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가아발다라보경 제4권
41. 삼먁삼불타
이때 대혜보살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바라건대 저를 위해 삼먁삼불타(三藐三佛陀)를 말씀해 주십시오.
그렇게 하시면 저를 비롯한 나머지 보살마하살들은 여래의 자성(自性)에 대해 스스로 깨닫고 다른 사람을 깨우치는 일도 잘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대혜에게 말씀하셨다.
“묻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물어라. 내가 너희를 위해 묻는 대로 말해 주겠다.”
대혜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여래ㆍ응공ㆍ등정각은 짓습니까[作], 짓지 않습니까[不作]?
사(事)입니까, 인(因)입니까?
형상[相]입니까, 형상이 나타내는 것[所相]입니까?
깨닫는 자[覺]입니까, 깨달은 것[所覺]입니까?
이와 같은 말의 구절들은 다른 것입니까, 다르지 않은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대혜에게 말씀하셨다.
“여래ㆍ응공ㆍ등정각은 이러한 말에 대해 사(事)도 아니고 인(因)도 아니라고 한다. 왜냐하면 모두 허물이 있기 때문이다.
대혜야, 만일 여래가 사(事)라면, 혹 짓기도 하고 혹은 무상(無常)하기도 할 것이니, 무상이기 때문에 모든 사는 반드시 여래이어야 할 것이다. 이는 나와 모든 부처가 원치 않는 것이다.
만일 지어진 것[所作]이 아니라면, 얻을 것이 없는 까닭에 방편이 공(空)하여 토끼의 뿔과 같고 반대의 아들[般大之子:石女之子]과 같을 것이니, 무소유(無所有)이기 때문이다.
대혜야, 만일 사(事)와 인(因)이 없다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닐 것이며,
만일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라면 4구를 벗어날 것이다.
4구란 곧 세상의 언설(言說)이니, 만약 4구를 벗어난다면 4구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며,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이 취하는 것이다.
모든 여래의 구의(句義)도 이와 같다.
지혜로운 이[慧者]는 마땅히 알라. 모든 법은 무아(無我)라고 내가 말한 것과 같다.
이 뜻을 마땅히 알아야 하니, 아성(我性)이 없으므로 곧 무아라는 것이다.
모든 법에는 자성(自性)이 있고 타성(他性)이 없으니, 마치 소나 말과 같은 경우이다.
대혜야, 마치 소는 말의 성품이 아니고, 말은 소의 성품이 아닌 것과 같다. 그러나 실제로는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며, 그 자상(自相)이 없는 것도 아니다.
이와 같이 대혜야, 모든 법은 자상이 없는 것도 아니고 있는 것도 아니다.
무아는 어리석은 범부가 알 수 있는 것이 아닐 뿐이니, 망상 때문이다.
이와 같이 모든 법은 공해서 생기는 것도 없고 자성도 없으니,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
이와 같이 여래와 음(陰)은 다른 것도 아니고 다르지 않은 것도 아니다.
만약 음과 다르지 않다면 무상(無常)이어야 할 것이며, 다르다면 방편(方便)이 공할 것이다.
만약 두 가지라면 반드시 다름이 있어야 하니, 마치 소의 뿔이 서로 닮은 까닭에 다르지 않으며 길고 짧은 차별이 있으므로 다름이 있는 것과 같다.
모든 법도 역시 이와 같다.
대혜야, 마치 소의 오른쪽 뿔이 왼쪽 뿔과 다르고 왼쪽 뿔이 오른쪽 뿔과 다른 것처럼, 이와 같이 길고 짧은 것과 여러 가지 모습이 각각 다르다.
대혜야, 여래는 음(陰)ㆍ계(界)ㆍ입(入)과 다른 것도 아니고 다르지 않은 것도 아니며,
이와 같이 여래와 해탈은 다른 것도 아니고 다르지 않은 것도 아니다.
이와 같으므로 여래를 ‘해탈’이라는 이름으로 설명한다.
만일 여래가 해탈과 다르다면 물질의 모습[色相]으로 이루어져야만 할 것이며, 물질의 모습으로 이루어지므로 무상해야 할 것이다.
만일 다르지 않다면, 수행자(修行者)가 모습을 얻어도 분별이 없어야 할 것이나 수행자는 분별을 본다. 그러므로 다른 것도 아니고 다르지 않은 것도 아니다.
이와 같이 지혜[智]와 이염(爾炎)은 다른 것도 아니고 다르지 않은 것도 아니다.
대혜야, 지혜와 이염이 다른 것도 아니고 다르지 않은 것도 아니므로,
상(常)도 아니고 무상도 아니며,
짓는 자도 아니고 지어진 것도 아니며,
유위(有爲)도 아니고 무위(無爲)도 아니며,
깨닫는 이도 아니고 깨달은 것도 아니며,
형상도 아니고 형상이 나타내는 것도 아니며,
음(陰)도 아니고 음과 다른 것도 아니며,
말하는 자도 아니고 말하는 것도 아니며,
같은 것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니며,
함께하는 것도 아니고 함께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같은 것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니며,
함께하는 것도 아니고 함께하지 않는 것도 아니므로 모든 양(量)을 벗어난다.[보고 듣고 깨닫고 아는 것을 양(量)이라고 한다.]
모든 양을 벗어나면 말이 없고,
말이 없으면 생기는 것이 없고,
생기는 것이 없으면 적멸(寂滅)하고,
적멸하면 자성열반(自性涅槃)이다.
자성열반이면 사(事)도 없고 인(因)도 없으며,
사도 없고 인도 없으면 반연하는 것이 없고,
반연하는 것이 없으면 모든 거짓을 벗어나며,
모든 거짓을 벗어나게 되면 곧 여래이니,
여래가 바로 이 삼먁삼불타(三藐三佛陀)이다.
대혜야, 이를 삼먁삼불타라고 하니, 불타란 모든 감관[根]과 양(量)을 벗어난 것이다.”
이때 세존께서 이 뜻을 거듭 펴시고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모든 감관[根]과 양(量)을 다 벗어나며
사(事)도 없고 인(因)도 없으며
깨달은 자와 깨달음을 이미 벗어났고
형상과 형상이 나타내는 것도 벗어났다.
음(陰)과 연(緣)과 등정각(等正覺)
그 같고 다름을 볼 자 없으니
보는 사람이 없다면
어떻게 분별할까.
짓는 것도 아니고 짓지 않는 것도 아니며
사(事)도 아니고 인(因)도 아니며
음도 아니고 음에 있는 것도 아니며
여러 다른 것이 있는 것도 아니다.
또한 모든 성품이 있는 것도 아니며
저 망상(妄想)으로 보는 것들
또한 없는 것도 아닌 줄 알아야 하니
이 법은 본래 법 자체가 그런 것이다.
있는 까닭에 없는 것이 있으며
없는 까닭에 있는 것이 있으니
없다는 것도 받아들이지 말고
있다는 것도 생각하지 말라.
나[我]라 하고 내가 아니라 하며
말로 헤아려 방황하다가
두 극단에 빠져서는
자신도 무너뜨리고 세상도 무너뜨린다.
모든 허물을 해탈하고
나를 바르게 관찰하여 통하면
이를 올바른 관찰[正觀]이라 하니
대도사(大導師)를 헐뜯지 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