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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영락경 제10권
29. 현성집품(賢聖集品)
[6바라밀의 청정함]
그때에 심제(審諦)보살이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도 또한 6바라밀의 청정행을 한번 베풀어 진술해보겠나이다.”
부처님께서 심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감당할 수 있거든 여래 앞에서 바로 설해도 좋다.”
그때에 심제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어떤 보살마하살이 6바라밀의 청정한 법을 닦아 익히고,
겸하여 여덟 가지 관문(關門)의 온갖 부처님이 금하시는 법을 닦으면,
이 선남자나 선여인은 6바라밀의 법에서 청정한 행을 갖추나이다.”
정의(淨意)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시방 여러 부처님께 절하고 바른 가르치심을 이어받아서 닦아 익히고 받들어 행하고자 하면,
이와 같은 무리의 선남자나 선여인은 6바라밀에서 청정함을 갖추나이다.”
나라연(那羅延)보살이 앞에 나아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온갖 번뇌[結使]를 끊고 오염을 낳지 않으면,
6바라밀의 법에서 청정함을 갖추나이다.”
정법계(淨法界)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스스로 그러한 법의 성품을 알아서 도의 문[道門]을 헐지 않으면,
6바라밀의 법에서 청정함을 갖추나이다.”
선해환(善解幻)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여덟 가지 법[八法]을 분별하여 영욕(榮辱)을 없애면,
6바라밀의 법에서 청정함을 갖추나이다.”
과량(過量)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대중 속에 있으면서 위없는 법륜을 굴리고, 몸과 입과 뜻을 거두어서 다른 상념이 없으면,
6바라밀의 법에서 청정함을 갖추나이다.”
법장(法藏)보살이 부처님에게 아뢰었다.
“네 가지 공의 정[四空定]을 알아서 나와 남이라는 상념이 없고, 법계를 사유해서 지혜의 근본을 헐지 않으면,
이것을 6바라밀에서 청정함을 갖춘다고 이르나이다.”
심정(心淨)보살이 부처님에게 아뢰었다.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안근(眼根)을 거두어서 식의 상념[識想]을 일으키지 않고, 귀ㆍ코ㆍ혀ㆍ몸ㆍ뜻도 또한 마찬가지라면,
6바라밀의 법에서 청정함을 갖추나이다.”
사자대장(師子大將)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중생이 잠기고 가려서 오래도록 어두움에 처해 있는데, 지혜의 광명을 펼쳐 나타내서 도의 뜻[道趣]을 알게 하면,
6바라밀의 법에서 청정함을 갖추나이다.”
그때에 보살이 있었으니 이름이 혜안(慧眼)이었다.
그 보살이 문수사리(文殊師利)에게 물었다.
“어떻게 해야 보살마하살이 몸과 입과 뜻을 거두어 계의 성품을 헐지 않음으로서 6바라밀에서 청정함을 갖추나이까?”
이때에 문수사리가 혜안보살에게 답하였다.
“여러 보살마하살이 공(空)과 무아(無我)를 알아서 보시해도 상념의 과보가 없으면, 6바라밀에서 청정함을 갖출 것입니다.”
[여래의 몸]
혜안보살이 또 물었다.
“어떠합니까, 족성자여. 여래의 색신(色身)은 온갖 덕을 갖추어서 32상(相)과 80종호(種好)가 있나이다.
몸은 황금빛이어서 마치 금덩어리와 같은데, 이것은 상념의 과보가 있는 것입니까, 상념의 과보가 없는 것입니까?”
문수사리가 혜안보살에게 답하였다.
“여래의 색신(色身)은 상념의 과보가 있음이요, 여래의 법신(法身)은 상념의 과보가 없나이다.”
혜안보살이 또 물었다.
“보시하되 탐내어 구하는 것을 버려서 속마음이 청정해지면, 상념의 집착을 없애서 곧 큰 과보를 얻나이다. 6바라밀의 법은 상념의 과보가 없지 않거늘, 어떻게 법신의 과보를 이루나이까?”
그때에 문수사리가 혜안보살에게 답하여 말하였다.
“어떠합니까, 족성자여. 여래의 색신은 있는 것입니까, 없는 것입니까?”
혜안보살이 답하여 말하였다.
“족성자의 말씀대로라면 여래의 색신은 과보가 있어서 과보가 없지 않지만, 나의 관찰에 의하면 여래의 몸은 과보가 있음도 아니요 또한 과보가 없음도 아니나이다.”
그때에 문수사리가 다시 물었다.
“어째서 여래의 몸은 과보가 있음도 아니요, 또한 과보가 없음도 아니나이까?”
혜안보살이 문수사리에게 답하여 말하였다.
“여래의 몸은 뭇 공덕이 갖추어 있고 묘한 빛깔로 장엄되어서 아무리 보아도 싫거나 물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형상을 본 이는 모두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의 뜻을 발하나니,
이것을 소위 색신의 과보라고 이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여래의 색신은 과보가 없다고 했는가?
족성자여, 여래는 세상에 계시다가 교화가 끝나면, 신묘한 무위(無爲)에 잠겨서 끝내 변하거나 바뀜이 없으며, 한 모습[一相]이어서 형상이 없어 막거나 헐 수 없으니,
이것을 여래의 색신은 과보가 없다고 이르나이다.”
그때에 문수사리가 다시 혜안보살에게 물어 말하였다.
“어떠한가, 족성자여. 여래의 형상은 불가사의한데, 형상 있는 것으로 과보가 없다고 하는가, 형상 없는 것으로 과보가 없다고 하는가?”
혜안이 답하여 말하였다.
“여래의 몸이란 것은 형상이 있으면서 과보가 없기도 하고, 혹은 형상이 없으면서 과보가 없기도 하나이다.
어떤 것을 형상이 있으면서 과보가 없는 것이라 하는가?
여래ㆍ지진ㆍ등정각께서 세상에 계시면서 한량없는 중생을 교화하여 모두 과증(果證)을 얻고 무위의 도[無爲道]를 얻게 하시니,
이것을 여래의 색신이 형상은 있으면서 과보는 없다고 이르는 것이나이다.
어떤 것을 형상이 없으면서 과보가 없는 것이라 하는가?
여래의 색신이 세상에 계시면서 교화하시다가 신족의 변화[神足變]를 나타내어 설법을 끝마치시고 무여(無餘) 열반계에서 반열반[般泥洹]을 취하시니,
이것을 여래의 색신이 형상은 없으면서 과보도 없다고 이르나이다.”
이때에 문수사리가 여러 중생들의 마음속 생각에 저마다 의심이 있어서 과보 있음과 과보 없음을 능히 창달하지 못한 것을 알고서 다시 혜안보살에게 물어 말하였다.
“어떠한가, 족성자여. 여래의 색신은 허깨비[幻化]와 같은데, 어떻게 허깨비의 제법(諸法) 가운데서 과보 없음이 있으랴?
온갖 중생이 법의 성품을 얻음은 도과(道果)의 청정함과 같은데, 만일 안계(眼界)의 거둔 바라면, 어떻게 중생의 도의 성품에서 과보 없음을 얻겠습니까?”
또 혜안에게 물었다.
“여래의 색신은 불가사의로서 설법을 마치고 나면 고요히 멸도(滅度)하십니다.
나고ㆍ늙고ㆍ병들고ㆍ죽음도 없어서 색신을 이미 버렸다면 다시 형상을 받지 않으시니,
일상(一相)은 상(相)이 없어서 또한 볼 수 없고, 권도로서 가짜 명호[假號]를 설했지만 또한 진실이 없습니다.
‘여래’란 또한 여래도 없고 부처도 없는데, 어떻게 무위의 도로써 여래의 색신이 과보가 없다 하나이까?”
문수사리가 또 물었다.
“어떠합니까, 족성자여. 여래 색신의 무위의 과보[無爲報]와 열반의 무위의 과보는 동일한가, 다른가?
만일 동일하다면 또한 여래가 없거늘, 어떻게 과보 없음이 있겠는가?
둘로 다름이 있다고 한다면 곧 여래의 색신은 열반의 과보가 아니란 말입니까?”
이때 혜안보살이 문수사리에게 답하여 말하였다.
“본무(本無)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의 4대(大)의 색신(色身)은 현재의 법 가운데서 과보가 있기도 하고 과보가 없기도 하며, 멸진 열반(滅盡涅槃)은 과보 없음이라고 말하나이다.”
[중생의 6바라밀]
그때에 혜안보살이 다시 문수사리에게 답하였다.
“중생이 행하는 6바라밀에서 만일 어떤 사람이 보시(布施)를 하되 보시한다는 상념이 없고, 또한 다시 보시를 받은 이가 있음을 보지 않으면,
이것을 소위 보시를 해서 보시바라밀을 갖추었다고 이르나이다.
만일 다시 어떤 사람이 계의 몸[戒身]이 갖춰져서 계를 헐지 않고, 또한 다시 계를 갖는 이가 있음을 보지 않으면,
이것을 소위 계에서 지계바라밀을 갖추었다고 이르나이다.”
혜안보살이 다시 문수사리에게 말하였다.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항상 인욕을 닦는다면,
경솔하고 오만한 자가 있더라도 교만함을 내지 않고, 또한 스스로 생각하여 인욕이 있다고 보지도 않나니,
이것을 소위 인욕바라밀을 갖추었다고 이르나이다.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은근히 정진을 가하여 열여섯 가지 성행[十六聖行]을 닦되 다른 사람의 은근히 정진함을 보지 않으면,
이것을 소위 정진바라밀을 갖추었다고 이르나이다.”
혜안보살이 다시 문수사리에게 말하였다.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뜻을 거두어 정(定)에 들어가서 세 가지 관[三觀]을 분별하되,
또한 남이 세운 정의(定意)를 보지 않고 마음이 시방 한량없는 세계에 노닐면서 받들어 섬기고 공양하면서도 일체 법이 허깨비 같고 화(化)와 같음을 관하면,
이것을 소위 선정바라밀을 갖추었다고 이르나이다.”
혜안보살이 다시 문수사리에게 말하였다.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여래의 한량없는 법계를 펴서 창달한다면, 안식(眼識)의 청정함이 불가사의해서 낱낱이 분별하여 있는 바가 전혀 없나이다.
만일 귀로 소리를 들으면 어디로부터 온 것인지를 알고, 코로 저 향기를 맡으면 그 근원을 알아서 낱낱이 분별하여 있는 바가 없으며,
만일 혀로 맛을 보면 그 근본을 아니, 여래의 심식(心識)으로 온갖 법을 분별해서 신족(神足)이 한량이 없으시니,
이것을 소위 지혜바라밀을 갖추었다고 이르나이다.”
[갖가지 법문]
혜안보살이 다시 문수사리에게 말하였다.
“다시 정의(定意)가 있으니, 그 이름을 다함없는 법문[無盡法門]이라고 이르는데, 보살마하살로서 이 다함없는 법문을 얻은 이는 3승(乘)을 뛰어넘어 보살의 호칭을 이루고,
다시 관찰(觀察) 법문이 있는데, 보살마하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법계를 관찰하여 2지(地)에 머무르지 않고,
다시 색상(色像)의 법문이 있는데,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여래법의 무진장(無盡藏)을 이루고,
다시 불퇴전(不退轉) 법문이 있는데,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청정한 법을 가져서 색상(色像)을 보지 않나이다.
다시 널리 건지는[廣濟] 법문이 있는데,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저 중생을 교화하되 스스로 자기를 위하지 않으며,
다시 부처님의 음향[佛音響] 법문이 있는데,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법의 감로(甘露)를 비처럼 내려서 온갖 것을 윤택케 하며,
다시 온갖 부처님 경계[諸佛境界]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현재에 미묘한 진여의 법성(法性)을 설하고,
다시 가르침을 드러내는[現敎]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찰토(刹土)를 장엄해서 따라다님[翼從]이 성취되고,
다시 동등함이 없는[無等]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여래의 깊고 그윽한 뜻을 분별하나이다.
다시 법요(法要)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여래의 부사의한 법을 펴서 창달하고,
다시 선근(善根)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여러 근(根)을 분별하여 5도(道)를 여의고,
다시 허깨비[幻化]의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다함없는 넓고 큰 법[無盡曠大法]을 분별하고,
다시 거두어 행하는[攝行]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글귀와 뜻[句義]을 분명히 밝혀 형상(形像)의 법이 없고,
다시 옳다고 일컫는[稱可]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문득 능히 빈 상념[虛想]의 법을 가진 자를 배불리 채워주고,
다시 한뜻[一意]의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선근(善根)이 잘 익어서 4무외(無畏)를 얻나이다.
다시 법 바다[法海]의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선한 업[善業]이 갖추어져서 도의 성품을 버리지 않고,
다시 광명 불꽃[光炎]의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광명의 불꽃을 널리 나타내어 법의 연설이 다함없고,
다시 신족(神足)의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여러 세계에 널리 노닐면서도 3악도에 물들지 않고,
다시 해와 달의 광명[日月光明]의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고뇌를 두루 비추어서 제도하여 해탈케 하고,
다시 남이 없는[無生]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방편으로 인도하고 교화하여 자연히 바른 도[津]에 응하게 하나이다.
다시 끝이 없는 지혜[無極慧]의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삼계의 근심을 초월하여 제도가 있음을 보지 않고,
다시 지혜가 나는[智生]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온갖 법이 돌아가는 곳을 모두 알고,
다시 집착함이 없는[無着]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지혜의 광명으로써 어둠을 떨어 없애버리고,
다시 근원(根源)의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네 가지 법의 부사의한 행을 분별하고,
다시 인연(因緣)의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열두 가지 어리석은 행[十二癡行]의 근본을 분별하고,
다시 도의 지혜[道慧]의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법성여래의 삼등[法性如來三等]을 빠트리지 않고,
다시 참는 지혜[忍智]의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보리수[樹王]의 아래에 앉아서 마군을 항복시키나이다.
다시 큰 서원[弘誓]의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중생을 버리지 아니하고서도 멸도를 취하며,
다시 고행(苦行)의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현재에 적은 양의 곡식[麻米]을 먹고 온갖 행을 갖추며,
다시 홀로 걷는[獨步]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스스로 수승(殊勝)함을 나타내서 더불어 동등한 이가 없고,
다시 마음이 청정한[心淨]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마음의 때[心垢]를 없애서 물들어 집착하는 바가 없고,
다시 구경(究竟)의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모두 중생으로 하여금 출요의 길[出要道]에 들어가게 하고,
다시 욕심 없는[無欲]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탐착함을 없애서 물들어 집착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다시 법처(法處)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온갖 것을 불쌍하게 여겨서 본래의 서원을 버리지 않고,
다시 도업(道業)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여러 근(根)을 분별하여 훌륭한 사람의 법[上人法]을 세우고,
다시 마음이 구르지 않는[心不轉]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와 도의 마음[道心]을 발한 이는 불퇴전을 세우고,
다시 법장[法藏]의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도의 지혜[道慧]가 청정하여 지혜의 과증(果證)을 받고,
다시 교화하고 인도하는[化導]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생겨남 없는 마음[無生心]을 발하여 움직여 돌아옴을 보지 않나이다.
다시 법 영락[法瓔珞]의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국토를 장엄하고 중생을 청정하게 하고,
다시 깊고 그윽한[深奧]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법장에 깊이 들어가서 7각의를 갖추고,
다시 두려움 없는[無畏]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여러 가지 법에 편안히 처하여 성현의 행을 설하고,
다시 더러움을 없애는[除垢]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는 이는 여러 가지 법에 편안히 처하여 물들어 집착함이 없고,
다시 청정한 행[淨行]의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세 가지 지향인 공(空)ㆍ무상(無相)ㆍ무원(無願)을 분별하고,
다시 법신(法身)의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온갖 집착 없는 공의 행[無着空行]을 분별하나이다.
다시 법력(法力)의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한량없는 공계(空界)에서 큰 지혜를 얻고,
다시 걸림이 없는[無碍]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도의 가르침을 펴서 연설하되 걸리는 바가 없고,
다시 큰 사랑[大慈]의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온갖 것에 윤택을 미치면서도 망령된 생각을 버리지 않고,
다시 크게 불쌍히 여기는[大悲]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고난을 제도하되 진노(塵勞)를 내지 않고,
다시 기뻐하는 마음[喜心]의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온갖 분하고 화나는 마음을 없애고,
다시 수호하는 마음[護心]의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4제의 둘 아닌 법[不二法]을 분별하고,
다시 널리 보시하는[廣施]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세 가지 상념[三想]을 없애면서 나[吾我]를 계교하지 않나이다.
다시 신통(神通)의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시방의 한량없는 세계에 두루 노닐며,
다시 다함이 없는[無盡]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뜻[義趣]을 분별하여 세 구절[三句]의 법을 닦고,
다시 연설하여 창달하는[演暢]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공덕을 두루 갖추어 오는 도[來道]의 까닭을 헤아리며,
다시 청정(淸淨)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입의 허물[口過]을 깨끗이 없애 버리고 10악(惡)을 일으키지 않으며,
다시 10력(力)의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금강의 마음[金剛心]을 지녀서 무너뜨릴 수 없나이다.
다시 한량없는 선근[無量善根]의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문득 여래의 신통력을 갖출 수 있고,
다시 여래의 행이 멸한[如來行滅]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나[吾我]와 남과 수명(壽命)을 일으키지 않고,
다시 뜻을 쉬는[息意]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괴로움을 영원히 끊고,
다시 이익을 늘게 하는[增益]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여러 가지 선(善)과 공덕이 나날이 늘고 자라나며,
다시 환희하는[歡喜]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온갖 도[一切道]를 목마르게 우러르면서 애쓰는 이를 배불리 채워주고,
다시 분노가 없는[無怒]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마음의 반연과 집착을 없애서 뒤바뀐 상념이 없으며,
다시 바라고 구하는[希望]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중생의 세 가지 법의 근본 행[三法本行]을 성취하나이다.
다시 무념(無念)의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3독(毒)의 생각을 없애게 하고,
다시 법의 뜻[法義]의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여러 가지 법을 내되 차서[次第]를 잃지 않고,
다시 재빠른[速疾]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근원을 분별하여 도의 행적[道行跡]을 이루고,
다시 사유하는[思惟]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안팎을 분별해서 갖가지 청정치 못함을 관하고,
다시 향으로 훈습하는[香熏]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마땅히 계덕의 향[戒德香]으로 일체를 널리 훈습하고,
다시 선권(善權)의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형상을 따라 맞게 교화하되 제도 받은 이를 보지 않고,
다시 환하게 요달한[曉了]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음향(音響)을 분별해서 취하여 제도하나이다.
다시 내가 없는[無我]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여러 가지 법이 공하여 있는 바 없음을 알고,
다시 잘 머무는[善住]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큰 서원이 굳건하여 마음이 동요하거나 변하지 않으며,
다시 수없는 몸[無數身]의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낱낱이 분별하여 중생을 제한하지 않고,
다시 잘 들어가는[善入]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모든 중생을 교화하여 법률에 들어가게 하고,
다시 법에 자재한[法自在]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바른 법을 감당하여 받되 아랫사람에게 묻기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다시 청정하고 묘한[淨妙]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여러 부처님의 나라에 노닐되 겁약(怯弱)한 마음을 품지 않고,
다시 짝이 없는[無侶]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마음이 스스로 고요함[寂]을 즐기면서도 온갖 것을 방해하지 않나이다.
다시 한량없는 공덕[無量功德]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권속(眷屬)을 성취시켜 과실(果實)의 과보를 얻고,
다시 광명을 놓는[放光明]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일체의 어둠 속에 있는 것을 두루 비추고,
다시 속임이 없는[無欺]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언어의 행위[口行]를 갖추어서 네 가지 허물[四過]을 범하지 않고,
다시 덕을 권하는[勸德]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온갖 미치지 못하는 이를 불쌍히 여겨서 죽지 않는 법[不死法]을 비처럼 내려 주고,
다시 의지하고 기대는[依憑]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모두 귀의함이 있게 하고,
다시 뽑아 건져 주는[拔濟]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공덕이 더욱 늘어나서 마음이 청정하기가 허공과 같고,
다시 가없는[無際]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제도하여 성취하게 된 자를 보지 아니하나이다.
다시 평등한 행[等行]의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뭇 지혜를 분별함에 그 끝과 막힘[邊際]이 없고,
다시 평등(平等)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모든 도(道)에는 갖가지 승(乘)이 있음을 설하지 않고,
다시 한뜻[一意]의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뜻을 발하여 도(道)에 나아가는 자가 있음을 보지 않고,
다시 허공(虛空)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여러 가지 평등한 선정[等定]에 들어서 뜻이 분산하지 않고,
다시 타오르는[然熾]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온갖 다함이 없는 법을 널리 연설하고,
다시 법계를 분별하는[分別法界]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법계에 일어나는 바를 낱낱이 분별하고,
다시 경계를 초월하는[越境界]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온갖 것을 구호하여 저 언덕에 이름을 얻게 하나이다.
다시 구경(究竟)의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여러 가지 법의 소굴을 낳는 것을 보지 않고,
다시 청정한 관찰[淨觀]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중생을 꾸짖지 않고 청정한 법을 보며,
다시 만족(滿足)한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겁수(劫數)로써 먼 것을 나타낸다고 하지 않고,
다시 출요(出要)의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일체 지혜[一切智]를 행하여 법의 생각을 일으키지 않고,
다시 출생(出生)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온갖 법의 깊고 그윽한 뜻[深奧義]을 낳고,
다시 날카로운 근기[利根]의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한결같이 도(道)에 나아감을 듣고서 불퇴전(不退轉)을 세우나이다.
다시 차제(次第)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여러 가지 법을 닦아 익혀서 본요(本要)를 잃지 않고,
다시 법상(法相)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낱낱이 여러 가지 법의 모양[相貌]을 분별하고,
다시 형상 없는[無形相]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일체 모든 법이 나타나서 앞에 있고,
다시 겁수(劫數)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부지런히 고행을 닦아서 나고 죽음을 여의지 않고,
다시 도행(道行)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다섯 가지 행[五行]을 사유하여 청정치 못한 상념을 관하고,
다시 깊이 들어가는[深入]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법보의 무진장[法寶無盡藏]에 깊이 들어가고,
다시 교화 지도하는[化導]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온갖 중생의 무리를 양육하고,
다시 오가는[來往]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주선(周旋)하고 교화하되 마음에 게으름이 없고,
다시 성취하는[成就]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도의 과[道果]가 성숙해서 5도(道)를 버리지 않고,
다시 사무쳐 비추는[徹照]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한뜻[一意]으로 정(定)에 들어 약간의 상념도 없나이다.
다시 한량이 없는[無量]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행하는 온갖 법이 불가사의하고,
다시 여래의 선정[如來禪定]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현재의 한량없는 공의 행[空行]을 닦아 익히고,
다시 메아리에 응하는[應響]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뭇 소원을 갖추어서 뜻의 상념을 영원히 없애며,
다시 변화하는[變化]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몸을 나누고 형상을 흩어서 원하는 대로 자유자재하고,
다시 빠트리거나 감소함이 없는[無闕減]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중생의 의상(意想)이 분별하는 바를 깨끗이 없애주고,
다시 오고 감을 통달하는[通達來往]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낱낱의 털구멍에서 중생계를 깨끗하게 하고,
다시 형상 없는[無形]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교화함에 형상이 없어서 법계가 청정하고,
다시 걸림 없는[無礙]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한량없는 중생으로 하여금 네 가지 비상(非常)을 여의게 하나이다.
다시 괴로운 소리[苦音]의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괴로움에 찌든 중생으로 하여금 영원히 속박과 집착을 여의게 하고,
다시 소리를 익히는[習音]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얽히고 집착한 중생으로 하여금 습기의 실마리를 영원히 여의게 하며,
다시 소리가 다한[盡音]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다함이 있는 중생으로 하여금 다함이 없는 열반에 이르게 하며,
다시 도의 소리[道音]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예순두 가지 번뇌[塵勞]의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며,
다시 위의(威儀)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나아가거나 멈추거나 가고 오는 데서 의칙(儀則)을 잃지 않고,
다시 참 성품[眞性]의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권속을 분별하여서 낮고 천한 데에 처하지 않나이다.
다시 똑바로 보는[直視]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5음(陰)을 분별하여 한결같이 도(道)에만 나가고,
다시 천행(天行)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하늘사람에게 들어가서 청정한 근본을 닦고,
다시 인행(人行)의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인도(人道)의 중생 속에 들어가서 나아가도록 권유하여 제도시키고,
다시 축생으로 가는[畜生行]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형상을 따라 들어가 교화해서 모조리 도의 문[道門]으로 돌아가게 하고,
다시 아귀(餓鬼)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탐냄을 없애도록 권하여서 욕망하는 바가 없게 하며,
다시 지옥(地獄) 법문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법문을 얻은 이는 몸을 나타내어 들어가서 착한 마음을 발하도록 교화하나이다.”
그때에 혜안보살이 부처님 앞에서 즉시 이 게송을 설하였다.
집착이 없어 더럽힐 수 없고
삼계의 유(有)에 물들지 않으니
덕의 향기는 일체를 정화하고
법문은 다함이 없네.
8백 가지 6바라밀 행은
부처님[世雄]께서 창달하신 바로서
중생의 마음을 분별하니
의취(意趣)는 저마다 같지 않네.
한량없는 온갖 덕의 근본은
권도로 나타나 세속에 들어가서
선한 도의 가르침 이미 펴놓아서
무위의 언덕에 초월해 이르리라.
오늘 크게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사
법을 연설하심이 다함이 없으시니
과거 항하 모래 수효 부처님의
법문 연설하심도 지금과 같네.
복의 업으로 다섯 가지 덕을 닦고
뒤바뀐 소견 가진 이 항복받아
색신에 몸의 과보 없음은
모든 부처님의 깊고 그윽한 곳간이라네.
과보 없음은 과보 있음이 아니니
열반의 성품 스스로 공(空)한데도
중생이 스스로 생각을 일으켜
과보와 과보 없음을 마음에 간직하네.
행으로 분별하는 상념을 없애서
여래의 업을 사유하면
생겨남도 아니고 생겨남 없음도 아니니
그러므로 보살의 문에 응한다네.
법을 설하나 법 있음이 아니고
또한 중생의 상념도 없으니
즐거운 상념으로 괴로운 상념 버려서
나고 멸함이 영원히 이미 적멸하다네.
복의 메아리[福響]가 자연히 응함은
마치 허공이 집착한 바 없음 같으니
한뜻으로 정각(正覺)을 이루면
색의 과보가 존재하게 되네.
하늘ㆍ세간을 거느려 왕이 되니
참 진리[眞諦]는 다할 수가 없고
정(定)에 들어가 비상(非常)을 나타내어
끝내 멸진(滅盡)의 근본으로 돌아가네.
도의 마음은 안에 있지 않고
또한 밖에도 있지 않으니
고통의 상념과 약간의 생각도
도(道)를 구하면 그 근원을 다하네.
백천의 정(定)을 사유해도
생겨나고 생겨나면서 애초에 끊지 못하니
뜻을 잡아매어서 곧 마음을 끊으면
어지러운 상념이 어떻게 생겨나랴?
보살이 행하는 업과
법문은 각각 같지 않으니
한량없는 법 구하고자 하거든
마땅히 중생에게서 구하라.
법과 법은 자연히 생겨나서
법의 지혜에는 소굴이 없어
생겨남을 찾아도 본래 생겨남이 없거니
어찌 법의 근원 있으랴?
지혜를 쌓아서 백겁이 지나도
지혜를 닦음은 게으르지 않았으며
나아가 여덟 가지 평등행을 이루니
이 까닭에 인중존(人中尊)이라 호칭하네.
과보 있어도 과보 있음이 아니고
또한 색신의 모습도 없으니
뭇 지혜의 업을 영락하여
몸을 나타내어 속세를 교화하네.
안팎은 자금(紫金)과 같고
음향은 매우 부드럽고 연해
설하신 바를 버리지 않으면
듣는 이 모두 제도를 얻네.
나는 반딧불이의 광명 같아
스스로 비추면서도 상대에게 이익 없지만
부처님 해는 대천세계를 비추어
어디 하나 어두운 곳 없네.
어찌 감히 아침 이슬로써
강이나 바다의 윤택함을 더할 수 있으리.
부처님, 대성인(大聖人)의 위력 받들었기 때문에
보살의 문을 말하였네.
보살이 지혜 광명 놓으셔
중생의 어둠 영원히 없애어
어리석고 미혹한 근본을 뽑으니
성현의 도(道)가 앞에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