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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담팔건도론 제30권
8.5. 견(見)발거
사견(邪見)과 단(斷)과 번뇌[垢]와 청정(淨)은
원인이 없는 것으로, 무지견(無智見)ㆍ무력(無力).무정진으로 지어졌다는 견해와
7사신(士身)과 4[백천의 생문(生門)] 등이 의존한다는 견해와
본연(本緣)이고 호(豪:神意)이고 [원인이] 없다는 견해와
내가 짓고 또한 남이 짓는 것이며,
남과 내가 짓고 원인이 없다는 견해와
아(我)에 대한 이러저러한 여섯 가지의 견해와
욕락과 여러 선(禪)에 관한 견해와
헛된 유ㆍ무의 견해와
바람 등은 불지 않는다고 하는 견해와
아의 조작이라고 하는 견해와
또한 만이 있는 중생이 자신의 견해에 집착하여 생사를 윤회한다는 견해와
혹은 [이미] 획득하고 장차 획득한다는 견해 등이 있으니,
그래서 이 같은 견품(見品)을 설명하는 것이다.
이른바 ‘시여도 없고 복도 없으며, 그에 관한 설명도 없다’는 이러한 견해는 그릇된 견해로, 습제단(習諦斷)이다.16)
‘선ㆍ악행과 그 과보가 없다‘고 하는 이것은 그릇된 견해로, 고제단이다.
’금세나 후세도 없으며,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다‘고 하는 이것은 그릇된 견해로, 습제단이다.
’세간에 아라한의 낙법(樂法)도 없다‘고 하는 이것은 그릇된 견해로, 도제단이다. ’등법(等法)도 없다‘고 하는 이것은 그릇된 견해로 진제단이다.
’취(趣)17)가 여러 금세나 후세를 획득하는 일도 없으며, 자지(自智)로서 작증하고 성취하여 노니는 일도 없다‘고 하는 이것은 그릇된 견해로 도제단이다.
이른바 ‘여기에서는 목숨이 살아있어도, 다른 곳에서는 끊어지고 허물어저 존재하는 일이 없으며 죽고 만다’는 이러한 견해는 변견(邊見)에 포섭되는 단멸견(斷滅見)으로, 고제단이다.18)
이른바 ‘사대인신(四大人身)이 있으니, 그가 만약 목숨을 마쳤을 때, 그것들은 그때 마땅히 지(地)는 바로 지신(地身)에 속하게 되고, 수(水)는 바로 수신에 속하게 되며, 화(火)는 바로 화신에 속하게 되고, 풍(風)은 바로 풍신에 속하게 되며, 공(空)은 다섯 번째이다.
즉 사람들이 시체를 메고 가서 무덤에 버리게 되면 낡은 현재의 근(根)은 허공으로 돌아가고 만다’고 하는 이러한 견해는 변견에 포섭되는 유상견(有常見)으로, 고제단이다.
이른바 ‘뼈는 횐 비둘기의 색이 되며, 아(我)는 변하여 재가 된다’고 하는 이러한 견해에서, 만약 불이 아의 근거가 된다고 하면, 이것은 견(見)이 아니라 그릇된 지이다.
만약 유루행이 아의 근거가 된다고 하면, 이것은 그릇된 견해로, 습제단이다.
만약 무루행이 아의 근거가 된다고 하는 견해이면, 이것은 그릇된 견해로, 도제단이다.
이른바 ‘탐욕스러운 이는 베푸는 것을 찬탄하고, 지혜로운 이는 받는 것을 찬탄하니 지법(智法)을 비방한다’고 하는 이러한 견해는 그릇된 견해로 도제단이다.
이른바 ‘그들은 헛된 말을 하는 자로서 이는 어리석은 자이지 지혜로운 이가 아니다. 즉 그들이 주장하기를 여기에서는 목숨이 살아있어도 다른 곳에서는 끊어지고 허물어져 거듭 존재하는 일이 없으며, 죽고 만다고 하니 이것은 어리석은 것이다’고 하는 이러한 견해는 변견에 포섭되는 유상견으로, 고제단이다.
이른바 ‘무인무연(無因無緣)으로 중생에게 번뇌가 있게 되며, 무인무연으로 중생에게 번뇌가 있다’고 하는 이러한 견해는 그릇된 견해로, 습제단이다.19)
이른바 ‘무인무연으로 중생은 청정하게 되며, 무인무연으로 중생은 청정하다’고 하는 이러한 견해는 그릇된 견해로 도제단이다.
이른바 ‘무인무연으로 중생은 지(智)도 없고 견(見)도 없게 되며, 무인무연으로 중생은 지도 없고 견도 없다’고 하는 이러한 견해는 그릇된 견해로 습제단이다.
이른바 ‘무인무연으로 중생의 지견을 일으키며, 무인무연으로 중생의 지견이 있다’고 하는 이러한 견해는 그릇된 견해로, 도제단이다.
이른바 ‘힘도 없고 정진도 없으며, 힘과 정진도 없고 자기가 짓는 일도 없고 남이 짓는 일도 없으며 사람이 짓는 일도 없다.
또한 [모든 고락은] 자기가 짓는 것도 아니며, 남이 짓는 것도 아니며 사람이 짓는 것도 아니다.
사람도, 힘 있는 자도, 정진하는 자도 없으며, 방편도 없다. 일체의 중생ㆍ일체의 곤충ㆍ일체의 신은 무력하고 자재(自在)도 없으며, 정진도 없고 방편도 없다.
혹은 행위의 보가 있더라도 중생은 무인무연으로 6육생(六生)20) 중에서 고락을 받는다’고 하는 이러한 견해에서
만약 유루의 힘이나 정진마저 비방하는 것이면 이는 그릇된 견해로, 습제단이다.
그러나 만약 무루의 힘이나 정진을 비방하는 것이면, 이는 그릇된 견해로, 도제단이다.
이른바 ‘악행을 짓거나 짓게 하고, 사지를 끊거나 끊게 하고, 삶거나 삶게 하고 근심하여 괴롭게 하고 가슴을 때려 신음하게 하고, 뜻을 어지럽게 하고, 중생을 해치고, 주지 않은 것을 취하고, 음사(婬邪)를 행하고, 거짓말을 하고, 술을 마시고 담장에 구멍을 내거나 장고를 허물고 금을 훔지거나 남의 아내를 희롱하고 마을을 해치고 성읍을 해치며, 중생을 해치는 것과 같은 일을 짓는 것도 이는 악이 아니다.
칼로써, 전차의 바퀴로써 이 지상에 있는 모든 곤충을 전부 하루에 절단하고, 난도질하여 하나의 고깃덩이로 만들어도 그에게는 어떠한 악함도 없으며, 인연도 악의 과보도 없다.
항수(恒水, Gangā)의 좌측에서 시여의 복을 설명하거나, 향수 우측에서 살아있는 모든 것을 절단하고 난도질하였더라도 그에게는 복도 없고 악도 없다.
계를 완전히 갖춘 자에게 환희의 말을 건네고 돈이나 재물을 시여하더라도 그 같은 인연에 따른 복도 없으며, 그 같은 인연에 따른 복의 과보도 없다’고 하는
이러한 견해는 그릇된 견해로 습제단이다.
이른바 ‘7사신(士身)은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고, 조화[化]에 의한 것이 아니라 조화이며, 실로 지속하는 모임[住聚]이다.21) 나아가 그것은 상주하고 확고하여 이동하는 일이 없고 각각 서로 관계하지도 않으며, 혹은 복 혹은 악 혹은 복악과도 관계하지 않고 혹은 고 혹은 낙 혹은 고락과도 서로 관계하는 일이 없다.
그것이 무엇인가?
이른바 지신(地身)ㆍ수신(水身)ㆍ화신(火身)ㆍ풍신(風身)과 고(苦)ㆍ낙(樂)ㆍ명(命)의 일곱 가지이다.
이러한 것을 7사신이라고 하는데 이는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고 조화에 의한 것이 아니라 조화이며, 실로 지속하는 모임이다. 나아가 그것은 상주하고 확고하여 이동하는 일이 없고, 각각 서로 관계하지도 않으며, 혹은 복과도 혹은 악과도 혹은 복악과도 관계하지 않고 혹은 고와도 혹은 낙과도 혹은 고락과도 관계하지 않으며, 혹은 사람의 즐거움과도 혹은 사람의 괴로움과도 관계하는 일이 없다. 나아가 세간에서 7신 사이를 칼날을 지나게 한다 해도 그것은 목숨을 해치는 일은 아니다’고 한다.
즉 그들은 주장하기를,
‘혹은 해치고 혹은 살상하더라도 목숨을 마치는 것에는 이른 것이 아니며, 목숨을 마치는 것에 이르는 일을 짓는 일도 없다’고 하니, 이러한 견해는 변견 중의 유상견에 포섭되는 것으로서, 고제단이다.
이른바 4십만의 생문(生門)이 있고 6백만의 대겁이 있으며, 6백의 삼행(行)과 일행과 반행(半行)이 있으며, 62적향(跡向)과 62진지(塵持)와 62중겁과 120근(根)과 136대지옥과 4백 9십만의 범지가(梵志家)와 4백 9십만의 나형촌(裸形村)과 4백 9십만의 용국(龍國)이 있다.22)
이 중에는 6육생(六生)과 8사지(士地)ㆍ7상행(想行)ㆍ7무상행(無想行)ㆍ7니건자행(尼犍子行)ㆍ7아수륜(阿須倫)ㆍ7비(非)아수륜ㆍ7천(天)ㆍ7에(恚)ㆍ7인(人)ㆍ7비인(非人)ㆍ7천(泉)ㆍ7백천ㆍ7험(嶮)ㆍ7백험ㆍ7산(山)ㆍ7백산ㆍ7몽(夢)ㆍ7백몽이 있다.
이것을 84백천 대겁이라고 하는데, ‘어리석은 이나 혹은 지해필운이나 이 모두를 왕래하고 거치므로써 그의 괴로움을 다하게 된다’고 하는 견해가 있다.
나아가 거기서는 ‘나는 이러한 계의 결과에 의한 청정한 행[淨行]으로써 행하지 않은 것을 완전히 행하게 하여 당연히 무르익게 하고, 이미 무르익은 것은 당연히 배가시키고, 이미 배가 된 것은 두 배가 되게 한다’는 것을 주장하는 일이 없으며, 고락이 이미 진행되었으면 다시 물러나는 일이 없다고 한다.
비유하자면 마치 실타레가 실이 다 풀어질 때까지 굴러가듯이, 어리석은 이나 혹은 지혜로운이나 이와 같은 84백천 대겁을 왕래하고 거쳐야만 비로소 그의 괴로움을 다하게 되며, 그것의 인위적일 조작이나 조작의 근거가 없다고 하는,
이 같은 견해는 계도(戒盜)로서 고제단이다.
이른바 ‘우리 인간이 경험하는 모든 것, 그것은 모두 일찍이 지었던 것[本所作:신역 宿作]을 원인으로 하며, 그 밖의 조작이나 조작의 근거는 없다’고 하는, 이러한 견해는 계도로서 고제단이다.23)
이른바 ‘우리 인간이 경험하는 모든 것, 그것은 모두 부자(富者:신역 自在)의 변화로서, 그 밖의 조작이나 조작의 근거는 없다’고 하는, 이러한 견해는 계도로서 고제단이다.
이른바 ‘우리 인간이 경험하는 모든 것, 그것은 모두 무인무연이다’고 하는, 이러한 견해는 그릇된 견해로서 습제단이다.
이른바 ‘자신이 고락을 조작하는 것이며, 그 밖의 조작이나 조작의 근거는 없다’고 하는, 이러한 견해는 계도로서 고제단이다.
이른바 ‘다른 이가 고락을 조직하는 것이며, 그 밖의 조작이나 소작의 근거는 없다’고 하는, 이러한 견해는 계도로서 고제단이다.
이른바 ‘내가 조작하고, 다른 이가 조작하는 것이며, 그 밖의 조작이나 조작의 근거는 없다’고 하는, 이러한 견해는 계도로서 고제단이다.
이른바 ‘자신이 조작하는 것도 아니고, 다른 이가 조작하는 것도 아니며, 내가 조작하거나 다른 이로 하여금 조작하게 하는 것도 아니다. 즉무인무연으로 중생은 고락을 경험하게 된다’고 하는, 이러한 견해는 그릇된 견해로서 습제단이다.
이른바 ‘그것은 바로 자아[我]이고, 그것은 바로 세간의 자아[世我]로서, 그것은 영원한 법[常法]이며, 변이하지 않는 법이다’고 하는, 이러한 견해는 변견 중의 유상견에 포섭되는 것으로서 고제단이다.24)
이른바 ‘실로 이것의 자아가 있다’고 하는, 이러한 견해는 변견 중의 유상견에 포섭되는 것으로서 고제단이다.
이른바 ‘실로 이것의 자아가 없다’고 하는, 이러한 견해는 변견 중의 단멸견에 포섭되는 것으로서 고제단이다.
이른바 ‘자아가 자아를 관찰하며, 눈과 색은 자아로서 지속한다’고 하는, 이러한 견해는 신견(身見)으로 고제단이다.
이른바 ‘자아가 비아(非我)를 관찰하며, 눈은 자아로서 지속하더라도 색은 여러 인(因)을 갖추고 있다’고 하는, 이러한 견해는 신견으로 고제단이다.
이른바 ‘무아가 자아를 관찰하며, 색은 자아로서 지속하더라고 눈은 여러 인을 갖추고 있다’고 하는, 이러한 견해는 신견으로 고제단이다.
이른바 ‘이것은 바로 자아로서, 말하는 것이며, 혹은 느끼는 것이며, 조작하는 것이며, 조작하게 하는 것이며, 낳는 것이며, 등생(等生)하는 것이며, 거기서 선ㆍ악의 행을 짓고, 그 보를 받는 것이다’고 하는, 이러한 견해는 변견 중의 유상견에 포섭되는 것으로 고제단이다.
이른바 ‘그 같은 정탈출(淨脫出)은 오욕락을 즐기는 것과 같다’고 하는, 이러한 견해는 더러운 법을 가장 뛰어난 것이라고 하는 것이니, 이는 견도(見盜)로서 고제단이다.25)
이른바 ‘그 같은 정탈출은 욕탐을 해탈하고, 나아가 제4선에서 노니는 것과 같으며, 그 밖의 조작이나 조작의 근거가 없다’고 하는, 이러한 견해는 계도(戒盜)로서 고제단이다.
이른바 이러한 견해가 있다.26)
아호(我豪)는 헛된 견에 의해 일어나는 증만(增慢)이다. 아상사(我相似)는 헛된 견에 의해 일어나는 만(慢)이다. 아비(我卑)는 헛된 견에 의해 일어나는 소만(小慢)이다. 유승아(有勝我)는 견에 의해 일어나는 소만이다. 유사아(有似我)는 견에 의해 일어나는 만이다. 유비아(有卑我)는 견에 의해 일어나는 증만이다. 무호아(無豪我)는 견에 의해 일어나는 증만이다. 무사아(無似我)는 견에 의해 일어나는 증만이다. 무비아(無卑我)는 견해에 의해 일어나는 소만이다.
이른바 ‘바람도 없고, 비도 없으며, 화살이 나르는 일도 없고, 임신하여도 잉태되지 않으며, 강은 흐르지 않고 불은 타지 않으며, 해와 달은 뜨지 않고 지지 않으며, 번뇌와 청정은 머무는 곳이 없다’고 하는, 이러한 견해는 변견 중의 단멸견에 포섭되는 것으로서 고제단이다.27)
이른바 이러한 견해가 있다.28)
내가 중생을 조작하였으며,
다른 이도 중생을 조작하였다고 하나,
그 하나하나는 어떠한 것도 본 일이 없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화살임을 관찰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나에 의해 중생이 조작되었다’고 하는 것은, 내가 짓고, 내가 만들고, 내가 변화한 것이기 때문에 ‘내가 중생을 조작하였다’고 일컬은 것이며, ‘다른 이도 역시 조작하였다’고 하는 것은, 다른 이가 짓고, 다른 이가 만들고, 다른 이가 변화한 것이기 때문에 ‘다른 이도 역시 조작하였다’고 일컬은 것이다.
그리고 ‘그 하나하나는 어떠한 것도 본 일이 없는 것이다’고 함에서 하나하나란 바로 견해인 것으로, 그들은 보지 못하였고 깨닫지 못하였으므로, ‘그 하나하나는 어떠한 것도 본 일이 없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화살임을 관찰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고 말한 것이다.
이것을 화살의 근거라고 관찰해야 할 것이니,
이를테면 생에 있어서 수(受)를 감촉하는 것과 같다거나
내가 조작하였다고 하는 그것은 그렇지가 않으며,
다른 이가 조작하였다고 하는 그것도 그렇지가 않은 것이다.
‘이것을 화살의 근거라고 관찰해야 할 것이다’에서, 화살이란 그 같은 견해를 말하며, 화살의 근거란 각기 개별적인 생ㆍ노ㆍ병ㆍ사를 말한다. 곧 그 같은 견해인 화살을 보는 것이 시작이다. 그래서 화살의 근거를 관찰하라고 일컬은 것이다.
또한 ‘생에 있어서 수를 감촉하는 것과 같다’고 함에서 생이란 외도를 말하며, 그의 견해를 학(學)이라고 염착(染著)하는 것이 감각이다. 그래서 생에 있어서 수를 감촉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일컬은 것이다.
‘내가 조작하였다고 하는 그것은 그렇지가 않다’고 하는 것은, 내가 짓고, 내가 만들고, 내가 변화하였다고 하는 그것이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조작하였다고 하는 그것은 그렇지가 않다’고 말한 것이다.
‘다른 이가 조작하였다고 하는 그것도 그렇지가 않다’고 하는 것은, 다른 이가 짓고 다른 이가 만들고 다른 이가 변화하였다고 하는 그것이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이가 조작하였다고 하는 그것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 것이다.
만(慢)에 이러한 중생이 머물 때,
만에 집착[取]되고, 만에 속박되며,
견해에서 어긋나 생사를 초월하지 못한다.29)
‘만에 이러한 중생이 머물 때란, 그가 일곱 가지의 만에 머물며, 소속되고 성취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만에 이러한 중생이 머문다’고 일컬은 것이다.
‘만에 집착된다’고 하는 것은, 그는 만에 대해 집착하고 거듭 집착하며, 영구히 집작하기 때문에 ‘만에 집작된다’고 일컬은 것이다.
‘만에 속박된다’고 하는 것은, 그는 만에 속박되고 거듭 속박되며, 영구히 속박되기 때문에 ‘만에 속박된다’고 일컬은 것이다.
‘견해에서 어긋난다’고 하는 것은 단멸견과 유상견으로 서로 어긋나거나, 유상견과 단멸견으로 서로 어긋나는 것이다. 때문에 견해에서 어긋난다고 한 것이다.
‘생사를 초월하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끝없는 그것을 초월하지 못하고, 원만히 초월하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생사를 초월하지 못한다’고 일컬은 것이다.
획득하였거나 혹은 마땅히 획득할 것의
두 가지가 번뇌와 뒤섞여 함께 흩어지는,
이학계(異學戒)에는 여러 학(學)과 여러 지계(持戒)와 여러 활(活) 및
여러 범활(梵活)과 여러 양전(養全)이 있다.30)
‘획득하였거나 혹은 획득할 것’이라고 하는 것에서, 이미 획득한 지(持)ㆍ음(陰)ㆍ입(入)이기 때문에 ‘획득한 것’이라고 일컬은 것이고,
‘혹은 마땅히 획득할 것’이란, 아직 획득하지 않은 지ㆍ음ㆍ입은 반드시 획득할 것이기 때문에 ‘혹은 마땅히 획득할 것’이라고 일컬은 것이다.
‘두 가지가 번뇌와 뒤섞여 함께 흩어진다’고 하는 것은, 이 두 가지는 번뇌인 탐욕과 진에와 우치에 의해 그것이 구름같이 흩어지고, 다양하게 흩어지기 때문에 ‘두 가지는 번뇌와 뒤섞여 함께 흩어진다’고 일컬은 것이다.
이학계(외도)란, 그러한 것을 배우고, 그것을 따르기 때문에 이학계라고 말한 것이다.
그리고 여러 가지의 학이란, 여러 중생이 이와 같이 보고, 이와 같이 말하기 때문에 여러 학이라고 하는 것이다. 즉 ‘그 같은 정탈출이란 바로 코끼리의 목이나 말의 등, 수레ㆍ궁지(弓地)ㆍ구강(鉤强)ㆍ여러 형태의 가마 등을 타고 출입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라고 하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의 지계란, 여러 중생은 이익 같이 보고 이와 같이 말한다. 즉 ‘그 같은 정탈출이란 바로 소의 계[牛戒]를 지니고, 개의 계, 사슴의 계, 코끼리의 계, 대머리 올빼미의 계, 나형계(裸形戒)를 지키는 것이다’ 라고 말한다. 그래서 여러 가지의 지계라고 일컬은 것이다.
여러 가지의 활(活:신역 浴)이란, 여러 중생은 이와 같이 보고, 이와 같이 말한다. 즉 ‘그들이 많이 목욕하고 오래 목욕하고자 하면 인천(人泉)이나 불인천(不人泉), 혹은 상인천(上人泉) 등 갠지즈강의 시원[恒門]이 되는 삼우천(三藕泉)에서 씻어야만 한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여러 가지의 활이라고 일컬은 것이다.
여러 가지의 범활이란, 여러 중생은 이와 같이 보고, 이와 같이 말한다. 즉 ‘그러한 정탈출이란 바로 서로 비교되는 여러 범행을 고쳐가며 평등하게 수지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여러 가지의 범활이라고 일컬은 것이다.
여러 가지의 양전(養全:신역 承事)이란, 여러 중생은 이와 같이 보고, 이와 같이 말한다. 즉 ‘그러한 정탈출이란 바로 불이나 해ㆍ달ㆍ별자리ㆍ약을 섬기고 궁을 꾸미는 것이다’라고, 그래서 여러 가지의 양전이라고 일컬은 것이다.
이 같은 견해는 첫 번째 극단으로, 조작도 조작의 근거도 없다는 것이므로, 이는 계도(戒盜)로서 고제단이다.
여러 중생은 이와 같이 보고, 이와 같이 말한다. 즉 ‘욕망을 탐닉하는 것은 청정한 욕망이므로 식욕이나 감관을 만족시키는 욕망 중에는 어떠한 허물도 없다’라고 말한다. 이것이 두 번째 극단으로, 더러운 법에 집착해 가장 뛰어나다고 하는 것이므로, 이는 견도(見盜)로서 고제단이다.
따라서 이러한 두 가지 극단은 계도와 견도를 알지 못하고, 참답게 알지 못하며, 참답게 보지 못한 것이므로, 그것에 집작되어 그것을 수지하고, 그것으로 내닫게 되는 것이다.
[계도와 견도가] 일어남을 보는 눈은 견(見)을 성취한 것이고, 그러한 눈을 성취한 이를 불세존이라고 한다. 즉 그는 그것에 집착될 때나 수지할 때나 그것으로 내닫을 때를 보고, 그것이 일어나는 것을 보기 때문에 눈이 견을 성취하였다고 일컫는 것이다.
또한 이러 저러한 두 가지 극단이 계도와 견도임을 알고, 참답게 알고, 참답게 봄으로써 그것에 집착되지 않고, 그것을 수지하지 않으며, 그것으로 내닫지 않게 되는 것이다. [계도와 견도가] 일어나지 않는 것을 볼 때, 눈은 견을 성취하게 되며, 나아가 그러한 눈을 성취한 이를 일컬어 불세존이라고 하는 것이다.
즉 그것에 집착되지 않을 때를, 수지하지 않을 때를, 그것으로 내닫지 않을 때를, 그것이 일어나지 않을 때를 보기 때문에, 눈이 견을 성취하였다고 하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것에 물들지 않았고 더럽혀지지 않았으며 어리석지도 않다. 그는 욕망하지도 않고 정해탈로 벗어났으며, 그는 다시는 윤전(輪轉)하지 않는다. 그리고 여기에서 윤전이란 끊없는 생사를 말하는데, 그는 그러한 [계도와 견도를] 다하지 않은 자가 아니며, 어떠한 것도 남음이 있지 않은 자이기 때문에 다시는 윤전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극단을 나는 괴로움이라고 설명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괴로움이란 5성음으로, 그것은 이러한 견해의 극단이고 더한 극단이며 가장 궁극의 극단이다. 그래서 이러한 극단을 나는 괴로움이라고 설명한 것이다.
이상 견품(見品) 제43을 마친다.
[범본 276수로, 진어 3,307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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