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힘들고 주부는 바쁘다. 삶에 부대낄수록, 가족들과 떨어져서 혼자만의 여행을 권하고 싶다.
인기리에 방영 중인 한 TV 드라마를 두고, 우리집 식구들 사이에 가볍게 의견이 갈렸다. 드라마 내용인즉 40년 가까이 시부모를 모시고 시동생을 뒷바라지하면서 별 탈 없이 잘 살던 60대 주부가, 느닷없이 대학교수도 아닌데 ‘안식년’을 얻어서 따로 집을 얻어서 나가 살고 싶다고 폭탄선언을 한 것. 결국 시아버지의 허락을 얻어서 집에서 버스로 몇 정거장 떨어진 곳에 원룸을 얻어 1년 예정으로 컴퓨터도 배우고, 영화도 보고 다니고, 좋아하는 책도 실컷 읽다가,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는 그런 생활을 한다. 이 장면을 시청하던 남편은 “어디 아픈 거 아냐? 어떻게 주부가 집을 1년씩이나 나가 있어?”라며 말도 안 된다고 흥분하면서 “당신은 저런 생각 안 들지?” 하고 묻는 걸, 쐐기를 확 박아버렸다. “나라고 안 그런가? 1년은 고사하고 한 달 만이라도 나 혼자 좀 편하게 살아봤으면 좋겠네!”
1년에 하루, 혼자만의 시간을 갖자 엄마는 힘들고 주부는 바쁘다. 이렇게 얘기하면 남편들에게서, 남자들에게서 태클이 들어온다. ‘남자는 안 힘들고 안 바쁜가? 돈 벌러 다니느라 너무 힘들고 바쁘다’고. ‘남의 돈 거저먹는 것도 아니고, 그렇겠지, 당연하지, 누가 아니라고 했나.’ 남자들도 힘이 많이 들 것이다. 그렇지만, 여자만은 못하다. 요즘 같은 21세기에도 유독 여자에게는 봉건적 역할을 강요한다. 그러다 보면 출산처럼 여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은 물론이고, 직장을 다니든, 전업주부이든 간에 직종으로 치면 수십 개는 족히 넘을 다양한 집안일을 모두 여자 손으로 처리해야 한다. 육체적 노동뿐일까? 이리저리 얽혀 있는 가족관계는 또 어떻고. 때문에 마음 편하게 살기가 참 어렵다. 여자들에게도 휴가는 꼭 필요하다. 아이들에게는 방학이 있고, 직장을 다니는 남편에게는 휴일도 있고 휴가도 있지 않은가? 그런데 주부들에게만, 엄마들에게만, 아내들에게만, 며느리들에게만 왜 휴가가 없을까? TV 드라마에서처럼 1년씩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1년에 며칠은 휴가가 있어야 한다. 얼마 전, 후배 두 명과 강원도 한 휴양림에서 하룻밤 쉬고 왔다. 후배 중 한 명은 아직 결혼하지 않아 홀가분한 상태지만, 또 한 후배는 아직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어린아이가 있는 터라 여자끼리의 여행이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나 역시 시어머니며 남편에 자식 때문에 단 하룻밤이라도 맘 편히 집을 비우는 일이 그다지 호락호락한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과감하게 떠났고, 짧은 시간이지만 재충전을 하는 데는 충분했다. 휴양림의 삼림욕장에 마련된 벤치에 누워, 햇빛이 잘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빽빽하게 들어찬 나무들을 올려다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식구들, 내 일, 나의 미래, 그리고 나라 걱정까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러다 문득, 갖가지 걱정거리를 한걸음 떨어져서 바라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한걸음 떨어져서 보니까 묘안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어떤 마음으로 일을 처리해야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이 놀라운 휴식의 힘!! 삶에 부대낄수록, 가족들과 떨어져서 혼자만의 여행을 권하고 싶다. 마음 맞는 친구 몇몇과 가까운 곳으로 떠나서 하룻밤쯤 쉬다 오는 것도 좋다. 떠날 때는 미리 반찬이며 이것저것 준비해놓고 가지 말 것. 준비하다 지쳐버리고 또 아무것도 해놓지 않아야 가족들도 아내, 엄마의 존재감을 절감할 수 있다. 아무리 그래도 하룻밤 나가 잘 수 없는 입장이라면, 혼자 영종도 근처의 작은 섬이나 강을 끼고 달리는 춘천호 부근의 환상적인 길이라도 드라이브하며 한나절 혼자 시간을 보내라고 권하고 싶다. 가족들과 떨어져서 보내는 시간은 결코 낭비가 아니다. 생산을 위한 투자라고 할까? 우스갯소리 중에 그런 얘기가 있다. 중년 여성이 가져야 할 다섯 가지는 딸, 친구, 돈, 건강 그리고 남편. 여기에 한 가지 더 추가하고 싶은 것이 있다. 바로 운전면허증. 혼자나 맘에 맞는 친구와 떠나려면 건강과 돈도 있어야 하지만 운전면허증이 있어야 더욱 홀가분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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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김혜경씨… 대한민국 대표 주부이자 포털 사이트 82쿡 (www.82cook.com)의 대표. 맛깔 나는 글 솜씨를 지닌 기자 출신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속 깊은 언니처럼, 마음 맞는 친구처럼 수다를 떨듯 연재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