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열의 나라 스페인(Spain/España)
스페인 동부 발렌시아 지방
스페인 발렌시아(파란색) / 발렌시아 주기(州旗) / 발렌시아 문장(紋章/徽章)
<스페인 동부지방(東部地方)의 경관>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의 그라나다(Granada) 관광을 마치고 해안을 따라 고대도시 발렌시아로 향하는데 스페인 동부의 해변 경관이 너무나 아름답다.
무르시아(Murcia) 지방을 지나면서 오른쪽으로는 지중해의 푸른 바다가 끝없이 펼쳐지고 왼편으로는 제법 높은 바위산들이 연이어져 있다. 산기슭으로 형성된 오밀조밀 집들이 들어선 마을들은 너무나 아름답고 한적해 보이기까지 하는, 그림 같은 풍경의 연속이다.
10월 중순인데도 햇살이 너무나 따사롭게 느껴지고 지중해(地中海) 바닷물도 따스할 것만 같은 느낌이다.
카르타헤나(Cartagena), 알리칸테(Alicante), 베니도름(Benidorm) 등 작은 도시들을 지나치는데 하나같이 해변 관광도시, 리조트(Resort) 도시라는 느낌이다.
1. 성배(聖杯)의 도시 발렌시아(Valencia)
발렌시아(Valencia)는 스페인의 중동부, 투리아(Turia)강 어귀의 지중해에 면한 항구도시로 인구는 260만 정도인데 스페인 제3의 도시라고 한다. 투리아강 하류는 넓은 곡창지대를 이루고 있는데 특히 유럽에서 쌀이 가장 많이 생산되는 곳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고딕 양식의 건물들이 가장 잘 보존되어있는 역사의 도시로 유명한데 늘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의 그늘에 가려 이름이 덜 알려졌다고 한다. 그 외에도 풍부한 유물 유적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관광도시로서는 세비야(Sevilla)나 그라나다(Granada)에 비하면 외면당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다 1991년 대규모의 예술 과학 단지가 들어서면서 볼거리도 많아지고 도시경제도 활성화되었다고 한다.
발렌시아는 AD 2세기에는 로마가, 11세기에는 이슬람인 무어족(Moors)이 차지하고 발렌시아 왕국의 수도(首都)로 삼았는데 1099년, 우리에게 영화로 잘 알려진 전설적인 스페인의 영웅 엘 시드(El Cid)가 전사하면서 가톨릭 세력이 급격히 약화된다. 그러나 13세기, 아라곤(Aragon) 국왕 차이메(Chaime) 1세가 탈환하고 15세기에는 카스티야(Castilla) 왕국이 차지하는 등 역사의 부침이 극심했던 지역이다.
차이메 1세가 전쟁 당시 저녁에 깃대 위에 박쥐가 앉아있는 것을 발견하고 상서로운 징조로 여겨 전투를 벌여 승리했다고 한다. 그래서 발렌시아 문장(紋章)은 왕관 위에 박쥐가 앉아있는 그림이 들어있다.
발렌시아에는 15세기에 세워진 실크거래소 ‘라 론하(La Ronja de Seda)’가 있는데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고, 또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유럽에서 제일 크고 오래되었다는 ‘중앙시장(Mercat Central)’ 등이 있다. 가톨릭 건물들도 많은데 특히 ‘100의 종탑(鐘塔)도시’로 알려졌을 만큼 성당이 많은 도시이다.
또, 스페인이 자랑하는 대표적인 전통음식 ‘파에야(Paella)’가 처음 만들어진 곳도 이곳이라 자존심이 대단하다고 한다. 발렌시아는 옛 건물들이 잘 보존되어있는 성안의 구도시(舊都市)와 성 바깥의 현대 첨단 예술과학기술단지를 중심으로 신도시(新都市)로 나누어지는데 나는 주로 구도시 중심으로 둘러보았다.
또 한 가지, 스페인은 축구가 거의 국기(國技)처럼 사랑을 받는 종목인데 명문 발렌시아 축구팀에 우리나라의 이강인 선수가 멤버로 맹활약하고 있는 것은 우리 대한민국의 자랑이다.
발렌시아를 지나 더 북쪽으로 올라가면 카탈루냐 지방의 고대도시 바르셀로나(Barcelona)가 있다.
<1> 발렌시아 대성당(Valencia Catedral)
발렌시아 대성당 / 화려한 성당 내부 모습 1,2
발렌시아 구도심 가운데에 있는 대성당(Valencia Catedral)은 13세기 중반, 이슬람 사원이 있던 자리에 건축했다는데 그다지 크지는 않지만 여러 가지 복합적인 건축양식을 보이고 있다. 정문은 18세기 바로크(Baroque) 양식, 후문은 로마네스크(Romanesque) 양식, 측면의 문은 고딕(Gothic) 양식... 하는 식이다.
암튼 굉장히 고풍스럽고 내부 장식 또한 화려하다. 그런데 이 발렌시아 대성당이 유명한 것은 예수님이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 때 사용하였던 성배(聖杯) 진품을 보관하고 있는 점이다.
성배(聖杯) / 성배 보관 벽감(壁龕) / 수많은 다른 성배들
성배(Grail)라면... 최후의 만찬 이후 사라진 성배를 찾기 위해 엄청난 희생을 감수하며 찾아 헤맸던....
‘성배를 찾아서’ 등 영화로도 수없이 찍었고, 실제 중세 유럽에서는 기사단을 조직하여 수없이 성배를 찾아 떠났다고 하는데 성배는 죽은 사람도 되살리는 신비한 힘이 있다고 믿었다.
중세의 고전 ‘아더왕(King Arthur) 이야기’에 성배를 찾아 나서는 기사들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이후 수많은 문학 작품에 나타났을 뿐 아니라 영화로도 셀 수 없이 많이 제작되었다.
인디아나 존스(Indiana Jones)가 주인공인 ‘성배를 찾아서’에서는 엄청난 모험 끝에 마침내 찾아내는데 성배는 신비한 힘이 있어 수많은 종류의 잔 중에서 가짜를 잡으면 잡은 사람이 잿더미로 변하고, 진짜 성배는 물을 담아 상처에 부으면 감쪽같이 상처가 아물어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것으로 나온다. 영화에서 성배는 그 후 또다시 영원히 사라진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이 영화 인디아나 존스의 촬영장소인 아프리카 모로코의 ‘에잇 벤하두(Aït Benhaddou) 요새’도 보고 왔는데 붉은 진흙으로 쌓은 전형적인 아프리카 요새로, 영화의 장면이 떠올라 신비로웠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발렌시아 대성당은 들어서자마자 옆쪽에 있는 회랑을 따라 들어가면 소박한 박물관으로 꾸며 놓았는데 지하로 내려가면 옛날 지하묘지로 사용되었던 동굴이 나타나고 실제로 해골도 놓여있다.
여러 개의 방을 지나며 귀중한 성화(聖畫)와 성물(聖物)들을 감상하고 위로 오르면 드디어 성배를 전시한 방이 나타나는데 방안에 들어서면 장 속에 수십 개의 잔을 전시해 놓은 모습이 보인다.
영화에서도 나왔지만 수많은 잔(盞) 중에 어느 것이 진짜 성배(聖杯)일까?
2000년 전, 예수님이 다락방에서 열두 제자들과 같이 앉아 빵을 나누면서 ‘이 잔은 내 피의 잔이니...’ 하시며 포도주를 담아 제자들 입에 대어 주셨던 바로 그 잔!! 큰 잔, 작은 잔, 황금 잔, 은색 잔, 옥색 잔.... 화려한 장식을 한 잔, 소박하게 아무런 장식이 없는 잔... 첫 번째 사진의 나무로 깎은 것처럼 보이는... 저 잔이 진짜 성배가 아닐까?
전시품에는 아무런 설명도 없어서 어느 것이 진짜인지 알 수가 없다. 참고로 두 번째 사진의 저 벽감(壁龕) 한가운데 유리 상자 속에 저 첫 번째 잔이 들어있었다. 첫 번째 사진은 내가 인터넷에서 따다 옮겨놓은 것이다.
♤ 성배(聖杯) 이야기
성배에 대한 신앙과 성배의 행방에 대한 궁금증은 중세 이후 그치질 않았는데 논란의 핵심은 도대체 성배를 누가 가지고 있느냐에 대한 것이었다. 한때는 성전기사단(Knights Templar)이 가지고 있다는 설이 가장 유력했었다. 그런데 발렌시아 대성당에 모시고 있는 성배는 사도 베드로가 예루살렘에서 로마로 가져왔고 3세기에 성 로렌조(St. Lorenzo)가 다시 발렌시아로 가져왔다는 것이다. 그 후 발렌시아 성배는 이베리아반도를 침략한 무어인들의 손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오랫동안 인근의 바위 동굴 속 ‘성 요한 수도원’ (Monastery of San Juan de la Pena)’으로 옮겨져 간직되었다고 한다.
고고학자들이 발렌시아의 성배를 조사해본 결과 1세기 중동지역, 시리아(Syria)의 안디옥(Antioch/현재는 터키)에서 나는 돌로 만든 것으로 밝혀져서 진짜 성배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처럼 발렌시아의 성배가 유명해지기 시작하자 역대 교황들은 이곳까지 와서 일부러 그 성배를 가지고 미사를 집전하기도 한다. 아무리 교황이지만 위대한 오리지널 성배를 직접 손에 들고 마치 예수께서 말씀하시듯 ‘이는 내 피의 잔이니 받아 마셔라’고 말하는 것은 꿈을 이루는 일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2006년 7월 9일에는 교황 베네딕트 16세(BenedictusⅩⅥ)가 찾아와서 미사를 집전했다고 한다.
한편, 이탈리아의 제노아(Genova)에도 성배가 있는데 에메랄드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이 성배(聖杯)는 십자군이 유대의 가이사라 마리티마(Caesarea Maritima)에서 많은 돈을 주고 사왔다고 하는데 가이사라 마리티마는 헤롯(Herod) 대왕이 건설한 항구로 이스라엘의 텔아비브(Tel Aviv)와 하이파(Haifa) 사이에 있던 도시였으나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도시다. 그런데 십자군들이 에메랄드 성배를 가지고 오는데 마차의 바퀴가 부서지는 등 사고가 잇달아서 성배가 마치 고향을 떠나서 타지로 가는 것을 싫어하는 눈치였다고 한다. 십자군들은 신성한 힘이 있는 성배가 그런 하찮은 사고를 당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파리로 가져왔다고 한다.
파리에 보관하고 있던 그 성배는 나폴레옹이 전쟁의 패배로 실각하여 엘바섬으로 귀양가자 이탈리아 제노아(Jenoa)로 옮겨진다. 그런데 에메랄드로 만든 줄 알았던 성배가 초록색 유리로 만든 것이었다고 하는데 그래도 제노아는 계속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성배(聖杯)의 이야기는 서유럽, 특히 영국, 프랑스, 독일에서 널리 퍼져있는데 영국의 전설적인 왕의 이야기인 ‘아더왕과 원탁의 기사들(King Arthur & The Knights of the Round Table)’ 이야기 중에서 원탁의 기사 중 한 명인 파르지팔(Parsifal)이 성배를 찾아 떠나는 이야기가 나온다.
오페라의 대가 바그너(Wagner)는 1850년에 음악극(Musikdrama) 로엔그린(Lohengrin)을 작곡하여 초연하는데 로엔그린은 파르지팔의 아들로,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아 성배(聖杯)와 성창(聖槍)을 수호하는 ‘성배의 기사’, 혹은 ‘백조의 기사’로 묘사된다. 작품 속에서 로엔그린은 백조가 끄는 배를 타고 나타나 억울한 누명을 쓴 엘자 공주를 위하여 결투에 나서는데 한번 창을 휘두르자 당시 최고의 기사로 칭송받던 텔라문트가 힘없이 쓰러진다.
바그너는 말년인 1882년에는 음악극 ‘파르지팔(Parsifal)’도 작곡하여 초연하는데 작품 속에서 파르지팔은 순수한 영혼을 가진 사람으로 성배(聖杯)와 성창(聖槍)의 수호자로 묘사된다.
발렌시아 대성당에 모셔진 성배는 10여 가지나 되는데 어느 것이 진짜라는 표시는 없지만 수많은 황금빛 잔 중에서 유독 소박해 보이는 잔이 진짜처럼 보이는데 바로 그 안디옥(Antioch)의 돌로 깎은 성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