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주여 뜻대로*
(My Jesus, as Thou wilt)
B.Schmolck 사 C.M.von Weber곡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온몸과 영혼을 다 주께 드리니
이 세상 고락간 주 인도 하시고
날 주관 하셔서 뜻대로 하소서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큰 근심 중에도 낙심케 마소서
주님도 때로는 울기도 하셨네
날 주관 하셔서 뜻대로 하소서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내 모든 일들을 다 주께 맡기고
저 천성 향하여 고요히 가리니
살든지 죽든지 뜻대로 하소서
아멘 아멘
내 주여 뜻 대로.mp3
<벤자민 슈몰크>의 기도
1618년에서 1648년까지 30년 간 독일에서는 천주교와 개신교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는데
이것이 이른바 30년 전쟁입니다. 이 전쟁으로 말미암아 독일은 온통 엉망이 되어버렸습니다.
이에 더하여 전쟁 직후에 흑사병이 창궐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1,600만 명이던 독일 인구 중 무려 1,000만 명이 사망하는 참혹한 상황이 빚어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전쟁에 개입해 승리를 이끌었던 프랑스는 천주교의 손을 들어주었기 때문에
개신교도들은 이중 삼중의 고통에 시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가장 치열한 격전지이었던 실레지아(Silesia)라는 곳에서는 전쟁이 끝난 후 대부분의 주민들이
종교개혁 이전의 천주교로 돌아 가버렸습니다.
벤자민 슈몰크(Benjamin Schmolk, 1672-1737)라는 개신교 목사가 그곳에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교회에는 종탑도 없어졌고 그저 통나무와 흙벽으로 된 예배당 하나만 덩그렇게 서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교회가 담당하는 교구는 주변의 36개 마을이나 되었습니다.
천주교의 박해가 심해 종탑도 세울 수 없었고 심지어는 장례식도 허락을 맡아야 치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벤자민 슈몰크> 목사 부부는 실망하지 않고 선교에 열중하였습니다.
그러다 <벤자민 슈몰크> 목사는 과로로 자주 쓰러졌고
급기야는 30대 초반에 중풍에 백내장까지 겹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중풍으로 인해 절룩거리고 눈까지도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의 선교 정열은 식지 아니하여 36개 마을을 빠짐없이 심방하며 다녔습니다.
이를 보고 많은 교인들이 감동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1704년 <슈몰크> 목사가 32세 되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슈몰크> 목사는 언제나처럼 아픈 몸을 이끌고 여러 지역을 심방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통나무로 지은 목사의 사택이 불에 타버렸기 때문입니다.
그 뿐 아니라 두 아들이 부둥켜안은 모습으로 잿더미 속에서 타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슈몰크> 목사 내외는 두 아들의 시체를 앞에 놓고 하염없이 울고 또 울었습니다.
하지만 <슈몰크> 목사는 그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끝내 신앙을 저버리지 않고 절규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 기도가 바로 ‘찬송가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549장 가사입니다 .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로마서14장8절)