그러면 히틀러가 조약을 깨고 군대를 독일적으로 돌렸으니이 조약을 깨겠다라고 하면서
1:13:52
공격할 수는 빌미를 주게 될 수 있으니까 이걸 믿지 않았던 것이죠 10년 조약 맺었는데
1:13:58
에이 설마 2년 만에 얘가 이르겠어라고 보시면 됐겠지 히틀러를 잘못 봤던 측면도 분명히
1:14:03
작용을 했겠고요 하지만 24시간이 지나니까 결국은
1:14:09
전 전선에서 보고가 올라오는데 실제로 독일군이 공격을 해왔다는 것이
1:14:15
밝혀지죠 여기서 이제 결국 독일과의 전쟁이 시작됐다는 사실을
1:14:21
국민들에게 알리는 라디오 방송이 소련 저녁에 이제 퍼지게 됩니다
1:14:30
노래가 너무 평온한 거 아니에요 [음악]
1:14:42
자
1:14:50
[음악]
1:14:58
방송과 함께 수련과 독일 조나라 사이의 진짜 전쟁이 시작되었던 사실이 전국에 알려지게 됩니다 올 것이
1:15:06
왔구나 안나 씨 근데 가족분이 독소 전쟁이랑 연관이
1:15:12
있으시다고네 제 할아버지가 전국 17살이었어요 그래서
1:15:18
원래 이제 군인 될 나이가 아니지만 학교 다니다가 갑자기
1:15:24
어떤 군인이 학교 찾아와서 이제 남자애들 다 이제 짐을 챙기고 보평
1:15:30
부대로 갔었어요 훈련을 받고 전쟁 때
1:15:37
참전하셨어요 근데 교수님 갑자기 히틀러는 이게
1:15:44
조약 다 해놓고 왜 갑자기 친 거예요 근데 무기 지원도 받았다면서 소련한테
1:15:49
첫째로는 그 독일의 패권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유럽 대륙을 다 이제 점령을
1:15:55
해야 될 텐데 소련은 엄청난 천연자원 석유 석탄
1:16:00
식량들이 있으니까 이런 전쟁 물자가 필요했던 거예요 둘째로는
1:16:05
당시 유럽에서 그 독일의 지배를 받지 않은 나라가 영국이었고 그래서
1:16:11
버티고 있지 않습니까 영국이 왜 항복을 하지 않고 버티는가를 생각을 해봤더니 영국이 소련을 믿고
1:16:19
버티는게 아니겠느냐 [음악] 또 한 가지 가장 중요한 것이이
1:16:26
독일의 나찌집이란 것이 인종주의 세계관이 있는데요 소련은 열등한
1:16:32
슬라브인과 유대인이 다스리고 있는 나라인이이 나라를 결국은 우리
1:16:37
독일 아리아 민족이 점령을 해서 식민지로 삼고 그 땅을 차지한다는
1:16:43
원대한 꿈이 있었죠 그래서 한번 지도를 한번 다시 한번
1:16:49
볼까요 가장 중요한 것은 모스크바를 그 차지하는 그 진경로일텐데요
1:16:56
국정 도시는 브레스트를 점령하고 민스크로 가서 민스코마저 점령을 하죠
1:17:01
그 이후에 스몰렌스크라고 하는 도시가 있는데이 도시까지도 점령을 하죠 그리고이
1:17:08
스몰렌스크에서 모습 밖까지는 정말로 그 쾌속 전진할 수 있는
1:17:14
곳입니다 한 번 더 피하지 않고 레닌그라드 코앞까지 모스크바
1:17:19
코앞까지 그리고 키예프를 점령하고이 우크라이나까지도 점령하는 상황이었죠
1:17:32
코앞이네요 코앞까지 다가가죠 그래서 독일군이 가장 그 잔인하게 소련의
1:17:40
민간인들을 한꺼번에 유리한 곳이 바로 레닌그라드였습니다 바로이 도시죠
1:17:51
[음악]
1:17:59
이 레닌그라드를 차지하려고 있든 했던 이유는 10월 혁명의 발상지였기 때문에 그리고
1:18:06
공산주의를 이끄는 레인이라고 하는 지도자 이름을 딴 도시였기 때문에 이곳을 반드시
1:18:12
점령해야지 상징을 무너뜨릴 수 있다 사기를 꺾고 있었다 생각했던 것이죠
1:18:18
자 그런데이 레닌그라드 코앞까지 다가가면서
1:18:23
독일군이 아주 잔인한 행동을 합니다 공격을 하면은
1:18:30
소련군이 이제 방어를 할 텐데요 소련군이 제대로 방어를 하지 못하도록 총을 못 쏘도록
1:18:36
독일군이 앞에 소련의 할머니 할아버지 그 다음에 아주머니 어린아이를 세우고
1:18:43
갔던 거예요 인질로
1:18:49
소련군이 만약에 돌봄을 막으려고 총을 쏘면 자기 나라의 국민이 맞는 거예요
1:18:56
민간이 맞기 때문에 함부로 총을 못 쏘는 것이죠 이런 식으로 그 방패막이가 된
1:19:01
소련 민간인이 우리는 러시아 사람입니다 소지마세라고 했던 것이죠
1:19:10
그래서 이런 상황에서 소련 장군들이 스탈린에게 보고서를 올립니다
1:19:15
독일군이 이런 무지막지한 전술을 레닌그라드 쓰고 있는데 어떻게 할 것인가
1:19:21
스탈린이 곧바로 짓을 합니다 예 감상주에 빠지지 말고
1:19:27
민간이라도 쏴야 한다라고 명령을 내립니다
1:19:36
와 진짜 무자비한 사람이다 그리고 히틀러가
1:19:42
렝가 점령을 하려고 하는데요이 군인들에게 가장 위험하고 힘든 전투가
1:19:47
바로 시가전입니다 시에서 싸움을 했을 경우에 상대방이
1:19:54
버티겠다고 하는 끝까지 싸우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저항을 하면 공격하는 측이 엄청난 피해를 입을 수밖에
1:20:00
없어요
1:20:11
그래서 그 사이에서 벌어지는이 독일군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
1:20:16
점령을 하지 않고 다른 전략을 씁니다 어떤 전략을 쓸까요
1:20:29
레닌그라드를 포위하고 봉쇄합니다 그러니까 절대로 물자라든지 식량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1:20:39
그 봉쇄 기간이 900일 동안 진행이 되는데요
1:20:45
못 버티지 공연을 넘게
1:20:58
[음악]
1:21:07
괜찮으면 되게 오래 했네
1:21:15
어떡해 [음악]
1:21:23
너무 끔찍해 아 그냥 저렇게 있는 거야 시체들이
1:21:34
[음악] 추웠나 보다
1:21:42
[음악]
1:21:49
어떡해 조개들하고
1:21:56
군인들도 아니고 그냥 민간인들은 거 아니야 이 영상을 보니까 당시 상황이 얼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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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절하고 심각했는지 알 수 있을 텐데요이 추운 겨울에 사람들이 주범이 널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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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데 사람들이 지나가잖아요 그 사람들이 뭐 잔인하거나 무정해서가
1:22:16
아니라 그 사람들조차도 못 먹어서 체력이 완전히 바닥난 상태였던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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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시체를 묻으려고 땅을 파다가 그냥 죽을 쓰겠습니다 체력이 달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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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제 배고픔을 채우기 위해서 당연히 이제 러시아 사람들이 정말 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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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데요 개도 잡아먹어야 되고 고양도 잡아먹어야 되고 새도 먹어야 되고 집까지 잡아먹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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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안 되니까 구두나 허리띠가 가죽이잖아요 그것을 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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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려서 끓여서 먹기도 하고요 가죽을 끓여 먹는다고요 가죽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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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유기물질이니까 그렇게 버티는 것이죠 그 다음에 어떤 경우에는 그 집의 벽지가 있지
1:23:00
않습니까 벽지를 뭘로 붙이죠 벽에다가 풀로 붙이죠 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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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녹말이 나 있을까 녹말 그래서 벽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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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을 긁어내가지고 물에 풀어서 그걸 먹게 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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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으로 버텨도 결국은 식량이 모자라니까 예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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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인에서 있었던 같은 비극이 또 벌어지게 됩니다 사람을 먹는 사람 고기를 먹으려고 하는 사람이 생겨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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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 경찰이 이눅을 먹으려는 사람들을 막고 처벌하는 것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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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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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런 식으로 첫해 겨울에 수십만 명이 굶어 죽었다고 돼 있어요 그리고 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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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심했던 때는 하루에 5천명이 죽었던 때도 있습니다 저기 다 레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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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1942년 레닌그라드와 모스크바의 전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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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전이 없자 독일은 결단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계획을 이렇게 변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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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스탈린그라드로 간다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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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그라드를 향해서 진격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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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그라드를 왜 히틀러가 노렸을까 그 이유를 한번 살펴봐야 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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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데요 한번 지도를 한번 볼까요 여기 러시아 남부입니다 독일군이 진격을 하는데요 전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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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하기 위해서는 물자가 많이 필요한데 독일이 가장 부족한 문자가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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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였어요 근데이 석유가 아주 많이 나는 유전지대가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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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쪽이었거든요 아쿠 마이코프라고 하는 도시가 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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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남쪽으로 주력을 쏟아부었고 그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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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에 스타일링 그라드가 아주 중요한 격전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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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는이 스탈린그라를 점령하면 그 레닌그라드와 모스크바를 점령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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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했던 실패를 만회할 수 있다고 생각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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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1942년 8월 23일 새벽에 히틀러가 600대의 폭격기를 준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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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톤의 폭탄을 도시에 쏟아 부었습니다 [음악]
1:26:07
당시 그 스탈린그라드 인구가 60만 명이었는데 공수병보가 울렸을 때는 이미 폭격이 진행되는
1:26:14
상태여서 4만 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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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탄으로 까맣게 뒤덮을 정도였다라고 하면서 한순간에 불바다가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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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대규모 폭격으로 도시가 완전히 그 폐허가 됐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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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을 하는 독일군과 방어라는 소련군이 폐허가된 시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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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전을 벌이게 됩니다 어떤 경우에는 너무 이제 독일군과 소련이 맞붙어 있어 가지고요
1:26:50
벽 하나를 두고 서로 이제 대체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상대방의 뭐 숨소리까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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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표현이 있습니다 그렇게 가까이 있었던 거예요
1:27:01
독일군이 거의 스타일랜드라도 시가지의 그 80% 90%를 차지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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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마지막으로
1:27:14
퍼센트 20%만 마저 차지하면 여기서 승리를 거둘 수 있게 됐는데
1:27:23
이런 그 급박한 위기 상황에서 스탈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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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명령 하나를 내립니다 그것이 뭐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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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령 227호였는데요 내용이 뭐냐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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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권도 물러서지 마라 후퇴하면 처형한다 이런 식으로 해서 그 명령의 내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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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령 227호였습니다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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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히 그 잔인하고 공포스러운 법령이었지만 그 명령이 내려진 다음부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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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지를 불태우는 그런 전투 부대로 거듭남이 되면서 독일군에게 반격을 가했던 얘기입니다
1:28:10
[음악] 그래서 독일군이이 스탈린그라드로 진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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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서이 스탈린그라를 점령하기 위해서 모든 힘을 쏟고 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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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이 작전 하나를 세웁니다 껴안기 작전이라고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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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을 쓰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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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스탈린그라드 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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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 명의 병력을 몰래 모아두고요 한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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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에서 남쪽에서 공격을 해서이 스탈린그라드에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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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군을 역포의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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껴안기 작전이라고 했는데 그 정식 명칭은 천왕성 작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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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런 작전의 성공을 해서 결국은 30만 명이 포로가 되고 독일군이 그
1:29:18
중에서 20만 명이 추위와 굶주림에 지쳐서 목숨을 잃고
1:29:25
그래서이 두 달을 준비한 천왕성 작전이 성공을 거두면서 스탈린그라드에서
1:29:32
소련군이 승리를 거두게 되고요이 전투로 인해서 제2차 세계대전의 어떤 분수령을
1:29:40
완전 전세가 역전됐네요 그렇죠 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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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봉쇄된 레닌그라드에서는 어떤 상황이 펼쳐졌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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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히틀러가 바라는 대로 시민들이 항복을 했느냐 항복하지 않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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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0 동안 버티면서 결국 1944년 1월 27일에
1:30:06
드디어 소형군이 와서 공세를 펼쳐서 독일군이 결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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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서 100km 뒤로 밀려나거든요 그러면서 이제 봉쇄가 풀리죠
1:30:18
[음악] 이게 레닌그라드 시민들이 버티지 못했으면 전쟁의
1:30:24
어떤 승리가 독일군에게 갔을 확률이 상당히 높았다는 얘기죠
1:30:30
그래서 레닌그라드 시민들의 900일 봉쇄라는 아주 처절한 희생을 그
1:30:37
견뎌내면서 버텨내는 것이 바로 오늘날 러시아의 어떤 위대한
1:30:42
어떤 자랑거리자 유산이 되고요 [음악] 레닌그라드의 별명이 영웅도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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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대단한 항정이었던 거 같아요 900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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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결국 이런 식으로 스탈린이 버티고 소련 국민들의 의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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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돋아서 결국은 독일의 신장군인 도시를
1:31:15
향해서 쳐들어갑니다
1:31:28
이때 그 베를린 점령을 하기 위해서 총 공세를 펼치던 소련군이 동원한
1:31:33
병력수가 무려 250만명 어마어마
1:31:53
반면에 이때가 되면 독일군은 이제 거의 모든 병력이 이제 소진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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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이제 방어할 수 없는 상황이 됐어요 그래서 소년병 10대 초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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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들까지도 동원하고 그 소년들을 전투에 투입하는 아주 극단적인 상황이 됐던 것이죠
1:32:16
[음악]
1:32:27
결국 아무리 독일이 저항을 했지만 결국 소련군의 공격에 밀려서 소련군
1:32:34
부대가이 베른에 심장부에 있는 재고 의회 국회사당을 점령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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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베를린이 항공하게 된 것이죠 자 이때 소련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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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를 그 필름에 담은 영상이 남아 있는데 한번 보도록 합시다
1:32:52
[음악]
1:33:15
[음악] 반면에 이런 그 베를린이 소련군에게 함락되는 그 순간에
1:33:22
히틀러는 뭐를 하고 있었을까요 도망갈 도망가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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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시내에 있는 지하벙커가 있었습니다 있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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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출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요 여기서 맨 마지막에 자기의 오랜
1:33:38
연인이었던 에바 브라운과 몇 시간 있다가
1:33:44
[음악] 베를린 시내에 있는 지하벙커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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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벙커 있었기 때문에 탈출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요 여기서 맨 마지막에 자기의 오랜
1:33:58
연인이었던 에바브라운과 결혼식을 합니다 결혼식을 하고 몇 시간 있다가
1:34:04
동반 자살을 하게 된 것이죠 [음악]
1:34:13
그래서 이런 식으로 이제 베를린이 소련군의 어마어마한 포격과
1:34:18
어떤 작전으로 완전히 무너져 버렸고요 이렇게 치열했던 내 해 동안의 독서 전쟁이
1:34:23
결국은 소련의 승리로 끝나게 됩니다 [음악]
1:34:30
가장 막강했던 군대를 지녔던 독일이 패전하게 됐던 것이
1:34:38
죠 독일이 어떻게 해서 돈과 서로 나뉘는 분단의 길을 걷게 된 것일까요
1:34:44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이 어떤 상황에
1:34:50
처해게 되었는지를 알아봐야 합니다 [음악]
1:35:31
이것들을
1:35:47
[음악]
1:35:54
그러니까 이제 2차 세계 된 이후에 전쟁에서 승리한 연합국이 독일을 어떻게 다뤄야 될지 그것에
1:36:03
대한 논의를 했던 것이죠 그래서 성전학부기 독일을 두고 이제 어떤
1:36:08
결정을 내렸을까요 그 얄타 회 담 같은데
1:36:15
분할을 맡아요 1945년 2월에 그린반도의
1:36:22
얄파에서 전후의 독일 나치 독일의 처리 문제에 대해서 협의를 하게
1:36:28
됩니다 [음악]
1:36:38
일단 미국 영국 소련 그리고 프랑스의
1:36:44
4국이 분할 점령한다는 원칙을 세웁니다 그래서 분할 점령해서 공동으로 관리를 한
1:36:51
뒤에 이제 독일을 새로운 국가로 만들기로 그렇게 이제 논의를 하죠
1:36:57
대체 이제 어떤 방식으로 나눠서 통치하게 됐을까요 그 부분을 우리는 이제
1:37:03
지도를 통해서 잠깐 보도록 하겠습니다 [음악]
1:37:15
제가 그런데 독일 전체가 나뉘어서
1:37:21
불알통치된 것은 물론이고 이곳 역시 성전연합국이 공통으로 관할 통치를
1:37:28
하게 됩니다 어디일까요 네 바로 베를린입니다
1:37:40
조그만 베를린을 했던 4개가 나왔는데요
1:37:54
이게 저는 우리나라도 이렇게 지금 휴전선이 보면 좀 가운데 정도 있잖아요
1:38:00
맞아요 근데 가운데 위치한게 아닌데 이거 왜 그걸 분할해서
1:38:05
오랫동안 독일 제국의 또는 나치 독일의
1:38:10
가지고 있는 상징적이고 정치적인 중요성 때문에 공동으로 이제 관할
1:38:15
통치하기로 이렇게 결국 독일과 베를린 모두
1:38:21
4개의 지역으로 나뉘어서 통치를 받게 됩니다 [음악]
1:38:28
그리고 이런 그 합의가 5개월 후 그 이후
1:38:34
열린 보쌈 회담에서도 계속 이어집니다
1:38:40
[음악]
1:38:57
그래서 이제 포츠담에 땀에서는 아까 말씀드렸죠 전후에 이제 독일 그럼 어떻게
1:39:02
재건할지 4개의 원칙을 정했습니다 나치 잔재를 천산하자
1:39:09
그래서 민주화를 이루어내자 그 다음에 지방분권을 회복하자
1:39:15
독일은 일단 비무장을 해야 된다
1:39:22
그런데 이제 이런 합의가 잘 되고 서로 협력도 이루어졌지만 1948년 1월이 되면서
1:39:28
상황은 급변합니다 전 세계가 냉전체제로 양분되는 가운데
1:39:35
미국 주가 영국 프랑스가 이제 공동으로 행정 통합을 하겠다고 이제 밝힙니다
1:39:43
그래서 이에 맞서서 이제 소련군은이 자신들의 점령 지역에다가 독일
1:39:48
경제위원회라는 걸 구성해서 주로 맞대응을 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죠
1:39:54
그럼 이제 뭐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의 대결로 가는 건가요
1:40:01
그렇죠 하지만 바로 다음날부터 그들의 사이가 또 단절된 건 아니었어요 동시속 주민들이 왕래가 가능했고
1:40:07
무역과 물자 교류도 지속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1948년 6월 20일
1:40:14
서방연합국은 이제 이렇게 생정적으로 통합이 됐잖아요 그 다음에 중요한 거는이 뭐겠습니까 이제
1:40:24
화폐 개혁을 하는 것이죠 화폐개혁을 하게 되면 세계의
1:40:30
지역이 경제적으로 통합을 한다는 걸 말하는 거죠
1:40:37
[음악] 마찰이 있겠는데요네 그렇게 되니까
1:40:42
이제 소련도 맞대응을 이제 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1:40:48
동독 지역에 또 동독 지역의 동독 마르크를 또
1:40:54
새로 만들었어 통용한다고 발표를 합니다
1:41:06
왜 세 나라를 왜 소련을 이렇게 배제하고 자기들끼리 이렇게 한거에요 정치적으로
1:41:12
이데올로기적으로 사회의 체제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계속 이제
1:41:17
서로 이견이 있고 갈등이 이제 있었던 것이죠
1:41:24
서방 지역에 점령지를 통합시키는 과정으로 가게 된 것이죠 서방연합국이 스베를린을 수덕지역으로
1:41:30
통합하려고 했죠 이때 소련은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사독 지역에서
1:41:37
베어린 쪽으로 못 가게끔 대한인을
1:41:42
봉쇄시킨 건가요 네 정답입니다
1:41:54
아예 못 들어가게 한다 소련은
1:42:00
[음악] 베를린과 서방적 점령지구 사이에 모든 육로와
1:42:05
수로를 봉쇄해 버리는 것이죠
1:42:16
이렇게 소련에 의해서 이제 섭외를내는 36일치 정도의 식량과
1:42:21
45일 동안 버틸 수 있는 정도의 석탄만 남은 상태에서
1:42:26
완전히 고립되어 버립니다 스밸리는 한마디로 섬처럼 돼 버린 것이죠 이런 위기 상황에서
1:42:35
과연 어떤 방법으로 또 대응했을까요 그때 소련이 베를린 봉쇄에서 미국이
1:42:46
죠 그래서 이게 이제 유명한 베를린대 공수작전입니다
1:42:59
[음악]
1:43:04
그래서 당시 연합국이 수송한 물자 공급량이 어마어마했습니다 그래서
1:43:09
스베를린의 한 210만명 정도의 주민이 살았거든요이 사람들에게 천대가 넘는 수송기로 수시로 오가면서
1:43:18
매일 한 2,000톤의 물자를 이제 공급합니다 [음악]
1:43:32
[음악]
1:43:39
[음악]
1:43:45
다행이다 한 11개월간
1:43:52
간신히 이제이 봉제 상황을 버티게 되거든요 그러다가 이제 1949년 4월 12일
1:43:58
소련이이 봉쇄를 해지하는데 동의하게 됩니다 근데
1:44:03
그렇게까지 봉쇄를 했던 소련이 갑자기 해제를 한 거예요네 그렇죠 왜 이유가 뭐예요 이유는 이제
1:44:10
[음악] 서방연합국들이 동독 지역과 동배를린 지역에
1:44:16
고부가 같이 물품들을 제공하는 그런 교역을 중단시켜 버렸어요
1:44:21
그러니까 동덕지역에서 또 당장 서독 지역에서 들어오는 물건들이 없으니까
1:44:26
고통스러운 것이죠 게다가 이제 소련의 의도와는 반대로 서방연합들이 이제 대동단결해서
1:44:33
베를린 봉사에 맞서고 오히려 공수 작전으로 스벨린 시민들이 서방세력에 더욱더 의지하게 되는 거죠
1:44:40
서로 고마워하게 되는 것이죠 그렇죠 그래서 이렇게 그의 맛은 베를린의 공소작전이
1:44:48
독일 분단이 아주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볼 수가 있는 것이죠 결국 이로써 1949년
1:44:55
5월 23일 서독지역에서는 기본법이라는 이름의 헌법이 선포되고
1:45:01
독일 연방국이 건국됐어요 그리고 자유시장 경제 체제를 이제 지향을 합니다
1:45:07
그리고 1949년 10월 소련의 점령지구에는
1:45:12
독일 민주공화국이 선포되면서 공산주의 체제를 지향합니다
1:45:22
이렇게 1950년대에 들어서면서 전 세계가 냉전체제로 양분되는 가운데
1:45:29
동독과 서독의 체제는 극명하게 나뉘게 됩니다
1:45:37
우리나라는 냉전 때 남북으로 나뉘었다면 독일은
1:45:42
서동 동서로 나뉜 거네요 동독소독으로 나뉘어지고 동배를 인스빌리는 나누어져서 그래서 냉전을
1:45:49
오랫동안 동서대결이라고도 불렀던 것이죠
1:45:55
분단 후에 독일 상황을 보여주는 만평이 있습니다 같이 볼까요
1:46:06
만평 아래 독일어가 있는데 한번 읽어봐 주시겠어요
1:46:14
이러면 잘 자라겠죠 잘 크겠죠 그렇죠
1:46:22
근데 중간에 있는 거는 뭐예요 중간에 있는 거는 독수리거든요 독일을 상징하는 독수리
1:46:27
문장인데 왼쪽 독수리는 이제 중절모를 쓰고 왼쪽에 있는 사람들은 이제
1:46:33
서방 연합국을 말하는 것이고 오른쪽 독서리는 공산당을 연상시키는
1:46:39
모자 있죠 소련을 표현하는 것이죠
1:46:46
팔에는 이제 국기를 상징하는 그런 망치와 낫을 가지고 있는 거죠
1:46:51
[음악] 연합국은 다양한 음식을 먹이고
1:46:56
있습니다 그래서 또래는 무엇을 먹이고 있는
1:47:01
거죠네 무기 무기인 거 같기도 하고 그쵸 모기를 보급하는 상황이 그려져
1:47:08
있습니다 두 개의 열강들이 독일을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키우는
1:47:14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음악]
1:47:19
근데 오른쪽 똑소리는 좀 털도 앙상한 거 같아요
1:47:24
서독에서 그린 거예요 아 선옥에서 일부러 동동은 힘들다네 그렇죠 이제 초독신문입니다네
1:47:33
그렇죠 당시 소독인들이 독일 분단을 어떻게 이해하는지를 또 보여주는 측면도 있는 거죠
1:47:39
그러면 서방 영어를 소독을 어떤 식으로 지원을 하는 거예요 근데 소독을 점령한 연합국 입장
1:47:47
입장에서는 무엇보다 공산주의를 막는게 중요합니다 그래서 미국이 선택한 방법은 바로
1:47:54
마셜 플레인이라는 것입니다
1:48:17
[음악]
1:48:41
어디 마샬 플랜에 따라서 130억 달러에 달하는 서유럽에 대한 경제적 지원이 이루어집니다
1:48:50
30억 달러 지금으로 따지면 대략 한 우리 돈은 한 약 140조원 140조원에
1:48:57
따른 엄청난 규모 그래서 마샬 플랜 이후에 이제 서독은
1:49:03
이제 폐허를 딛고 이제 성장을 잃었고 자연스럽게 생활수준도 이제 상당히
1:49:11
올라가게 됩니다 비슷한시기 동독은 어땠어요 경제가
1:49:17
동덕원 인제 갚아야 될 돈이 있었어요 얄타이담 당시에 아까 잠깐 말씀드렸는데 그렇죠 대상건 문제가
1:49:24
있는 거죠 그래서 어른의 전쟁 피해를 200억 달러로 산정하고 그 절반인
1:49:31
100억 달러를 독일로부터 받아내는데 이제 합의를 했거든요 그래서 올해는 전쟁 배상금을 이제 받아 갈 요령으로
1:49:39
동독 지역의 공업 설비도 기계들 같은 거 그런 것을 서류는 다 떼어 갔습니다
1:49:46
떼어 갔어요네 그렇죠 1946년부터 53년 사이 동덕에서 직간접적으로
1:49:52
받아간 돈이 한 140억 달러에이를 것으로 추산합니다
1:50:01
동독의 모든 자본 설비 한 40% 안팎 정도가 철거해 갔다고 보시면 되는 거죠
1:50:08
미국의 재정적 지원을
1:50:13
다른 지역에서는 다 봤는데 동독 지역은 이제 오히려 반대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죠
1:50:19
그렇다면 이제 동도의 경제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생산량이 당연히
1:50:24
떨어지고 수요를 떨어가지 못하고 그러니까 치약이나 비누나 어이루나 이런 기본적인
1:50:30
생필품들이 이제 부족해지는 것이죠 가게에서 그러면 또 물건들을 사기
1:50:35
위해서는 오랫동안 기다려야 되고 부족한 현상들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이죠 [음악]
1:50:43
이렇게 동독 주민들이 생활수준은 이제 소독에 비해서 급격히 떨어졌고 이제 경기가 경제
1:50:49
상황이 굉장히 좋지 않은 상황이 이어지죠 그 동독 사람들이 특히 오래 걸려서 뭐 받았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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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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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1:51:22
누구나 [음악]
1:51:31
갖고 싶은 자동차 하는데 문제가 10년 같이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갖고 싶어요
1:51:38
자동차 한 대를 입학시키잖아요 그때 춤을 하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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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가 성인이 될 때 자동차 나와요 너무 오래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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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1949년 동독과 소독으로 분단된 독일은 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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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체제 아래에 그들 각자의 역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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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이 됐다고 해서 바로 다음날부터 그들의 사회가 단절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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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동스독 주민들의 왕래가 가능했고 무역이나 물자 교류도 지속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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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렇게 비교적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했던 동서 국경사이에 1952년
1:52:20
철조망이 처지기 시작합니다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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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요 갑자기 교류 잘 하다가 동덕지역 사람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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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독으로 탈출하는 흐름이 자꾸 생겨나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그래서 힘드니까네 그렇죠 누가 있으려고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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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어 그래서 그 규모가 이제 반발적으로 가끔 일어나는 그런 탈출
1:53:18
수준이 아니고 철조망이 들어선 1952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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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5,000여명이 소득으로 탈출합니다 특히 이제 문제가 됐던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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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들하고 기술자들이 이제 맞는 거죠 경제활동 인구가 경제활동 인구가 빠져나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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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약자나 이제 미숙년 공들만 이제 남게 되고 더 심해지면 인구 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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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가 또 생겨나는 것이죠 그렇다면 이제 대체통독 사람들은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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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동독을 탈출하려고 한 걸까요 그리고 동덕을 탈출해서 이제 얻고 싶은 거는 이제 뭐였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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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알아야 할 사건이 하나 있습니다 그게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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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독 정권이 급진적인 소련화 정책 소비트 정책을 밀어붙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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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독의 당시 최고 권력자가 발트 울버리지도 하는 서기장이 있습니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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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도 울브리스트 서기장은 분단 직후에 계획경제 농업 집단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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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을 통해서 이제 공산화를 박차를 홍산의 박차를 가하게 됩니다
1:54:29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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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와중에도 다시 또 울버리스트는 근로자들에게 노동할당량을 10%
1:54:45
올리는 정책을 시행하게 됩니다 동독 주민들의 반발이 불만이 점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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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졌을 것 같아요 결국 1953년 6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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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들이 거리로 나와서 시위를 이제 벌이게 됩니다 당시 상황이 어땠는지를
1:55:04
잠깐 영상으로 확인해 보겠습니다
1:55:13
이렇게 이제 동덕 정부를 타도하겠다는 그런 구호까지 이제 번지입니다
1:55:25
역시 참석자들은 이제 동독 전역에서 시청이라든지 시장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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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공산당에 이제 간부 진모씨를 점거하고 수많은 경찰서에 진입합니다
1:55:38
결국 동 밸리는 유혈 사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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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태는 이제 단순히 경찰로만으로는 진압할 수가 없는 상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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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이렇게 되면 누가 나서겠습니까 근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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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이죠 소련군이 그래서 동덕의 주둔하던 소련군이 시위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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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압하기 위해서 나서게 됩니다
1:56:15
출동이 됐어요 [음악]
1:56:32
피해자들도 많이 있었겠네요
1:56:39
[음악] 자 그렇게 1953년도이 민중봉기가 이제 일어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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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에 동덕에서 서독으로 탈출하는 행렬이 계속되고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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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대됩니다 그러니까 이제 1952년이 접경지에서 철망이 만들어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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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독주민들이 이제 서독으로 가려면 어디로 가면 되겠어요 동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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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어가는 그런 방법으로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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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도로 갈 수 있는 길이 생기는 것이죠 그러니까 이제 이런 사태의 심각성을
1:57:15
느낀 동독 정부는이 탈출을 막기 위해서 해결책을 생각해 내게 됩니다 그게 이제 뭐였을까요
1:57:23
그게 바로 독일 분단의 상징인 베를린 장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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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을 한 거죠 아 베를린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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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독 정부는 1961년 8월 13일 서기장 발트 울브리스트의 지시로
1:57:42
전국의 군부대와 청년동맹이 비상동원되어 베를린 장벽을 건설하게 됩니다 그럼
1:57:50
베를린 장벽이 처음에 어떤 모습으로 세워졌는지 확인해 볼까요 [음악]
1:58:00
절초망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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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조망으로 급하게 둘러친 다소 엉성한 모습이었죠
1:58:11
사람들이 보고 웃고 있는데요 웃고 있는 거죠 이게 뭐지 약간 이런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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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사진을 볼까요 뭐죠 [음악]
1:58:27
서로 이제 가족이나 친척들을 향해서 이제 손을 흔드는 모습 보이세요 아기 앉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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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오른쪽에 있는 중년 여성은 지금 뭐라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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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원경을 가지고서라도 친척이나 가족들 친구들 상황을 이제 관찰하고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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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자 이제 그렇다면
1:58:49
동독 주민들의 탈출 행렬을 막을 수 있었을까요 자 이제 사실 베르니아스 장벽이 만들어지자마자
1:58:56
곧장 탈출은 이제 시작됩니다 [음악]
1:59:10
정말 거꾸로면 철조망을 뛰어넘는 동독 군인의 사진입니다 군인이구나 자유로의 도약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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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에 많이 봤던 사진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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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장벽이 이제 세워진게 8월 13일인데 이제 15일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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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조망을 넘어서 수도를 향하는 찰나의 모습이 이제 찍힌 겁니다 오히려 군인들은 좀 탈출하기 쉬웠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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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처에 있었으니까 근처에 있어서 경비하는 척하면서
1:59:41
[음악]
2:00:12
자 다음 사진 또 볼까요
2:00:20
이제는 진짜 점점 높아지는 거예요
2:00:25
이쪽은 서쪽이니까 장벽 넘어 인제 아파트에 사는
2:00:30
친척과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가서 보기 위해서 막대기를 뜯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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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대화를 하려고 하죠 [음악] 할아버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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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살 때 더군다구에서 탈출해갖고 서쪽으로 넘어왔어요 오토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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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출하셨나요 그때는 아직도 배린 창벽 세옥이 직전이었기 때문에 자유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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왔다갔다 좀 할 수 있었거든요 소책으로 넘어와서 돈 벌고 그것은 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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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한테 꺼내주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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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이제 하룻밤 사이에 장벽이 치우겠다고 해서
2:01:13
생긴 다음에 엄청난 충격을 입었죠 우리 할아버지가
2:01:18
앞으로 가족의 영영 많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되게 슬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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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보잖아요 무슨 일이야 그래서 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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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이제 한낱 벽돌로 이제 만든 담에 불과했지만 탈출자들이 생기니까 그에 맞서서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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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장치를 만들 수밖에 이제 없었던 것이죠 점점 튼튼해지는 거죠 그 대체 어떤
2:01:46
방법으로 탈출했을까요 영상을 한번 볼까요 영상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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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으로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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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왜 왜 뭐 하는 거예요
2:02:06
넘어가려고요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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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2:02:20
이거 뭐야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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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2:02:35
어떻게 조마조마해 [음악]
2:02:43
믿기지가 않아요 [음악]
2:03:01
[음악]
2:03:26
자 이제 왜 이렇게 건물에서 뛰어내리는 방법으로 탈출을 했을까요 전쟁이 건물은 이제 배려나오거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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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주택과 건물이거든요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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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 건물에 바깥에는 바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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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외를 님이고 그 건물은 동배를 인해 속하는 거죠 유일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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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출구네요 장벽을 넘어갈 순 없으니까 아직 완전히 이제 봉쇄를 못한 상태니까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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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의 벽을 다 벽돌로 창을 다 맞고 문을 다 막는 방식으로 벽이 장벽이 이어지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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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그 아직 동독 군인들이 그 건물을 봉쇄하기 전에 그 건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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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외를 인적으로 뛰어내리는 것이죠 무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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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출할 수 있게 자 이렇게 다양한 방법으로 탈출에 성공한 사람이 한 5천 75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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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 탈출을 이제 계속 힘들게 하려고 장벽이 계속 더 단단해진 거네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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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죠 처음에 아까 봤던 가시 철조망으로 울타리가 만들어졌는데 그게 체계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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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한 콘크리트 장벽으로 이제 변해갔던 것이죠 그 당시 베를린 장벽의 길이와 규모를 지도로 한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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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겠습니다 서베를린과 동베를린 경계에 세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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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벽은 약 43킬로였어요 높이 3.6m의 콘크리트 장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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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km 가량 뻗어 있고 나머지 49km는 철조망이 3기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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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러싸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런 형태로 이제 발전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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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이제 오해하는 것이 베른 장벽이 그냥 외벽 하나만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고 말씀드린 거죠 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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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벽입니다 우리가 3.6m 콘크리트 백이라는게 바로이 외벽이죠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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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는 이제 이렇게 도로 순찰대가 또 있고요 그 다음에 탐조 등이 이렇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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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감시탑이 또 이렇게 있고요 감시탑이 하나 30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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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에 이제 127km에는 전기가 흐르는 전기 감지 장치가 설치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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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고요 군견이 한 500마리가 순찰을 돕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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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마지막이 내벽이라는 겁니다 내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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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몰랐어요 보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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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알고 있고 지금 남아 있는 건 주로 외벽만 남아 있기 때문에 그렇게 알고 있는데
2:06:37
실제로는 이제 이렇게 계속 단단해져 갔다는
2:06:53
마음대로 그렇게 하면 거기 살던 사람들 너무 안쓰러워요 진짜
2:06:58
소독 사람들도 너무 황당하죠 너무 일상에서 주거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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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을인데 한 마을이 갈라져 버리고 원래이 교회를 다녔는데 그 교회가
2:07:12
동배를 해석하면서 뭐 교회를 못 가고 분단과 냉전이 일상에서 이렇게 일상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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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완전히 갈라지게 한 것이죠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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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에 이제 급기야이 베를린 장벽을 뛰어넘는 것은
2:07:28
물론이고 이제 하늘길을 이용해서 소득으로 탈출하는 두 가족이 등장합니다
2:07:34
근데 어떻게 제작을 해 당시 사진을 한번 보면서 계속 얘기를 이어가죠
2:07:41
궁금하네요 어떻게 생겼는지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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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해 보이네 [음악] 행복해 보이죠 그래서 우선 이제이
2:07:51
과정을 잠깐 설명을 드리면 우선 이제 두 가족의 아빠들이 직장 동료였어요 그래서 이제 소독 잡지를 윈입 보다가
2:07:59
당시 서브 탑재를 볼 수가 있었거든요 제한적으로나 그래서 열기구 대회 기사를 봤습니다
2:08:07
근데 그 기사를 보고 열기구를 만들어서 가족들하고 같이 탈출하면 되겠구나라고 생각을 한
2:08:13
것이죠 그래서 합의를 했고요 그래서 열기구 만들기 위해 돌입하는데 탄탄한 원단을 이렇게 많이 사야 되죠
2:08:19
근데 너무 많이도 사면 또 의심받으니까 그래서 100개 이상의 가게를 이제 방문을 해요 이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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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태의 원단을 구입을 했습니다 그래서 한번 해 봤는데 실패했어요
2:08:32
예술적으로 좀 실패했습니다
2:08:39
[음악]
2:08:44
한 차례 실패를 하고 새로 열기구를 만들어서 우여곡절 끝에 두 가족은 열기구를 타고
2:08:51
동독 탈출을
2:08:57
너무 재밌다 저건 진짜 바람으로 가는 거잖아요 그렇죠 똥독 사람들은 근데 왜 이렇게
2:09:03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동덕을 탈출하고 싶어 할까요
2:09:12
근데 그건 말고 또 정치적 억압이 이제 지속되었고 오히려 강화되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동덕 사람들이 얼마나 큰
2:09:19
감시와 억압의 시달렸는지를 상징하는 조직이 있습니다 그게 바로
2:09:24
슈타지라는 곳입니다 이슈타지는 소련의 정보기구였던
2:09:31
kgb의 주도하에 소독과 서방 세력의 동조하는 사람들이 있는지를 감시하려고
2:09:36
그들을 사전에 봉쇄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정보기구입니다
2:09:46
비공식 영혼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공식 요원들은 이제
2:09:51
각 부서에서 정식으로 근무하는 요원들이고요 비공식 요원들은 정보를 수집해서 공시 요원들에게 전달하는
2:09:58
역할을 했습니다 예를 들면 이제 오늘
2:10:04
승규 씨가 집에 가서 지원 씨가 한 말과
2:10:09
DS 한 말들을 다 적어서 기록을 전달한다는 아닌
2:10:16
척하면서 일상에서 이렇게 비공식 요원들이 존재했다는 얘기죠 1989년을
2:10:22
기준으로 하면 시타지에는 9만 명 정도의 공식 직원 그리고 그거보다 근데 두 배가 많은
2:10:30
18만명의 비공식이온이 존재했습니다 저
2:10:36
[음악] 렇게이 때문에 이제
2:10:41
동독을 통치하던 직권세력은 공산당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또 이들의 독재가 가능했던
2:10:46
것은 사실 피타지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저는 그 영화를 봤거든요
2:10:55
타인의 삶이라는 영화를 봤는데 그 영화에서 보면 스타디의 존재가 되게 부각돼서
2:11:02
나오거든요 감시 대상자가 있는데
2:11:07
정말 교대 근무를 하면서 밤을 재서라도 모든 걸 다 엿듣고
2:11:17
그리고 그 감시 대상자의 연인을 매수하려고 막 접근하기도 하고
2:11:23
진짜 살벌하더라고요
2:11:30
그러니까 아까 그 열기구 만든 그 가족이 더욱 대단한 거죠 무섭잖아요 같이 같이
2:11:41
항상 모든 사람 서로 이렇게 의심하게 만든 거죠 그걸 어떻게 살아 불안해가지고 그래서 이제 좀 충격적인
2:11:54
날라왔어요 그 편지를 쓴 사람은
2:11:59
따지였어요 그
2:12:08
[음악] 어떤 내용이었냐면은 당신이 탈출한 건 우리가 알고 있고
2:12:16
본인 가족을 해코칭 당하지 않으려고 하면은 돈 보내 줘 달라고
2:12:22
협박이네요 협박 내용이었죠 와 할아버지 너무 놀래가지고
2:12:27
노란 할아버지가 정덕으로 돈을 이제 부쳤던 일도 있었어요 가족분들을 위해서 또 열심히
2:12:34
막 일하고 아니 근데 이게 뭐 이게 사람들을 감시하는 것뿐만 아니라 정신까지
2:12:39
피폐하게 만들었다고 하던데 심리적 테러 심리적 고문이라고 하는 말인데요 비타지는 이제 감시대상에
2:12:46
이제 읽을 수 일투족을 감시하는 것은 물론이고 다양한 방법으로 사람들을 이제 괴롭혔어요
2:12:53
어떻게요 예를 들면이 사람은 아주 외설적인 성향의 소유자다 알코올 중독자다 이런
2:12:59
식의 거짓 소문을 내서 심리적으로 위축되게 만드는 그런 방법이죠 사람들과의
2:13:06
약간 귤을 단절시켜버리는이 사람이 사회적 그 생활을 못하게 하는 거네요 그래서 익명으로 편지 협박 편지를
2:13:12
보내거나 밤마다 반복적으로 전화를 거는 것 이런 것도 한 방법이고 불륜
2:13:17
관계를 의도적으로 이렇게 꾸며갖고 연인 관계나 가족관계가 파탄나도록 그렇게도 했습니다
2:13:27
이런 방법으로 감시 대상이 된 사람들은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압박을 받으면서
2:13:33
히스테리 캐치거나 우울증에 시달리면서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2:13:38
[음악] 와 무섭다
2:13:45
그러면 이제 우리는 뭐 당해보지도 않았는데도 짜증 나는데 발각되면 그건 뭐 어떻게 돼요 바로
2:13:51
악명인 높은 슈타지 감옥으로 가게 됩니다 수타지 감옥이 따로 있어요 또네 그렇죠
2:13:56
[음악] 과거 나치의 시설물로 지어졌던 것들을
2:14:03
1945년부터 소련군이 이제 감옥으로 사용했거든요 그것들 중에서 수다지가 조사기관 겸
2:14:10
과목으로 계속 활용을 하게 된 것이죠 근데 이제 동독은 물거물이나 전기고문
2:14:17
같은 물리적 고문을 하지는 않았어요 대신 이제 잠을 안 재우고 굶기거나
2:14:23
특히 이제 저항하는 것으로 보이는 사람이면 심리적 고통을 가했는데 블랙박스라고 불리는 독방에 가두는
2:14:29
것이었어요
2:14:35
이 독방은 이제 창문이 하나도 없고 둥글게 만든 내부 벽인데
2:14:41
벽을 둥글게 만든 건이 공간을 파악하지 못하게 해서 사람을 미치기
2:14:47
직전까지 몰아가기 위한 고도의 방법이었어요 이렇게 이제 동덕 사람들이 공산주의
2:14:53
체제에서 이제 숨막히는 감시와 그 통제하에서 살아가는 동안
2:14:59
분단어 동시도의 관계는 냉랭하기만 했습니다 소독의 초대 총리인 코로나트
2:15:05
아데나오는 친서방정책을 통해 우선 서독의 안보를 확고히 하고 소득
2:15:11
정부만이 국제법상 존재하는 유일한 독일 국가라면서 할슈타인
2:15:16
원칙이라는 것을 내세우게 되죠 [음악]
2:15:27
이 할슈타인 원칙의 주요한 내용은 동독을 국가로 승인하는 나라와는
2:15:32
외교관계를 맺지 않거나 단절한다는 한마디로 동독 불인정 정책이었습니다
2:15:39
국제적으로 동독을 약간 따돌림시키려는 무너뜨리기 위해서 소독 정부는 사실
2:15:46
동독의 유입물을 보낸다든지 반체제 전복 활동을 조장합니다 [음악]
2:15:59
근데 이제 하지만 이제 동덕이 무너지기는 커녕 어떻게 되었어요 아까 1961년에
2:16:06
베를린 장벽을 세우고 체제를 더욱더 강하게 되었던 것이죠 [음악]
2:16:12
그래서 이제 동독 내부 체제가 무너지기를 기다리는 그런 정책은
2:16:17
완전히 실패로 끝나는 것이죠 그래서이 할슈타인 원칙을 포기하고 동독과 수도의 관계를 이전과는 다른
2:16:24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시킨 인물이 이제 소득에서 성장을 하고이 물이 서독에 권력을 잡게 됩니다
2:16:32
바로 1969년 서독의 총리가 된 빌리브란트입니다
2:16:40
빌리브란트는 독일 통일 역사를 말하는데 있어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입니다 그 지난 강연에서 나치
2:16:48
독일에 대한 사제의 의미로 바르샤바 유대인 희생자 추모직 앞에서 무릎을 꿇었던
2:16:55
바로 그분입니다
2:17:02
사실 의존으로 준비되지 않았거든요 일종의 돌발적 행동이었어요
2:17:08
진짜 그때 되게 멋있다고 생각을 했거든요 그 사진을 보면서 근데 이제 하지만 이제 정작 서독
2:17:15
사회 내부의 반응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소독 여론은이 행동에 대해서 총리가
2:17:22
쓸데없는 짓을 했다든지 그리고 조국을 오히려 모독했다라는 그런
2:17:27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절반이 넘게 됩니다 근데 하지만이 무릎 꿇기는 동료로
2:17:33
국가들이 브란트 소득총리가 얼마나 평화에 대한 강력한 의식을 있는지를 확인하고
2:17:38
신뢰할 수 있는 그런 결정적인 전개가 되게 됩니다 그래서 그
2:17:43
업적을 인정도 받고 1971년 그 노벨 평화상까지 수상하기도 했었어요
2:17:52
그렇죠 빌리브란트에게는 이제 일관된 정치원칙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게
2:17:57
뭐였을까요 중동군 바로 현실적 실용주의라는 것이었어요
2:18:03
한마디로 현실적으로 우리가 직면한 문제에
2:18:10
접근하고 구체적인 해결 방법을 찾자는 거였습니다 경제적 어려움이
2:18:16
동독 정권의 붕괴를 초래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일종의 환상이다
2:18:21
동독과의 긴장이 커진다면 오히려 그것이 분단을 더 심화시킨다라는 그런
2:18:26
내용이 있어요 역으로 생각하네 역으로 생각하는 거죠 그래서
2:18:32
브란트는 이렇게 정치 생활 내내 거창하게 뭔가를 얘기하는 건 뭐 통일 얘기하는
2:18:37
거 이런 거 보다도 작은 일이라도 행동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보았던 것이죠 이게 바로
2:18:45
빌리브란트가 발표한 동방정책입니다
2:18:55
정말이 동방정책은 앞에 할슈타인 정책이랑 완전 정반대
2:19:00
기준네요 그렇죠 정책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보셔야 됩니다 그
2:19:06
방법의 일환으로 브란트 정부는 동독의 정치범 구매를 더욱 확대하기
2:19:11
시작합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정치적으로
2:19:16
억압을 받는 동독 시민들이 감옥에 있어요 인권유린을 하고 있는 거죠 그런 그
2:19:22
사람들을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그 사람들을 도우려면 돈으로
2:19:27
그렇죠 그 사람들에게 자유를 마련해 주기 위해서 구매를 통해서 돈을 주고 이들을
2:19:35
구출해내는 일을 확대했다는 얘기입니다 아 소독에서 좀 이제 돈이 좀
2:19:40
경제적으로 있으니까 그렇다면 이런 정치범들을 구매하는데 소득은 얼마를 지불했을까요 대략
2:19:48
굉장히 많이 썼을 것 같습니다 석방 대가로 소독은 동독에게 전
2:19:54
기관에 걸쳐서 34억 마르크의 현물을 지불합니다
2:19:59
33번에 상위 안 잡힐 수 있거든요 제가 이제 1인당으로 얘기를 해볼게요 1964년부터 1977년까지는
2:20:07
동독정치범 1인당 4만 우리 돈으로 3천만원입니다 그리고 그 뒤에는
2:20:14
9만 5847마력 거 우리 돈으로 한 8천만원을 지불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2:20:19
방법으로 동독체제 붕괴할 때까지 33,755명을 거래를 통해
2:20:26
현물 거래를 통해서 석방하도록 했습니다 두 번째는 이제
2:20:31
동독과 수도권의 통행이 좀 더 원활히 쉬워질 수 있도록 정부 차원에서 지원을 했던 것입니다
2:20:39
특히 이제 1972년에 소독과 서베를린의 그 통과 교통협정이 체결되거든요 이거는 이제 서베를린과
2:20:46
서독도시 사이가 동독 지휘대잖아요 이것을 가려면 이제
2:20:52
협정이 체결될 필요가 있는 것이죠 그래서 이제 서베를린과 소득세 오신 함부르크와
2:20:58
산업은 이런 베르크 등 세 곳을 연결하는 고속도로는 무비자로 갈 수 있도록 그렇게 조치를 했고요
2:21:04
그리고 이제 그 이전까지는 통행료를 개인이 이렇게 납부했는데 소득 정부가 그거를 1년치 전체를
2:21:11
연간 일정액을 정해서 일괄 납부를 하게 되죠 소독이 엄청난 돈을 투자한 거네요
2:21:18
이렇게 동스톱 간의 교류가 점차 확대되면서 마침내 동시적 관계에
2:21:25
순풍이 불어오기 시작합니다 1972년 12월 동스톱 간 기본
2:21:31
저약을 통해서 관계가 정상화 되는데 이제 초석이 마련된 것이에요 [음악]
2:21:38
트로이즈의 우호적인 관계를 발전시킨다는 것을 협약을 맺었고요 그
2:21:44
다음에 두 나라가이 주권 그 다음에 영토보존 자결권 인권보호 등을
2:21:51
존중한다는 건데 이거는 UNA 인권 선언입니다 그것의 기초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여기 규범적으로는
2:21:56
인권 보호를 서로 약속을 정해서 지키자 이렇게 정한 것이죠
2:22:02
그럼 이때부터 동돌나라로 인정해요 소독이 국제법적으로는 완전히 정하진 않지만
2:22:08
사실상 인정하는 것이죠 조금씩 평화의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네요 이런
2:22:14
기본조약을 계기로 동독과 수도권의 교류는 더욱 이제 활발해졌습니다 전화도 하고
2:22:20
편지도 되고 동독 사람들이 서독의 tv를 시청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2:22:26
그리고 이제 수도 사람들은 동독의 친척이나 관계기관에 초청을 받을
2:22:31
경우에 동독에서 30일간 여행도 가능합니다
2:22:37
분단은 되어 있지만 그래도 왕래를 할 수 있는 거는 이렇게
2:22:44
동방정책을 뚝심있게 이끌어온 빌리브란트 총리가
2:22:49
임기를 2년 이상 남겨둔 상태에서 돌연 사태 의사를 밝히게 됩니다
2:23:06
[음악] 자 보좌관의 정체가 슈타지로 밝혀졌습니다
2:23:14
[음악]
2:23:24
원래 동덕 사람이에요 1955년에 시타지에서 채용되었고 마찬가지로 슈타지였던 아내와 함께
2:23:31
서독으로 넘어갑니다 브란트가
2:23:37
속해 있는 3인당의 잠입합니다
2:23:46
그러다가 이제 3인당 활동을 통해서 인정을 받아서 이제 1969년
2:23:51
브란트가 소득 총리가 되면서 총리실에 진입할 수 있게 됩니다
2:24:03
그럼 당연히 이제 총리가 보는 모든 주요한 김일 서류들을 받아볼 수 있게 된 것이죠
2:24:09
그래서 기염은 브란트 총리의 기밀 자료를 마이크로 필름으로 만들어서
2:24:15
접촉 요원을 통해 동배를 인해
2:24:21
한 행동이랑 똑같네요 시각통에 담아가지고 1973년도 6월에 브란트가
2:24:28
노르웨이로 가족여행을 가거든요 [음악]
2:24:43
[음악] 가족 여행에 동행했을 때 총리의 모든
2:24:48
서신이 그의 손을 거쳐갔고 당시 미국 대통령 닉슨의 진서를 포함해서
2:24:54
기밀문서들을 비밀리에 수타지 요원들이 촬영할 수 있도록 그렇게 했습니다 아니
2:24:59
[음악]
2:25:05
근데 이게 한 나라의 총리의 부서관이 스타지였는데 그거를 그렇게 될 때까지
2:25:11
왜 아무도 몰랐던 거예요 사실 기염에 활동 초기에 그의 정체를
2:25:16
의심하는 보고가 올라갔습니다 암호가 발각이 돼서 잠시 이제
2:25:22
의심이 있었지만 그의 주변인들이 모두 근거 없다고 생각을 해줬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을 한 것이죠
2:25:30
귀요미 덜미를 잡힌 거는 서독의 헌법 수호청 정보기구에서 그 증거를 찾게
2:25:37
되면서부터입니다 193년 수도 헌법 수호층은 동독의 스파이더를 이제 일부
2:25:44
검거했는데이 들의 메모에서 기욤이라는 이름이 발견된 거예요 그래서 이제 이걸 수상하게 여기고
2:25:50
이제 계속 조사를 해나가다가 결국 이제 기온의 부부를 정체를 알게 됩니다 그래서 이제 그
2:25:58
다음에 4월에 기업은 체포되었고 재판을 받아서 13년을 선고를
2:26:03
받았습니다 근데
2:26:08
브란트는 그러면 죄책감에 사임을 한 거예요 뭐 왜 사용한 거지 빌리브란트가 치부가 될 만한 사생활을
2:26:16
다 알고 있다고 봐야 되죠 그래서 브란트는 사실 여성 필력이 있었고 그
2:26:21
다음에 알코올 중독의 사실 가까웠고 이런 여러 가지 이제 사적으로 좀
2:26:26
그렇게 깔끔하지 못한 일들이 꽤 있었습니다 [음악] 이런 위기에 몰려서 브란 인제 결국
2:26:32
사임을 하게 됩니다 [음악] 그럼
2:26:38
빌리브란트 총리의 서태 이후에 동독에 대한 소독의 지원과
2:26:43
지속적 교류에 대한 의지가 사라져 버렸을까요 다행히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그란트
2:26:49
이후 소득 총리자리에 오른 헬무트 콜이 브란트의 동방정책을 이어받아서
2:26:54
지속적으로 실행해 나갔습니다 소독의 정치가들이 어느 정도까지
2:27:00
동방에서 협력했는지는이 사람을 통해서 더 잘 이해할 수가 있어요 바로
2:27:05
프란츠 요셉 슈트라우스라는 바이에른의 전설적인 주지사입니다 아마
2:27:11
니키 씨와 폴로리안 씨는 아마 알고 있을 텐데요이 사람은 원래 사실
2:27:16
굉장히 보수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었고 반공주의자였어요 동방정책에 대해서도 1970년대 내내
2:27:22
가장 강하게 반대했을뿐만 아니라 빌리브란트를 실각시키려고
2:27:28
총리 불신이만을 제안했던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근데 이런 인물조차도 1980년대
2:27:33
초과되면 동방정책에 대해서 이제 찬성하고 오히려 더 주역으로 나서게 됩니다
2:27:39
보수주의전도 어떻게 이렇게 갑자기 바뀐 거예요 사실 보수자들은 달리 반대할 길이나 명분이 없다고 봐야
2:27:46
됩니다 서독 내부에서 보수 진보 할 것 없이 동덕에 대한 지원 그리고 대화나 협력
2:27:52
협상을 펼쳐나가는 것에 혼자만 반대를 외치다가는 오히려 정식으로 고립될 상황에 놓이 것이죠
2:27:57
그만큼 정치인 서독 정치인들한테 동방정책이 대세였던 거네요 다 그렇죠
2:28:03
바로 그렇습니다 [음악] 그런데 동독과 소독 관계에 미묘한 긴장관계를 형성하는
2:28:10
일이 벌어졌습니다 1980년대가 되면 동독 주민들이 동유럽을 통해서
2:28:16
소독으로 가려는 그런 움직임을 보입니다 그래서 동국권 국가에 있는
2:28:22
서독대사관에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을 합니다 동쪽으로
2:28:27
다른 나라를 수천명이
2:28:37
몰려들면서이 문제를 두고 동독과 수덕이 갈등을 벌이게 됩니다
2:28:43
그래서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될지 아주 난감했죠 모두가 난감한 상태
2:28:49
였습니다 소독대사관으로 가면은 망명할 수 있는 거예요 꼭 그렇진 않습니다
2:28:55
근데 이제 1949년에 이제 서방측 3개 점령지에서
2:29:00
독일의 임시연법으로 제정되었던 기본법 116조의 내용 때문입니다
2:29:06
[음악] 그 내용은 독일 연방국의 국민은
2:29:13
독일의 국적을 지닌 모든 독일입니다 그렇게 되면 동독 사람도 독일 사람으로 간주가 되는 것이죠
2:29:20
이런 일이 이제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되니까 동독 주민들은 계속 체코 헝가리 폴란드 등으로
2:29:27
끊임없이 이제 중간 정착지로 활용해서 소독으로 탈출을 해갔습니다
2:29:33
그 숫자가 이제 처음에 300명 500명 단위가 아니라
2:29:39
지금은 이제 4천명이라는 숫자가 되니까 감당하기가 힘들어지는 것이죠
2:29:45
[음악]
2:29:53
[음악]
2:30:05
사람들 모여 있네요 대사관에서도
2:30:12
난감했겠네요 진짜 프라하의 소독대사관은 공간의 문을
2:30:18
이제 폐쇄하지만 이미 담장을 넘어서 이미 계속해서 사람들이 밀려들었습니다
2:30:25
[음악]
2:30:31
그래서이 상황을 가만히 두고 볼 수가 없었던 서독의 해무도 콜 총리가이 문제에
2:30:38
대해서 회의를 하자고 당시 이제 동독서기장인 후네크라는 사람
2:30:44
총리에게 제안을 합니다 [음악]
2:30:56
근데 커넥터는 이제 이거는 우리의 주권의 문제다 그래서 소득 정부가이 문제에
2:31:01
들지 말고 동독 주민들을 빨리 소득대서관에서 내보내라고 그렇게 요청을 한 거죠
2:31:07
근데 이렇게 해서 실강이를 많이 벌립니다 자 그런데
2:31:15
[박수] 인간이나 폴란드에서 공산주의 체제가 무너지고 있는 상태였어요
2:31:22
체코 정부도 이제이 변화하는 자유와의 물결을 완전히 그 거부할 수가 없는 상태인
2:31:28
거죠 그런 상태에서
2:31:33
체코 정부가 동도 공산주의자들의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일 생각이 별로 없었어요 그것을 이제 감지한 동독
2:31:41
총리도 이걸 계속 고집을 부리다가 오히려 국제적 망신이 될 것이라고 보고 소독의 요구에
2:31:48
응했죠 [음악]
2:32:11
근데 이거는 굉장히 좀 역설적인 인식을 이해를 갖게끔 만드는 거죠 무슨 얘기냐면 베를린 장벽이 이제 존재할 이유가
2:32:19
없어지는 거죠 [음악]
2:32:26
원하면 [음악] 동유럽 지역으로 건너가서 오스트리아로 가거나 헝가리나
2:32:32
야탑 폴란드나 체코에서 대사관으로 들어가면 또 곧 소득으로 갈 수 있게
2:32:37
되는 그렇게 해석될 수가 있는 것이죠 [음악]
2:32:42
그러면 탈출을 시도하지 않았던 동독 주민들은 뭐 불만이 없었나요
2:32:48
이렇게 되니까 불만이 이제 그게 다라는 거죠 그래서 거리에는 이제 동덕 정권의 해체를 요구하는 시위를
2:32:56
벌이게 되죠 그 시 현상을 영상으로 다시 잠깐 보도록 하겠습니다
2:33:04
라이프 지시에 성 니콜라의 교회에서 1982년부터
2:33:09
매주 월요일마다 평화 기도회가 열렸습니다
2:33:15
교회 안에서만 이제 촛불을 켜고 기도를 하다가 교회 바깥으로 이렇게 나오기 시작하는
2:33:20
것이죠 그 수가 이제 점차 늘어나고 1200명의
2:33:26
10월 되면 그 숫자가 7만명으로 불었네요
2:33:32
[박수]
2:33:45
와 진짜 어마어마하게 많아 사람들이 [음악]
2:34:00
[박수] 다들 자유를 갈망했나 봐요네
2:34:06
그렇죠 [박수]
2:34:12
[음악] [박수]
2:34:25
[음악] 영상 보니까 어떻습니까 자유를 정말
2:34:31
다들 원하는게 느껴져요 그래서
2:34:37
시위는 점차 동독 전역으로 번져 갔습니다 시위대의 목소리는 슈타지 해체 등 강력한 개혁역으로
2:34:44
발전해 갔죠 하지만 이들은 자유에 대한 갈망과 체제의 변화를 꿈꾸면서 이제 거리에 나섰기 때문에
2:34:51
처음부터 소독과의 통일을 목표한 건 아니었어요 그런데
2:34:58
이런 상황에서 독일의 통일을 운명처럼 있건 결정적인 사건이
2:35:04
벌어지게 됩니다 [음악]
2:35:10
그 사건은 1989년 11월 9일 동독 정부의 한 기자회견장에서 일어난
2:35:16
일입니다 동독공산당의 신임대변인 샤보보스키가
2:35:22
핵기자 회견장에 등장했습니다 기자회견은 외운 거예요 어떤 기적이 그 1980년대 중반부터 이제
2:35:30
여행법을 개선해 달라는 동독 주민들의 불만이 컸었습니다 소독 방문을
2:35:36
신청하려면 신청하면 그 결과를 알 수 있을 때까지 최소한 몇 달을 기다려야 되거든요
2:35:41
길게는 몇 년을 기다렸을 때도 있고 여행 신청이 기각되는 경우도 있고
2:35:47
여행 허가 조건을 좀 완화해 달라는 얘기네요네 그렇죠 바로 그렇죠 그래서 이미 상황이 많이 바뀌었으니까 그래서
2:35:53
이날의 기자회견은 사실 동독 주민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마련된
2:35:58
자리였어요 근데이 기자회견 자리에서 이제 그 한 기자가 언제부터 여행자유화 조치가
2:36:05
실시되냐고 이제 질문을 한 거죠 완전한 여행자유는 아닌데 이에 대해서는 답변하는 과정에서
2:36:12
샤브브스키가 아주 세기의 말실수를 하게 됩니다 어떻게 답했는지 이제 영상으로 확인해
2:36:20
보겠습니다 재밌겠네요 말실수로 별린 장벽이 무너진 거야 저번에
2:36:31
[음악]
2:36:40
[음악]
2:37:15
이게 왜 말실수였을까요 사실 여행법 개정안의 내용은
2:37:20
기존 여행법에서 여권 발급 기관이 단축되고 그리고 여행 동기나 여행 이후
2:37:26
친인척 관계 같은 조건을 당국에게 제시하지 않아도 외국으로 수동이죠 주로 수동으로
2:37:33
여행을 신청할 수 있다는 것 정도를 담았어요 내용을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했어요 당
2:37:40
대변인이 대변인이이 샤브스키가 당시 그 공산당 대변인을
2:37:49
임명된 상황이었고 휴가도 갔다 온 상황이었기 때문에 아마 관련 내용을 제대로 봐 가지
2:37:55
못했던 것 같아요 근데 아직까지 바이킹이 없어 가지고
2:38:00
사실 정확한 이후 저도 모르겠어요 그래서
2:38:06
잡어보스키가 기자회견이 끝나고 미국의 MBC 방송과도 이미지 인터뷰 약속이
2:38:12
정해져 있었는데 그 기자가 다시 이제 독일 국민은 마음대로 그 문서를 다닐
2:38:17
지나다닐 수 있냐고 이렇게 물었더니 작업을 스킨은 국경을 넘을 수 있을 것이라고 또 이렇게 이야기를 해버려요
2:38:42
[음악]
2:38:49
좋은
2:38:55
실수인거죠의 말은 이제 동독과 서독의 TV 보도를 통해서 일판 만파로 퍼져
2:39:01
나갔습니다 [음악]
2:39:44
[음악]
2:39:51
마찬가지로 스베를린 시민들도 새로운 상황이 발생했다고 해서 천명이
2:39:56
장벽으로 몰려들었죠 사람들이 이렇게 몰려드니까 검문소 경비병들은
2:40:02
처음에는 이들을 향해서 물을 뿌리고 물을 뿌리기 시작했지만 시집각각으로 늘어나는 인파의 당황해서
2:40:08
이제 어쩔 줄을 몰랐죠 이렇게 이제 결국 자정을 막 넘긴
2:40:14
12시 2분 경에
2:40:27
동서 베를린 사이에 국경 전체를 따라서 모든 검문소들이 이렇게 다 개방된
2:40:33
[박수]
2:40:40
[박수] [음악] [박수]
2:40:54
[음악] [박수]
2:41:03
다
2:41:10
[음악]
2:41:32
얼마나 좋았을까 다 행복해 보여요
2:41:38
[박수]
2:41:49
[박수]
2:42:03
베를린 장벽을 향하는 행렬은 다음날은 물론이고 주말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2:42:10
그래서 오랫동안 서로 만나지 못했던 가족들과 친구들을 만나서 이제 껴안고 눈물을 흘렸죠
2:42:16
[음악]
2:42:42
베를린장벽이 무너지는 순간 아주 싸중인 순간인데 보니까 어떻습니까 진짜 뭔가
2:42:48
묵혀있던게 확 내려가는 느낌이 드네요 너무 신기해요 한 사람의 말실수로 이렇게 됐다는게 이렇게
2:42:54
쉽게 말실수로 무너질 벽이 왜 이렇게 굳건하게 닫혀 있었던 거야
2:43:09
돈 백마르크를 그냥 주거든요 동독 주민들은 그 돈을 받고 동독에서는 사기 힘든 물건들을
2:43:16
기념품처럼 사기 샀습니다 바나나는 신분의 상징으로 통할 정도로 고가의
2:43:22
과열되었습니다 그래서 근데 수도계는 이제 흔해 빠진 싸구려 과일이었고요 신기하다
2:43:28
그런데 이렇게 이제 극적으로 베를린장벽이 무너지고 자유를 갈망했던 사람들이 다시 자유를 되찾고 이런게
2:43:36
그냥 모두 샤보보스키의 우연한 말 실수 때문이라고만 볼 수 있을까요
2:43:42
그래도 하지만 분명한 거는 이제이 발언이
2:43:47
아니었더라도 얼마 지나지 않아서 베를린 장벽은 무너졌을 것이고 독일은 통일이 되었을 것이라고 볼 수
2:43:53
있습니다 그런데
2:43:59
독일 통일에는 또 하나의 절차가 필요했습니다 바로 동서독을 분할 통치했던 미국 영국
2:44:06
프랑스 소련 즉 2차 세계대전의 승전연합국의 승인이 필요했습니다
2:44:13
그래서 일단 독일 통일 문제를 두고이 플러스 4 2 + 4 해담이 열립니다
2:44:21
[음악]
2:44:27
[음악] 그런데 이제 독일의 통일을 반대하는 나라도
2:44:33
있었습니다 어딜까요 프랑스와 특히 영국이
2:44:38
굉장히 강력히 반대했습니다 가장 강력한 반대 반응을 보인 정치가는 영국의
2:44:44
총리인 마그렛 대처입니다 [음악]
2:44:52
[음악]
2:45:04
통일 독일과 프랑스가 유럽의 주역 중심이 되고 영국이 역할을 하지
2:45:09
못하는 것에 대해서 두려워했어요 그래서 영국이 반대했고 그 다음에
2:45:15
이제 미국의 가장 중요한 유럽 동방자가 그때까지는 영국인데 만약에
2:45:21
독일이 통일되면 독일이 이제 미국과 함께 세계 정치 또는 특히 유럽 정치를 주도할 것에 대해서
2:45:28
우려를 한 것이죠 그래서 이런 이유로 이제 대처 총리는 사실 오랫동안
2:45:34
90년 내내 마지막 순간에 가서 이제 찬성으로 바뀌죠
2:45:39
그렇다면 반대로 독일 통일에 적극 찬성했던 나라는 어디였을까요 의외로 소련
2:45:45
더 찬성했던 나라는 바로 미국이었습니다 1980년대에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은
2:45:52
베를린 브란덴부르크문에서 연설을 하는 것도 하거든요 그때 고로파처프 당시 소련군을
2:46:00
여시오 이렇게 강력히 외칩니다 [박수]
2:46:23
[박수]
2:46:29
[박수]
2:46:35
역시 마지막 그 남은
2:46:41
관문은 장벽은 소련입니다 소련의 입장은 어땠을까요
2:46:46
고민스러운 상황에서 고르바초프는 이제 모호한 말을 합니다 그래서 독일 통일은 역사가 결정할 것이다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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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만 반복합니다 사실은 약간 큰 열강의 정치 지도자로서는 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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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호한 태도였던 것이죠 그래서 마침내 1990년 9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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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제4차 회담에서 독일 통일 관련이 플러스 4회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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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합의에 관한 조약이 상승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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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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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한나라가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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