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란진 숲
20세기에 조사한 이스터 섬의 식물 분포에 따르면 토종은 48종밖에 확인되지 않앗다.
그 중 가장 큰 쿠로미로(toromiro)도 기것해야 2미터를 조금 넘어 나무라 하기에는 부끄럽다.
나머지는 키 자은 양치류, 풀, 사초(莎草), 관목이다.
하지만 사라진 식물들을 되살리려는 지난 수십년간의 다양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인류가 도래하기 전 수십만 년 동안은 물론이고
인류가 도래한 직후에도 이스터 섬을 결코 척박한 황무지가 아니었다.
키 큰 나무들이 울창한 숲가 덤불로 이루어진 아얄대의 땅이엇다.
이런 결과를 증명한 최초의 방법은
늪이나 연못에 퇴적한 침전물 기둥을 시굴해서 분석하는 화분학(花粉學,palynology)이었다.
침전물이 뒤흔들리지 않았다면 표면의 흙이 가장 최근에 퇴적된 것이고,
가장 깊숙이 묻힌 흙은 과거의 토직물일 수밖에 없다.
각 퇴적층의 실제 시기는 방사성 탄소법으로 측정 가능하다.
침점눌 기둥에 숨은 수십만 개의 환분을 횬미경으로 찾아내서 헤아리고,
기존에 알려진 식물종의 화분과 비교해서 각 화분이 어떤 종의 것인지 확인하는 지루한 작업이 계속된다.
이스터 섬에서 이런 작업을 시행한 최초의 학자는 스웨덴의 화분학자 올로프 셀링(Olof Seling)이었다.
그는 헤이어르달의 1955년 탐험대가 라노라라쿠 분화구와 라노카우 분화구의 늪에서 채취한 퇴적물을 조사해서,
오늘날 이스터 섬 뿐만 아니라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야자나무의 화분을 검출해냈다.
1977년과 1983년에는 존 플렌리(John Flenley)가 훨씬 많은 퇴적물을 채집해서 역시 야자나무 화분을 찾아냈다.
1983년 플렌리는 세르조 라푸 아오아에게서 화석화된 야자나무 열매를 구할 수 있었다.
그 해 이스터 섬을 탐사한 프랑스 동굴 탐험대가 용암 동굴에서 별견한 것이었다.
플렌리는 그 화석을 세계적인 야자나무 전문가에게 보내 확인을 부탁했다.
그 열매는 현재 세계에 존재하는 야자나무 중 가장 크며,
직경이 1미터, 키가 20미터에 달하는 칠레 공작야자(wine palm tree)의 열매와 아주 유사하거나 약간 더 컸다.
그 후 이스터 섬을 방문한 학자들도 야자나무의 흔적을 연이어 발견했다.
수십만 년 전에 폭발한 테레바카 화산의 용암류에서는 야자나무 줄기가 묻힌 채 발견되었고,
이스터섬의 야자나무는 줄기 직경이 2미터가 넘었을 것이라 증명해 주는 뿌리다발이 발굴되었다.
따라서 이스터 섬의 야자나무는 칠레야자나무보다 훨씬 컸고,
지금까지 존재했더라면 세계에서 가장 큰 야자나무가 되었을 것이다.
오늘날 칠례 사람들은 자신들의 야자나무를 여러 가지 이유로 자랑스레 여긴다.
이스터 섬 사람들도 십중팔구 그랫을 것이다.
'wine palm trr'라는 이름에서 직감할 수 있듯이, 줄기가 달콤하 수액을 잔뜩 담고 있다.
그 수액을 발효시켜 포도주를 만들고, 수액을 졸여 꿀이나 설탕을 만든다.
열매의 씨는 그야말로 진미(珍味)이다.
잎은 지붕의 이엉, 바구니, 매트, 돛을 만드는 데 안성맞춤이다.
물론 굵고 튼튼한 줄기는 모아이를 운반하고 세우는데 흑은 뗏목을 만드는 데 사용되었을 것이다.
플렌리와 사라 킹(Sarah King)은 퇴적물에서 지금은 역시 멸종된 다른 다섯 종의 화분을 찾아냈다.
가장 최근에는 프랑스 고고학자 카트린 오를리아크(Catherine Orliac)가
아궁이와 쓰레기 더미의 흙에서 숯으로 변해버린 3만 여개의 미세한 나뭇조각을 채취했다.
셀링, 플렌리, 킹에 못지 않은 끈기로 오를리아크는
그중 2,300조각을 폴리네시아의 다른 지역에 여전히 존재하는 나무들과 비교했다.
그 결과로 그녀는 16종을 확인했고, 그 대부분이 한때 이스터 섬 사람들이 살았던
동폴리네시아에 아직도 널리 분포된 수종들과 관계있거나 똑같은 것이었다.
따라서 이스터 섬은 한 때 다양한 수종이 어우러진 숲이었다는 결론이 내려진다.
야자나무 이외에 멸종된 21종 중 대다수가 섬사람들에게무척 소중한 자원이었을 것이다.
30미터까지 크는 알피토니아(zizypboides)와 15미터가지 크는 엘라에오카르푸스(rarotongensis)는
폴리네시아의 다른 지역에서 카누를 만드는 데 사용된다.
적어도 카누를 만드는데는 야자나무보다 더 낫다.
폴리네시아인은 하우하우 나무(Triumfetta swemitriloba)의 껍질로 밧줄을 만든다.
이스터 섬 사람들도 십중 팔구 하우하우 나무껍질로 밧줄을 만들어 석상을 끌었을 것이다.
꾸지나무(Broussonetia papyrifera)의 껍질로는 타파 천을 만들었다
프시드락스 오도라타는 줄기가 곧지만 탄력성이 있어,
작살이나 카누의 안정을 유지하는 부재(浮材)를 만드는 데 적합했다.
말레이 애플(Syzvgium malaccnse)에는 먹을 수 있는 열매가 달렸고,
바다 자단목(Thespesia populanea)과 그밖의 8종은 조각과 건축에 적합한 경질목이었다.
토로미로는 아카시아와 마찬가지로 땔감으로 안성맞춤이었다.
오를리아크가 아궁이의 숯에서 이 모든 종을 발견했다는 점에서
나머지 수종들도 땔감으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
이스터 섬에서 인간이 가장 먼저 상륙해서 정착한 지역으로 여겨지는
아나케나 해변의 패총에서 발굴된 6,433조각의 조류와 척추동물 뼛조각을 연구한 사람은
동물고고학자 데이비드 스티드먼이었다.
그 뼈들을 끈기 있게 관찰하며 분류해낸 스티드먼의 업적에
조류학자인 나는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개똥지빠귀의 뼈를 보고도 비둘기의 뼈, 심지어 쥐의 뼈와도 정확히 구분하지 못하지만,
스티드먼은 서로 아주 흡사한 10여 종의 바다제비들의 뼈까지 구분하는 방법을 알아냈다.
그 결과로, 현재 이스터 섬에는 단 한 종의 육지새도 남아 있지 않지만
과거에는 왜가리 한 종, 닭과 비슷한 두 종의 하얀눈썹뜸부기, 두 종의 앵무새, 한 종의 외양간올빼미 등
적어도 여섯 종의 육지새가 있었던 것을 증명해냈다.
또한 이스터 섬에 둥지를 튼 바닷새도 25종이 넘었다는 사실까지 밝혀냈다.
따라서 과거에 이스터 섬은 폴리네사아, 아니 태평양 전체에서 바닷새의 가장 풍요로운 번식지였다.
알바트로스, 가마우지, 군함새, 풀머 갈매기, 바다제비, 고래새, 슴새, 쇠바다제비, 제비갈매기,
열대조 등이 한적하게 떨어져 표식자가 없는 이스터 섬을
번식지로 알맞은 안식처라 생각했던 것이리라. 인간이 도래하기 전까지는 !
스티드먼은 이스터 섬의 동쪽에 위치한 갈라파고스 제도와 후안 페르난데스 제도에
오늘날 서식하고 있는 바다표범의 뼈까지 찾아냈다.
하지만 그 뼈들이 이스터 섬에서 서식하던 바다표범의 것인지 ,
아니면 길을 잃고 헤매다 잠시 들른 바다표법의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아나케니에서 발굴된 새들의 뼈와 바다표범의 뼈는
이스터 섬에 처음 정착한 사람들이 무엇을 먹었고 어떻게 살앗는지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준다.
패총에서 발국된 6,433조각의 척추동물 뼈 중 가장 흔한 것
즉 거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뼈가 참돌고래의 뼈라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몸무게가 75킬로그램 남짓한 참돌고래는 섬 주민들이 포획할 수 있었던 가장 큰 동물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폴리네시아 어디에서나 돌고래의 뼈는 패총에서 1퍼센트를 넘지 않는다는 것이다.
참돌고래는 대체로 먼 바다에서 살기 때문에, 해안에서 낚시나 작살로 사냥하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따라서 카트린 오를리아크가 그 흔적을 찾아낸 큰 나무로 만든 대형 카누를 타고
먼 바다로 나가 작살로 사냥한 것이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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